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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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편소설 한 편으로 책 한 권을 만들었다. 우리나라 출판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애초 원서가 그랬다. 키건의 작품집 《푸른 들판을 걷다》와 비슷한 분위기이지만 더 따듯한 이야기. 누에 실처럼 경묘한 문장들로 촘촘하다. 스토리야 뻔한 이야기지만 뻔한 이야기를 담는 선율이 감미로워 독자가 녹아버린다.

  그러나 숱한 독자들의 감상평을 너무 많이 봤다. 그래서 이 책을 펴기도 전에 마치 다 읽은 거 같았다. 정작 책을 읽으면서는 그렇군, 이렇게 이야기를 뽑아나가는군. 마지막이 어떻게 되려나? 아, 이렇게? 흠. 생각대로네. 스토리는 처음에 시작할 때부터 이미 다 정해져 있는 길로 간다. 한 점 흐트러짐도 없어서 마치 물이 흐르고, 노을이 지고, 밤이 내리는 거 같다.

  하지만, 이제쯤 가슴이 미어져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들 때, 아하, 어느 독자평에서 누군가가 그랬지? 마지막에 눈물이 쏟아졌다고. 심장이 여린 독자였나 보네. 책을 덮으면서는 이야기를 담은 그릇, 문장이 간결하고 섬세하다고 생각했다가 몇 시간이 지나 독후감을 쓰는 지금은 마지막 문장만 기억에 남았다. 절묘하다. 읽는 시각에 따라 반전일 수도 있다. 만일 반전이라면 한 순간에 최악의 그로테스크로 뒤집어지는 정말 극적인 반전일 수 있다.

  “아빠.” 내가 그에게 경고한다. 그를 부른다.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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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5-06-12 07: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동감입니다. 누굴 아빠라고 부른걸까요?

유부만두 2025-06-12 07:40   좋아요 1 | URL
누가 울기까지 했대? 그러고 제가 쓴 예전 리뷰를 보고 왔습니다. 하하.

Falstaff 2025-06-12 07:49   좋아요 1 | URL
앗, 그분이 유부님이셨어요? ㅋㅋ
두 명한테 다 아빠라고 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살짝 살 떨렸습니다. ^^
 
우리는 농담이(아니)야 리:플레이
이은용 지음 / 제철소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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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전 정보 없이 책을 골랐다. 읽고 나서 독후감 쓰려니 난처해진다. 과하게 우울하다. 아빌리파이정, 프로작, 자나팜, 로라제팜, 스탈녹스, 뉴프람, 리탄. 모두 우울증 치료제. 이 책 말고 다른 소설에서도 들어본 약물들이다. 그나마 진통제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은용은 1992년에 나서 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를 졸업했다. 2019년에 데뷔했으며 연극 <우리는 농담이(아니)야>로 동아연극상 작품상, 백상연극상을 받았으나 2021년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아주 오래 전에 예종 연극원 출신 트렌스젠더가 신문에 나온 적이 있다고 기억한다. 가족의 이해와 지원으로 수술을 받아 여성의 삶을 시작했다는데 이이는 아닌 거 같다. 작품 속 등장인물을 감안하면 전혀 아닐 것이다. 이은용의 생전 사진을 구했으나, 그이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예가 아닌 것 같아 아예 저장하지 않았다.


  나하고 친하게 지내던 다른 학교 5년인가 6년 선배가 있었다. 철학을 전공한 똑똑한 사람이었는데 척추후만증이 있었다. 지금은 멸칭이 된 질환으로 당시에는 꼽추라고 불렀다. 대기업 공채에 차석으로 합격했지만 일곱 명 뽑는 최종 면접 응시자 여덟 명 가운데 유일하게 낙방했다. 외모도 예쁘장하게 잘 생겼지만 그렇게 됐다. 연애도 했다. 결혼하려고 여자 집에 갔더니 장모 후보자께서 한 말씀하셨다. 자네가 똑똑하고 잘 생기고 품성 좋은 남자라는 건 아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다 좋은데, 왜 하필이면 많고 많은 아가씨들 가운데, 왜 하필이면, 내 딸인가? 여사님도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이렇게 말했단다. 선배는 이별을 택했다. 조금씩 망가졌고, 내가 학교를 졸업한 후 취업을 위해 지방으로 내려간 사이 연락이 끊겼다. 삐삐도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이었다.

