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봄 작가, 겨울 무대 희곡집
구지수 외 지음 / 지만지드라마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봄 작가, 겨울 무대>는 신춘문예를 통해 역량을 인정받은 신진 작가들에게 신작 장막 희곡 집필과 무대화 과정을 통해 희곡을 완성할 기회를 제공하는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의 작가 지원 프로젝트입니다.”


​  아르코와 대학로예술극장은 머리말에서 “작가와 희곡이 더 빛나도록”이라는 제목으로 <봄 작가, 겨울 무대> 시리즈(프로젝트)의 기획의도를 이렇게 밝혔다. 요즘은 모르겠고, 전에는 일부 문예지의 등단은 별개로 하고, 많은 작가들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을 했는데, 등단 이후 숱한 작가들이 1월 2일자 잉크 냄새가 가시지도 않은 신문에 실린 자신의 데뷔작이 곧 은퇴 기념 작품이 될 정도로 이후에 글을 쓰던지 말던지, 쓰면 그걸 발표할 장을 마련하든지 말든지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꽤 오래 전부터 신춘문예에 당선한 중단편 소설과 시 등을 단행본으로 출간하고 있는 걸로 안다. <봄 작가, 겨울 무대>는 여기서 한 번 더 진화하여,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신예 극작가에게, 당선한 작품이 아니라 새로 장막 희곡을 쓰게 하고, 그것을 그저 발표하는 장을 마련해주는 것을 뛰어넘어, 등단 당시엔 책상 위에서 극작가 홀로 무대를 상상하며 작품을 썼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무대에서 공연을 하며, 비록 낭독극이기는 하더라도, 자신의 희곡이 드라마투르그(또는 드라마터지)의 손을 통과한 새로운 대본으로 바뀌고, 다시 연출가의 해석과 배우의 표현이라는 필터를 어떻게 거쳐 실제 극이 되고, 이 극이 관객과 소통하는 광장으로 나오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그리하여 신출나기 극작가들이 이 모든 과정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작품을 각 단계별로 수시로, 현장에서 수정하며 진정한 극작의 경험을 갖게 하는 뜻 깊은 행사였을 것이다.

  이런 행사를 아마도 처음 갖은 극작가 신영은은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모든 이들과 / 무대를 채워 준 함께해 준 모든 이들과 / 이 ‘기억’을 함께 나눠 줄 여러분, 너무 감사해요. / 언제나 건강하세요.” (p.79)

  신영은은 얼마나 좋았을까? 그리고 얼마나 고마웠을까? (이것도 뭐 사람 사는 일이라서 다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겠지. 그래도 이 정도면 횡재한 거 맞다.)


​  특히 극단에서 이 비슷한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서울 연극제” 같은 건 빼더라도, 매년 시행하는 “희곡 우체통” 시리즈도 신인 극작가 뿐만 아니라 뜻이 있는 모든 극작가들의 작품을 받아, 이 가운데 좋은 작품을 선정해 직접 무대에 올려주고, 공연이 끝난 후에 희곡작품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나도 몇 년 동안 재미있게 읽은 적 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 문학의 출간을 보면 이런 행사에도 불구하고 시나 소설에 비해 희곡이 상당히 적다. 이것이 역설적으로 나로 하여금 희곡집에 관심을 두게 한 요인이기도 하다. 나라도 자주 읽어 인류가 만든 가장 오래된 예술장르의 하나인 희곡의 저변을 조금이라도 넓힐 수 있으면 그것도 좋은 일이라서.

  이 책에 작품을 수록한 극작가의 이름을 나열해보자.

  구지수, 신영은, 황수아, 김마딘, 조은주, 김미리, 이예찬, 이도경, 김정수.

  작품은 위의 작가 순으로, 과자집에 살아요, 달콤한 기억, 마지막 포에티카, 사라의 행성,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역할 없는 사람들, 유나바머와 거인, 친절한 식구들, 붉은 가을, 이렇게 아홉이다.

  작가의 이름과 작품의 제목을 나열한 것은 오늘의 독후감에 아홉 작품을 전부 소개할 수 없어, 빠진 것이 생긴다면 혹시나 서운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희곡은 읽기만 죽어라 읽었지, 제법 많이 읽은 거 같은데 내가 보기에도 읽은 만큼 작품을 해석할 내공이 생기지 않는 장르인 거 같다. 그리하여 희곡을 읽고 쓰는 독후감은 시집을 읽고 쓰는 것만큼 난감할 때가 있다. 이 독후감도 마찬가지이니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아무쪼록 이해를 바랄 뿐이다.


​  대부분의 극작가가 20대와 30대 정도로 보였다. 내가 무슨 <친절한 식구들>에서 나오는 엄마처럼 샤먼이라서 척 보면 아는 건 아니고, 작가들이 세상을 보는 방향과 자신들의 망막에 잡힌 상을 해석하는 것이 40대 아래로 보여서 그리 짐작할 뿐이다. 젊은 세대 답게 이들의 관심은 다양한 방면을 향하고 있었으며 특히 두 작품, <과자집에 살아요>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에서 요즘에 관심을 받고 있는 보호종료아동이 비극의 당사자로 등장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보호종료아동은 아동보호소 등의 아동양육시설에서 자라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했고(and) 만 18세가 넘어 정부로부터 현금 5백만원의 정착금을 받아 퇴소한 청년을 일컫는 말이다. 사회에 나오기는 했지만 사회적 학습이 전혀 되지 않은 상태라서 실제로 많은 이들이 속임에 넘어가거나, 피해를 예방하는 방법을 알지 못해 미리 조치를 취하지 않거나 못해 피해를 입거나, 심지어 돈을 관리해본 적이 없어 전 재산 5백만원이 흐지부지 없어지거나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단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불리한 일을 당해도 물어볼 사람도, 어디가서 고민을 상담해야 하는 지도 모르는 경우도 숱해 좌절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은 적 있다. 그럼에도 아홉 명의 작가 중에서 두 명이 이 경우를 작품에 풀어서 사용했으면 대단한 관심이라고 할 수밖에.

  그래도 가장 많은 주제는 의사불통과 객체화, 소외, 삶의 곤고함, 풍요 속의 지독한 가난 등이다. 이런 주제를 다루니 당연히 거의 모든 작품이 대단히 우울할 수밖에 없다. 요즘 우리나라 문학을 뒤덮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지독한 우울의 먹구름은 얼마나 두터운지 질식할 지경이다. 아홉 작품을 읽으면서 한 번도 피식, 겨우 피식, 하고 헛웃음을 날리지도 못했다.

  과자로 지어진 집에 사는 건 거지꼴을 하고 부모한테 버려진 남매와 보호종료아동 출신으로 ‘아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스물한 살 먹은 법적 성인 여성이고, 어려서는 귀한 조미료였던 백설탕을 할머니와 함께 숟가락으로 몰래 퍼먹은 기억이 있는 비정규직 사내는 설탕을 쏟아붓는 사일로(인 듯한) 기계 안에서 질식해 숨져가며, 숱한 사람들이 가산을 팔아 유토피아라고 알려진 삶 저 너머의 장소 포에티카로 가는 열차에 탑승하려 하고, 결국 너와 나는 애초 다른 행성의 인류였다는 것을 지나, 길고양이에게 극약을 먹인 후 쇠꼬챙이로 눈알을 관통시키기도 하고, 이별 후에 다시 좋은 관계를 맺기는 하지만 대신 다른 커플이 갈라져야 하며, 폭탄을 제작해 거인을 제거하려는 미친 천재에, 아버지 최후의 유산을 찾으려 매장 1년밖에 안 된 묘지를 파헤쳐 관을 열고 시신을 뒤지기도 하고, 풍비박산이 난 집으로 다시 돌아간 남매 앞에서 부모는 처참하게 자살해 있는 이야기. 이것 참.


