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말일 까지 142 권의 책을 읽었다.

 한 마디로 과했다. 취미로 책을 읽는다는 것이 이제 취미가 생활을 지배하는 수준이다. 완전 주객전도. 주위에 이런 사람 흔하다. 통장 잔고 쌓이는 재미에 밤낮을 가리지않는 워크홀릭 증후군 환자들. 그리하여 수십억의 돈을 벌긴 했지만 결국 돈의 노예가 되고마는 인간. 책도 마찬가지? 줄창 책상에 앉아 책 읽느라 피둥피둥 살찌고, 동무들 만나는 것도 귀찮아하고, 사람과의 대화도 없어지고, 아무래도 모든 증상이 책의 노예가 되고 만 거 같아 고민이다. 좋게 생각하자면 늦게라도 깨달아 다행이긴 하다.

 술도 마찬가지. 어떻게 1년에 400 병 마시던 사람이 올핸 절반으로 줄여 딱 200 병만 마시겠느냐고. 석달은 잘 나갔는데 6월엔 30일 동안 32 병 마셔조졌다.


 9월 말까지 60 권의 책을 골랐다. 책값도 솔찮아 중고책 많이 샀다. 인터넷 동무님 몇 분께서 내신 책을 주시어 그것도 네 권 포함했다. 그분들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어느 책인지는 밝히지 않겠다. 60 권을 9월 말까지 읽으려고 한다. 그 가운데 세 권을 지난 6월에 읽었다. 읽는 속도를 매우 늦추려고 노력해보겠다. 쉬엄쉬엄. 취미에 목 매달면 그게 취미냐. 고생 바가지지. 가능하면 10월 중순까지 늦추고 싶다. 가능하면.


 사진 찍었다. 스마트폰으로 찍었는데 이딴 거 하나도 제대로 찍을 줄 모른다. 보시라. 렌즈가 흔들린 듯.


 이번 독서의 특징은 한국 소설을 많이 포함시켰다는 거. 모두 15 권이 우리 작가가 쓴 것이고 13 권이 소설, 두 권이 기행문이다. 독서가 내 생활을 지배하기 전까진 여행도 무지 다녔는데, 참 격세지감이. 원본 출판 연도 순서대로 읽되 중간중간에 우리 작가의 열 다섯 권을 배치했다. 윗줄 오른편에서 왼쪽으로 읽어나갈 거다. 역시 그림보다는 표로 보는 것이 편하다.


