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범우문고 281
존 스타인벡 지음, 이성호 옮김 / 범우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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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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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쉽게 구할 수 있는 존 스타인벡의 번역 ‘소설’은 다 읽은 셈이다. 또는 다 읽은 것 같다. 이렇게 한 작가를 몽땅 읽어버리면 서운하다. 좋아하는 작가라서 하나하나 읽다가 더 찾을 수 없는 순간을 맞았고, 이제 이 작가를 읽으려면 전에 읽은 작품을 다시 읽는 수밖에 없어서. 웬만하면 그래서 특정 작가의 작품을 악착같이 찾아 읽으려 하지 않는데 어떻게 그렇게 됐다. 아쉽다.


  범우사의 “범우문고”는 경제적인 가격과 다양한 레퍼토리를 소개하는 전통적 의미의 ‘문고판’ 책이기는 하지만 획일적인 표지와 경제적이기만 한 종이질과 옛 번역으로 인해 21세기 들어 경제적 풍요를 경험한 세대에게 거의 외면 받는 수준으로 격하된 거 같다. 세월이 변하면 책도 변해야 하겠지만 어딘지 좀 쓸쓸한 데가 있다. 예전 삼중당이나 삼성문화재단에서 낸 문고판 책들에 깊은 추억을 갖고 있는 시니어들은 문고판 책이 드물어지는 게 서운하기도 할 듯. 뭐 어쩌랴. 사는 게 다 그런 걸.

  이 책도 번역을 이성호 선생이 했다. 이성호는 1938년 포천 내촌에서 출생해 국립서울사범학교(서울사대)를 졸업하고 여러 대학을 거쳐 한양대 영문과 명예교수로 말년을 지내고 있다. 이 책의 초판 1쇄가 2014년. 76세의 선생이 직접 번역을 했을까, 아니면 전에 어느 매체에 번역 발표한 것을 문고판으로 만든 초판이라는 뜻일까? 왜 시비하느냐 하면, 이런 문장 때문에 그렇다. 주인공 키노가 사는 가난한 집을 묘사하는 장면이다.

  “키노는 눈을 뜨자 먼저 환하게 밝아 오는 구형矩形의 문 쪽으로 눈길을 돌리고…” (p.19)

  초판이 나온 2014년에 구형矩形의 문을 “직사각형 모양의 문”으로 읽는 젊은 독자는 없을 것이다. 95퍼센트 이상이 어떻게 문을 ‘공ball’처럼 생기게 만들 수 있었을까? 라고 생각할 듯하다. 교수의 시절에는 그저 한자로 설명해주면 만사가 끝났겠지만 지금 독자들은 아예 한자어를 배우지 않기 때문에 어림도 없다. 동음이의어로 생각할까봐 나도 꼴같지않은 독후감을 쓸 때 궁리가 복잡할 정도이다. 비단 구형矩形의 문 하나가 아니라 묘사 자체도 다분히 예스럽다. 나 정도의 세대는 이런 예스런 표현이 반갑기도 하고 그렇겠지만 젊은 독자는 곤혹스러울 수 있다. 범우문고는 안타깝게도 이렇게 새 세대에 의하여 잊혀지고 마는 모양이다. 한 시절엔 날개를 펼쳐 곧 하늘로 박차 오를 것 같은 독수리 문양의 범우사凡友社, 라면 독자가 환장을 하던 시대가 있었는데.


  시대는 20세기 초반 정도. 무대는 멕시코만을 접한 원주민 어부들의 작은 마을과 인근 읍내.

  스토리는 단선적이다. 그래서 본문만 129페이지 정도의 분량이지만 단편소설로 분류하는 것이 타당하겠다. 초기부터 사회주의적 요소가 많이 깔린 작품을 많이 발표한 존 스타인벡은 캘리포니아에서 낳고 자라고 대학도 스탠포드를 다녀 많은 작품을 캘리포니아의 도시와 농촌, 농장을 무대로 한다. 근데 <진주>는 멕시코만이라 했고, 아예 멕시코 빈촌으로 잡았다. 1947년 그의 나이 마흔다섯에 발표한 작품. 아마도 평생동안 FBI의 요주의 인물 파일에 (빨갱이로) 이름을 올렸을 스타인벡답게 처음부터 특히 소작농과 인부들의 생활상과 노동쟁의 같은 것에 관심을 쏟았는데, <진주>는 물론 그런 요소가 완전히 없다고는 하지 못하겠지만, 4백년간 백인의 지배와 학대를 받은 멕시코 원주민에게 갑자기 큰 보물이 생긴 후에 벌어진 불행을 그렸다. 쉽게 얘기해서, 없는 동네, 없어도 그냥 없는 게 아니라 미주알이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만 사는 동네의 역시 가난한 한 집구석에 난데없이 로또가 당첨된 상황. 당시 빈민들이 무슨 돈이 있어서 로또를 살까? 작은 보트를 타고 바다로 나가 진주 잡이를 하는 것이 먹고 사는 방편인 사람들인데 주인공 키노가 갈매기 알만큼이나 크고 아름답고, 흠 없는 완벽, 그런 진주를 발견한 후일담이다.


  키노는 아내 쥬아나(아마 ‘후아나’가 맞는 표기일 듯)와 젖을 떼지 않은 아들 코요티토와 가난하지만, 대다수 마을사람들처럼 자신이 가난하다는 의식도 별로 없이 그저 행복하게 살고 있는 젊은 아빠이자 남편이다. 젊고 건장하고 준수한 청년. 온화하면서도 한 번 성질이 나면 사납게 돌변한다. 젊은이들이 다 그렇지 뭐. 총명한 눈이 반짝이고 코 밑에는 짧은 수염이 났다.

  이 동네 사람들은 날이 밝으면 대개 옥수수 케이크와 책에서는 그냥 “용설란주龍舌蘭酒’라고 쓴 풀케 한 잔으로 아침을 때운다. 관습적으로 늘 하는 말은 대화가 아니라서 이 부부 사이에도 아침을 먹으며 아무런 말이 없다. 그러나 서로를 사랑하는, 세상에 사랑할 것이라고는 서로간, 둘밖에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하는 방식의 사랑을 하는 부부는 따듯한 눈길을 교차하며, 해먹 속에서 달게 자고 있는 아들 코요티토를 부드러운 눈길로 보고 있었다.

  이때 코요티토가 누워 있는 해먹에서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무엇을 발견한다. 대들보에서 해먹을 메어 놓은 줄을 따라 기어 내려오는 전갈 한 마리. 전갈을 발견하자마자 키노는 엄지와 검지로 잡아 손바닥에 올려 으깨 죽이려 손을 내밀어 보았지만, 전갈은 짧은 찰나의 순간에 아이의 어깨 위로 떨어지면서 코요티토의 보드라운 피부에 독을 찌르고 말았다. 분노한 키노는 맨손으로 전갈을 집어 들고 그대로 손으로 터뜨려 죽인 다음 바닥에 던져 바로 짓이겼으나 이때도 코요티토의 몸에는 전갈의 독이 퍼지고 있었다. 쥬아나는 전갈이 아이의 몸에 가까이 다가왔을 때부터 낮은 목소리로 주문을 외우다가 더 급박한 순간이 되니 아베마리아를 불렀으나 결국 첫아이의 어깨에 독침을 쏘았고, 독기가 급격하게 퍼져 아이가 악을 쓰며 울기 시작하고, 어깨와 목과 관절이 부으려 하자, 허약하지만 인내심이 강하고 단호한 성격의 쥬아나는 순식간에 암사자로 변해 머뭇거리지 않고 아이의 어깨에 작게 뚫린 구멍에 입을 맞추어 독을 빨아내 그걸 뱉은 다음에 다시 빨고, 뱉기를 멈추지 않았다.