​  기억에 남는 것을 다 쓸 수는 없다. 작품이 좋아서라기보다 인상적인 장면이 <유나바머와 거인>의 마지막 장면, 유나바머가 죽은 후, 지금부터 몇 십 년 후, 그의 뇌를 스캔해 저장해둔 상태. 인류는 시시때때로 이미 죽은 시신과 별개로 스캔한 천재 유나바머의 뇌를 호출하고, 여기에 이미 떠둔 그의 영상, 즉 홀로그램에 입혀 그를 호출한다. 그러나 유나바머의 뇌가 스스로 창조, 개선, 진화할 수 있는 AI가 아니라서 그는 호출한 사람이 세팅한 시점부터 다시 이것이 처음인 양 똑 같은 행위를 계속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는 인류가 전기를 만들어내는 한 영원히 컴퓨터와 모니터를 감옥 삼아 지내는 형벌을 받는 셈이다. 아오, 며칠 전에 읽은 김희선의 작품 <달을 멈추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의 뇌를, 슬라이스를 하던 하지 않던, 스캔해서 컴퓨터 메모리 칩에 저장한다는 것이 김희선 혼자만의 아이디어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젊은 작가들 특유의 감각은 알겠는데 암만해도 너무 우울하다. 한 두 편이면 모르겠다. 이 책을 읽는 사흘 동안 하필이면 봄비가 내려 가뜩이나 푹 가라앉은 마음에 큼지막한 돌 하나를 올려놓은 군내나는 동치미 무가 된 느낌이었다. 그러나 작가들이여, 당신들 때문이 아니었다. 전적으로 내가 군내나는 무여서 그랬을 뿐이니. 앞으로 꽃 길만 밟고 가시라.


.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23-05-23 08: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군무 골드문트 ㅋㅋㅋㅋ

Falstaff 2023-05-23 16:02   좋아요 1 | URL
ㅋㅋㅋ 나름대로 어울리지 않습니까!

2023-05-23 1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23 16: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23 1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식도락 - 여름 식도락
무라이 겐사이 지음, 박진아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본문 뒤에 일본의 논픽션 작가 구로이와 히사코가 쓴 겐사이의 <식도락>에 대한 작품론이 실려 있다. 이 글에 의하면 1911년까지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소설 작품과 작가 둘을 꼽으라면 도쿠토미 로카의 <불여귀>와 더불어 무라이 겐사이의 <식도락>이 꼽힌다고 했다. 그러나 구로이와의 작품론 제목이 “잊힌 메이지의 계몽 소설가”다. 일본에서는 먹는 일, 그것도 맛있게 먹는 주제라면 <맛의 달인>과 우리나라 20대 대통령도 좋아한다는 <고독한 미식가> 같은 것들이 연속해서 크게 히트를 치는데, 이런 맛과 요리 문화의 비조가 무라이 겐사이의 <식도락>이란다. 어차피 이제는 거의 읽히지 않는 작가의 바이오그래피를 자세하게 소개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그건 생략하고, <식도락>은 모두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렇게 네 4부로 되어 있는 신문 연재 소설로 호치신문에 1903년 1년 연재하는 동안 도쿄 시내의 종잇값이 천정을 뚫게 만들 정도로 인기를 끌었단다. 그래서 아직 연재 중임에도 단행본으로 출간하기 시작했고, 계절에 따라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렇게 네 권을 합해서 당시로는 생각하지 못할 엄청난 숫자인 10만 권이 팔렸는데, 놀랍게도 이게 자비 출판이었으니 순이익 전부 무라이의 개인 통장으로 들어갔을 것 아니었겠느냐, 하는 말이지. 앞에서 그냥 수사적 의미로 도쿄의 종잇값이 치솟았다, 라고 했는데, 진짜로 도쿄의 을지로 인쇄골목에서는 이 작품 <식도락> 때문에 표지용 종이와 제본용 실이 품절되기까지 했다고 한다.

  상급 무사 계급 출신의 무라이 겐사이의 아버지는 자신의 출세를 포기하고 아들 교육에 전념해서 도쿄외국어학원에 진학해 러시아어를 공부시키기도 하는 등 아들에게 서양문물을 익히게 했다. 우여곡절 끝에 공부 머리가 있는 무라이는 스무 살 때 미국 유학을 한다. 이렇게 서양 문물을 익힌 무라이의 눈에 비록 메이지 유신을 단행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조국 일본의 낙후성이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이런 사정에서 자신 스스로가 기자로 입사한 호치신문에 연재소설을 쓴 것이 바로 <식도락>. 메이지 유신 전까지는 생선을 제외하고 국법으로 육식을 금지시켜 상대적으로 빈약한 일본 가정의 식단부터 서양식으로 바꾸는 것으로 일본의 낙후성을 벗어나게 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리하여 내가 읽은 <식도락 – 여름>에는 기대했던 일본 전통 음식이나 레시피가 아니라 서양식 또는 벌써 일부 일본화 한 서양 음식의 종류와 레시피 같은 것을 장황하게 소개하고 있다. 물론 일본 음식도 많이 나오기는 하지만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라는 뜻이니 오해하지 않으시기 바란다.

  우리나라 전래 음식의 레시피는 간장, 된장, 소금, 파, 마늘, 생강, 참/들기름, (과일이나 꿀을 이용한) 감미료, (고추 말고) 산초 등을 주 부재료로 해서 여러 방식으로 조리하는 반면에, 하긴 내가 유명한 드라마 <대장금>마저 보지 않아 그저 어린 시절의 기억에 의하면 그렇다는 건데, 일본 음식은 간장(이나) 된장, 미림(이거 맛술 맞나?), 당대 최고 가격의 조미료였던 백설탕이 빠지지 않는다. 그래서 일본 음식을 먹을 때마다 들척지근하고 개운치 않게 느꼈나보다. 이건 당연히 우리 음식 맛에 길들여져서 그런 것이지 우리 음식과 일본 음식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낫다, 덜하다 라는 의견이 아니다.

  일본 음식이 한 열 번 나오면(실제로는 수십 가지가 나오지만 예를 들어 그렇다는 건데) 서양 음식이거나 일본화 한 서양음식의 레시피는 스무 번쯤 소개를 하는데, 일본과 서양음식에서 공통적으로, 내 입맛을 기준으로 하자면, 과도하게 첨가하는 것이 버터와 설탕, 그리고 토마토 소스이다. 버터와 설탕은 당연히 서양에서 건너온 것이니 1903년 현재, 서양 문물은 일본 가정 안에까지 깊숙하게 들어와 있었던 것이고, 강한 자를 보면 그들의 대부분을 일단 흡수하고 싶어한다고 흔히 생각하는 대로, 식탁마저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때문 아닐까 싶었다. 반면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저보다 강한 자가 나타나면, 네가 잘나면 얼마나 잘 났니, 하면서 오히려 거꾸로 빗대가는 성향이 있….니? 있지? 아닌가? 모르겠다.


