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뉴욕에 가다 - 역사 모노드라마
하워드 진 지음, 윤길순 옮김 / 당대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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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낙 유명한 사람이라 인물 소개를 하는 게 새삼스럽다. 1922년생, 2010년 몰. 미국의 역사학자, 정치학자, 사회비평가, 사회운동가, 극작가로 <미국 민중사>의 저자다. 베트남 전쟁 반대를 비롯해서 모든 평등과 평화를 위한 운동에 참가한 골수 진보 좌파 인물.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의 원래 제목은 <Marx in Soho>다. 마르크스가 독일에서 추방을 당해 프랑스에서 장가들어 살다가 치사하게 조국이, 얘 위험한 애래요, 프랑스 정부에 고자질을 하는 바람에 벨기에로 갔고, 거기서도 추방당해 런던으로 옮겨 진짜로 살던 곳이 ‘소호Soho’다. 진은 미국과 현대를 무대로 마르크스를 초청하고 싶어했다. 그리하여 무대를 영국의 Soho가 아니라, 마침 뉴욕에도 Soho라는 동네가 있어서, 마르크스가 귀신이 되어 뉴욕의 소호에서 예수도 못한 재림을 하는 것으로 정했다. 여기서 “예수의 재림”은 나 같은 유물론자가 불경스럽게 사용할 수 있는 귀절이 아니다. 진이 작품 속에서 마르크스의 입을 통해 한 말을 따왔을 뿐. 하워드 진은 열일곱 살 때 처음 <공산당 선언>을 읽은 이후에 마르크스와 상당히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당연히 반은 공산주의자 또는 사회주의자, 아니면 적어도 마르크스 주의자로 살다가 1989년에 충격을 먹는다. 세상의 모든 볼셰비키는 쿠바나 북한 등 극도로 좁은 땅에서만 억지로 숨을 유지한 채 근근이 명을 이어가고, 소비에트, 동독, 동유럽, 남아메리카,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는 한 순간에 증발하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던 것이다. 근데 말은 정확하게 하자. 공산주의가 사라졌다고?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함께 무너진 건 확실하지 않느냐고? 아니다. 내 생각을 밝히자면, 인류는 공산주의를 한 번도 실천해본 적이 없다. 소련과 소련의 위성국가, 아시아, 남아메리카, 아프리카의 공산주의국가에서도 마찬가지다.

  여태까지 몇 번 강조한 거 같은데, 공산주의의 반대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다. 공산주의를 흔히 ‘프롤레타리아 독재’라고 해서 공산주의 체제는 애초에 민주주의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건 심각한 오해다. 20세기 이후 공산주의를 하겠다는 국가에는 하나같이 공산주의를 빙자한 골통 파시스트들이 창궐, 번창했을 뿐. 카를 마르크스는 애초에 인간의 본성을 너무 선하게 봤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해야 하나. 천생 마르크스 주의자인 하워드 진도 마찬가지로, 인간의 본성을 너무 선하게 보고 있다.

  여태 인간의 역사는 한 번의 공산주의도 실현시키지 못했듯이, 앞으로도 공산주의는 결코 인간의 손으로 구현할 수 없을 것이다. 과하게 순진하고 낙천적이지만 바쿠닌이 옳을 지도 모른다. 모든 특권과 특권적 위치는 인간의 지성과 마음을 죽이는 것이라고 애초에 권력 자체를 부정했으니 말이다.


​  이 작품은 마르크스의 유령이 (1999년 작품이니)20세기 말 뉴욕에 나타나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모노드라마다. 그리하여 그라운드 제로 이전인 1999년의 자본주의의 모순을 하워드 진은 공산주의의 새로운 실천을 통해 발전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바, 이것은 21세기에도 여전히 혁명이 유효하다는 뜻이다. 당연히 인류 역사에 마지막 혁명은 아직 오지 않았고, “마지막” 혁명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정말 하워드 진의 전망이 옳을까? 나는 어떻게 1999년에 이런 작품을 쓸 수 있었는지 좀 이해가 되지 않는다. 1999년이라면 당연히 전 지구적으로 신자유주의가 발호하기 시작해 자유무역협정 같은 것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던 시절이다. 진은 이런 현상을 미국, 아니다, 세계의 모든 부를 극소수의 부자들이 독차지하는 반면 부자/자본가들은 대다수 임금노동자를 겨우 먹고 살 수 있는 수준으로 착취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단정한다. 그리하여 딱 이렇게 쓰여 있지는 않지만 모든 (주식회사를 포함한)개인(들의)기업은 사회적인 악이라고.

  언제나 문제는 권력이다. 마르크스의 입을 빌린 하워드 진은 새로운 공산주의의 모델을 프러시아-프랑스전쟁 당시의 프랑스 파리 시민들이 독자적으로 나폴레옹 3세를 퇴위시키고 수립했던 “파리 코뮌”을 제시한다. 프랑스 제3 공화국이 다시 왕정을 복고하고 독일과 굴욕적인 정전협정을 맺으려 하자 파리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궐기한 사건이다. 당시 프러시아 출신으로 세계에서 제일가는 여우 재상 비스마르크가 당당히 군대를 파리에 입성시켜, 시민들로 하여금 독일이 전쟁에서 이겼음을 시위만 하고 살짝 빠져버렸다. 보불전쟁을 프랑스 측에서 발발하게 만들고 정작 전쟁이 터지자마자 초장부터 프랑스를 싹 쓸어버렸던 비스마르크는 파리 시민들을 현혹시키는 데도 성공하여, 시민들은 객관적 전투력의 불리에도 불구하고 치욕적인 조건의 정전협정에 크게 불만을 갖게 만드는데 성공한다. 하여간 이렇게 정부를 뒤집어 엎은 파리 코뮌은 불과 2개월 열흘 만에 정부군의 진압으로 3만명을 한 자리에서 총살시키는 것으로 끝난다. 진은 코뮌이야말로 진정한 사회주의, 공산주의라고 평가하지만, 그의 말대로 한다고 하더라도, 코뮌이 두 달이 아니라 반년, 일년을 가도 마르크스가 원했던 선한 공산주의 체제가 수립되었을까? 아니라고 본다. 누군가 권력을 잡아야 한다. 필연이기도 하다. 아니라면 단박에, 적어도 일정한 가속도를 가지고 코뮌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이리 상태로 떨어질 것이란 점은 역사를 통해 너무도 많이 보아왔지 않나. 저 멀리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좋다, 코뮌이라 하자!)부터 시작해서.

  만일 극소수의 부자들이 전체 부의 98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면 그들의 부를 합리적이고, 합법적이고, 합상식적인 방법을 통하여 하위 몇 퍼센트 시민들에게 분배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훨씬 빠를 것이고,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효과적이며 부작용도 적을 것이다. 이게 21세기의 진보, 21세기의 좌파가 따져야 할 과제 아닐까 싶다. 자신의 평생 소원이 강남 건물주인 사람은 이제 좀 왼편에서, 진보에서 꺼져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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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10-05 09: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워드 진이 이런 것도 썼군요.
바쿠닌의
‘모든 특권과 특권적위치는 인간의 지성과 마음을 죽이는것‘이라는 말 확 와닿네요.

