피그말리온 열린책들 세계문학 176
조지 버나드 쇼 지음, 김소임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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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흘 사이에 두 권의 버나드 쇼를 읽었는데 사실 <피그말리온>을 읽기 위해서였다. <인간과 초인>은 <피그말리온> 하나만 읽기 뭐해서 곁가지로 사거였고. 왜 <피그말리온>을 선택했었느냐 하면 올해 초에 읽은 어느 책(그 새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다)에서 <피그말리온>을 여러번 거론했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난 책 읽으면서 작가가 인용하는 다른 책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인간과 초인>은 재미나게 봤다. 버나드 쇼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촌철살인, 낭중지추(아, 따가워!)의 골계미 같은 것들, 독자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키득거리게 하는 재미. 근데 <피그말리온>은? 버나스 쇼 말고 빅토리아 시대의 선배 작가 찰스 디킨스가 문득 떠올랐다. 몇 십년 전 찰스 디킨스가 써놓은 원고를 버나드 쇼가 발견해 희곡으로 다시 썼다고 해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거 같은 기시감. 새로운 신디 F. 렐라 스토리. 다만 버나드 쇼가 여혐자이자 결혼 결사반대주의자라서 신디 F 렐라 같은 결론을 만들지 않았을 뿐 뭐 여기나 거기가 비슷하다.

 아, 신디 F. 렐라가 누구냐고? 혹시 리처드 기어, 줄리아 로버츠 나오는 옛날 영화 <귀여운 여인> 보셨나? 거기서 줄리아가 백만장자 리처드를 만나 팔자를 고치는 걸 보고 줄리아의 창녀 친구가 축하의 의미로 단번에 팔자를 고치는 유럽 여자를 빗대 말한다. "신디 Fucking 렐라" 이제 기억나셔? 신데렐라를 말하는 거. 그래서 20세기 그것도 초연을 1913년에 했던 현대 연극에 왠 신데렐라 이야기냐고 지금 타박하는 중이다. 이래저래 찰스 디킨스가 끼적거린 메모 정도라면 아주 딱일 듯한데 말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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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3-31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과 초인>은 정말 뭐랄까 통쾌하게 읽었습니다.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느낌이랄까... <피그말리온>은 폴스타프님 지적대로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디킨스적이네요. ㅎㅎ

Falstaff 2017-03-31 11:02   좋아요 0 | URL
<피그말리온>은 정말 그렇죠? 이거 써놓고 너무 오버했나? 좀 캥겼었거든요. 에휴, 다행입니다. ㅋㅋㅋ
<인간과 초인> 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 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7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윤상인 옮김 / 민음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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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우미인초>에 이어 세번째 읽은 나쓰메 소세키. 처음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고 지극한 사소설 경향에 대하여 아주 질린 적이 있었다. 한 작품을 더 읽고 나쓰메를 더 읽을지 말지를 결정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 <우미인초>. 비록 '와 이거 왔다다', 라고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지만 나쓰메와 결별을 하기엔 너무 이르다 생각하게 만들어 한 작품만 더 읽어보자 싶어서 선택한 것이 또 <그 후>. 결론. '앞으로는 나쓰메를 더 많이 읽어봐야겠다.' 그래서 7월 이후에 읽을 책으로 <행인>을 선택했다. 열혈독자 제위께선 나쓰메를 더 소개해주지 않으시기 바라니, 다른 건 없고 <행인>을 벌써 샀다는 거. 7월 말이나 8월 초에 읽기로 예정해버렸기 때문에. 다른 책을 더 추천해주시면 내년에나 읽을 터인데 너무 늦잖여? 그럼 내가 미안하잖여?

