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리스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8
엘레나 포니아토프스카 지음, 구유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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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산세계문학총서 71번으로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한 <별과 사랑>을 흥미롭게 읽어 포니아토프스카의 1988년 작품 <아이리스>가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득달같이 도서관 희망도서 신청을 했지만, 정기구매 예정인 도서라 해서 신청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한 달 후, 정말 개가실 신규 도착 서가에 이 책이 꽂혀 있어서 마치 소매치기의 손놀림처럼 재빨리 낚아챘더니 책의 첫 번째 독자로 등록되는 순간이다. 어떻게 아느냐고? 다른 사람이 갈피를 넘겨본 적이 없는 새 책은, 책 좀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법이다. <별과 사랑>은 사실 읽은 지 오래라 상세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할 줄 아는 건 천문 관측밖에 없는, 그래서 다른 방면의 것들에 관해서는 재수없기 그지없는 멕시코 과학자가 자기한테는 오직 천문학 연구가 낙후한 멕시코를 위해 바칠 수 있는 애정이었다는 것을, 라틴 아메리카에서 크게 유행한 환상문학적 요소를 제거한 포스트 붐의 한 형태, 리얼리즘 방식으로 쓴 것이 인상 깊었던 것 같다. 작품을 읽고 시간이 오래 흘러 확정하지 못한 채, 그저 “것 같다.”라 말하는 것을 양해해주시면 좋겠다. 이렇게 엘레나 포니아토프스카가 내 기억에 새겨진다.

  그저 작품만 그랬던 건 아니었다. 이이의 독특한 신분도 흥미를 끌었었다. 25년 정도 오래된 인터넷 동무님이 일러준 내용. 마리아 스크워도프스카, 우리가 마리 퀴리로 알고 있는 퀴리 부인이다. 퀴리 부인의 둘째 딸 에브 퀴리가 어머니 마리 퀴리의 전기를 썼고, 전기의 일부가 학창시절 국어교과서에 나왔다고 한다.


​  “마리아 스크워도프스카!”

  “예.”

  “스타니스와프 아우구스투스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아라.”

  “스타니스와프 아우구스투스 포니아토프스키는 1764년에 왕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는 예술가와 학자들을 보호하고 나라의 결점을 알아 대책을 궁리했지만 용기가 없는 분이었습니다.”


​  이 스타니스와프 아우구스투스 포니아토프스키가 폴란드-라투아니아의 마지막 군주인 스타니스와프 2세이며 엘레나 포니아토프스카의 고조 할아버지다.

  그리하여 작중 주인공 마리아나가 프랑스에서 살 때의 베스 할머니는 당연히 공작부인이었고, 네 아들, 블라디미로, 에스타니슬라보, 미겔, 카시미로와 네 명의 며느리와 할아버지를 포함해 모두 열 명의 공작과 공작부인이 밀접하게 지냈다고 이야기함으로써 <아이리스>가 엘레나 포니아토프스카의 자전적 작품이라는 걸 밝힌 셈이다.

  그러면 어머니 쪽은? 작가의 어머니는 멕시코 사람이다. 그것도 고위 귀족이어서 부르주아 귀족은 혁명이 일어날 때마다 늘 타도의 대상이 되는 법이라, 멕시코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멕시코에서는 혁명이 하도 많이 일어나 언제, 어떤 혁명을 얘기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 가족 모두가 프랑스로 건너와 살다가 폴란드 왕족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파리에서 엘레나를 낳았다. 이때가 1932년. 잔나비 띠 소녀 엘레나가 열 살이 되던 1942년엔 독일이 프랑스 전역을 점령하고 비시 괴뢰정부가 나치에 협력하던 시기. 이미 연합군에 입대해 전투중이었던 아버지 때문에라도 더 이상 프랑스에서 사는 일이 바람직하지 않아 어머니의 고향 멕시코로 떠나고, 작품에서도 아버지를 뺀 가족 모두가 대서양을 건너는 것이 같다. 맞다니까, 자전적 소설이.


​  작중 주인공 마리아나는 자매 가운데 언니다. 한 살 적은 동생 소피아는 매사 반항적이고 자기 주장이 강하며, 시끄러운데다가 활발해 자유스럽게 춤추는 걸 즐기는 반면, 마리아나는 생각이 많고, 생각이 많으니 세상살이에 온갖 걱정거리가 많은 동시에 먹고 싶은 것도 많다. 자기 주장이 있어도 그걸 굳이 주장해서 세상 시끄럽게 만드느니 차라리 입 속에 담아 놓고 조금 불편하지만 일신상의 편안함을 중요시한다. 하기 싫은 피아노 교습도 꾸준히 받지만 당연히 성과가 큰 건 아니다. 책 읽기와 엄마 루스의 눈길을 조금이라도 많이 받기를 소원하는데 어떤 성향인지는 이 정도면 아실 듯. 자매는 파리에서 유년과 소년시절을 보낸다. 완벽한 프랑스식 교육을 받아, 프랑스 여성 가정교사 마드무아젤 뒤랑의 요강을 비우지 않았다고 귀싸대기를 맞으며. 물론 마리아나는 한 가지 이유로 두 번 따귀를 맞는 적이 없었지만 소피아는 마드무아젤 뒤랑에게 눈길로 칼날을 던지면서도 줄창 따귀를 얻어터졌다. 엄마 루스는 그러거나 말거나 어떻게 매일 그리도 파티며, 쇼핑이며, 바람 피우는 거 같지는 않지만 그리도 맨날 밖으로만 싸돌아다니는지 마리아나가 엄마 얼굴 한 번 보기도 바쁠 지경이었다. 이렇게 살았다. 금발을 가진 마리아나는 자기가 프랑스 사람이 아니며, 엄마 역시 프랑스 사람이 아닌 줄은 꿈에도 몰랐다. 더구나 미국 출신인 베스 할머니가 내셔널 지오그래픽 매거진에 나온 사진을 통해 보여준 멕시코는 가슴이 아래로 축 처지고 머리뼈가 울퉁불퉁한 흑인 여자들투성이며, 이 여자들은 사람을 통째로 구워먹고 삶아먹는 식인종으로, 이런 사람들만 사는 곳이었거늘.

  왜 할머니가 멕시코 사진을 나쁜 의도로 보여주었을까? 전쟁의 전황이 좋지 않게 돌아가자 일단 남프랑스에 살고 있던 조부모댁으로 거처를 옮긴 마리아나 가족은 이미 어머니가 멕시코 행을 결심한 상태였다. 폴란드 공작인 할아버지와 미국 출신 할머니 기준으로 삼류국가에 지나지 않는, 심지어 미국의 변소로 불리는 멕시코로 친손녀들을 아빠도 없이 데리고 가겠다니 사실 손녀들과는 다시 만날 일이 없다고 여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진짜로도 그렇다. 그러니 즐거운 마음으로 보낼 수 없었겠지. 하여튼 그래도 갔다. 몇 달 걸리는 항해 동안 소피아는 죽기 바로 전까지 뱃멀미를 했지만 멕시코에 어쨌거나 도착을 했고, 이때부터 마리아나는 다시 갈등 속으로 던져진다.