도서명출판사저 역 자간행
1원잡극선을유문화사곽한경 외 지음, 김우석 홍영림 옮김1241
2무한의 책현대문학김희선2017
3라 셀레스티나을유문화사페르난도 데 로하스 | 안영옥1470
4로빈슨 크루소펭귄클래식다니엘 디포 | 남명성1719
5크랜포드현대문화센터엘리자베스 클레그헌 개스켈 | 심은경 1853
6나의 아름다운 정원한겨레출판심윤경2002
7데이지 밀러펭귄클래식헨리 제임스 | 최인자1878
8워싱턴 스퀘어을유문화사헨리 제임스 | 유명숙 1881
9소설, 여행이 되다 작품이 내게 찾아올 때글누림이시묵 외 9인2017
10소설, 여행이 되다 작가가 내게 찾아올 때글누림이시묵 외 9인2017
11크로이체르 소나타 (반양장)펭귄클래식레프 톨스토이 | 이기주 1889
12켈트의 여명펭귄클래식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 서혜숙 1893
13그 여름날의 치자와 오디실천문학사김연2006
14모피를 입은 비너스펭귄클래식레오폴트 폰 자허마조흐 | 김재혁1901
15행인문학과지성사나쓰메 소세키 지음, 유숙자 옮김1907
16목요일이었던 남자펭귄클래식길버트 키스 체스터턴 | 김성중1908
17신들은 목마르다뿌리와이파리아나톨 프랑스 지음, 김지혜 옮김1912
18아가씨와 철학자펭귄클래식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 박찬원1920
19만두 빚는 여자자음과 모음은미희2006
207인의 미치광이펭귄클래식로베르토 아를트 | 엄지영1929
21독을 품은 뱀펭귄클래식프랑수아 모리아크 | 최율리1932
22슬픈 카페의 노래열림원카슨 매컬러스 지음, 장영희 옮김1951
23메피스토펭귄클래식클라우스 만 | 오용록1956
24엘리베이터 타는 여자실천문학사김우남2006
25나를 간텐바인이라고 하자 1책세상막스 프리쉬 지음, 이문기 옮김1964
26나를 간텐바인이라고 하자 2책세상막스 프리쉬 지음, 이문기 옮김1964
27제5도살장 (반양장)문학동네커트 보니것 지음, 정영목 옮김1966
28행복한 그림자의 춤뿔(웅진)앨리스 먼로 | 곽명단1968
29오늘의 거짓말문학과지성사정이현2007
30팔코너 (반양장)문학동네존 치버 지음, 박영원 옮김1977
31쇼샤다른우리아이작 바셰비스 싱어 | 정영문 1978
32십자가 위의 악마창비응구기 와 티옹오 지음, 정소영 옮김1980
33어머니의 정원을 찾아서이프앨리스 워커 | 구은숙1983
34나쁜 소년이 서 있다민음사허연2008
35퀴어펭귄클래식윌리엄 S. 버로스 | 조동섭1985
36검의 대가열린책들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 김수진1988
37검은 책 1민음사오르한 파묵 | 이난아 1990
38검은 책 2민음사오르한 파묵 | 이난아 1990
39가랑비 속의 외침푸른숲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1993
40투쟁 영역의 확장열린책들미셸 우엘벡 | 용경식1994
41명왕성이 자일리톨에게문학과지성사조영아2009
42곤두박질열린책들마이클 프레인 | 최용준 1999
43민음사뮈리엘 바르베리 | 홍서연 2000
44기적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면민음사존 맥그리거 | 이수영 2002
45랩소디 인 베를린뿔(웅진)구효서2010
46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 -상열린책들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2004
47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 -하열린책들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2004
48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 1뿔(웅진)스티그 라르손 | 임호경2006
49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 2뿔(웅진)스티그 라르손 | 임호경2006
50제리민음사김혜나2010
51벌집을 발로 찬 소녀 1뿔(웅진)스티그 라르손 | 임호경2007
52벌집을 발로 찬 소녀 2뿔(웅진)스티그 라르손 | 임호경2007
53아담과 에블린민음사잉고 슐체 지음, 노선정 옮김2008
54나의 아름다운 마라톤현대문학이채원2012
55헛된 기다림민음사나딤 아슬람 | 한정아2008
56인생은 짧고 욕망은 끝이 없다민음사파트리크 라페르 | 이현희2010
57낙타의 뿔은행나무윤순례2013
58구원민음사자크 스트라우스 지음, 서창렬 옮김2011
59계단 위의 여자시공사베른하르트 슐링크 | 배수아2014
60건너간다창비이인휘 지음2017



 이번이야말로 읽다가 읽기 싫으면 팍, 책 덮고 좀 쉴 예정. 죽기살기로 하는 취미는 더이상 취미가 아니니까. 난 즐기고 싶다! 솔직히 특히 올해 들어선 즐기지 못한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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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책 삼인 시집선 1
유진목 지음 / 삼인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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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접몽



 빈 방에서 사랑을 했는데

 당신은 어느덧 살림이 되고


 나는 봉지처럼 느슨하게 묶여서

 서랍에 들어 있길 좋아한다


 움켜 쥔 창틀 쪽에서

 매일 밤 돌아오지 않는 꿈을 꾼다


 나는 당신이 돌아오지 않는 것보다

 그게 더 슬펐다


 배꼽에 흐르던 당신의 일들


 내게서 당신이 가장 멀리 흐를 때

 나는 오래 덮은 이불 냄새


 우리는 닫힌 채로 집을 나왔다   (20쪽. 전문)