​  <식도락>은 엄연히 소설이다. 그리하여 스토리가 있는데, <식도락 – 여름>은 이 시리즈의 두번째 이야기다. 여름의 주인공은 나카가와 가문의 남매다. <식도락 – 봄>은 읽어보지 않았고, 앞으로도 안 읽을 건데, 그래서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됐는지 몰라도 나카가와의 동생 오토와 아가씨가 나카가와의 절친 오하라와 약혼을 한 사이다. 책을 펼치면 앞으로 시댁 어른이 될 예비 시부모가 오하라에게 들러 혼사에 관한 일을 처리하고자 도쿄로 오고 있는 중이다. 오토와 아가씨가 바로 일본의 가정식 요리의 대가, 우리나라로 치면 KBS 2TV에서 (지금도 하고 있는 지 모르지만) 방영한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의 패널, 요리 연구가 심영순하고 비슷한 인물인데, 나이는 심사장의 반의 반도 안 되는 스무 살 미만의 아가씨다. 당시엔 여자 아이가 열 두어 살 만 되면 주방 살림에 눈을 떴을 때라 해도 그토록 모든 상류층 음식을 통달한 모습을 보이기에는 무리지만, 소설이다 소설, 독자가 양해하자. 바로 옆집에 사는 약혼자의 부모를 위해 나카가와의 또다른 절친 고야마의 부인과 함께 쌀 요리, 국물 요리, 고기 요리, 생선 요리, 디저트 등등으로 36품의, 거의 진탕 때려 먹는 수준의 밥상을 차려주고, 아직 정식으로 예비 시부모에게 소개된 바가 아니라, 손님이 도착하자마자 총총히 오하라의 집을 빠져나간다.

  알고 보면, 시골에서 청소년기까지 지낸 오하라는 공부머리가 좋아 대학에 진학을 하고 싶었는데 부모의 경제 수준으로는 언감생심이라 전전긍긍하고 있던 차, 큰아버지가 하루는 부르더니, 내가 학비와 최소한의 생활비를 대줄 터이니 너는 걱정하지 말고 그저 공부나 겁나 해라, 고맙지? 고마운 줄 알면 너 대학 마치고 지금은 코 찔찔이지만 그때쯤 다 큰 처녀가 돼 있을 네 사촌동생이자 내 막내딸 오다이와 혼인하는 것도 생각해보아라, 이러던 거였다. 당시엔 뭘 알겠나. 알아도 그렇지, 당장 대학 입학금과 등록금, 그리고 졸업할 때까지 생활비도 보태 준다는데, 더구나 아직 연애도 해보지 않은 시점에 이걸 해, 말아, 망설일 작자가 세상에 몇 명이나 될까? 그리하여 넙죽, 아이고 큰아버지, 고맙습니다, 이 은혜를 풀을 묶어 갚아야 하겠습니다, 대답한 다음, 몇 년간 도쿄로 와서 공부 열라 하고 나름대로 신문물에 눈을 뜨고, 비슷한 신념으로 뭉친 절친 나카가와의 동생과 사랑이 싹 터, 청혼을 했고, 승낙을 받았으니, 예전 은인인 큰아버지와 했던 약속은 어떻게 될꼬?

  뭐 우리나라도 이런 경우가 숱하게 있었다. 촌에서 전통적인 조혼 관습에 따라 어린 나이에 서너 살, 심지어 예닐곱 살 많은 신부와 결혼을 하고 경성이나 도쿄로 유학을 가서는 새로 자유연애를 한 다음, 돌아와 이미 애까지 하나 낳았거나, 애도 하나 없이 시집살이만 겁나 하다 시들어버린 나이든 (아무것도 없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와 이혼해버리거나 지독한 갈등에 빠지는 이야기, 이게 한 둘이야?

  어쨌거나 예비 시부모가 왔는데, 오긴 왔는데, 딱 부부만 온 게 아니라, 큰아버지, 큰어머니, 그리고 사촌 여동생이자 결혼 대상자(일 수도 있었던) 오다이까지 다섯 명이나 쳐들어온 것이고, 오다이는 결혼 적령기이기도 하지만 시골 출신의 대단한 먹보가 되어, 자신의 예비 경쟁자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음식이란 것도 모른 채, 무려 서른여섯 가지 음식을 우걱우걱 흡입해버린다.


​  위에서 쓴 건 그냥 스토리가 그렇다는 것이고, 진짜 핵심은 나카가와와 오하라, 그리고 고야마, 이 삼총사가 일본/일본인의 생활과 사고방식의 개선을 통해 일본을 서구와 다름없이 발전시키기 위하여, 늘 주장하는 바와 같이 고야마의 ‘감정망국론,, 나카가와의 ‘풍류망국론’ 그리고 오하라의 주장인 ‘마음의 예의’를 일본인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잡지를 만들게 되는 과정이다. 잡지를 돈 없는 청춘들이 만들 수 없어서 물주를 하나 잡아야 하겠는데, 누가 수익성 없이 최초 몇 년 간 적자만 낼 것이 뻔한 잡지를 위해 투자를 해줄까? 이게 고민이었다. 이때 혜성같이 나타난 은인 후보자가 히로우미 자작. 자작에게는, 일본의 자작? 난데없는 일본의 작위가 일본 근현대사에서 제일 웃기는 거 가운데 하나, 그 중에서도 백미라고 생각하는데, 하여간 이 자작의 영애, 다마에 아가씨가 나이 들어 결혼 적령기가 되자, 자작 영애쯤 되면 손에 물 묻힐 일이 없는 신분이기는 하지만 자작 나리께서 그래도 머리가 깨인 사람이라, 딸에게 가정 요리를 익히게 하고 싶었다. 이 문제에 대해 고야마도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았고, 그걸 또 전해 들은 고야마가 당연히 나카가와 댁네 오토와 아가씨를 천거한 것. 그럼 딱, 그림이 그려지지? 오하라는 오토와와 약혼을 했고, 고야마는 이미 결혼을 한 몸이니, 이제 아직 연애에도 돌입하지 못한 유일한 측근이자 주인공 나카가와에게 한 근사한 여인이 다가오게 되리라는 것을.

  하지만 <식도락 – 여름>은 4부작 가운데 2부다. 어떻게 맺어질지 슬쩍 끄트머리만 비출 뿐 이야기는 갑자기 이렇게 끝난다. “To be Continued!”


​.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레이스 2023-05-20 07: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흥미로운 스토리네요
요시모토 바나나인가요?
키친이 생각나기도 하고,,, 다르겠지만,,,,^^

왜 그렇게 많이 읽혔는지 알것 같아요.
그런데 별3개..???
왠지 알것 같은...
이런 책과 작가도 있네 하고 넘어갈까요?

