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우리 문화유산 - 개정증보판
강형원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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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하게 전달되어오는 가슴 벅찬 우리 유물] 


한국인 최초로 퓰리처상을 2회 수상한 포토저널리스트 강형원의 우리 문화유산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저는 잘 몰랐는데 이력이 화려하네요. 1993년 LA 폭동과 1999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스캔들 보도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1987년 6.10 민주 항쟁과 서울 올림픽대회 등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부분도 사진으로 담았어요. 현재는 우리 문화 유산을 취재해 한국어와 영어로 신문과 잡지에 칼럼을 연재하고 국내외에서 강연을 펼치고 있는데요, 아마 이 책은 그 결과물인 것 같습니다. 


[사진으로 보는 우리 문화유산] 책에 한국어 설명과 영어 설명이 같이 실려있길래 왜 그런가 했더니 작가의 화려한 이력 덕분이었어요. 역사책이라고 하기에는 설명이 그리 많지 않아요. 하지만 전 그 점이 더 좋았어요. 각 챕터마다 해당되는 유물의 사진이 큼지막하게 실려 있어서 마치 가까이에서 보는 것 같은 생생함을 전달해요. 게다가 작가의 말처럼 사진은 문자가 달라도 사람들이 소통할 수 있는 도구니까요. 때로는 많은 설명보다 사진 하나가 더 많은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생각합니다. 


세계가 기억할 빛나는 한국의 유산, 한국의 찬란한 역사를 품은 유산, 한국의 고유함을 오롯이 새긴 유산 세 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고인돌, 백제 금동 대향로, 경주 첨성대, 팔만대장경판, 한글, 금동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 성덕 대왕 신종, 독도, 태극기, 한국 범(호랑이), 토종개, 한지, 온돌, 김치 등을 익숙하면서도 새롭게 소개하고 있어요. 전 백제 금동 대향로가 그렇게 좋더라고요. 작년 겨울에 부여에 갔을 때 박물관에서 꼭 보고 오고 싶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 서울에서 전시하고 있어서 아깝게 보지 못했었어요. 이 책에 실린 사진으로나마 아쉬움을 달래봅니다. 



문화유산과 유물 분야에 호랑이와 토종개가 포함된 것도 색달랐어요. 예로부터 범과 관련된 이야기도 많고, 한반도 지형이 호랑이를 닮았다고도 하잖아요. 일제 강점기 때는 우리의 혼을 꺾기 위해 서식하는 호랑이를 전부 잡아 가죽을 벗겼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범이 호랑이라는 한자어로 불리기 시작한 것도 일제 강점기라고 하니 새삼스레 화가 납니다. 토종개에는 진도개만 포함되는 줄 알았는데 삽살개, 진도개, 동경이 풍산개 등이 있다고 해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토종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경주개 동경이'이고요. 기록에 따르면 신라 시대부터 경주 지역에 살았다고 전해지며 꼬리가 뭉툭하고 짧아 '꼬리 없는 개'라고도 불린답니다. 역시 삽살개도 일제 강점기에 멸종 위기에 처했었지만 복제 연구를 통해 자연 번식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다행인지요. 


통사를 다루는 여타의 역사책과는 달리 우리 문화의 여러 부분을 조망할 수 있다는 점이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그 동안 몰랐던 지식들도 많이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생생한 사진에 가슴이 벅차요. 작가님의 의미있는 활동이 앞으로도 계속되길 바랍니다! 


** 네이버 독서카페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알에이치코리아>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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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이름들의 낙원
허주은 지음, 유혜인 옮김 / 창비교육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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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비교육>으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폭력과 두려움에 맞서는 용감한 발걸음을 응원하며] 


[사라진 소녀들의 숲]을 시작으로 [붉은 궁], [늑대 사이의 학]까지 역사 속 굵직한 장면을 배경으로 은근한 울림을 주는 작가 허주은. 그의 신간 [잃어버린 이름들의 낙원] 또한 작가가 한국 독자들에게 건네는 목소리 중 하나입니다. <한국 독자들에게> 를 읽어보면 앞의 세 작품 이전에 먼저 [잃어버린 이름들의 낙원] 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요. 2015년 한무숙 작가가 쓴 [만남] 에서 주인공 정약용이 천주교와 연관이 깊었던 서양 학문에 매료되며 펼쳐지는 이야기에 깊은 인상을 받아 태어난 작품입니다. 


1800년 정조가 승하한 후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이 시작된 후 조정에는 피바람이 예고됩니다. 모략과 배반, 암살로 궁정이 시끄러운 때, 민가에서는 천주교 신자들이 배덕한 자들이라 낙인찍히며 죽어나갑니다. 관비로 팔려 다모로 살아가는 '설'은 세상을 떠났다 생각한 오라버니의 무덤을 찾기 위해 애쓰는 한편, 연쇄살인사건의 비밀을 풀기 위해 포도청 한도현 종사관과 동행하죠. 여염집 아씨가 간직하고 있던 비밀, 죽음에 숨겨진 진실, 그리고 당시의 상황을 둘러싸고 있는 비극적인 사회 상황 속에서, 설의 용감한 발걸음이 시작됩니다. 


