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세르게이 도블라토프 지음, 김현정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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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르게이 도블라토프, 출판사 ‘지식을만드는지식’을 통해서만 세 번째 읽는 작가인데, 연작 장편 또는 단편집 <우리들의> 안에 저번에 읽었던 <여행 가방>과 <수용소-교도관의 수기>의 내용이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어서 흥미로웠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하면, 도블라토프는 자기가 직접 경험한 것과 자기 주변의 것들을 약간 변주해서 독특한 짧은 글을 만드는데 탁월하기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아직 도블라토프가 쓴 장편은 읽어보지 못했다. 역자 해설 속에, 도블라토프가 ‘소비에트 체호프’라고 불릴 정도의 단편 작가이며, 평이하면서도 세련된 문체는 푸시킨의 언어 전통을 이어받았단다. 러시아 언어를 사용한 작가로 체호프와 푸시킨의 적자라는 평을 받았으면 나름대로 최고의 상찬을 받았다고 인정할 수 있다. 나는 소비에트 체호프는 모르겠고, “평이하면서도 세련된” 문장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이게 말로 하기는 쉬워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 작가에나 적용할 수 있는 말도 아니다. 왜냐하면 수평선을 긋고 한쪽 끄트머리에 “평이하다”를 써 놓으면 다른 쪽 끄트머리에 어울릴 수 있는 단어가 또한 “세련되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평이하면서도 세련된 문장이 가능한 겨? 가능하다. 증거가 바로 세르게이 도블라토프다.

  “평이하면서도 세련된” 문장을 즐기려면 <우리들의>를 읽어라? 아니, 내가 읽은 도블라토프 세 권이 다 그렇다. 그러니까 제일 앞서 <여행 가방>을 읽었고, 인상이 깊어 <수용소-교도관의 수기>도 사서 읽었으며, 이제 또 <우리들의>까지 달달 긁은 거다.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된 책 가운데 이제 <외국 여자> 한 권 남았는데 그것도 얼른 읽어야겠다.


​  <우리들의>는 세르게이 도블라토프의 가족 이야기다. 제일 먼저 할아버지가 나오고 두 번째로 외할아버지, 세번째는 외삼촌 등등. 물론 진짜 이야기를 밑바탕으로 세부적으로 약간씩 변형을 해서 픽션으로 만들었는데, 픽션이 됐든 논픽션이 됐든, 작가가 직접 경험했고, 적어도 어릴 적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귀에 딱지가 앉게 들어 충분히 체화된 것이라, 특유의 “평이하고 세련된” 문장으로 툭, 툭 이야기를 던지는 방식이 더없이 매력적이다. 모두 열세 편의 짧은 이야기로 구성한 얇은 책자로 하루, 특히 요즘 같이 더위가 극성을 떠는 시절에 읽기로는 아주 맞춤이다.

  열세 편의 이야기를 다 할 수는 없고, 할아버지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도블라토프의 내력을 조금 알아두는 것이 좋다.

  이 책에서도 실명으로 등장하는 아버지 도나트 메치크는 유대계 연극 연출가로 아르메니아 태생의 그루지야 연극배우, 역시 실명 등장하는, 노라 도블라토바 사이에서 태어난다. 부부는 몇 년 살지 못하고 이혼을 해서, 엄마가 세 살 난 세르게이와 평생을 함께 하는 바람에 아버지 성이 아닌 엄마 성을 따라 ‘도블라토프’라는 성을 갖는다. 레닌대학에 다니다가 퇴학을 당하는 김에 입대를 했는데 수용소 간수 생활을 했고, 당시의 경험을 살려 쓴 작품이 <수용소-교도관의 수기>다. 제대한 후엔 잡지사 일을 하면서 작품활동을 한다. 이이의 책을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이런 글을 소비에트 체제가 허용할 일이 없어서, 몇 작품을 서유럽으로 빼돌리고, 거기서 출간이 된다. 이후 곧바로 실직을 하고, 그래도 그나마 좋은 세월을 만나, 스탈린 시절이었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재판도 안 받고 죽었을 테지만, 며칠 감방 생활을 시키더니 이민을 가는 것을 전제로 풀려난다. 그리하여 먼저 엄마가 가 있는 오스트리아 빈을 거쳐 두번째 아내와 딸이 살고 있는 미국으로 건너간다. 이때의 경험, 규정상 짐은 여행가방 세 개를 넘지 않아야 한다고 해, 촌스러운 여행 가방을 챙기는 것이 또 <여행 가방>이다.

  위에 쓴 도블라도프의 간략한 반평생까지 작가의 인생에 영향을 끼친 열세 명의 등장인물을 열세 편의 이야기로 모자이크 또는 스테인드글래스 유리창처럼 조합한 책이다. 그러면 할아버지 이사크 메치크.


​  이사크 메치크는 러시아에서는 법적으로 토지를 소유할 수 없는 유대인으로서는 아주 예외적으로 저 수호보에서 농사꾼으로 살던 모이세이 증조부의 아들로, 에잇, 나는 농사 안 지어, 선언을 하고 도시로 나온 가문의 첫 남자였는데, 그곳이 어딘가 하면 하얼빈이었다. 여기서 둘째 아들 도나트까지 생산을 하고 블라디보스톡으로 터를 옮긴다. 7피트, 즉 2미터가 넘는 장신에 거대한 체구를 갖고 있는 천하장사 이사크는 블라디보스톡에서 여러가지 일을 하다가 러일전쟁에 참전을 했고, 그곳에서 거대한 몸집이 차르에 눈에 띄어 무려 근위대로 전속이 되었는데, 하필 유대인이라는 주홍글씨 때문에 다시 포병대로 배치된다. 몇 년 후 제대해 집에 돌아왔을 때, 그의 손엔 3 구경 소총이 쥐어 있었고 가슴엔 게오르기 십자훈장이 달려 있었다. 작가가 말하기를 천성적으로 무질서한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 블라디보스톡 시내에서도 혁명세력이 행진을 시작하자, 혁명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모든 유대인들 가슴에 새겨진 유대인 학살에 대한 트라우마에 휩싸여, 반유대 집단이 행동을 개시한 것으로 오인해 지붕 위로 올라가 행진대열을 향해 3 구경 소총을 갈겨댄 인물이다.

  엄청난 대식가로 바케트 빵도 가로가 아닌 세로로 잘라서 먹어, 잔칫집에 갈 때마다 라야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쪽팔려 했다고 한다. 먹방을 연상시키는 이사크 할아버지의 식도락에 관해서는 내가 여기서 아무리 열심히 떠들어도 작가가 쓴 내용과 재미하고는 비교할 수 없으니 그냥 넘어가자. 하여튼 젊은 시절에 음식점을 하기도 했었는데 하필이면 옆집에 술 판매소가 생겨, 두 양반이 친구로 지내기로 하고, 음식점의 모든 음식, 술집의 모든 술을 둘이 다 퍼먹고 퍼 마셔서 없앴달 정도다.

  할아버지는 세 아들을 두었다. 첫째와 둘째, 미하일과 도나트는 예술에 끌려 블라디보스톡을 떠나 레닌그라드로 갔고, 셋째 아들 레오폴트 삼촌은, 역사적 사실로는 열세 살에 작품 속에서는, 열여덟 살에 일단 중국으로 밀항을 했다가, 이유는 모르지만 하여간 벨기에로 옮겨갔다. 두 아들을 좇아 레닌그라드로 가서 여전히 도시 최고의 천하장사요, 술꾼이요, 먹보요, 정의파 유대인으로 활약하던 할아버지한테 하루는 ‘모냐’라는 남자가 등장한다. 셋째 레오폴트가 보낸 남자다. 아들의 선물로 모자걸이 기린 인형과 턱시도 한 벌을 들고 찾아와 두 주를 보내고 갔다. 그러자 스탈린 당국은 이사크 할아버지를 벨기에의 스파이라는 혐의로 체포해 면접권 없는 10년 유형에 처해놓고 총살시켜버렸다. 20년이 흘러 조금 좋은 세월을 만나 둘째 아들이자 도블라토프의 아버지인 도나트가 다방면으로 애를 써서 할아버지는 무죄 복권이 된다.

