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21
잭 케루악 지음, 김재성 옮김 / 민음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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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전,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를 얼마나 개운하게 읽었는지. 이 작품을 읽은 분은 내가 지금 “개운하게”라는 부사를 쓴 것을 의아해할 지도 모른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본격적인 세계의 공장으로 우뚝 선 은혜와 기회의 나라 미국에서 돈 없고 일 할 의욕도 없고 직업도 없는 껄렁한 청춘들이 미국 전역을, 넓기는 또 얼마나 넓어, 그 큰 땅을 히치하이크와 차량 절도와 술과 마리화나와 가능하면 코카인도 좋고, 가리지 않은 상대와의 하룻밤 또는 며칠 밤과 함께 종횡무진 펼쳐가는 이야기. 작가 잭 케루악은 프랑스계 캐나다 이민자 가정에서 1922년에 태어나 미식축구 특기생으로 명문 콜롬비아 대학에 진학한다. 그러나 감독하고 마음이 맞지 않아 조금 방황하다가 해군에 입대했지만 몇 달 되지 않아 불명예 제대한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지만 중퇴해버리고 또다시 해군에 복귀하는 등 파란만장한 청춘시절을 보낸다. 부모 속이 얼마나 터졌을까? 이때 시인 앨런 긴즈버그, 소설가 윌리엄 버로스, 닐 캐시디 등과 교류하면서 다양한 사건에 휘말리는 한편, 두 번의 결혼이 실패로 돌아간다. 물론 이 시기에 친구들과 함께 미국 전역을 싸돌아다니며 잡다한 말썽에 엮인 일을 원고지에 써 내려간 것이 나중에 잭 케루악을 스타덤에 올려놓은 <길 위에서>이기는 하다.

  세상의 태양은 위대하게 타오르지만 그만큼 짙은 그늘 속에서 아무런 전망도 없는 청춘들이 대책 없이 찰나의 만족을 위하여 서슴없이 몸을 던지는 <길 위에서>, 독자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코드가 있을 터인데 코드가 맞기만 하면 틀림없이 대박일 책이었고, 다행히 나 하고는 더할 나위 없는 궁합이라 한 방에 반해버려 <다르마 행려>를 선택하는 데는 조금도 머뭇거림이 없었다. 다르마. 선불교를 창시한 달마. 행려, 하니까 좀 고급스러워 보이지만, 행려병자, 하면 쉬운 이야기로 ‘거지’ 혹은 ‘빌어먹는 인간’이다. 근데 앞에 달마를 붙이면 ‘선 수행을 하며 밥을 얻어 탁발하는 수도승’을 말한다. 동부 매사추세츠에서 캘리포니아로 넘어온 잭 캐루악의 분신 레이 스미스는 캘리포니아 숲 속에서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빠지며 불교 경전을 공부하기에 이른다. 물론 이런 것들만 나열하면 소위 ‘비트 문학’의 선구자 잭 케루악이 아니라서 역시 다양한 청춘들의 난장판이 들어 있는 건 물론이다.

  그리고 오늘 <빅 서>의 마지막 장을 덮어, 이제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한 모든 잭 케루악은 다 읽게 된다. 알코올 의존증이 있던 아버지가 케루악이 스물세 살 때 위암으로 죽은 이후 어머니와는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39세 때 캘리포니아 빅 서, 남부 플로리다 등으로 옮겨 다니다가 다시 동부로 와서 어머니와 함께 세인트 피터스버그에 정착해 살기도 한다. 여기서 ‘빅 서’가 나온다. 서른아홉 살 때 잠깐 머물렀던 캘리포니아 태평양에 인접한 샌타루시아 산맥 서쪽 해안. 이 동네에서 잭 케루악은 마지막 비트, 비트닉의 왕이지만 이미 늙은 비트족 생활을 잠깐 시현하고 8년 후, 결국 알코올성 간경변으로 인한 내출혈, 알기 쉽게 검은 피를 토하며 마흔일곱의 짧은 생에 마침표를 찍는다.


  잭 케루악 본인이 거의 틀림없을 잭 들루오즈는 알코올 의존증 중간 이상의 단계에 접어들어 당장 손을 써야지 안 그러면 끝이라고 판단했다. 지난 3년간 술에 찌든 절망의 길을 걸어와 이제는 육체적, 정신적, 형이상학적 절망의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마침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친구 로렌조 몬샌토가 빅 서에 있는 자신의 별장을 삼 주 동안 빌려주겠다고 제안을 해, 숲 속 오두막에서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혼자 잠자고, 장작 패고, 물 긷고, 글도 쓰며 지내겠다고 작정했다. 그리하여 잭은 롱아일랜드의 어머니 집에서 3박4일 간 기차를 타고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지만 실제는 언제나 예상이나 의지와 같지는 않은 법. 몬샌토가 일하는 시티 라이츠 서점에 들러 별장의 열쇠를 받아 곧바로 시외버스에 타야 했으나 때마침 토요일 밤의 대목이기도 하고, 샌프란시스코에는 널린 것이 왕년의 동무들이기도 해서, 잭은 “비트닉의 왕” 자격으로 여기저기 전화를 해 숱한 가난한 공신들을 초청, 이틀동안 크게 술잔치를 벌인다. 오후 늦게 잠에서 깨 정신을 차려 이틀간 쓸 식량을 사 륙색을 짊어지고 버스를 타 몬테레이에 도착, 다시 택시를 타고 별장 초입의 레이턴 케니언 다리에 내린 시간이 새벽 두 시.

  잭은 마음을 다잡는다. 방탕은 그만. 이제 세상을 조용히 바라보고 어쩌면 즐기기도 해야 할 때야. 먼저 숲 속에서 다음은 세상 틈에서. 술도 마약도 그만, 비트닉이며 술꾼들이며 마약쟁이들과의 흥청망청 파티도 그만. 전부 다 그만. 그는 바람소리, 나무 소리, 파도 소리 같은 온갖 자연의 소리를 노트에 옮겨 적어 길고 긴 시 <바다>로 남긴다. 그러나 고요하고 정제된 협곡에서의 생활도 나흘째부터 슬슬 싫증이 나기 시작한다. 이 골짜기는 지금부터 10세기 동안을 거슬러 올라가도, 나무와 바위는 변했을지언정 근본적으로 똑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잭은 3주만에 미쳐버렸다. 협곡처럼 편안한 곳에서, 편한 상태에서 어떻게 미쳐버릴 수 있었을까?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신호가 있었다. 평생 나 자신을 기만해왔을 뿐 나는 병든 광대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독한 깨달음이 엄습한 것이 첫 번째 신호이며, 어울리지 않게 짐승들 먹으라고 음식을 내놓은 것이 두 번째였으며, 어머니 다음으로 의지해왔던 고양이 타이크가 죽었다는 편지를 엄마한테 받은 일이 마지막 세 번째 신호였다.

  잭 들루오즈는 그리하여 빅 서에서 나와 이제는 어떤 승용차도 히치하이크에 응하지 않는 도로변을 따라 걸어, 걸어,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다가 그게 터져 피를 흘려가며 마치 부상당한 병사의 몰골로 변해갔을 때, 작은 트럭의 남자에 의하여 구조되어 몬테레이 버스역까지 갈 수 있었고,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 다시 비트닉 왕의 많고 많은 신하들이 경배하는 술병 속으로 투신해버린다. 잭의 친구들, 잭 케루악이 젊은 시절에 어울렸던 친구들을 생각하면 된다. 당연히 가난하고 그럭저럭 아무 일이나 해서 먹고 살고, 잡히지 않는다는 보장만 있으면 살인이 아닌 한에서 웬만한 범죄를 저질러버렸다가 발각이 나 교도소 구경도 좀 하던 친구들, 그리고 그들의 애인을 연상하면 된다. <길 위에서>와 <달마 부랑자들: 다르마 행려>를 비롯해 열 편의 장편소설을 써서 주머니가 가볍지 않은 잭 들루오즈가 거의 모든 술값을 대는 두주불사의 파티. 이 속에서 잭은 급격하게 무.너.진.다.