Falstaff 2023-10-05 16:09   좋아요 1 | URL
저도 진의 문학작품을 읽을 줄은 몰랐습니다.
바쿠닌은 덩치도 그렇고 우짜 저 프랑스 혁명기의 당통을 연상시키기도 하더라고요.

yamoo 2023-10-05 11: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폴스타프 님의 서재에서 하워드 진의 리뷰를 보는 날이 있군요!!!ㅎㄷㄷ

대체로 민주주의 반대를 공산주의로 알더라구요. 민주주의 반대는 전제주의인데 말이죠..^^;;

그나저나 하워드 진이 이런 책도 썼군요. 근데 별3개라..흠..

Falstaff 2023-10-05 16:13   좋아요 1 | URL
ㅎㅎㅎ 그래서 일단 오래 살고 보는 겁니다.
민주주의 뿐만 아니라 모든 정치제도는 자기네 주의가 아닌 다른 건 몽땅 적...아닌가요?
이 책의 편집까지 감안했으면 별 하나 더 뺐을 겁니다.

페넬로페 2023-10-05 12: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완전한 패배나 포기보다는
로맨틱한 생각일지라도 혁명까지의 생각을 잃지는 않아야하지 않을까요.
저는 요즘 제가 자꾸 패배주의자가 되는 기분이라 힘이 빠진 상태이거든요.

Falstaff 2023-10-05 16:17   좋아요 2 | URL
˝모든 기업은 사회의 악˝이란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게 하는 제도의 개편, (고용인과 피고용인 모두의) 의식의 전환 같은 것도 혁명의 하나 아닐까 합니다만.

저는 이제 뭘 하던 간에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부지런히.... 이렇게는 안 살려고 합니다. 아득바득 살아서 뭐하게요. 그래도 얼른 기운을 차리시기 바랍니다.

바람돌이 2023-10-05 22: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워드 진 선생이 소설을 쓴 줄은 처음 알았네요.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듯한데 그걸 이런 식으로도 쓴게 아닐까 싶고요. ㅎㅎ 맑스가 파리코뮌을 굉장히 크게 평가했죠. 하지만 그 코뮌이 좀 더 오래갔다면 아마도 Falstaff 님 말씀대로 되지 않았을가 생각합니다. 맑스 역시 그 시대의 한계 안에서 판단할 수밖에 없을테니 말이죠.

Falstaff 2023-10-06 07:29   좋아요 2 | URL
옙. 마르크스가 런던에서 보기에 파리 코뮌은 정말로 찬스라고 생각하기 쉬웠을 겁니다. 문제는 하워드 진이 마르크스를 20세기 말의 뉴욕으로 모셔다 놓고 같은 이야기를 다시 하게 만든 데에 있습지요. ㅎㅎㅎ
시간과 돈이 있어도 이 책은 굳이 읽으실 필요가 있을까 싶더랍니다.
 
이민자들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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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발트는 나한테 독후감을 쓰기 힘든 작가다. 제일 힘들지도 모른다. 읽는 내내 제발트, 이 양반 특유의 쓸쓸한 문장에 푹 젖어 있었으며 책을 다 읽고도 그런 감정에서 얼른 빠져나오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감정이 무엇이다, 어떤 종류의 쓸쓸함이다, 콕 집어서 얘기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짓궂게 말하면 이 책이 다행스럽게 내게 마지막 제발트인데, 어디까지나 짓궂게 말해서 그렇다는 것이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제발트가 57년이라는 짧은 세월만 살고 가는 바람에 네 권의 픽션만 남긴 것이 아쉽기만 하다.

  이 작품집도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독자는 지금 작가가 서술하고 있는 것이 정말 W.G 제발트의 독백인지, 아니면 그가 만든 픽션의 등장인물의 서술인지 헷갈릴 정도로, 얼핏 작가와 비슷한 연배, 동향 인물이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느낌이다. 게다가 어떻게 구했는지 진짜 관련 사진이라고 해도 독자가 믿지 않을 도리가 없을 만한 사진 자료를 첨부하는 바람에, 처음 《토성의 고리》를 읽을 때부터 마구 혼돈스러워 한 것처럼, 글쎄, 여태까지 그렇더라니까. 《이민자들》 앞부분에서 달릴 생각은 아예 못하고, 제발트 비슷한 문체의 글을 읽을 때 줄곧 그러듯이 템포 아다지오, 당연히 꼼꼼하게 읽으면서, 지금 내가 픽션을 읽고 있다, 하고 스스로를 각성을 시킨 후에 비로소 작품과, 쓸쓸한 문체, 문장과 거리를 두고 셈을 할 수 있었다. 글쎄, 제발트가 이렇다니까.


​  《이민자들》은 네 편의 중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차례로 <헨리 쎌윈 박사>와 <파울 베라이터>는 30~40쪽으로 짧은 편이고, <암브로스 아델바르트>와 <막스 페르버>는 중편 정도 분량이다. 네 작품 모두 어린/젊은 시절에 고향을 떠나 이방의 나라에서 살아온 사람들로, 자살이나 완만한 자살 또는 자살과 거의 마찬가지 방법으로 생을 소멸시킨다. 세번째 작품을 빼고 유대인이 주인공이다. 나는 제발트의 대표작 《아우스터리츠》를 읽어서 그런지 꽤 오랫동안 이이가 유대계 독일인인 줄 알았다. 이런 건 W.G 제발트가 소년 시절에 유대인 학살, 홀로코스트에 노출된 경험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이는 자연스럽게 전쟁과 학살, 그리고 이런 것들을 발생시킨 20세기 유럽의 근대성에 대한 회의를 초래했을 수 있다. 이쯤에서 지금 독후감을 쓰기 위해 위키피티아와 제발트의 다른 책들을 참고하고 있다는 걸 밝혀야 하겠다. 제발트는 후에 나치 협력자들에 관해 대단히 세밀한 필터를 적용한 듯하다. <잔지바르 또는 마지막 이유>라는 짧지만 훌륭한 작품을 남긴 알프레트 안더쉬가 나치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편협한” 태도로 그를 비판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내가 알기로 안더쉬는 나치의 눈 밖에 나 퇴폐문학자라고 탄압받은 작가 가운데 한 명인데, 이 정도면 목숨이나마 건사하고자 협력하는 척했던 거 아닌지 모르겠다. 같은 독일 평론가들도 제발트더러 “비판받을 만큼 편협”하다고 했다니까.

  그렇다고 제발트가 과했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그가 소년시절에 어떤 홀로코스트 관련 경험을 했는지 나는 모르니까. 다른 시절도 아니고 혈관을 타고 니트로 글리세린이 흐리기 시작하는 남자들의 십대 때 경험한 충격이라면 그게 평생 갈 수 있고, 세월이 감에 따라 진짜 경험했던 실제보다 더욱 과장된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도 한 시절 혈관 속에 다량의 혈중 니트로 글리세린 농도를 지녔을 때, 부모가 자식들 앞에서 귓속말을 하고, 그것도 혹시 알아들을까봐 일본어로 의사소통을 했으며, 그저 입 끝에 ‘어디 가서 이런 말 말아라, 큰일난다.’라는 단서조항을 달았으며, 수업시간에 갑자기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온 누군가가 생물 교사를 데리고 가더니 그걸로 마지막 수업이 된 것을 경험한 것이, 여태까지 박정희, 그리고 유신, 하면 두드러기 증세가 나타날 것 같은 기분이 드니, 내 나름대로 제발트의 심경을 이해할 수 있다.