 잠깐, 일본 근대사. 고려시대 무신정권과 비슷한 시기에 일본의 막부정권이 탄생한다. 그리고 고려 무신정권이 거덜나는 것과 비슷하게 일본의 막부 역시 작살난다. 어떻게? 몽고가 고려를 침공해 거의 식민지 비슷한 상황을 만들자 무신정권이 종말을 고한다. 즉 외세에 의하지 않고 고려의 왕이 스스로 힘을 키워 무신들을 제거하기는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 어렵다는 말. 마찬가지로 미국,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등 서구 열강이 일본에 개항을 요구하자 겁대가리 없기로 세상에 유래가 없는 일본 깡패들, 좋은 말로 해서 막부와 칼잡이 사무라이들이 훈도시 하나 걸치고 칼쌈했다가 대포 한 방에 거꾸러지자 자연스럽게 700여년을 이어오던 일본 무신정권이 무너지고 참 오랜만에 왕정이 복고가 된다. 그때가 1867년. 나쓰메 소세키가 태어난 해다. 심지어 일본 근대화의 랜드 마크인 메이지 유신보다 더 빨리 태어났다. 그러니 요새 말로 나쓰메는 '전설'. 말 돼?

 이 양반이 스물 세살에 영국에 유학을 했는데 워낙 처음부터 영어에 소질이 있었는데다가 현지까지 가서 공부를 했으니 그의 작품에 서양소설의 면면이 아주 흔연하게 배어 있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소위 일본 판 '해외문학파'? 이 책에서도 그럤다. 초반에 주인공 다이스케, 이 친구는 서른 살이 되자 돈이 철철 넘쳐흐르는 아빠한테 얘기해서 도쿄 시내에 집을 하나 얻어(전센지 월센지, 아니면 그냥  샀는지 분명하진 않지만) 독립을 한 작자로, 독립을 하긴 했으되 사상, 예술, 영혼 또는 니미럴 뽕의 순결을 위해 직업을 갖지 않기로 하고 여전히 돈 많은 아빠한테 고마운줄도 모르고 한 달에 한 번 들러 생활비, 유흥비, 문화비, 식비 등을 받아 쓰는 룸펜 부르주아 인텔리겐챠, 한 마디로 쓰레기 중의 쓰레기다. 얘가 책 앞머리 부분에, 책상에 앉아 궁리하는 것이 유럽의 명작 가운데 바람난 유부녀가 많은데 모두 다 아름다운 얘기, 라는 거. 이 부분을 읽어 지나가면, 척, 알 수 있다. 매력적인 소재 '불륜'을 다룬 소설이란 것을. 

 그.러.나. 지금 내가 이 책이 불륜을 다룬 소설이라고 정의를 해버렸는 바, 열린 공간에다가 독후감을 쓰면서 작품의 마지막 쯤에 가야 이 책이 흥미 측면에서 가장 매력적인 '불륜소설'이라는 걸, 중간부터 짐작을 하다가 짐작 수준이 점점 더 깊어지다가, 나중에 가서 이게 '적극적 불륜소설임'을 알 수 있는데 그걸 확 얘기해버려 송구하기 그지 없어서 차마 줄거리에 관해선 더 이상 얘기하지 못하겠다. 양해해주시기를 바란다. (여기까지 얘기한 것도 참 유감스런 일이다)

 독후감을 쓰면서 무수하게 얘기했듯이 내 취향이, 아빠 물총 잘 맞아 생활에 관해선 아무 걱정도 없이 사는 인간들이 펼치는 심적 고민과 소위 '방황'하는 걸 무지하게 혐오하는데 딱 이 책이 그렇다. 조선시대에 (제대로 되지 못한)양반놈들이 노동을 멸시하고 오직 사유적 쾌락과 전혀 쓸데없는 윤리를 과시하고 강요했듯이 이런 건 세계적으로 소위 왕족이나 귀족들의 최대공약수이니만큼 유럽에서도 예술과 문학과 철학 등 인문학을 하는 인간들은 학문과 예술을 위해 직업을 갖거나 노동을 하는 걸 지독히 멸시했다. 내가 뭘 아나, 책을 읽다보니 거기 다 나오니까 짐작하는 것이지. 최근에 읽은 아달베르트 슈티프터의 장편소설 <늦여름>에서도 그런 말 무지 나온다. 그걸 나쓰메 소세키, 아니 적어도 책의 주인공 다이스케는 굳게 믿고 있다. 불륜의 결과? 한 여자를 새롭게 얻는 일. 그걸 갑부 아빠가 눈 뜨고 봐주겠느냐고. 그러니 이젠 스스로 돈 벌어 먹고 살아야 하는 처지로 떨어진 다이스케의 고민은 깊어간다.

