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적 친화력 을유세계문학전집 127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장희창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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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한테 책 받지 않고는 도무지 5별을 때릴 수 없을 "낡고 꼬질꼬질한" 괴테. 데우스 엑스 마키나, 좋다 이거야. 근데 유부남 꼬드긴 여자가 거의 예수 수준의 성녀라는 환상은 어디서 나온 거야? 괴테 님 명성 때문에 별 하나 보태줬다! 엣다, 드슈, 하고. 내가 이래서 책 무료로 받지 않는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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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3-10-16 08: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꼬드김 당한 유부남이 무죄가 되려면 상대는 성녀야 하지 않을까요? 아니, 순진한 중년 유부남이 탈선할 정도라면 요망한 불여시가 맞을까요?
근데 작가인 괴테 선생에게 “바깥의 여자”는 모두 성스럽고 사랑스러운 상대 아닐까 싶네요. 비록 손녀딸 뻘이라도. (에구 숭해라)

Falstaff 2023-10-16 09:25   좋아요 0 | URL
결론이 꼬드긴 거고요, 언제나 그렇듯이 숙명적인 사랑 ㅋㅋㅋㅋ 입지요.
오히려 제가 보기에 바람난, 적어도 자신한테 애정, 마음, 관심이 떠나버린 남편을 둔 아내 샤를로테가 여성 예수요,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요, 공자님 우편에 앉은 사람이더라고요.

Falstaff 2023-10-16 09: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나는 왜 괴테를 싫어할까? 괜히 유명하고 널리 존경받는 작가를 깎아내리고 싶어하는 아마추어의 유치한 허풍일 수도 있겠다. 근데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는 좋아하는데? 그렇다고 막 떠들고 다니는 걸? 젊은 시절에 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도 싫고, 노년에 완성한 <파우스트>는 더 싫다. 내가 읽어본 추밀고문관 님의 작품 가운데 어떻게 하나도 마음에 드는 것이 없는지, 나도 안타깝다니까.

잠자냥 2023-10-16 09:50   좋아요 1 | URL
저도 추밀고문관님을 ㅋㅋㅋㅋㅋ 싫어합니다. 그래서 이 댓글이 너무 좋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속시원해!!!!!!!)

잠자냥 2023-10-16 09:55   좋아요 1 | URL
솔직히 제목도 싫어요. 친화력 수업시대 편력시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ㅜㅜ 추밀고문관님이라....

Falstaff 2023-10-16 10:05   좋아요 2 | URL
이 책은 ˝친화력˝을 가장한 콩가루 이야기랍니다. 일종의 스왑 미수사건 ㅋㅋㅋㅋ

다락방 2023-10-16 1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다른 출판사 책으로 2014년에 읽었는데요 두 분의 대화를 보고 뭐라고 썼나 가보니 저 별 다섯 줬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10-16 10:58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굴욕? ㅋㅋㅋㅋㅋㅋ
아니 뭐 좋을 수도 있죠? 근데 뭐가 좋았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10-16 11:09   좋아요 0 | URL
엄청 재미지게 읽은듯 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10-16 11:09   좋아요 3 | URL
그때 썼던 백자평 가져올게요. 잠자냥 님 웃지마.

<잘못하면 막장 드라마가 되었을지도 모를 내용이 괴테의 문장을 만나니 확 달라진다. 꼭꼭 씹어먹고 싶은, 육즙이 진하게 배인 고품질의 소고기 같아졌달까.>

웃지마요.

잠자냥 2023-10-16 11:11   좋아요 0 | URL
소고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10-16 11:27   좋아요 0 | URL
웃지 말라굿!!!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3-10-16 12:28   좋아요 1 | URL
윽, 대통령해장국 집에 가서 해장국에 낮술 한 잔 찌그리고 온 사이에 이런 재미난 일이.. ㅋㅋㅋㅋ

얄라알라 2023-10-18 0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백자평에 육즙과 소고기!^^

˝선택적 친화력˝이란 제목은 꼭 진화생물학 교과서에나 나올법한 문구네요!

Falstaff 2023-10-18 06:20   좋아요 0 | URL
ㅎㅎㅎ 괴테다운 제목입지요.
 