​  네 작품의 주제를 누가 딱 한 단어로 말해보라면, 작품집의 제목 《이민자들》를 연상하면 단박에 알 수 있듯이 “향수homesickness”다. 물론 제발트가 누군데 아무리 제목이 《이민자들》이라고 해서 주제마저 “향수” 이렇게 칼로 자르듯이 말할 수 있겠는가? 비슷한 다른 말도 골라보자. 상실. 공허. 우울. 고독. 또 많은 단어가 있겠지만 바람직한 양성positive 명사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전부 자살을 하거나 의사 자살을 하는 거겠지만. 가장 짧은 작품이면서 제일 앞에 실린 <헨리 쎌윈 박사>, 한 작품만 들여다보자.

  화자 ‘나’는 1970년 9월 말에 영국 동부 노퍽주 노리치의 새 직장을 얻어 아내 클라라와 함께 노리치 근교인 힝엄으로 갔다. 실제로 W.G 제발트가 이 때 이스트앵글리아 대학에서 독문학 강사를 해,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고목과 건물 등 사진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중개업소에서는 주변에서 가장 큰 집을 소개해주었고, 스코틀랜드 소나무와 주목이 늘어선 교회 옆에 딱총나무 무리와 루시타니아 월계수, 그리고 사람 키 정도의 담장으로 둘러싸인 집에 들게 된다. 정원과 나무를 포함한 식물에 대한 제발트의 수식은 전작에서 이미 충분히 경험해본 것이다. 제발트 자신이 정원 가꾸기에 큰 관심이 있는 사람이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 집엔 키도 크고 어깨도 넓지만 항상 고개를 수그리고 안경 너머로 다른 곳을 보는 습관 때문에 자세가 구부정해 왠지 좀 땅딸막해 보이는 나이든 사람이 있었다. 이이가 헨리 쎌윈 박사다. 집은 아내의 것이고 자기는 말하자면 일종의 장식용 은둔자일 뿐이라는데, 나중에 알고 보면 노부부 사이에 뭔가 문제가 있기는 있다.

  지금은 황폐해져 버렸지만 테니스 코트까지 딸린 넓은 정원을 깔끔하게 가꾸어 소소한 작물 정도는 직접 농사를 지어 살았더랬지만 이젠 두 부부만 살아 늙은 하녀 한 명을 빼고 다른 하인들은 전부 보냈으며, 아내도 각지에 있는 다른 집의 임대 같은 업무와 여행을 즐기기 위해 일년의 반 이상을 집 밖에서 보내 거의 혼자 살고 있다.

  쏄윈 박사는 리투아니아의 흐로드나 근처 마을에 살다가 일곱 살이던 1899년 늦가을에 이민길을 떠나 영국에서 이민자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런던의 화이트채플의 지하 셋집에 터를 내렸다. 공부를 잘해 전교 일등 자격으로 장학금을 받아 케임브리지 의과대학에 진학할 때 견진성사를 받으면서 헤르슈라는 이름을 헨리로, 쎄베린이란 성을 쎌윈으로 바꾸었다. 1차 세계대전이 터져 인도로 보내는 동안 아내 헤디와 결혼을 했다. 헤디의 집안이 워낙 부유해서 이들은 1920~30년대에는 아주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고, 이를 위해 박사 역시 열심히 종합병원 의사로 일을 했으나 거의 대부분이 처가집 덕분이었다. 이런 생활이 지나자 박사는 당연히 가난뱅이가 되었지만 아내는 쓰고 남은 돈을 훌륭하게 운용하여 지금은 다시 확실히 돈이 많은 부인이 되었단다.

  박사의 잘못이 무엇인가 하면, 자신이 어떤 출신인지 아내에게 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박사가 견진성사를 한 성공회 교도이긴 하지만 할례를 한 유대인의 아들이라는 걸 적어도 십 년 이상 아내에게 이야기하지 않았으며, 물론 특별하게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으나, 그걸 알게 된 아내 헤디는 그만 조금씩, 조금씩, 이게 켜켜이 누적이 되다 보니 이젠 돌이킬 수 없이 남편한테 정나미가 떨어져 버린 거였다.

  물론 이건 스토리일 뿐이다. 그러나 누가 제발트의 작품을 스토리 때문에 읽을까? 이것 외에 헨리 쎌윈 박사가 살아온 이야기, 스위스 알프스를 올랐던 장면들 같은, 제발트 표 문장을 감상하는 것 만 가지고도 충분히 시간 값, 돈 값을 하리라 본다. 오랜만에 내돈내산 책 읽은 독후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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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3-10-03 07: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 우연이네요. 어제 하루키의 “신작”을 읽으면서 제발트 생각이 계속 났거든요. 시간이나 기억을 다루는 것이 아우스터리츠를 연상시켜서요. 예전에 반 읽다 던져놓은 거 재도전 해보려고요.

Falstaff 2023-10-03 07:53   좋아요 0 | URL
앗, 그렇습니까? 하루키 리뷰는 읽었습니다. ㅎㅎㅎ
저는 노르웨이 숲이 좋아서 1Q84를 읽었는데, 그게 마지막이었군요. 하루키는 더 안 읽으려고 했다가... 필립 글래스라는 현대음악 작곡가가 <해변의 아인슈타인>이라는 오페라를 작곡했거든요. 그랬는데... 하루키의 책 가운데 <해변의 카프카>가 눈에 띄더라고요. 왜 아인슈타인과 카프카를 헷갈렸는지 같은 작품으로 오해하고는 그만 사버렸던 거딥니다. 흑흑흑... 사놓고 2년이 흘러도 아직 시작도 안 했습니다만. ㅎㅎㅎ 다 이렇게 사는 거지요 뭐.

stella.K 2023-10-03 10: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해변의 아인슈타인! ㅋㅋㅋ 공통점이 없진 않죠. 둘 다 유대인 아닌가요?
해변의 카프카 전 작년인가 읽었는데 일큐팔사는 2권 중간까지 읽다 덮었습니다. 저는 하루키 에세이는 좋은데 소설은 잘 안 읽게 되더군요.
저 근데 좀 실례인지 모르겠는데 단골 이달의 당선자신데 오랜만에 내돈내산 책이시라니요? 그럼 그 많은 적립금은 어떻게 하시는지...? 별개 다 궁금하죠? 제가 이런 사람이네요.ㅠㅋ

Falstaff 2023-10-03 11:28   좋아요 2 | URL
ㅎㅎㅎㅎ 유대인! 저는 해변의 카프카가 마지막 하루키가 되지 않기만 바라고 있습니다.
이달의 리뷰... 적립금 생기면 꼭 읽고 싶은 책 사고요, 아니면 커피 사서 마십니다. ^^
가급적 책은 안 사려고 해요. 책장도 좁아 터지고, 방바닥에 쌓은 것도 갑갑하고, 아내와 아이의 회원증 가로채 한 달에 아홉 권의 책을 사달라고 할 수 있어서 읽고 싶은 신간도 충분히 즐길 수 있더군요.