 <접몽>, 어떤 꿈일까? 제목만 딱 보고, 이거 참 중의적인 시가 아닐까 싶었다. 장자莊子가 먼저 생각났다. 나비 꿈을 꿨는데, 내가 나비 꿈을 꾼 거야, 나비가 내 꿈을 꾼 거야? 다른 하나는 이런 접몽. 접몽接夢, 교접하는 꿈. 특히 남자의 경우 몽정이라고 하는 거. 시인 유진목이 여자니까 몽은 오케이, 그러나 정精할 것이 없으니 그냥 접몽, 이라고 하는 것도 괜찮은 시어. 굳이 주장한다면 장자와 섹스詩의 중의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주장할 걸 주장해야지, 이건 그냥 사랑과 섹스의 시다. 다시 한 번 시를 읽어보자. 어딘지 읽어본 느낌. 들어본 가요 제목이 문득 생각난다. 공일오비, <아주 오래된 연인들>. TvN의 인기 프로그램 <SNL>에서 싱어송 라이터 윤상이 이 제목을 이렇게 바꿔 얘기했다. <아주 오래 한 연인들>. 아주 딱!


 '(주) 도서출판 삼인'이라는 책 내는 법인이 있다. 펴낸이, 즉 발행인이 신길순. 이 분이 사장일 거 같고, 간행위원으로 황현산, 김혜순, 김정환. 이렇게 적혀있다. 황현산은 평론가. 김혜순은 시인이자 대학 선생(그냥 '선생' 또는 '교사'라고 하고 싶은데, 요샌 언어의 인플레가 심해 대학에서 선생하는 사람들한테 앞에 '대학'을 붙혀 '선생'이라 하거나 '교수' 또는 '교숫님!'하지 않으면 드럽게 싫어한다. 우연히 내가 사는 아파트 같은 동, 같은 레인의 아래층 네 집에 대학 선생들이 살아서 아주 쯔~알 안다). 김정환은 이젠 시인이라기보다 잡글 전문가. 하여간 간행위원 세 명이 모여 우리나라에서 시인으로 등단하는 과정에 문제가 크다고 의기투합, 싹수 있는 시인 지망생들의 시를 추려 책을 내주는 행위를 통해 정식 시인으로 만들어준다는 기특한 생각으로 "삼인 시인선"이란 시리즈를 냈다고 한다. 이 <연애의 책>이 시리즈 첫번째.

 '삼인 시인선'의 이런 바람직한 출판 행위는 갈채 받아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시를 감상하는데 보태거나 빼는 요인이 되면 안 될 것. 계속 유진목의 시를 더 읽어보자. 위의 시 <접몽>의 다음 페이지에 게재된 한 줄 시.



 에밀 졸라


 계속 트랑스를 겪으며 사느니 차라리 몰래 떠나고 싶어 (21쪽. 전문)



 트랑스? 이거 불어인줄 몰랐다. 영어 접두사 'trans'가 생각났고, 이어서 'transportation'이 떠오르니 당연히 우리 말로 '수송'. 그러니 이 시가 지금 뭘 주장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도리가 있었겠는가. 미친 척하고 불어 사전을 열고(요샌 불어 사전을 '펴고'가 아니라 '열고'다. 얼마나 좋은 세상이냐. 내 불어사전은 지금 어디 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trance'를 찾아보니 '불안, 공포, 최면상태, 신들린 상태'라는 뜻 등장. 그래 이거다. 근데 그거하고 에밀 졸라하고 무슨 관계? 에밀 졸라 대신에 그 자리에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 도스토옙스키, 마르케스, 심지어 보르헤스를 넣어봐라. 무슨 차이가 나는지. 오히려 도스토옙스키를 대입하면 불안, 공포, 신들린 상태, 최면 상태, 이런 게 훨씬 더 실감난다. 기억하시지? 그의 작품 속에 무수하게 등장하는 불안, 공포, 섬망, 식은 땀 등등. 시가 후지단 뜻이 아니라 이왕 한 줄 시를 쓰려면 제목, 즉 에밀 졸라를 단 칼에 대표할 수 있는 카피를 썼어야 했던 걸 아닐까,는 의견. 아직 한 줄 시 쓸 짬밥은 아닌 듯. 그게 쉬운 줄 아셔? 이 정도는 되야 하는 겨.