  의사는 오지 않을 것이다. 이 초가마을이 생긴 이후 의사가 가난한 마을에 직접 발을 디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무도 의사를 기대하지 않았고, 기대할 수도 없었다. 이때 암사자 엄마 쥬아나가 외쳤다.

  “그러면 우리가 의사에게 갑시다.”

  이리하여 키노와 아이를 안은 쥬아나, 키노의 형 쥬안(후안) 토머스, 비만한 형수와 네 조카를 선두로 많은 동네 사람들로 이루어진 행렬이 읍내 의사의 저택으로 향했다. 읍내에서 가장 부유한 주민 가운데 한 명인 의사. 그는 젊은 시절 잠깐 지내본 파리로 돌아가 남은 세월을 최고의 문명도시를 향유하는 부르주아로 사는 헛꿈을 꾸고 있는 작자. 문지기가 원주민이 전갈에 물린 아이를 데리고 왔다고 보고했고, 의사는 무시한다.

  “인디언 놈들이 벌레에 물린 것을 치료해준다니, 내가 할 일이 없나? 내가 의사야. 수의사가 아니란 말이야. 돈이나 있나? 돈이나 갖고 있는지 물어봐.”

  키노의 주머니에 돈은 없고, 팔지 못하고 남은 허접한 진주 예닐곱 개만 들어 있다. 이걸 가지고 다시 의사에게 갔다 온 문지기는, 의사는 외출 중이요. 중환자에게 왕진 가셨소, 하고 말하며 슬며시 문을 닫는다. 무리는 어쩔 수 없어서 아픈 코요티토를, 그러나 엄마가 독을 빨아주어 그랬는지 조금 낫는 듯한 아이를 데리고 다시 가난한 사람들만 사는 동네로 터덜터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튿날, 키노와 쥬아나 부부는 아이를 햇볕에 가리기 위하여 숄로 덮은 후에 할아버지 때부터 자기한테까지 내려온 카누에 올라 진주조개를 잡으러 바다로 간다. 아이가 아프더라도 일을 멈출 수는 없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 보통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바다로 나간 부부. 키노가 바다 속으로 잠수했고, 그날은 무슨 일인지 여태 한 번도 찾아보지 않은 바위 사이 깊은 곳에 눈이 갔는데, 여태 한 번도 보지 못한 커다란 굴이 조금 입을 벌리고 있었다. 커다란 굴 속에 여태 한 번도 보지 못한 은은한 빛이 밝지 않은 바다 속임에도 빛나고 있었던 거였다. 급하게 굴을 따 다시 카누에 올라 굴의 속을 헤쳐보니, 앞에서 말한 갈매기 알만큼 커다랗고, 아무런 흠이 없으며, 아름다운 색을 반사하는, 여태 한 번도 보지 못한 보물을 건져 올린 것이었다.

  갑작스런 행운에 경악을 금치 못한 키노와 쥬아나는 환호성을 울렸고, 이들의 카누 옆에서 작업하던 동료 어부들이 다가와 이 소식을 알았다. 작은 동네. 키노와 쥬아나가 급하게 작업을 마치고 서둘러 뭍으로 나와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키노가 굉장한 크기의 역대급으로 아름다운 진주를 캤다는 소식을 마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이튿날이 되자 읍내에서도 진주 이야기를 하거나 그걸 어떻게 자기 손에 넣을까를 궁리하는 사람이 하나, 둘, 넷, 여덟, 열여섯, 서른둘, 기하급수적으로 생기기 시작했으니.

  진주는 폭력과 야만의 시절, 폭력과 야만의 장소에서 놀라운 속도로 키노 가정의 행운에서 악운으로 바뀌고 있던 거였다. 전갈의 독처럼.

  이렇게 작품은 시작한다. 어떻게 되는 지는 읽어보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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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5-09-22 13: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상하게 저는 스탁인백 소설이 재밌는지 모르겠더라구요. 문학 덕후들로부터 재밌다고 추천받아 읽었는데 영~ 대표적인 예가 <분노의 포도>... 문제가 뭘까요?? 다시 읽어볼까 생각중입니다~
스타인백 책 모을 때(그래두 7권 모음) 범우문고본으로 소장하고 있긴 하지만 읽지 않아 얼른 처분해야 할 듯합니다..ㅎㅎ

Falstaff 2025-09-23 04:00   좋아요 0 | URL
문제는 무슨 문젭니까. 그냥 야무님하고 스타인벡이 맞지 않는 거예요. ㅎㅎㅎ 사시다가 야무님이 읽고 싶을 때가 되면 그때 한 번 들춰보고, 그래도 마음에 안 들면 또 두었다가 나중에 읽으시면 되지 않을까요? 저도 그런 작가들 있습니다!
 
핸드폰 - 옛날 방식으로 쓴 열세 편의 이야기
잉고 슐체 지음, 노선정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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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잉고 슐체. 구 동독 드레스덴에서 1962년에 출생한 임인년 범띠 아저씨. 이이의 라이브러리를 보면 1995년에 출간한 데뷔작인 <33가지 행복한 순간>으로 초장부터 독일문학의 기린아로 부상했다는데, 아직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되지 않았다. 이 작품은 지금 독후감을 쓰는 《핸드폰》에 자주 인용되는 것을 보아 (데뷔작이니 당연하겠지만) 작가의 작품 세계에도 상당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거 같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핸드폰》에 <33가지 행복한 순간>이 101번 정도 등장한다.

  나는 <새로운 인생>, <아담과 에블린> 그리고 <심플 스토리> 이렇게 세 작품을 읽어보았다. 즉 잉고 슐체를 알기 시작한 것이 겨우 10년밖에 되지 않았고 작품은 당시 구 동독 출신 작가들과 비슷하게 독일의 재통일 이후 동독 출신 사람들의 갖가지 열등감, 피해의식,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맞게 되는 혼란, 자본주의 속에서의 불안감 등에 관한 작품이었다고 기억한다. 21세기 들어 당시 동독 및 동유럽 출신 작가들이 이런 작품들을 쓰기 시작했고, 그게 우리나라에 2000년대 후반들어 본격적으로 번역되기 시작했는데, 얼핏 생각나는 사람들로 두샨 코바셰비치, 페터 슈나이더, 토마스 브루시히 등인데 우연히도 이들의 작품들이 전부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대산세계문학전집 시리즈에 들어 있다. 일일이 책장 뒤지기 싫어서 대산전집 모아 놓은 책장만 둘러봐도 이렇다는 뜻이다. 내 서재 검색하면 작품 읽고 쓴 독후감도 구경하실 수 있다.