Falstaff 2023-05-20 08:14   좋아요 1 | URL
요시모토 바나나의, 심연에 빠져 상처받고 괴로워하는 인간들을 그린 <키친>하고는 제목 말고 비슷하지 않습니다. ㅎㅎㅎㅎ
그냥 넘어가세요. 저도 제목 보고 혹 해서 읽었다가, 헛심 빠졌습니다. 일본 소설 좋아하시는 분들은 참고 삼아 읽어보실 수 있겠고요.

stella.K 2023-05-20 1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트님 진짜 TV 안 보시는군요.
심영순씨가 사귀당귀에 안 나온지가 언젠데요.ㅎㅎㅎ
음식 드라마나 영화 늘 아쉽긴하죠. 먹어 볼 수가 없으니...ㅠ
그래도 대장금은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
이영애는 제가 좋아하는 배우라.
리뷰를 읽으니 좀 망설여지기는 하네요.
지만지 책값은 안 그래도 비싼데...

Falstaff 2023-05-20 20:04   좋아요 1 | URL
옙. TV하고 별로 친하지 않아서요, 아마 솔약국 이후에 본 드라마도 없을 듯. ㅋㅋㅋ
권하기는 쉽지 않지만, 굳이 읽겠다는 사람 말리기도 쉽지 않은 책 정도로만. ^^;;;
 
문 뒤에서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조르조 바사니 지음, 김운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도서관 개가실에서 바사니 선집을 발견한 순간, 이 시리즈는 금방 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아니나 다를까, 이제 선집의 4권 <문 뒤에서>까지 왔다. 이제 <핀치콘티니가의 정원> 한 권 남았다. 아껴가며 읽어야겠다. 마음에 든다고 한 번에 확 읽어 치우기엔 참 쓸쓸한 작가이고 문장들이다.

  책 날개의 작가 소개에는, “바사니 문학의 원천은 ‘페라라’와 ‘유대인’이다.” 라고 쓰여있다. 실제로는 바사니가 그랬다는 증거가 하나도 없기는 하지만, <금테 안경>과 <문 뒤에서>의 주인공이 동성애적 성향을 가지고 있거나 가지고 있다고 암시하는 걸 봐서, ‘동성애’ 특히 남성 동성애자인 ‘게이’도 바사니 문학의 한 원천으로 생각해 봄 직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바사니는 반파시스트 저항운동을 하다가 1943년 5월에 체포당했는데, 무소리니가 정권을 빼앗긴 7월 26일에 바로 석방이 되고, 이로부터 1주일 후에 발레리아 시니갈리아와 결혼해 딸, 아들 각 하나씩 두었다. 발레리아와 죽음이 둘을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 살 줄 알았지만 인생이 어디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이 아니어서, 죽음 대신 서류에 인감도장 찍는 걸로 갈라서고 예순한 살이던 1977년에 새로운 동반자 포르티아 프레비스와 여생을 같이 한 것으로 보아 이이한테는 동성애적 성향은 없었다고 봐도 좋을 듯하다. 뭐 그렇다는 거다.


​  1인칭 시점이다. 화자 ‘나’는 유년, 소년, 청소년, 청년, 성인 시절을 둘러보아도 여러 번 절망의 바닥을 찍었다고 엄살을 부리면서 시작한다. 물론 그렇기는 했다. ‘나’는 1913년 정도에, 유럽에서 그나마 유대인 차별이 덜 한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유년시절 이후, 페라라Ferrara에서 보낸 고등학교 1학년, 서기 1929년 10월에서 1930년 6월까지가 유독 암울했던 기억이 있다면서, 이 시기의 학창시절에 관하여 말하기 시작한다. 세월이 많이 흘러 ‘나’가 쉰 살도 넘긴 다음에 생각해보니 이 시절 이후에 흐른 세월은 결국 아무 소용도 없었다고, 그 정도로 온전히 비밀한 상처로 남은 아픔이었고 결코 시간마저 치료해주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아예 치료가 불가능한 상처.

  처음부터 직진하자. 유대 디아스포라로 몇 천 년을 지내다가 할아버지 대에 와서 많은 돈을 벌어 이제 노동할 필요 없이 사는 유대 부르주아가 있고, 공부를 많이 해 의사가 되었지만 큰 도시에서 잘 나가는 의원을 차릴 돈이 없어 박봉만 받으며 산골 마을 보건소에서 왕진을 다니는 가난한 의사가 있다면 어느 것을 택할 터인가. 사는 게 다 그렇다. 유대 부르주아라고 해서, 가난한 유럽인 의사라고 해서, 아니 보통 인종 가운데 어찌 아픈 상처, 그것도 더럽게 아파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아물지 않는 상처 하나 없는 인간이 세상 70억 인구 가운데 몇 명이나 있을 것 같은가? 만일 당신이 이런 사람을 알고 있다면 세 명만 나한테 소개시켜달라. 십만 원 줄게. 돈이 있건, 권력이 있건, 하다못해 돈도 없고 권력도 없지만 가방 끈이 길어 머리에 든 것이 많건, 아니건 간에 다 자기 나름대로 아물지 않는 상처가 있고 우리는 그걸 트라우마라고 하지 않는가 말이지.

  그럼 이 책 <문 뒤에서>는? 1920년대에 극심한 사춘기를 겪던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의 후일담이라고 간단하게 말할 수 있지만, 이렇게 책임 없게 이야기하는 것은, <안나 카레리나>가 “유부녀 바람나서 인생 조지는 소설”이라 하는 것과 비슷하다. 바사니나 톨백작이나 문제는 이야기를 꾸리는 재료인 문장과 서사구조, 그리고 호소, 이런 것들을 다 합해 우리가 흔하게 말하는 “문학”이다.

  대개 이 시절을 그린 작품들은 학교, 교실이라는 정글에서 벌어지는 생존기가 대부분이라, 나도 바사니 표 고등학교 교실의 폭력적 만화경을 은근히 기대했지만, 아니었다. 이탈리아에서 갓 태동하기 시작한 파시즘 시절, ‘심각한’ 유대인 차별 역시 막 싹이 돋기 시작할 무렵, 아직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특별하게 종교 수업을 면제해주는 관용의 시절이 유지되고 있을 시기였는데, 리차노인벨베데레 산골마을에서 박봉에 시달리며 십 년간 보건소 진료의사를 하는, 왕왕 심심풀이로 아내와 아이들을 때려잡던 풀가 씨가 솔가해 페라라로 이사, 아들 루차노 풀가를 ‘나’와 같은 학교, 학년, 반으로 전학시키면서 파도가 일기 시작한다. 한 달에 천오백 리라 가웃의 비용을 내야 하지만, 3류 선술집에 더 가까운 싸구려 호텔에 일단 짐을 풀자마자 풀가 씨는 아들 루차노를 책도, 공책도 없이 달랑 펜과 잉크만 쥐어 학교로 보내버렸다.