  “넌 멕시코인이 아냐.”

  “아냐, 난 멕시코인이야.”

  “아니라니까. 넌 양키야.”

  “난 멕시코 사람이야. 내가 멕시코 사람으로 살고 싶으면 멕시코 사람인 거야.”

  “아냐, 넌 금발의 양키야.”

  마리아나는 엄마가 멕시코 사람이리라는 것을 짐작도 하지 못했으면서 열 살 먹은 자신은 벌써 멕시코 사람으로의 정체성을 가지기로 작정을 한 것처럼 묘사를 했다. 뭐 그럴 수 있지. 라틴 아메리카 백인들의 문제는, 아직도 자신들이 유럽인인 것으로 아는 점이라고 주장한다. 누가? 로마 가톨릭 신부 자크 퇴펠이 주장하는 것처럼, 유럽에서 건너와 멕시코 사람들의 고혈을 뽑아 돈을 벌어 저택을 짓고 살며 여름마다 두어 달씩 유럽으로 휴가 떠나는 것들. 마리아나 식구들이 프랑스에서 살다가 왔으니까, 주로 프랑스 출신 멕시코 사람들을 상대로 말하는데, 그이들한테 너네는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어보면 백이면 백 다 프랑스 사람이라고 한단다. 정작 프랑스 사람들은 멕시코 국적으로 가지고 있는 프랑스 이민자들을 동포라고 생각도 안 하는데 말이지.

  갑자기 자크 퇴펠 신부? 마리아나는 멕시코에서 살면서 드디어 중학교에 들어가고, 전쟁이 끝나서 아빠도 멕시코로 이민 와서 제약 사업을 하게 되는 세월 속에서 스카우트, 즉 소녀단 수련 과정에서 이 자크 퇴펠 신부에게 크고 크고 또 큰 영향을 받는다. 유럽 출신의 부르주아들이 멕시코 현지인들을 착취하고 그들의 기름과 피를 빨아 치부하는데 여념이 없어서, 이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등의 혁명성을 심어준다. 이에 깊이 영향을 받은 마리아나는 집에 돌아가자마자 부모를 설득해, 멕시코에선 흰 피부의 남자들은 절대로 하지 않을 짓, 예를 들면 가래침을 힘껏 뱉는다든지, 만인이 바라보는 데도 나무 이쑤시개를 쓱 뽑아 이 사이의 음식 찌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밖으로 튕겨버리는, 손톱 밑이 새까만 신부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이 결과, 아버지와 소피아는 눈 하나 깜박이지 않은 반면에 어머니 루스와 마리아나는 완전히 자크 퇴펠 신부한테 반해버린다. 사회주의적 혁명을 웅변하는 신부는 식비와 주거비를 한 푼도 내지 않으면서 백인 부르주아의 저택 건물 하나를 통째로 빌어 그곳에 들어와 살게 되며 어머니와 큰딸을 현혹하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점점 성장소설적 분위기로 탈이 바뀐다.

  재미있다. 종교에 관심이 전혀 없는 나는 신부 등장 이후에 오히려 흥미가 반감했지만 종교를 가진 분들은 더욱 즐겁게 읽을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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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5-02 09: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르는 소설가가 왜 이렇게 많은지요!^^
내용의 배경으로는 프란츠 파농도 생각납니다.
이 책도 저장합니다~

Falstaff 2023-05-02 11:38   좋아요 1 | URL
파농은 프랑스라도 앤틸리스 제도의 프랑스령에서 태어난 유색인이니까, 포니아토프스카보다는 다음 주에 독후감을 올릴 마리즈 콩데와 더 비슷할 듯합니다. ㅎㅎㅎ
파농.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네요. ^^

그레이스 2023-05-02 11:41   좋아요 1 | URL
최근에 읽었는데, 유색인으로서의 심리와 문화정체성을 너무 잘 파헤쳤더라구요. 자신에 대한 정직한 탐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잠자냥 2023-05-02 13: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 왠지 금수저일 거 같았는데, 은수저였군요...
근수저인 저랑 다락방이 곧 읽어보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3-05-02 13:34   좋아요 1 | URL
이 양반 정도의 출신 성분은 아직 구경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전쟁 당시에 꼼짝 않고 파리에 있다가 아빠 따라 폴란드로 갔으면 숙청 최우선 순위였겠지만요.
이 책 역시 별점을 네 개 줄까, 다섯 개 줄까 고민하다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ㅋㅋ

stella.K 2023-05-02 19: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매치기의 손놀림처럼 재빨리 낚아채시다닛!
정전기가 파박 일어날 것 같습니다.ㅎㅎ
그런데 책을 잘 안 읽는 울나라 정서상 이렇게 잘 안 알려진 책은
그렇게 재빠르지 않으셔도 되지 않았나 싶네요.ㅋ
근데 평소 소설에 조예가 깊으신 문트님이나 재밌게 읽지
저같이 실팎한 사람은 읽을 수 있으려나 싶은데 마지막 부분을 읽으니
정말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신부가 등장하니 정말 구미가 당깁니다.ㅋㅋ

Falstaff 2023-05-02 19:26   좋아요 2 | URL
아주 재미나요, 신부가 등장한 다음 부터는요.
사춘기 소녀들이 딱 그 시절에 얼토당토 않는 사람을 흠모하는 감정이 드러나는데, 그런 건 경험해보지 못했던 터라 더 흥미로웠던 지도 모르겠습니다. ^^

coolcat329 2023-05-03 06: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조 할아버지가 왕이었다니 소설가들 중 최고 계급아닌가요? ㅎㅎ
지금 아는 작가도 안 읽은 책이 수두룩한데 이렇게 자꾸 알게되네요~^^

Falstaff 2023-05-03 16:11   좋아요 0 | URL
제가 아는 한 제일 높은 귀족의 자제입니다.
그럼 뭐해요, 벌써 21세기인 걸요. 촌스럽게 귀족은 무슨... 그죠? ㅎㅎㅎ
이 사람 작품이 괜찮습니다.
 
알리스 민음사 모던 클래식 46
유디트 헤르만 지음, 이용숙 옮김 / 민음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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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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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 년 전 유디트 헤르만의 작품집 《단지 유령일 뿐》을 읽고 단박에 70년 개띠 작가에게 반해버렸다. 참 주책도 없이 독후감 끄트머리에 이렇게 써버렸다.

  “정말 오랜만에 유디트 헤르만, 낯선 여자한테, 단 한 번의 눈길로 사랑에 빠져버렸지 뭔가.”