  도블라토프는 허탈해서 묻는다. “그때는 무슨 죄가 있었던가? 뭘 위해서 말도 안 되는 우스꽝스러운 삶을 중단시켰는가?” 하여간 비극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할아버지의 삶을 작가는 반어적으로 “우스꽝스러운 삶”이었다고 말한다. 우스꽝스러운 삶이었는지, 아니면 우스꽝스러운 시절이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둘 다인지는 독자와 당시 소비에트 인민들이 판단해야 할 터.


​  재미있는 책이다. 적은 분량으로 하루를 즐겁게 지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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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게이 도블라토프, 출판사 ‘지식을만드는지식’을 통해서만 세 번째 읽는 작가인데, 연작 장편 또는 단편집 <우리들의> 안에 저번에 읽었던 <여행 가방>과 <수용소-교도관의 수기>의 내용이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어서 흥미로웠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하면, 도블라토프는 자기가 직접 경험한 것과 자기 주변의 것들을 약간 변주해서 독특한 짧은 글을 만드는데 탁월하기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아직 도블라토프가 쓴 장편은 읽어보지 못했다. 역자 해설 속에, 도블라토프가 ‘소비에트 체호프’라고 불릴 정도의 단편 작가이며, 평이하면서도 세련된 문체는 푸시킨의 언어 전통을 이어받았단다. 러시아 언어를 사용한 작가로 체호프와 푸시킨의 적자라는 평을 받았으면 나름대로 최고의 상찬을 받았다고 인정할 수 있다. 나는 소비에트 체호프는 모르겠고, “평이하면서도 세련된” 문장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이게 말로 하기는 쉬워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 작가에나 적용할 수 있는 말도 아니다. 왜냐하면 수평선을 긋고 한쪽 끄트머리에 “평이하다”를 써 놓으면 다른 쪽 끄트머리에 어울릴 수 있는 단어가 또한 “세련되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평이하면서도 세련된 문장이 가능한 겨? 가능하다. 증거가 바로 세르게이 도블라토프다. “평이하면서도 세련된” 문장을 즐기려면 <우리들의>를 읽어라? 아니, 내가 읽은 도블라토프 세 권이 다 그렇다. 그러니까 제일 앞서 <여행 가방>을 읽었고, 인상이 깊어 <수용소-교도관의 수기>도 사서 읽었으며, 이제 또 <우리들의>까지 달달 긁은 거다.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된 책 가운데 이제 <외국 여자> 한 권 남았는데 그것도 얼른 읽어야겠다. ​ <우리들의>는 세르게이 도블라토프의 가족 이야기다. 제일 먼저 할아버지가 나오고 두 번째로 외할아버지, 세번째는 외삼촌 등등. 물론 진짜 이야기를 밑바탕으로 세부적으로 약간씩 변형을 해서 픽션으로 만들었는데, 픽션이 됐든 논픽션이 됐든, 작가가 직접 경험했고, 적어도 어릴 적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귀에 딱지가 앉게 들어 충분히 체화된 것이라, 특유의 “평이하고 세련된” 문장으로 툭, 툭 이야기를 던지는 방식이 더없이 매력적이다. 모두 열세 편의 짧은 이야기로 구성한 얇은 책자로 하루, 특히 요즘 같이 더위가 극성을 떠는 시절에 읽기로는 아주 맞춤이다. 열세 편의 이야기를 다 할 수는 없고, 할아버지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도블라토프의 내력을 조금 알아두는 것이 좋다. 이 책에서도 실명으로 등장하는 아버지 도나트 메치크는 유대계 연극 연출가로 아르메니아 태생의 그루지야 연극배우, 역시 실명 등장하는, 노라 도블라토바 사이에서 태어난다. 부부는 몇 년 살지 못하고 이혼을 해서, 엄마가 세 살 난 세르게이와 평생을 함께 하는 바람에 아버지 성이 아닌 엄마 성을 따라 ‘도블라토프’라는 성을 갖는다. 레닌대학에 다니다가 퇴학을 당하는 김에 입대를 했는데 수용소 간수 생활을 했고, 당시의 경험을 살려 쓴 작품이 <수용소-교도관의 수기>다. 제대한 후엔 잡지사 일을 하면서 작품활동을 한다. 이이의 책을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이런 글을 소비에트 체제가 허용할 일이 없어서, 몇 작품을 서유럽으로 빼돌리고, 거기서 출간이 된다. 이후 곧바로 실직을 하고, 그래도 그나마 좋은 세월을 만나, 스탈린 시절이었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재판도 안 받고 죽었을 테지만, 며칠 감방 생활을 시키더니 이민을 가는 것을 전제로 풀려난다. 그리하여 먼저 엄마가 가 있는 오스트리아 빈을 거쳐 두번째 아내와 딸이 살고 있는 미국으로 건너간다. 이때의 경험, 규정상 짐은 여행가방 세 개를 넘지 않아야 한다고 해, 촌스러운 여행 가방을 챙기는 것이 또 <여행 가방>이다. 위에 쓴 도블라도프의 간략한 반평생까지 작가의 인생에 영향을 끼친 열세 명의 등장인물을 열세 편의 이야기로 모자이크 또는 스테인드글래스 유리창처럼 조합한 책이다. 그러면 할아버지 이사크 메치크. ​ 이사크 메치크는 러시아에서는 법적으로 토지를 소유할 수 없는 유대인으로서는 아주 예외적으로 저 수호보에서 농사꾼으로 살던 모이세이 증조부의 아들로, 에잇, 나는 농사 안 지어, 선언을 하고 도시로 나온 가문의 첫 남자였는데, 그곳이 어딘가 하면 하얼빈이었다. 여기서 둘째 아들 도나트까지 생산을 하고 블라디보스톡으로 터를 옮긴다. 7피트, 즉 2미터가 넘는 장신에 거대한 체구를 갖고 있는 천하장사 이사크는 블라디보스톡에서 여러가지 일을 하다가 러일전쟁에 참전을 했고, 그곳에서 거대한 몸집이 차르에 눈에 띄어 무려 근위대로 전속이 되었는데, 하필 유대인이라는 주홍글씨 때문에 다시 포병대로 배치된다. 몇 년 후 제대해 집에 돌아왔을 때, 그의 손엔 3 구경 소총이 쥐어 있었고 가슴엔 게오르기 십자훈장이 달려 있었다. 작가가 말하기를 천성적으로 무질서한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 블라디보스톡 시내에서도 혁명세력이 행진을 시작하자, 혁명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모든 유대인들 가슴에 새겨진 유대인 학살에 대한 트라우마에 휩싸여, 반유대 집단이 행동을 개시한 것으로 오인해 지붕 위로 올라가 행진대열을 향해 3 구경 소총을 갈겨댄 인물이다. 엄청난 대식가로 바케트 빵도 가로가 아닌 세로로 잘라서 먹어, 잔칫집에 갈 때마다 라야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쪽팔려 했다고 한다. 먹방을 연상시키는 이사크 할아버지의 식도락에 관해서는 내가 여기서 아무리 열심히 떠들어도 작가가 쓴 내용과 재미하고는 비교할 수 없으니 그냥 넘어가자. 하여튼 젊은 시절에 음식점을 하기도 했었는데 하필이면 옆집에 술 판매소가 생겨, 두 양반이 친구로 지내기로 하고, 음식점의 모든 음식, 술집의 모든 술을 둘이 다 퍼먹고 퍼 마셔서 없앴달 정도다. 할아버지는 세 아들을 두었다. 첫째와 둘째, 미하일과 도나트는 예술에 끌려 블라디보스톡을 떠나 레닌그라드로 갔고, 셋째 아들 레오폴트 삼촌은, 역사적 사실로는 열세 살에 작품 속에서는, 열여덟 살에 일단 중국으로 밀항을 했다가, 이유는 모르지만 하여간 벨기에로 옮겨갔다. 두 아들을 좇아 레닌그라드로 가서 여전히 도시 최고의 천하장사요, 술꾼이요, 먹보요, 정의파 유대인으로 활약하던 할아버지한테 하루는 ‘모냐’라는 남자가 등장한다. 셋째 레오폴트가 보낸 남자다. 아들의 선물로 모자걸이 기린 인형과 턱시도 한 벌을 들고 찾아와 두 주를 보내고 갔다. 그러자 스탈린 당국은 이사크 할아버지를 벨기에의 스파이라는 혐의로 체포해 면접권 없는 10년 유형에 처해놓고 총살시켜버렸다. 20년이 흘러 조금 좋은 세월을 만나 둘째 아들이자 도블라토프의 아버지인 도나트가 다방면으로 애를 써서 할아버지는 무죄 복권이 된다. 도블라토프는 허탈해서 묻는다. “그때는 무슨 죄가 있었던가? 뭘 위해서 말도 안 되는 우스꽝스러운 삶을 중단시켰는가?” 하여간 비극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할아버지의 삶을 작가는 반어적으로 “우스꽝스러운 삶”이었다고 말한다. 