 서울살이


 서울 천리를 와서 가랑잎 하나 줍다 

 박목월, <서울살이> 전문. 외워 쓴 관계로 출처는 아예 기억도 안 남.



 유진목의 시집 <연애의 책>이 나온 것이 2016년. 그러니 나이는 많지만 신인이다. 목월과 비교할 상대가 아니나, 단언컨데 모든 시인의 경쟁자는 과거의 별들, 청록파 3인, 미당, 이런 선배들을 물리치겠다는, 아니면 앞으로 적어도 그들과 어깨를 견줄 시를 써야겠다는 포부가 있어야 할 터. 옛 거장과의 비교는 피할 수 없어야 할 것이다. 아니면 아예 시를 쓰지 말든지.


 말이 딴 데로 흘렀다. 다시 <연애의 시>. 여기서 '연애'라 함을 말 그대로 연애로 받아들이지 말자. 사랑? 얼마나 좋아. 연애는 빨리 끝나잖아. 사랑은 좀 더 오래 가고. 물론 '정'만큼이야 질기겠어? '정'만큼이야 더럽겠어? 근데 당신과 나를 여태까지 같이 살게 만들고 앞으로도 같이 살게 만들 거 같은 게 웃기지도 않는 '연애'도 아니고 우라질 '사랑'이긴커녕 드럽게 질긴 그놈의 '정'일 거 같아. 이 시 한 번 읽어보자.



 그믐



 남편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모과를 주워 자신의 가방에 넣었다 아내는 몸을 씼고 일찍 이부자리에 누웠다


 밤에 모과 한 알이 부엌에 놓여 있다


 나는 모과를 훔치려고 더 어두워졌다  28쪽 (전문)



 여기서 '나'는 그믐밤의 어둠. 모과 아시지? 우리 조상들께서는 좀 못생긴 아이 놀릴 때 "꼭 모과덩이 닮은 것"이라고 했다. 생기긴 그렇지만 방에 두면 모과에서 풍기는 은은한 향이 참 그윽하다. 얇게 저며 설탕에 재워 오래 두면 저절로 모과주가 된다. 나 유년 시절에 모과주 마시고 알딸딸해져서 이상하게 걸으면 고모들이 나보고 허벌 웃으셨다. 나, 즉 어둠이 바로 그 모과를 훔치기 위해서 밤을 더 어둡게, 어둡게, 페이드 아웃, 페이드 아웃. 그리하여 밤과 어둠이 안식과 사랑을 위한 어둠으로 되기 위해. 위의 <접몽>도 그렇고 <그믐>도 그렇고, 딱 내 스타일. 난 길고 긴 시는 정말 별로다.


 물론 유진목의 시를 다 좋게 읽었다는 뜻은 아니다. 시집을 산다. 그럼 솔직히 얘기해서 시집 속에 내 맘에 맞아 한 번 외워볼까, 하는 시 두 개만 건지면 본전이고 세 개 건지면 횡재다. 아니 그런가? 나한테 이 시집은 횡재에 해당하는데 마지막 세번째 시를 소개한다.