  나는 알코올 의존증 환자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은 읽기 힘들다. 나 스스로 약한 수준의 알코올 의존증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주 이야기했듯이 알코올 의존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술을 끊었으면, 그만 마셨으면 하는 일이다. 근데 그게 안 되는 비극. 잭 들루오즈도 술로 인한 인간의 황폐를 더 지속할 수 없어 빅 서로 들어갔으나, 3주만에 나오자마자 곧바로 다시 술통으로 자진 입수해버린다. 알코올 의존자에게 술을 줄이는 건 없다고 한다. 끊으면 끊는 것이고, 마시면 마시는 것일 뿐. 일주일에 8일, 1년에 소주 4백 병 이상을 마시던 나도 올해 8월 어느날, 줄이면 줄이는 것이지 끊지 못한다는 건 뭔가, 싶어서 술을 줄이고 있다. 이제 1주일에 두 번 정도 마시고, 안 마시는 날엔 탁상 캘린더에 붉은 글씨로 NAD No Alcohol Day라고 써 놓는다. 한가위 연휴 때 열흘 동안은 예외로 하고 아직까지 마음먹은 대로 지키고 있다. 아주 죽을 맛이다. 덕분에 체중은 5킬로그램 더 빠졌지만 술에 대한 갈증은 체중계 눈금과 관계없이 지독하고 강렬하고, 맵다. 이런 독한 갈증을 알기에 말콤 로우리의 <화산 아래서>, 한스 팔라다의 <술꾼>, 요제프 로트의 <거룩한 술꾼의 전설> 같이 작가 본인이 독한 중급 이상의 의존증, 중독에 시달리는 작품은 읽기가 괴롭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술을 마시는 일, 마신 후의 블랙 아웃. 잠든 상태의 괴로움과 잠이 깬 다음 손가락 마디 하나 움직이지 못하겠는 숙취. 이러다가 죽는가 보다, 또는, 죽은 상태가 이렇겠구나, 하는 암담함. 어디선가 입은 찰과상이나 부딪힌 흔적. 그러면서도, 뻔하게 알면서도 계속 술을 마실 수밖에 없는 중급 이상의 의존자들. 그것을 숨기지 않고 백일하에 쓰는 일도 그렇거니와, 그걸 읽는 또다른 술꾼의 가슴도 멘다. 메고 또 멘다. 너무도 공감할 수 있는 고역이라서. 그리하여 잭 케루악, 한 시절 미국의 소설판을 들었다 놓은 이 비트의 왕은 이 작품을 끝으로 결국 압도적으로 술에 얻어터져 간이 산산이 망가진 채 뿜어져 나오는 검정색 피를 한 말 이상 쏟으며, 간경변 환자가 그렇듯이 간 혼수가 오기 바로 전까지 말짱한 정신으로, 복수가 팽팽하게 차올라 북통처럼 치솟은 배를 내려다보며, 그렇게, 죽어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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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14 09: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저 술 거의 끊었는 데😀😀 그 뒤로는 알코올 사랑하는 작가들 책 못읽겠더라고요ㅋㅋㅋ 비슷하게 그 갈망을 알아서…ㅋㅋ 걸님의 금주를 기원합니다. 근데 약간 취해있는 것도 맨정신의 세상이 보지 못하게 하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아요.

요즘 과학 말로다가 도파민 중독 같은 것을 앓았던 걸까요? 비트… 그들은? 모든 쾌락에는 반감기가 있다죠 ㅠㅠ 늘 중독자들의 이야기에서… 인생을 강렬하게 살고 싶은 마음보다는 당장 앞의 현실을 인정하기 싫은 마음에 더 동일시를 하게되요.

다르마 행려가 달마였다는 새로운 지식도 획득하고 갑니다. 요즘 저는 <개인적 체험>을 읽고 있어요!! ㅋㅋㅋ 버드도 술 마심 ㅋㅋㅋ

Falstaff 2023-11-14 15:13   좋아요 0 | URL
거 참 잘 하셨습니다. 술은 빨리 끊거나 최소한으로 유지하는 것이 백번 천번 좋습니다. 저도 꼭 절주 성공해보겠습니다. 에휴.....
근데 <개인적인 체험>이 좀 과하게 (말이 이상합니다. 조금, 과하게를 연달아 써버리네요) 우울하지 않나요? 그거 권할 때부터 캥겨서... 위스키와 수면제 두 알 에휴... 인간아, 인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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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사과의 주름살 문학과지성 시인선 191
이정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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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록의 두번째 시집. 1964년생 용띠 시인. 공주사대 한문교육과를 졸업했다. 나 중딩 때, 그러니까 1970년대 초반, 상업선생께서 평택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나 그랬다는데, 그 학교는 졸업생 가운데 서울대나 공주사대를 입학하면 전학기 장학금을 주었다고 해서 공주사대에 대해 상당히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도 괜히 공주사대, 그러면 듣기도 좋고 감정도 좋다. 정작 장학금을 준 선생의 모교가 기억나지 않는 건 우습기도 하지만. 근데 시집과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는 건 말씀이지, 이이가 사범대학을 나왔으니까 공립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여기저기서 했다. 고향 홍성의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갈산고등학교 교사시절에 이 시집을 냈고, 몇 년 후 근무지를 옮겨 내 작은 아이 다니던 학교에서 국어교사로 근무할 때 낸 시집이 《정말》이다. 너네 학교 이정록 선생이라고 아냐? 응. 그 양반 시 쓴다는 것도 아냐? 당근이지, 아빤 어떻게 알았어? 야 새꺄, 다 큰 놈이 징그럽게 아빠가 뭐냐 아빠가, 아버님 또는 아버지라고 불러라. 이 작은 아이가 지금 서른이 넘었다. 아오, 세월이 훨씬 더 징그럽다.

  이정록은 1989년에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하여 등단했다. 사실 등단이면 등단이지 뭐 눈치를 볼 건 없지만 지방신문을 통해 등단한 것이 좀 거시기했는지 1990년엔 한길문학 신인상을, 93년, 서른 살 시절에 다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하여 중앙 시단의 말석에 방석을 놓게 된다. 92년에 소도시 아르센-루팡 빌라를 전세로 얻어 지금 사는 곳으로 전입한 나는 국가 경제발전을 위하여 당시의 미풍양속을 따라 주말 주일도 없고 공휴일도 없이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척하고, 밤이면 밤마다 불철주야 미래교육을 위하여 두주불사를 마다하지 않을 때라 시 따위는 읽어볼 여유가 없었다. 이때 이정록이 등단하고 본격적인 시작을 시작했을 때라 시인이자 내 아이의 은사일지도 모르는 선생께 미안한 바 적지 않다.

  그래도 늦게나마 읽어볼 마음을 먹은 게 어디야, 그지?


  그래, 이정록이 2010년에 창비에서 낸 시집 《정말》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 《정말》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시집을 재미로 읽느냐고? 그럼 왜, 안 돼? 재미도 있고 당연히 뭉클하기도 하고. 시집 한 권 읽으면 계속 생각나는 시가 두어 개면 만점이지? 두어 개도 되고 심지어 콱 박힌 시 구절도 있다. <느낌표>에서 나오는 건데 지금 찾아보니 62쪽이다. 첫 연.


  원자력 병원에서 돌아온 아버지

  수덕여관에다 생의 벼랑을 부려놓았다


  시인의 아버지가 암에 걸린 듯. 결국 고치지 못한 시한부만 남았는지 거처를 수덕여관으로 옮겼다. 수덕여관. 지금은 헐어 없어졌으나 일제 강점기 시절부터 수덕사 입구에 단정한 기와집을 짓고 여관업을 하던 격조 높은 장소였다. 바로 옆에 “그때 그집”이라고 산채 비빔밥을 기가 막히게 하는 집이 있었다. 지금은 저 아래 주차장 입구로 자리를 옮겼다. 수덕여관이고 그때 그집이고 예전에 있던 자리는 싸그리 밀어버렸다. 나도 가본 지 오래라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하, 또 이야기가 옆으로 새 버렸다. 원자력 병원과 수덕여관이란 고유명사가, 아마 다른 독자들에겐 그러하지 못하겠지만, 내겐 콕콕 염통을 지르는 것이었고, 게다가 “생의 벼랑을 부려놓았다”는 것이 얼마나 실감이 나는지. 프라이버시 문제로 더 이상은 이야기하지 않겠지만 하여간 나는 이 한 연에 와장창, 마음의 유리창이 깨져버렸었다. 이게 시다. 다른 사람과 관계없이 특정 독자 한 명을 냅다 후려칠 수 있는 서늘한 언어의 칼.