잃어버린 발자취 창비세계문학 89
알레호 카르펜티에르 지음, 황수현 옮김 / 창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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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기 전에 알레호 까르뻰띠에르의 가계를 알고 넘어가는 것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카르펜티에르는 1904년에 스위스 로잔에서, 프랑스 출신 건축가인 아버지와 러시아 출신 언어 교사이자 음악가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해, 곧바로 쿠바로 이민을 떠났다. 쿠바의 아바나에서 청소년 시절까지 보내는데, 그리하여 카르펜티에르는 에스파냐 어를 모국어로 사용할 수 있었으며, 능숙하게는 아니지만 새롭게 배우는 사람들보다는 훨씬 유리한 상태로 프랑스어와 가까이 지낼 수 있었으리라 짐작한다. 한편으로 제도 교육과 별개로 가정 내에서 아버지로부터 문학 수업을 받고, 어머니한테 음악을 배웠는데 일곱 살에 쇼팽의 전주곡을 연주할 정도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건축가 아버지와 음악가 어머니가 이혼을 하고, 카르펜티에르는 마차도 독재정권에 대항하여 반정부 활동을 하다 구속 수감되지만 1928년에 프랑스의 초현실주의자의 도움으로 이후 11년 동안 파리에서 체류한다. 스물네 살부터 서른다섯 살까지 파리에서 체류하며 앙드레 브르통 등과 교류했다 하니, 프랑스어도 에스파냐어 만큼이나 구사했을 것이다. 쿠바로 돌아온 카르펜티에르는 37세에 결혼을 하고, 2년 기약으로 베네수엘라의 카라카스로 떠났으나 그곳에서 대자연의 위용에 마음을 뺏겨 14년을 거주하면서 문학동네에서 번역 출간한 <이 세상의 왕국>과 이 책 <잃어버린 발자취>를 쓴다. 카스트로가 쿠바 혁명을 성공하고 귀국, 이후 눈부신 활동을 하다 1980년 파리에서 숟가락 놓는데, 책을 이해하는 데는 도움을 주지 않으니 이후 행적은 생략한다.

  여기까지 카르펜티에르의 바이오그래피 가운데 <잃어버린 발자취>와 관계가 있는 것을 고르라면, ① 에스파냐어∙프랑스어∙영어, 그리고 독일어를 자유자재로 또는 약간의 어려움은 있지만 의사소통 정도는 충분히 가능한 수준으로 구사하는 것, ② 주인공 화자 ‘나’의 직업이 클래식 음악 작곡가로 현재 칸타타 <사슬에서 풀린 프로메테우스>를 작곡하다 중단한 채 영화와 라디오 음악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는 것, ③ 아내 루스와는 영어로, 애인 무슈와는 프랑스어로, 새로운 현지인 애인 로사리오하고는 에스파냐어로 소통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④ 세상의 최대 도시 뉴욕에 살다가 콜롬비아 동부(정도로 보이는) 지역으로 원시 악기를 발굴하기 위해 떠난 여행 중 진정한 사랑 로사리오와 만나고 아델란따도가 만든 원시공동체 산따 모니까 데 로스 베나도스를 이상향으로 생각하게 되는 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큰 허들로 등장한 것은, 나도 한 평생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살았다고 자부했으나, 여전히 제대로 악보를 읽을 줄도 모르고, 체계적으로 음악을 향유하는 딜레탕트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아마추어 입장에서, 곳곳에 숨어있는 (극)음악적 비교, 굳이 발견하지 못해도 그냥 넘어갈 수는 있으나, 알아채고 해당 단어/구절이 왜 나왔는지 알면 몇 배나 즐길 수 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주인공이 작곡가이고 여전히 미완성 작품 <사슬에서 풀린 프로메테우스>를 완성하려 하니 음악 관련 서사는 결코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집 센 출판사 창비가 이 책을 출간하고 벌써 21개월이 지났음에도 여태까지 읽으려 생각하지 않은 것은, 카르펜티에르의 <이 세상의 왕국>을 안 읽은 것과 같은 이유인데, 라틴 아메리카 밀림과 늪지대 자연의 웅장함과 위대성, 야만 속의 인간성을 강조하는 작품일 것이라는 편견 때문이었다. 웬만하면 이런 선입견을 갖지 않을 터인데, 이 책은 특히, 표지 그림이 H.G.웰스의 <모로 박사의 섬>에서도 표지로 썼던 앙리 루소의 그림, <뱀을 부리는 주술사>인 데다가 <모로 박사…>의 밀림 속 엽기적 실험실이 저절로 떠올랐던 때문은 아닌가 싶다. 영화 <닥터 모로의 DNA>에 나온 그로테스크한 노인 말론 브란도가 불쑥 나타날 거 같은 그림 말이지.

  선입견 또는 예상은 틀렸다. 만일 <모로 박사…>류나 에벌린 워의 <한 줌의 먼지>같은 대책 없는 아마존 탐험, 호세 에우스타시오 리베라의 <소용돌이> 처럼 대평원의 풍광, 장마리 드 로블레스가 쓴 <호랑이가 제 세상인 나라>에서 보는 감칠맛 나는 재미를 기대했다면, 조금은 비슷할 수 있겠으나, 꽝이다. 이 책은 그렇게 쉽지 않다. 만만하게 여기고 들어갔다가 나처럼 코피 터지기 십상이리라.

