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지키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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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왜 예술일까? 밤이 새기도 전에 제일 사랑하는 동무를 세 번 배반한 늙은이의 모습은 어땠을까? 십자가 형을 받고 죽어 이제 내려와 엄마의 무릎에 뉘었어도 성 아드님은 해부학 적 예외가 가능했을까? 예술 표현의 디테일이 이 작품에서 제일 매력적이라고 나는 읽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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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치어 옴짝달싹 못한다. 벌써 이게 몇 년 째야. 1차로 오늘 버릴 책. 일주일에 한 번씩 여름까지만 내다 버리면 될 거 같은데... 에휴.



폴린 레아주의 <O 이야기>가 끌린다고요? 흐흐흐 

저는 남정현의 <분지>가 제일 아깝습니다. <우리동네 아이들>과 <제노의 의식>은 직역이었으면 퇴출시키지 않을 터이고요. <피에르 또는 모호함>은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비문과 오식 때문에 명작임에도 내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린 왕자>는 십대 시절부터 읽으려고, 읽으려고 했는데, 저 책 말고 한두 권 더 있을 겁니다, 그것도 눈에 띄는 대로 버릴 건데요, 도가니 쑤시고 어금니 빠질 때까지 못 읽었습니다. 결국 읽지 못하고 갈 거 같습니다.

다 이렇게 사는 것이지요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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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5-04-21 14: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디다 내다버리셨죠?! 후다닥=33

Falstaff 2025-04-21 14:16   좋아요 0 | URL
지금 버리고 왔습니다. 오늘이 재활용 수거일이거든요.

잠자냥 2025-04-21 14: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산책도 아니고 빌린책도 아니고 되판책도 아닌 오늘 내다버린 책이라는 신 분야 개척 폴스타프 ㅋㅋㅋㅋ

Falstaff 2025-04-21 14:16   좋아요 0 | URL
앗, 그런가요? ㅋㅋㅋㅋ 듣고 보니 정말 웃기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5-04-21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훑어보니...) 내다버릴 만 한 책이 종종 보이는군요. ㅋㅋㅋㅋ
<아르망스>는 절판이라 한때 구하려고 애쓰던 사람들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O 이야기>는 저는 갖고 있습죠... *에헴*

그나저나 폴님이 내다버리면 반유행열반님이 대체 어디다 내다버리느냐고 묻고서는 화라락 모조리 수거해 갈 거 같은 느낌입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5-04-21 14:18   좋아요 1 | URL
아르망스는 읽다가 복창 터질 거 같이 답답해서 말씀입죠.
열반인 댁 옥호가 통곡헌인데, 제가 거기까지 납품하기는 쉽지 않고, 쇤네 사는 누옥까지 오실 거 같지도 않으니 ㅎㅎㅎ 할 수 없지요 뭐.

잠자냥 2025-04-21 14:37   좋아요 0 | URL
아르망스 ㅋㅋㅋㅋㅋ 다시 생각해도 웃긴 넘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5-04-21 17:16   좋아요 0 | URL
이쯤에서 O 이야기 저는 영화로 봤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보다가 중단한 것 같습니다. 도무지 볼 수 없는 영화라서.....

페넬로페 2025-04-21 15: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저도 책을 왕창 정리했어요.
읽지도 않은 책이 너무 많은데 그 책들이 도서관에 다 있더라고요.
말도 안되는 가격으로 되팔고
나머지는 재활용 날짜에 맞춰 여러 차례 버렸어요. 집에는 밑줄 그은 책이 주로 남아 있는데 앞으로는 무조건 읽을 책만 한 권씩 사기로 했어요.
책에 대한 집착이 없어지는건 죽을 때가 다 되어서 그럴까요! ㅎㅎ

Falstaff 2025-04-21 15:30   좋아요 1 | URL
이제 책을 옮기고 정리하고 뭐 그럴 힘이 부족해져서 그렇지 않을까 싶기도 하더라고요. 오늘 그것 좀 했다고 에휴 허리야, 몇 번이나 곡소리가 나던지 말이죠. ㅋㅋㅋ
저는 다행스럽게 한 번도 안 열어본 책은 한 권도 없고, 끝까지 다 읽지 못한 책은 거의 없는 데요, 하여튼 못 읽은 책은 안 버립니다. 언젠가는 읽을 거다, 싶어서요.
몰로이, 페테르부르크, 말리나 뭐 이런 책들인데 끝장을 보고 말 겁니다. ㅋㅋㅋ

다락방 2025-04-21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 정리좀 해야 하는데요. 이거 보고 자극받아 책 정리 실행해보겠습니다!!

Falstaff 2025-04-21 17:31   좋아요 0 | URL
책을 버리면, 심정이 우짭니까, 그것도 다 읽고 나름대로 좋고 덜 좋고 지지고 볶은 책인 걸요. ㅋㅋㅋ 그랴 꽁치 통조림 까서 묵은지에 볶아 쐬주 한 병 낮술로 했더니 이게 또 천국이구먼요.
다락방 님도 정작 책정리 하시면 기쁘지는 않을 거 같아서.... 말입지요.

yamoo 2025-04-21 19: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오늘 80권 보냈고 다음주까지 300권 동생에게 보낼 예정입니다. 읽지 않은 책들..쌓아만 놓은 책들이 너무 많아요..

Falstaff 2025-04-21 19:31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그래도 보낼 동생이 있으니 다행입니다. 책 쌓는 건 암만봐도 욕심 같아요. 흑흑흑....