우스꽝스러운 삶이었는지, 아니면 우스꽝스러운 시절이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둘 다인지는 독자와 당시 소비에트 인민들이 판단해야 할 터. ​ 재미있는 책이다. 적은 분량으로 하루를 즐겁게 지내기 좋다.또는 단편집 <우리들의> 안에 저번에 읽었던 <여행 가방>과 <수용소-교도관의 수기>의 내용이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어서 흥미로웠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하면, 도블라토프는 자기가 직접 경험한 것과 자기 주변의 것들을 약간 변주해서 독특한 짧은 글을 만드는데 탁월하기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아직 도블라토프가 쓴 장편은 읽어보지 못했다. 역자 해설 속에, 도블라토프가 ‘소비에트 체호프’라고 불릴 정도의 단편 작가이며, 평이하면서도 세련된 문체는 푸시킨의 언어 전통을 이어받았단다. 러시아 언어를 사용한 작가로 체호프와 푸시킨의 적자라는 평을 받았으면 나름대로 최고의 상찬을 받았다고 인정할 수 있다. 나는 소비에트 체호프는 모르겠고, “평이하면서도 세련된” 문장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이게 말로 하기는 쉬워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 작가에나 적용할 수 있는 말도 아니다. 왜냐하면 수평선을 긋고 한쪽 끄트머리에 “평이하다”를 써 놓으면 다른 쪽 끄트머리에 어울릴 수 있는 단어가 또한 “세련되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평이하면서도 세련된 문장이 가능한 겨? 가능하다. 증거가 바로 세르게이 도블라토프다. “평이하면서도 세련된” 문장을 즐기려면 <우리들의>를 읽어라? 아니, 내가 읽은 도블라토프 세 권이 다 그렇다. 그러니까 제일 앞서 <여행 가방>을 읽었고, 인상이 깊어 <수용소-교도관의 수기>도 사서 읽었으며, 이제 또 <우리들의>까지 달달 긁은 거다.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된 책 가운데 이제 <외국 여자> 한 권 남았는데 그것도 얼른 읽어야겠다. ​ <우리들의>는 세르게이 도블라토프의 가족 이야기다. 제일 먼저 할아버지가 나오고 두 번째로 외할아버지, 세번째는 외삼촌 등등. 물론 진짜 이야기를 밑바탕으로 세부적으로 약간씩 변형을 해서 픽션으로 만들었는데, 픽션이 됐든 논픽션이 됐든, 작가가 직접 경험했고, 적어도 어릴 적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귀에 딱지가 앉게 들어 충분히 체화된 것이라, 특유의 “평이하고 세련된” 문장으로 툭, 툭 이야기를 던지는 방식이 더없이 매력적이다. 모두 열세 편의 짧은 이야기로 구성한 얇은 책자로 하루, 특히 요즘 같이 더위가 극성을 떠는 시절에 읽기로는 아주 맞춤이다. 열세 편의 이야기를 다 할 수는 없고, 할아버지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도블라토프의 내력을 조금 알아두는 것이 좋다. 이 책에서도 실명으로 등장하는 아버지 도나트 메치크는 유대계 연극 연출가로 아르메니아 태생의 그루지야 연극배우, 역시 실명 등장하는, 노라 도블라토바 사이에서 태어난다. 부부는 몇 년 살지 못하고 이혼을 해서, 엄마가 세 살 난 세르게이와 평생을 함께 하는 바람에 아버지 성이 아닌 엄마 성을 따라 ‘도블라토프’라는 성을 갖는다. 레닌대학에 다니다가 퇴학을 당하는 김에 입대를 했는데 수용소 간수 생활을 했고, 당시의 경험을 살려 쓴 작품이 <수용소-교도관의 수기>다. 제대한 후엔 잡지사 일을 하면서 작품활동을 한다. 이이의 책을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이런 글을 소비에트 체제가 허용할 일이 없어서, 몇 작품을 서유럽으로 빼돌리고, 거기서 출간이 된다. 이후 곧바로 실직을 하고, 그래도 그나마 좋은 세월을 만나, 스탈린 시절이었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재판도 안 받고 죽었을 테지만, 며칠 감방 생활을 시키더니 이민을 가는 것을 전제로 풀려난다. 그리하여 먼저 엄마가 가 있는 오스트리아 빈을 거쳐 두번째 아내와 딸이 살고 있는 미국으로 건너간다. 이때의 경험, 규정상 짐은 여행가방 세 개를 넘지 않아야 한다고 해, 촌스러운 여행 가방을 챙기는 것이 또 <여행 가방>이다. 위에 쓴 도블라도프의 간략한 반평생까지 작가의 인생에 영향을 끼친 열세 명의 등장인물을 열세 편의 이야기로 모자이크 또는 스테인드글래스 유리창처럼 조합한 책이다. 그러면 할아버지 이사크 메치크. ​ 이사크 메치크는 러시아에서는 법적으로 토지를 소유할 수 없는 유대인으로서는 아주 예외적으로 저 수호보에서 농사꾼으로 살던 모이세이 증조부의 아들로, 에잇, 나는 농사 안 지어, 선언을 하고 도시로 나온 가문의 첫 남자였는데, 그곳이 어딘가 하면 하얼빈이었다. 여기서 둘째 아들 도나트까지 생산을 하고 블라디보스톡으로 터를 옮긴다. 7피트, 즉 2미터가 넘는 장신에 거대한 체구를 갖고 있는 천하장사 이사크는 블라디보스톡에서 여러가지 일을 하다가 러일전쟁에 참전을 했고, 그곳에서 거대한 몸집이 차르에 눈에 띄어 무려 근위대로 전속이 되었는데, 하필 유대인이라는 주홍글씨 때문에 다시 포병대로 배치된다. 몇 년 후 제대해 집에 돌아왔을 때, 그의 손엔 3 구경 소총이 쥐어 있었고 가슴엔 게오르기 십자훈장이 달려 있었다. 작가가 말하기를 천성적으로 무질서한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 블라디보스톡 시내에서도 혁명세력이 행진을 시작하자, 혁명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모든 유대인들 가슴에 새겨진 유대인 학살에 대한 트라우마에 휩싸여, 반유대 집단이 행동을 개시한 것으로 오인해 지붕 위로 올라가 행진대열을 향해 3 구경 소총을 갈겨댄 인물이다. 엄청난 대식가로 바케트 빵도 가로가 아닌 세로로 잘라서 먹어, 잔칫집에 갈 때마다 라야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쪽팔려 했다고 한다. 먹방을 연상시키는 이사크 할아버지의 식도락에 관해서는 내가 여기서 아무리 열심히 떠들어도 작가가 쓴 내용과 재미하고는 비교할 수 없으니 그냥 넘어가자. 하여튼 젊은 시절에 음식점을 하기도 했었는데 하필이면 옆집에 술 판매소가 생겨, 두 양반이 친구로 지내기로 하고, 음식점의 모든 음식, 술집의 모든 술을 둘이 다 퍼먹고 퍼 마셔서 없앴달 정도다. 할아버지는 세 아들을 두었다. 첫째와 둘째, 미하일과 도나트는 예술에 끌려 블라디보스톡을 떠나 레닌그라드로 갔고, 셋째 아들 레오폴트 삼촌은, 역사적 사실로는 열세 살에 작품 속에서는, 열여덟 살에 일단 중국으로 밀항을 했다가, 이유는 모르지만 하여간 벨기에로 옮겨갔다. 두 아들을 좇아 레닌그라드로 가서 여전히 도시 최고의 천하장사요, 술꾼이요, 먹보요, 정의파 유대인으로 활약하던 할아버지한테 하루는 ‘모냐’라는 남자가 등장한다. 셋째 레오폴트가 보낸 남자다. 아들의 선물로 모자걸이 기린 인형과 턱시도 한 벌을 들고 찾아와 두 주를 보내고 갔다. 그러자 스탈린 당국은 이사크 할아버지를 벨기에의 스파이라는 혐의로 체포해 면접권 없는 10년 유형에 처해놓고 총살시켜버렸다. 20년이 흘러 조금 좋은 세월을 만나 둘째 아들이자 도블라토프의 아버지인 도나트가 다방면으로 애를 써서 할아버지는 무죄 복권이 된다. 도블라토프는 허탈해서 묻는다. “그때는 무슨 죄가 있었던가? 뭘 위해서 말도 안 되는 우스꽝스러운 삶을 중단시켰는가?” 하여간 비극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할아버지의 삶을 작가는 반어적으로 “우스꽝스러운 삶”이었다고 말한다. 우스꽝스러운 삶이었는지, 아니면 우스꽝스러운 시절이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둘 다인지는 독자와 당시 소비에트 인민들이 판단해야 할 터. ​ 재미있는 책이다. 적은 분량으로 하루를 즐겁게 지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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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08-24 08: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트 님 아래에 똑같은 내용 중복됩니다. 한글이나 워드에 쓰고 붙여넣기 하신 거 같은데 같은 내용 중복요! “재미있는 책이다~즐겁게 지내기 좋다” 이 문장 아래 리뷰 다시 시작! ㅋㅋㅋ