  먼저 문장이 길다. 만연체를 구사하는 작가들한테 공통점은 한 사물이나 현상 또는 기분을 묘사하는데 상당히 구체적이다. 게다가 가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현학적 지식을 동원하여 묘사하고자 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더 구체적으로 알려주려고 한다. 문제는 독자가 작가 수준이 아니라는 데 있을 뿐. 알레호 카르펜티에르는 묘사를 위하여 그리스 신화, 뒤로 가면 다이아몬드 채굴군을 그리스인으로 설정하여 적극적으로 그리스 신화를 인용하기에 이르기도 하고, 말한 바 있는 넘쳐 흐르는 음악 기호들과 음색, 오페라의 장면과 무대, 악기별 성격 같은 것을 난사한다. 그래도 내게는 다행이었던 것이 저 플라톤에서 시작하는 서양 철학의 인용이나 구사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이런 문장이 몇 개나 모여야 한 문단을 만들 수 있을까? 문단 하나가 다섯 페이지 정도 지속되는 건 다반사고, 대화를 따옴표에 묶은 다음에 줄 바꾸기도 하지 않고 같은 문단에 그대로 사용한다. 따라서 대화가 지속되는 일은 없다. 책을 선택하기 전에 인터넷 책방의 미리보기 기능을 사용하여 본문이 어떻게 생겼는지 미리 구경부터 하시고 견딜 수 있으면 구입하거나 빌려 읽으면 좋을 듯하다. 하지만 시간을 충분히 잡고 카르펜티에르의 아름다운 문장을 감상하는데 초점을 맞출 목적이면 머뭇거리지 않아도 좋다. 화려하고 현학적이고 탐미적인 문장과 이것들의 집합인 문단, 이것들이 다 아울러 작품이 독자를 몰입하게 만들 것이니.


  루스는 주인공 화자 ‘나’의 아내이며 연극배우다. 루스 앞에 이제 실험극을 막 마친 젊은 작가와 극단이 등장해 <남북전쟁>이란 비극의 초연을 할 것이니 좀 도와달라고 해서, 기껏해야 스무 날 정도면 끝나지 않겠나 하는 마음에 기꺼이 그러겠다고 허락을 했다. 그러나 웬걸.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공전의 히트를 쳐 무려 4년 7개월에 걸친 1,500회 공연을 하게 됐고, 얼떨결에 맺은 무한 연장공연 계약 때문에 루스의 넓고 넓은 연극 세계를 향해 열린 전망이 오히려 콱, 닫혀버리게 됐다. 아무리 유명 배우라 하더라도 서른 살부터 5년간 매일, 주말과 주일에는 심지어 하루 두 차례에 걸쳐 같은 대사를 해야 하는 고역이 되고 말았다. 이제 루스에게 <남북전쟁>은 연극을 통한 도피의 문이긴커녕 악마의 섬이 되고 만 거였다. 국민연극이 된 <남북전쟁>은 이번 공연이 끝나면 그길로 건너편 서부 해안으로 순회공연에 나서 ‘나’는 11개월 만에 집에서 혼자 지내야 한다. 이 생각을 하니 엄청난 고독감이 엄습한다고 엄살을 피운 후에, 오늘, 6월 4일 회사에서 3주일간 휴가를 내고 내 곁에 두고 싶은 오직 한 사람, 아내 루스의 행적을 쫓고 있다.

  그러다 길거리에서 대학에 속한 악기박물관에서 큐레이터로 있는 사람을 2년만에 우연히 만나 그의 사무실에 함께 가고, 대륙의 가장 원시적인 원주민들이 사냥하기 전에 성공을 기원하며 진흙으로 구워 만든 악기로 새의 노래를 흉내내는 곡조를 녹음한 레코드를 듣는다. 평소 ‘나’가 주장해온 음악의 기원은, “기본 리듬은 짐승의 걸음걸이나 새들의 지저귐을 모방하고자 하는 열망”이라고 주장해온 이른바 “모방→마법→리듬”의 독특한 과정이었다. 큐레이터는 이를 주장할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로 원시 악기를 발견하는 작업을 거론하면서 ‘나’의 동의 하에 즉각 대학 총장을 만나 ‘나’를 세계 유일의 아메리카 원주민 악기 전문가이자 학교에 아직은 부족한 사례를 찾아내기에 적합한 수집가로 소개하고, 성질 급한 총장이 그 자리에서 내일 당장 라틴 아메리카 오지로 떠나 아직 발견하지 못한 원시 악기를 몇 점 구해오라고 부탁한다. 넉넉한 출장비와 더불어. ‘나’는 무슨 원시악기에 대한 강력한 유혹이 있는 건 아니지만 마침 3주간 휴가를 받아 그 기간 동안 끝낼 수 있어 마땅한 거절의 구실을 찾지 못해 수락한다. 2년 전에 루스가 공연 때문에 집을 비운 여러 날 중 어떤 날에 처음 만나 돈독한 몸의 정을 쌓은 여자친구 무슈가, 나도 같이 가고 싶어, 하는 바람에 이제 무슈 역시 탐험길에 오르게 되고.