  이후 또다른 단편집 《여름 별장, 그 후》도 찾아 읽었으나 《알리스》는 품절 또는 절판이라 도통 구할 수 없었는데 은퇴하고 다니기 시작한 도서관에서 발견해 상호대차를 통해 읽었다

  짧은 단편집. 또는 다섯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연작 장편. 이번에 작품들을 관통하는 것은 죽음이다. 알리스Alice라는 이름의 여인이 주변에서 죽음을 맞는 다섯 명의 경우를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  알리스는 남자 미햐를 만났다. 사랑했고 그렇다고 결혼한 건 아니었으며 함께 살았다. 2000년 6월에 둘은 여행을 떠났으며 즐거운 휴가를 즐기고 휴가의 마지막 날엔 괜찮은 식사에 괜찮은 와인을 마시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이별했다. 우리는 내일 헤어지는 거야. 그래. 미햐가 말한다. 내일 가서 집을 정리할 테니까 너는 며칠 있다가 와. 그렇게 둘은 마치 계약기간이 끝난 운동 선수들인 것처럼 그렇게 평화롭게 이별했다. 여전히 사랑하지만 뭐 그냥 헤어져보는 게 어떨까? 그래, 인생은 생각보다 길 수도 있으니 이렇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네. 집에 돌아간 알리스는 살던 집이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는 것을 알았고 그의 물건만 정확하게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둘러 보지도 않고 순식간에 알아차렸다. 체온, 그거 하나 만이라도 남겨두고 갔으면 더 좋았을 텐데. 부질없는 생각을 한 번쯤 해보았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전한 삶은 계속됐다. 어떤 일이 있어도 생활은 계속 해야 하는 것이라서.

  몇 년 후, 마야의 전화를 받았다. 독일 남서부에 있는 자를란트 주의 츠바이브뤼켄에서 미햐가 죽어가고 있다고. 알리스는 알고 있었다. 마야를 만난 적은 없지만 그가 미햐와 결혼해서 등에 하트 모양의 반점이 있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을. 미햐는 돌이킬 수 없이 암이 깊어져 이제 모르핀을 주사해 고통을 덜어줄 뿐 최후의 날이 내일 혹은 모레가 될 지도 모를 지경에 이르렀으니 그가 죽기 전에 한 번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알리스는 동의했다. 그리하여 기차를 타고 츠바이브뤼켄에 도착해 마름모꼴 무늬 환자복을 입은 미햐, 뼈가 앙상하게 드러날 정도로 말라 해골같이 보이지만 손은 언제나 그랬듯이 부드럽고 따뜻한 미햐를 정말로 볼 수 있었으며, 미햐가 듣기도 하고 감촉도 느낄 수 있다는 간호사의 말을 믿지 않으면서도 마야가 없는 틈을 타 입술에 평소 자기가 하고 싶었던 스타일의 키스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며칠 후, 미햐는 죽는다. 그날 오후 알리스는 기차를 타고 베를린으로 떠난다. 숙소에 앉아 더 이상 미햐가 누워 있지 않은 병원을 바라보며 하룻밤을 더 보낸다면 미쳐 버릴 것만 같아서. 가족인 마야와 아이는 남아서 처리할 일이 있다. 알리스는 마야와 베를린에서 만나자고 약속하며 기차역까지 가는 택시에 오른다.

  유디트 헤르만은 쉽게 감정을 내보이지 않는다. 죽어가는 모습이 사실 그리 아름답지 않다. 알리스가 전에 사랑하기는 했지만, 어쩌면 아직도 사랑하고 있는 지도 모르긴 하지만, 이미 죽음의 손톱이 어루만져 겨우 호흡만 이어가는 환자의 입술에 키스를 하는 장면만 빼면 심지어 드라이한 문장으로 죽음이라고 말하는 인생 자체를 간결하게 정리한 작품이라 할 수도 있겠다. 알리스는 그곳에서 한 주 정도의 시간을 보내면서 미햐의 마지막 곁을 지켰으나, 그의 숨이 넘어가자마자 장례절차에 전혀 개입하지도, 참여하지도 않고 곧바로 집과 생활이 있는 베를린으로 떠난다. 죽음으로 이미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정리되었다는 것이겠지. 미련을 더 두어 무엇을 할까.


​  두번째 작품 <콘라트> 역시 죽음의 이야기. <미햐>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서도 죽는 사람의 이름이 콘라트이다. 콘라트가 알리스를 초청한다. 마침 여름이라 북이탈리아의 호숫가에 있는 자기 집에 놀러와 휴가를 즐기라면서. 친구를 데리고 와도 좋다고 해서, 알리스는 안나, 루마니아 남자, 이렇게 세 명이 독일에서 차를 몰고 북이탈리아로 향한다. 사실 처음 가보는 집이다. 콘라트가 구식 방법인 편지를 써서 오는 방법과 약도 같은 것을 보내주어 그것만 보고 따라간다. 드디어 도착한 노랗게 벽을 색칠한 집. 벨을 누르니 나타난 사람은 콘라트의 아내 로테. 콘라트는 심하지 않지만 열이 올라 지금 2층 침실에 있다면서 지금 모습을 보이는 걸 싫어해 나중에 보자고 한다. 유럽 사람들은 그것이 예절인 모양이다. 그래도 이들은 어차피 휴가를 온 것이니 첫날부터 빙하가 녹아 모인 물이라서 차디찬 호수에 들어가 수영을 하고 일광욕을 하고, 가까운 식당에서 괜찮은 식사와 뻗어버릴 만큼 술을 들이켠다. 그러는 동안 콘라트의 열이 점점 더 높아지고 내일 아침, 거의 새벽에는 환자를 입원시켜야 하겠으니 루마니아 남자가 운전해 주는 일을 자원한다. 불과 몇 시간 남지 않았고 지금은 완전히 만취상태인데.

  그러나 만취/숙취 운전으로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정상적으로 병원에 입원한 콘라트 씨는 점점 상태가 좋아지지 않았고, 급성 폐렴으로 번졌으며, 며칠 후 세상을 뜨고 만다.

  휴가객들은 한 사람의 생명이 꺼져가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찬 호숫물에서 수영을 하고, 위험해 보일만큼 멀리 헤엄쳐 나가기도 하고, 차례로 루마니아 남자와 관계를 갖기도 한다. 죽음은 죽음이고, 삶은 삶이니까. 콘라트는 관에 실려 알프스를 넘어 고향 독일로 향하고, 세 명의 여행객은 다시 차에 타서 지루한 운전을 시작한다.