 한밤



 신발을 이렇게 예쁘게 꺼내놨네


 너하고 나하고 예쁘게 떠나려고  (82쪽, 전문)



 시는 전적으로 읽는 사람, 아니, 감상하는 사람 마음대로다. 너하고 나하고 예쁘게 어디로 떠나? 둘이 좋아하는 걸 양가부모가 지랄맞고 극성맞게 반대해서 걍 보츠와나 공화국으로 도망가듯 이민가는 거야? 아닐 걸. 예쁘게 어디로 떠나느냐, 하면, 밤으로. 빈 방에서 사랑을 하고, 사랑을 또 하고, 쉼없이 사랑해서 당신은 어느덧 살림이 되고, 나는 봉지처럼 느슨하게 묶여서 서랍에 들어앉아 있길 좋아하는 상태가 되기 위해, 오늘 밤, 밤 속으로 떠나는 거다. 천만의 말씀이라고? 그랴. 그럼 당신이 생각하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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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라이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3
앨리스 먼로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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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이의 이름을 처음 들은 순간, 혹시 매릴린 먼로의 집안 식구 아닌가, 잠깐 궁금했는데, 한글 표기만 같지 완전히 다른 집안이란다. 처음 읽은 먼로. 왠만하면 단편소설집, 특히 외국 단편은 피해다니는데 먼로의 이름이 하도 알려져 있어 도대체 어느 정도길래 이러나싶어 샀다. 이 책 읽기도 전에 또 한 권의 먼로를 샀으니 7월 말 혹은 8월 초에 읽을 또다른 단편집 <행복한 그림자의 춤>. 암만해도 괜히 산 거 같다.

 이 책? 작가의 마지막 작품집이라고 한다. 괜찮다.

 작가가 다 늙어 아득한 과거를 회상하는 작품들. 특히 단편소설인 경우, 자신의 유소년 시기를 보낸 한 지역에 천착하면, 개인적 경험과 가족관계 등 자신만의 독특한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거 같)다. 또 옛날 작가 이야기하지만 김원일의 진영, 오정희의 인천과 이주 전의 모처, 윤흥길의 정읍(정읍을 이야기하면서 난 죽어도 어느 글 도둑년의 이름은 대지 않겠다), 김주영의 청송, 이문열의 영양, 무엇보다 이문구의 대천 등등.

 먼로도 아픈 개인사가 있는 모양이다. 언니가 물에 빠져 죽은 것.

 세상의 (거의) 모든 인간은 다 자신만의 상처를 지닌 채 생을 살아간다. 언니가 물에 빠져 죽은 걸 평생 가슴에 담고 사는 사람이 있고, 이념을 달리해 처자식, 부모 팽개치고 적대 진영에 합류해 집안을 완벽하게 거덜낸 아버지를 화상 흔적처럼 차마 버릴 수 없어 품을 수밖에 없는 사람도 있다. 완전한 죽음으로 한 순간 상처를 남길지언정 영원히 기념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소원하는, 참담한 미래만 약속할 뿐인 장기 중환자의 가족도 있고. 그러니 먼로의 경우가 그리 특별한 것은 아닐 것.

 별로 특징적이지 않은 단편들. 문외한이 겁없이 말하는 바, 노벨상, 맨부커상, 우거지잡탕상 등의 화려한 수상경력에 (나처럼) 미혹되어 읽어볼 수는 있을 것. 읽은 다음에 괜찮은 단편들이라고 소감을 쓸 수 있음. 그러나 그걸로 끝. 7일 전에 읽은 <디어 라이프>. 벌써 기억에서 거의 다 지워졌다. 큰일이다. <행복한 그림자의 춤>을 또 읽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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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6-29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워낙 단편집을 좋아해서 <행복한 그림자의 춤>부터 읽고 <디어 라이프>는 선물 받았는데, 이 책에서는 딱 한 편 읽고 아직 읽은 게 없네요. 읽긴 읽을 텐데.... 크게 감흥은 없더라고요. 노벨문학상 때문에 이 책 낚여서 산 사람들이 많은지 알라딘 중고서점에 가면 널리고 널렸습니다. ㅎㅎ 전 이 사람이 글쓰는 방식이 일단 좀 싫더라고요. 개인사를 (가족사겠죠?) 지나치게 작품화한 바람에 그런지, 가족들과도 거의 등지고 사는 것 같더라고요. 아무리 개인사라고 하지만, 그게 정말 과연 온당히 자기만의 역사일까요? 결혼도 여러 번 해서 그 결혼이 끝날 때마다(결혼 여러 번 한 게 잘못이 아니라) 전 남편들을 소재로 또 글을 써댔던데.... 흠.... 작가로서 글쓰는 재주는 있는지 모르겠으나 윤리의식은 꽝인 거 같아 통 매력 없는 작가입니다.