 "모든 직업을 다 떠올려본 뒤, 그는 방랑자에서 생각이 멈추었다. 그는 분명히 자신의 모습을 개와 사람의 경계를 오락가락하는 거지들 무리 속에서 발견할 수가 있었다. 생활의 타락은 곧 정신의 자유를 빼앗아간다는 점에서 그가 가장 고통스럽게 여기는 바였다. 그는 자신의 육체에 온갖 추하고 더러운 색을 칠하고 난 뒤에 자신의 정신이 얼마나 타락할까 하고 생각하자 오싹 소름이 끼쳤다." (308쪽)

 여기서 말하는 '생활의 타락'이란 놀랍게도 '먹고 살기 위해 직업을 갖는 일'이다. 그것이 '정신의 자유를 빼앗아' 가서 그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다이스케는 고통스러운 처지에 빠져 괴로워하고 있다. 일을 하는 게 '자신의 육체에 온갖 추하고 더러운 색을 칠'하는 것이고 이에 따라 자신의 정신이 얼마나 타락할지 가늠할 수도 없는.... 서른살 먹은 코흘리개.

 물론 작가 나쓰메가 다이스케의 입을 빌려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건 아니다. 그러면서도 다이스케에게 이런 완벽한 정형을 부여했다는 것, 아직은 도가 덜 통한 독자와 평론가들에게 (사실은 한 마리 철부지 개새끼에 불과한) 다이스케가 급기야 대단한 불행을 맞이하게 됐다고까지 생각하게 만드는 것. 그리하여 어떤 이들은 다이스케를 동정하게까지 만드는 것. 후드득, 나쓰메 소세키를 계속 읽어봐야겠다고 마음 먹게 만드는, 장.인.의.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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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3-28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 어처구니 없는 다이스케를 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이스케처럼 살 수 있음 좋겠다 싶더라고요. ㅋㅋ 밥벌이를 위해 자존심 팔지 않아도 될 룸펜 부르주아로 ㅎㅎ

Falstaff 2017-03-28 10:06   좋아요 0 | URL
룸펜 부르주아는 만인의 로망 아니겠습니까. ㅎㅎㅎ
 
모로 박사의 섬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87
허버트 조지 웰즈 지음, 한동훈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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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도 영문으로 쓰인 중요 소설 목록에 있는 작품이란 얘기 듣고 산 책.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두가지를 짚어보자.

 첫째. 책소개에 있는 걸 그대로 옮기겠다.

 "말론 브랜도와 발 키머 주연의 영화(닥터 모로의 DNA : 1996년)로도 잘 알려진 H.G.웰스의 SF 고전 <모로 박사의 섬>이 국내 처음으로 완역되었다."

 이 작품을 처음 발표한 것이 1896년. 책이 나온 시점이 2010년 7월 26일. 아, 이 책을 대한민국에서 번역하기 위해 무려 114년이 필요했던 거디다. 문예출판사가 책을 찍은 시점이 2010년. 잘 기억해두시라.

 다음. 역자 김붕구 옹. 심상치 않으시지? 김옹으로 말씀드리자면, 물론 알라딘의 저자 파일에 있는 거 그대로 옮긴 건데,

 "1922년 황해도 옹진에서 태어났다. 호는 석담(石潭 짱돌연못)이다. 일본 와세다대학교 정치경제학과 에서 수학하고,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 전공 후 불어불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럼 김붕구 옹은 만 88세, 미수米壽에 이책을 우리나라 최초로 완역하여 출간했으니 대단한 노익장.