​  세번째 <리하르트>에서는 리하르트의 커플인 마르가레테가 부탁 전화를 한다. 담배와 물이 필요하다고, 사실 그 밖엔 필요한 게 없지만 담배와 물은 정말, 당장 필요하니까 사다 달라고. 그래서 알리스는 동거인 라이몬트가 책을 보며 침대에 누워 있는 토요일 오후에 편의점에 들러 생수와 여자들이 피우는 슬림라인 담배 두 갑을 사서 중증환자 리하르트가 누워있는 병원으로 향한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리하르트는 죽는다. 네번째 작품 <말테>는 이미 죽은 알리스의 외삼촌이다. 40년 전 3월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 4월에 태어난 알리스는 말테 삼촌을 본 적도 없다. 살면서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슬금슬금, 가끔 기어나오기도 했던 말테 삼촌의 행적을 찾아보고, 삼촌의 애인이 삼촌보다 열 살 정도 많았던 프리드리히 씨였다는 걸 알아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고, 문득 기억이 난 알리스는 전화번호부에서 프리드리히 씨의 전화와 주소를 알아내 연락을 해, 만났다. 이미 40년이 흐른 오래된 죽음. 시간에 의한 부식된 죽음의 잔해. 그렇다. 덧없다. 마지막 <라이몬트>는 <말테>보다 더 세월이 흐른 날, 남편인지 여전히 그저 동거인인지 밝히지 않은 반려자 라이몬트의 죽음이다. 평소 알리스보다 오래 살겠다고 말해온 남자. 말 한 대로, 마음 먹은 대로 되면 그건 인생이 아니어서 라이몬트가 일찌감치 생을 접었다. 다시 홀로 남은 알리스. 이이는 자신의 삶 속에서 경험한 죽음, 또는 죽음과 관계된 일을 다시 한 번 회상하면서 마지막 작품 속에서 앞의 네 죽음을 소환하며 마지막 작품을 맺는다.


​  유디트 헤르만 다운 작품집, 혹은 연작 장편이다. 화려한 수사 대신 서늘한 바람으로 공간을 채우는 헤르만. 이이를 감상하는 포인트는 단연 문장, 또는 문체다. 냉정하고 간결한 문장으로 죽음을 이야기하면서도 궁극적으로 독자에게 죽음의 극복이나 삶의 연속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들. 이렇게 글을 쓰니 어떻게 한 자리에서 다 읽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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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4-29 0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알리스> 망한 반디 통해서
어렵사리 구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는 지인이 한국에서 책은 일단
언제 절판될 지 모르니 당장 읽지
않아도 사두어야 한다고 했었는데
격공하는 바입니다.

저마니 스타일의 심드렁하면서도
뭐랄까 인간 내면의 무언가를 톡톡
건드리는 맛이 아주 기냥.

Falstaff 2023-04-29 17:16   좋아요 1 | URL
오, 반디. 오랜만에 듣는 이름입니다.
하여튼 유디트 헤르만, 독자를 은근히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는 작가입니다. 진짜 제 취향입니다. ㅋㅋ

coolcat329 2023-05-01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지 유령..골드문트님 강추로 사뒀는데 까맣게 잊고 있었네요.
이런 책도 있군요..
죽음을 소재로 한 연작소설이라니 끄립니다. 몽환적인 표지도 이쁘구요.
저도 일단 구해보고 못 구하면 나중에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야 겠습니다.

Falstaff 2023-05-02 05:30   좋아요 1 | URL
제 취향에 딱 맞는 작가입니다. 다른 분들한테도 맞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고요. 아무쪼록 쿨캣 님도 즐기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 이런 스타일을 꽤 좋아하거든요.
 
성벽 안에서 - 페라라의 다섯 이야기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조르조 바사니 지음, 김운찬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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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라라의 다섯 이야기”라는 부제목을 가진 조르조 바사니 선집 1권이다. 조르조 바사니라면, <금테 안경>, 조르조 바사니 선집 2권으로 나온 짧은 장편소설이 워낙 유명해, 나도 당연히 <금테 안경>을 읽고 바사니의 글에 반했었다. 그게 바사니를 기억하게 된 내력이다. 그의 선집을 다 읽어야지, 했다가, 어떻게 까맣게 잊고 세월이 벌써 6년이 넘는다. 시간은 정말 쏜 살이다.


​  바사니는 1916년 이탈리아의 볼로냐에서 유대인 부르주아 가정의 맏이로 태어나, 유년기부터 1943년까지 27년 동안 페라라시의 치스테르나델폴로 거리의 저택에서 산다. 이곳에서 왕립 고등학교도 다니고 볼로냐에 있는 대학에 입학해 기차 통학을 하며 음악, 미술, 문학 등 부르주아 유대인에게 어울리는 다양한 문화적 탐험을 시작한다. 그러다가 1939년에 이탈리아 검은 셔츠당이 악명 높은 인종법을 통과시켜 바사니는 고난을 겪기 시작하는데 이 와중에도 대학을 졸업하고 적극적인 반 파시즘 운동을 펼치기 시작한다.

  읽은 책 《성벽 안에서》의 작품 <클렐리아 트로티의 말년>에 나오는 주인공 부르노는 작가와 마찬가지로 페라라의 유대 학교의 교사로 활동하고, <마치니 거리의 추모 명판>의 주인공 루제로 요즈처럼 치스테르나델폴로의 저택에 살다가, 부헨발트 같은 곳은 아니지만 이탈리아 파시스트들에게 검거되어 짧게 감방생활을 하고 돌아오니 반파시즘 활동을 하는 파르티잔이 자기가 살던 저택을 점령하고 있는 것 등, 자신의 경험을 반영하는 씬이 많이 들어 있다. 책 속의 몇몇 작품에서, 주인공의 부모는 아들을 적절한 시간에 여권을 받게 해 출국/도피시키려고 하는 반면, 당사자인 늙은 부모는 이 나이에 어디를 방황하라는 얘기니, 라고 페라라에 머물다가 파시스트들에게 체포당해 부헨발트 같은 곳으로 끌려가 가스실의 재로 사라졌다고 한다. 이것도 사실인지 궁금해서 위키피디아나 상세한 연표를 훑어보았는데 결국 알아내지 못했다.


​  나는 제일 앞에 실린 첫 작품 <리다 만토바니>를 제일 재미있게 읽었다. 놀랍게도 유대인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유대인일 수도 있는 등장인물이 한 명 나오기는 하지만 그가 유대인이건 유대인이 아니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그저 한 명의 선한 남자다. 끈질기기는 황소 힘줄 같은.

  리다 만토바니가 출산하는 것이 첫 장면이다. 어려서 죽은 리다의 오빠 이레네오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것을 보니 로마 가톨릭을 믿는다. 근데 리다는? 리다의 엄마 마리아 만토바니 역시 20년 전 마사피스칼리아의 공장 직공에게 홀딱 빠져 리다를 낳는다. 이후 불과 이삼 킬로미터 떨어진 들판에 있던 고향집을 영원히 떠나야 했으며, 이후 지금의 이곳에서 나머지 생을 살고 있는 중이다. 이런 와중에 딸 리다는 유대인이기는 하지만 시내에서 가장 유명한 부자 가문 가운데 하나인 카마이올리의 아들 다비드가 대학 진학을 앞두고, 아직 채 끝나지 않은 사춘기적 방황의 일환인 것이 분명한데, 스스로 노동자로 살겠다는 치기어린 각오를 한 후, 격에 어울리지 않는, ‘격’의 격차조차 염두에 두지도 못할 하급 시민 중에서도 하급 시민의 딸 리다와 나름대로는 열애에 빠져, 짧은 시간 동안 방을 얻어 같이 살다가, 당연히 임신으로 했는데, 출산일이 다가오니, 사생아의 아버지가 되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사춘기 시절을 빠져나가는 한 무책임한 유대인 청년이, 세상을 보는 눈이 번쩍 뜨임으로 해서 그저 주머니 속에 든 몇 백 리라를 건네고는, 허약하지만 결코 일찍 죽을 팔자는 아닌 자기 아들의 얼굴도 한 번 보지 않고 결별을 고한다.