  이거 말고도 시집 《정말》에 관해서 말을 하자면 쐬주 서너 병은 필요할 터, 오늘은 《풋사과의 주름살》을 이야기하자는 지면이니 여기까지만 하자.


  그럼 《풋사과의 주름살》은 별로라고? 에이, 별로는 아니지. 이이가 우리 나이로 서른 살, 올해 새로 바뀐 규정에 의하면 스물아홉에 중앙시단 말석을 얻어 두번째 낸 시집이 《풋사과의 주름살》이라서 그런지 14년 후에 낸 시집과 비교하면,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될는지 모르겠지만, 투박하다. 특정 사람이나 사물, 경관을 바라보는 온기어린 시각이 한 번도 애정을 놓치지 않건만 그렇게 특징적으로 소위 “이정록 표”라고 구분해지지는 않더라는 것. 그래도 내 눈을 끈 시들은 이정록이 오얏, 그러니까 자두 이씨 성을 가져서 그런지 자두와 관계있는 시가 좋았더라.



  자두나무



  개망초 꺾으며 너에게 간다

  짱짱, 햇살을 쟁이는 푸른 자두들


  바닥엔 때 이르게 물러 떨어진

  열매들, 모두 벌레 먹은 녀석들이다


  벌레가 들자, 성한 놈 제쳐둔 채

  온몸으로 단물을 올려주고

  씨알 여물게 해준 자두나무


  낮술에 골아떨어진 호주戶主에게

  부채를 부쳐주던 여자女子가, 저 자두나무

  그늘에 쪼그리고 있었다


  늙은 몸통, 갈라진 홈마다

  붉은 눈물 솔아 있다


  땅바닥 쪽으로 쏠려 있는

  한 여자女子의 오래된 눈길 (전문)



  시집이 1996년에 나왔다. 당시만 해도 한문을 습관적으로 사용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하여간 이정록은 위처럼 단어 쓰고 괄호 안에 한자를 쓰지 않고 한자를 날 것으로 그냥 썼다. 한문교육이 교과과정에서 빠진 지 오래라 원본과 달리 우리말 쓰고 따로 원래 한자어를 삽입했다. 이하 다른 시도 마찬가지다.


  자두는 자둔데, 빨갛게 맛이 오른 주먹덩이만큼 큼지막하고 슬쩍 눈길만 줘도 혀뿌리 저쪽부터 신 침이 폭폭 뿌려지는 맛난 자두가 아니라 일찌감치 툭, 떨어진 벌레먹고 떫은 풋자두들. 비록 떨어져 씨는 맺지 못했을지라도 자기가 썩어 온몸으로 단물 올려준단다. 그리고 남은 건? 쪼그랑 주름투성이 빈 껍질이겠지. 낮술 마시고 자두 나무 아래서 코를 고는 아버지 호주에게 부채를 부쳐주는 여자, 나이든 할머니, 어머니 또는 아주머니 같은 자두. 남자가 술이나 퍼마시고 자빠져 자고 있는데 왜 여자가 그깟 남자한테 부채질을 해주느냐고 치사하게 타박하지 말자. 호주, 대주大柱가 가을바람에 새까맣게 타버릴 때까지 호구지책 먹여 살렸는지 누가 알랴.

  이 자두나무, 한 번 더 나온다. 이번에도 할머니와 자두나무.



  세수



  빨랫줄처럼 안마당을 가로질러

  꽃밭 옆에서 세수를 합니다, 할머니는

  먼저 마른 개밥 그릇에

  물 한 모금 덜어주고

  골진 얼굴 뽀득뽀득 닦습니다

  수건 대신 치마 걷어올려

  마지막으로 눈물 찍어냅니다

  이름도 뻔한 꽃들

  그 세숫물 먹고 이름을 색칠하고

  자두나무는 떫은 맛을 채워갑니다


  얼마큼 맑게 살아야

  내 땟국물로

  하늘 가까이 푸른 열매를 매달고

  땅 위, 꽃그늘을 적실 수 있을까요 (전문)



  이정록 시의 매력은 쉽다는 것. 딱 읽어보면 그냥 접수가 된다. 굳이 시의 감상을 글로 쓸 이유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요즘엔 주머니에 하나씩 장만하지 않으면 도무지 시를 읽을 수 없다는 암호해독기가 전혀 필요하지 않다. 시-암호해독기가 요새 네이버 쇼핑에서 70퍼센트 세일을 해도 안 팔린다는 거 아닌가. 덩달아 요새 시집도 안 팔리고. 이제 소수의 잘 교육받은 탁월한 자들만 감상하고 쾌락을 얻을 수 있는 시의 시대에 이정록 같은 시인이 가끔은 눈에 띈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이냐는 말이지. 근데, 암만 그렇다 해도, 글쎄, 이 시집이 나온지가 벌써 27년이나 돼서 그런지, 시집 뒤에 김주연이 쓴 해설의 첫머리마따나 촌스럽고 촌스럽다. 이 또래의 시골 풍경을 맛있게 그린 몇몇 시인들과 차별을 두기 힘들지 않나 싶은데, 시인이여, 걱정하지 마시라, 내가 아마추어 가운데서도 아마추어이어서 이 말도 틀림없이 헛소리일 터이니.

  마지막으로 시집의 표제시 읽어보고 끝내자.



  풋사과의 주름살



  어물전 귀퉁이 

  못생긴 과일로 탑(塔)을 쌓는 노파


  뱀 껍질이 풀잎을 쓰다듬듯,

  얼마나 보듬었는지 풋사과의 얼굴이 빛난다

  더 닳아서는 안 될 은이빨과

  국수 토막 같은 잇몸과, 순전히

  검버섯 때문에 사온 낙과(落果)

  신트림의 입덧을 추억하는 아내가

  떫은 핀잔을 늘어 놓는다

  식탁에서 냉장고 위로, 다시

  세탁기 뒤 선반으로 치이면서

  쪼글쪼글해진 풋사과에 과도를 댄다

  버리기에 마음 편하도록 흠집을 만들다가

  생각없이 과육을 찍어올린다

  떫고 비렸던 맛 죄다 어디로 갔나

  몸 안을 비워 단물 쟁여놨구나

  가물가물 시들어가며 씨앗까지 빚었구나

  생선 궤짝에 몸 기대고 있던 노파

  깊은 주름살 그 안쪽,

  가마솥에도 갱엿 쫄고 있을까

  낙과로 구르다 시든 젖가슴

  그 안쪽에도 사과씨 여물고 있을까


  주름살이란 것

  내부(內部)로 가는 길이구나

  연(鳶) 살처럼, 내면(內面)을 버팅겨주는 힘줄이구나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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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3-11-13 07: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이정록 시인의 동시를 좋아해서 아이랑 읽었어요. 유쾌하고 재밌어요. 엣세이집도 구수허니 좋았고요. 그런데 어른시는 약간 분위기가 어른이네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Falstaff 2023-11-13 15:25   좋아요 0 | URL
이 양반이 동시, 동화도 많이 썼더라고요. 어른 시. ㅋㅋㅋㅋ
시가 아주 편하고 알기 쉬워 좋았습니다. 현대시들 참 읽기 힘들어서 더 반가운가 봅니다.

반유행열반인 2023-11-13 08: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오늘 뭔가 글발 쫙쫙 받게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진짜예요)

Falstaff 2023-11-13 15:26   좋아요 1 | URL
앗, 그렇습니까? 오호호...

stella.K 2023-11-13 11: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오늘 글은 정말 꿀이 떨어지네요. 아르센 루팡 빌라라. 폴님식 표현이신거죠? 괜히 궁금해지는데요?
생의 벼랑을 부려놓았다란 표현도 궁금하구요. 자살을 그렇게 표현한 걸까요?