그레이스 2025-04-22 15: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리스트 흥미롭네요

Falstaff 2025-04-22 15:40   좋아요 1 | URL
ㅎㅎㅎ 얘기 듣고서 생각해보니 그럴 것 같습니다. ㅎㅎㅎㅎㅎㅎ

페크pek0501 2025-04-23 1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저절 아까워서 어떻게 버리셨습니까? 저도 몇 번 버렸으나 또 버려야 하는데 계속 미루고 있습니다. 제가 가지고 책의 4분의 1은 버려도 될 것 같아요. 다시 열어 보지 않을 것 같은 책이요. 완독한 책도 있고 완독하지 못한 책도 있어요.ㅋㅋ

Falstaff 2025-04-23 15:36   좋아요 0 | URL
그냥 짊어지고 사는 것보다는 아깝지만 정리하는 게 ㅎㅎㅎ 개인 복지 상 좀 더 좋은 선택 같더라고요. ^^

꼬마요정 2025-04-23 1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한박스 버렸습니다…. 곰팡이가 너무 많아서요. 아까운 책들도 많았는데 곰팡이 핀 책은 어떻게 안 되더군요ㅜㅜ

Falstaff 2025-04-23 19:22   좋아요 1 | URL
에구, 곰팡이는 안 됩니다. 버리기 잘 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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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일록 작전
필립 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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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목가>와 <휴먼 스테인>을 재미있게 읽고 단박에 필립 로스의 팬을 자임하고 다녔다가 <유령퇴장>에 급실망, 손절을 해? 말아? 적지 않은 세월 헤맸다. 무려 5년이나 망설이다 <우리 패거리들>을 읽고 으악, 이게 내가 알던 필립 로스 맞아? 작품 속에 간혹 경박한 면이 조금 눈에 뜨이기는 했지만 이렇게 폭력적으로 가볍게 입을, 또는 손모가지를 놀리다니 이제는 정말 가까이할 수 없군. 일단 마음먹었다가, 그래, 이번이 마지막이다 싶어 딱 한 번만 더 읽는다, 하는 마음으로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해서 읽은 책이 <샤일록 작전>이다. 내가 기억하는 유대인으로서의 필립 로스는,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것을 숨기지 않으면서,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것에 대하여 특별한 프라이드도 갖지 않는, 그러니까 유대인이라기 보다 마치 한국계 미국인, 아프리카계 미국인, 이렇듯이 그냥 유대계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보이는 수준이었다.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내가 보기에 그렇게 보였다는 거다.

  그래서 그랬는지 이 <샤일록 작전>을 읽으면서 세계 유대인 공동체에서 (어쩌면) 로스가 튀는 행동을 해 오랜 세월 유럽쪽에 머물렀던 디아스포라 유대인은 모르겠으나,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이슬람 지역에서 이슬람교도들과 함께 생활한 유대인들을 주축으로 한 시오니스트들 하고는, 아주 내놓고 그러지는 못했겠지만, 서로 앙금 비슷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물론 이 책에서도 필립 로스는 시오니즘을 내놓고 반대하지 않는다. 그럼 어떤 식?


  로스를 읽으면서 아주 예외적으로 <샤일록 작전>에서 그는 놀랍게도 포스트모던이라 할 수 있는, 그러나 이젠 벌써 클리셰가 되어버린 방식을 채택한다. 1988년 1월,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친척 앱터가 뉴욕의 필립 로스에게 전화를 해 이스라엘 라디오의 보도 내용을 알려준다. 나는 분명히 뉴욕에 있는데, 또다른 필립 로스가 예루살렘에서 폴란드의 트레블링카 절멸수용소에서 ‘공포의 이반Ivan’이라 불린 존 데미야뉴크의 전범재판을 방청하는 모습이 TV 카메라에 잡혔고, 라디오에서도 필립 로스가 재판을 방청했다고 소개했다는 거다. 이를테면 문학 작품 속에 간혹 등장하는 “또다른 나” 혹은 “페르소나”가 예루살렘의 킹 데이비드 호텔 스위트룸 511호에 묵고 있으며, 스위트룸에서 강연회를 겸한 팬들과 만나는 행사로 할 예정이라고. 정작 진짜배기 필립 로스는 책 한 권을 끝마치고 그간 쌓인 긴장을 풀 겸해서 책을 끝마치면 거의 언제나 그랬듯이 맨해튼의 방 두 개짜리 호텔 스위트룸에서 아내 클레어와 함께 거의 5개월 동안 피난민처럼 지내고 있는데 말씀이다. 웃기지? 방 두 개짜리, 맨해튼의 이름있는 호텔 스위트룸에서 5개월 동안이나 불쌍하게도 “피난민처럼” 지내고 있다니 말이지.

  이스라엘의 킹 데이비드 호텔 스위트룸 511호에서 로스 흉내를 내고 있는 미친놈의 입을 빌려, 필립 로스는 자기가 생각하기에도 너무나 이상적이기 때문에 전혀 가능성없는 이스라엘-이슬람, 그리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위한 기막힌 방안을 제시한다. 오죽했으면 나도 읽으면서 화들짝 놀랐겠느냐 말이지.

  이스라엘의 유명한 작가 아하론 아펠펠드가 뉴욕의 로스에게 전한 말에 의하면, 킹 데이비드 호텔의 필립 로스는 트레블링카 절멸수용소의 ‘공포의 이반’, 존 데미야뉴크 전범재판을 방청하기 바로 전에 폴란드 그단스크의 모처에서 레흐 바웬사를 만나, 언젠가 폴란드에서 노동 솔리다리티가 정권을 잡을 때, 폴란드 내에서 유대인들의 재정착을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고 주장했단다. 예루살렘의 로스가 주장하기를, 유럽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온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다시 자기들이 살던 유럽으로 이주하는, 역 디아스포라가 이루어지면, 이스라엘의 인구가 대폭 줄어들 것이고, 그러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국경선을 1948년 수준으로 되돌릴 수 있어서,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 역시 1948년 이전처럼 별 다툼 없이 서로 이웃으로 지낼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한다. 만일 지금처럼 미국과 이슬람 세력간의 무력충돌이 계속되면 다만 시간이 문제일 뿐이지, 두 진영 가운데 한 쪽에 의하여 원자폭탄이 날아들어 한 쪽을 거덜내 완전한 멸망의 길을 걷게 된다는 주장이다. 만일 생존자가 이스라엘이라고 하더라도, 이스라엘은 지구인이 몽땅 멸망하는 순간까지 다른 나라 국민들에게 예전 나치들과 조금도 다를 것 없는 신세로 떨어질 것이며, 전세계 유대인들도 이마에 불그죽죽하게 찍힌 낙인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이란다. 당연히 너무 순진하고, 가능성이 거의 없으며, 과하게 낭만주의적인 발상이지만, 탁 읽어보면 어찌됐던 간에 아이디어 하나는 기발하다.