  성질 급한 총장이 그랬다고 당장 내일 출발할 수는 없어서, 6월 7일애 무슈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숲속의 도시에 도착한다. 8일엔 오페라하우스에서 도니제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를 관람하던 중 무슈가 까탈을 부려 도중에 그냥 나온다. 호텔에 들어 무슈가 잠든 다음에 악기점에 들러 원주민 악기를 찾아보려 서성이던 중에 갑자기 총소리가 나더니, 에그머니, 이 나라에 혁명이 일어난 거였다. 20세기 중반의 시대적 측면에서 라틴 아메리카 진보, 보수의 대립은 종교전쟁과 같은 수준이어서 아무도 말리지 못하는 상황이라 예정에 없던 곳에서 며칠을 더 보낸 후, 6월 10일 협괘열차로 밀림 탐험을 위한 베이스캠프라고 할 수 있는 마음에 드는 마을 로스 알또스에 도착한다. 2부 까지의 내용이다.

  3부에는 서인도 제도의 척추부분, 분화구의 가장자리, 오지 중의 오지이지만 새롭게 개척을 하고 교회를 짓고 있는 밀림 속 원주민 마을과 비교하면 엄청난 크기의 개화된 마을 산따 모니까 데 로스 베나도스에 도착한다. 가는 도중 원주민 여인 로사리오를 구조하고 (또는 원주민 입장에선 그냥 만나고) 못된 짓만 하던 무슈가 말라리아에 걸려 끙끙 앓는 사이에 서로 사랑해 만리장성을 쌓게 되고, 결국 무슈가 도중에서 베이스캠프로 떠나자 ‘나’와 로사리오, 마을의 개척자 아델란따도, 고집장이 신부 뻬드로 그리스인 다이아몬드 사냥꾼 야네스 등과 함께 도착한 꿈의 마을, 산따 모니까 데 로스 베나도스. 며칠 후 휴가기간 3주가 벌써 지난다. ‘나’는 어처구니없이 이 오지에서 로사리오의 사랑에 힘입은 것인지 거의 포기한 칸타타 <사슬에서 풀린 프로메테우스>의 중요한 테마를 작곡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이제 도시에서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지 마을에 정착하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한 줌의 먼지>에서도 그랬듯이 현대인이 어디 마음대로 아마존 오지에 머물 수 있나? 하루는 하늘에 헬리콥터가 맴맴 돌더니 마을에 내려 그를 데리고 현대 도시로 데려간다. ‘나’는 문화 발견을 위해 용감하게 오지로 투신했다가 원주민에 의하여 포로로 잡혀 있는 신세로 알려져, 유명 신문사에서 구출해오는 사람에게 거금의 현상금을 걸었다는 것. 이렇게 3부와 4부를 지난다.

  4부는 다시 뉴욕으로 보이는 대도시. ‘나’는 ‘나’의 아이인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임신한 루즈와 이혼하고 얼른 아마존 오지로 가 로사리오와 평생 살고 싶다. 그러나 그게 쉽나. 하여튼 뉴욕에서의 장면인 5부.

  마지막 6부는 다시 아마존. 어떻게 되는 지는 당연히 안 알려줌.


  인상깊은 작품이다. 이 책에 별점을 준다면, 당연히 다섯 개 만점을 주어야 마땅하지만, 작품 때문이 아니라, 카르펜티에르의 현란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충분히 즐기지 못한 독자, 내가 부족한 관계로 부득이 하나 뺄 수밖에 없다. 내 문학적 소양이, 아니, 아니다. 내 주제에 무슨 문학적 소양 운운. 그저 독자로서 내 소양이 조금만 더 높았더라면 기꺼이 별 다섯을 주었을 텐데, 나도 그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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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3-10-13 05: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 삽질:
화요일, 오에 겐자부로 <만년양식집>
목요일, 미시마 유키오 <금색>
금요일, 줄리언 반스 <사랑, 그리고>

그레이스 2023-10-13 09:25   좋아요 2 | URL
오에 겐자부로 기다리겠습니다~

Falstaff 2023-10-13 16:36   좋아요 1 | URL
읏.... 별점이 박하게 나갈 거 같은데요. ^^;;

yamoo 2023-10-13 09: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듣보잡이면 창비...창비군요!