  사생아 아들을 낳은 사생아 여인은 뭐 그럴 수도 있지, 별로 고민하는 것 같지도 않았으며 자연스럽게 엄마 마리아의 집으로 다시 돌아온다. 이렇게 할머니 마리아, 엄마 리다, 아기 이메네오, 세 식구가 사는 집. 이들에게도 이웃이 있다. 가장 중요한 이웃은 리다보다 한 서른 살 정도 많은 오레스테 베네티 씨. 살린궤라 거리에 자리한, 인쇄소까지는 아니고, 책 제본소의 사장이다. 매사 신중하고 생각이 깊으며 선한 성격까지 가지고 있으니 거 참,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라고 할 밖에. 그런데 여자들도 눈이 삐었지, 뭐 잘 생기지는 않았지만 반듯하고 성실한 이 남자가 여태 결혼은커녕 약혼도 한 번 해보지 않은 숫총각, 아니, 아니, 설마 이미 멸종한지 오래라고 하는 숫총각이기야 하겠어, 하여간 노총각이란다. 마리아 만토바니는 한 눈에 척, 알아본다. 베네티는 틀림없이 리다 때문에 오는 거야. 참 생각도 깊지, (폐를 끼칠까봐) 어떻게 저녁식사가 딱 끝났을 때를 골라, 들러서 두 시간 정도 이런저런 세상 사는 이야기도 하고, 1907년의 겨울이 가장 추웠는데 포 강이 꽝꽝 얼어붙었었다는 얘기도 하고, 그러다가 그저 지나가는 말처럼 한 마디 툭 던지면서, 리다, 나하고 결혼할래?

  마리아는 이 말이 나올지 알고 있었지만, 정말로 나이 많은 베네티 씨의 입에서 결혼하자는 소리가 자신이 아니라 리다를 향해 나오니까 조금 어이도 없고 기도 막히겠어, 아니겠어? 리다는 아버지 뻘인 베네티 씨가 애초에 자신한테 청혼할 수 있다는 걸 짐작할 수준이 아니어서 그저 어리둥절. 하여간 이렇게 어영부영 청혼은 무시되고, 물론 단칼에, 싫어! 하지는 않았지만 안 하는 걸로 확정된 것과 마찬가지로 끝난다. 그러나 위에서 얘기했다시피 착한 성품의 베네티 씨는 또한 쇠심줄이기도 해서, 이후에도 줄기차게 이 쌍과부 집을 드나드는데, 어느 새 쌍과부 집 식구 가운데 유일한 사내인 이메네오가 중학교를 들어가고, 졸업하고, 베네티 씨가 흔쾌하게 이메네오를 자신의 도제로 삼아줄 때 쯤해서 평생을 외롭게 살아온 마리아가 폐렴으로 숨이 넘어갈 때, 오레스테 베네티는 마치 자기가 죽은 이의 친 오라비나 되는 것처럼 사제도 불러오고, 동네 여인들도 불러와 경야를 보내게 하기도 하고, 있는 것이 돈 말고는 별로 없으니, 페라라에서 가장 비싼 무덤 자리를 사서 장사지내준 후에 드디어 리다로부터 결혼 승낙을 받아내고 만다. 햐, 내가 리다라도 결혼하고 만다. 좋은 외모는 아니지만 이렇게 성실하고, 돈 많고, 앞으로도 돈을 쌓아놓을 수 있는 제본소도 팽팽 잘 돌아가는 걸로 가지고 있고, 아내 알기를 하늘처럼 아는 데다가, 무엇보다도, 빨리 죽을 나이라면 말이지.


​  선한 오레스테 베네티 씨가 유대인이라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돈이 많고, 1935년의 어려운 시절에도 손에서 결혼반지를 빼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을 빌미 삼아, 유대인이랄 수 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근데 이건 작가 바사니가 유대인이기 때문에 억지로 물 끌어와 내 밭에 대는 일, 아전인수我田引水다. 나머지 작품 속에서는 유대인들이 빠짐없이 등장해 그들이 겪은 고통과 눈치를 묘사하고 있음에야.

  유대인 작가들 가운데 내가 조르조 바사니를 특히 좋아하는 이유는, 뭐 무엇보다 문장이 매력적이어서 그렇지만, 유대인 핍박의 궁상맞은 장면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있다. 깔끔하게, 그냥, 울 부모 수용소로 끌려가 거기서 돌아갔다. 이렇게 말 하고 마는 정도다. 반 파시즘 운동을 할 때도 파시즘에 의하여 고통을 받았던 한 부류로만 선을 딱 그어버린다. 사회주의자, 민주주의자, 유대인, 이 정도로. 나는 이걸 어떻게 받아들였느냐 하면,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민주주의자, 소수민족, 유색인들이 파시스트한테 받은 고통과 상처와 같은 수준으로 유대인의 피해의식을 처리했다고 본다. 물론 유대인에게는 조금 더 심했겠지. 그래서 실제로 조르조 바사니가 당시에 반 파시즘 운동에 참여했듯이, 작품 속에서도 유대인 등장인물은 사회주의자나 파르티잔들과 협력을 모색하고 친밀하게 지내며 여러 방향으로 선을 대고 있기도 하다. 요즘 유독 유대인 작가들의 작품을 열라 읽게 되는데, 조르조 바사니 순서가 오니까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그 동안 묵혔던 귓구멍 속 귀지가 다 떨어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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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04-27 1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사니군요! 1작품읽고 더 읽어봐야할 작가군에 등록한지 오래되어씁니다만..잊고 지냈습니다. 문트님 독후감을 보니 다시 콜렉션의 의지가 솟네요! 무려 별5..주문하러 고고~~

Falstaff 2023-04-27 17:48   좋아요 0 | URL
즐겁게 읽으시기 바랍니다. ^^
 
움푹한
윤해서 지음 / 시간의흐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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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에 윤해서의 《코러스크로노스》를 읽고 쓴 독후감의 한 문장을 따서 2020년에 윤의 장편소설 <0인칭의 자리>에 그대로 옮겨 썼으니 바로 이러했다


​  “내 독서목록에 이 작가를 보탠다는 것이 축복이다.”