stella.K 2023-10-03 11:47   좋아요 1 | URL
오, 그러시군요. 역시 현명하시네요. 근데 부럽네요. 아홉 권까지. 성실한 답변 감사합니다.^^
 
내가 정말이라면 창비시선 434
유이우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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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여름, 중앙신인문학상 시부문에 당선해 등단을 하고 3년 후인 2019년 창비에서 낸 첫 시집. 나는 누구나 볼 수 있는 완전 공개 독후감을 쓴다. 유이우. 본명은 김소연. 아마 유이우에겐 자신의 본명을 밝히는 것도 그리 기분 좋을 것 같지 않다. 내가 찾을 수 있는 유이우에 관한 정보는 중앙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했다는 것, 인스타그램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는 것이 거의 전부다. 그러나 특히 영화배우들이 간혹 그러듯이 신비주의 캐릭터를 고수하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 유이우를 검색해 예스24와의 인터뷰 기사를 읽어볼 수 있었으니까. 확실히 신비주의 컨셉을 고수하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시인으로 등단한 기쁨, 처음 시집을 내서 프로필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이왕이면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포토그래퍼, 옛말로 하자면 ‘찍사’, 하시시박한테 찍었을 정도로 젊은 사람들 특유의 솔직한 기쁨을 발산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라, 시인이라는 직업이 이제 부모한테 독립해 원룸 하나 얻어서 먹고 살기에도 얼마나 팍팍한 직업인지는 다음으로 하고, 다른 곳도 아니고 중앙신인문학상, 예전 이름으로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하여 등단을 하고, 다른 출판사도 아니고 창비에서 첫 시집을 찍었으니 얼마나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겠는가. 그리하여 유이우는 첫 시집 《내가 정말이라면》의 표지를 영원히 기념하기 위하여 유명 타투이스트 카와요니한테 부탁해 자신의 몸에 지울 수 없게 그려놓았다.

  이 인터뷰를 읽고 나는 시집 《내가 정말이라면》을 읽은 감상을 쓸 수 없다고 마음먹었다. 게다가 별점까지 하나 더 보태줬다. 못할 게 뭐 있어? 돈 드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감상을 쓸 수 있겠는가? 자신의 첫 시집에 대한 애착이 이 정도로 심각한 시인에게, 틀림없이 단어의 칼날이 되어 깊숙한 자상을 낼, 그것도 아마추어의 무딘 칼날이라 오히려 더 심한 고통을 줄 것이 뻔한 허튼 독후감으로 젊은 시인에게 함부로 상처낼 수 없다. 그저 내가 읽고 그 중에 좋다, 생각이 든 시 한 편을 어디가 좋다, 어디는 언짢다 일언반구 없이 그냥 소개한다.




  이루지 못한 것들



  오후를 타고

  쿠션은 떨어져내린다


  너는 화가가 되었구나

  너는 화가를 포기했구나


  꿈이 널브러진 햇빛

  퍼져 사라지는 빛


  좋은 날들이 계속되었다

  완전히 다른

  좋은 날들이 계속되었다  (전문. P.10)




  대신 나는 이우성이 쓴 시집의 발문 “안녕, 단어”를 읽고 현대시를 읽는 방법에 대하여 힌트를 받았다. 이에 대해 얘기해보자.


  시인이 “자유로운 항해”를 떠올린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것이 시화詩化 한다. 떠올린 걸 시로 쓰지 않으면 시인이 아닐 터이니. 근데 “자유로운 항해”라고 하면 ‘항해’에 힘이 팍 가서 별로 ‘자유’스럽지 않은 느낌이다. 그래서 “자유와 항해”라고 적어보았다. 조금 시간이 지나 이번엔 “자유”라고 하는 것보다 움직임/흐름이 자유와 비슷한 이미지를 주는 ‘구름’ 혹은 ‘오후’라고 하면 어떨까, 라고 사고가 확장되어 이제 “구름과 항해”와 “오후와 항해”라고 썼다. 이러고 나서도 시인은 이것들 위에 두 줄을 그어 버린다.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오후의 빛”이라고 쓴다.

  이제 거의 모든 독자는 “오후의 빛”을 읽으면서 이것이 “자유로운 항해” 또는 “자유와 항해” 개별적인 단어 “자유” 그리고 “항해”와 어떤 연결이 지어지는지 알아내지 못한다. 이우성은 여기서 말한다. “오후의 빛”을 읽고 시의 본질, 어떤 시인의 본질에 다가가지 못할 것이라고. 아울러 반드시 본질을 발견해야 하는 것도 아니라고.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본질을 발견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의 단어들, 문장들이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고 있는지, 혹은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지를 떠올리는 편이 훨씬 유익"하단다. 이런 사실을 "우리는" 안단다. 나는 아닌데. 하여튼 이우성은 같은 시인이라서 그런지 그게 가능하단다. 자칭 똑똑해서. 똑똑한 이우성은 애당초 눈에 보이는 단어와 문장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모여서 어떤 의미를 만드는지에는 관심이 없으며, 단어란 마침내 도착한 어떤 것, 더 멀리 가게 될 어떤 것이라고 믿는다고 한다. "어떤", "어떤"."어떤"..... 염병할. 그 "어떤"이 도대체 뭔데? 비겁하게 자기도 모르니까 그냥 "어떤", "어떤" 그리고 "어떤", 한 번 더 "어떤".

  즉 단어와 문장의 본질이 아니라 시 안에서의 방향성과 운동성이 더 중요하다고, 물론 어떤 시인의 어떤 시에서 그렇다고 주장한다. 이를 유이우는 위에서 말한 인터뷰를 통해 시의 "리듬감"이라고 표현했다.

  인터뷰어가 질문한다. “연을 짧게 치는 시가 많더라고요?”

  인터뷰이 유이우가 답한다. “빨리 써서 그런 것 같아요. 후루룩 쓰고 막히면 저는 그 시를 버려요. 리듬감에 성공한 시만 살리고요.”

  그렇구나, 유이우는 시를 잔치국수 먹듯 후루룩 쓰고, 아니다 싶으면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는 시인이구나.