  2007년에 라이프치히 도서전 상을 받은 《핸드폰》에서는 독일 재통일 이후 구, 서독 부르주아들이 서쪽, 특히 서베를린으로 쫓겨갔지만 당시 그들의 여행가방 속에 자신들이 동쪽 베를린에서 살던 주택 등의 부동산에 대한 소유 권리증 같은 것을 챙겨 갔고, 재통일이 되자마자 이들은 통일 독일의 법정으로 몰려가 동쪽 베를린에 있는 자기 소유의 주택 등 부동산에 관한 소유권을 인정해달라는 소송을 진행했다. 우리나라도 한국전쟁 당시 비슷한 일이 있었음에도 일정 기간 거주한 사람들의 거주권이 소유권을 우선한다는 판결이 나기도 했으나, 독일은 얄짤없이 원래 소유자의 권리를 인정했다. 예니 에르펜베크의 작품 <그곳에 집이 있었을까> 같이 한 부동산이라 하더라도 정당한 절차를 걸쳐 소유권을 얻은 사람이 둘 이상인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다음으로 하고, 통일 당시 주된 골치거리는, 서독에 앉아 소유권을 주장, 인정받은 집 주인이 몇십년 동안 같은 건물에 살고 있던 거주인에게 언제까지 방을 빼달라고 요구하는 일이 도처에서 벌어졌다는 거다. 이미 낡은 건물을 대대적으로 보수하거나 아예 철거해서 새로운 건물을 짓겠다는 건데, 물론 살고 있던 사람한테 적지 않은 이주비를 약속해서 많은 철거민들이 건물을 비워주기는 하지만, 특별한 이유가 있는 주민들은 끝까지 이주하지 않고 건물 안에서 버티는 일도 잦았다.

  그럼 한 건물에 몇 가구 남지 않게 되고, 빈 집에는 처음엔 부랑자, 노숙인들이 점거하며 매우 불결하고 위험한 환경을 조성하기도 했다. 케이트 블란쳇이 주인공 오케스트라 지휘자 리디아 타르로 출연하는 영화 <타르>에서 타르가 린치를 당하는 건물을 기억하시나? 전형적인 베를린 구 동독의 아파트 지역이다. 가끔 이런 경우보다 나은 건물은 세계 각국의 예술인들이 거의 빈 집이라 월세가 아예 없지는 않지만 무지하게 저렴한 이런 건물에 모여 한 커뮤니티를 이루는 일도 생긴다. 그래서 한때 세계의 젊은 각종 예술인들의 집합지이기도 했다.


  3부로 구성된 책 《핸드폰》의 1부 첫 작품이 <핸드폰>이다. 이 작품의 배경이 바로 동 베를린 지역이었던 한 아파트의 리모델링 작업 도중에 끝까지 버티고 이주하지 않은 가정을 그리고 있다. 서베를린 지역에 살면서 단 한 번도 자기 건물에 입주해 사는 사람 앞에 모습을 보이지 않은 건물주는 주인공 가족에게 2십만 마르크의 이주 위로금을 제시했건만, 화자 ‘나’는 그 돈 갖고 괜찮은 아파트를 얻을 수 없다고 판단했거나, 지금까지 산 아파트에 무진장 정이 들어 만일 이곳을 버리고 떠난다면 남은 평생을 끔찍한 노스텔지어 속을 헤매다 죽을 것 같거나, 그것도 아니면 조금만 버티면 2십만이 아니라 잘하면 30만 마르크도 나올 거 같아서 버텼다.

  왜 버텼건 간에 세상에 자기 마음대로 되는 일은 정말로 하나도 없는 법이라서, 다행스럽게 건물을 때려부수고 다시 짓는 건 아니지만 자기 집만 내버려둔 채 나머지 빈집에서 각종 공사를 벌이느라 벽을 허물고 페인트를 벗겨내고 천장을 뜯어 버리니 세상에나, 이 건물에 그렇게 많은 쓰레기와 먼지가 쏟아질 지는 꿈에도 몰랐다. 이들은 푄 바람이 부는 뜨거운 여름에도 창문을 비닐로 여러 겹 둘러쳐 먼지가 들어오지 않게 해야 하는 건 물론이고, 하다못해 계단 내려갈 때에도 (올라올 때는 아무래도 위험이 덜한 편이니까) 발에 뭐가 밟히는지 한 발자국 내디딜 때마다 확인해야 했는데, 이게 하루이틀이면 모르겠지만 한달 두달을 넘어 한해 두해에 육박하니, 애초 건물주가 20만을 주겠다고 할 때 왜 넙죽 받지 않고 버텼느냐, 이제 부부싸움 하는 것도 넌더리가 나는 수준이다.

  뭐 대강 감 잡히시지? 이런 스타일은 아까 앞에서 이름을 나열한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도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러니 새롭지 않아서, 통일 이후 구 동독 출신 소설가로 혜성같이 등장한 기린아 잉고 슐체가 《핸드폰》의 부제를 무엇으로 정했느냐 하면,

  “옛날 방식으로 쓴 열세 편의 이야기.”

  여기서 “옛날 방식”이란 것이 언젯적 “옛날”이냐는 건데, 중세 트리스탄과 이졸데 당시도 아니고 가르강튀아도 아니고, 니벨룽겐의 노래 시절도 아니고 심지어 독일 문학의 할아버지 추밀고문관 괴테 시절도 아니라, 우리가 여전히 익숙하게 읽는 단편소설 양식인 발단, 전개, 갈등, 절정, 결말 식의 구조를 갖춘 작품을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전공자가 아닌 내 생각이라는 뜻이다. 망신당할 수 있으니 다른 데 가서 써먹지 마시란 얘기다. 근데 이런 작품이 어제 독후감을 쓴 수전 손택, 세계적으로 명성이 떠르르한 에세이스트, 평론가, 운동가 등등의 소설보다 훨씬 읽기가 수월하고 심지어 재미있다. 물론 여기서 ‘재미’라고 해도 독일 문학이 유구한 전통을 이어온 “재미없는 독일 소설” 입장에서 재미있다고 하는 거니까 정말 재미있다고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2부로 접어들면 여섯 편이 실려 있는데, 주로 여행가서 생긴 일, 본 것들과 자잘한 에피소드를 썼다. 2007년에 도서상을 받은 책이라면 이이의 나이가 겨우 마흔다섯 왔다갔다 할 텐데, 글쎄, 조금 빨리 작가의 티를 내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진짜 자신이 무슨 행사를 빌미로 어떤 지역을 누구와 가서 무엇을 본 것을, 당연히 허구를 보태 자잘하거나 굵직한 에피소드를 보태 소설로 쓴 것이 많다. 자신의 생활 근처에서 글감을 발견하고 거기에 거짓을 섞어 작품을 쓴 것이 소설이지만 애초부터 나는 소설가이고, 어떤 곳에 갔고, 마치 보고서를 쓰듯 해야 했을까? 하긴 뭐 다 작가 마음이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독자는 안 읽으면 된다. 괜히 까탈 혹은 심술 부리지 말고. 기어이 끝까지 단어 하나 빼지 않고 몽땅 읽은 다음에 작가한테 심술부리는 나 같은 독자한테 뭐라 그래? 맞다, 진상. 어느새 나도 진상 독자 가운데 한 명이 되었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기에는 내가 너무 오래 이이의 작품들을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또다시 잉고 슐체의 작품이 번역되어 시장에 풀린다면 나는 여전히 기꺼운 마음으로 그의 책을 선택할 것이다. 물론 구입하는 대신 도서관에 희망도서신청을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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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9-19 1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일 통일 후 거주권을 무시하고 구 소유권에 손 들어줬다는게 저는 충격입니다. 와 그게 가능했다고요? 독일에서? 아무래도 제가 독일의 자본주의를 과소평가했나봅니다. ㅠㅠ