  그리고 내 눈에 들어온 인물 한 명. 존 데미야뉴크. 1920년생 우크라이나인. 1940년에 소련군에 징집되어 2차 세계대전에 참전, 1942년에 독일군에 포로로 잡힌다. 북한을 비롯한 붉은 군대 소속원들은 포로로 잡히는 것을 수치로 알았고, 포로였던 병사들이 교환으로 귀국을 해도 경멸을 받았으며 심할 경우엔 범죄인처럼 집단 수용소로 끌려가기도 했다. 소련 시절의 숱한 수용소 소설 읽어보시라. 내 말이 맞다. 스물두 살의 데미야뉴크는 나치군이 유대인 수용소에서 근무할 인원을 뽑는다는 말을 듣자마자 저요, 저요, 손을 번쩍 들어 몇 군데의 절멸수용소에 들어간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데미야뉴크가 특히 트레블링카 수용소에서 공포의 이반이라는 별명으로 유대인으로 이루어진 존더코만도스Sonderkommandos를 지휘하면서 나신 상태로 가스실로 향하는 수만, 수십만 유대인들에게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갖은 악행과 고문과 폭행을 저질렀다는 거다. 천운을 타고나 수용소에서 생존한 자들이 그가 ‘공포의 이반’이라고 특정한 반면, 존 데미야뉴크, 본명 Ivan Mykolaiovyxh Demjanjuk는 무려 43년도 넘게 지나 목격자의 기억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자신이 그곳 교도관이었던 것은 맞는데 공포의 이반은 다른 교도관이었다고 주장한다. 전쟁이 끝나고 1951년에 미국으로 이민 가 포드 계열사에서 자동차 정비일을 하던 데미야뉴크는 1986년에 미국 경찰에 전범으로 체포되어 신병이 이스라엘로 넘겨진다. 이후 1988년에 첫 재판을 받는데, 이걸 예루살렘의 킹 데이비드 호텔 511호에 머무는 가짜 필립 로스가 방청을 했다는 거. 하여간 1심에서 데미야뉴크는 유죄, 사행 판결을 받지만 1993년 대법원에서 피고의 진술을 받아들여 진짜 ‘공포의 이반’은 다른 교도관이었다고 판결, 석방되어 다시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2001년에 미국 정부에 의하여 절멸 수용소에서 근무했던 것이 확실하다고 결정이 나 다시 체포되어 2005년에 이번엔 유럽, 독일이나 우크라이나 또는 폴란드로 강제송환할 것을 결정하지만 정작 독일 법정으로 보내진 것은 2009년 5월, 그의 나이 89세 때였다. 뮌헨에서 있었던 1심 결과 데미야뉴크가 2만9천 명의 유대인 학살에 관련이 있는 자라고 판결해 5년 형을 받았으나, 데미야뉴크는 이를 다시 부인해 항소했고, 독일 정부는 일단 그를 석방했다. 아무런 추가 정보가 없어서 모르겠는데 내 생각으로는 보석 아니었을까 싶다. 재판은 계속 진행되지 못하고 2013년 3월 17일이 도래해, 그는 최종판결을 받지 못하고 독일의 노인 복지 시설에서 93세의 나이로 죽었다. B급 문화의 대변인인 나무위키는 엄밀한 의미에서 데미야뉴크는 무죄인 상태로 죽었다고 썼다.

  필립 로스는 <샤일록 작전>을 1993년에 써서 세번째로 펜/포크너 상을 받았다. 펜/포크너 상을 몇 월에 주는 지 모르겠으나, 1993년은 이스라엘 대법원에서 데미야뉴크에게 무죄를 선고한 해인데, 이 책에서 로스는 데미야뉴크가 빼도 박도 못하게 ‘공포의 이반’임을 확신한다. 독일 법정에서도 2만9천 명의 살해에 관련이 되었다고 했지, 그가 공포의 이반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공포의 이반으로 고문과 학대와 폭력을 <샤일록 작전>에서 나오는 장면처럼 실제로 했다면 유대인 관련해서는 거의 무조건적, 습관적으로 엄벌에 처하는 독일 법정이 왜 5년형만 때렸을까?

  하여간 나는 좀 이상하다. 지금 데미야뉴크를 변호하는 것이 아니다. 아직 범인으로 확정하지 않은 시점에 한 인간을 뒤꿈치로 자근자근 밟고 있는 거다. 실제로 이 데미야뉴크를 이반으로 설정해서 다큐멘터리, 드라마 같은 것도 만들었다. 시청률과 박스오피스는 진실에 우선하니까.


  하나 더. 내 중딩 시절에는 확실하고, 고딩 시절에는 기억이 없는 거 보니까 그랬던 거 같은데, 독일에 의한 유대인 학살을 대표하는 작품은 안네 프랑크가 쓴 <안네의 일기>가 거의 유일했다. 확인하기 위해 스타이런의 <소피의 선택>을 검색해보니까 소설은 1979년, 영화가 1982년이다. 그럼 맞다. 내 청소년기 시절에는 홀로코스트라는 말을 알지 못했다.