Falstaff 2017-06-29 12:47   좋아요 1 | URL
사실 많은 작가들이 자기들 가족사를 파먹고, 팔아먹고 사는 앵벌이잖아요. 근데 가족사 전부가 자기 것인 양하는 건 좀 피했으면 좋겠습니다. ㅎㅎ
단편은 장편에 비해서 문장 하나하나가 묘사하고 주장하는 미묘한 뉘앙스를 매우 좋아하는데 암만해도 역자가 그걸 제대로 전달한다는 느낌이 별로 와 닿지 않아요. 그래서 한국 단편은 즐겨 읽지만 번역은 좀처럼 손이 닿지 않더라고요.
ㅎㅎㅎ 결혼 여러번 한 것이 잘못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만약 한 열 번 하면 정상은 아니지요. (먼로가 그랬다는 얘긴 절대 아닙니닷!!) 아이구, 그 지긋지긋한 걸 열 번이나? 헥! ㅋㅋ
 
지상의 노래 - 2013년 제44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이승우 지음 / 민음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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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이승우를 읽었다. 30년 전, 우리는 이승우를 '새끼 이청준'이라고 불렀다. 장흥 사람 이청준과 동향이고 같은 이씨 성에 쓰는 것도 이청준과 아주 비슷했다. 스스로도 글공부 하던 시절에 이청준을 대단히 많이 공부했다고 자복했다. 자복? 그렇다. 자복自服. 저지른 죄를 자백하고 복종함.

 이청준의 성과.  전쟁 중 한밤에 들이닥쳐 손전등 빛을 식구들 눈에 비추며 단 한 번의 대답으로 생명줄이 왔다갔다 하던 질문, 이편인지 저편인지 대답하라는, 소위 전짓불의 공포, ② 서편제나 매잡이 같은 남도 지역에 전래해오는 민간 전통 문화사③ 장흥의 대표적인 산 천관산을 무대로 유사종교에 관한 종교철학적 이야기. ④ <당신들의 천국> <낮은데로 임하소서> <키작은 자유인> 등 장편. 내가 읽은 그의 작품인데, 이승우는 여기서 ③의 경우를 많이 차용해왔다. 단, 이청준이 지명을 그대로 사용하여 '천관산'이라 했으나 이승우는 '관'자를 빼고 '천산'이라 했다. 그게 장흥지역에서 일반적으로 '천산'이라고 하는지 아니면 작가가 임의대로 그렇게 불렀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여간 천(관)산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유사종교, 비화밀교, 이단 기독교 등이 이청준과 이승우의 최대공약수인 것은 분명하다. 그리하여 젊은 시절의 우리는 이승우를 걍 '새끼 이청준'이라고 불러버렸던 것이다.

 정말 오랜만에 읽은 이승우. 그중에서도 2013년에 동인문학상을 받았다는 <지상의 노래>. 와우, 아직도 작가는 전라도 장흥,으로 짐작되는 '천산' 언저리에서 노닐고 있다. 참 오래 우려먹는다. 더할 수 없이 솔직하게 말하지만, 이승우의 찬란했던 젊은 시절을 기억하는 나는,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는 '늙은 이승우'에게 실망했다. 잽싸게 책꽂이를 점검해보니 <미궁에 대한 추측> <구평목 씨의 바퀴벌레> <에리직톤의 초상>, 이렇게 세 권이 보인다. 책꽂이에 책을 두 줄로 겹쳐 꽂는 관계로 저 속에 뭐가 더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 그럼 30년만에 읽는 이승우가 아니라 20년 만에 읽는 이승우라는 것이 맞겠다.