  유이우의 시를 읽는 암호해독기는 “리듬감”이었다. 유이우를 읽으면서 리듬감을 느꼈는지 못 느꼈는지는 그러니까 온전히 독자 책임이다. 하여간 시를 읽는 일도 점점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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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3-09-29 06: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 삽질
화요일, W.G 제발트 <이민자들>
목요일, 하워드 진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
금요일, 에드워드 기번 <로마제국 쇠망사 6>

잠자냥 2023-09-29 09:03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목요일 거 왠지 별점이 예상되긴 합니다. ㅋㅋㅋㅋㅋ

Falstaff 2023-09-29 10:40   좋아요 0 | URL
별 셋입니다. 모노 드라마 희곡인데, 만일 편집까지 감안하면 별 둘이고요. ㅎㅎ

잠자냥 2023-09-29 10:41   좋아요 0 | URL
ㅋㅋㅋ 맞혔다! ㅋㅋ 저도 예전에 읽었는데 아무리 진 선생이지만 역사책 쓰는 거하고 문학 쓰는 건 다르구나! 했습죠. 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3-09-29 08: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책 내지 말아야 겠어요 팔백작님한테 걸리면 말 다 안 하고도 디지게 맞는 거임…

Falstaff 2023-09-29 10:21   좋아요 1 | URL
그래도 내셔요. 한 번 보게. ㅋㅋㅋㅋ

독서괭 2023-09-29 08: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는… 잘 모르겠어요. 어떤 시는 분명히 감동을 주지만.. “어떤, 어떤, 어떤…” 이거 보니 왜 모르겠는지 좀 알 것 같네요 ㅋㅋㅋㅋ

Falstaff 2023-09-29 10:39   좋아요 1 | URL
저는 ˝어떤˝이라는 단어를 정말 싫어합니다. ㅎㅎㅎㅎ
물론 쓰는 사람 마음입니다만. 왠지 좀 자신이 없거나, 비겁해보이지 않으셔요? ^^

Falstaff 2023-09-29 10: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안 쓰려 했는데..... 참지 못하고 꽝!

˝시의 단어들, 문장들이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고 있는지, 혹은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지˝
이게 시의 본질을 발견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발문을 쓴 시인 이우성은 이 말을 쓰고 콱 막혔을 겁니다. 아니면 자기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도 잊었거나. 그러니까 자꾸 ˝어떤˝을 남발하게 되지 않았겠느냐, 하는 의견입니다. ˝어떤˝을 자주 쓰는 사람하고는 친하게 지내지 마세요.
˝어떤˝은 틀림없이 언어의 전염병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23-09-29 12:14   좋아요 2 | URL
제가 또 이런 거에 걱정이 많아가지고 자기 검열 차원에서 블로그 검색 해 보니 제 어떤은 281개 백작님은 700개여서 휴우 이 정도면 나 합격이네 오히려 상위권이야 이러고 안도하고 갑니다 ㅋㅋㅋㅋㅋ

Falstaff 2023-09-29 12:18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내가 밋쵸요!

반유행열반인 2023-09-29 12:26   좋아요 1 | URL
저는 하여간에 를 너무 많이 쓴다 싶어 이거도 돌려보니 80여개로 생각보다 양호하고 팔백작님 하여간은 500개가 넘어서 부사어는 그냥 글 개수에 비례하는 구나 싶어 넘어갑니다 ㅋㅋㅋㅋ

2023-09-30 0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9-30 08: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9-30 0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9-30 1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들이 모조리 사라진다면
리처드 파워스 지음, 이수현 옮김, 해도연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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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명 깊게 읽은 책 가운데 한 권이 리처드 파워스의 <오버 스토리>다. 시간이 좀 흘러 디테일한 스토리는 생각나지 않지만 미국 캘리포니아 솔러스의 숲을 파괴하지 말라는 시위 참여자들에 관한 이야기로, 예수가 지구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아메리카에서 자라던 오래된 나무들, 진정한 지구의 주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사람들의 투쟁을 각 등장인물들의 굴곡진 삶과 함께 뭉클하게 그린 작품이라고 기억한다. 이어서 읽은 작품이 <갈라테아 2.2>. 컴퓨터 프로그래머와 데이터 프로세서로 일 한 경력이 있는 리처드 파워스답게 거대한 고등과학 연구소를 배경으로 기계에 감정을 주입하려는 학자 등 인공지능, AI를 통해 기계에 신경망을 형성, 감정을 가진 기계를 만드는 내용이다. <갈라테아 2.2>는 읽으면서 무수하게 쏟아지는 컴퓨터 관련 전문용어가 넘기 힘든 진입 장벽 역할을 해서 그렇지 그것만 극복하면 누구에게나 추천할 만한 참 괜찮은 소설이다.


​  <새들이 모조리 사라진다면: 이하 “새들이”라고 씀>이 내겐 세 번째 읽는 리처드 파워스이며, 이것으로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한 파워스의 작품은 다 읽는다. 책의 주인공 화자 ‘나’, 시어도어 번은 ‘미친개’로 통하던 한 사기꾼의 아들이자, 오수 정화조 청소부로 인생의 첫걸음을 내딛어 열네 살부터 알코올에 의존하는 시절을 시작했다. 잡다하고 작은 범죄와 공부라는 평행세계의 삶을 살던 시어도어, ‘시오’라고 불리던 ‘나’는 고등학교 졸업 무렵에 주정뱅이 견습생이었는데, 미친개와 이혼하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온 엄마네 회사에서 지원하는 장학금을 얻어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이후 술을 딱 끊어버리고 학업에 정진해 시애틀에 있는 워싱턴 대학에서 박사를 마치고, 지금은 우주생물학 전공의 태뉴어가 되었으니 이 정도면 아무리 기회의 나라 미국이라 해도 개천에서 용 났다고 해서 어색하지 않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개천에서 날아오른 미국 용은 용이 된 후에 절대 고개를 돌려 자기가 솟구친 개울을 쳐다보지 않는다. 시애틀에서 만난 작지만 행성 같은 여인 얼리사와 행복한 결혼생활을 영위하다가 아들 울새, 로빈을 키워 아홉 살이 됐다. 불행하게도 공장식 사육을 반대하고 동물권을 주장하던 아내/엄마 얼리사는 2년 전에 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도로에 불쑥 나타난 주머니쥐를 피하기 위해 핸들을 급히 꺾는 바람에 사고가 나 현장에서 즉사해버렸다. 남편 시오와 아들 로빈은 얼리사와의 추억과 상실감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시오는 로빈을 데리고 미친개 할아버지 대신 외갓집을 찾아 외조부모, 외삼촌과 이모 내외와 명절을 지내고는 했다. 절대 개천을 쳐다보지 않는다니까.

  아홉 살의 로빈은 학교에서 문제아로 낙인이 찍힌 아이다. 제이든이 유일한 친구였는데 로빈이 엄마 이야기를 꺼냈고 제이든이 교통사고 이야기를 했으며, 이를 모욕으로 느낀 로빈이 금속 보온병을 집어 제이든의 얼굴을 후려쳐 광대뼈 골절의 부상을 입혔다. 이게 처음도 아니다. 주로 로빈이 괴롭힘을 당하는 입장이었지만, 로빈은 자기 관심 사항이 아닌 것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반면, 집중하고 있는 일을 방해받거나 자신이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 해를 입으면 극도의 히스테리를 나타내는 증세가 있다. 네 명의 전문의가 진단을 했고, 이 가운데 두 명은 아스퍼거, 다른 두 명은 각기 강박장애와 ADHD 의견을 냈다. 로빈의 최대 관심사는 모든 생명 있는 것을 없애지 않는 것이다. 자연히 (아홉 살짜리가)채식주의자이며, 극도의 환경 보호자이며, 생명 종의 멸종을 위해 인류가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분히 엄마 얼리사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넓은 의미에서 북미대륙의 숲을 보존하기 위해 지상 50미터 상공 위에 텐트를 치고 시위를 벌이는 <오버 스토리> 인물들과 유사점을 보인다.