  <샤일록 작전>에서 필립 로스 역시 1960년대까지 나치에 의한 유대인 멸절을 그렇게까지 강하고 비극적으로 그리지 않았다고 한다. 나처럼 <안네의 일기> 정도면 충분했다고.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 그랬겠지만 다수의 홀로코스트 작품이 있었겠지. 로스의 주장은 ‘세계인의 주목을 크게 받을 만큼’이 아니었다고 이해하면 될 듯하다. 그러다가 1967년 6일 전쟁이 벌어지고, 이스라엘이 거의 완벽하게 이슬람 세계에 승리하면서 영토를 넓히기 시작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전세계적으로 홀로코스트가 알려지기 시작했단다. 유대인은 지난 2천년 동안 차별받고 탄압받은 역사와 아울러 1938년부터 1945년까지 중동부 유럽에서 있었던 불행한 멸절 시대를, 돈과 정치력과 문화의 힘으로 세계만방에 알림으로써, 1차, 2차, 3차…n차 중동전쟁을 통한 무슬림에 대한 가혹행위를 무마하고자 했던 건 아닌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거, 나도 독후감을 통해 자주 주장했던 것인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본인 스스로가 유대인인 필립 로스의 입과 펜을 통해 나와 같은 질문을 던지니까, 비록 좋은 이야기는 아니더라도 반갑기는 했다. 반가워? 아니, 아니. 이런 비극적인 사건에 적당한 다른 단어 없을까? 하여간 눈이 번쩍 띄었다니까.

  결론을 말할 시간이다. 분량이 너무 많다. 비슷한 이야기가 자꾸 중첩되어 지루한 느낌이 든다. 특히 “또 다른 나”와 “페르소나”와의 관계가 그렇다. 그래서 별점을 준다면 셋 정도가 좋겠다고 생각이 들 즈음, 역 디아스포라를 주장하고, 중동전쟁과 홀로코스트의 유행이 터져 별 하나 추가, 넷 정도가 마땅하지 않을까. 필립 로스가 60세에 발표해 펜/포크너 상을 받은 작품이다. 괜히 내 독후감과 선입견 때문에 이이의 작품을 멀리하실 이유는 전혀 없다. 나는 말했다. 분량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루했다고. 지루한 스토리를 굳이 소개하지는 않겠다. (메모해둔 것이 아깝기는 하네.) 이것만 인용하자. 500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늙은 스파이 스마일스버가가 필립 로스에게 하는 말이다.


  “유대인 국가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우리 역사를 배반했소. 그리스도교인들이 우리에게 한 짓을 우리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했다는 뜻이오. 그들을 경멸과 예속의 대상인 ‘타자他者’로 만들어, 인간의 지위를 빼앗았소. 사실은 이것이오. 팔레스타인 민족은 전적으로 무고하며, 유대 민족은 전적으로 유죄다. 내게 있어 경악스러운 일은 소수의 부자 유대인이 PLO에 거액 기부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유대인이 자기도 기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오.

  (중략)

  언젠가 팔레스타인이 승리한다면, 그래서 여기 예루살렘에서, 예를 들면 지금 데미야뉴크 씨의 재판이 열리는 바로 그곳에서 전범재판이 열린다면, 그 재판에서 거물들뿐만 아니라 나 같은 하급 관리들도 다뤄진다면, 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비난 앞에서 나 자신을 변호할 말이 하나도 없을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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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5-04-21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필립 로스 손절했어요. <에브리맨>이 좋아서 입문했고, 몇 권 읽어봤는데, 제겐 카버가 더 맞는 듯합니다. 그래서 로스 책 모두 처분했어요..ㅎㅎ

Falstaff 2025-04-21 11:20   좋아요 0 | URL
평양 감사도 싫으면 안 하는데 까짓 소설가야 말 하면 뭐합니까, 싫으면 때려 치우는 거지요. 잘 하셨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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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일본희곡집 10 현대일본희곡집 10
한일연극교류협의회 엮음 / 연극과인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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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현대희곡은 그나마 자주 읽는 편인데 반해, 일본의 현대 희곡은 별로 기회가 없었다. 사카테 요지와 며칠 전에 읽은 마쓰다 마사타카가 언뜻 생각난다. 아주 약간 명의 작품을 더 읽었을 듯한데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어쨌거나 동아시아에서 현대 문학 장르를 제일 먼저 도입하고 당시 조선과 중국으로 전파한 문화적 선진국 일본의 작품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희망도서 신청을 해 읽었다. 책을 기다리는 중에 읽은 마쓰다 마사타카의 <바다와 양산>은 일주일 전에 독후감을 썼듯이 애초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만족스러웠다. 일본의 희곡을 너무 모르고 있었다.

  오래전에 베세토BeSeTo에 대해 들은 적 있다. 베이징Beijing, 서울Seoul, 도쿄Tokyo의 앞머리를 따서 이름을 짓고 동아시아의 연극인끼리 의기투합해 교류를 모색하고 함께 발전하자는 취지의 단체를 이루었다고. 좋은 아이디어다.

  이 단체와 별개로, 혹은 일환으로 2002년에 한일연극교류협의회를 결성해서 도쿄에서는 한국현대희곡 낭독공연을 하고, 서울에서도 현대일본희곡 낭독공연을 한 후에 희곡집을 냈다. 한국측 교류협회 회장 심재찬은 2022년에 현대일본희곡집 10편을 내면서, 2년에 한 번씩 일본 희곡 다섯 편을 실은 희곡집을 모두 다섯 번 출간하겠다고 했는데, 벌써 열 번째 책이 나와 기쁘다고 말한다. 좋은 일이다. 앞으로도 계속 건전한 교류가 이어지기 바란다.