 근데 한 줄 떼고 뭐라 써있나 하면,

 "1953년(만 31세)부터 1991년 작고할 때까지 약 40년간 서울대학교 교수 및 명예교수로 재직했다."

 엥? 이거 뭥미? 그럼 죽은지 19년 되는 해에 김옹의 귀신께서 친히 강림하시어 책을 완역했단 말씀? 난 이 엽기적인 책을 읽기도 전에 김옹의 불가사의를 초월하는 신비에 화들짝 놀란 건 물론이고, '아! 김붕구 옹 같은 분의 영혼을 일러 소위 '초인'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영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번 더 근데. 김옹의 이력을 유심히 보면 도무지 어떤 보이지 않는 내공을 갖췄기에 영어책을 완역했을까 싶다. 그러다가 10초쯤 지나면 나도 모르게 무릎 탁!

 아하! 1922년 생. 스물 세살까지 일본어를 모국어인줄 알고 산 사람. 와세다 대학 졸업, 아니, 수학! 일본어로 된 책을 다시 중역했단 거에 만원 건다.

 문예출판사, 이렇게 안 봤는데 말야. 너 솔직히 얘기해봐. 저작권은 줬니? 아니지? 걍 이조시대 때 김옹이 일본말 책을 다시 번역해둔 걸 요새 말에 맞게 윤문해서, 김옹의 후손들에게 몇 푼 주고 걍 찍은 거지!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 완역, 요 지랄 했지? 입 크게 벌리고 아~ 해봐. 속 좀 보자.


 어쨌든.


 에드워드 프렌딕, 이라는 이름의 영국 남자가 있었는데 젊었을 적에 헉슬리 교수를 사사한 생물학도였다. 이 양반이 남위 1도 가량의 태평양에서 조난을 당해 무인도에 가게 되면서 사건은 벌어진다. 무인도엔 섬주인 모로박사가 조수 몽고메리와 더불어 온갖 포유류를 인간과 유사하게 변형시키는 실험 또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어서, 분명히 직립보행을 하긴 하는데 어딘지 모르게 혐오스럽고 경원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외모와 성격과 이상행동을 하는 인간 또는 인간 비슷한 것들이 70 명 혹은 70 마리 조금 안 되게 거주하고 있다.

 그런 얘기. 다분히 고딕적이고 문명비평적이지만 왜 이런 소설이 중요 영문소설의 위치에 오르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처럼 말론 브랜도 팬들이라면 한 번 읽고 싶으실 지 모르겠다. 근데 아무리 그 사람 팬이라도 왠만하면 관두는 게 당신의 가정경제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거란 진심어린 말씀을 드리지 아니할 수 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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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초인 열린책들 세계문학 209
조지 버나드 쇼 지음, 이후지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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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겨. 책 제목 쓰다가 <인간과 초임>이라고 썼다. 써놓고보니 인간이란 것이 엄마 배속에서 나올 때부터 초임을 받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요새 대한민국에서 회자되는 금수저 흙수저 논란. 난 그것도 웃긴다. 세상이 평등해? 진짜 왕후장상과 걸뱅이가 평등하다고 믿어? 영주 부석사에 올라 무량수전을 등에 지고 눈을 크게 뜨면 광활하게 펼쳐지는 산맥들의 파노라마가 가슴을 뻥 뚫어준다. 정말? 그럼. 근데 그게 하필 늦가을이라서 부석사 은행나무 숲 바닥 가득 은행알이 떨어지고 관광객들이 또 하필 은행알을 밟았다면 호연지기를 가득 담은 당신의 폐에 은행 고랑내가 잔뜩 파고들어 별로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 하필이면 그때 늦가을에 당신을 영주 부석사로 가게 만드는 힘. 권력을 행사하는 자. 누구? 바로 초인? 부석사 까지 꾸역꾸역 기어 올라갔는데 보도 저편에 뚫려있으나 교묘하게 눈에 보이지 않는 샛길로 흰 BMW를 타고 땀 한 방울 없이 무량수전에 오른 늙수그레한 인간. 그가 그러더라. 왕후장상과 걸뱅이가 어떻게 평등할 수 있느냐고. 세상이 만들어진 다음부터 단 한 번도 인간은 평등해본 적이 없었다고. 재수없는 인간이고 누군지도 모르고 이젠 생긴 모습도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아 썅, 지극히 맞는 말이기도 해서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 그거 자체가 인간과 인간이 처음 세상에 나올 때부터 받는 초임에 관한 거 아니겠는가.