Falstaff 2023-08-24 09:24   좋아요 1 | URL
넵! ㅋㅋㅋㅋ 글 올릴 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서재 글로 읽으면 괜찮지 않은가요? 북플에서만 줄줄이 ㅋㅋㅋㅋ
이게 수정이 안 되더랍니다. 에러 나오는 거 알고 수정했더니 한 번 더 똑같은 글이 추가, 다시 수정했더니 같은 글 두 번 추가. 끝이 없더라고요.
전체를 지웠다가 다시 쓰면 괜찮지 않을까 싶지만 그렇게 정성을 들일 필요는 없을 거 같아서, 에라, 하고 냅뒀습니다. ㅋㅋㅋㅋ
알라딘이 책 가게지 포털이 아니라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해버렸습니다. ㅎㅎㅎ

잠자냥 2023-08-24 11:24   좋아요 1 | URL
아하, 네 컴퓨터로 보니까 멀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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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는 작년 10월부터 1년을 두고 읽기로 작정을 했었다. 이제 1년 기한이 점점 가까이 와 8월에는 5권을 읽어야 10월까지 끝을 볼 수 있겠구나, 작심을 하고, 하필이면 염천지옥 지구 기상관측 역사상 가장 더운 8월의 여름에 손을 대 혀를 빼물고 헉헉대며 읽다 말다, 일 주일이 걸려 한 권을 읽을 수 있었다. 그것도 내가 재미있어 하지 않는 그리스도교 역사는 퉁쳐서 빼먹고 읽어도 그랬다.

  <로마제국 쇠망사>는 4권에 이르러 서로마제국의 황제 통치는 완전히 결딴이 났고, 겨우 교황청에 의한 정신적 지배, 물론 아무리 교회라도 그들이 다스리는 병력이야 없지는 않았더라도, 동고트족을 필두로 이탈리아 영토를 완전 정복한 이방인들도 당시엔 철저하게 기독교를 믿었기 때문에, 교황청을 멸망시키면 침략군이 죽은 다음에 불지옥에 떨어질까봐 어마 뜨거라, 오히려 로마 제국보다 더 열성으로 교황, 추기경, 대주교, 주교 등을 향해 “아빠”라고 부르면서 그들을 보호해주었다.

  이로써 로마 제국은 온전히 동로마제국만 남았고, 비록 이들이 이미 힘 빠지고, 이도 빠지고, 무릎뼈 녹작지근해졌다 하더라도 썩어도 준치, 부자집 망해도 삼 년 가는 것처럼, 겉으로는 여전히 페르시아와 전쟁을 벌이고, 북아프리카, 그리스를 넘어 마케도니아, 헝가리, 불가리아 지역, 동으로는 예루살렘까지 영토를 확장시켰는데, 이런 것들도 이미 4권에서 다 거덜이 나버린다.


​  5권으로 넘어오면 동로마제국에서는 아무런 영광이 없다. 북쪽 야만인들인 프랑크 족엔 샤를마뉴라는 위대한 왕이 장딴지에 힘을 잔뜩 주고 있고, 독일 지역엔 또 오토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칭하고, 아라비아인들은 동로마의 동쪽부터 시작해 예루살렘까지 싹 깔고 앉아 있으며, 남쪽으론 사라센 무슬림들이 기껏 정복해 놓은 북아프리카를 땅 한 점 남겨두지 않고 완전히 먹어 치운 것으로도 모자라, 서고트족이 정복해 함포고복하며 살고 있던 이베리아 반도까지 싹 쓸어버렸던 거다.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저 오래 전 테세우스가 아리아드네의 도움을 받아 미노스의 미궁에 살고 있던 괴수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크레타 섬과 부속도서까지 몽땅 회교도들이 점령을 해버렸다는 거 아닌가 말이지. 이것만 해도 헛김 빠지는데, 바로 코 밑에선 투르크 족이 만만치 않게 알통을 키우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이런 일들이 한꺼번에 발생하지는 않았다. 몇 백 년에 걸쳐 이합집산을 거듭해서 끊임없이 동로마제국을 괴롭히기도 하고, 나중에 비잔티움으로 축소된 이후엔 그까짓 것, 가깝지도 않고 큰 땅도 아닌데 건물이 세련되고 보화가 좀 있다고 거기까지 귀찮아서 원정을 어떻게 가니? 하고 일부 포기할 때까지 이 이민족들은 동로마와 좋았다 나빴다 하는 관계를 유지하면서 가끔은 자기들끼리 박 터지게 싸우기도 했다. 다 그런 것이지 뭐. 국가 간의 일이나 사람 사이의 일이나 다 그게 그거다.

  그러니 아무리 글 좋은 에드워드 기번이 <로마제국 쇠망사>를 썼다고 하더라도 위대한 영웅이나 황제가 나타나 단기필마에 장창을 옆구리에 끼고 적진을 향해 눈썹을 휘날리며 돌진하는 장면이 1도 없으면서도 길고 길어서 6백 쪽이 넘어가는 시대를 서술하기도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기번은 5권에 들어와 어떤 의미에서는 로마 “제국”에 대하여 쓰는 것보다 더한 열정을 당시 발호하기 시작하여 후대에 유럽과 서아시아, 북아프리카에서 국가를 형성할 조상들의 움직임 포착에 쏟지 않았는가 싶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저 먼 동아시아의 독자는, 하도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읽을 때는 그럴 듯하지만 읽고 나서 불과 5분도 지나지 않아 그들의 호적관계가 왕창 얽혀버리는 경험을 할 수밖에 없다. 아닌 사람들은 거의 틀림없이, 100퍼센트 아니다, 그래서 거의 틀림없이, 라고 말하는 바, 그냥 재미있는 소설책 읽듯이 휙, 일독을 하고 지나갔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식으로 공부를 하고 싶으면 옆에 공책이나 메모지를 두고, 볼펜 또는 만년필을 꼬나잡고, 프랑크, 독일, 헝가리, 불가리아, 투르크, 아라비아, 사라센, 노르만, 러시아와 기타등등, 기타등등의 내력, 종교와 개종과 혼인관계를 메모하면서 읽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메모에 그치지 말고 책을 읽은 후에 내용을 기억하며 메모 내용을 달달 외워야, 하나? 아이고, 난 그런 거 못한다.