  이 책에도 다섯 편의 희곡이 실려 있다.

  모리모토 가오루 (1912~46), <여자의 일생>

  야마우치 겐지 (1958~  ), <안경부부의 이스탄불 여행기>

  이시하라 넨 (1972~  ), <하얀 꽃을 숨기다>

  다니 겐이치 (1982~  ), <1986: 뫼비우스의 띠>

  요코야마 다쿠야 (1977~  ), <만나러 갈게, 비는 오지만>


  극작가들의 생몰연대가 다양한 편은 아니다. 일본 문예의 시기별 특징에 대하여 알지 못해서 이렇게 배치한 이유 또한 짐작하지 못하지만 70~80년대생 극작가들의 작품에 셋이나 실린 것이 눈에 확 들어오고, 같은 이유로 1910년대생 모리모토 또한 색다르다. 20, 30, 40, 60년대생은 무슨 이유로 빠졌을까? 이유가 있겠지. 특별히 그 시기에 극작의 발전이 없었던 것은 아닐 터이니. 기회가 있으면 일본 희곡을 더 읽으면서 차차 알아가면 될 터이다. 근데 도서관에서도 일본 희곡집은 찾기가 참 힘든다.


  모리모토 가오루는 시기가 시기인 만큼 서양 작가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책 속의 작가 소개를 보면 서머싯 몸과 노엘 카워드, 손톤 와일더 등이 대표적이란다. 이 가운데서도 비록 퓰리처 상을 받았을지언정 지금 시각으로 보면 새로울 것 하나 없는 와일더의 <우리 읍내>도 끼어 있다. 세월이 그런 것이지. 한 시절 각광을 받던 것이 이제는 한물간 것처럼 구석에 찌그러져야 하는 거.

  <여자의 일생> “초고는 태평양 전쟁 말기 전쟁 의식의 고취와 대동아공영권 건설을 선전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인 일본문학보국회(日本文學報國會)의 위촉작이었다.” 그러니까 전쟁은 망해가지만 그럴수록 일본의 군부와 사회는 국민들에게 더욱 참전의 의지를 불사르고 심지어 옥쇄까지 요구하기 시작할 찰나인 1943년 말경에 의뢰를 받아 1945년 패전 바로 전에 공연을 했다. 당시 모리모토의 나이 34세. 근데 징집당하지 않고 희곡을 썼다고? 그렇다. 폐결핵이 있었던 모양이다. 작품의 초고는 출판되지 않고 자필 대본만 남아 있어 훗날 간행되었고, 패전 다음 해인 1946년에 모리모토가 작품을 대폭 수정해 패전 이후의 일본 현실도 작품에 담았다. 이때 미군정의 검열을 걱정해 출판사에서 또 한 번의 삭제가 이루어졌는데, 연극이라는 장르 특성상 작품을 공연할 때마다 드라마투르그나 연출자에 의하여 대본이 수정되어, 이 책 속의 <여자의 일생>은 1946년 개정판의 번역이다.

  1막 1장은 1945년 10월. 불타버린 도쿄의 자기 집터 앞에서 망연하게 앉아 있는 주인공 케이 앞에 쓰쓰미 에이지가 나타난다. 둘은 서로 알아보지 못한다. 세월도 세월이려니와 패전 속의 필연적인 굶주림과 누추함까지 더해 기억 속의 모습을 되살릴 수 없는 거였다. 케이는 이 자리가 자기네 집이 있던 터이며, 지금 움 같은 몸 뉘일 곳을 만들어 어떻게 해서든지 숙식을 해결하는 곳이다. 이제 늙어 자신을 해꼬지하거나 훔쳐갈 것도 없는 몸이니 그거 하나는 편하게 마음먹어도 되는 신세. 에이지는 전쟁이 끝나고 갈 곳이 없어 다른 사람들처럼 그나마 식량이 있는 지방으로 가는 대신, 혹은 가기 전에 예전에 살던 쓰쓰미 가문의 집터를 한 번 둘러보고 갈 셈쳐서 와본 것이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이 오랜만에 만나고,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다가, 서로 가까이 다가가더니, 놀라서 숨이 거의 멎을 듯이, “당신… 에이지 씨?” 하는 순간 무대는 빠르게 암전된다.

  1막 2장은 1905년. 1장과 같은 쓰쓰미 일가의 집. 1905년은 일본이 러시아와 전쟁을 벌여 눈부신 승전을 올린 군국주의 일본의 전성기였다. 이때 둘째 아들 에이지가 열아홉 살. 고모네 집에서 거의 쫓겨난 케이가 쓰쓰미 집 마당에서 땅에 떨어진 빗을 주워 가지고 있다가 도둑으로 몰린 일이 있다. 가족들이 물어보니 케이의 어머니도 죽었고, 아버지는 청일전쟁에 나가 전사해서 고모네 집에 얹혀 살고 있던 거다. 군국주의 일본의 국민들은 전사한 아버지를 가진 자녀를 돌볼 줄 알아 케이는 이후 쓰쓰미 집안에 살게 되고, 청일전쟁이 동학농민전쟁 이후, 갑오경장 직전 일이니까 1894년, 이때 케이는 열댓 살 정도 되었는데, 이후 쓰쓰미 가족의 일원이 되어 당당하게 쓰쓰미 상점의 운영을 거의 전담하는 위치로 격상한다. 당연히 아들 가운데 한 명의 아내 신분으로.

  이런 이야기다. 그러면서 패전에 따른 책임 같은 것도 케이를 통해 발언하는 등 미군정의 입맛도 적당하게 맞추어 주지만 그렇다고 정략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적어도 진심의 한 자락은 깔고 있는 듯한 느낌.