  빠질 수 없는 등장인물이 오래 전 얼리사의 연인이기도 했던 심리학자 마틴 커리어. “디코디드 뉴로피드백”이란 시스템을 탐구하고 있는 학자로 기능성 자기공명 영상 장치인 fMRA에 AI를 연결하여 두뇌를 스캔하고 있었다. 이때 피실험자에게 공포, 놀라움, 비탄, 황홀 같은 이미지를 연상하게 하여 사람마다 특징적인 뇌의 움직임을 읽은 AI가 개인마다 독특한 감정 상태를 파악한다. <새들이>에서 이런 작업을 처음 만난 독자는 조금 낯설 수 있으나 이 아이디어는 <갈라테아 2.2>에서 기계에게 좋은 감정을 주입하기 위하여 하루 몇 시간씩 모차르트를 반복적으로 들려주는 괴짜 박사의 행적과 비슷하다. 설마 커리어 박사가 진행중인 “디코디드 뉴로피드백”이 정말로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지? 이건 작가 리처드 파워스가 화자 ‘나’ 시오의 입을 통해 말하듯 일찍이 SF 소설 2천 권을 독파한 내공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가상의 장치이리라. 이 장치를 통해 마틴 커리어 박사는 이미 죽어 몇 년이 지난 엄마의 뇌 스캔을 AI가 해석한 정서, 감정을 그대로 로빈이 습득하게 하여 상당한 시간 보통 사람들 속에서 잘 조화되어 지내기도 한다.


​  시각은 시어도어 번 선생의 가족으로 국한하면 싱글파? 아니, 홀아범 시오가 아스퍼거, 강박장애, ADHD 가운데 하나일 로빈과 생활 또는 생존하는 힘겨운 삶을 그린 작품이라 볼 수 있다.

  로빈은 어려서부터 잠을 잘 자지 못하고, 한 계절에 몇 번씩 야뇨 증세를 보여 침대를 적셨으며, 소음에 매우 민감하고, 세탁기 위에는 반드시 원숭이 인형이 있어야 하는 등 다양한 것에 집착하는 성향을 보였다. ‘나’를 뺀 사람들은 한 번에 이해하기 힘든 발음으로 이야기하여, 작품 속에 로빈의 대사는 따옴표가 아니라 작은 따옴표를 사용해야 할 정도였다. 합성섬유가 닿으면 끔찍한 습진이 발병하고, 수시로 발작적 비명을 질러대는 등 사회성이 결여되어 동급생들의 잔인한 험담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야기한 것과 같이 생물종의 항상성에 대단한 관심이 있어 모든 죽어가는 것에 지독한 히스테리를 보여 후반부에 아빠 시오가 운전 중에 다람쥐를 로드 킬 하자마자 마틴 커리아 박사가 상당히 괜찮은 수준으로 끌어올린 치유를 다시 원위치 시켜 버리는 첫 번째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학교에 적응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아서, 로빈은 시오에게 홈 스쿨링을 하겠다고 요구하고, 그대로 된다.

  홈 스쿨링을 하기 전에 작품 속에서 로빈이 얼마나 적응하지 못하는지를 독자에게 이해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작품은 아빠가 아들을 데리고, 십 년 전에 시오와 얼리사가 탐조 여행을 왔던 스모키 산맥에 야영을 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천문학자 아빠는 하늘에 빈틈없이 10의 29 제곱 만큼 달려 있는 별을 올려다보며 지능을 가진 외계 생물이 살고 있는 행성이 은하계에 얼마나 많은지, 이런 은하계가 또한 얼마나 많은지, 이야기하며, 드바우 행성과 팔라샤 행성, 펠라고스 행성 등 아빠가 지은 지능생물이 존재하는 별들에 관한 상상으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든다. 이렇게 가상의 행성을 꾸며내는 일은 책의 전편을 통해 로빈의 심리를 달래거나, 좋은 쪽으로 고양시키거나 할 때마다 수시로 등장한다. 그러다 결국 학교를 자퇴한 이후에 우주생물학 교수 시어도어 번 선생은 커리큘럼을 교육청에 제출하고 직접 아들을 교육시키며, 로빈의 의사결정을 실행할 수 있게 배경을 만들어주는 등 헌신을 하느라 종신교수 직을 취소당할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로빈에 대하여 한 마디. 일찍이 엄마 얼리사는 죽기 전에 남편 시오한테 로빈이 나이는 어리지만 속에 완전한 성인이 들어 있는 것 같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한다. 작품 속에서 작가가 등장인물을 통해 이 비슷한 언급을 하면, 그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십중팔구다. 마치 소설 속 예언자나 무당의 말이 언제나 들어맞는 것처럼. 파워스의 원작이 그런지, 번역을 하면서 역자 이수현이 아동이 쓰는 말을 사용하지 않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로빈은 행동이나 말이 절대 아홉 살, 열 살짜리가 아니다. 몇 단계의 과정을 거친 제대로 익은 성인만이 생각하고, 제안하고, 발언하고, 행동할 수 있는 것을 쉽게 해치워버린다. 본문에도 여러 차례 나오는 것처럼 로빈의 성향을 가진 아이들 가운데 소수는 특정 부분의 천재를 가지고 있기도 하고 그걸 무슨 “스펙트럼”이라 하는 모양인데, 로빈 역시 이 범주에 든다고 여길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너무 자주 그러면, 좀 징그럽다.


​  이렇게 사람 사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책을 읽는 내내 아빠 시오가 불쌍했다. 물론 미국식 규범에 따른 창작이어서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오직 아들 로빈. 아이를 위한 인생. 실제와 달리 선거에 불복한 대통령이 3개월 후에 다시 시행한 대선을 통해 재선에 성공한 후, 자신을 비롯한 모든 천문학자, 외계생물학자들의 꿈이었던 프로젝트 예산이 거부당하는 불행이 닥치는 와중에도, 자신의 헌신에도 불구하고, 가족이란 행성이 아니라 아내 얼리사, 아들 로빈이라는 각기 다른 행성에서 살고 있었음을 확인해야 하는 외로움의 발견. 그렇게 살지 말아라, 말아라. 너를 위해 살기도 해라. 책을 읽는 내내 끊임없이 시오에게 속삭였지만 그는 이미 죽은 얼리사, 그리고 로빈을 끝내 놓지 못한다. 홀아범 시오가 불쌍했다. 미국식 가족주의의 끝장이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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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3-09-28 07: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버 스토리의 첫 세 쪽을 못 넘겨서 멋진 표지의 책은 그냥 묵혀두고 있어요. ˝새들이˝는 제목으로는 카슨과 비슷한 분위기려나 싶었는데 줄거리 소개를 보니 각오를 하고 읽어야겠군요. 아이의 고생담은 겁이 납니다. 대신 ˝갈라테아2.2˝에 흥미가 동해서 장바구니에 넣었습니다. 리뷰 잘 읽었습니다. 명절 잘 보내세요. ^^