​  구라같지? 정말이다. 당시 우리나라 작가들이 쏟아내던 고만고만하고 우중충한 소설들 속에서 윤해서를 발견하고는 번쩍, 이 81년생 부천태생의 작가가 도대체 누구야? 누군데 이렇게 참신한 시각으로 사물과 사람을 조망해 전위적으로 쓸 수 있는 거야? 깜짝 놀랐었다. 그렇다, 번쩍하고 깜짝. 그러나 이런 감격도 잠깐. 두 번째 읽은 윤해서, <0인칭의 자리>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그리하여 이이의 다른 작품이 나왔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굳이 찾아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코러스크로노스》의 작품들은 스토리도, 시간도, 세계도 사라져버리고 대신 작품 안, 그러니까 문장 속에는 회화와 음악이 틈입하고, 약간의 과장을 보태자면, 기어이 소나타 형식의 음악을 만들어냈다. 소나타 형식이다. 문학에서 간혹 시도하고 있는 대위법이 아니라. 서사와 시간이 사라진 자리를 대신하는 회화성과 운율이라니, 말 다했지 뭐. 이건 다른 얘기로, 윤해서와 그리 맞지 않는 독자들이 읽으면 경끼하기 딱 좋게 깔맞춤된 소설집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반면에 <0인칭의 자리>에서는 산문과 운문을 상호보완 또는 경계를 파괴하려고 한 것 같은데 아쉽게도 《코러스크로노스》를 읽은 후 갖게 된 기대에 미치지 못했었다. 그리고 2022년. 윤해서가 다시 돌아왔다. 역시 시간과 서사가 마구 엉켜버린 소설 <움푹한>을 가지고.

  제목이 <움푹한>이다. 그러면 “움푹함”이 어떤 함의를 가지고 있을까? 책 속에 비교적 상세한 설명이 나오기는 한다. 물론 독자가 설명 그대로 믿을 필요는 없다. 내가 이해한 움푹함은 일종의 블랙홀이다. 한 방에 확 빨아들여 일단 안에 들어갔다 하면 세상의 모든 것과 단절된 것처럼 감각이 사라지는 현상. 마치 작품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의 아이디어로 만든 도심 속 공원 사일런스 파크 Silence Park의 중심에 지은 완벽한 정적의 건물인 “고요의 집”처럼. 참고로 한 마디 보태자면 “고요의 집”이 장편소설 <움푹한>의 1장 소제목이다. 그러니까 마지막 장면을 제일 앞에 두고 이후 그것을 설명하다가 마지막에 다시 등장시키면서 작품이 끝나는 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이고, 작품 속에서도 시간대는 순식간에 좌충우돌 변하기 십상이니 독자는 정신 좀 차리고 책을 읽어야 할 듯.

  네 명의 주요 등장인물이 있다. 웬수 같은 언니와 엄마한테 치어 없는 집에서 대학에 가기 위하여 2년간 아르바이트를 했고, 진학 후에도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휴학을 반복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영국 유학의 꿈을 이루기 위해 또다시 일을 했지만 정작 유학을 마치고 귀국을 하니 변변한 일자리도 구하지 못했던 조경 전문가 김운. 사실상의 주인공인 주이영과 절친이며 엄마와 언니 대신 1층에 살다가 거북이 한 마리가 담긴 어항을 남겨주고 요양원에 들어간 할머니를 회상하며 가족간 소외를 견뎌가고 있다.

  새벽 다섯 시에 집에서 나와 한강변을 따라 달리기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주현우는 주이영의 친오빠이며, 이영이보다 나이가 많아 이영이 속이 상할 때면 자주 업어주기도 했던 친구같은 남매이고, 직업은 작곡가다. 윤해서답게 주현우가 작곡하는 음악은 감정을 완전하게 건조시킨 절대음악 쪽이다. 현대 작곡가니까 당연히 들으면 보통의 감상자의 귀에는 소음처럼 들릴 것이라 지레짐작은 하지 마시라. 음악 분수에서 거꾸로, 즉 허공을 향해 물입자를 쏘아 올려 마치 빙산인 것처럼 효과를 낼 때 배경음악으로도 사용하니까 현대음악 치고는 듣기 순한 장르인 것처럼 보인다. 집을 나가 독립해 살다가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이영의 방문에 걸린 작은 칠판에는 하얀 분필로 “곧 돌아오겠음.”이라 쓰여 있지만 이영은 절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마태오는 학살이 일어나기 5년 전에 르완다에서 태어나 여섯 살 때 미국인 부부에게 입양되어 미국인으로 살아간다. 워싱턴에서 사학을 전공하다 경영학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떠난 주이영과 운명 같은 사랑에 빠져버리고 만다. 이들은 르완다로 갈 생각도 있었지만 어떻게 하다 보니 주이영의 땅인 한국에 와서 동거하기에 이르렀고, 이영이한테 한국어를 배워 이영하고 매우 유사한 언어를 사용한다. 우리나라 사람과 비교하면 큰 키와 딱 벌어진 어깨를 가지고 있지만 미국인과 비교해서는 그렇지 않았고, 상대적으로 작은 키와 작은 몸이 주이영이 마음에 들었지만 그것보다 더 와 닿았던 것은 오빠 현우를 닮은 시선이었다. 물론 현우는 현우대로, 마태오는 마태오대로 그것에 관해서는 이영이 의견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럼 주이영은? 모른다. 고등학교 동창생인 김운과 함께 졸업 겸, 민물 거북을 바다에 방생하려고 한 겨울에 강릉 바다로 기차를 타고 떠나기도 하고, 워싱턴 공원에서 큰 개 옆에 누워 개의 몸에서 나는 고소한 냄새를 즐기다가 마테오를 만나 사랑을 꽃피우기도 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취직을 하기도 했지만 어느 날 업무 차 상급자와 함께 강릉으로 출장을 갔다가 자신이 운전한 차가 상급자를 태운 채 바다에 빠져 남자 상급자는 익사를 하고 이영이는 행방불명이 되고 만다. 이영은 프리다이빙 자격이 있을 정도로 수영이 능숙해 가족과 친구들은 아직 살아있으리라는 실낱 같은 희망을 가지고 있지만, 이런 작품이 자주 그러하듯, 희망을 가진 사람들은 늘 불행하다.

  문제는 주이영의 실종이다. 세 등장인물은 원래부터 말도 없고, 침잠하고, 늘 생각에 잠겨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참 재수없다, 라고 생각할 정도라고 보이는데, 이젠 정신건강도 매우 심각하게 불량해져 있다. 왜 우리나라의 젊은 작가들은 이 윤해서 언니를 포함해서 작품이 이리도 우울한지, 이것에 관해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우울해도 정도가 있지, 실종된 주이영을 제외하고 전부 애초 기질이 우울한데다가 절친과 누이와 연인의 갑작스러운 실종 때문에 독자까지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다. 하긴 주이영 역시 우울에서 크게 예외는 아니다. 워싱턴의 배터리 캠블 공원에서 이영은 매일 농담처럼 말하곤 했다.

  “오늘의 움푹함이 필요해.”