  유일한 여성 극작가인 이시하라 넨의 <하얀 꽃을 숨기다>도 주목할 만하다. 아니, 이런 표현 가지고는 부족하고, 희곡을 즐기거나 즐기고 싶어하는 독자에게 꼭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NHK를 빗댄 것이 틀림없는 MHK 방송국의 의뢰로 다큐멘터리 외주업체는 일본의 전쟁책임을 재판하는, “일본군 위안부였던 여성들이 전세계에서 모여, 일본 정부와 천황을 ‘반인도적 범죄’로 심판”하는 여성들의 민중법정을 취재하기로 한다. 총 4부작 가운데 회사가 맡은 부분은 2화 여성국제전범법정, 3화 국제공청회의 소개와 전시 성폭력에 대한 생각이다. 이 이슈는 2001년 1월 30일에 실제로 NHK에서 방송한 특집 시리즈 “전쟁을 어떻게 재판하는가”에 관련한 일련의 소동이라고 각주에 설명이 나와 있다.

  결론은 버킹검. 결국 이들이 취재하고 편집한 여성국제전범법정과 전시성폭력은 무수하게 가위질을 당해 자신들이 찍어 보여주고 싶어 했던 것은 거의 나오지 않고, 보나 안 보나 마찬가지 수준의 처참한 다큐멘터리만 나온다는 것인데, 여기까지는 우리도 알고 양심적 일본인들도 아는 것이지만, 여기에, 이렇게 말하면 이것도 성차별인지 모르겠는데, 여성만 표현할 수 있거나, 여성이기 때문에 다른 성보다 훨씬 더 호소력 있고 함축성 있게 포착할 수 있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구속을 기가 막히게 드러낸다. 숱한 사람들이, 아동들이 당하고 있는 일종의 가스라이팅.

  아짱, 아짱, 엄마 사랑해? 엄마 사랑하지?

  사랑이라는 이름의 강요. 이 대사를 읽는 순간, 오조족 돋는 소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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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5-04-18 0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 독후감:
월요일. 필립 로스, <샤일록 작전>
수요일. 페터 플람, <나?>
금요일. 거페이, <산하는 잠들고>

그레이스 2025-04-18 2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가스라이팅!
폴스타프님은 정말 많은 희곡을 읽으시네요.
그리스 비극 읽으면서 그제야 좀 희곡에 적응한듯해요.

Falstaff 2025-04-18 21:33   좋아요 1 | URL
저도 처음에 적응하기 힘들었는데 점점 나아지더라고요. 희곡을 읽지 말고 연극을 보자고 그랬었는데 이젠 희곡 읽으면서 무대를 상상하는 게 재미도 있고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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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빛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58
존 밴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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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5년생이니까 우리나라로 치면 을유생 해방둥이 닭띠. 생일이 12월이라 아직 일흔아홉 살이다. 독후감을 쓰느라 위키피디아 검색을 해보니, 이이가 아일랜드 사람인 줄은 알았는데, 거기서도 웩스퍼드 출생이다. 웩스퍼드에서 아마 매년 오페라 축제가 열리지? 마이어베어의 <북극성>, 안톤 루빈스타인의 <악령> 등 자주 공연하지 않는 작품들을 무대에 올려 다양한 레퍼토리를 즐길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예전엔 실황 음반이 종종 나왔다. 아쉽게도 녹음/화면 저장 장치의 시대가 끝나 이젠 구경하기 힘들지만. 웩스퍼드가 여태 스코틀랜드에 있는 줄 알았지 뭐야. 밴빌이 거기 출신이군.

  차고 직원 마틴 밴빌 씨와 아그네스 사이의 삼남매 빈센트, 존, 베로니카 모두 작가란다.

  존은 웩스퍼드에 있는 세인트피터스 칼리지를 졸업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칼리지College는 대학이 아니라 우리나라 학제로 고등학교를 생각하면 된다. 이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젊은 시절 4년 동안 내리 술을 퍼 마시느라 연애도 하지 않은 걸 이날 이때까지 후회하며 살고 있다고. 그게 뭐 어때서. 죄도 아닌 걸. 너무 어려서부터 밝히면 뼈 삭는다, 뼈 삭아. 그렇다고 놀고먹은 건 아니고, 아일랜드 국적 항공사 에어링구스Aer Lingus에서 직원으로 일을 했는데, 직원들에게 주는 특별 할인 티켓을 이용해 그리스, 이탈리아 등을 여행하며 식견을 넓혔다고. 이후 일간지 몇 군데를 거치다가 전업작가의 길을 선택했다. 잘했다. 존 밴빌 정도의 실력이면 당연히 전업작가를 해야지.

  어디서 주워듣기를, 더블린에 있는 책방 아무데나 가도 작가 세 명의 전문 가판대가 놓였으니 첫째가 조이스요, 둘째가 트레버이고 셋째가 밴빌이라. 뭐 믿거나 말거나. 그만큼 밴빌이 아일랜드에서 성가를 드높이고 있다는 말이겠지. 나는 세 권의 밴빌을 읽었는데 전기 소설 <케플러>와 <코페르니쿠스>는 읽으면서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이 책을 골랐을까, 싶었다. 어린 시절부터 소년소녀 위인전집 같은 전기류를 무척 싫어했던 버릇이 아직도 여전하다는 것만 확인했을 뿐. 처음 읽은 밴빌 <바다>는 아직도 휴가를 맞은 가족과 주인공 소년을 둘러싼 쓸쓸한 바닷가 광경이 기억날 정도이다. 그때 역자 정영목의 번역 문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궁시렁거린 적 있다. 당시에 감히 유명 역자의 “한국어 문장을 만드는 솜씨”를 가지고 턱도 없는 불만을 터뜨리는 우를 범하기도 했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얼굴이 다 화끈하다. 5년 전만 해도 내가 참 건방졌구나. 다시 말해야겠다. 정영목의 우리말 문장은 섬세하다. 어쩌면 (이게 문제인데) 밴빌의 원문보다 더 매끄러울 수도 있겠다. 가만 읽으면서 간혹 긴 복문複文 중에서 주어와 술어가 귀찮을 정도로 헷갈리는 경우가 있었다. 당연히 <바다> 얘기가 아니라 <오래된 빛>의 경우이다. <바다>에서도 마찬가지였겠지.