  극작가 이은용이 내 자식뻘이다. M to F 트랜스젠더이다. 내가 이이의 아버지였으면 어땠을까? 이제는 이런 생각이 든다. 겉으로는 괜찮다, 괜찮다. 네 책임이 아니다, 이랬을 거 같다. 그러나 속으로는 하늘이 무너지지 않았겠나 싶다.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그렇다.

  부모가 이렇거늘 당사자라면 어땠을까? 이은용은 그걸 연극으로 말했다. 시스젠더에 포위된 삶을 살며 받아야 하는 차별 행위와 격리의 눈길을 견디다가, 익숙해지다가, 결국 우울의 벼랑 위에 서게 되는 삶. 시스젠더의 일원으로 함부로 이들의 감정을 여기에 쓸 수 없다. 예가 아닐 듯해서이지만, 이것조차 다른 의미의 차별일지도 모른다. 사는 게 그렇다. 쉬운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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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공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60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김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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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라스의 1955년 출간 작품. 책 뒤에 실린 뒤라스의 연표 상 1958년에 출판하는 <모데라토 칸타빌레>의 바로 앞 작품이다. 여러 번 이야기했는데, 마르그리트 튀라스는 <모데라토 칸타빌레>를 기점으로 작품이 많이 바뀌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가 바로 직전 발표작인 <동네 공원>도 읽기에 그리 쉽지 않다.

  아주 조심스럽게 이야기하자면, 역자 김정아는 연세대 영문과와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까지 하고, 비교문학 박사를 취득했다. 이후 전문 역자로 활약하고 있는 듯하다. 제인 오스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에밀리 브론테, DH 로렌스, 버지니아 울프 등 주로 영어 작가의 작품을 번역했다. 그런데 올해 4월, 발터 벤야민의 독일어 작품과 더불어 뒤라스가 프랑스 말로 쓴 <동네 공원>도 출간했다. 그러면 김정아가 영어, 불어, 독어, 그리고 우리말, 이렇게 네 개 언어를 상호 번역할 정도로 언어의 천재가 있을까, 아니면 불어(또는 독어)-영어-우리말 중역일까? 이런 생각이 잠깐 들었다.

  (서울대 노문과와 미국에서 러시아어 박사를 하고 우리나라에서 특히 도스토옙스키 번역에 이름을 낸 김정아도 있다. 이 김정아와 그 김정아는 다른 사람이다.)

  이렇게 까탈을 잡는 건, 번역에 약간의 불만이 있어서 그렇다.

  작품의 98퍼센트는 공원에서 우연히 같은 벤치에 앉은 여자와 남자의 대화로 되어 있다. 여자는 보름 전에 스무 살이 된 젊은이이고 남자는 마흔, 적어도 삼십대 후반인데, 두 등장인물의 대화가 서로 존칭을 쓴다. 그러다보니 서로가 서로를 “그쪽 분”이라 호칭한다. 우리말의 경우 서로 존칭을 쓰더라도 나이 차이에 따라 적절하게 어울리는 존칭이 조금 다르다. 세계 다른 어느 나라와도 구별이 가능한 섬세한 디테일이 있을 것이지만, 김정아의 번역문에서는 이게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독자는 여자가 하는 말인지, 남자가 하는 말인지 구별이 힘들 때가 잦다. 물론 외국어를 직역하면 이런 현상이 벌어질 수 있겠다. 그들의 존칭은 상대적으로 우리보다 투박하니까. 대신 우리말에 투박한 것이 그쪽에서는 섬세할 수 있으니 이런 것을 적절하게/매끈하게 보완해주는 것도 역자의 역할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아직 뒤라스를 읽는 내공이 부족해서 초중기작품임에도 읽기가 그리 수월하지 않아 괜히 까탈을 잡고 있는 지도 모르니 역자나 역자 주위에 계신 분이 이 어쭙잖은 독후감을 읽더라도 그냥 웃고 지나가면 좋겠다.