Falstaff 2023-09-28 07:51   좋아요 2 | URL
유부만두님, 갈라테이아 2.2, 진입장벽이 무지무지해요! 전 그것 때문에 별점 하나 깎았다니까요. 이 책은 파워스 작품 치고는 좀 간결한 편이라고 합니다. 걍 팍 읽어버리세요.
명절 잘 쇠세요. 살 찌지 않을 정도만... ㅎㅎㅎ

망고 2023-09-28 08: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버스토리 좋게 읽어서 이 책도 궁금했는데 자세한 리뷰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Falstaff 2023-09-28 08:25   좋아요 2 | URL
좋은 마음으로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책 재미있습니다. 도서관에 틀림없이 있을 터이니 읽어보시면 좋겠군요.

coolcat329 2023-09-28 16: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버 스토리>를 너무 감명 깊게 읽었기에 이 책을 나오자마자 도서관에 신청해서 읽었는데 열 장 정도 읽다 말았어요. 처음부터 무거운 분위기 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집중이 잘 안되더라구요. 폴스타프님 리뷰읽으니 역시 그렇군요. 이 작가에게 저는 조금 존경심도 가지고 있어서 이 책 다시 도전해 보렵니다. 잘 읽었습니다.

Falstaff 2023-09-28 17:56   좋아요 1 | URL
ㅎㅎㅎ 읽으면 읽을수록 잘 읽힙니다. 걍 달려보세요. 나름대로 재미도 있고요.
날이 좋습니다. 책보다 시절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오랜만에 낮술에 취해 지금 바야흐로 유토피아랍니다. ^^
명절 잘 쇠세요!

coolcat329 2023-09-29 06:55   좋아요 1 | URL
폴스타프님도 즐거운 명절 되세요!
 
글자를 옮기는 사람 제안들 37
다와다 요코 지음, 유라주 옮김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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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읽은 <지구에 아로새겨진>이 인상 깊어 곧바로 도서관 상호대차 신청한 책. 받고 보니 본문이 75쪽에 불과해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이 <지구에 아로새겨진>과는 완전히 다르다. 짧은 작품이라고 해서 쉽게 읽히리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절제된 감정의 건조한 비유로 쓰였다. 주인공 화자 ‘나’의 심리, 처한 상황 같은 것을, 예를 들어 우리도 흔하게 말하듯이 “마치 ~한 것 같았어” 할 때의 상황과 인물을, “마치~ 같은”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런 일이 생기고 그런 사람이 등장한 것처럼, 생각 속 인물이 화자의 앞에 나타나 함께 행위하고, 대화하고, 간섭해 독자를 혼동시킨다.

  작가는 전에 얘기했듯 1960년 일본에서 태어나 와세다 대학 러시아 문학과를 졸업한다. 79년에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독일에 다녀온 일이 인상 깊어, 1982년 독일로 이주했다. 이후 독일에서 시인, 소설가로 활약하며 함부르크 대학과 취리히 대학에서 각각 독문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는데, 모국어를 떠난 작가의 숙명이 <지구에 아로새겨진>에 잘 드러나 있다. 이이는 독일어와 일본어로 작품활동을 했으며 간혹 두 개의 언어로 같은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리하여 당연히 다와다는 한 국가의 작품을 다른 언어로 옮기는 행위, 즉 번역에 대하여 깊이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글자를 (다른 글자로) 옮기는 사람, 즉 역자의 행위가 어떤 의미인지 자신의 의견을 펴 보이는 작품이 바로 이 <글자를 옮기는 사람>이다.

  작품 속 화자 ‘나’는 안네 두덴 Anne Duden의 작품 <알파벳의 상처>를 “다른 언어”로 번역하겠다고 자진해서 잡지사에 제안한 역자이다. 친구의 형제 자매인 내과의사가 별장 용으로 구입해 놓고 정작 자신은 별로 가서 쉬지도 않은 카나리아 제도 무리Muri 섬의 언덕배기 2층 주택에 혼자 머물고 있다. ‘나’는 절대로 관광객이 아니며 오직 번역을 하기 위한 노역의 장소로 카나리아 제도를 택했다는 것을 수시로 확인하고, 섬 주민한테도 알리고 있다.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지역의 주민들은 그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현금으로 지역 경제의 상당한 부분을 충당하면서도 관광객에 대한 나쁜 감정을 갖고 있는 것이 보통이라 그런 감정을 피하려고 한 점도 부인하지 못할 듯하다. 해수욕은 물론 수영이라는 운동을 별로 즐기지 않는 ‘나’는 바다가 바라다보이는 집이라고 해도,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에 불만이 없다. 바다와 집 사이에는 예전에 교도소로 쓰이던 바나나 농장이 한 줄로 심은 선인장을 경계로 저편에 들어서 있다.

  안네 두덴이 쓴 <알파벳의 상처>는 “<성 게오르크 전설>의 그림을 보며 떠올린 단상을 글로 쓴 8쪽 분량의 소설”이라고 역자 유라주의 해설에 쓰여 있다. 기사 게오르크가 리비아를 지나다가 공주가 용의 제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긴 창으로 찔러 용을 죽이고 대신 온 백성을 그리스도교로 귀의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후에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박해를 받아 참수를 당해 성인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작품은 이렇게 시작한다. 따옴표도 없이.


​  “에서, 약, 구십 퍼센트, 희생자의, 거의 다, 항상, 땅바닥에서, 누운 사람, 으로서, 죽을 힘을 다해 들어 올린다, 미리, 구경거리로 삼아져, 이다, 공격 무기, 또는, 그 끝, 목에 찔린 채, 또는….” (11쪽)


​  다행히 며칠 전에 <지구에 아로새겨진>을 읽어보아, 이런 표현이 전작의 주인공 Hiruko가 스칸디나비아 반도 어떤 나라의 언어도 아니면서 누구나 들어서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언어를 사용할 때, 완전한 문장이 아니라 필요한 단어를 중심으로 이야기하는 것과 매우 유사한 것을 발견한다. 다만 이 작품의 경우 위에 인용한 것들은 극단적인 단어나 구절로 되어 있어서 그저 독일어로 쓴 문장을 단어나 짧은 구절마다 적절한 다른 언어로 바꾸어 놓은 것이긴 하지만. 역자라는 사람은 위 인용한 단어와 구절을 자신의 머리 속에서 적절하고 타당하게, 해당 언어의 습관에 맞추어 재배열하는 직업인을 말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다는데 애로가 있다.

  도무지 번역의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원래 ‘나’의 습관이 만날 해야지, 해야지 마음은 먹지만 일이 지지부지, 흐지부지 시간만 죽이다가 마감 하루를 앞두고 벼락같이 해치우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유달리 고전을 면치 못한다. 그게 마음 속으로 걱정만 하는 수준이 아니다.

  난데없이 햇빛 알러지가 생겨 오른팔 손목부터 팔꿈치 부근까지 시큰거리고 가려워지고, 저 아래 바나나 농장을 생각하면 가려움의 정도가 참을 수 없을 지경에까지 이른다. 그래서 벅벅 긁다 보면 왼손 손톱 아래가 포도주 색깔이 되기도 한다. 바나나 농장의 경계선 또한 점점 ‘나’가 묶고 있는 집 가까이 치고 올라오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정말로 그런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경계선 역할을 하는 선인장이 몇 그루나 되나 세어 보기도 하지만 언제나 다 세는 데는 실패하고 만다.