  작품은 일인칭 시점으로 쓰였다. 독후감은 편의상 ‘나’ 대신 주인공 알렉산더 클리브, 알렉시라 하고 내 시점으로 쓰겠다. 알렉시는 60대 은퇴한 연극 배우이다. 어느 날 무대에 올라 갑자기 먹통 상태, 어린 시절부터 기억력이 남달라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대사가 모두 휘발해 날아가버려 연극을 왕창 말아먹은 다음부터 불러주는 극단이 없어 사실상 강제 은퇴 당했다. 이 알렉시의 삶을 지배하는 세 가지 사건이 작품의 근간이다.

  먼저 반백 년 전 알렉시의 가장 가까운 친구 빌리 그레이. 그의 어머니 실리아 그레이와 사랑에 빠진 일. 당시 알렉시는 열다섯 살, 미시즈 그레이는 서른다섯 살의 원숙한 여성이었다. 그러나 알렉시는 기억을 확신하지 않는다. 너무도 오랜 시절이라 디테일은 가물가물한 안개 비슷한 막에 싸여 있다. 언제 미시즈 그레이를 처음 보았을까? 알렉시가 열한 두 살이었던 기억의 저편에 떠오르는 그림 하나. 왜곡된 것이 분명하겠지. 어느 봄날. 봄이어야 한다. 4월. 검정 자전거를 타고 성당에 가는 여인. 성당 앞 마당가에 이르렀고, 4월의 오전이었으며, 당시 여성들의 일상 외출복이었던 넓고 펑퍼짐한 치마가 허리까지 훌렁 올라가게 무심한 봄바람이 아주 짧게 훅 불어왔는데, 자전거를 탄 어른 여자가 겨우 열살을 넘겼을까 하는 소년하고 눈이 마주치자, 입을 알파벳 O자로 만들면서 콸콸 시원한 수돗물처럼 경쾌하게 웃으며 지나치던 기억. 이제 알렉시는 이 기억을 자신하지 못한다. 4~5년 뒤의 미시즈 그레이가 목 깊은 곳에서부터 웃음을 터뜨리며 자전거 위에서 내려다보던 소탈하고 흥겹고 너그러운 알렉시의 베누스, 가정주부이면서도 베누스였다고 확정해버렸다. 풍선처럼 부풀어오른 치마를 대수롭지 않다는 듯 가라앉히던 손등의 우아함, 그리고 너그러움. 이후 알렉시가 살면서 유일하게 진정으로 뜨겁게 추구할 것들.

  4월, 프리아포스의 축일의 잔치 같은 기억. 수업이 없는 날이었고, 언제나 그랬듯이 빌리네 집에 놀러간 날. 방문이 조금 열려 있는 빌리 부모의 침실 속 부부욕실. 벌거벗은 채 목욕을 하고 있는 미시즈 그레이가 전신거울에 비친 모습이 마치 트립티콘처럼 생긴 화장대의 3면 거울에 다시 비쳐 알렉시의 망막에 첫번째 혼란과 충격으로 다다랐다. 루벤스 때문에 갖고 있던 분홍과 복숭앗빛 색조의 배반. 미시즈 그레이의 피부는 거친 입자로 되어 있었으며 탁하면서도 희미한 광택을 발했다. 곤혹스럽게도 마그네슘 색에서부터 은색과 주석색, 불투명한 노란색과 연한 황토색, 심지어 군데군데 희미한 녹색 기운도 보이고, 우묵한 곳의 이끼 같은 연보라색 그림자까지 그리 밝지 않은 다양한 색조였는데, 거의 모든 것이 화장대 거울의 중앙 패널에 담겨 있었으며 양 팔과 팔꿈치는 양쪽 가의 거울 속 광경이었다.

  질풍과 갑작스러운 비와 씻겨 나간 광대한 하늘이 있는 수채화 같던 4월, 덜덜거리던 왜건 속에서 미시즈 그레이가 가볍게 입을 맞추기 전까지 알렉시는 그저 아들의 친구, 겨울 바지에 가랑이가 쓸려 옷을 벗기고 까진 허벅지 안쪽 말랑말랑한 살 위에 텔컴 파우더를 발라주던 조무라기였을 뿐이었건만 이후 154번의 낮과 153번의 밤 동안 지속된, 열다섯 살짜리 날 것 그대로의 소년과 삼십대 중반의 무르익은 유부녀의 불륜은 타운에서도 일찍이 알려진 적이 없었을 것이다. 아니다. 아마 알렉시의 이런 생각이 틀렸을 것이다. 세상에 일어난 적이 없던 일은 없으니까.


  리디아는 알렉시의 아내. 정식 이름은 리아 머서 클리브. 잘 생기고 큰 몸집에 극적인 옆모습을 가졌다. 술을 조금 과하게 마시고 담배 역시 그렇다. 간혹 부부 사이에 마찰이 있고 말도 잘 하지 않지만 서로 여전히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일종의 몽유병이 있다. 차라리 몽주병夢走病이라 해도 좋을 만큼 잠에서 깨지 않은 상태로 집의 아래층, 위층을 뛰어다니며, 우리 캐서린, 캐스, 캐스가 아직 살아 있고, 다시 아이가 되어 집안 어딘가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고 굳게 믿는다, 잠 속에서. 알레시는 이때마다 리디아를 깨우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혹시 어딘가에 부딪거나 뭔가 발에 걸려 넘어져 심하게 다칠까봐 항상 꿈 속의 리디아 곁을 따라다닌다. 딸 캐서린이 죽고 10년이 흘렀다. 삶과 죽음의 법칙에 잔인한 빈틈이 있어서 캐스가 아직 완전히 죽지 못하고 어떤 식이든 여전히 어둠의 땅에서 포로가 되어 괴로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머니가 자기를 다시 살아있는 자들 사이로 데려가주기를 헛되이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닌지 리디아는 꿈 속에서 딸을 찾아 달음박질 친다.