 서론이 길었다. 이래서 마누란 내가 쓴 글은 절대로 읽지 않는다. 그리하야 엄처의 눈길을 피해 마음대로 독후감을 쓰고 서재에 올릴 수 있으니 세상에 다 나쁜 건 없는 법.

 오늘 유독 '초임'에 관해 말이 많았다. 버나드 쇼가 희곡을 간행한 것이 1903년. 초연은 1907년. 버나드 쇼가 우울하고 고집세고 한 주먹하는 아일랜드 태생에다가 제법 밥 잘 먹고 사는 집안에 태어났으나 중간에 쫄딱 망해 잉글랜드로 옮겨 고학 비슷한 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인간과 초인>에선 생계를 위해 노동을 하는 걸 참지 못하는 인간들에 관해서, 즉 초임 높은 애들의 사랑과 결혼 이야기를 써놨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목에 '인간'이라고 해놓은 것이 대단히 마땅하지 않다는 말씀. 1900년대 지극한 초반에도 노동하지 않고 모든 관심이 사랑과 연애와 결혼과 여행과 예술과 철학에만 정열을 쏟을 수 있는 부류는 전체 인간들의 천분의 일도 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기서 쇼가 말하는 '인간'이란 저 옛날, 기원전 몇 세기에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말한 '인간', 즉 '탁월한 사람'과 비슷한 부류라고 할 수 있을까. 아 고정하셔. 돈이 많아서, 노동을 하지 않고도 삶을 즐길 수 있고 탐구할 수 있다는 의미일 뿐이지 걔네들이 특별히 고결하다는 뜻은 절대, 절대, 절대, 그리고 또 절대 아니니까.

 그럼 초인은? 이게 골때린데, 제일 긴 막, 3막에서 책의 주인공 잭이 앤의 사랑과 대시(dash 이걸 우리 말로 뭐라 해야 하나?)를 피해 1900년대 초에 스페인 시에라 산맥으로 '차 타고' 도망쳤다가 산적을 만나 산에서 야영을 하다가 꿈 속에 나타나는 인물들, 돈 후안, (대리석상의)기사장, 마왕(혹은 메피스토펠레스), 그리고 돈나 아나가 한 바탕 굿거리를 펼치는 광경이 나온다. 이미 천국과 지옥으로 간 인물들이 지옥에 모여서 참 징글징글한 담론을 나누는 장면. 여기서 인간과 초인에 대한 무지막지한 설레발을 펼치는데 1907년에 초연을 한 연극에서 배우들, 대사 외우느라 고생 깨나 했겠다는 짜한 마음이 들 정도다. 다 아시다시피 버나드 쇼가 니체에 경도되어 있었다고 하지만, 평소에 니체하고 친하지 않아 난 기본적으로 초인이 뭔지, 아니면 초인이 누군지 여태까지도 모르겠다. 난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유물론자. 아직 초인을 본 적이 없어서. 아! 몇 번 봤다. 볼테르가 쓴 <미크로메가스>에서 천체를 여행하는 거대한 존재. 이탈로 칼비노의 <우주만화>에 나오는 크프우프크. 얘네들이 혹시 초인 아녀? 아님 말고. 난 솔직히 이 책의 백미라고들 하는 3막의 꿈 얘기가 도무지 반갑지 아니했고, 읽기에 편하지도 아니했으며, 내용이 무슨 뜻인지 알 도리를 찾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하마터면 읽다가 잘 뻔했다.