근데, 이 작품은 매우 지루하고 재미없을 듯합니다. 클래식 음악의 전문적 기술이라...ㅎㅎ 아무리 별5개라도 저는 패쑤해야 할듯한데...친절하게도 문학적 소양의 부족함으로 별 하나를 뺀다는 문장으로 인해 더욱 확신이 듭니다. 저는 읽으면 안된다는 사실을요!!ㅎㅎㅎ

Falstaff 2023-10-13 16:37   좋아요 0 | URL
듣보잡 아니여요. 지루하긴 합니다만 재미있습니다. 다만 다섯 페이지에 걸친 한 문단을 집중해 읽으려면 좀 피곤하더군요. 시간도 많이 걸립니다. ㅎㅎㅎ

yamoo 2023-10-13 17:10   좋아요 0 | URL
제겐 듣보잡이여요~~~^^;;

그레이스 2023-10-13 09: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집센 창비‘부터 ‘만들 것이니‘까지 문단때문에 읽고 싶어졌습니다.^^
그 만찬 즐겨보고 싶은데,,, 능력이 될지 모르겠네요^^

Falstaff 2023-10-13 16:39   좋아요 0 | URL
아이고 그레이스 님은 거뜬하실 겁니다. 한 번 도전해보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stella.K 2023-10-13 1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문학적 소양은 부족하지만 제목을 이리 쓰시니 왠지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가 문장을 좀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라. ㅋ 친절한 조언 감사합니다.^^

Falstaff 2023-10-13 16:39   좋아요 1 | URL
문장이 중요한 분들은 당연히 한 판 붙어보셔야지요. ㅎㅎㅎㅎㅎ
 
보고 싶은 오빠 창비시선 396
김언희 지음 / 창비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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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언니가 그 김언희인 줄 알았으면 내가 이 김언희를 샀을지 안 샀을지 지금도 모르겠어. ˝눈사람처럼 귀여운 물방울의 목소리로 쓴 시˝를 말이야. 이상해, 속으로는 따라 읽겠는데 도무지 공감은 못 하겠더라고. 이거 내 책임 아니지? 그렇다고 해 줘. 괜히 폼 잡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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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아닌 사람 대산세계문학총서 172
샤오홍 지음, 이현정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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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편의 단편소설을 모은 선집. 샤오쥔과 공동출판한 《고난의 여정》, 샤오홍의 단독 소설산문집 《다리》, 단편소설집 《소마차 위에서》와 《광야의 외침》 이렇게 네 권에 실린 소설 전편을 실었다고 한다. 이이의 작품은 연극으로 공연하기 위해 후에틴신이 각색해 희곡으로 만든 <생사장>만 읽어보았다. <생사장>은 지주와 소작인, 소작인도 소작인 나름이지 관리직 소작인과 비참한 생활을 해야 하는 노예급 소작인, 괴뢰정부 만주국을 세운 일본군과 앞잡이 등을 등장시킨 시대극이자 참혹극이었다.

  샤오홍은 1911년 헤이룽장성에서 유지 가문의 맏딸로 태어났다. 헤이룽장성. 우리말로 읽는 대로 발음하면 흑룡강성. 겨울이 되어 바람이 불었다 하면 바가지 만한 돌덩이가 날아와 말 머리를 때려 피가 철철 흐른다는 북간도 이야기를 외할머니한테 들었다. 맏이로 나왔지만 딸이란 이유로 냉대를 받으며 산 작가는 먼 친척을 따라 베이징에 가 중학교를 졸업했으나 가족이 압력을 넣어 스무 살에 시골로 이사한 집에서 지내며 농촌생활을 경험한다. 이때 고난 속에서 허덕이던 농민의 생활상을 목도한 것이 샤오홍의 작가 생활에 중요한 자산이 되어 <생사장>은 물론 《가족이 아닌 사람: 이하 “가족이”》의 몇 작품에서 절절한 장면으로 등장한다.

  《가족이》에 실린 열아홉 편을 구태여 주제별로 구분을 하자면 특히 동북 지역의 농촌을 배경으로 ①지주에 의하여 심각하게 수탈을 당해 거의 노예수준의 생활을 하면서도 여전히 폭력에 노출된 농민, ② 대 일본 전투에 참가한 군인이나 이들의 가족 및 탈영병, ③ 대일 투쟁이나 혁명을 위해 집을 건사하지 않고 떠나는 극빈자 출신 지식인 또는 의식화한 청년, 그리고 샤오홍 자신이 그리 했듯이 ④ 일본에 살려고 갔거나 다니러 가 적응도 하지 못해 외로운 시간을 보내는 젊은 여성 이야기 정도로 구분할 수 있다.

  샤오홍을 읽으면서 얼마 되지 않아 머리에 번쩍 떠오르는 우리나라 작가가 있었으니, 강경애. 자칭 우리나라 국보였던 양주동과 열애를 나누었고 샤오홍보다 두 살 언니인 강경애의 십팔번은 아무래도 적나라한 가난의 참혹상이라고 할 터인데, 부모가 정해준 남자의 아들을 낳았지만 가난에 찌들어 입양을 보내야 했던 샤오홍 역시 강경애와 어깨를 견줄 정도로 가난을 묘사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1930년대의 조선과 중국 동북지역의 삶이 그리 많이 다르지 않았나 보다. 식민지 조선에서도 굶주림을 견디지 못한 농민들이 입에 풀칠이나 한다고 가솔을 이끌고 간도 행을 나선 것과 마찬가지로, 중국 중남부, 서부 지역의 농민들한테도 동북으로 가면 땅이 기름져 먹고 살 만하다는 소문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끝없이 지주에 수탈을 당했던 건 조선이건, 중국 동남부와 서부 지역이건 간에 다 거기가 거기였으며, 동북부라고 별 다를 게 있었겠는가. 이주 중국인 가운데서도 김동인 <감자>의 복녀가 틀림없이 있었다는 데 만 원 건다.