  캐서린은 학자 기질이 있고 실제로 아직 공부중인 스물일곱 살 학생이었다. 만델바움 증후군이라는 희귀한 정신결함으로 어렸을 때 고생한 적 있다. 이탈리아 리구리아의 포르토베네레 해안, 산피에트로 교회 아래에서 파도에 씻긴 바위들에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몸이 으깨진 시신으로 발견되었을 때는 임신중이었다. 제노바만 안으로 길게 파고 들어간 곶의 맨 끝, 시인 셸리가 익사한 레리치의 맞은편에서. 알렉시는 미래의 아버지가 되지 못한 그 사람이 누구인지 정말로 알고 싶다. 그러나 찾을 방법이 없다. 찾으면 어쩌려고? 그저 보고 싶을 뿐이다. 얼굴의 이목구비가 사라진 시신을 딸이라고 증언할 수밖에 없는 부모. 그 시신을 직접 눈으로 봐야 했던 어머니가 몽유, 차라리 몽주라고 해야 마땅한 몽유에 시달린다고 해서 이상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나머지 하나는 난데없이 걸려온 전화 한 통. 미국 여자로부터 온 전화. 영화에 한 번도 출연해본 적이 없는 알렉시에게 영화의 주연을 맡아달라는 의뢰. 마시 메리웨더. 캘리포니아 해안의 카버시티에서 온 젊지 않은 흡연자의 목소리. 영화사 펜터그림처스의 임원이며, 독립 스튜디오에서 건 전화였다. 악셀 판더라는 사람의 삶에 기반한 영화를 제작하려 하고, 영화의 제목은 “과거의 발명”이 될 것이란다. 토비 태거트라는 사람이 감독을 맡았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다. 감독은 남우 주연으로 스크린에 새롭고 신선한 인물을 발탁해달라고 주문했다. 마시 메리웨더가 하는 말을 믿는다면, 메리웨더가 접촉한 첫번째 인물이 알렉시였다.

  그리하여 영화를 찍는다. 여우 주연은 돈 데번포트. 영화는 스케쥴을 따라 정연하게 진행하고, 그러나 끝까지 이렇듯 깔끔하게 마감을 할 수 있으면 소설이 아니라서, 불과 몇 컷을 남겨두지 않은 상태로 갑작스럽게 중단되고 만다. 돈 데번포트가 수면유도제를 한 통 다 삼켜버린 것. 이 젊은 여성은 또 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 틀림없이 결국 죽지 못할 것임을 알면서도 수면제 한 통을 다 삼켜 고통스러운 위세척과 후유증을 자초했을까? 이런 건 알렉시가 알 바 아니다. 다만 이성 간의 사랑이 아니라, 서양 문학에서 거의 처음보는 듯한, 나이든 남자와 젊은 여성 간의, 아마도 딸 캐서린을 빙의한 자살을 매개로 한 것 같은 아버지의 정 비슷한 심정으로, 아내 리디아의 허락을 받아, 둘은 이탈리아 리구리아 해안을 향해 떠난다.

  이 세가지 사건이 서로 맞물리면서 작품은 아일랜드 작가들한테 유난히 드러나는 쓸쓸한 아름다움 속으로 한발한발, 더듬더듬 걸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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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5-04-16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별 다섯 또 출현이네욤!! 이번엔 밴빌..
요것도 질러야 겠습니다.. 또 한 권이 추가되네요...제게도 별5개였으면 좋겠슴돠!!

Falstaff 2025-04-16 15:21   좋아요 0 | URL
야무 님도 재미나게 읽으실 거 같아요.

blanca 2025-04-16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바다>와 비교해서 어떠셨어요? 저는 그 작품이 너무 좋아 이게 그 아류인가 싶어 안 봤거든요. 풀스타프님 별 다섯 개 주신 거 보니 읽어야겠다 싶어요.

Falstaff 2025-04-16 17:56   좋아요 0 | URL
<바다>는 읽은 지 꽤 오래라 기억이 아스름합니다. 아류...는 아닐 겁니다. ㅎㅎㅎ 아류 아닙니다. 이 책도 다른 독자에게 권하고 싶을 정도로 제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는 <바다>보다 좀 더 좋았습니다.

coolcat329 2025-04-16 19: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이것도 별다섯!
친구의 엄마와 사랑이라니...내용이 심상치 않네요. ‘쓸쓸한 아름다움 속으로‘ 저도 들어가고 싶네요.
잘 읽었습니다.

Falstaff 2025-04-16 20:10   좋아요 1 | URL
ㅎㅎㅎ 추천작이 대개 그러하듯이 너무 기대가 크지 않기 바랍니다. ^^;;

그레이스 2025-04-18 2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정영목을 칭찬하시니 제가 기분이 좋네요.
저도 이 책 궁금했는데,,, 폴스타프님의 별 다섯은 읽어야죠!

Falstaff 2025-04-18 21:31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 님이 정영목을 좋아하시는군요!
저는 뭐 이랬다 저랬나 장난꾸러기인 걸요. ㅋㅋㅋ
이 책 괜찮더라고요. 엇그제 읽은 장바티스트 앙드레아가 쓴 <그녀를 지키다>도 좋았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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