Falstaff 2025-09-20 03:28   좋아요 0 | URL
소유권은 인정했는데요, 일정 기간 한 곳에 산 사람들의 거주권 역시 싹 무시하지는 않고 가구 면적 당 일정 금액을 이주비 형식으로 지원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권이 바뀌면서 서류가 복잡해지는 와중에 가끔은 합법적 소유자가 두 명 이상이 될 경우도 있어서 매우 복잡하고 긴 법정 다툼과 조정도 있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나, 그리고 그 밖의 것들
수잔 손택 지음, 김전유경 옮김 / 이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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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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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전 손택은, 1932년, 중국 톈진에서 리투아니아 유대인 밀드레드 제이콥슨 양의 태에 폴란드계 유대인이자 미국인인 잭 로젠블렛의 씨톨이 착상해, 이듬해 1월에 미국땅 뉴욕에서 수전 로젠블렛Susan Rosenblatt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잭 로젠블랫씨는 수전이 다섯 살이던 1937년에 지병인 결핵으로 일찌감치 숟가락 놨고, 어머니는 7년 동안 과부로 살다가 미 육군 대위 네이선 손택과 결혼해서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나온 두 딸에게 ‘손택’이라는 이름을 갖게 했다. 손택 씨가 정식으로 아이들을 입양하지 않았지만 하여간 쓰겠다는데 뭐 어떻게 하겠어? 이런 개인사가 《나, 그리고 그 밖의 것들》에 다양한 방법으로 드러난다. 간혹 마구 얽힌 채로. 아버지가 미군 장교였는데 결핵에 걸려 일찌감치 죽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무역에 관심이 있는데 특히 중국 골동품 수집에 관심을 쏟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소설이라는 장르에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손택은 에세이와 평론가로 더 알려져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이렇게 얘기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나는 손택의 저작에 관하여 무식하다. 자신은 스스로를 소설가로 생각했다고 하는데 그건 본인 생각이다. 어떻게 보면 사회운동가라고 부르는 게 더 정확해 보이기도 한다. 실천적인 당대의 지식인이었던 것 같다. 관심분야도 상당히 많은데 굳이 위키피디아를 베끼지 않겠다. 관심있으면 직접 검색해보시라.


  소설가라고 불리고 싶었던 작가는, 소설가로도 상당한 성과를 냈다고 이 책의 역자 김전유경은 주장하지만, 책을 읽어보니까 그냥 한 시절 반짝 한 정도 아닐까 싶다. 하늘의 숱한 별 가운데 잠깐 반짝이고 곧 사라지는 무수한 별 가운데 그냥 하나. 그러니 수전 손택이 정말 소설가이고 싶었다면, 소설 말고 에세이, 평론, 영화, 공연기획, 사진, 사회운동 등 다양한 쪽으로 열심히 활동한 것이 결과적으로 탁월한 선택이었을 것 같다. 그쪽으로 명성을 쌓는 것이 삼십 년 정도 잊히지 않는 소설가가 되는 것보다 더 쉬웠을 듯해서.

  소설집 《나, 그리고 그 밖의 것들》에 실린 여덟 편의 소설은 실험적이다. 독자들이 오해하기 쉬운 것이, 평론이나 역자가 책 뒤에 쓴 해설에 “실험적”이라고 해 놓으면, 독자는 책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이해할 수 없었던 표현을 읽고, 그것이 내가 문학적 수양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지레짐작하기 쉬운 현상이다. 천만의 말씀.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만일 독자가 약간의 독서력만 있다면 대부분 이런 작품은 작가가 별 비전 없는 실험, 자기만의 방에 틀어박힌 전위에 집중하고 있어서 작가 스스로 소통을 포기하고 있기 때문이란 걸 눈치챌 수 있다.

  그럼 수전 손택의 실험 소설은? 실험을 칭하면서 속으로 그냥 자기 이야기와 주장을 펼 뿐이다. 이야기와 주장을 하기 위하여 꼭 실험적 장치가 필요할 거 같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그건 뭐 작가의 권리이니 뭐라고 할 수 없지만, 읽고나서 그게 적절한 실험이었는지 부적절한 삽질이었는지 판단하는 건 또 독자의 판단이니 작가나 평론가는 입 떼지 말라. 나는 손택의 책이 실험인지 멋부리기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잘 모르겠다. 속마음은 있지만 내가 미쳤냐, 어떻게 생각하는지 솔직하게 밝히게. 지구상에 손택의 열렬지지자만 모아도 서울은 모르겠고 부산 인구 정도는 될 터인데, 그이들한테 딱밤 한 방씩만 맞아도 해골 뽀사지겠다.


  처음엔 잘 읽었다. 굳이 스토리를 소개하고 싶을 정도는 아니지만 지금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자유. 개인을 통제하는 모든 외압에서의 자유. 이를테면 불문율, 종교, 도덕, 학업, 독박육아, 규제에서 벗어나는 일. 이런 걸 주장하는 걸로 읽혔는 바, 읽으면서, 이런 걸 이런 식으로 주장하려면 차라리 논문이나 연설문이나, 에세이를 쓰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뒤쪽으로 가면 점점 자신의 유년시절부터 웬만큼 나이든 시절까지 조금의 자전적 경험을 채용, 변형해 독자에게 구경시켜주고 있고, 자신이 1999년에 발표한 소설 <미국에서 In America>에서 불거진 표절 논란을 염두에 두었는지, ‘차용’ ‘인용’ 문제에 천착하기도 한다.

  차용, 인용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 책을 읽기 위하여는 사실 적지 않은 서양 문학 독서량이 필요할 거 같다. 작가와 작품, 가끔가다가 작중 등장인물이 작품 속에서 툭 튀어나오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데 친절하지 않은 역자 김전유경과 출판사 편집부 직원들은 지금 독자를 헛갈리게 하는, 또는 헛갈려야 마땅하다는 것도 모른 채 지나치게 하는 문구가 무엇을 인용하는지 각주를 붙여놓지 않았다.

  책 속에 <중국 여행 프로젝트>라는 단편이 있는데, 뭐 이 작품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수전 손택은 글쓰기와 대화를 비롯한 의사소통의 유구한 역사를 만드는 핵심 요인 가운데 하나가 이미 누군가 말한 내용을 다시 가져오는 인용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특히 중국의 경우에는 인용문, 인용문이 속에 누군가의 말을 또 인용한 것이 있으니 그걸 재인용이라고 한다면, 인용과 재인용, 또다시 재인용… n번의 인용까지 가능하지만, 그건 읽는 사람이 알고 있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니 이미 발표한 적이 있는 구절을 조금 변형하는 정도야 뭐 당연한 거라고, 꼭 집어서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읽힌다. 책을 읽을 때는 몰랐지만 읽고나서 위키피디아 보니까 글쎄 1999년에 표절 시비가 있었지 않았겠어? 그것도 모르고, 동양사람이 공자왈, 맹자왈 하는 게 서양사람한테 뭐가 중헌디? 괜히 혼자 잠깐 궁리했지 뭐야?