  화자 ‘나’는 루차노를 위해 과제를 할 때 써야 할 필기용지도 주고 당분간 옆에 앉는 ‘짝’도 해주었는데, 루차노 풀가, 얘 좀 봐라, 아무렇지도 않게 ‘나’의 과제를 슥슥 베끼는 거다. 교실에는 페라라 최고 부자의 아들이자 중1 때부터 모든 과목에서 8~9점을 받아 언제나 모두 인정하는 우등생 카를로 카톨리카가 부동의 최고 권력을 누리고 있었고, 바로 밑에 화자 ‘나’가 어려서부터 인생무상의 참뜻을 숙고하느라 조금 삐딱한 시선으로 세상을 꼬나보기 ‘시작하고’ 있었다. 즉 다른 아이들보다 약간 늦되게 사춘기를 시작했다는 말이다. 열여섯 살이 되어 아직도 자위를 시작하지 않은 거의 유일한 학급 남학생. 이 학교는 남녀 공학이라 소수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작품 내내 존재감이 없기는 하지만) 학급에 여학생도 몇 명 함께 수업을 받고 있다. 카를로 주위에는 공부 좀 하는 아이들이 둘러싸고, ‘나’는 소위 독립군이었는데, 이제 루차노 풀가가 전학해 옴으로 해서 ‘나’의 집에 와서 숙제도 함께 하고, 등하교도 같이 하는 작은 또래를 이룬 것.

  보잘것없는 외모에 변변치 않는 의복, 그리고 가난이 뚝뚝 떨어지는 머릿기름이 흐르는 목덜미 냄새 등을 장착한 루차노 풀가는 파시스트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점을 기억해두는 것이 편하다. (그러나 루차노 또한 그 시절을 치유하지 못할 상처의 시간으로 기억하고 있을 듯) ‘나’는 루차노를 보자마자 그가 ‘나’에게 “우리 가족의 부르주아적 안정감과 경제적 안전, 사회적 신분”을 질투하면서 동시에 경멸하는 인상을 받았다. 유대인이라서. 유대인은 돈이 아무리 많을지언정 근본이 천하고, 성격도 막 돼먹었으면서 천성이 사기꾼이라 절대 가까이하면 안 될 인종, 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안 알려드린다. 이 짧은 장편소설에서 아무리 사소한 내용이라도 여차하면 스포일러로 작용할 것을 알고 있어서 조심스럽다. 그리고 만일 그렇더라도, 아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그걸 얘기하면 당신이 이 책을 재미있게 읽지 못하게 방해거리가 될 수도 있겠다.

  아픈 이야기. 많은 사람들이 한 번 쯤은 알게 모르게 겪게 되는 소외와 단절의 이야기. 그걸 조르조 바사니는 이렇게 산뜻한 문장으로, 마치 수채화처럼 그려놓았다.


.​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oolcat329 2023-05-18 10: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읽었는데 써주신 내용까지는 다 기억나는데, 안 알려주시는 그 결정적 부분이 기억이 안납니다. 도대체 문 뒤에서 뭘 듣고 봤는지...참 저도 읽으면서 안스러웠는데...집에 가서 찾아봐야겠습니다.

Falstaff 2023-05-18 17:31   좋아요 2 | URL
음하하하... 기억나지 않으신다는 말씀이 오히려 고맙습니다. 뒷 이야기, 클라이맥스가 아리송하게 만드는 것이 제 독후감이 제일 바라는 거거든요. ㅋㅋㅋㅋ
답글이 늦었습니다. 이제 일과 끝나고 집에 와서 저녁 먹고 쐬주 한 병 했답니다. ^^

그레이스 2023-05-18 23: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을 털고 계시군요?^^
제가 조르조 바사니 무슨 책을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 찾아봐야 할듯요.

Falstaff 2023-05-19 08:09   좋아요 1 | URL
ㅋㅋ 그렇게 됐습니다. 작년 초에 사 놓고 안 읽은 책도 한 60cm 되는데 올해도 넘길 거 같아요. 지금 도서관 가기 전에 그레이스 님 댓글 달려고 잠깐 로그 인 했습니다. ^^
 
눈사태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빅토리야 토카레바 지음, 김서연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작가 빅토리아 토카레바는 어린 시절부터 두 가지 방면에 뛰어났으니 하나는 공부요, 다른 하나는 피아노 연주였다. 근데 왕년에, 초등학교 시절에 반에서 일등 한 번 못해본 사람 있으면 손 들어보시라. 토카레바가 공부를 잘 하기는 했지만 어린 시절의 희망인 의사가 될 수준은 아니었다. 두 번째 재주인 피아노 연주로 림스키-코르사코프 페테르부르크 음악학교에서 4년 동안 공부를 했지만 피아노 연주자로 성공할 재목까지도 아니었단다. 그래도 배운 것이 피아노, 밥벌이를 위해 모스크바 근교의 음악학교에서 음악 교사로 일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의 경험 일부를 <눈사태>에서 써먹었으니 이 책의 주인공 이고리 니콜라예비치 메샤체프의 아내, 이리나 메샤체브나의 직업이 피아노 교습 선생이다.

  이리나 메샤체브나는 남편 이고리와 함께 모스크바 음악원 피아노 동기생이다. 피아노 연주를 비롯한 예술 행위는 점진적으로 우상향하는 완만한 곡선이 아니라, 곡선을 따라 올라가다가 갑자기 난데없이 높은 계단이 하나 나타나 이 계단을 오르느냐 마느냐가 문제인데, 오른 사람은 유명 연주자/예술가, 또 고액 연봉의 프로 운동선수, 못 오르면 그저 보통의 예술가가 되든지, 조기 축구단에서 눈썹을 휘날리는 스타가 되든지, 가리봉동 기원의 동네 챔피언 바둑 기사가 되든지 하는 거다. 이리나가 보기에 자신은 아무리 용을 써도 마지막 높은 계단을 오르기는 텄고, 대신 남편(이 될) 이고리는 그걸 어렵지 않게 성큼 올라가버린 단계였다. 하지만 당시는 소비에트 시절. 스탈린이 죽고 뒤를 이어 흐루쇼프, 브레즈네프 등등이 철권을 휘두를 때라 세계적인 실력을 갖춘 이고리라 할지라도 소비에트 연방, 소련 각지를 떠돌며 시끌벅적한 군중을 대상으로 거의 무료의 공연료를 받고 연주를 해야 했다. 이리나는 남편을 향한 사랑과, 언젠가는 이고리의 성공을 확신하면서, 이 어려운 시기 동안에 적어도 딸, 아들, 장모를 먹여 살리기 위한 노심초사에서 벗어나 레퍼토리를 늘이고 음악적 성취에만 신경 쓰라는 뜻에서 자신이 열심히 피아노 학원을 하며 실질적인 가장 노릇을 했다.