  움푹한 곳에서 소리를 지르면 메아리가 돌아올 뿐 소리가 빠져나가지 않듯, 마음이 머물 공간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마음이, 마음도 흩어지지 않게.

  주이영은 몇 년 후, 자신의 실종이 나머지 등장인물에게 움푹함, 그것도 심하게 움푹한 움푹함이 되어버린다는 건 전혀 알지 못했다. 그들의 우울과 상실과 허무가 돌이킬 수 없게 깊어지는 움푹한 구멍. 아, 너무 많이 이야기한 건지 모르겠다.


​  그러나 나는 이 작품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지 않다. 첫째가 과도한 우울의 습관 때문이다. 아주 우울이 뚝뚝, 철철, 우르릉꽝꽝 떨어진다, 40일 동안 내린 폭우처럼. 둘째가 주이영의 실종 사건이 과하게 작위적이다. 특히 실종 사건, 자동차를 바다에 거꾸로 빠뜨리기 위해서, 반드시 주이영이 강릉 바다에 빠져 실종되어야 하니까 여러 경우를 상정했겠지만, 아쉬워라, 더 오래 고민했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건 내 의견일 뿐, 결정은 작가의 몫이다. 그리하여,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 후하게 점수를 주지 않는 건 독자인 내 마음대로이니, 이것도 이해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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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4-25 06: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표지 느낌 !!!
좋은데요!
뭔가 있을것 같은...
블랙홀, 음푹함..
그렇네요
윤해서 입력합니다!

Falstaff 2023-04-25 08:13   좋아요 1 | URL
넵. 흥미로운 책입니다. 근데 이런 류의 작품을 좋아하셔야 할 텐데요. 완전 독자의 기호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거 같아서 말입죠. ^^;;
 
버너 자매 을유세계문학전집 114
이디스 워튼 지음, 홍정아 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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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디스 워튼은 내게 좀 특이한 작가다. <기쁨의 집>을 불만족스럽게 읽고, <순수의 시대>를 읽은 다음에 다시는 워튼을 찾지 않겠다고 작심을 했다. 아니다, 거꾸로다. <순수의 시대>를 3년 반 전에 먼저 읽었구나. 하여간 그런데 이후에 <이선 프롬>과 <여름>, 이 완벽한 두 권의 뽕짝을 어떻게 하다가 그것도 내돈내산으로 읽으면서 전근대적이긴 하지만 약간의 호감이 생겼다가, <암초>까지 와서는 이것 참,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작가로 여기게 됐다. 그렇다는 말이다. 기껏해야 딜레탕트, 아니면 한 아마추어 독자가 이렇게 생각이 변해온 것뿐이다. 처음 <순수의 시대>와 <기쁨의 집>에선 지긋지긋하게 나를 괴롭히는 계급의식을 극복하지 못했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이디스 워튼 표 섬세한 심리 묘사를 놓치고 아메리칸 청교도 부르주아의 잘난 척에 심하게 반발했던 것은 아닌지. 그렇다고 다시 그것들을 읽어보지는 않겠지만 하여간 그랬다. <이선 프롬>과 <여름>은 읽을 때는 재미나게 읽어 놓고, 조금 시간이 지나니까 그게 생각만큼 인상깊지 않다고 생각하게 됐다. 지금은 앞에 읽은 장편 두 편이 뒤에 읽은 짧은 장편 또는 긴 중편보다 더 윗길이지 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들은 다섯 번째 읽은 <암초>로 말끔하게 정리가 된다. 긴박한 스토리를 꾸려나가면서도 심리소설이란 이런 것이라는 듯, 이제서야 이디스 워튼의 진짜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을유문화사에서 낸 작품집 《버너 자매》가 시중에 풀렸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일단 관심 집중, 그럼에도 이제야 읽었으니 만시지탄이랄 밖에.


​  표제작 <버너 자매>는 좀 긴 중편, 또는 짧은 장편으로 분류할 수 있을 터인데, 그건 작품의 길이 측면에서 본 것이고, 구조상으로는 중(단)편이라고 해야 맞을 듯하다. 버너 자매, 앤 엘리자와 에블리나 버너에 관한 시선만 유지하는 시각으로 쓰였다는 말이다. 함께 실린 <징구>와 <로마열熱>도 단편이니까 이 책은 단편집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당연히 여성들이 이야기의 주가 되고, 세 편 다 워튼 표 심리묘사가 아주 탁월하다. 세상의 모든 수작은 심리소설이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이디스 워튼 만큼 섬세한 심리와 탁월한 반전을 독자에게 즐기게 해주는 작가는 별로 없지 싶다. 단편집 또는 작품집을 읽을 때 흔히 즐겁게 읽은 작품도 있는 반면에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있다고 독후감을 쓰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 책은 다행스럽게도 세 작품 다 마음에 들었고, 마음에 든 이유는, 글쎄 이렇게 이야기하면 젠더 차별일 수도 있겠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남성들이라면 쓰기는커녕 생각조차 하지 못할 만큼 바늘같이 섬세한 심리소설을 만들어 냈기 때문 아닐까? 하여간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 턱뼈에 약한 통증이 왔다. 턱이 턱, 하고 떨어져버려서. 거 참. 워튼을 며느리가 집 나갔다가 돌아온 시에미 보듯 했으면서 어느 순간에 이렇게 찬사를 늘어놓고 있는지, 사람 마음이 간사하기가 짝이 없다.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이 딱 하나 있는데, 번역을 같은 출판사에서 같은 세계문학 시리즈로 찍은 프랭크 노리스의 <맥티그>와 똑같이 홍정아, 김욱동 공역이란 것. 해설 역시 <맥티그>하고 판박이로 김욱동이 썼다. 다만 다른 건, 《버너 자매》는 홍정아, 김욱동 공역이고, <맥티그>는 김욱동, 홍정아 공역이라는 거 하나. 어떤 형태의 번역을 공역이라고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초벌 변역은 홍(또는 김)이 하고, 재벌 번역을 김(또는 홍)이 했다는 거야, 아니면 <버너 자매>는 홍이 하고 <징구>와 <로마열>은 김이 했다는 말이야? 책원고지 밥 먹은 내력으로 봐서 원고료는 똑같이 배분… 했겠지. 왜 내가 이거 가지고 유난을 떠느냐 하면, 두 명의 공역자 가운데 한 명은요, 제가 무지 안 좋아하거든요. 그이 때문에 이 책 선택에 시간이 들었는지도 모르거든요. 누구냐고요? 절대 안 알려드립니다.