  1955년 작품이지만 책을 열면 1989년 겨울에 뒤라스가 쓴 서문이 제일 앞에 실려 있다.

  파리역. 하차한 가정부들. 수천명의 브르타뉴 여자들과 행상이 역을 가득 메운다. 이들의 유일한 걱정거리는 살아가는 것이란다. 굶어 죽지 않는 것. 지붕이 있는 잠자리를 마련하는 것이고, 이들도 가끔 무작정, 우연히 누군가를 만나 말을 나누기도 한단다.

  뒤라스는 1989년 겨울, 세상을 뜨기 6년 반 전에 이렇게 서문을 달았다. 나는 1989년에도 숱한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로망의 도시 프랑스 파리가 이런 세월을 겪었다는 말인 줄 알고 화들짝 놀랐다. 1955년 이전에 그랬다는 말이다.


  1955년 이전의 파리. 역에서 내린 브르타뉴 출신 스무 살 여자는 남의 집 하녀로 들어갔고, 늙어 자기 힘으로 일어나지 못해 침대에서 지내며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건만 성질은 더러운 노파의 시중도 들고, 집안의 잡일도 하고, 무엇보다 오후에 아이 도시락을 싸서 함께 공원에 가서 누가 아이한테 해코지하지 않는 지 감시도 해야 한다. 목요일, 이날도 여자는 아이가 먹을 샌드위치를 싸서 공원에 나가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뒤라스의 말대로 우연히 누군가를 만나 무작정 말을 나누기도 하는데, 마흔 또는 마흔에 육박한 삼십대 후반의 미혼 남자이자 좋은 말로 세일즈맨, 낮춤말로 행상을 해 먹고 사는 뜨내기였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3.8 따라지들끼리 만나 뜻이 통해 말까지 통하는 순간이다.

  네 시 반. 아이 간식시간이다. 잼 바른 빵 두 조각을 자크에게 먹으라고 주었다. 아이는 빵을 대충 먹어 치우고 다시 모래밭으로 뛰어가 놀기 시작한다. 같은 벤치에 앉은 남자가 여자의 아이는 아니지요, 묻는다. 당연히 아니다. 그러나 자기 애로 보는 사람도 많이 있다고 대답한다.

  남자는 아이가 없다. 가질 수도 있었지만 이대로 만족한단다. 여행을 많이 다녀야 하니까. 쉴 때를 빼고 늘 여행중이란다. 심지어 국경을 넘어까지 기차를 타고 떠났다가 돌아온다. 행상이다. 품목도 매번 바뀐다. 물건을 떼다 노천시장을 떠돌며 좌판을 펴 놓고 판다. 중간 크기의 짐가방에 다 들어갈 정도만 취급하니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 밖에는 되지 않는다. 가끔은 조금 빠듯하지만 불평할 정도는 아닌 수입이라고 생각한다.

  여자가 묻는다. 쭉 그렇게 여행을 다니면서 살 생각인지, 아니면 언젠가 그만 두게 될 거라 생각하는지. 남자는 모르겠다고 대답하는데 진심이다. 언젠가는 멈추고 싶을 수밖에 없겠지만 이 직업을 왜 버려야 하는지 의문이다. 어쩌다보니 이렇게 살게 됐을 뿐인 것을. 남들과 다름없이 별 수 없이 이 직업을 선택하고 굳이 다른 직업으로 바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싫증 났다고까지 말하면 지나치겠지만 (직업을 바꿀)의욕이 있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자기 생각으로는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란다. 사람들 가운데 변하는 거 없이 사는 데 적응해야 하는 사람도 있다. 자기가 그런 거 같다고.