  어느덧 세상이 바뀌어 고르바초프가 대통령에 올라 대한민국 제주도를 방문해 노태우 대통령한테 30억 달러의 차관을 얻어 오기도 하는 새 시대, 소위 페레스트로이카 시대가 열려, 철의 장막을 친 소련 영토 안에서 철저하게 실력이 가려지긴 했으나 연주 녹음은 아니더라도 이름이 서방에까지 알려진 이고리 메샤체프가 서유럽 연주단체로부터 초청을 받는 일이 벌어진다. 그래 비행기 타고 한 번 가서 연주를 해주었더니 아메리카를 포함한 서구세계가 이고리한테 환장을 하기 시작했고, 이고리는 유럽으로 연주여행을 하든지 아니면 모스크바의 집에서 새 레퍼토리를 연구하든지 하는, 어찌 보면 단조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됐는데, 이게 피아니스트 자신의 성격에도 딱 맞아 떨어져, 별로 불만 없는 세상을 영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알고 보면 이고리 메샤체프의 내력도 조금 그렇다. <황산벌>의 계백장군 말투로 말하자면 초년 신세가 거시기했다는 말씀. 아버지는 아코디언 연주실력이 뛰어나고 그것만큼 손으로 하는 일, 뭘 고치고, 수리하고, 보수하고, 이게 다 비슷한 말 같지만 규모에서 차이가 나는 것들인데, 작은 시계 같은 것은 고치고, 좀 큰 기계는 수리하고, 집이나 하수 시설 같이 덩치가 큰 것들을 보수하는 모든 일에도 동네에서 따라올 사람이 없을 만큼 재주도 좋았으나, 불행하게도 알코올 중독자였으며, 당연히 미주알이 째지게 가난한 가정의 명목상 가장이었다. 이런 아빠가 아코디언을 연주하거나 고치고, 수리하고, 보수하는 일로 번 돈으로 유일하게 하는 일은 혈중 알코올 농도를 올리는 것뿐이었다. 새끼들 입에 거미줄만 치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었던 엄마가 아빠를 대신해 청소부 일을 해 그나마 쑥을 뜯어 미음이라도 끓여 먹을 수 있었다. 이때 어린 이고리가 아빠한테 얻어 터져가며 배운 것이 아코디언 연주. 이를 유심히 지켜본 흰 수염이 무릎까지 내려오는 산신령처럼 생긴 노 신사가 이고리를 거두어 음악학교에 보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데 이건 뭐 믿거나 말거나.

  하여튼 음악학교에 진학한 이고리는 열세 살에 같은 반에 있던 아가씨 이리나를 만나, 열네 살에 처음 키스를 하고, 야매로는 언제 했는지 몰라도 법적 결혼은 열여덟 살 때 해서, 딸 아냐, 아들 알리크를 낳았다. 이제 아냐는 학교를 다 마치고 애인 유라와 약혼한 상태지만 유라의 재정 건전성 확보기간 동안 결혼을 미루고 있고, 아들은 병역 기피를 목적으로 옛 병명으로는 정신분열, 요즘 말로 조현병을 위장해 신경정신과 병원에 입원한 상태다. 아들 알리크는 부모에게 대단히 아픈 존재다. 서로 지독하게 사랑하면서도 지독하게 괴롭히며 살아온. 도무지 사회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아들을 보며, 군인으로 2년을 지내는 동안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심지어 살아서 제대할 수 있을 지 걱정이 되어 불법인지 알고 있음에도 이런 조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다 부모 마음이지. 걱정도 팔자인 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젠 이고리는 세상 도처로 연주여행을 다니며 상당한 액수의 달러를 수집하기에 이르렀고,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경제 몰락을 맞은 모스크바에서 역설적으로 부자들을 위한 피아노 강습료는 천정부지로 오르는 바람에 떼돈을 벌기 시작한 이 가족은, 아니, 부부는 서로가 서로를 굳게 신뢰하는 사이로 아무 걱정도, 별 관심도 없이 마흔여덟 살이 됐다. 이제 부부는 살을 맞대기엔 어딘지 너무 친한 사이라고 느끼기 시작했으며, 같은 핏줄이라서 서로의 몸을 만지는 것이 마치 천벌을 받을 일이라고 생각이 드는 단계에 왔는데, 실제로 그런 상태였다고 빅토리아 토카레바가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자기 입으로 말했거니와, 이런 현상이 서로 너무도 덤덤한 사이, 소 닭 보는 듯 무심한 상태가 되어 그랬던 것이 아니고, 굳은 신뢰와 당연히 변하지 않는 관계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공고한 부부관계. 이들의 삶엔 딱 하나의 문제만 공유했다. 아들 알리크의 반 사회적 성향.


​  솔직히 말하자면 여태까지 이야기는 다 헛소리다. 서론이 길고 길었다.

  이제 이 공고한 가족에 눈사태가 나고 만다. 겉으로 보기엔 평화롭기 그지없는 설산. 지표를 두텁게 덮고 있는 눈덩이의 한 면에 마찰이 생겨 거대한 눈 뭉치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고, 드디어 만유인력의 법칙에 의하여 한 번 슬라이딩을 시작하면, 아무도 멈추지 못하고, 눈덩이조차 어느 방향으로 미끄러질 지 모르는 속수무책의 단계에 접어들어, 자신의 힘이 닿는 한, 세상의 모든 것을 집어 삼킨 연후에 저절로, 할 수 없이 멈출 시간이 와야지만 운동을 그만두는, 눈사태.

  이 가정의 눈사태는 이고리 메샤체프에서 시작한다. 연주여행을 다녀와 피곤한 심신을 모스크바 근교의 요양원에서 회복할 생각으로 한 주를 묵었다가, 그곳에서 서른네 살의 아름답고, 아름답고 또 아름다운데다가 요염하고, 탐스럽지만 너무도 세속적인 여성, 일명 률랴, 성姓도 모르는 옐레나 겐나디예브나를 만나 불륜이라는 눈덩이의 움직임을 시작한다. 이제 남은 것은 어느 방향으로 가는 지도 모른 채 오직 하나,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을 향해 무작정 돌진하는 일뿐.

  이리하여 이 작품 <눈사태>는 연애소설. 박완서의 말대로 읽거나 구경하기에 가장 재미나다는 연애 소설 가운데 ‘불륜’을 다루고 있다. 하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연애소설에는 두 당사자의 연애를 가로막는 장벽이 적어도 하나 이상은 존재해야 한다. 그게 카풀렛 가와 몬테규 가의 대를 잇는 복수심일 수도 있고, 두 당사자한테 교수형과 화형의 축복을 골고루 하사하는 종교 갈등일 수도 있지만, 근현대로 넘어오면서 작가들은 가문의 복수심이나 원한관계, 종교갈등의 소재를, 벌써 하도 많이 써먹었기 때문에 함부로 사용할 수도 없었고 이젠 더 이상 가문이나 종교가 큰 문제가 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상대방 중의 한 명 또는 둘 다 혼인관계를 유지한 연인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 내 말과 다른 현대 연애소설 있으면 두 작품만 예를 들어 보시라. 그러다 보니까 또한 연애소설은 날이 갈수록 분량을 늘이기가 쉽지 않게 된다. 물론 최인호의 두 권짜리 연애소설 <겨울 나그네>는 예외로 하고. 세월이 갈수록 연애소설 쓰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토카레바 역시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는데, 그건 절대로 아쉬운 바가 아니다. 어차피 연애소설은 스토리 전개가 뻔한 거니까 굳이 길게 쓸 필요도 없다.

  그러면 연애소설의 성패는 무엇이 가르는가?

  문장이다. 토카레바의 무심한 듯 툭, 툭 던지는 절묘한 산뜻함과 감각적 단어, 구절의 사용. 내가 읽은 최초의 토카레바였던 작품집 《티끌 같은 나》에서도 그랬듯이 정말 쿨하다. 쿨하고 쿨하다.