 책의 내용은 앤 화이트필드가 자신을 사랑하는 옥타비어스를 물리고 남편감으로 딱 찍어 놓은 존 태너를 얻느냐 마느냐 하는 간단한 얘기다. 여기서 재미난 건 평생 결혼에 관해 무지막지하게 비판적인 견해를 유지했던 버나드 쇼의 촌철살인적 멘트를 구경하는 일. '최대한 결혼을 일찍 하는 것이 여자들의 비즈니스고 최대한 결혼을 늦게까지 미루는 것이 남자들의 비즈니스'라는 등 여러가지가 나오는데 두 개만 옮겨볼까?

 산적 두목이 산에서 내려와 사업체를 하나 만든 다음 존 태너를 만나는 자리가 생겼다. 여기서 인생 선배로 존에게 한 마디 쾅.

 "인간에겐 두 가지 비극이 있소. 하나는 마음 속 욕망을 잃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것을 이루는 것이오." (296쪽)

 돈나 아나의 아버지 기사장도 젊은 시절이 있던 건 당연한 일. 이 양반이 한땐 무지하게 여자들을 유혹했던 전력이 있었단다. 그 시절에 여자들에게 퍼부었던 유혹의 말들을, 마지막 가까이 가서 난데없이 옥타비어스가 앤에게 속삭인다.

 "나도 늙어요. 앤, 여든이 되면 난 가장 아름답고 젊은 여자의 가장 숱 많은 황금빛 삼단 같은 머리털보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의 흰 머리털 하나에 더 가슴 떨릴 거예요."

 재미난 희곡이긴 하지만 위에서 얘기한 3막의 꿈 속에서 벌어지는 담론이 암만해도 부담스럽다. 하지만 니체 좋아하시는 분들은 역시 이것도 마음에 들지 않을까 싶은데 읽어보시고 싶으면 읽으시고 아니면 마시라.


 마지막으로 한 마디. 내가 별점을 두개 밖에 주지 못한 사연. 이건 지적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려 했다가 심통이 나서. 책 번역한 사람이 이후지 씨란다. 번역의 질에 관해선 왈가왈부하지 않겠다. 과문한 나도 쇼를 번역하기가 녹록지 않다는 얘길 많이 들은지라 그건 넘어가고, 책 초반 13쪽에 이런 무대 묘사가 나온다.

 "왼편엔 존 브라이트의 흉상이며, 오른 편의 다른 하나는 허버트 스펜서의 흉상이다. 두 흉상 사이에 리처드 코브던의 판화 초상이 있으며 마르티노, 헉슬리, 조지 엘리엇의 확대된 사진이 걸려 있고……"

 독자들이 위에 써있는 영국 사람이 누군지 알 도리가 없으니 당연히 각주를 달아 대강 누군지 설명을 해놓았는데, 헉슬리 설명을 한번 보시라.

 "7. Aldous Huxley(1894~1963), 20세기 영국 소설가, 비평가 「멋진 신세계 Brave New World」 등의 작품을 썼다."

 이거 정말이야? 정말 올더스 헉슬리 얘기하는 거야? 좀 이상하지 않으신가? 책이 나온 시기가 1903년. 그럼 올더스 헉슬리의 나이가 장장 만 9세. 우리나이로 열 살. 초딩 3학년이다. 이 아이가 나중에 영국의 훌륭한 작가가 되리라 조지 버나스 쇼가 일찌감치 떡잎을 알아봤다면 쇼 스스로가 초인이다. 막 그냥 생각나는대로 번역하고 각주달고, 설마 누가 눈치 채겠어? 그지? 

 

 

 

* PS.  위에서 말한 '헉슬리'가 누군지 아시려면 허버트 조지 웰스가 쓴 <모로 박사의 섬>을 읽어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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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 브리스트 대산세계문학총서 83
테오도르 폰타네 지음, 김영주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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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 36개의 장으로 되어있는 장편소설. 1장, 좀 무딘 독자들도 2장 까지 읽으면 책의 스토리를 거의 알아챌 수 있다.