  여자는 다르다. 계속 이렇게 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생활은 당연하게도 조만간 끝나야 한다. 여자 팔자 뒤웅박이다. 결혼을 기다리고 있다. 남들도 다 하는 결혼을 나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 결혼하면 이런 하녀 처지와는 영영 이별이다. 여자는 앞에서도, 뒤에서도 스무 살이다. 91쪽에 스물한 살이라고 주장하는 걸 빼면. 젊고 건강한 여자는 어디서나 볼 수 있고 대부분의 남자가 마다하지 않는 스타일의 여자 가운데 한 명이다. 즉 이 여자가 마음먹고 유혹하면 많은 남자가 당장은 아니더라도 넘어간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다. 그러나 여성의 유전자 속에는 가장 조건이 좋은 남자를 선택하는 인자가 들어 있다. 그런 남자를 고르기 위하여 일요일마다 열리는 공원의 야외 댄스 파티에 참석하고 있다.


  이들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

  남자는 직업이 너무나 보잘것없고, 하찮고, 제대로 된 직업도 아니어서 일인분, 반인분도 못하는 걸 알다 보니 삶이 그런 식으로 단번에 개선되리라는 건 한 순간도 상상이 안 된다. 시간이 없다는 건 앞 일을 생각할 시간이 없다는 것일 뿐, 다른 것을 생각할 시간은 있다. 직업을 바꿀 기회가 생긴다면 즉시 그 기회를 잡겠지만 적극적으로 전직을 도모할 생각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늘 여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보따리 행상이 좋기도 하다. 여행과 행상 일을 통해 예전에 비해 사리에 좀 더 밝아진 느낌도 든다.

  여자는 이 처지에서 벗어나려면 벗어날 생각을 항상, 계속해서, 전심전력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백번 맞는 말이다. 언젠가는 누군가 나를 위해 울어줄 것이다. 늘 혼자라서 외롭지만 이런 (하녀)직업을 가지면 적어도 굶을 일 없고, 굶기는커녕 좋은 먹거리를 많이 먹을 수 있다. 그래서 지금보다 더 통통하고 튼튼해지면 좋겠다. 더 괜찮은 여자로 보일 테니까. 더 나은 조건의 남자가 접근해올 확률이 높으니까.

  우연히 같은 벤치에 앉아 맹목적으로 대화를 이어가던 3.8 따라지들.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어느 새 땅거미가 지고 여자가 돌보는 아이 자크도 놀다 지쳐 돌아와 어서 집에 가자고 조른다. 이제 여자와 남자는 헤어져야 마땅하다. 근데 은근히 그 새 정이 든 거 같다.

  일요일 댄스 파티에 오실 수 있어요?

  잘 모르겠어요. 갈 수 있으면 갈게요.

  여자도 알고 남자도 안다. 오지 않을 것임을. 그러나 혹시 모른다. 벌써 아이와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많이 지났다. 둘은 길을 나누어 떠난다. 여자가 걷다가 뒤를 돌아본다. 남자는 그냥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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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5-06-09 0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5 별. 반 별도 있었으면 좋겠다.

바람돌이 2025-06-09 21: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읽다가 그놈의 그쪽분에 완전 미치는줄 일았어요. 나중에는 너무 거슬려서 몇번이나 나오는지 세보고 출판사에 이메일이라도 보낼까싶어ㅛ가니까요? 내가 짜증난 횟수라고 말이죠. ㅋㅋ 별 3개반에 동의합니다
알라딘은 왜 별 반개 제도를 안하는걸까요? 이거 꽤 오래 전부터 얘기되건건데 말이죠.

Falstaff 2025-06-10 06:05   좋아요 1 | URL
<동네 공원>이나 <파란 눈 검은 머리>의 가장 크고 험한 진입장벽은 번역문체입니다. 사로트의 <항성>도 그랬습지요. 역자도 한 30번 정도 퇴고하고 책을 내는 요순시절이 왔으면 좋겠어요. 책값을 반 정도로 깎아 주든지요!
 
방앗간 공격 빛소굴 세계문학전집 3
에밀 졸라 지음, 유기환 옮김 / 빛소굴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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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졸라의 단편소설 다섯 편을 실은 작품집.