  이 책 읽고 곧바로, 정말 10분도 넘지 않아 독일민주공화국 드레스덴 출신 소설가가 옛 방식으로 쓴 단편소설집을 읽기 시작했는데, 아이구, 얼마나 깔끔하게 잘 읽히는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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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9-18 2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산인구정도 되는 사람들에게 딱밤맞을 각오로 이런 글 쓰시는 Falstaff님 멋지십니다. ^^ 저도 손택의 팬이지만 문학은 아니던데요. ㅎㅎ

Falstaff 2025-09-19 05:18   좋아요 1 | URL
유명 작가가 쓴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조금 곤란합니다. 읽는 팬들의 마음이 좋지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제대로 이해도 못했으면서 이름값에 눌려 내 감상을 왜곡시킬 수는 없잖습니까. 소통은 힘들어요. ㅎㅎ
 
하동 창비시선 414
이시영 지음 / 창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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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이시영의 시를 읽는다. 1949년 구례 출신. 60년대말 서라벌예대 문창과를 졸업하고 6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조가, 월간문학 신인공모에 시가 당선하여 등단한 시인인데 그딴 거 알 거 없고, 훗날 자유실천문인협회와 협회의 후신 민족문학작가회의, 이 단체들의 후신인 한국작가회의의 이사장을 역임한 진보진영의 대표적 시인이다. 그간 이시영의 시를 솔찮게 읽은 거 같은데 정작 생각나는 시는 없다. 열일곱 권의 시집과 한 권의 시선집, 그리고 잡글들, 이른바 산문집 또는 에세이집이라 부르는 책 몇 권을 상재했다. 일찍이 “리얼리즘 시의 대표선수”라는 칭호를 받은 바 있는 이시영은 그러나 이쪽 편과 정 반대쪽에 선 서정춘, 김종삼, 천상병 등을 “시업에 비해 의외의 소외를 받는 과소평가된 시인”으로 평하는 비교적 균형 잡힌 발언을 하기도 했다. 반면에 최영미의 괴물 논란 이전에 명색이 문인이라면 감히 이이 앞에서 크게 숨도 쉬지 못했던 우리나라의 만년 노벨문학상 후보자 고은에 대하여, 놀라운 생산량에 비하여 시적 성취/발전은 주목할 만하지 못하다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던 이다. 고은의 막강한 문학권력 앞에서 이런 발언을 할 수 있었다는 거 하나만 갖고도 이시영의 배포는 알아주어야 했다. 문학판도 그렇다. 아니, 그랬다. 그렇게 개판이었다.

  자유실천문인협회, 민족문학작가회의를 거쳐 한국작가회의의 이사장까지 역임했으니 이이와 En 또는 괴물이라는 닉네임이 얻어 걸린 고은과 친하지 않을 수 없었을 터, 이시영이 촌스럽게 20세기 말에 호를 하나 가지고 있었으니 ‘산 이야기’ 산화山話라, 이 호를 지어준 이가 바로 고은이었다. 고은도 자신의 시를 비판한 까마득한 후배 이시영에게 호를 하사함으로써 자신의 아량을 뽐낼 수 있었으니 얼마나 기꺼웠을꼬? 시집에서도 고은과의 하루를 기억하는 시가 들어 있다.


  아욱죽


  1970년대 내내 화곡동 고은 선생 댁 마루에서 골목을 감시하던 고 형사도 때론 섞여서 두레상 펼쳐놓고 먹던 아욱죽이 그립다. “숙자씨, 여기 한그릇 더요!” 외치면 저도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 끄떡이며 은밀히 귀 기울여오던 마당귀의 미끈한 아욱대를! (전문. p.32)


  이시영도 당연히 몰랐겠지. 이 시집 《하동》을 출간하고 며칠이 되지 않아 고은의 까마득한 후배 이시영의 새까만 후배 최영미가 <괴물>이란 시를 발표해서 고은, En을 시대의 저편으로 보내버릴 걸. 그런데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에 참여시, 운동시라고 했던 리얼리즘 계열의 시를 쓰면서 고은과 얼굴을 트고 지내지 않기도 쉽지 않았을 터이라. 딱하게 됐다. 고은이 내린 호 산화山話를 세상에 알릴 수도 없고 쓰기도 남사스러운 날이 올 줄 몰랐겠지. 시집의 초판이 2017년 9월. 이시영 68세였다.


  “작년 가을이었던가? 남산 입구의 혼례식장에서 내려오던 길에 우리 만났지. “왜 시 안 써?”라고 인사를 건넸더니 그 가느다란 실눈을 뜨고 말보로를 한가치 꺼내 물더만, “성님, 시는 이십대에나 쓰는 거 아니요?” 그러곤 무슨 예감처럼 신호가 깜박이는 충무로를 건너 은빛 바이크들이 몰려 있는 상가 쪽으로 소파 같은 몸을 밀며 지나가더군. 맹인처럼 따각따각 지팡이를 두드리진 않았지만 사바세계의 구석구석을 걸어온 선지자처럼.” (<지우에게> 부분. p.92)


  황지우는 이성복, 최승자와 함께 우리나라가 배출한 걸출한 52년생 트리오 가운데 한 명이다. 아, 이건 전적으로 무지막지한 아마추어 독자인 내 생각이니 이 명단에 끼지 못한 다른 52년생 시인이 있어도 넓디 넓은 양해 바란다. 어쨌든 이시영은 이 시에서 황지우의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의 쪽글을 인용하면서 평소에 그리 친하지도 않았고, 자주 얼굴을 스치기는 했어도 ‘정식으로’ 만난 적 없는 황지우와의 촌편을 시 한 수로 썼다. 아마 서로 추구하는 시 세계가 판이하고, 시를 쓰는 스타일도 거의 완벽하게 반대편에 자리하기 때문에 평소 가까이할 수 없었으리라. 황지우가 52년생이니 시인과 겨우 세 살 차이. 그럼에도 그의 말을 인용한 시를 썼으면 황지우의 말대로 시를 좀 줄이든지. 이 시집 《하동》에는 한 줄 또는 두 줄로 그저 생각나는 파편을 글로 써서, 이게 시다, 라고 주장하는 것들이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시가 특별히 좋아서가 아니라 그냥 짧은 시 가운데 맨 앞에 놓여 있어서 하나 소개한다.


  오리알 두개


  갈숲이 자라는 곳에 오리알 두개

  오리는 어디갔나

  갈숲이 대신 품어주는 곳에 따스한 오리알 두개 (전문. p.12)


  시인이 갈대 숲을 지나다가 땅에 놓인 오리알을 보고 쓴 시다. 시라고 주장한다. 시인의 시선이 땅에 놓인 어쩌면 얼룩덜룩했을 오리알을 그대로 원고지, 아니지, 랩탑 화면 위에 문자로 써 놓고 시라고 주장하는 걸, 독자는 읽고 있다. 심지어 일행시도 있다.