  어쨌든 <로마제국 쇠망사 5>를 읽었다. 이제 마지막 6권 남았다. 로마는 커도 너무 크다. 부잣집 망하는 데 3년 걸리는 건 아는데, 참 나, 망하는데도 이렇게 복잡하게 망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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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8-22 08: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제 마지막 6권!! 힘내라 힘!!! ^^
로마제국정도면 망하는데도 3년 정도가지고는 안되죠. 역시 부자집이 좋은거 같아요. 우리 같은 사람은 망하려면 한방에 훅이잖아요. ㅠ.ㅠ

Falstaff 2023-08-22 15:52   좋아요 1 | URL
한권 남았는데 6권도 5권처럼 사실 이미 다 망가진 집구석, 아마 콘스탄티노플 함락 만 남았을 거 같습니다.
ㅋㅋㅋ 전 한 방에 훅 망한 경험이 있어서 말입죠.

stella.K 2023-08-22 10: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반칙입니다, 반칙! 기독교사를 통으로 빼시다뇨.ㅠ ㅋㅋ 하긴 올여름은 증말! 근데 그런 벽돌책을 일주만에 독파하시다닛! 👍 오늘부터 숨 좀 쉴 것 같네요. 앞으로 점점 더 책읽기 좋은 날이 오겠죠? 완독을 응원합니다.^^

Falstaff 2023-08-22 15:57   좋아요 2 | URL
교회사는 교회의 역사, 즉 성직 가진 ˝사람˝들을 중심으로 기술할 수 밖에 없는데요, 그들도 결국 사람이어서 온갖 지저분한 이야기가 흘러 넘칩니다. 절대 아름답지 않습니다. 기독교를 위하여 안 읽었습니다. ㅎㅎㅎ
우리나라 교회사도 마찬가집니다.

그레이스 2023-08-22 10: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염천지옥 무더위에 쇠망사를 읽다!
^^;;
워낙 다민족 다문화에 로마제국에 욕망을 연결시킨 인간들이 많으니 망하는것도 복잡하고 오래걸리겠죠^^
당대 서민들은 로마가 망했는지도 모르지 않았을까 싶네요.
역사가들의 진단이 어느 시점이라고 말하고 있는것이지...^^

Falstaff 2023-08-22 16:00   좋아요 1 | URL
옙. 로마 후기로 가면 속지 출신, 순종 로마 입장에선 야만인 출신 황제들도 좌르륵 등장합지요. 그리하여 신성˝로마제국˝을 참칭하기도 하고, 러시아 황제는 로마 황제보다 두 배 훌륭하고 고귀하다는 의미에서 대가리 두 개인 기형 독수리를 문장에다 넣기에 이릅니다. 어쩌면 로마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군요.
 
오렐리앵 1 창비세계문학 92
루이 아라공 지음, 이규현 옮김 / 창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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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이 아라공이라고 하면 앙드레 브르통, 필리프 수포와 더불어 프랑스의 쉬르 레알리즘, 즉 초현실주의의 대표선수로 활약하다가 공산주의자로 변신하면서 초현실주의나 다다이즘과 결별한 시인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 책을 다 읽고 연표를 보니까 참 굴곡이 많은 삶을 살다가 간 작자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탄생부터 우여곡절이었다. 1897년 10월 3일에 태어났는데 11월 3일 날짜의 세례증명서를 발급받았고, 이는 일반인들에게 출생증명서와 같은 효력을 지니는 문서로 활용되지만 특별하게 이 아이의 세례증명서에는 부모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다. 훗날 아라공 자신의 진술에 의하면 어머니는 마르그리뜨 투카스로 스물네 살이었으며 아버지는 1840년생, 그러니까 엄마보다 서른세 살이 더 많은 루이 앙드리외였단다. 제3공화국 시절의 대표적 공안검사로 1871년 리옹 코뮌 가담자들을 유혈 진압하는 등의 공을 세우는 등 잘 나가다가 1928년 선거에 지는 바람에 은퇴할 때까지 여러 번 하원의원을 지냈다고 한다. 사생아였지만 엄마가 아빠네 집의 하녀 같은 통속적인 관계는 아니었던 것 같다. 나름대로 아빠도 어린 정부와 아이한테 정성을 쏟았지만 신분도 있고 사회적 눈치도 있고, 제도도 있고 뭐 복잡한 사정 때문에 호적에 올리지는 못한 거 같다. 아라공은 엄마를 누나로, 외할머니를 엄마로, 아빠를 대부로 알고 살았다는데 뭐 이런 거 안다고 배부른 거 아니니까 그만 하자.


  <오렐리앵>은 오랜만에 창비 세계문학 시리즈로 나와 책방에서 표지를 보자마자 반가워서 도서관에 구입 신청을 해 읽은 책이다. 1권이 서문 포함해 415쪽, 2권이 작가연보 포함 474쪽, 합해서 889쪽에 이르는 장편 연애소설이다. 연애소설이 뭐라고? 몇 번을 말했듯이 결국 연인이 갈라서야 끝장을 보는 이별소설. 그리하여 책 좀 읽은 독자들은 연애소설의 플롯을 대강 눈치챌 수 있는데, 아라공은 마치 오노레 드 발자크의 발자국을 따르듯이, 결국 그거 한 번도 해보지 못하고 이별해야 하는 운명의 주인공 오렐리앵과, 덩치 크고 잘 생기고 돈 많은 오렐리앵을 사랑하면서도 엉뚱하게 못생기고 땅딸막하고 돈도 없는 어린 시인한테만 같은 침대를 허락한 후 사랑하지 않는 외팔이 남편에게 돌아가는 베레니스를 둘러싼 1920년대 초반 파리의 다양 다종한 부르주아, 인텔리겐치아-어리광쟁이들을 겁나게 섬세하고 상세하고 세밀하고 그래서 짜증날 정도로 섬세하게, 상세하게, 세밀하게 그렸다. 1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한 루이 아라공이 이 책을 쓴 시기가 2차 세계대전에까지 참전했다가 1940년 초여름에 프랑스 비시 정권이 독일에게 항복하는 바람에 소집 해제가 된 직후였다. 괴뢰 정부가 항복한 거지, 내가 항복한 거냐? 라고 주장하면서 아내 엘자와 함께 “지적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한다는데, 지적intellectual 레지스탕스가 뭐야? 아라공은 <오렐리앵>의 에필로그에서, <오엘리앵>은 프랑스가 해방된 1944년에 발간했으며(에필로그는 원래 붙어 있지 않은 것을 발간 직전에 프랑스 공산당이 레지스탕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로 결의한 이후에 써서 첨가한 것인데), 이 에필로그에서 사회변혁은 무장폭력에 의하여 가능하다고 주인공의 입을 빌어 웅변하고 있건만, 도대체 “지적 레지스탕스”가 뭐냔 말이지. 뭐 그건 그거고, 다시 책 이야기를 하자면, 이 책 두 권을 내가 희망도서 신청을 했기 때문에, 안 읽으면 시민 혈세로 구입한 책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한 글자도 빼지 않고 다 읽었지, 내가 내 돈 주고 산 거라면 얼마 읽지 않아 방바닥에 휙 던져버렸거나, 헌책방에 내다 팔아 빵 사먹었을 거 같다. 빵 아니고 쐬주라고? 두 권 팔면 완전 새 거니까 한 5천원 안 주나? 집 앞 홈플러스 가서 쐬주 5천원어치, 세 병 사와 앉은 자리에서 꼴랑 다 마셔버리면, 죽는다, 죽어. 나도 죽기는 싫어서 빵 사먹었을 거 같다.

  1921년말, 우리의 오렐리앵 뢰르띠유아가 여주인공 베레니스를 처음 본다. 보자마자 처음 들었던 생각이, 못 생겼군, 이었다. 옷감에 일가견이 있는 청년 백수이자 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이며 예비역 중위인 오렐리앵이라면 전혀 감안해보지도 않았을 옷감으로 지은 드레스 위에 윤기 없고 지저분한 머리칼이 부스스한 베레니스에게 오직 하나 고상한 것은 동방의 공주를 연상시키는 “베레니스”라는 이름 하나였다. 오렐리앵에 관하여 말씀드리자면, 1911년에 장교로 입대를 해서 3년 복무 끝에 제대 요건을 갖춘 1914년 여름, 하필이면 큰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별의 별 전투에 다 참전하다가 동방군의 일원으로 테살로니키에 갔다가 총알이나 파편에 맞는 대신 말라리아에 걸려 프랑스로 복귀해 결국 제대에 성공한 인물이다. 무려 8년 동안 장교로 복무한 결과 제대로 사랑을 해보지도 않은 건 당연하고, 심성마저 성실하지 않았고, 하느님의 도움을 받지 못해 전사하는 데도 실패한, 서른두 살의 다 큰 아이였다. 온전히 자기 자신을 존중하지도 못하고 어른으로 생각할 수도 없었는데, 이건 다 전쟁을 극복하지 못해서 생활의 리듬을 되찾는데 실패했기 때문인 것처럼 보였다. 외모는 출중했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고 한참 뒤에야 깨닫는 듯한 둔한 머리로 살아가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백수.