 20년 만이거나 30년 만이거나 그딴 건 중요하지 않고, 이제 새로이 책장을 넘겨 <지상의 노래>를 읽은 소감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느느니 말장난. 이제 이이도 나이가 제법 들어 낼 모레 환갑. 글 상태에 진전이 없으면 이젠 슬슬 문학적으로 은퇴를 생각해볼 때가 됐을지도. A라서 B고 B라서 A다, 라는 식의 말장난. 이런 묘사는 나오지 않지만 비슷하게 흉내를 내보면, "밥을 많이 먹어서 몸이 커졌고, 몸이 커서 밥을 많이 먹었다"라는 거. 꽃노래도 삼세번인데 이런 식의 글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수시로 등장한다. 한 세번 쯤 이런 꽃노래를 읽으니까, 이거 그때 읽은 이승우 맞아? 라는 불평이 솟더라.

 시대적 배경도 박정희 쿠데타 시절부터 80년대 신군부 쿠데타까지 몽땅 아우르는데, 아우르느라고 참 고생 많았다. 장편소설을 읽을 때, 내가 유별나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간 신경쓰이는 게 연대. 다음 문장을 보자.

 37쪽에, "라면 생산이 시작된 것은 10년이 조금 넘었을 뿐이었다. 한 식품회사 사장이 일본에서 기계 두 대를 들여와 라면을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1963년이지만...운운"

 그럼 현 시점은 아무리 빨리 잡아도 1973년. 주인공 소년은 15세다(어! 작가 이승우와 같은 나이다). 소년이 15세 때 사고를 심하게 치고 천산 꼭대기 위의 수도원(나중에 '헤브론 성'으로 칭한다)으로 들어가 3년을 짱박혀 있다가 강제 하산 조치를 당한다. 그럼 1976년이 독자가 계산할 수 있는 가장 이른 시기. 18세. 딱 이 시점에 천산 수도원 '헤브론 성'의 유일한 출입구 앞에 군인 초소를 만든다. 여기까지 37쪽을 배경으로 한 (내가 만든) 연대기다.

 그러다가 202쪽에 보면 이렇다.

 (천산 수도원 헤브론 성 지하에 벽서가 씌어진 것은) "수도원 공동체 형제들에 의해서 비교적 이른 시기, 적어도 초소가 만들어진 1972년 이전에 만들어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이 하나 문제점 가지고 책 전체를 왈가왈부하는 건 좀 야박한 일이다. 근데 왜 이랬을까? 왜 대한민국에 라면공장이 생긴 연도를 굳이 넣어가지고 나로부터 이런 쪽팔림을 당할까?

 격변하는 한국 현대사를 책에 담고싶어 하는 건 이해하며, 저 남쪽 끄트머리 높은 산 꼭대기에 있는 수도원을 정치적 목적으로 하고자 하는 권력의 폭행을 정말 그럴 듯하게 만들었지만 전체적으로 과하게 종교적이 됐다. 유사 기독교라고 봐야할 것인 사이비 종교집단의 구도의식. 이 집단은 철저하게 원시 기독교, 카타콤을 모델로 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신약보다는 구약에 더 의존하는 것이겠지. 아, 잠깐! 난 개신교, 천주교. 통틀어 기독교에 관해선 완전 무지하다. 그래서 말인데, 이건 종교와 독재정치와 개인사를 합쳐만든 잡탕밥. 이승우라면 같은 내용으로 더 심사숙고할 만한 소설을 쓸 법했다. 암만해도 필력이 좀 떨어진 듯.