  산길


  밤새워 고라니가 파놓은 흙 위에 흰 눈이 소복이 싸이셨다 (전문. p.21)


  아마도 시 가운데 제일 쓰기 힘든 시가 일행시 아닐까 싶은데 이것 역시 헛심만 쓴 거 같아 안타깝다. 시집은 당연하게도 이렇게 짧은 시들로만 짜여있지 않다. 주로 시인이 65년 이상 살면서 겪은 옛 시간들의 기억과 만남을 마치 수필처럼 쓰고 있다. 왜 그런 것들을 시로 썼을까? 산문집이라는 형식으로 내면 안 될까? 물론 다 그런 건 아니다. 무수한 만남과 이별 가운데 이런 이별도 시로 썼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를 생각함


  임종이 임박했다는 새벽 전화를 받고 고려병원에 달려갔을 때의 일이다. 황달이 퍼져 샛노란 눈빛의 김남주가 주변을 돌아보며 외쳤다. “개 같은 세상에 태어나 개처럼 살다가 개처럼 죽는다. 부탁한다. 남은 너희들은 절대로 이렇게 살지 마라!” 그의 숨이 끊어지고 난 뒤 병실 복도에 나와 나는 나에게 다짐했다. 빗방울 하나에도 절대 살해되어서는 안되겠다고!* (전문. p.14)

  *  김남주가 옮긴 브레히트의 시 <아침저녁으로 일기 위하여>의 마지막 행을 차용함


  김남주. 불행한 우리나라 현대사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그런데 죽음의 침상에서 마지막으로 저렇게 일갈하고 죽었다고? 아오, 실망이네. 나는 김남주처럼 살지도 못했지만 김남주처럼 죽기는 싫다. 좋건 싫건 살다가 갔으면 그것으로 끝이지 꼭 저런 말을 하고 싶었을까? 그것도 마지막 남기는 말로. 이 시집을 냈을 때 이시영의 나이가 나보다 위였을 텐데, 그 나이를 먹었으면서 이시영은 김남주의 마지막 말을 꼭 문자로, 활자로, 시 한 편으로 남기고 싶었을까? 세상이 개 같았을 지 모르지만, 정말로 개 같았지만, 세상이나 인간에 대한 미움이야말로 정말로 개 같은 것이란 걸 알았을 텐데. 김남주에 대해 억하심정이라도 있었나?

  물론 시들이 다 이런 건 아니다. 제일 앞에 소개한 시의 제목이 <귀래사를 그리며>. 귀래사? 도연명이 쓴 <歸去來辭>? 아니, 그거 말고 그냥 절 이름이 “귀래사”다. 귀례歸來. 돌아옴. 전문을 옮긴다.


  귀래사라는 절이 어디 있더라? 하여간 이 지상 어딘가에 있긴 있겠지. 이제 그만 그곳에 닿고 싶다. 가서 나무를 해도 좋겠고 머리가 허옇게 세었다고 싸리비로 절 마당이나 쓸라고 하면 그 또한 좋겠지. 늙으신 보살이 차려준 공양을 정성껏 비운 뒤 뒷산 남새밭에 가서 하루 종일 잡풀들과 일하리라. 가끔 일어서서 허리를 곧추세워 독수리눈으로 하늘을 보리라. 청청히 텅 빈 하늘, 그리고 목화 송이처럼 흐르는 구름들. 저녁을 마치면 골방에 틀어박혀 잡서를 읽으리라. 그리고 세상과 등을 지고 나와 대면하리라.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부모님 생각이 간절하겠지만 그 또한 잠깐의 인연. 훨훨 털고 텅 빈 벽에 바짝 붙어 단잠을 자다 소변을 눈 뒤 절 뒤꼍 해우소 근처에서 오래 서성이리라. 텅 텅 울리는 새벽 종소리가 아픈 무릎에 스밀 때까지 (전문. p.10)


  왕년의 참여시, 운동시를 쓴 시인. 1970~80년대 리얼리즘 진영의 대표주자이며 소위 이야기시를 반대하여 마치 하이쿠 같은 한줄, 두줄 시를 생산한 시인의 이야기시. 이런 하드웨어적 접근이 아니라 내가 인상 깊었던 것은, 시집을 관통하는 구례지역의 현대사, 여순사건과 파르티잔, 민주화 운동 당시의 과거 동지들과의 후일담과 어울리지 않는 시라는 점. 말이 “귀래”일 뿐, 귀래, 시를 읽으며 돌아와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알면서, 아오, 이게 왕년에 내가 알던 이시영이라는 말이지? 여전히 좌파 진보진영의 일원이라는 말을 하고, 듣고 싶지만 사는 건 부르주아로 살고 싶은 소위 강남좌파 아녀?

  나이 들어 작으나마 절에나 들어가 마당 쓸고, 풀 뽑으며, 날 새면 아주머니가 해주는 밥이나 먹고 책도 좀 읽고 하는 일상을 살겠다고? 음하하하…. 좋겠다. 그렇게 살겠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으니. 나이 들어 이 빠지고 무릎 쑤시고, 삭신이 결딴나도 최저임금 받으며 아파트 경비라도 서야 하는 노년이 아닌 것을 축하해야 할 밖에. 이시영씨, 그런 노인들한테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네요.

  가끔 허리를 곧추세우고 독수리눈으로 하늘을 보겠다? 대놓고 이야기해서 세상을 향해 기회가 있으면 “마지막 봉사”라는 핑계로 세상일에 참견을 하겠다는 말 아냐? 독수리의 눈? 우습다. 한 번 귀래, 돌아왔으면 그것으로 끝이지 무슨 미련이 있어서 세상을 독수리의 눈으로 또다시 바라봐야 직성이 풀리실까? 제발 그러지 마시라. 그 눈깔 확 뽑아버리고 사시라. 세상은 젊은이들한테 맡겨 놓고 그냥 하동 근처에 나지막한 집 한 채 짓고, 아니면 있는 집 리노베이션 해서 잘 자시고 잘 살다가 곱게 세상 뜨면 될 일이다. 일 하지 않고 노년을 보낼 수 있는 것에 고마워하면서 말이지.

  내가 뭐 잘난 거 있다고, 이렇게 살지 말라는 게 아니라, 한때 좌파면 좌파답게, 왕년에 진보였고 지금도 진보라 주장하고 싶으면, 적어도 이렇게 살겠다고 세상에 내놓고 떠들지만 말라는 거다. 그렇게 못 사는 노년이 노년인구의 9할이 넘는 세상인데.

  역시 황지우가 갑이다. 시는 이십대에나 쓰는 거라는 진리를 이미 체득한 현명한 시인 말이지.

  쓰다 보니 함부로, 그리고 험하게 말을 쏟기도 했다. 시인과 그를 좋아하는 팬들에게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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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5-09-17 05: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밤새워 고라니가 파놓은 흙 위에 흰 눈이 소복이 싸이셨다˝
염병. 흰 눈이 소복이 쌓였는데, 그래서 땅이 보이지도 않을 텐데, 그 땅을 밤새 고라니가 팠는지, 멧돼지가 팠는지, 아니면 불여우 한 마리가 작년에 묻어놓은 인간 해골을 파 먹었는지 그걸 어떻게 알았어 그래?

케이 2025-09-17 12:08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웃겨요. 사실 눈이 소복이 쌓이면 거기가 파인 자리인지 아닌지 모를 때가 많죠.

바람돌이 2025-09-17 12: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남주 시인의 이야기는 진짜일까요? 좀 묘한 마음이 드네요. 어떻게 나이드느냐가 중요하다는걸 자꾸 생각하게 됩니다

Falstaff 2025-09-17 16:02   좋아요 1 | URL
비슷하게 말하고 죽었다고 봐야 옳지 않겠습니까. 이시영이 따옴표까지 써서 인용했는데 설마 거짓이야 했을려고요. 다만 좀 과장이 있을 수도... 하여간 다양하게 거시기합니다. ㅋㅋㅋ

케이 2025-09-17 1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이 리뷰 제 속이 다 후련합니다. 정말로.
특히 아주머니가 차려주시는 밥 먹으면서 이 부분 너무 공감합니다.
절이든 교회이든 결국은 중년 아줌마들의 노동력을 갈취해서 유지되는 것 아니겠어요.
같이 절앞에 버려졌는데 여자애는 학교도 안보내고 새벽 3시에 일어나서 밥지으라고 시키고 남자애는 중이랍시고 여자가 차려준 밥 먹고 너무 불합리 합니다.
제가 일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나를 위해서도 애들을 위해서도 아니예요. 가난하게 태어나서 가난하게 계시는 저희 친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기라도 하면 답이 없기 때문이예요. ㅜㅜㅜㅜ 그렇다고 아버지가 절대 밉진 않습니다. 사회 구조상 가난하게 태어나면 죽을 때까지 가난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나이 들어서 무슨 선비마냥 곱게 살면서 죽겠다는 타령 보면 팔스타프님과 같은 이유로 기가 찰때가 많습니다. 하루 세끼 밥값 걱정하는 노인이 90% 이상일텐데 말이죠.
근데 정말 김남주 시인이 죽기 직전에 저런 말을 했을까요? 보통은 죽기 직전이면 무슨 말할 정신이 없을 텐데요. 아니면 이미 며칠전부터 잠든 상태이거나.... 하여튼 좀 궁금하네요.