​.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곡 2023-05-16 0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궁금해 한 적이 있는 책인데 리뷰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

Falstaff 2023-05-16 15:53   좋아요 1 | URL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coolcat329 2023-05-16 1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는데 문장이 쿨한게 매력이군요.
<티끌 같은 나>를 조만간 읽어보겠습니다.

Falstaff 2023-05-16 15:54   좋아요 1 | URL
티끌,좋습니다. 그 책 읽고 한 방에 반해버렸습니다. ㅋㅋㅋ

stella.K 2023-05-16 1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반장을 많이 해 보셨군요. 그럼 회장도...?
저는 줄반장 딱 한 번 해 봤습니다. 그것도 한 달인가 두 달짜리.ㅎㅎ
연애소설은 환히 꿰뚫으셨군요.
문장이 관건이군요. 알겠슴다.^^

Falstaff 2023-05-16 15:54   좋아요 1 | URL
왕년에 한 번 해봤습지요. 원래 권력에 관심이 없어서 재미 없더구먼요.
연애 소설은 한 번 써보고 가야 하는데 말입니다....
 

 로마제국 쇠망사 4권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인재도 없고, 온갖 두억시니같은 야만족들만 득시글거리는 한심한 나라. 그러나 부잣집 망하는 데도 3년은 간다고 아직 영웅적인 장군 벨리사리우스가 로마의 영원한 곡창이었던 아프리카를 평정하고 동쪽의 페르시아와 한 바탕 싸움을 해 어느 정도 기틀을 잡는 것처럼 보이는 가짜 평화시대. 이동안 온갖 야만인들은 과거 로마의 국경을 넘어 자기들만의 세력을 키우기도 하고 옆 종족과 본격적인 땅따먹기 싸움도 시작하던 시기.........




  사학자 에드워드 기번의 원래 구상은 <로마제국 쇠망사>를 서로마제국의 멸망까지만 쓰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이라는 것이 열심히 하던 일을 갑자기 뚝 그쳐버렸을 때 쏟아지는 현타를 가뿐하게 극복할 수 없게시리 디자인되어 있다. 그리하여 기번은 애초의 마음을 바꿔 동로마제국의 멸망까지 몽땅 다 저술에 포함시키기로 마음먹는다. 내가 뭐 기번 전문가라서 아는 게 아니고, 이 책의 1권 시작할 때 기번의 서문에 작자가 그랬다고 써 놓았다.

  서로마제국이 셔터를 내리는 직접 원인은 어디에 있다? 아마추어 역사 애호가로 말하자면 통일 중국의 한나라, 그것도 전한 시대에 있다. 유방이 죽고 여씨 황후가 패권을 잡았을 당시 북쪽에 있던 흉노가 쳐들어와 실제로 과부가 된 여씨 황후에게 못된 말(나한테 남는 걸로 너의 빈 곳을 운운)로 히야까시를 거는 등 오만방자한 짓거리도 서슴지 않을 정도의 힘을 과시했던 흉노족. 원제 때에는 선우라고 불린 흉노의 족장이 한나라를 방문해서 중국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미녀 가운데 한 명인 왕소군을 얻어 가 첩을 삼기도 했을 정도다. 한나라는 왕조를 접을 때까지 흉노족 이야기만 해도 두드러기가 도질 정도로 질색을 했는데, 이리하여 서역 지역에 최고의 명장군과 군대를 파견하여 야만인 족속이 눈에 띄는 족족 잡아죽이기를 게을리하지 않아(이때 발생한 사건이 이릉의 난, 결과로 사마천이 궁형을 당한다), 처음엔 전과 다름없이 약탈을 서슴지 않던 흉노족의 기세도 점점 눅어져 그만 자신들의 사는 터를 포기하고 서쪽 초원, 벌판으로 이동해가며 현지인들의 세를 규합해 점점 규모가 커져, 타슈켄트, 사마르칸트를 거쳐 시베리아와 러시아, 우크라이나, 심지어 스칸디나비아 반도까지 일차 왕림하셨다가 거기 바로 아래 게르만 족들을 엉덩이로 깔고 앉아버리기 시작한 거다. 훈족으로 변한 흉노족에 당시에 어띨라 라는 영웅이 나타나 서로마 제국 성문 앞에서 직접 로마 제국의 문을 닫아주려 할 때, 제국에선 일설에 의하면 공주, 다른 일설에 의하면 궁녀 한 명을 어띨러에게 주는 걸로 타협을 봤고, 기분이 좋아진 어띨러는 부하들과 음주가무를 즐긴 후 황녀(또는 궁녀)와의 첫날 밤에 복상사를 해버려 거위의 꿈은 그냥 물거품으로 끝났다. 하지만 이때 훈족의 대 이동에 밀려 엉겁결에 서쪽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던 숱한 야만인들이 자기들도 먹고 살아야 하니, 남의 땅에서 뭐 할 게 없어 다른 지역과 비교해 월등하게 잘 먹고 잘 사는 로마 제국의 국경을 넘어 노략질을 시작하게 됐고, 로마 제국이 이미 힘이 빠졌다는 걸 눈치챈 야만인들이 계속해서 집요하게 괴롭히는 바람에 정식 이름대신 멸칭인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라고 불리는 마지막 황제 때 결국 망해버리고 말았다.

  그러니 어떻게 됐겠는가. 로마 제국 북쪽의 광활한 식민지가. 당연하지. 지금은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불가리아, 체코, 헝가리, 폴란드, 우크라이나 등으로 불리는 나라들의 조상들이 땅을 점령해 노상 접경지역에서 땅 따먹기 싸움을 해가면서 국가의 기틀을 잡기 시작했다. 그러면 이탈리아 땅은? 고트 족이라고, 염소를 뜻하는 goat가 아니라 원래는 스칸디나비아 남쪽에 있던 고트Goths 족으로 이 야만인이 세를 불리더니 이탈리아에 들어와 살았다. 세월이 흘러 고트 족에 테오도리크라는 영웅적인 왕이 등장해 이탈리아 반도 전부를 잡숴버렸다. 이민족이라 인구가 별로 없지만 월등한 무력으로 이탈리아 지역 원주민을 지배하고 있었는데, 이 사람들이 원래 서로마 제국의 원주민이잖은가. 그래 아직도 왕조를 이어가고 있던 동로마제국의 황제들은 이탈리아 사람들의 생명권을 지켜야 한다는 어마어마한 부채감이 있었고, 그리스도교가 국교로 채택된 것도 벌써 2백년이 넘어, 그래봐야 6세기 말, 7세기 초까지도 교황이라고 하는 작자들이 아직 장가도 들고, 홀아비가 되면 새장가도 들고, 아이들도 다스dozen로 낳고 그랬던 시기이긴 하지만, 로마 시내에 교황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일부는 여전히 ‘왕 대주교’라고 불리기도 하던 성직자와 그의 일당들도 보호해야 해서 고트 족과의 일전은 피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고트 족의 왕 테오도리크는 어려서부터 동로마 제국의 수도인 비잔티움에 가서 교육을 받아 로마 적的 정치술과 처세에 능한 능구렁이라 이리저리 비위를 잘 맞추면서 동로마 제국과 별로 문제가 없이 지낼 수 있었다. 이렇게 동쪽과는 사이를 좋게 해 놓은 테오도리크는 힘을 모아 북쪽에서 쉴 새 없이 이탈리아 영토에 껄떡거리는 다른 야만족의 침략을 분쇄하기도 하고 그들과 연합하는 대신 공물을 받기도 하면서 나름대로 잘 살고 있었다. 이런 자가 로마 제국의 황제였으면 함포고복의 태평성대를 맞았을 텐데. 이때 동로마의 황제는 제논이었으며, 제논이 이름 낸 분야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게으름이었다던가 뭐라던가 하여간 그랬다.