​  <버너 자매>의 무대는 미국의 뉴욕이다. 발표는 전쟁중이던 1916년에 했지만 작품의 시대는 전쟁하고 아무 상관이 없는 시절, 그러니까 늦어도 1910년대 초반, 부르주아 전성기 시절. 하지만 화려한 뉴욕의 번화가가 아닌 뒷골목에 자리잡은 작지만 깔끔한 가게 “버너 자매”. 주로 여성용품을 판매하는 곳으로 그게 그것인 보닛 하나를 팔아도 미세하게 눈에 돋보여 여성들이 좋아해 즐겨 찾고 좋아하는 상점이다. 실과 천을 비롯해 옷핀, 바늘, 뜨개실 같은 것들과 삯바느질도 한다. 언니는 결혼하기를 포기한 것처럼 보이는 앤 엘리자로, 동생 에블리나의 행복을 위하여 자신의 행복을 희생할 수 있는 독실한 기독교도 정도로 보면 된다. 에블리나 역시 착한 마음씨와 눈썰미, 그리고 놀라운 손재주를 가지고 있어서 가게를 열어 조금씩 저축도 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스테이크도 구워 먹을 수 있는 수준의 살림을 꾸려나가게 하는 살림꾼이다. 이렇게 모자란 것 없이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고 있던 버너 자매. 아참, 모자란 것이 딱 하나 있었다. 바로 남자. 하필 막이 오르면 동생 에블리나 버너의 생일이다. 언니는 동생에게 줄 생일선물로 탁상시계를 골랐다. 집에 시계가 없어 동생이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대충 옷을 걸치고 밖에 나가 저 멀리 서 있는 교회의 시계탑을 보고 시간을 아는 일이라서 벌써부터 시계를 선물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오늘 오후에 길 건너 시계점에 가서 탁상시계를 하나 사온 거다. 문제는 독일 출신으로 보이는 시계포 사장 허먼 래미가 한 서른 살 정도이고 그리 인물이 빠지는 것도 아닌데다가, 건강이 조금 안 좋아 보이긴 하지만 원래 여자와 남자 사이에 애정이 싹트려면 별 게 다 좋아 보이는 법이라서 그것도 매력적이었다. 원래는 귀금속과 사치품 전문점인 티파니(오드리 헵번 나오는 <티파니의 아침>에서 그 ‘티파니’가 맞다!)의 관리자였다가 건강 때문에 사직을 했다고 한다.

  시계에 문제가 생겨 다시 허먼 래미와 연결이 되고, 저녁 식사에 래미 사장을 초대해가며 우정을 돈독히 하다가 자연스럽게 허먼 래미는 언니 앤 엘리자에게 청혼을 한다. 하지만 앤 엘리자는 동생 에블리나가 허먼 래미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확신해서 래미의 청혼을 거절하고, 래미는 꿩 대신 닭이라고 동생 에블리나한테 또 청혼을 한다. 에블리나는 당연히 좋아서 죽지, 좋아서. 여태까지는 그리도 돈독한 자매 사이가 한 남자가 등장하면서 미세 균열이 일어나고, 언니한테 거절당한 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동생한테 청혼을 한 남자를 의심스럽게 바라보는 자매들도 한심하기는 한데, 빠지는 인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잘 생기지도 않았으며, 건강까지 좋지 않은 남자와 선뜻 결혼하겠다는 건 또 뭔지. 하여간 소설에 나오는 연애는 번갯불에 콩을 구워 먹어요. 작품을 생산한지 백년이 훌쩍 넘은 오늘날, <버너 자매>를 읽는 독자는 둘 가운데 하나로 결말이 나겠구나, 하고 짐작을 한다. 첫째는 래미 사장이 에블리나에게 청혼을 해서 승낙을 받기는 하지만 결국엔 언니 앤 엘리자하고 혼인을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고, 둘째는 래미 사장이 하는 짓을 보니 이 결혼은 초장부터 깨진 쪽박이거나 중혼일 수 있겠다, 하는 것. 그러나 어느 쪽으로 갈 지는 당연히 안 알려줌.


​  그러나 나는 <버너 자매>보다 단편 <징구>와 <로마열>을 더 재미있게 읽었다. 심지어 빼어난 워튼 표 심리묘사가 흥미진진하기까지 했다. 두 단편 모두 미국의 상류층 여성들이 출연진이고 심지어 남자는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 <징구>는 상류층 여성들의 위선과 속물성을 사정없이 까발리는 통쾌한 작품이며, <로마열>은 어려서부터 친구 사이인 앤슬리 부인과 슬레이드 부인의 숨막히는 신경전, 그것도 오래 전에 로마에서 있었던 한 남자에 관한 신경전인데 진짜 재미있게 읽었다. 단편소설인 만큼 스토리를 더 이야기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읽어보시라 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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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3-04-22 1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저 <순수의 시대> 읽기 시작했는데! 그럼 골드문트님은 읽으신 것 중에 <버너 자매>가 제일 괜찮으셨다는 거죠?

Falstaff 2023-04-22 16:59   좋아요 1 | URL
에휴, 본문에 썼다시피, 이 양반의 책과 제 합이 많이 애매한 바, 뭐라 답을 드리기 쉽지 않네요. 하여튼 본격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된 작품은 <암초>였고요, 점점 디스카운트 했던 소품이 <이선 프롬>하고 <여름>이었습니다.
이 책 뿐만 아니라 워튼의 책들을 지금 생각하면, 아슬아슬한 심리묘사가 놀라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

그레이스 2023-04-24 2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징구!
알겠습니다

Falstaff 2023-04-24 21:15   좋아요 1 | URL
옙. 어느 출판사가, <징구> 한 편으로 책을 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다락방 2023-05-10 15: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징구> 라는 책 제목으로 단편 세 편이 실려있어요. 그리고 거기에 골드문트 님이 리뷰하신 <로마열>도 들어 있습니다. 제가 읽은 <징구>에 실린 <로마열>은 <로마열병>으로 실려있는데, 아주 기가 막히게 재미있게 읽었더랬어요. 리뷰하신 <버너 자매>를 읽고 싶은데 그렇다면 제가 가진 단편집과 두 편의 단편이 겹쳐버리네요. 아까워라.. 그래도 버너 자매 읽어볼래요!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요. ㅎㅎ

잠자냥 2023-05-10 17:31   좋아요 0 | URL
:( 제가 그래서 이 책을 사지 않은 것이지요…. 버너자매만 어케 읽고 싶네 ㅋㅋㅋㅋ 도서관 찬스!

Falstaff 2023-05-11 05:25   좋아요 0 | URL
징구, 그 책 가지고 계시면 이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게 갑인데, 다락방 님은 잘 안 가시는 거 같아요 말이죠.
버너 자매 읽으시면 속 좀 터질 거 같아서 강추는 못하겠고요, 그래도 마음이 땡기면 읽으셔야지요 뭐.
결말에 제가 두 경우를 두었잖아요. 근데 사실은 두 경우 다 구라랍니다. 아주 다른 결말이 기다리고 있어요. ㅎㅎㅎ

은하수 2023-05-11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곧 읽을거라 골드문트님 리뷰가 끌렸답니다^^
버너자매보다 뒤에 두 단편을 먼저 읽어보고 싶을 정도예요~~

아... 그리고 리뷰 당선 축하드려요^^

Falstaff 2023-05-11 15:25   좋아요 1 | URL
재미있게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