Falstaff 2025-09-17 16:05   좋아요 1 | URL
그죠, 그죠? 그냥 아무 말 하지 않으면 될 것을 굳이 어떻게 살고 싶네 우짜네 저짜네... 참 밉습니다.
강조하건데, 제가 그렇게 살지 말아라, 하는 게 아니고요, 그렇게 떠들고 다니지는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는 충정에서 쓴 독후감이란 거..... 흑흑흑...
 
푸줏간 소년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패트릭 맥케이브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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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일랜드의 북쪽, 북아일랜드 페르마나 카운티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작은 마을 클론에서 1955년에 태어난 패트릭 매케이브는 더블린 북쪽에 있는 세인트 패트릭 칼리지를 졸업하고 17세에 런던으로 이사해 교사로 일했다고 하는데, 세인트 패트릭 칼리지가 초등교육에 강점을 갖는 학교라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지 않았나 싶다. <푸줏간 소년>을 감안하면 이런 이력은 중요하지 않다, 그냥 넘어가자. 교사를 하며 소설을 써서 1992년에 <푸줏간 소년>으로, 1998년에 <명왕성에서의 아침식사>로 두 번 부커상 최종심까지 올라가는 등 나름대로 성공을 거둔 후, 두 딸과 아내 퀸 여사와 함께 작고 가난한 고향 클론으로 돌아와 살고 있다. 잘했다. 20세기에 작고 가난한 마을이라는 것이지, 2010년대 이후 아일랜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1인당 GDP(2021년 기준 8만4천 유로)를 누리는 나라이다. 수백년 동안 가난하고 찌질했던 아일랜드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하여 잉글랜드로 이주했지만 이젠 잉글랜드 사람들도 (식민 지배자가 되기 위해서라 아니라) 일자리와 복지를 위하여 기꺼이 해협을 건넌다니까. 하여튼 부커상 숏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푸줏간 소년>은 후에 극작가와 협업해 연극으로 만들어 공연했고, <명왕성에서의 아침식사>는 영화로 만들기도 했다니 올해 일흔살에 접어든 매케이브는 어쩄든 고향의 푸른 들판 위에서 여유롭고 편안한 노년을 지내고 있을 듯하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여유롭지도 않고 편안하지도 않은 듯. 나는 <푸줏간 소년>이 처음 읽은 매케이브라서 뭐라할 수 없으나,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것 가운데, “폭력, 광기 등 잔혹한 이야기만 쓴다는 일부 비판”(출판사 제공 책 소개)이 있으며 이 또한 당연한 것 같아, 폭력과 광기 같은 것이 취향에 맞지 않는 독자를 당혹시키는 모양이다. <푸줏간 소년>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일랜드 작가들처럼 구름 끼고 바람 부는 초원 같은 쓸쓸함을 배경으로, 더구나 매케이브의 고향인 클론 마을은 아일랜드 북쪽에 있어서 춥고, 비 많이 오고, 가을부터 개울이 꽁꽁 얼어버리고, 전국에서도 가장 가난한 마을 가운데 하나라서 을씨년스러운 풍경이 더욱 강조되는데, 그곳에 신경정신과 쪽으로 유전적인 문제가 있는 소년 프랜시스(프랜시) 브래디가 심각하게 비정상적인 가정에서 태어나 점점 부적응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을 그렸으니, 읽는 내내 불안과 안타까움이 점증하는 것을 멈추지 못했다.


  버나드(베니) 브래디 씨는 클론 마을 역사상 최고의 음악가, 트럼펫 주자였다. 1950년대에 전성기를 구가한 영국의 트럼페티스트 에디 캘버트를 만나기 위해 해협을 건너기도 했다니까, 비록 책에서는 트럼펫 연주 장면이 한 번도 나오지 않더라도 그건 사실이었던 것 같다. 베니도 그리 편하게 산 건 아니다.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가장 가난한 지역에 살던 할아버지 앤디 브래디는 아빠 베니와 앨로 삼촌을 벨파스트의 추레한 여관에 남겨놓고 종적을 감추었다. 형제는 소정의 절차를 거쳐 천주교 신부들이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자라게 됐으며, 이곳에서 베니의 성격이 결정적으로 망가졌다, 라고 매케이브는 주장한다. 이후 베니는 하나밖에 없는 친동생 앨로를 집요하게, 프랜시의 말에 의하면 “세월이 많이 지나도 앨로 삼촌에게 개처럼 달려”들었다.

  왜 그랬을까? 베니는 애니를 만나 사랑을 하고, 외아들 프랜시를 낳았지만 이후 심한 알코올 의존증 단계로 접어들면서 수시로 애니에게 “너를 만난 것이 최대의 실수”였다고 악다구니를 쓰고, 가뜩이나 신경이 약한 애니는 아마도 유전적 형질이 있었을 것 같은데, 신경발작을 일으켜 몇 번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등 자신의 생활이 막장으로 떠밀릴수록 잘 사는 동생 앨로에 대한 공격이 더욱 심해지지 않았을까 싶다. 앨로는 그의 말에 따르면 20년 전부터 캠든 타운에서 사는 런던 사람이다. 적수공권에서 시작해 입신양명한 우러러볼 만한 사람은 아니고, 자기보다 스무 살이 더 많은 여자와 결혼해 결혼과 동시에 죽을 때까지 일할 필요가 없어졌을 정도로 부를 즐기고 있다. 핏줄이라고는 웬수 같은 형과 조카 프랜시 이렇게 딱 둘뿐이라 아무리 웬수 같아도 크리스마스 시즌 동안에 런던에서 배 타고 아일랜드 클론 고향집에 찾아온다. 원래는 두 주 동안 머물렀던 모양이지만 이제 형제 사이가 극적으로 갈라져 그저 딱 하룻밤을 지내고 돌아간다. 아버지는 술이 취해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악랄한 단어만 취합해 가장 모욕적인 말을 만들어 자신의 친동생에게 쏟아 붓는다. 그래도 명절이라고 형네 집을 찾는 앨로 삼촌, 보살이다, 보살.