  사이가 아주 나빴지만 끝까지 헤어지지는 않은 돈 깨나 있는 부모가 어느 날 날을 잡아 한꺼번에 사고로 세상을 접는 바람에 시집간 누나 아르망딘 드브레스뜨는 아버지가 운영하고 있던 공장을 물려받고, 오렐리앵 뢰르띠유아는 유능한 소작인들이 경작하고 있는 생주네의 토지를 차지한다. 이렇게 해서 오렐리앵은 파리 생루이 섬의 방 두 개짜리 아파트와 5마력을 내는 작은 승용차, 3천 프랑의 연금을 확보하고, 남은 인생을 오직 이 연금의 범위 안에서 소비하며 끝내 백수의 위신을 지킬 것임을 굳게 맹세한다. 밤이면 밤마다 요즘말로 클럽에 가서 술 마시고, 춤추고, 젊은 시인, 기자, 화가 얼치기들과 쓸데없는 잡담으로 소일하는데 전력을 다 한다. 오렐리앵 뢰르띠유아의 허랑방탕이 얼마나 지겹게, 유치하게, 눈꼴 시게 계속되는지 나는 막 미칠 거 같았다. 아오, 평균보다 큰 키, 미간이 이어질 정도로 두껍고 검은 눈썹에 큰 이목구비와 근사한 콧수염이면 다냐고. 나는 이렇게 노동할 필요 없는 돈지랄 전공자들”만” 나오는 소설을 정말 싫어하거든.

  이이의 군대 친구 가운데 군의관 보조였던 에드몽 바르뱅딴이 있다. 사기꾼이고 바람둥이. 그 시절 (쁘띠)부르주아들이 다 그랬듯이 혼외정사 전문가라서, 제대 후 택시업계와 부동산 업계의 거물 께넬 씨의 정부 까를로따를 께넬 씨가 쓰는 침대 위에서 만나다가 결국 께넬 씨의 딸 블량셰뜨도 자빠뜨려 께넬 영감의 사위 신분으로 1차 세계대전에 참가한 인물이다. 전쟁 중에 께넬 씨가 죽자 에드몽은 대박이 나버렸다. 택시는 물론이고 부동산에 이어 각종 사업을 이어받아 진짜 부르주아 계급으로 티고 올라갔다. 그래도 알량하긴 하지만 고정수입이 있는 오렐리앵과의 유대는 끊어버리지 않았다. 에드몽의 고향이 남쪽 R시. 여기 그의 사촌이 있어 두 주 정도를 기약하고 파리를 방문했고, 당시에 여성 고객 혼자라면 호텔에서 받아주지도 않던 시절이라 사촌 베레니스는 에드몽의 집에서 머물렀으며, 이렇게 해서 자연스레 오렐리앵의 눈에 베레니스가 들어왔지만 첫 눈에 든 생각이 “못 생겼다.” 였다는 것.

  그런데 그건 처음에 그랬다는 말이고, 작품을 읽어나가면 조금씩, 아주 조금씩 오렐리앵이 베레니스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고, 좋은 감정은 어, 이거 사랑이야? 라는 생각도 들다가, 사랑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사랑을 하고 있다고 오해하는 남자들이 흔히 그렇듯이 손목 한 번 잡아봤으면, 으로 진행하게 되며 모든 것이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은 그에게는 베레니스의 손목이나 허리가 아니라, 오렐리앵의 집에 들른 베레니스가 실수해서 깨뜨린 데스마스크, “센 강에서 자살해 시체 공시소에 있던 여인의 얼굴을 석회로 뜬 데스마스크”를 보상하기 위하여 멀쩡하게 살아있는 베레디스의 데스마스크를 얻게 되며, 척 보니까 덜 떨어졌지만 입만 까진 화가가 그린 베레디스의 초상화를, 연금 3천 프랑의 수입밖에 안 되는 주제에 한 방에 5천 프랑을 주고 구입하는 등, 단박에 베레디스한테 훅, 가버리게 된다. 그래, 그게 사랑이지. 이때부터 오렐리앵은 미치기 시작한다. 아마 첫사랑인 듯. 다들 해보셨지, 첫사랑? 2권에 가서 베레디스가 오렐리앵을 떠난 후에, 20년이 흐른 다음에도 완전히 정리가 되지 않은 흉터로 남은 상태를 루이 아라공이 잘 표현하고 있는 바, 딱 그거 하나가 이 책을 읽고 얻을 수 있는 거라고 하면, 내가 너무 야박할 듯. 하여간 뭐 그렇다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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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3-08-18 06:5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 예정 삽질 :
화요일, 에드워드 기번 <로마제국 쇠망사 5>
목요일, 세르게이 도블라토프 <우리들의>
금요일, 마르그리뜨 뒤라스 <평온한 삶>

잠자냥 2023-08-18 09:05   좋아요 2 | URL
삽 좀 제공해드리고 싶습니다만. ㅋㅋㅋㅋㅋ

Falstaff 2023-08-18 10:27   좋아요 1 | URL
그냥 주시면 됩니다. 얼른 받겠습니다. ㅋㅋㅋ

stella.K 2023-08-18 1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캬~ 국민의 혈세를 생각해서 끝까지 읽으시는 그 성실함 존경합니다. 저도 요즘 저에겐 재미드럽게 없는 옥타비어 버틀러의 소설을 읽고있는데 옛날 같으면 던져버렸을텐데 문트님 생각해서 그냥 끝까지 읽어보려고요. 제가 그동안 하도 불성실하게 읽어서요.ㅋ
책이 오렌지색이고 예쁘게 생겼는데 말입죠. 음ᆢ

Falstaff 2023-08-18 15:57   좋아요 1 | URL
ㅋㅋㅋ 보통이지요 뭘.
그건 그거고.... 버틀러, 재미 읎나요? 다음 번 읽으려고 골라놨는데 생각해봐야겠군요.
고맙습니다!
 
마라 / 사드 박준용 번역 희곡선
페터 바이스 지음, 박준용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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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여태 페터 바이스가 유대계 독일인, 동독, 즉 독일 민주공화국 사람인 줄 알았다. 그의 작품은 <저항의 미학>, <소송: 새로운 소송>, 그리고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이렇게 셋을 읽었는데도. 어디쯤에서 기억이 헝클어졌거나 없는 사실을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을 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렇다. 뭐든지 확신하면 안 되는 거.

  <마라/사드>의 원래 제목은 <사드 후작의 연출로 샤랑통 수용소의 연극단에 의해 상연된 장 폴 마라의 박해와 살해>로 페터 바이스가 브레히트한테 자극을 받아 쓴 작품이며, 세계 극작계에 페터 바이스라는 이름을 각인시킨 대표작이라고, 책의 뒷 해설이 아니라 네이버 지식백과에 나와 있다.

  나는 항상 이 작품의 주인공인 마라하고 당통을 헷갈리는데, 혁명 당시 같은 산악파로 거대한 체구의 당통이 비교적 온건한 정책을 주장한 반면, 오랜 도피생활로 얻은 피부병 때문에 늘 빌빌거리면서 목욕요법에 기대야 했던 마라가 강경파였던 걸로 알고 있는 바, 이게 수시로 마라가 당통인지, 당통이 마란지 왔다갔다 한다는 말씀(화가 다비드의 그림 제목이 <마라의 죽음>인지 <당통의 죽음>인지 헷갈리는 게 핵심이다). 둘이 피 터지게 다투는 와중에 매사 너무 진지했던 먹물 로베스피에르가 집권을 하다 곧바로 기요틴의 이슬로 사라지면서 유명한 공포정치의 막이 내리는 거의 동시에, 소령 부오나파르테 나폴레옹이 나타나,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중국인이 번다고, 황제의 관까지 직접 쓰는 일이 벌어지게 만든 것이 프랑스 혁명이지 아마? 물론 말은 이렇게 한다고 내가 프랑스 혁명을 우습게 아는 건 절대로, 절대로 아니다. 말을 조금 재미있게 하자는 것이었지, 인권과 평등을 주창한 혁명 정신을 어떻게 폄하하겠는가?