작은 아드님 말씀하시니까 옛날에 저랑 같이 일해던 후배 생각나네요. 키는 장대같이 크고 장가도 간 애가 아빠 아빠하는데 되게 어색하더라구요. 본인이야 습관되서 모르겠지만. 저 자랄 때 아버지께서 습관되면 못 고친다고 아예 아빠라고 못 부르게 하셨죠. 그 후배 지금 애들이 중학교, 고등학교쯤 다니고 있을텐데 지금도 애들 앞에서 아빠라고 부르는지 모르겠어요. ㅋ
오늘 시집은 저도 읽고 싶네요.^^

Falstaff 2023-11-13 15:27   좋아요 1 | URL
옙. 제가 아르센 루팡 고등학교 졸업, 아르센 루팡 대학 졸업, 아르센 루팡 빌라 전세 입주 등등 했잖습니까. ㅋㅋㅋㅋ 저 운동하는 장소는 센 강 강변도로랍니다.
이 시집보다 창비에서 나온 <정말>이 더 재미나요. 한창훈의 발문도 기가 막히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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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적 친화력 을유세계문학전집 127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장희창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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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러가 죽은 다음에 갑자기 팍 기력이 떨어져버린 괴테는 나이를 셈해보더니 벌써 환갑을 맞은 늙은이. 오히려 깃펜을 휘날리는 노익장을 과시하여 쓴 소설이 <선택적 친화력>. 생각 잘 했다. 몸을 움직여야 오래 산다. 괴테는 무려 23년을 더 살다 간다. 이 바이마르 공국의 추밀고문관 님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은 몇몇 분이 알고 계실 터. 그래도 이렇게 괴테의 새 번역이 나오면 구태여 읽어보는 심사는 뭘까? 혹시 나도 괴테 님을 좋아하게 될 지 몰라서? 아니면 괴테를 싫어하는 이유를 더 보태고 싶어서?

  아니, 그거 말고, 나는 왜 괴테를 싫어할까? 괜히 유명하고 널리 존경받는 작가를 깎아내리고 싶어하는 아마추어의 유치한 허풍일 수도 있겠다. 근데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는 좋아하는데? 그렇다고 막 떠들고 다니는 걸? 젊은 시절에 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도 싫고, 노년에 완성한 <파우스트>는 더 싫다. 내가 읽어본 추밀고문관 님의 작품 가운데 어떻게 하나도 마음에 드는 것이 없는지, 나도 안타깝다니까. 이 <선택적 친화력>을 포함해서 말이지. 작품 속에 괴테가 나오는 것 중에 제일 재미있게 읽은 책이 토마스 만이 쓴 <로테 바이마르에 오다>일 정도. 다른 작가도 아니고 토마스 만의 책을 “재미있다” 라고 쓰고 있다니까 그래.


  부유한 남작의 응석받이 외동아들 에두아르트는 옆 동네 귀족 아가씨 샤를로테와 어린 시절부터 사이좋게 지냈다. 그래서 배꼽 밑에 터럭이 수북할 때쯤 되면 당연하게 샤를로테한테 장가들어 살 줄 알았지만, 아빠 남작이 하도 욕심이 많아서 옆의 옆에 있는 동네의 돈이 무지무지하게 많은 중년 과부한테, 싱싱하고 교육 잘 받고 게다가 잘 생기기까지 한 아들을, 드셔보시라고, 은쟁반에 올려 장가보내 버렸다. 갑자기 옆구리가 허전하게 된 샤를로테는 우거지죽상을 하고 있다가 역시 아빠가 가운데 끼어 중매를 드는 바람에 평소 존경은 하지만 결코 사랑하는 마음을 먹어본 적이 없던 중년 돌싱과, 에라 나도 시집이나 가버려야겠다, 결혼을 해 어여쁘고 똑똑하고 교만한 딸 루치아네를 낳아 살았다. 물론 중년 돌싱 남편 역시 무지, 무지무지하게 부자인 건 당연하고.

  그런데 이 에두아르트와 샤를로테 두 명이 진짜 은총받은 남녀라서 중년의 과부 홀아비 출신 아내와 남편이 거의 동시에 숟가락을 놔 버린 거다. 세상에 이런 행운아들이 어딨어? 그리하여, 새로 생긴 홀아비와 과부는 인생의 한창 좋은 나이인 30대 중반 정도에 다시 만나게 된다. 이때 샤를로테가 거두어 기르는 죽은 절친의 딸 오틸리에가 있었다. 18세기 말, 19세기 초에 여자 나이 삼십대 중반이면 이미 원숙한 중년이라 자기 마음은 다음으로 하고 아직도 에두아르트가 자신을 사랑하리라고는 아예 바라지도 않던 샤를로테는 오틸리에를 에두아르트의 두 번째 아내로 들일 심산이었다. 그러나 십여 년 만에 첫사랑 샤를로테를 만난 에두아르트는 눈알이 홱 돌아버려 오직 샤를로테에게 돌진, 결국 둘 다 두번째 결혼에 이른다. 미친 것들. 인생의 첫 결혼은 몰라서 해봤다고 치고, 그 지옥 속으로 또 자진해서 들어가? 안 그랴? (이렇게 쓴 거 마누라한테 들키면 난 세상 하직한다. 좀 걱정된다.)

  가뜩이나 부유한 집안의 딸 아들이었는데 죽은 아내, 남편이 또 어마어마한 유산을 남겼을 터라 이들 금고 안에 쌓인 금덩이 은덩이가 물러 앉아 눌러 붙을 지경. 저 언덕에 높이 솟은 성에 살면서 인생의 황금기를 무위도식하는 (아, 부러워라!) 남자는 자신처럼 일 년의 황금기인 4월을 맞아 수목원에서 접목 작업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여자는 성 맞은편 암벽에 짓고 있는 새 집의 부속건물인 정자 공사를 감독하느라 올라가 있다. 딸 루치아네와 양녀 오틸리에는 기숙학교에 보내 성에서는 부부와 부부를 시중하는 하인, 하녀들만 있어 여차하면 미끄러지기 십상이었다는데, 이 신혼부부가 하도 깨를 많이 쏟아 기름을 짜 넘쳐 흘러 그랬다는 설도 있다.

  1789년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 인권사상이 알프스를 넘어 바이마르까지 쳐들어올까 두려워한 독일 제국諸國이 프랑스하고 한 바탕 전쟁을 벌일 때 에두아르트와 함께 참전한 대위가 있었는데 이이처럼 지식, 재능, 학식, 솜씨 있는 인재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시절은 줄곧 인재를 시기하는 터라, 대위는 바야흐로 우울한 상태에 빠져버려 한 몸 뉠 자리도 찾지 못하고 있어 에두아르트 남작께서 이 동무를 안타까이 여겼다. 대위의 가장 큰 고통은 다방면에 걸쳐 능력과 열정이 있음에도 도무지 할 일을 찾지 못하는 것이었으니 에두아르트는 그를 성으로 불러들여 지금 하고 있는 새집 건축과 인근 토지를 측량하게 하고 후에 농장경영 전반을 맡겨볼 의향이었다.

  하지만 샤를로테가 선뜻 수긍하지 않는다. 극성스런 반대는 아니었으나 신중하게 결정할 일이라는 주장. 어떤 경우라도 사람 사는 일에 3자가 들어오면 문제가 발생하리라는 것이었다. 반면에 샤를로테도 속으로 걱정거리가 있었으니, 진중하고 진실되지만 도무지 기숙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의붓딸 오틸리에 때문이었다. 그러나 때를 맞추어 학교로부터 편지가 와서 총명하고 이기적인 루치아네의 극성이 오틸리에를 괴롭히고 있으니 일단 집에 데려갔다가 루치아네가 졸업한 다음에 다시 학교로 보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는다. 샤를로테한테는 의붓딸이지만 에두아르트 입장에선 완전한 타인이 집에 들어와 살게 되는 것. 그리하여 성에는 부부와 대위, 그리고 오틸리에 이렇게 네 명이 살게 된다.