  아무래도 졸라,하면 루공-마카르 총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쓴 작품을 저울질하는 기준도 당연히 총서라는, 보통 작가들은 이 가운데 절반도 쓰기 힘들 높은 잣대를 들이댈 것인데, 《방앗간 공격》 같은 작품집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라서 독자는 총서를 읽을 때와 비슷한 드라마틱과 삶의 난장판을 기대하게 된다. 단편을 쓰던 188X년 시절의 졸라는 단편소설 속에서도 장편과 거의 유사한 스토리 라인을 유지하고 있어서 이런 기대감은 나름대로 이해할 만하다 하겠다. 이 책 속 개별적 작품들마다 독특한 에피소드를 추가하고 이야기 상호간의 연관성을 촘촘하게 엮어, 졸라 특유의 질주, 미친 질주를 첨가한다면 충분히 그럴듯한 장편소설로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다만 이야기들이 그리 참신하지 않다는 문제가 있어서 이 책에 실린 단편을 장편으로 개작했어도 주목을 받을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은 의심스럽지만.

  하긴 지금 188X년의 작품을 202X년에 읽고 내용의 참신함과 스타일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이라서 공평하지 않기는 하다.

  그렇다고 지금 나는 이 책의 단편소설들을 폄하하려 하지 않는다. 충분히 졸라스러워서 인간의 속셈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데 동의한다. 다만 아쉽게도 작품을 쓴 작가가 에밀 졸라라서 독자는 처음 책을 읽을 때부터 보통 이상의 기대치를 갖고 첫 페이지를 넘기게 될 뿐.

  처음부터 크게 기대하지 않고 읽기 시작해도 역시 졸라를 읽는다는 셈법이 애초부터 있었던 모양이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별 넷이 좀 과하다. 셋 반이면 적당할 텐데, 졸라의 이름값으로 반 더 쳐줬다. 내 맘이잖여? 그잖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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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노라마섬 기담 / 인간 의자 대산세계문학총서 151
에도가와 란포 지음, 김단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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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지성사에서 낸 대산세계문학총서 151번에 빛나는 중단편집. 정말 빛나냐고? 흠. 캐묻지 마시라. 엔간한 대산총서는 얼추 다 읽었는데 2018년에 찍은 책을 이제 읽었을 때는 뭔가 있는 거다.

  에도가와 란포는 순서대로 동학농민전쟁, 청일전쟁, 갑오경장이 있었던 1894년에 일본왕국 미에현 나가군에서 군청 서기 해 잡숫던 히라이 시게오의 장남으로 태어나 히라이다로(平井太郞)이란 이름을 갖는다. 훗날 추리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이름을 에도가와 란포로 바꾼다. 이이의 롤 모델이 ‘에드가 앨런 포’여서 일본 사람들은 ‘드’ 발음을 하기 힘들어 ‘에도가’로 하고 앨런을 ‘와란’인데 ‘와’와 ‘란’을 한 칸 떼고 ‘포’를 가져다 붙였다. 그리하여 에도가와 란포.

  이름 얘기가 나오면 나를 비롯한 사람들은, 포 선생을 어떻게 추리소설 작가로 보느냐, 당연히 고딕 작가로 봐야 하는 거 아니냐, 하고 시비할 수 있다. 맞다. 이후에 이이의 책을 또 읽을 거 같지 않아서 시간을 써 검색해본 건 아니고 책 뒤의 붙은 연보로 추측을 해보면 에도가와 란포도 시작은 그로테스크한 고딕으로 했고, 이 책에 실린 두 편도 마찬가지로 그로테스크한 엽기, 잔혹한 고딕 소설로 이이의 초기작으로 구분할 수 있는 1926년과 25년 작품인데, 1930년대 중반으로 가면서 <괴도 20면상>, <소년 탐정단>, <요괴박사>로 대중문학 쪽에서 도쿄의 종이값을 지붕 위까지 올렸던 모양이다. 그래서 에도가와 란포 하면 추리, 탐정 소설의 권위, 뭐 이런 식으로 하지 않았겠느냐, 라고 추측한다. 다시 말씀드립자면, 이건 어디까지나 연보 내용을 읽고 아는 거 하나도 없으면서 추측하는 거니까 다른 곳에 옮기지 마시라. 여차하면 개망신당하기 십상이다.