  마라와 당통, 로베스피에르가 활약하던 1790년대 초반에도 사회주의 사상이 있었을까 궁금하다. 이 책 <마라/사드>를 읽어보면 특히 마라의 생각으로 분명하게 사회주의 사상이 드러난다. 원시적인 사상은 있었겠지만 작중 마라의 주장이, 공산주의자인 극작가 페터 바이스의 생각인지 아니면 바이스가 마라의 저작이나 남긴 기록을 검토하여 발췌해 사용한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뭐 아무려면 어떤가. 독자야 읽으면 그뿐인 것을. 극 중에서 마라는 완벽한 혁명가로, 혁명을 통해 세상을 바꾸어 버리려고 하는 반면에, 사드는 원래 그의 성향대로 허무주의자 또는 허망ist, 현실과 이의 개선을 근본부터 우습게 여기는 인간이다.

  마라와 사드가 만난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사드 역시 혁명 후에 국민회의 대표도 하고 법관으로 잠깐 활동한 전력이 있으니까. 지금 독후감을 쓰기 위해 역자 해설을 슬쩍 뒤져보니까, 직접 만난 적은 없었다고 한다.

  하여튼 작품은 긴 원래 제목에서 보듯이, 중죄인이나 정신이상자를 모아 놓은 샤랑통 수용소에서 본인이 극작가이기도 했던 사드가 희곡을 쓰고, 수용소에 수감된 사람들이 연극단을 만들어, 사드가 직접 연출을 해 공연을 한다는 내용이다. 다만 사드의 극작품 말고, 연극을 공연한 광경을 다시 재현한 희곡이라서, 정신병원 원장 콜미에가 연극에 개입해 특정 내용은 무대에 올리면 안 될 것이라고 참견하기도 하고, 이에 사드는 모른 척 픽, 헛웃음을 흘리기도 한다. 연극은 1808년에 막이 올랐다고 설정이 되어 있어서 진짜로 마라가 샤를로테 코르데의 칼에 맞아 죽고 15년의 세월이 흐른 다음이다.

  내용이야 다들 아실 터이니 구체적인 건 생략하기로 한다. 마라를 세 번 찾아간 코르데가 드디어 목욕중인 그를 만나서 다비드의 그림처럼 칼로 폭, 가슴을 찔러 죽인 사건을 다루었다. 그러나 바이스의 진짜 목적은 마라의 혁명 정신과 사드의 허무주의를 비교하는 것이었을 터이다. 여기에서 하나 의문이 들었으니 조금 인용해보자. 본문 75쪽이다.


​  우리는 배부른 지배 계급을 뒤집어엎어

  그들의 무기를 빼앗고

  많은 자들을 내몰았소.

  이제 그들의 자리에 대신 들어앉은 것은

  우리와 함께 횃불과 깃발을 들었던 자들이지만

  옛날이 좋았다고 믿고 있소.

  이제 모든 게 밝혀졌소.

  우리가 혁명을 위해 흘린 피를

  장사꾼과 상점 주인들이 챙긴 것이오.

  부르주아 계급

  그들은 새 지배자가 되었고

  우리는 다시

  그 발밑에 놓였을 뿐

  아무것도 얻은 게 없소.


​  말은 똑바로 하자. 혁명으로 인민/시민이 얻은 것을 장사꾼과 상점주인으로 대표하는 부르주아들이 가지고 간 것이 맞나? 혁명의 와중에 기회를 얻어 새롭게 장사꾼과 상점주인이 되고, 이 가운데 절호의 찬스를 제대로 살린 몇 명이 새로운 부르주아 계급으로 편입된 것이 아니고? 물론 마라의 주장도 틀리지 않았을 것이지만, 내 생각도 그리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에드몽 당테스가 저 절해고도 외로운 섬 위의 끔찍한 감옥에서 죽어가는 빵 동료 한 명을 잘 만나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된 것처럼 말이지. 아니면 저 조지아 촌놈 아오시프 주가시빌리가 존경해마지않는 선배님 레닌이 죽자 한 방에 권력을 쥐고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부르주아 중의 부르주아 스탈린이 된 것 마냥? 뭐 그런 거다.

  프랑스 역사에서도 마찬가지. 프랑스의 진골 귀족은 샤를마뉴 대제 시절에 동네 양아치였다가 대제와 함께 전쟁터에 나가 큰 공을 세운 건달들이었다. 이 사람들을 맨입으로 보낼 수 없으니 대제가 땅을 떼 주고 귀족 칭호를 준 것이 시작이다. 그러다가 앙리 4세 시절에 한 번 크게 회오리가 쳐서, 샤를마뉴 대제 시절의 귀족들 가운데 태반의 가문이 멸족을 당했지만 새롭게 앙리 4세를 도운 논두렁 건달들이 다시 땅을 얻어 귀족 작위를 얻고, 이들이 진짜 귀족 행세를 한다. 세월이 흘러 부오나파르테 황제가 전투에서 이길 때마다 말로만 그냥 백작이니 남작이니 해서 또 대량으로 귀족 부르주아가 생긴 거하고, 뭐가 다른 디? 그렇게 역사의 변곡마다 귀족 또는 부르주아 계급이 새롭게 갈리는 것이 이상혀? 진짜로 그려?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그렇게 어려운 근본 원인이 거의 누구나 속으로는 귀족, 부르주아를 하고 싶어 하면서도 그걸 타도하자고 주장하는 거라는 우습고도 명백한 사실을, ahime, 나도 모른 척하고 싶다.