  18세기 말 소설을 읽으며 독자가 (또는 내가) 가장 신경 쓰는 건 작품 속에 꼬불쳐 둔 복선을 찾는 일이다. 이 작품 속에서도 많은 복선을 깔아 두었는데, 이 가운데 하나만 소개하자. 샤를로테가 대위의 능력과 열정, 학식에 완전히 만족을 하게 된 이후, 부부가 일종의 화학 현상에 관하여 배운다. 이때 나오는 것이 “선택적 친화력.”

  화학에서 “친화적”이라는 것은 “자연 속의 어떤 것(원소)들이 서로 만나는 순간 금방 서로를 붙잡거나 규정하는 것”이란다. 쉽게 말해 결합하는 현상. 수소 두 개와 산소 한 개가 만나 물이 되는 거.

  “선택적”은 “어떤 관계가 다른 관계보다,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 선호되는 현상”.

  두 개를 합해 선택적 친화력이라 함은 AB가 CD를 만나 AC와 BD로 변하는 거다. 여기다 샤를로테가 뭐라고 초를 치는가 하면,

  “나는 서로 헤어질 수 없을 것처럼 보이던 두 사람의 긴밀한 결합이 제3의 인물의 우연한 등장에 의해 해체되고. 애초에는 그처럼 아름답게 결합되었던 이들 중 하나가 무기력하게 저 멀리로 내쫓기는 안타까운 경우를 잘 알고 있답니다.”

  답 나왔다. A: 샤를로테, B: 에두아르트, C: 대위, D:오틸리에라고 하면, AB+C+D는 어떤 방식으로 선택적 친화력을 보여줄까? AC와 BD? AC와 B 그리고 D? A와 C와 BD? 아니면 AB와 CD? 이게 제일 바람직하겠지? 세상은 결코 바람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은, 다들 아시고.


  표지 그림은 존 에버릿 밀레이의 <검은 제복의 브라운슈바이크 병사>다. 추밀고문관님이 손수 쓴 <선택적 친화력>을 읽는 것보다 같은 그림을 표지로 한 D.H. 로렌스의 <무지개>를 읽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다.

  내가 괜히 추밀고문관, 추밀고문관 한 게 아니다. 2부로 가면 아이고, 독일의 나이 든 관리 아니랄까봐 여기저기서 독자를 가르치려 들어서 많이는 아니고 조금 재수없는 지경까지 간다. 결말 부분으로 가면 모든 독자가 그럴 것이란 건 아니고, 내 경우에 정말로 목불인견, 눈뜨고 보지 못할 참상 수준의 신격화 비슷한 것도 나온다니까. 괴테가 잠깐 노망이 났던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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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3-11-10 06: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 삽질:
월요일, 이정록, 《풋사과의 주름살》
화요일, 잭 케루악, <빅 서>
목요일, 베르톨트 브레히트, <제3 제국의 공포와 참상>
금요일, 허준, 《잔등殘燈》

stella.K 2023-11-10 09: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망은 잠깐이 아닐 걸요? 시작일지도 모르는ᆢㅋ
독일문학을 재밌게 읽기는 좀 어려운 거 같습니다. 요즘 것은 몰라도. 저도 파우스트, 베르테르 억지로 읽은 기억이납니다. 그래도 왠지 친화력은 그 이름 때문인지 읽어보고 싶었는데 넘기는게 날 거 같네요. ㅋ 저 도표식 문체 존경함다.ㅎ 괴테 할배 작위가 추밀고문관이었군요. 우리나라의 뭐쯤될까요? 문화부장관쯤 되는 건가요? 😂

Falstaff 2023-11-10 16:42   좋아요 1 | URL
18세기, 19세기 독일 소설은 별로 재미가 없더라고요. 암만해도 19세기까지 소설은 프랑스 소설이.... ㅎㅎㅎ
추밀고문관은 사전에도, 지식백과에도 어떤 역할인지 나오지 않는 신비의 직책인데요, 토마스 만의 작품인 <로테, 바이마르에 오다> 창비세계문학55의 각주 9번인가 하여튼 근방에 보면 ˝군주의 최측근 요직˝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말 그대로 ‘고문관‘이니 굳이 장관이라면 그저 무임소 장관, 정도 아닐까 싶습니다.

꼬마요정 2023-11-10 1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잠깐 노망이 났던 게 틀림없다 ㅋㅋㅋㅋㅋㅋ 책은 리뷰보다 재미없을 것 같아요 ㅋㅋㅋㅋ 저는 그냥 괴테가 좋아서 몇 개 읽었는데 또 다시 생각하면 딱히 이 사람이 왜 좋지 하기도 해요. 나이가 들면서 취향이 바뀌나 봅니다.

Falstaff 2023-11-10 16:43   좋아요 1 | URL
그만큼 결론 부분에 나오는 장면이 심하게 하품난다, 어이없다, 눈이 찌푸려진다, 정도로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ㅎㅎㅎ

호시우행 2023-11-10 14: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자를 가르치려 든다는 표현에 빵 터졌습니다.ㅎㅎ 하지만 나이 든다고 다 노망나는 건 아닙니다.ㅠㅠ

Falstaff 2023-11-10 16:54   좋아요 0 | URL
당연하지요. 나이 든다고 다 노망들면 재미없어서 누가 노인이 되려 하겠습니까.
근데 늙어서까지 너무 똘망똘망해 섦은이들 하는 거 하나하나 다 따지고, 시시비비하고, 계산하고, 충고하고.... 그런 것도 보기 덜 좋더라고요. 나이 들수록 침묵의 기술을 익혀야겠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한 발 떨어지는 법도 배우고 말입지요.

호시우행 2023-11-10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명하십니다. 늘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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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치콘티니가의 정원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조르조 바사니 지음, 이현경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6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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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으로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한 조르조 바사니 네 권은 다 읽는다. 책방에서 사서 읽은 <금테 안경>에 홀딱 반했던 게 2017년이니 6년 반이 걸렸다. 도서관 개가실에서 눈에 띄지 않았다면 그나마 모든 바사니를 읽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아마 그랬을 거 같다. 그럼 책씻이로 쐬주 한 병 꽝? 참자. 요즘 맹렬히 살깎기 중이다.

  조르조 바사니 작품의 두 가지 키 워드는 단연 베네치아에서 7시 20분 방향에 있는 소도시 페라라, 그리고 유대인이다. 나는 <금테 안경>을 제일 먼저 읽어서 키 워드가 세 가지이고 앞의 두 개 외에 남성 동성연애자 게이도 포함인 줄 알았는데 바사니를 더 읽어보니까 유대인 차별법 시행 이후 고독을 이기지 못해 죽어버리는 이비인후과 의사 파디가티 선생만 그랬던 거였다. 이이는 <핀치콘티니가의 정원> 딱 한 컷에서 우정출연 하기도 한다. 이이 말고는 게이나 레즈비언은 등장하지 않더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가 <핀치콘티니가의 정원>에 한 명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는 증거 없이 짧은 생을 마감할 뿐.

  의사 파디가티 선생 말고도 전작 <문 뒤에서>, <금테 안경> 그리고 소설집 《성벽 안에서》에서 읽을 수 있었던 다양한 등장인물과 장소 역시 <핀치콘티니가의 정원>에도 등장한다. 이럴 경우 전에 읽은 작품의 인물, 장소 등을 기억하면 소소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지만 굳이 각주의 작은 글자를 보고서야 아, 전에 나왔던 인물/장소구나, 기억도 못하면 또 씁쓸하기도 하다. 난 거의 대부분 씁쓸한 쪽이다. 당연하지 네 권 읽는데 6년 6개월이 걸렸으니 그걸 기억하는 게 비정상 아냐?