 저 위쪽에 이청준의 장편소설 <키 작은 자유인>을 말했다. 이제 그 의도를 밝히노니, 난 <키 작은...>을 읽고 이청준 선생이 은퇴할 때가 됐다고 여겨서 이후 그의 작품은 읽지 않았다. 이제 세월이 흘러 새끼 이청준으로 불렸던 이승우와도 이별을 선택해야할 시기인 것 같아, 한 시절이 이렇게 가는구나, 감회가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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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세번째 읽는 줄리언 반스. 문제작 <플로베르의 앵무새> <10 1/2 장으로 쓴 세계역사>를 진짜 흥미깊게 읽고 이이가 쓴 다른 책 검색해서 찾은 책. 앞의 두 종과 완전히 성격을 달리해 이번엔 스릴러 소설을 읽는 듯한, 복잡하게 꼬인 개인사를 엮어놨다. 나 역시 박제된 앵무새를 찾거나, 여권과 비자 없이 무단으로 노아의 방주에 승선한 나무좀벌레, 비슷한, 기존의 뭔가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기대했다가 재미있게도 40여년 만에 만난 옛 애인과의 재회를 다루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줄리언 반스가. <플로베르...> <10 1/2장...>의 작가가 말이다. 이래서 소설가의 변신은 무죄.

 근데 참 독후감 쓰기 힘든 책이다. 대개 이런 책은 마지막 결론을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썼다는 내 의심을 받는다. 이 책도 포함해서. 그러니 (20세기말, 21세기 초엽의) 막강한 무공을 자랑하는 세계적인 작가가 마음먹고 마지막 장면을 꼬불쳐두고 소설의 앞부분에서 독자들이 좀 엉뚱한 방향으로 생각하게 하기 위해 현란한 장면들을 배치해놨으니, 나중에 결론을 발견할 때의 미묘한 '아, 속았다!' 하는 느낌, 그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으랴.

 1960년대 말의 영국. 당시에 고교와 대학을 다녔던 젊은이들. 그러나 이들은 60년대 젊은이들이 적극적으로 추구하기 시작했던 자유와 평화, 그리고 프리섹스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 채 젊음을, 작은 의미로, 낭비했다. 화자 '나' 토니 웹스터가 베로니카란 귀여운 이름의 학생과 연애를 하고, 베로니카 역시 그가 좋은 듯 멀지않은 시골의 저택에 나를 초대하여 거대한 몸집의 아버지를 비롯한 식구들과 인사도 시키고(마초같은 아빠, 딸을 신뢰하는 것 같지 않는 엄마, 잘난 척 오지게 하는 오빠), 별짓을 다 하지만, 천생 암컷이라 줄듯 말듯 사람의 애간장을 태우다가, 시간이 좀 흐른 뒤 둘이 이별을 확정한 다음에야 딱 한 번 관계를 허용하는데, 어 이거봐라? 완전 프로였던 거다. 그때부터 세월은 흘러흘러 어느덧 나 토니 웹스터한테 베로니카의 어머니가 죽었으며 유산으로 500 파운드와 일기를 남긴다는 편지를 받으면서 재미난 책 <예감은....>의 본격적인 전개부를 시작한다.

 이 책이 한 시절 무지 유명했던 모양이다. 독자 서평이 무려 200개에 육박한다. 그정도로 재미난 책이니 한 번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듯. 미리 말씀드리노니, 걸작, 명작의 반열에 오를 책은 아니다. 아울러 반스의 대표작으로 언급되지도 않을 거 같다. 하지만 소설책의 미덕, 재미에 관해선 탁월하다. 처음부터 신경을 집중해서, 작가가 어떤 결말을 준비하고 있을지 행간의 문장 하나하나를 읽고 또 읽고(지가 아무리 그래봤자 복선 없는 추리소설 봤어? 그지?), 따져보고, 어떤 실마리가 있는지 눈알이 빠지게 각오하며 집중에 집중을 하다가, 결국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을 읽고 즐거운 허탈에 빠지는 재미도 솔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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