  문제는 이렇게 현명한 지도자가 죽은 후. 동로마에서는 제논에 이어 아나스타시우스, 유스티누스 1세에 이어 유스티아누스가 등극했고, 이탈리아에서도 테오도리크가 딸 하나만 남긴 채 숨을 거두어 이제 본격적인 이탈리아 전쟁에 돌입했다. (동)고트족은 이베리아 반도 산악지역에 자리잡은 서고트족을 규합하고, 동로마는 위대하지만 더러운 팔자의 장군 벨리사리우스를 대장군으로 임명해 한 바탕 큰 전쟁을 치룬다. 결과는? 동로마 제국의 상처뿐인 승리. 황제 유스티아누스는 동로마의 현제 테오도시우스와는 달리 오금이 저려서 전선엔 나가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벨리사리우스를 총대장을 삼아 아프리카 점령, 동쪽 속지 정리, 페르시아 전쟁 수행을 하게 해 놓고, 이제 또 이탈리아를 공격하게 만든다. 문제가 무엇인가 하면, 이미 동로마는 국가의 부와 규모가 대규모 전쟁을 연속해서 치룰 상태가 아니었다는 점. 군수품, 군인들에게 줄 임금, 식량, 무기 등 모든 병참과 인력이 태 부족이면서도 전쟁을 벌여 반드시 승리할 것을 주문했다. 누가? 당연히 황제 유스티아누스가. 그러니 충성스럽고, 전쟁지능에 관한 한 거의 제갈량 수준이지만, 공처가에다가 반골기질이 전혀 없는 용감한 벨리사리우스 대장만 죽어났던 거다. 그런데 희한하지. 이렇게 열악한 상황에서 전쟁을 했음에도 벨리사리우스가 떴다 하면, 적은 병력과 조악한 병참, 허약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장군을 따르는 전사들이, 특히 오랜 세월을 함께한 노병들은 절대 질 것 같지 않은 생각이 들었고, 정말로 늙었지만 아직도 힘이 철철 나는 장군의 신묘한 용병, 놀라운 지형지물의 사용으로 딱 한 번 이기지 못한 것(절대 지지 않았다. 이기지 못했던 뿐)만 빼면 싸운 족족 승리를 거두었는데, 황제 유스티아누스, 이게 또 못난 군주의 전형이라서, 꼴에 황제라고, 장군의 승리를 축하하지는 못할 망정, 질투에 싸여 콧김만 뿜어대다가 나중에는 지휘권을 또다른 영웅인 환관 나르세스에게 넘겼고, 나르세스가 최종적으로 이탈리아를 완전 정복하게 된다.

  그럼 벨리사리우스 장군은? 콘스탄티노플로 불러들여 이모저모로 꼬투리 잡을 거 없나, 샅샅이 뒤져본다. 그러다가 전리품의 일부를 장군이 착복했다는 걸 발견하고, 이를 트집잡아 재산 거의 다를 압수해버리고 죽일까, 말까, 죽일까, 살릴까, 고민하다 워낙 유명한 영웅이자 장군이니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저 멀리 떨어진 외진 곳에 집 하나를 주고 거의 위리안치 시켜 버린다. 내가 벨리사리우스 장군이라면 속이 다 시원했을 거 같다. 원래 노는 여자였던 아내 안토니나는 남편이 전쟁터로 떠난 동안 트라키아의 젊은이 테오도시우스를 만나 밤드리 노니다가 오고는 했는데, 전쟁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백치와 비슷했던 벨리사리우스 장군은 두 남녀가 노닥거리는 걸 자기의 눈으로 보고도, 아이, 우린 그냥 친구 사이야, 하는 안토니나의 말 한 마디에 그런가 보다, 했단다. 이걸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다음으로 치고 말이지. 결국 전리품 일부의 개인 사용도 기번은 부정한 아내 안토니나 때문이었던 것처럼 몰고가기도 하는데, 역사책 읽으면서는 역사가의 말은 그대로 믿지 않는 편이 좋다.

  하여간 <로마제국 쇠망사 4>에서는 동로마 제국이 황황하게 스러져가는 모습이 하도 짠해서 개운하게 읽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잘 읽었다. 에드워드 기번이 글 하나는 재미있게 써서 큰 판형에 6백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지만, 기독교에 관한 챕터만 빼고는 쉽게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왜 그리스도 교 관련한 글은 아예 읽기가 싫은 건지 모르겠다. 명색이 모태신앙이면서. 열 살 이후에 예배당 가본 적은 없지만. 우리 집에선 나 때문에 추도식 안 하고 제사 지낸다니깐.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레삭매냐 2023-05-13 0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스티아누스가 동로마제국을 다시
일으켜 세운 훌륭한 황제라는 시각
은 아마도 그의 밑에서 종횡무진
전장을 누비며 제국의 영토를 회복
한 벨리사리우스라는 존재 덕분이
지 싶습니다.

안토니아가 벨리사리우스의 약점
이었다면, 유스티아누스의 와이프
인 테오도라도 못지 않았다는 일
설이...

흉노-훈의 민족대이동으로 서구
지형이 바뀌게 된 점은 흥미로운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Falstaff 2023-05-13 09:55   좋아요 1 | URL
에드워드 기번은 유스티아누스 황제를 아주 바보로 만들어버립니다. 태평성대를 ˝만든˝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편안한 시절에 임기를 마친 운 좋은 황제이며, 사람들이 별로 기억하지 않아도 무관한 그저 그런 황제라고 따끔한 일침을 날립니다.
이런 황제가 악처를 얻었으니 죽은 다음에 동로마는 다시 한 번 광풍이 몰아칩니다만, 다행스럽게 거의 마지막 순번으로 괜찮은 군인 황제가 등극해 동로마의 명줄을 조금 늘이더군요.

stella.K 2023-05-13 12: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헉, 모태신앙요? 그러시군요.
나중에 바울처럼되시지 않을까요? ㅋㅋ

Falstaff 2023-05-13 12:22   좋아요 1 | URL
ㅎㅎ 그럴 일 없을 거 같긴 합니다만 세상일은 단정하지 못하는 것이니 또 모르긴 합니다. 하여간 지금 저는 사막에서 발현한 종교들 모두하고 친하지 못합니다. ^^

yamoo 2023-05-13 1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분량때문에 기번의 쇠망사 1권으로 된 까치본 요약본을 읽었지요...ㅎㅎㅎ
것두 엔날이라 이억이 가물가물...그래두 300쪽이 가뿐히 넘었던 걸루 기억하네요..ㅎㅎ

Falstaff 2023-05-13 12:24   좋아요 0 | URL
원래 예정이 서로마 제국 멸망까지 였다니 뭐 그리 읽으셔도 나쁘지 않을 거 같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