  《가족이》 속의 작품을 읽어보면, 1930년대의 샤오홍이 공산주의자였거나, 아니면 적어도 공산주의자 동맹 또는 모임의 멤버였을 거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강경애를 읽을 때와 같이. 시절이 아직 대장정 중이었거나 막 끝났을 때이다. 정치적 확신이나 배경이 없이 이런 작품을 쓰다가 재수없게 국민당 정부에 발각이라도 나면 일신 상 큰 위험을 감수해야 했을 때였다. 강경애는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카프에 가입하지 않은 채 프로 문학에 헌신했지만, 샤오홍은 데뷔작 <아이를 버리다>를 발표하던 1933년에 공산당원 문인들의 조직인 “별극단”에 가입한다. 그래서 1942년, 결핵으로 숨을 거둘 서른한 해의 짧은 생, 십 년이 채 되지 못하는 문인 생활 내내 아직 유보 상태인 봉건적 사회의 계급 상황에 천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샤오홍을 읽은 솔직한 감상은, 이이가 재수없게 1960년대 중반까지 살았다면, 나이 쉰다섯, 이제 중국의 중견작가로 터를 잡고 연륜이나 경험으로 보아 가장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할 시기에, 청소년 근위대/홍위병에게 머리 끄덩이를 잡혀 조리돌림을 당했을 거 같았다는 거. 하여간 중국의 인텔리겐치아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문화혁명을 피해갔던 사람들이 행운아다.

  책은 재미있다. 작품의 주제야 위에서 이야기한 바이지만, 문학작품을 주제만 알고 넘어갈 수 있나, 교과서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주제를 품은 스토리가 조금 낡았지만 하나하나 다 재미있다. 이 가운데 표제작 <가족이 아닌 사람>을 그중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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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3-10-12 08: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올리신 글을 읽으면 자연스레 감자랑 소금이 떠올라요. 강경애 단편집을 다시 읽어볼까 마음도 들고요.

잠자냥 2023-10-12 11:27   좋아요 0 | URL
제 생각엔... 강경애보다는 샤오홍이 좀 더 잘 쓰는 거 같아요. ㅋㅋㅋㅋㅋ

Falstaff 2023-10-12 15:49   좋아요 0 | URL
감자랑 소금. ㅎㅎㅎㅎ
재치 만땅이셔요.

잠자냥 2023-10-12 1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앞에 몇 편만 읽고 참 잘쓴다.. 생각하고 일단 덮었는데 마저 다 읽어야겠습니다.
<가족이 아닌 사람> 저도 인상 깊었어요.

Falstaff 2023-10-12 15:50   좋아요 0 | URL
저는 언제부터인가 이런 참혹한 가난의 광경은 읽고 싶지 않아지더라고요.
혹시 크누트 함순 때문 아닌가 몰라요. 웬수 같은 함순....
 
새를 쏘러 숲에 들다 윤택수 전집 1
윤택수 지음 / 디오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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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택수.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시인이(었)다. (2023년) 9월 12일 시인 장석주가 한국매일경제신문에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편의 시”라는 제목의 컬럼을 읽기 전까지. 장석주는 컬럼에서 “내가 읽은 <새를 쏘러 숲에 들다>에는 낯선 상상력으로 빚은 무섭도록 슬프고 아름다운 시편이 그득했다.” 라고 하면서 “이 가을 아침엔 시인이여, 불량식품처럼 상한 언어 한 무더기 말고, 당신의 어깨 위에 까마귀를 앉히고 ‘이 피를 맑히려면 백년이 걸리리’라고 노래하라!”, 느낌표! 하나를 콱 찍었다. 장석주 본인도 1980년대 초반부터 《완전주의자의 꿈》 등으로 유명 인기 모더니즘 시인의 반열에 올랐던 시인인 만큼 시에 관한 한 칭찬이 박할 지도 모를 터인데 이렇게 상찬을 하니, 기사를 읽자마자 득달같이 읽어볼 수밖에.