  이 정도면 대강 짐작하시겠지? 당시가 아마도 1960년대로 보이는데, 세계에서 알코올 의존자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로 추운 소비에트와 폴란드를 꼽았는데, 아마 가난한 아일랜드가 이들을 능가했거나 적어도 어깨를 나란히 했을 것이다. 베니 브래디의 알코올 남용은 마을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엄마 역시 가끔 신경발작을 일으켜 그때마다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했는데, 엄마는 이때마다 “정비소”에 다녀온다고 말했다. 이런 집안에 딱 하나, 당연히 마땅한 돌봄을 받아야 하는 소년이지만 돌봄을 받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날마다 부모의 극한 언쟁과 눈물과 아우성을 들으며 자라야 했던 소년이 주인공 프랜시스 브래디였다. 프랜시 역시 엄마 쪽에서 물려받은 신경정신과적 병질과 아빠 쪽에서 넘어온 알코올을 포함한 약물 오남용 가능성을 풍부하게 지닌 상태로 태어났다…는 것이 작 후반에 드러난다.


  프랜시가 초등 고학년일 때였다. 런던에서 살다가 부모의 고향이 이곳이라 가족이 함께 살기 위하여 이사 온 전학생, 누전트 가문의 외아들 필립. 필립 혼자 런던의 사립학교에 다니다 온 거 같다. 아니라고 보기에는 누전트 부처가 이 북쪽 시골마을을 너무 잘 안다. 하긴 중요한 거 아니다.

  프랜시는 지난 겨울에 유일한 친구 조를 사귀었다. 중산층 가구의 외아들인 조는 프랜시가 어떤 집의 아들인지, 학교에서도 어떤 아이인지 잘 알면서도 한 마디로 말해, 처한 처지에 관계없이 꽝꽝 언 개울 위에서 얼음을 깨며 놀다가 친구가 되었다. 조의 입장에서 비슷한 부류인 전학생 필립의 집에 놀러가는 건 아무 문제가 없어서, 프랜시도 함께 묻어 갔다. 놀다가 당연히 나중에 돌려줄 생각이었지만 필립의 만화책 한 세트를 슬쩍 들고 나와, 프랜시의 방에서 조와 재미있게 봤다. 물론 정말 돌려줄 생각이었는지, 필립이 돌려달라고 해야 그렇게 했을지, 그건 모르겠다. 이걸 누전트 부인이 알았다. 그래서 누전트 부인이 프랜시의 집으로 찾아와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오지도 않은 채 프랜시의 엄마한테 말했다.

  “부인, 아비가 아침부터 밤까지 주점에 널브러져 아예 집에 안 들어오는 집에서 달리 무엇을 기대하겠어요? 그런 아버지는 돼지보다 나을 게 없어요.”

  독일에서 죽고 싶은 마음이 들면, 지나가는 스킨헤드족을 세워놓고 그에게 “Schwein!”이라고 한 마디만 하면 이 말을 들은 스킨헤드가 당신의 소원을 즉각 들어준다. Schwein. 돼지라는 뜻이다. 세계대전 때마저 독일과 사이가 나쁘지 않았던 아일랜드에서도 ‘돼지’가 최고의 모욕적인 욕이었을까?

  하여간 이 일이 있고 얼마 되지 않아 이제 암퇘지가 된 엄마는 식탁에 올라가 아버지의 전선을 목에 감고 매달리려 했다가 천국의 즐거움을 찾아가지 못하고 대신 정신병원으로 실려가는 일이 벌어졌다.

  며칠 후, 동네를 지나가던 누전트 여사와 필립 누전트를 발견한 프랜시. 느긋한 걸음으로 여사 앞에 선 그는 부인에게 이 길을 지나가고 싶으면 세금을 내라 요구했다. 이른바 “돼지 통행세.” 한 번에 1실링. 부인이 프랜시를 밀치고 지나가려 하지만 프랜시는 조금도 밀리지 않는다. 그가 말한다.

  “망할 놈의 세금. 그런 걸 내야 한다니 너무 하죠?”

  프랜시는 빙글빙글 웃으면서 오늘은 처음이니까 특별히 무료로 지나가게 해준다.

  며칠만에 정비소, 정신병원에서 돌아온 엄마.

  “우리는 누전트 식구들처럼 되면 안 돼. 그 인간들을 닮으면 절대 안 돼! 우리가 그 인간들한테 본때를 보여줄 거야, 그렇지 프레시?”

  이제 프랜시가 누전트 가족, 특히 누전트 여사를 겨눈 악감정은 절대 사라질 수 없다. 엄마가 퇴원하면서 사 들고 온 레코드를 건다. 이 노래의 제목이 <푸줏간 소년>. 2절 가사만 옮긴다.


  그는 이층으로 올라가서 문을 부쉈어

  그녀가 밧줄에 매달려 있는 것이 보였지

  그는 칼을 꺼내서 줄을 자르고 그녀를 내려주었어

  그녀의 주머니 속에 이런 말들이 있었어


  프랜시는 누전트 가족이 집에 없는 사이에 담을 넘어 들어가 첫번째 사고를 쳐서 소년원 정도의 시설에서 반년을 지내고 온다. 노래 가사의 방식으로 죽는 일에 실패한 엄마는 결국 강바닥에서 건져 올려지고, 돌이킬 수 없이 알코올 의존증에 빠져버린 아버지와 먹고 살기 위하여 정말 “푸줏간 소년”이 되어 호텔의 음식쓰레기를 수거하고, 돼지 도살장에서 진짜 돼지한테 충격 총을 발사하는 프랜시스 브래디. 자신이 저지른 비행으로 소년원을 다녀오고, 이 사이에 필립과 친해진 절친 조와 눈에 띄게 사이가 벌어져, 조의 부모도, 조 자신도 더 이상 프랜시와 가까이하고 싶어 하지 않지만, 그럴수록 조와의 관계에 집착하는 프랜시.

  오직 더욱 심각한 오해와 집착과 사고만 남아 있는 저 먼 북국의 쓸쓸하고 잔인한 일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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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 2025-09-16 1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 닐조던이 감독한 영하로도 있는데 원작 소설이 있었군요. 본 영화는 아니지만, 관객들에게 평이 꽤 좋았던 것으로 기억해요.
영화 포스터에 어떤 소년이 칼들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무래도 슬픈 결말이겠지요.
서른 살때 더블린에 딱 한번 가봤는데 식당에서 시킨 음식을 거의 못먹고 나온 기억이 납니다. 배고픈 상태였는데, 제가 절대 입맛이 까다롭지 않은데, 도저히 못먹을 음식이었지요. ㅜㅜ
어디선가 아일랜드 사랃믈이 너무 가난하게 살아서 음식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다는 글을 봤는데 못살긴 우리나라도 못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거 참.... 아일랜드 시민들이 불쌍했어요. 그런 음식을 평생 먹어야 한다니.
콧대높은 런던 사람들에 비해 엄청나게 친절했던 기억은 납니다. 나름 서울에서 직장생활 하던 저에게는 더블린이 우리나라 지방 도시 처럼 한적하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그런데 저런 소외된 소년이 벌이는 범죄의 심각성이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게 무섭네요.
어느 시대나 비슷한 걸까요.

Falstaff 2025-09-17 05:50   좋아요 1 | URL
위키피디아에 연극버전이 있다고 해서 그런 줄만 알았는데 영화로도 만들었군요. 근데 볼 마음은 나지 않습니다. 인상 깊은 작품이긴 하지만 스트레스가 만만하지 않더군요. 이제는 그런 영화 사양입니다.
아일랜드 사람들이 친절하군요. 오호. 저도 아일랜드한테 괜한 호감이 있습니다. 빨간 머리 뉴욕 깡패들. ㅋㅋㅋ 지금은 세상에서 제일 부자 나라라는데 먹는 것 좀 나아지지 않았을까요? 나아진 것이 그 수준이었나,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