  중편소설 <파노라마섬 기담> 한 편만 싣기가 아무래도 분량에 문제가 있어 보여 단편 <인간 의자>를 서비스 차원에서 붙인 거 같다. 그래 당연히 독후감 역시 <파노라마섬 기담>을 이야기해야 마땅하다. 하긴 이거나 저거나 도무지 말도 안 되는 허구 중의 허구지만, 세상에 만화 한 번 안 보고 사는 사람 있나? 그러니 책을 열기 전에 먼저 소설 말고 글로 된 만화 읽는 기분을 장착하는 편이 속이 좋다.


  1920년대 도쿄 대학가 하숙촌에 히토미 히로스케라는 남자가 있었다. 본인은 철학과, 금속공학과 아니다, 철학이다, 필로소피, 철학을 전공했다고 주장하는데, 이이의 성격을 먼저 말하자면 쓸데없이 관심분야만 무지 다양하고 쉽게 싫증내는 성향이라서 도무지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1도 없다. 이런 인간 가끔 있다. 사실은 나도 이 부류에 속하는 거 같다. 히로스케는 도가 좀 심해서 학교를 졸업하고도 자기 밥벌이하는 것엔 별로 관심이 없어서 아직도 대학가 하숙촌을 떠나지 못하고 빌빌 거리는 중이다. 대개 이런 인간들은 대학 고시반에 있으면서 파면당한 우리나라 전임 대통령처럼 재수, 3수… 장수, 심지어 9수에 도전하는 게 보통이지만, 히로스케는 그것도 아니고 그냥 하숙집에 철퍼덕 자빠져 자신의 이상향을 설계하는 몽상에 빠지기 일쑤였다. 이상향. 유토피아. 율도국. (이 책에서는)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을 그럴듯하게 설계하면서, 만일 나한테 “평생 써도 모자랄 정도의 많은 돈”을 손에 넣는다면, 광대한 땅을 사서, 수백 수천 명의 사람을 부려 내가 늘 꿈꿔온 지상낙원이자 미의 나라, 꿈의 나라를 만들어 보일 텐데. 이런 잡생각만 열라 했던 거다.

  (“평생 써도 모자랄 정도의 많은 돈”으로는 턱도 없지요? “평생 써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의 많은 돈”이 맞는 말 아닌가요? 무한자뻑 문학과지성사도 요런 실수는 하는군요.)

  그래도 하여튼 먹고는 살아야 하는데, 가족들이라고는 에도가와 란포 스스로도 집안이 폭삭 망해버려 결혼도 힘들게 한 인간이라서, 사면팔방을 봐도 비비적거릴 데가 없어서, 하는 수 없이 번역일을 하청받아 하는 것으로 시작해, 동화도 쓰고 드물게는 성인소설도 써가며 먹고는 살았다. 물론 간혹 진지한 중단편소설을 써 잡지사나 출판사에 송고한 적도 있지만 모두 신통치 않은 반응만 받아 스스로 문학의 길은 포기하고 말았다.

  함부로 문학을 하네, 책을 쓰네 하지 말아야 할 것이, 그게 한 번 쓰면 어디인가 자국이 남는다는 데 있다. 나도 작품 초기에 나오는 히토미 히로스케가 변변치 않은 소설 나부랭이를 보내고 전혀 쓸만한 반응을 받지 못했다, 했을 때는 (한 마디로 찌질이란 얘기군, 하는 거 말고)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가, 이게 저 뒤 결말부에 가서 아이고, 얼마나 세게 뒤통수를 치는지 거 참. 더 자세한 건 알려드리지 않겠다. 하여간 그렇다는 거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아주 가끔은 있다. 히토미 히로스케가 대학에 다닐 때 고모다 겐자부로라는 동급생이 있었다. 둘이 그냥 아는 사이로 눈이 마주치면 간단하게 눈인사 정도 하는 사이로 결코 친하지 않았다. 둘이 다른 점은, 겐자부로는 검정 턱수염을 길렀고 뇌전증, 예전 말로 간질병이 있어서 간혹 심한 간질경련을 겪는다는 거. 히로스케는 근시가 있어서 안경을 쓰고 다닌다는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오, 놀라운 클리셰. 아주 똑같이 생겼다. 우연히. 생긴 건 작품 목적상 말할 필요도 없고 키도, 체격도, 목소리도. 물론 옷에 감춰진 신체 각 부위에 관한 상세한 건 아무도 모른다. 아, 한 명 빼고. 돈이 없어 장가도 못 든 히로스케와는 달리 겐자부로는 M현의 최고 부자인 고모다 가문의 유일한 상속자라서 무지하게 어여쁜 귀족 여인을 아내로 삼았다.