  <핀치콘티니가의 정원>은 성장소설이다. 1929년부터, 주로 1938년에서 39년에 걸친 청년 화자 ‘나’와 핀치콘티니 집안의 막내딸 미콜 핀치콘티니의 연애담. 연애소설은 이미 웬만한 방법으로 거의 다 시도를 해서 여간 잘 쓰지 않으면 독자에게 흥미를 돋게 하는 데 실패할 확률이 높다. <핀치콘티니가의 정원>에 나오는 연애도 당연히 수다하게 읽어본 연애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하거나 애잔하거나 심지어 야하지도 않다. 하지만 조르조 바사니의 책을 읽으면서 드라마틱을 기대하는 건 처음부터 번지수를 잘못 찾는 거다. 바사니는 참, 뭐랄까, 독특하게 스산한 아름다움을 문장 속에 집어넣어 글을 쓴다. 그렇게 쓰려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익숙해질 수 없는 것,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났다고 밖에 볼 수 없는 감각적 아름다움을 속삭이는 방법을 그냥 체득한 듯한 작가라고 하면 좋을까? 때는 1938년. 이탈리아에도 유대인 차별법이 발효되어 유대인은 다른 민족을 고용할 수 없고, 단체에 속할 수도 없는 등 노골적으로 사회적 멸시를 받아야 했던 시절. 바사니는 이 시기를 서술하면서 다른 유대 작가들처럼 그들이 받는 핍박, 피해의식 같은 것을 노골적으로 쓰지 않았다. 대신 유대인끼리 나누는 대화에서 애써 그다지 심하지 않은 듯, 그래도 살 만한 듯 현상을 회피하려는 모습 속의 불안을 기가 막히게 포착한다.

  유대인 사이에서도 계급은 존재한다. 계급 차이 때문에 맺어지지 못하는 인연도 있을 것. 낮은 계급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완고한 벽처럼 존재하는 계급의 차이를 완곡하게 설명해주려 애쓰는 장면도 읽는 사람의 심금을 울린다. 게다가 아이 씨, 나도 경험해봤거든, 당해봤거든, 눈에 띄지 않지만 얼마나 아린 상처인지 알거든.

  그래, 바사니를 읽는 건 스토리 말고 이런 장면 장면을 읽는 일이다. 문장 하나하나가 그렇게 큰 쓸쓸함과 아스라한 아름다움으로 조각되어 있는지 넋을 잃는 일이다.


  1957년 4월, 로마에 사는 ‘나’는 친구 십여 명과 함께 소풍 갔다가 돌아오면서 훗날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이름을 올린 고대 에트루리아인들의 공동묘지를 방문한다. 기원전 9세기에서 기원전 1세기에 걸쳐 조성한 묘지를 보며, 고향 페라라의 몬테벨로 거리 끝에 있던 유대인 묘지를 떠올린다. 공동묘지 안에 크고 단단하게, 정말이지 위풍당당한 것이 <아이다>나 <나부코>의 무대장치에서 본 것 같은 대단한 핀치콘티니가의 가족묘지를 추억한다. 페라라의 에르콜레프리모데스테 대로 끄트머리에 있던 핀치콘티니가의 저택, 그리고 어린시절과 청년시절에 어울렸던 미콜과 알베르토, 에르만노 교수와 올가 부인, 외할머니 레지나 헤레라 노부인를 연상한다.

  저택은 1850년 알베르토의 증조 할아버지 모이세 씨가 구입하여 후손들이 수리와 개조를 계속했으나 1944년에 폭격으로 상당부분이 파괴되어 큰 건물 한 채만 남아 지금은 도시 빈민 오십여 가구의 피난민들이 차지했다. 저택보다 ‘나’의 기억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것은 3만 평에 이르는 정원이었다. 출입구에서 5백 미터를 가야 도달하는 저택 ‘큰집’ 마그나도무스, 테니스 코트, 판필로 운하, 선착장과 마구간. 이 모든 것은 성벽과 이어지는 끝없는 담벼락과 육중한 나무문으로 고립되어 있었다.

  1914년 여섯 살의 맏아들 귀도가 미국발 소아마비로 급사하자 어머니 올가는 이후 평생 상복을 입기 시작했으며 사실상의 장남 알베르토와 미콜은 귀도처럼 공립학교에 보내지 않고 여러 명의 가정교사를 들여 홈 스쿨링을 하기로 결정했다. 틈틈이 ‘나’가 다니는 학교의 교사를 초빙해 이들의 실력을 점검하면서. 그러나 일년에 한 번 이상은 ‘나’의 학교에 마부가 진짜 말을 모는 고급 마차를 타고 와 진급시험을 치루기도 했는데, 이때 미콜이 조금은 관심있게 ‘나’를 본 것 같다.

  1929년에 자전거를 타고 성벽을 따라 핀치콘티니가의 담장을 따라 달리고 있을 때, 미콜이 담장 안에서 머리를 내놓고 ‘나’를 불러 세운 적이 있다. 미콜은 벽에 마치 발 딛개처럼 박혀 있는 철심을 밟고 담장을 넘어오라고 했으나 천성이 내성적이고 부끄럼이 많고 생각도 많은 ‘나’는 기어이 미콜의 제안을 거절한다. 이후 ‘나’는 볼로냐의 대학의 마지막 학년, 미콜은 더 멀리 베네치아 대학의 마지막 학년이던 1938년의 10월, 인종법이 발효하는 바람에 집에 와 있는 미콜과 알베르토 남매로부터 집에 와서 테니스를 함께 치자는 초대를 받고, ‘나’는 이를 수락해 다시 미콜과의 관계를 시작한다.

  미콜의 친절하고 늙은 아버지 에르만노 교수는 저택과 정원 말고도 모이세 씨로부터 물려받은 농토 수백만 평에서 나오는 소득으로 평생, 평생을 넘어 자손 대대로 노동할 필요 없이 부르주아의 삶을 살 수 있는 최상급 유대인인 반면에, 젊은 시절에는 의사였지만 일찌감치 의사를 포기하고 여유롭게 살던 ‘나’의 아버지는 지금 유대인묘지 관리자 일을 하는 중간 정도의 중산층 유대인. ‘나’는 시간이 갈수록 미콜의 아름다움과 매력에 빠지고, 사랑하는 만큼 미콜을 만지고 싶어 지옥 같은 갈증에 시달리지만, 미콜은 그럴 때마다 빤히 눈을 뜬 채 ‘나’의 접촉을 (독자인 내가 생각하기에) 냉소하기만 한다. 그러다가 말한다.

  “네게 고통을 주어 미안해. 정말 미안해. 우리 둘이서 육체적 사랑을 하다니! 그게 정말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니? 네가 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약혼이라도 하자고?”

  위의 따옴표는 긴 내용을 몇 문장으로 축약한 거다. 짧게 이야기해서 너하고 나는 동등하게 결혼할 처지가 아니라는 것. 그래서 좋은 말할 때 꺼져달라는 것. 그럼에도 ‘나’가 미콜을 사랑하게 만들어서,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 줄도 알기 때문에 미안하다는 이야기다. 세상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화자 ‘나’는, 돌 맞은 개구락지? 그럴 수도 있고. 어느 시인이 그랬지? 안 넘어가는 나무는 백 번을 찍어도 넘어가지 않는다고.


  이렇게 1938년, 39년은 사랑과 함께 사라지고, 42년에 림프 육아종으로 죽은 큰아들 알베르토만 거대하고 화려한 가족묘에 묻힌 채 나머지 가족 모두는 1943년에 독일로 강제 이송을 당한 후 아무도 소식을 듣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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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3-11-09 10: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금테안경>으로 바사니를 처음 만났는데 정말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스산한 아름다움‘ 맞아요. <문 뒤에서>도 참 쓸쓸했구요.
페라라도 가보고 싶은데 왠지 쓸쓸한 도시일 거 같네요.
저도 이 책 샀는데 정신없는 시간 다 지나면 젤 먼저 읽어보렵니다.