  윤택수. 1961년 대전생. 충남대 국문과를 졸업했고, 3사단 백골부대 포병대에서 군역을 마친 거 같다. 동문 선배로 보이는 시인 윤형근의 발문을 인용하면, 학교를 졸업한 윤택수가 홀연 자취를 감추더니 몇 년 만에 나타나 그동안 울산에서 용접공을 일했다고 말한다. 그의 시집을 읽으면 누구나 알겠지만 윤택수가 용접공으로 일했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노동운동 같은 것에 투신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먹물의 삶에 적응하기 싫었든지, 적응하는데 애를 먹어 선택한 길 가운데 하나였든지 할 것이다. 그러다가 또 갑자기 사라져 한동안 보이지 않았단다. 다시 한번 불쑥 등장해서 하는 말이, 이번엔 원양어선을 탔다고. 충남 홍성에 있는 오랜 역사를 지닌 홍주 중학교에서 국어교사도 몇 년 했고, 서울로 올라가 몇 잡지사와 출판사의 편집장도 한 모양이다. “전적으로 시를 읽고 판단하면” 마흔이 가깝도록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산 이유 가운데 하나는 혹시 이이가 성소수자여서 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윤택수가 택한 마지막 호구지책은 학원 강사. 대전에서 학원 강사를 하다가 잠깐 쉬고 서울로 올라가 세월을 보낸다. 돈이 떨어질 만하면 다시 고향으로 가 학원 강사를 하고. 그러다가 겨우 서른아홉 살 즈음이었던 2000년 여름, 학원에서 강의를 하다가 뇌졸중이 쳐들어와 강단에서 쓰러지고 만다. 이후 꼬박 2년 간 고생하다 생을 마감한 시인. 참 고단하게 살다 갔다. 등단도 하지 않고 그동안 써 둔 110편의 시를 선배 윤형근에게 버리듯 넘겨준 윤택수. 등단, 소위 시인 면허증이 없이 그저 몇 동인지에만 시를 발표했을 뿐이라 이 시집 《새를 쏘러 숲에 들다》가 그의 첫 시집이며 유고시집이 되고 말았다. 그러니 그의 마흔 살 평생이 이 한 권에 실려 있을 터. 20대 초반의 치기도 들어 있고, 시대에 대한 부채감도 있으며, 시와 시를 쓰는 사람에 대한 탐색도 당연히 실려 있다. 그리고 자신이 겪은 삶의 장소, 군대, 울산의 용접공, 원양어선 선원, 중학교 교사의 경험 같은 것들 모두.


  윤택수에게 시와 시인이란 무엇일까? 그는 제일 앞에 실린 시 <재난과 기아>에서 이렇게 말한다.


  “말로 구애하고 말로 사업하고 말로 반란 일으킨다

  밀하지 않는 자는 망자와 신뿐이다

  정치에 관한 말 분배에 관한 말 절망에 관한 말을 하면 그들이 노한다

  그들은 노예의 말을 활용하지 않는다

  말을 다루는 기술은 먹을 수 없는 새를 쏘는 기술이다” (p.11 부분)


  그래, 시는 말로 하는 것이지. 말로 세상에 안 되는 게 있나. 정치, 분배, 절망, 그리고 인용하지 않은 시의 후반부에 나오는 불안하고 가냘픈 것, 지친 자와 지루한 자에게 하는 질문, 대지와 대기에 상감象嵌한 증오 같은 것들도. 시인이 시를 쓰는 것, 즉 말하는 건 자유다. 하다못해 세금도 안 낸다. 그러나, 구애하고, 사업하고, 반란을 일으키는 건 사실 알고 보면 “먹을 수 없는 새를 쏘는 기술”이란다. 이게 무슨 뜻일까?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겠다. 하나는 죽자사자 그렇게 말로 수다한 사업을 해봐야 나와 내 가족들 목구멍으로 들어갈 양식이 되지 못한다는 거. 다른 하나는, 공들여 정치와 분배와 절망에 관한 말을 했는데 정작 시라는 새를 총으로 쐈더니 새는 이미 형체도 알아보지 못하게 다 흐트러졌다는 거. 약간의 차이가 있다. 돈이 안 된다는 건 비슷한데, 두번째 것은 아예 “새”라는 시가 되지도 못한 그냥 헛소리로 끝났다는 것이니 더 참혹하달까.

  이 “먹을 수 없는 새를 쏘는” 행위는 표제시 <새를 쏘러 숲에 들다>에서 더 확실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총신에 온기가 쌓인다

  먹지도 못할 새라며 내심 언짢아하시는 아버지의 말씀이 쟁쟁해오고

  숲의 끝을 돌면서

  무슨 놈의 새가 깃 스침이 그리 눅눅한지

  집으로 돌아가서 책이나 볼 것이었다

  (중략)

  새는 어리고

  구우면 고엽같이 뼈째 부스러진다

  버려진 농막에 엎드려

  총탄을 세고

  소매에 튄 피를 털어내면

  늦은 불면이 온다  (p. 38~39. 부분)


  여기서 “먹을 수 없는” 상태는 위에서 이야기 한 두 가지 가운데 더 참혹한 경우다. 구워봤자 총을 맞은 새는 고엽같이 뼈 째로 부스러져버렸으니. 쏘려면 큰 새를 쏴야 하지만 아무나 다 큰 새를 쏘면 가뜩이나 세상에 넘치는 시인들 전부 랭보일 텐데 그러면 또 재미없지. 신세계 백화점 옥상에 올라 맞아도 아프지 않을 돌 있으면 한 번 던져보시라. 요즘엔 던졌다 하면 시인이나 화가가 맞을 테니까.