  이것이 히로스케한테는 어마어마한 행운이 될 지 누구도 몰랐다. 기괴하면서 동화처럼 매혹적인 행운이라고 란포는 말하지만, 더 읽어보면 한 사이코패스의 짧은 편집에 관한 이야기일 수 있다.

  대학 동창들은 겐자부로와 히로스케가 닮은 걸 떠나 완전히 똑같이 생겨 농담 비슷하게 겐자부로가 쌍둥이 형, 히로스케가 쌍둥이 동생이라 할 정도였는데, 쌍둥이 형이 나이 마흔도 되지 않아 치명적인 간질 발작을 일으켜 숟가락 놨다고 중앙 신문에 뜬 거다.

  이 정도면 스토리는 대강 맥이 잡힐 듯.

  히로스케는 절호의 찬스를 잡은 거다. 만일 자신이 겐자부로의 대역으로 살 수 있다면 고모다 가문의 돈으로 자신의 평생의 몽상, 꿈, 환상인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을 건설하지 못할 이유도 없는 거였다. 히로스케가 꿈군 절대 지상낙원은 그러나 역사상 주로 폭군이었던 옛 제왕들의 눈부신 업적 속에서만 조금 눈에 띈 적이 있었을 뿐이다. 20세기 자본주의 시대에 옛 시절의 폭군과 견줄 수 있는 유일한 집단은 부르주아, 이제 권력이 문제가 아니라 돈이 문제였다. 때가 온 것.


  이제 본격적으로 그로테스크와 엽기, 잔혹.

  일본 장례문화는? 옙. 화장입니다. 근데 소설이 되느라고, 일본 M현에서 태평양 쪽으로 T만이 펼쳐진 S군에서는 특이하게도 매장이 습속이란다. 그래 겐자부로는 죽고나서 흰옷으로 염을 해잡숫고 관에 들어가 땅에 파묻힌다. 사전에 꼼꼼하게 준비한 히로스케는 당연히 야심한 밤에 겐자부로의 묘를 파헤치고 관을 부수어 이미 경직도 다 풀려 부패가 상당히 진행한 겐자부로의 시신을 꺼낸 다음, 흰색 수의를 벗겨, 시신유기를 해야 하는데 짧은 밤 시간에 혼자 할 수 있는 가장 간편한 방법으로 겐자부로의 할아버지 묘를 파고 뼈만 몇 조각 남은 할아버지와 함께 구겨 넣고, 다시 할아버지 묘에 흙을 덮고 (떼도 입혔을까?) 시체 썩은 물이 축축한 건 물론 극약 같은 냄새가 충분하게 밴 겐자부로의 수의를 자기가 입은 채 근처 사람들 눈에 뜨일 만한 장소에 쓰러진 척하며 새벽을 맞는다.

  이렇게 고모다 가문의 전재산을 한 손에 움켜쥔 히로스케. 그는 S군 남단 태평양 쪽으로 뚝 떨어진 외딴 섬, 그래도 직경이 8킬로미터는 되는 가문 소유의 섬에, 엽기발랄한 그로테스크 고딕 소설가 에도가와 란포가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탐미적 제국을 만든다. (과하게 일반화한 것 맞지만)하여간 일본 사람들이라니. 이렇게 환상적인 파노라마를 구비한 섬을 거의 다 완공하는데, 나는 이 섬에 고용되어 일하는 사람들 가운데 작품에서 옷 입고 등장하는 여성이나 남성은 한 명도 기억나지 않는다. 우짜? 혹 하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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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5-06-05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빛납니다.........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5-06-06 06:17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아시네!

재미감동다있어야 2025-06-06 0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글도 기대할게요

Falstaff 2025-06-06 10:15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