Falstaff 2023-11-09 16:56   좋아요 0 | URL
아휴, 가지고 있으시면 얼른 읽어야지요! 재미나게 읽으시기 바랍니다!!!!

yamoo 2023-11-09 1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사니군요!
네, 바사니는 좋더라구요. 근데 문학동네는 너무 책을 얇게 만들어 비싸게 팔아쳐묵는 거 같아요..
타부키 책도 열받았는데...그냥 묶어서 좀 두툼하게 펴내면 안되나 봅니다...^^;;

Falstaff 2023-11-09 16:59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제가 문둥이네 책이 너무 얇다, 얍삽하다..를 좀 심하게 썼다가 한 방 맞은 적 있습지요. 그게 뭐였더라.... <금테안경>이었나, <무게>였나... 아마 그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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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의 일곱 개의 달
셰한 카루나틸라카 지음, 유소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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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셰한 카루나틸라카는 1975년 스리랑카 남부 골Galle에서 (부잣집 아들로? 맞을 걸?) 태어나 콜롬보에서 자랐다. 고등학교 시절 뉴질랜드로 유학 가 경영학을 공부하라는 집안 어른들 말씀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마시(Massey)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다. 이후 런던, 암스테르담, 싱가포르 등지의 광고회사에서 일하며 틈틈이 가디언, 뉴스위크, 롤링스톤,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에 특집기사를 실어 가외수입을 올리는 한편, 베이스 기타를 들고 스리랑카 록밴드와 공연도 하며 2010년 데뷔작 <차이나맨: 프라딥 매튜의 전설>을 발표해 여기저기서 여러 문학상을 받는다. 그러다가 2022년 세번째 소설 <말리의 일곱 개의 달>이 세상의 모든 영어 소설을 대상으로 하는 부커상을 받는 대박을 쳐 본격적으로 세계적인 스타덤에 올랐다. 부잣집 아들이지, 공부 잘해 여기저기 급여 좋다는 광고회사에 정직원으로 취직도 잘 하지, 록그룹에서 베이스 연주도 하지, 부커상도 받지, 게다가 위키피디아 가서 얼굴 보면 생기기도 잘 생겼다. 이런 인간들 정말 재수없지?


  이 책을 읽기 전에 스리랑카의 현대사를 조금 알면 훨씬 좋다. 스리랑카 사람들 이름이 우리가 듣기엔 매우 독특하다. 작가 셰한 카루나틸라카도 이게 원래 이름이 아닐 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름 full name 읽는 데만 1박 2일 걸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앞 이름을 영어식으로 짧게 쓰고 중간 이름을 몽땅 생략하는 것을 여러 번 봤다. 그러니 사람 이름을 될 수 있으면 빼고 최대한 간략하게 소개한다.

  옛 실론 섬의 고원지대에는 불교를 믿는 다수민족인 싱할라 족과 북부와 동부 해변에 걸쳐 살면서 힌두교를 믿던 소수민족 타밀족이 있었다. 유럽 제국주의자들이 쳐들어와 네덜란드 식민지를 거쳐 18세기부터 영국의 식민 통치를 받았는데, 언제나 해변을 끼고 사는 부족이 혜택을 보는 법이라(치누아 아체베!) 타밀족이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를 먼저 얻어 고위 관리직을 차지할 수 있었다. 싱할라족이 보기에 배가 아팠는데 실론이 독립을 하자 단박에 상황을 역전시킨 싱할라족은 곧바로 머릿수로 밀어 부쳐 권력을 얻었다. 모든 것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이 있는 법이지만 수백 년 동안 상대적 불이익 또는 피해를 고스란히 당해왔다고 생각하는 싱할라족은 아예 법을 고쳐 싱할라의 언어만 국어로 채택하더니 점점 차별이 심해져 1972년엔 나라 이름을 스리랑카로 바꾸고 타밀족의 대학입학을 제한하는 법까지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급기야 1977년과 81년에 싱할라족이 타밀족을 학살하는 사건이 벌어지는 등 두 민족의 갈등은 돌이킬 수 없는 골짜기로 빠져 버린다. 그리하여 1983년에 타밀족 분리독립주의자들이 “타밀 엘람 호랑이 해방군”이란 것을 만들어 스리랑카의 북동부 지방에서 세를 떨친다.

  1983년 7월, 타밀 엘람 호랑이 해방군은 북부 자프나 지역에서 정부군을 급습해 열세 명을 죽이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정부는 총리가 걱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죽은 병사 13명의 장례를 수도 콜롬보에서 치루기로 했고, 장례에 참석한 무수한 인파들은 순식간에 폭도로 돌변해 눈에 띄는 타밀족의 집엔 불을 싸지르고 사람들을 사정 없이 때려 죽이기 시작한다. 폭동은 전국으로 번져 7월 한 달 동안 정부 집계로 5,638명이 사망하고, 15만 명의 집이 불에 타버렸다. 동시에 중부와 남부 밀림지역엔 민족해방군, 북쪽엔 잔인한 인도 평화유지군이 나타나 스리랑카 내전은 Go go mountain, 갈수록 태산의 형국으로 치닫는다. 근데 우습게도 진짜 스리랑카 터줏대감 원주민은 내륙 산지 밀림 지역에 극소수만 남은 베다족이란 거.

  이런 나라의 특징은 권력을 순 깡패들이 잡고 있다는 점이다. 타밀 반군이라고 해서 타밀족에게 관대한 건 절대 아니다. 생포한 적을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는 건 이 섬나라 인간들의 공통점이라 그냥 넘어가고, 적에게 타격을 줄 수 있다면 멀쩡한 같은 부족 사람이라도 그냥 쏴 죽여버리고 만다. 싱할라족도 타밀 반군에게 뒤집어 씌우기 위해 같은 부족 사람들을 기꺼이 학살해버린다. 인민해방군도 이하동문이다. 숱한 인민(정식 국가명: 스리랑카 민주사회주의 공화국)들은 밤에 자다가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에게 끌려가 손가락마다 못이 박히고 관절이 부러지는 고문 끝에 살해당하고, 시신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심한 오염으로 악명높은 베이라 호수에 풍덩 빠뜨려버린다. 가히 1970년대 칠레와 동급이다. 같은 시기 우리나라는 얘네들하고 비교하면 유치원 학생 수준이었고.


  1955년, 이런 나라에 말린다 앨버트 카발라나, 줄여서 말리 알메이다라는 사내 아이가 태어난다. 고요하게. 영어로 하면 Still Born. 나오긴 했지만 울지도 않고 심장이 뛰지도 않는 사산아, 의료진은 급하게 인큐베이터로 신생아를 옮겨 호흡과 심장박동을 되살렸고, 35년 후에 아이는 그때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좋았을 거라고 땅을 치게 된다. 1955년에 인큐베이터 구경을 했으니 말리가 부잣집 아들인 건 맞다. 머리가 유난히 좋아서 체스는 2주만에, 컵스카우트는 한 달만에, 럭비는 3분만에 마스터해 버리고 이내 학교를 혐오하는 증상이 생긴다. 이후 다니던 대학에서 석사과정을 중단해 여러 직업을 전전하지만 그것도 다 때려치운 한량. 엄마와 이혼하고 애인과 함께 미국으로 날아가 딸 둘을 낳고 사는 아버지가 말리에게 카메라를 선물해 취미를 붙였고, 신기하게도 스리랑카 현대사의 극적인 장면을 함께 하는 운명을 지녔는지 위에서 이야기한 학살과 그늘 속에서 이루어지는 검은 거래 같은 것을 카메라에 담아 전세계 언론사, 정부 등에 좋은 가격으로 팔아, 호텔 레오에서 도박을 하고, 비싼 술을 마시고, 젊고 예쁜 남자를 사서 즐기고, 해시시를 하느라고 다 탕진해버린다. 그래도 부잣집 아들인 걸 뭐. 그리하여 직업이 사진작가, 도박꾼, 걸레.

  말리가 정신을 차려보니 아이고, 이런. 몸이 죽어 영혼이 이승과 저승의 중간지대에 가 있는 거다. 그러니까 우리의 주인공 말리는 사람이 아니라 아직 귀신도 되지 못한 중음신(이라고 치자). 여기서 일곱 개의 달, 달은 나오고 지는 것이니 일주일과 같은 의미다. 일곱 달, 7개월이 아니고, 7일 안에 과거의 트라우마, 지은 죄, 숨긴 죄책감 등이 새겨진(다고 스리랑카에서 믿는) 귀와 귓불 조사를 마친 다음 빛의 방으로 가는 중음신은 윤회를 할 것이고, 아닌 것들은 구천을 떠도는 귀신이 될 터인데, 귀신이 되면 또 큰 악마 마하칼리(비슈누의 화신)의 노예로 떨어지기 십상이다. 그러니까 이 소설을 쉽게 우리말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다.