 에피가 이런 장송곡을 엄숙하게 부르는 동안 네 명의 숙녀는 오솔길을 올라가 매어둔 보트에 올라탄 뒤 작은 돌맹이 때문에 무거워진 신문 봉지를 천천히 연못 속으로 밀어 넣었다.

 "헤르타야, 이제 너의 죄는 가라앉았어."라고 에피가 말했다.

 "이걸 보니 지금 생각나는데 말이야, 옛날에 불쌍하고 불행한 부인들이 이렇게 보트에서 수장 당했대. 그 이유는 물론 부정(不貞)한 행실 때문이지." (17쪽)


 전형적인 19세기 독일 소설. 틴 에이지 아가씨들이 아무 생각없이 지껄이는 복선. 이 대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간 열 일곱살 프로이센 아가씨는 집을 방문한 스물 두살 연상, 엄마의 첫사랑과 약혼을 하고 얼마 후 에피 인스테텐 남작부인이 된다. 그럼 얘기 끝난 거 아냐? 더구나 나이 많은 남편이 엄격하고, 교육적이고, 하여간 쉽게 얘기해서 잔정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진짜 독일 기계 같다면 그런 남편과 같이 사는 말괄량이 출신의 정 많은 부인. 여기다가 1장에 버젓하게 쓴 복선을 더하면 얘긴 끝. 처음부터 오직 하나, 이미 정해진 결말을 향해 줄달음치는 걸 독자는 그냥 편하게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만 59세에 처음 소설을 쓴 작가 폰타네는 구질구질하게 문장을 다듬어 아름답게 만드는 따위에다가 정력을 낭비하지 않는 미덕을 발휘하여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게 만들어주지만, 반면에 중세 문학 수준의 터무니 없고 끝내 소동의 원인이나 에피 인스테텐 남작부인과의 연관성에 관한 상세한 설명 없이 난데없는 중국인 남자 귀신 에피소드를 집어넣어 독자로 하여금, 에그 깜짝이야, 실소케 하기도 한다. 귀엽지? 그리고 조금 역겹지?

 이 책, 어디선가 상당히 중요한 문제적 소설이란 평을 듣고 산 건데, 문제는 '어디선가'가 영/미에서 대단히 유력한 언론매체라는 거. 심지어 이 책을 발간한 문학과지성은 <에피 브리스트>를 일컬어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와 함께 19세기에 여성의 관점으로 쓰인 결혼 이야기 3부작 중 한 작품으로 거론된다."

 라고 해놓았다. '여성의 관점으로 쓴 결혼 이야기'라는덴 반 만 동의한다. 만일 전적으로 동의한다면 '여성 관점의 쓴 결혼'은 반드시 불륜이어야 하며, 비극적인 죽음을 동반해야 하니까. 아, 그러면 이 책에서도 주인공 에피가 비극적인 죽음으로 끝나느냐고? 에구. 결론을 말해버렸다. 라고 해야 할 거 같으시지? 설마 내가 결론을 그리 쉽게 얘기했겠나.

 하여간 그건 그렇고 이 책을 <안나...> <마담....>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는 몰상식한 짓을 문학과지성도 자기네 책 팔아먹겠다는 심사로 아무렇지 않게 해버렸는데, 우리 독자들은 버~얼써 알고 있다. 러시아와 프랑스 소설과 비교해서 독일 소설이 얼마나 재미 없는지. 그래서 문학과지성의 위와 같은 찬사가 얼마나 개소리와 유사한지. 아! 개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이 책에도 충성스런 개가 등장한다. '롤로'라고. 물론 개보다 못한 인간도 무지 많이 등장하기도 한다.

 느므느므 도식적인 불륜 이야기. 나이 차 많이 나는 결혼. 근사한 주변 남자 등장. (베드 씬 하나도 안 나오는 재미없는)불륜. 결투와 죽음. 이별. 결말. 딱 그려지시지? 바로 그런 책. 꼭 이 책 사서 읽어보시라. 단, 당신이 지겨울 정도로 돈도 많고 시간도 많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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