  윤택수가 1961년생. 빠른 61년생이면 79학번, 보통이면 80학번, 눈치를 보니까 재수는 집에서 안 시켰을 거 같다. 1980년 불행한 시절에 윤택수는 안전한 대전에서 흉흉한 소문을 통해서만 남도에서 있었던 잔혹한 사건을 듣고 크고 큰 부채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핏빛 소식은 천생 서정시인이고 모더니스트인 윤택수에게도 시절의 부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그리하여 그는 비 내리는 밤, 소주 한 잔 걸치더니 애꿎은 문을 열어 들이치는 빗속에서 울며 노래한다.



 



  나는

  이 밤에

  깊이 감상에 빠지고

  제 감동에 겨워 전전긍긍 살아가는

  시인이다

  나도 때로는

  격시를 쓰고

  절망한 사람들이 용기를 얻는

  힘찬 시도 쓰고 싶지만

  적에 의해 가슴에 아픈 못이 박혀

  철철 피를 흘려도

  개천에 버려져도

  나는 장엄하게 죽노라 호언하는

  용자도 되고 싶지만

  이 비 내리는 밤

  문을 열고

  울음 우는

  병신 같은 시인이다

  개새끼다

  나는  (전문)



  이렇게 노래할 수 있지. 그러나 이제, 물론 십여 년이 흐른 후에도 그러했겠느냐만, 얼마간 시인은 계절의 여왕 5월이 오면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독후감이 길어지니 그건 그냥 넘어가자.


  그의 직업인 용접공과 원양어선 선원과 교사의 경험에서 나온 것들을 보자. 용접공을 할 때의 울산은 6.29를 기점으로 사업장마다 노동조합의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즉, 새로운 노조의 탄생보다 기존에 있었던 사용자를 위한 어용노조의 개편 투쟁이 훨씬 격렬했다) 전국적으로 노동쟁의를 시작해 연간 임금 인상률이 20퍼센트에 육박하던 시기의 바로 전이었다. 이는 노동자들의 불만이 최고조의 상태였다는 말과 같은 의미이며, 아무리 모더니즘 시를 주창하는 시인이라도 현장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모른 척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 <별곡 3>에서 노래하기를


  그해 여름의 울산은

  침잠의 뻐쓰와 침묵의 노동조합이여

  라디오 뉴스를 들음이어

  잘못하여 뉘우치고 잘해서 추억함이어

  무슨 큰 사랑인가 대학 못 간 청춘들아

  빨래도 마르지 않고 자꾸 눈물나네 용접공들아

  (중략)

  하느님 당신은 용접공이십니다

  찢어진 둑들을 때우시고 비인 가슴들을 때워주소서

  우리의 욕심들아

  아멘 청춘들아

  아멘 아멘 용접공들아

  선생께서는 어디로 가려시는가  (후략. P.52~53. 부분)



  윤택수는 또 <박물지 12>에서 자신의 교직 경험을 깊게 반성하고 있다. 스스로 나쁜 교사였다는 반성. 그래서 정식 교직 생활은 그에게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정말 그랬다면, 잘했다.


  교육은

  피교육자의 교육자에 대한 열광과 찬탄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수수되는 노래이다

  노력에 의한 숙련이나

  시간의 온축에 의한 노회만으로 교사가 되어

  피교육자들을 판단하고 추장하고 징계하는 예를

  우리는 흔히 목격하거니와

  우리들 스산한 추억의 대부분은

  나쁜 교사들에게서 왔다

  내가 좋은 예이다

  용서해줘

  제발 잊어줘  (p.148 전문)



  이 시집이 시인의 첫 시집이면서 유고시집, 그러면 젊은 시절의 연애 감정도 하나 인용해야 직성이 풀리겠다. 그렇지? 비록 마흔이 되도록 장가 한 번 들지 못하고 총각귀신이 되었을지언정 어찌 마음 속 흔들림 한 번 없이 시절을 보냈겠는가. 달달한 시 한 수 읽으며 독후감을 끝내자.



  심홍빛 나라



  들국화 핀 비탈이 보이는 날에는 편지 못 쓰네

  무슨 상념의 거품이 닿은 솜털이여 가슴 뛰네


  그 여름의 아가미의 스러져가는 열망조차 낙엽 지네

  오래오래 참아온 눈물의 향기 스미네


  아득한 나라의 추목秋木 가지에 놓이는 연흔漣痕이여 미치겠네

  들국화 핀 비탈이 보이는 날에는 편지 못 쓰네 (전문)



  * 연흔漣痕: 바람에 의하여 모래나 눈 위에 만들어지는 물결 모양의 흔적 (네이버 검색, 표준국어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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