  ‘나’는 엄연히 관광객이 아니라 일을 하기 위해 섬에 들어온 생활인으로 몇몇 지역 주민들과 교류를 하기도 한다. 아무리 섬에 왔어도 먹어야 사니까 식품가게와 생선가게 주인하고는 나쁘지 않은 관계를 맺어 두는 편이 좋고, 번역을 다 마치면 만년필로 쓴 원고를 보내야 하니까 우체국 직원과 특히 좋게 지내야 옳다. 그러다가 한 명 이상한 사람을 만나는 바람에 독자를 잠깐 혼돈에 싸이게 만들기도 한다.

  갑자기 “작가”가 나타난다. 나는 처음에 이 작가라는 사람 역시 카나리아 제도에 휴양차 또는 작업차 방문해 머물고 있는 다른 객체라고 생각해 아무 생각없이 그저 따라 읽었다. 근데 뭔가 조금 이상했다. 그러다가 이 작가라는 사람의 정체가 바로 ‘나’가 번역해야 하는 여덟 쪽짜리 단편소설 <알파벳의 상처>를 쓴 안네 두덴이었다. ‘나’는 작가와 함께 섬의 이곳 저곳, 섬에서 가장 높은 곳, 화산섬의 분화구에까지 오르기도 하고, 작가는 화산이 분출한 자국인 칼데라까지 직접 내려가 보기도 한다. 난 이 장면을 작가와 역자의 교감 정도로만 생각했지만, 역자는 이 만남을 “번역가와 작가가 마주하는 과정”이라고 하며, “번역가가 ‘작가의 등 뒤에 숨어서 작업하는 직업임을 상징한다”고 딱 박아 놓았다.


​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 불만이 있었다. 딱 그 부분을 해설에서도 인용하고 있다.


​  “어쩌면 번역은 전혀 다른 것일지도 몰랐다. 이를테면 변신 같은, 단어가 변신하고 이야기가 변신해서 새로운 모습으로 바뀐다. 그리고 마치 처음부터 그런 모습인 양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늘어선다.” (23쪽)


​  이에 역자 유라주가 해석을 하기를,

  “번역은 원본이 다른 언어로 건너가는 것이 아니라 원본이 변신하는 움직임이다. 그러므로 번역문은 원본과 전혀 다른 새롭게 태어난 글이고 그 이질성만으로 충분히 원본과 다른 가치가 있다.” (92쪽)


​  맞는 말이다. 그러나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다. 원본이 변신하는 움직임인 것은 확실하지만, 역자는 해당 언어의 전문가이며 동시에 번역 언어의 전문가이기도 하니까,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고로 원본과 유사하게 변신해야 하는 책무가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번역이 제2의 탄생이니 제2의 창작이니 주장하는 것을 십분 이해한다고 해도 그렇다. 물론 역자 나름대로 고충이 있겠지.

  나는 최대치로 여기까지 양해할 수 있다. 만일 셰익스피어가 작곡가라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셰익스피어 역자 신정옥을 연주자로 비유하는 것까지. 셰익스피어가 중세 영어로 쓴 오리지널 악보를 작곡했다면, 여러 명의 배우, 악기가 등장하니 합주곡이나 교향곡이라고 치고, 악보를 자기 나름대로 해석해 청중에게 들려주는 지휘자가 역자 신정옥의 몫이라는 정도. 당연히 이 때도 연주자, 지휘자는 셰익스피어의 원본 악보를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의 해석이어야 한다.

  다와다 요코는, 역자가 저 대서양의 카나리아 제도, 이 중에서도 작은 섬의 하나인 무리 섬에서, <알파벳의 상처>를 번역해 최종적으로 항공우편으로 보내려 할 때, 정말로 성 게오르크가 세 번이나 나타나 우편 발송을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장면도 연출했다. 번역에 손을 못 대고 있을 당시엔 엉뚱하게도 애인이라고 주장하는 게오르크가 독일에서 도착할 거라는 연락을 받기도 하고. 이런 스트레스 속에서의 번역작업. 쉬운 게 아니다.

  그런데 말이지, 다와다 요코 선생, 세상에 남의 돈 받기 쉬운 거 있으면 번역 말고 나한테 하나만 가르쳐주면 안 되시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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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3-09-26 07: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번역가의 책을 읽은 직후라 다와다 요코의 이야기가 더 의미심장하게 읽힙니다. 안톤 허 번역가가 이 이야기 속에 등장했더라면 한판 큰 논쟁이 벌어졌겠지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Falstaff 2023-09-26 07:06   좋아요 1 | URL
옙. 저도 게시하신 글 잘 읽었습니다. ^^
이 책은, 사시라고 까지는 말 못하겠고요, 기회가 닿으면 읽어보셔도 좋을 겁니다.

수이 2023-09-26 08: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번역까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언어에 사로잡혀본 이들이라면 다와다 요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체감상 좀 더 쉽게 다가올 거 같긴 해요. 저도 이 책은 읽지 않았는데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봐야겠어요. 다와다 요코는 읽기 편한 작가는 아니지만 이런 식의 글쓰기를 하는 이들이 한국에는 누가 있더라 하고 홀로 물어본 적도 있어요.

Falstaff 2023-09-26 16:20   좋아요 0 | URL
모국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작가들의 이야기는 사실 드물지 않긴 합니다만 읽을 때마다 마음이 짠한 건 어쩔 수 없더라고요. 도서관 이용하신다니 탁월한 선택입니다. 저도 이이의 다른 작품을 희망도서 신청을 해서 찾으러 오라네요. 연휴 끝나는 날에 가보려 합니다. 매력적인 작가더군요.

반유행열반인 2023-09-26 0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코 다와다 요코 선생께서 아직 전화 안 주셨나요? 도로 팔백작님이 되셨네요... 닉네임처럼 사람 처지도 요렇게 저렇게 쉽게 바뀌면 좋겠네요ㅋㅋ쉬운 게 어딨겠어...

Falstaff 2023-09-26 16:22   좋아요 1 | URL
아이고, 연락 오면 어련히 알려드릴까봐.... ㅋㅋㅋㅋ
골드문트가 매력적이긴 하지만 너무 젊은 캐릭터라서 다시 원복했습니다. 흑흑흑... 전 꼰대예요, 꼰대.

반유행열반인 2023-09-26 16:54   좋아요 1 | URL
그냥 네이버 알라딘 통틀어 꼰백작님으로 해드릴까요? ㅋㅋㅋㅋ골드에서 따서 각각 골 드(드미트리도 되니까) 금벼락 맞으시라고 칭해드렸는데 팔백작은 앞에 영어 씨 하나만 붙이면 존칭이 아니라 싸우자 주정뱅이! 느낌이네요 ㅋㅋㅋㅋ 그냥 어이 주정뱅이, 할까요? ㅋㅋㅋㅋ (기껏 묻고 아무려나 지맘대로 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