  말리는 다른 귀신들, 귀신들한테도 갓 죽은 영혼을 위한 선한 자원봉사 귀신이 있는데, 이들의 조언에 의하면 죽은 형태를 보아하니 누가 높은 곳에서 던져 죽임을 당한 거 같다나? 근데 죽을 당시의 상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거다. 책의 결말 부분에 가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에 의하여 죽는 걸 알게 되지만, 물론 눈 밝은 사람은 중간에 눈치를 챌 수도 있지만, 말리 역시 동시대의 많은 실종자들처럼 모처에서 죽은 다음에 불법 죽음을 당한 시체를 전문적으로 처리해주는 청소부들, ‘발랄’과 ‘곧뚜’에 의하여 깊은 호주머니에 벽돌을 잔뜩 집어넣은 상태로 베이라 호수에 수장된 상태다. 1989년 12월 4일 화요일 새벽 네 시에.

  말리에게 몇 장의 중요한 사진이 있다. ① 83년 야만인들이 타밀족의 집에 불을 지르고 주민을 학살하는 동안 장면을 지켜보며 방관하는 정부 각료, ② 실종된 언론인과 사라진 운동가들이 재갈을 문 채 묶여 학살을 기다리는 모습, ③ 구금상태에서 사망한 사진, ④ 정부군 소령과 타밀 반군 대령, 영국인 무기상이 킹코코넛을 나누어 마시며 불법 무기 거래를 위해 한 자리에 앉아 있는, 해상도가 낮지만 충분히 알아볼 수 있는 스냅, ⑤ 스타배우 위자야를 죽인 사람들과 ⑥ 테러로 추락한 위팔리의 비행기 잔해를 찍은 것들로, 집의 운전수와 요리사가 쓰는 침대 밑에 보관하고 있다. 이 사진이 전시되면 참상이 정부에 의하여 조직적으로 자행된 것이며 사실은 정부군과 적군이 비밀리에 거래를 했다는 것까지 밝혀져, 네이팜탄이 쏟아지는 전장에서 달리는 나체의 소녀 사진이 베트남 전쟁을 종식시키는 불씨가 된 것처럼, 스리랑카의 폭력정권이 무너질 수도 있을 만한 자료였다. 당연히 말리는 자신이 사진 때문에, 그리고 잔망스럽게 그걸 떠들고 다니는 바람에 권력의 하수인에 의하여 죽었을 거라는 생각에 휩싸여 있다. 게다가 걱정이 한 가득이다. 내각의 유일한 타밀족 출신인 스탠리 다르멘드란 장관의 아들과 조카딸이자, 말리의 애인 딜런 다르멘드란과 말리의 절친 재클린 와이라와나단이 자신 때문에 위험에 처해 있기 때문에.

  이미 죽었으면 재빨리 과거를 잊고, 세상사도 잊고 저승으로 떠나 처분을 기다려야 하거늘, 오지랖 넓은 말리는 딜런과 재클린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사진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려 애가 타고, 사진이 강제로 압수당하자, 이번엔 원판 필름을 어디에 숨겨놓았으며 어떻게 조치하라고 말해주기 위해 귀신 생명을 걸고, 말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구태여 이야기를 하자면 그렇다는 건데, 귀신의 목숨을 걸고 한 판 도박을 벌인다.


  스리랑카의 기구한 현대사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고, 런던의 비평가들도 이런 점을 높이 사서 <말리의 일곱개의 달>에 부커상을 주지 않았나 싶다. 스리랑카에서 있었던 사건을 중심으로 작품을 구성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남아시아 독자를 위하여 구상을 했기 때문에 그런지 웬 우라질 사후 세계 귀신 이야기가 이리 창궐을 하는지 나중엔 징글징글했다. 나는 유물론자란 말이다. 예를 들어 이사벨 아옌데가 이 작품을 읽고 다시 써보라는 염라대왕의 명령을 받았다면 어땠을까? 적당하게 소위 환상적 리얼리즘을 조금 가미하고. 귀신 이야기도 어쩌면 나올 지 모르지만 그게 산들바람이나 오렌지 향기를 타고 콜롬보 빈 하늘을 배회하기야 하겠어? 그래도 인정할 건 인정하겠다. 이야기는 겁나게 재밌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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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3-11-07 06: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읽고 싶은 책인데 소개글을 읽으니 맘이 더 급해지네요. 루슈디가 떠오르기도 하고요.

Falstaff 2023-11-07 06:59   좋아요 1 | URL
근데요, 독자서평에 좋지 않은 평이 많아서 놀랐습니다.
제가 읽기엔 괜찮았습니다. 루슈디하고 (영광스럽게!) 비교하려면 신화성이 아무래도 부족하지않나... 싶습니다. 연륜 탓일 수 있겠습지요.

반유행열반인 2023-11-07 10: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팔백작님의 질투가 좀 느껴지는 ㅋㅋㅋ엄친아 주제에 작가까지!!제삼세계 엘리트들은 이점도 있겠습니다. 자기는 그 난리통 안 휘말리면서도 옆에서 어떡해…관찰만 하다가 있는 일 주워들은 일만 써도 다른 나라 애들이 우와 입틀막 님좀짱 이러고 재밌게 봐주니까요…

Falstaff 2023-11-07 17:07   좋아요 1 | URL
ㅎㅎㅎ 제가 시방 겁나 취해서 말입죠 열반님 글씨가 막 날아 다닙니다. ㅋㅋㅋㅋ
이거 틀림없이 의존증 맞을 거예요. 그리하여 답글은 내일... 의존증이건 지랄이건 하여튼 지금은 천국이고만요. 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3-11-07 19:14   좋아요 1 | URL
아니 비인격 물질 한 가지가지고 원하면 언제든 숑 갈 수 있으면 그거 축복 아닙니까(천국도 숑 일찍 가는 거는 당장 알 바 아니고…) 책이랑 술이랑 하나만 골라! 이러면 팔백작님 뭘 놓으시겠어요? 엄마도 좋고 아빠도 좋아 이딴 거 말고요 ㅋㅋㅋ

Falstaff 2023-11-08 04:39   좋아요 2 | URL
의존증이라니까요. 둘 놓고 고르라면 당연히 술이지요.
근데 숑.... 차라리 약을 하면 더 빠르잖아요. 술, 안 마셔야 합니다. 줄이려 애쓰고 있는데도 그게 쉽지 않습니다. 인생에 술이 없었으면 좀 더 행복했을 거 같습니다.
정말 다행스럽게 주변 사람들 하는 말이, 술 마신 후에 사람이 더 귀여워진다고 하더라고요. 술 주사가 없고 곧바로 자는 편입니다.
알코올 의존자들도 술 마시면 심신이 괴로운 건 마찬가지랍니다. 지금도 속 쓰리고, 몸이 땡땡 붓고, 머리 흔들리고.... 이란 회교민주주의공화국으로 이민이라도 가야겠습니다. 술 마시면 짱돌 던져 죽여버리는 나라로요.

3세계 부르주아 아니면 또 누가 그 나라 난리치는 걸 세상에 알리겠습니까. 민중들은 워낙 교육이 안 되어 있는 걸요. 엘리트란 엘리트는 다 도망간 나라도 있잖아요. 콜럼비아. 그저 그런 시대를 안 산 것도 행운입니다.

coolcat329 2023-11-08 08: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목은 알고있었는데 스리랑카의 소설인지는 몰랐어요.
사후 귀신세계 얘기에 읽기 싫어졌는데 또 겁나 재밌다하시니 솔깃하기도 하고 스리랑카 문학인점도 끌리네요.
폴스타프님 덕분에 스리랑카 역사 조금이나마 알게되었습니다.
그 조그마한 섬나라에세 저런 엄청난 폭력이 일어났다니 아이구 정말 놀랐습니다.

Falstaff 2023-11-08 17:26   좋아요 1 | URL
재미있는 책입니다. 여태 몰랐던 스리랑카 현대사도 조금 알게 돼 신선했습니다. 권할 만한 책이지만 오직 하나, 제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입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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