​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내 생각이 맞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상대는 세계적인 지성을 갖고 있다고 내가 믿는 페터 바이스다. 그의 역작 <저항의 미학>을 읽어보면 얼마나 대단한 지식인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마당에 내가 함부로 바이스의 의견에 대고 뭐라 깝죽댈 수 있냐 말입니다. 그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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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작가선 3
서정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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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인. 이름만 소리내 읽어도 참. 옛 생각 나는 작가다. 학창시절 이 양반의 단편 속에 푹 빠져 산 적이 있다. 당연히 단편집 《강》. 그리고 십여 년 후 민음사에서 낸 세 권짜리 장편소설 <달궁>. <달궁>은 한 서너 번 읽은 거 같다. 하도 애정이 깊어져서 그랬던 것이 분명한데, 한 권은 넘어진 소주 병에서 흘러나온 알코올과 돼지고기 김치찌개 국물에 푹 적셔졌고, 그걸 아무 생각 없이 양지바른 베란다에 널어놓았더니 너무 바싹 말라 책 한 가운데가 쩍 갈라졌다.
  이이는 글도 무척 오래 쓴다. 오랜만에 읽는 중단편집이다. 마지막 작품 <뜬봉샘>이 2017년 발표한 것이니 이이의 나이 여든한 살이었다. 30년대 생 작가 거의 대부분이 이젠 여유작작한 은퇴생활을 하던지, 돈 좀 손에 쥔 이들은 자기 이름을 댄 문학관을 짓고 사숙을 받던지, 아니면 집구석이나 양로원 또는 요양원에서 영원의 쉼을 기다리던지 하는 것에 비하면 노익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서정인은 1962년에 『사상계』에 <후송>을 발표해 등단했다. 이 책 《귤》에서도 제일 앞에 실은 작품이다. 도대체 뭐 하나 정상적인 절차와 이유로 진행되는 법이 없었던 전후 우리나라 사회의 어긋난 톱니바퀴를 다룬 병영문학이다. 한 시절을 풍미한 수준을 넘어 신춘문예에서 크게 유행을 했던 장르가 병영 소설이었는데, 서정인의 것이 다른 작가들과 다른 건, 주인공이 사병이 아니라 장교라는 점이다. 장교라고 하더라도 도무지 뜻대로 되는 일이 없던 것은 사병과 마찬가지인 것이 첫째요, 주인공 성 중위의 병증이 이비인후과 질환인 심한 이명이라 그것이 얼마나 크게 들리는지, 얼마나 자주 들리는지, 어떤 음높이로 공명을 하는지 당시 의학 장비로는 도무지 측정할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 둘째 걸림돌이었다. 하여간 성 중위가 후송을 가기는 가는데, 서울이 아니고 저 멀고 먼 부산에 있는 육군병원으로 가게 되며, 야전 병원에서 상급 야전병원, 상급에서 차 상급 병원을 거쳐 육군병원으로 갈 때마다 짜증나게 똑 같은 거부 혹은 곤란함을 받아야 했다.
  당시엔 다 그랬다. 나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것이, 동회, 요즘말로 주민센터에 가서 주민등록 등본 한 장 떼러 가는 길에도, 할아버지는 내게 백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주시면서(작은 돈 아니다. 서울에서 괜찮은 집 한 채에 백만원 할 당시였다) 창구에 있는 주민등록 담당 공무원에게, 다른 사람 눈에 띄지 않게 건네라고 이야기를 하시고는 했다. 당시엔 청사진으로 복사를 하던 60년대 후반이었는데, 그러지 않으면 그깟 주민등록 한 장 떼는데 하루는 기본이고 이틀, 사흘, 심하면 나흘, 닷새도 걸렸다. 책에 실린 <어느 날>의 경우가 이와 비슷하다. 1974년 작품인데도 직장인 김해동은 전셋집을 얻기 위해 은행에서 ‘생활안정기금’을 융자받아야 해서 본인의 주민등록 초본을 발부 받아야 했고, 이를 위하여 전입신고를 해야 했지만, 초등학생이었던 내 경우엔 이미 수차례 경험을 해본 “급행료”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그저 정해진 경로를 따라 전출신고, 전입신고와 이에 부속하는 각종 관련인, 예를 들어 통반장의 확인 인장 같은 것들을 꼬박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워낙 복잡다단한 우리나라 행정절차에서 의례 그랬듯이 김해동 선생이 아무리 신경써서 서류를 챙겼다 하더라도 꼭 한두 개씩은 빠진 것이 있는지라, 동회 전입관련 공무원은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한 사나흘 후에 다시 한 번 와 보슈.” 오라는 것도 아니고 와 보라는 거다. 될지 안 될지는 본인도 모른다는 뜻이다. 그때 가서도 빠진 서류나 인감 같은 것을 또 발견하면 다시 일 주일 정도 있다가, 왜 일 주일 씩인가 하면, 일단 관에 접수시킨 서류는 이미 공문서이니 신청자 개인이 관의 문서를 가져가 처리할 수 없기 때문에 관공서에서 관공서로 우편을 보내 저짝 관공서에 접수를 시키고, 저짝 관공서에서 처리를 한 후, 이짝 관공서로 보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지금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읽는 것만 가지고도 열이 뿔뿔 날 것이란 점은 이해를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잘 살았다. 적어도 행복지수라는 것이 있으면 지금보다는 높았을 듯했다. 다른 건 몰라도 그렇게 가진 거 없이 매사 불편하게 살면서도 시집, 장가 들어 딸 아들 관계없이 생기는 대로 낳고 살지 않았는가 말이지.
  이렇게 초기 서정인은 현실 속 삶의 이야기, 즉 리얼리즘 적 시각으로 무장한 인텔리겐치아 화법으로 눈에 보이는 족족, 물론 큰 이야기, 큰 비리나 잘못 같은 건 말고, 현상에 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이게 내가 서른 살까지 알았던 서정인이다. 즉 단편집 《강》을 읽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병역과 직장 생활 덕택에 오랜 세월 책과 가까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지런하지 않은 나는 그냥 그렇게 살았다. 세월을 죽였고, 알코올 속으로 숨었고, 좀 더 시간이 지나 결혼을 하고 아예 소도시로 박혀버렸다. 산 좋고 물 좋은 작은 도시의 작은 책방에서 눈에 띄었던 책이 저 위에서 말한 <달궁>이었다.
  <달궁>에서 나는 완전히 다른 서정인을 발견했다. 같은 사람이 어떻게 이럴 정도로 크게 변모할 수 있었는지 깜짝 놀랄 수밖에. 현실 비판적 리얼리스트 고뇌형 먹물이 이젠 상당히 앞선 포스트 모더니스트가 되어 있었던 거였다. 물론 서울대 불문과 출신 두 명의 모더니스트 최수철의 <고래뱃속에서>와 이인성의 <낯선 시간 속으로>가 이미 책방 서가에 꽂혀 있기는 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서정인이 <달궁> 같은 것을 쓸 줄은 몰랐었다. 물론 불문과 두 사람하고 영문과 서정인이 같지는 않다. 그냥 쇼크 먹었다, 하는 걸 이야기하려 했는데 좀 오버한 거 같다. 양해하시라. 아마추어 뻘짓이 다 그렇지 뭐.
  다시 이 책 《귤》으로 돌아와 보면, 서정인의 대표작을 골라 실은 것 같은데, 물론 대표 단편집 《강》의 타이틀 작품을 실을 수 없으니 그건 제외하고, 1977년에 발표한 <춘분> 다음에 실린 것이 1991년 발표작인 <해바라기>였다. 그러니 이 책을 기준으로 보면 서정인이 언제 모더니즘으로 바뀌었는지는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다는 말씀. 처음에는 1978년부터 1990년까지, 유신 말기와 미친 공화국의 말도 안 되는 독재 시절에 이이가 침묵했을 수도 있다는 허무맹랑한 생각까지 했다니까! 작가가 작품을 쓰지 않는 것도 이게 쉬운 일이 아니거늘, 혹시 저 남산이나 남영동, 아니면 이문동에 한 번 다녀온 거 아닐까 싶기도 했었으니, 그 시절을 어떻게 살아냈는지 몰라.
  1991년 작품인 <해바라기>는 광주 옆의 나주 시청 점거 사건에 가담했다는 죄목으로 체포영장이나 비슷한 종이 쪼가리 하나 없이 모처에 감금되어 몇 날 며칠을 물먹고, 전기 먹고, 두드려 맞은 기록이다. 내용이야 우울해 마지않고 절망적이며, 시대의 아픔이 새록새록하건만, 서정인은 이 모든 과정을 남도 사투리를 써가며, 사투리를 세상에 이렇게 백퍼센트 알뜰한 맛소금처럼 아낌없이 뿌려대며, 전라도 것 아니면 흉내도 내기 어려운, 하지만 경기지역을 뺀 강원, 충청, 경상, 제주, 각 지방마다 똑 같은 주장들을 하고 있기는 해도, 하여간 어렵고 어려웠던 시기의 우울한 이야기를 애써서 스스럼없이 써내려 갔다.

  그래도 내가 제일 공감하면서 읽은 작품을 고르라면 표제작인 <귤>이었다. 주인공 인우는 오래 전 고향을 떠나올 때 하도 집구석이 곤궁하여 자기 한 몸만 대처로 나갈 수 없어 당숙 아저씨한테 장리빚으로 쌀 열 섬을 얻어 일단 부모와 누나한테 배나 곯지 말라고 했었는데, 장리 빚이면 연 50% 이자가 붙나? 빚을 썼으면 얼른 갚아야 하건만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아 5년이 지나 돈이 좀 생겨 이제 고향으로 돌아온 참이었다. 인우는 오자마자 백화수복을 한 병 사 들고, 제일 먼저 뺀찌로 이마빡을 쥐어 뜯어도 피 한 방울 흐를 것 같지 않은 당숙에게 찾아가 여차저차 했으니 5년이면 갚아야 할 쌀 섬이 일흔다섯 섬이지만 3부만 쳐서 서른일곱 섬만 받으라고 제의를 한다. 그동안 인우의 부모는 다 돌아가고, 인우는 부모 운명은커녕 탈상치례로 하지 못해 죄가 많은데, 당숙은, 그 빚은 절름발이 이발사에게 시집을 간 누나가 다 갚았으니 일 없다고 한다. 인우는 얼마나 황당했을까. 부모 돌아간 거야 어쩔 수 없으나, 절름발이 이발사가 돈을 벌면 얼마나 번다고 처자식 먹여 살리고, 처가에서 빚진 쌀 섬까지 모두 갚았다고 생각하니 그래도 1970년대의 사나이라고 속이 무너지지 않았겠느냐는 말이지. 이런 상태에서 당숙의 둘째 아들, 동네에선 망나니라 소문이 났지만 그래도 재종 형제들하고는 은근한 정이 없지 않았던 동석과 작은 읍내에서 우연히 만났고, 그러나 당숙네와 관계한 서운함은 기어이 주먹다짐을 벌이지 않을 수 없었는데, 더 이상 말을 보태는 것은 과해도 너무 과한 스포일러라서, 안 알려줌.


  재미있다. “재미있다”는 말로 부족하다. 좋은 책이다. 한 시절을 풍미했던 장인의 빼어난 작품들만 골라 한 권을 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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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8-15 10: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름만 아는 작가의 책 이야기 즐겁게 읽었습니다.

Falstaff 2023-08-15 10:40   좋아요 1 | URL
ㅎㅎㅎ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