엄연히 반상의 법도가 존재하는 데다 남녀차별이 당연시되던 시절에,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바삐 움직이는 '설'이라는 캐릭터는 무척 인상적입니다.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어떻게든 정해진 길을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려는 설의 모습은, 허주은 작가의 작품들 속 여성 캐릭터들과 맞닿아 있습니다. 두려움 속에서도 끊임없이 불을 밝히고, 위험을 무릅쓰는 모습을 보면 우리는 당연하게도 그녀들을 응원할 수밖에 없어요. 가진 것을 당연시하며 여성을 무시하는 남자들의 폭력 앞에서도 주저앉지 않는 모습은, 폭력과 차별에 굴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의 불씨를 안겨줍니다. 


허주은 작가의 작품을 읽다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어째서 우리는 이런 비통한 시간을 겪을 수밖에 없었는가, 천주교의 가르침에 아무리 큰 충격을 받았다 해도 어떻게 하면 부모가 자식을 고발하고, 자식이 부모를 죽음으로 모는 참담한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는가 되묻게 돼요. 단순 역사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느낄 수 없는 울림. 그 울림이 바로 허주은 작가의 작품 안에서 들려옵니다. 그래서 계속 그녀의 작품을 찾게 되는 거겠죠. 


 늘 그랬듯, 진실은 밝혀질 것이고 '설'은 어떻게든 살아남아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것이라 믿어봅니다. 그리고 이름 없는 자들이 온전히 자신의 이름을 찾지 못한다 해도, 그들의 발자취를 누군가는 기억하고 있다는 것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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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왜 왔어?
정해연 지음 / 허블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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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가정은 평안하신가요? 가족을 소재로 한 책은 무서워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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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왜 왔어?
정해연 지음 / 허블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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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당신의 가정은 평안하신가요?]


국내 장르소설 작가 중 어느 정도 믿고 읽는 작가 중 한 명이 정해연 작가인데요, 이번 소설은 '집, 가족'을 소재로 한 미스터리라고 해서 특히 관심이 갔습니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 아이나 이혼의 과정을 소재로 방송하기도 하는 요즘, 과연 미스터리 속에서 가족은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했어요. 아무래도 매운 맛이리라 생각했는데, 실린 세 작품 모두 나름 매운 맛이기도 하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첫 작품인 <반려, 너>는 독자에게 말을 거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입니다. 작곡가로서 강아지 호두를 키우고 있는 한 남자가 먼저 등장해요. 공원으로 호두와 산책을 나간 남자, 윤치훈은, 호두가 어떤 여성의 발목을 물어버리는 바람에 그녀와 인연을 맺게 되죠. 아름다운 그녀의 이름은 이정인. 두 사람은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됩니다. 독서모임을 한다는 정인의 말을 듣고 자신도 참가하고 싶다고 하는 치훈. 이 정도면 명백한 관심의 표현이겠죠. 핑크빛 향기를 풍기던 두 사람의 분위기는, 그러나 치훈이 정인의 독서모임에 등장하면서부터 분위기가 180도 바뀌어 버립니다. 정말 깜짝 놀란 반전이었어요! 결말 부분에서 정인이 독자를 향해 던지는 질문이 있는데,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진 일에 정말 정인의 책임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작가는 표면적으로 보이는 조건에 끌리는 요즘 세태를 꼬집고 싶었던 걸까요? 하지만 누구나 처음은 겉으로 보이는 매력에 끌리게 되는 거잖아요. 저는 정인의 잘못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조금 더 경계했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은 들었습니다. 


두 번째 작품인 <준구>는 1984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학원 강사인 준구가 심야의 지하철을 타고 귀가하고 있어요. 몇 명 타고 있지 않은 객실 안에서, 갑자기 한 남자가 구토와 함께 경련을 시작해요. 결국 남자는 사망하고, 준구는 경찰 조사의 참고인으로 진술한 뒤 집으로 돌아갑니다. 악몽은 그 때부터 시작이었어요. 사랑하는 딸 지혜가 잘 자고 있는지 확인하러 들어간 그 방안에서요. 이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딸을 구하기 위한 아빠로서의 분투가 시작됩니다. 준구가 겪은 일 때문에 1985년 개통된 4호선 열차에는 머리나 팔을 내밀 수 없는 반 개 구조의 창이 설치됐다고 합니다. 흐흐. 과연 진실 혹은 거짓??!!


세 번째 작품인 <살(煞)>이 전체 제목에 가장 걸맞는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스튜어디스로 누구보다 찬란하게 빛났던 딸 수영. 그런 그녀가 어느 날부터 자리보전을 시작합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자는 상태에서 말라가기만 하는 딸을 안타까운 눈으로 지켜보는 선경에게, 한 남자가 말을 걸어요. 월하도령이라 불리는 그는 선경에게, 가족 중 한 사람이 수영에게 살을 날렸다고 합니다. 어떤 물건을 이용해서요. 결국 선경은 가족들을 의심하게 되죠. 한때 바람을 피웠던 남편을, 언니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을 민영을. 그 과정에서 밝혀지는 가족들의 비밀은 참 무서워요. 그 비밀을 선경은 끝까지 가슴에 묻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과연 가족 중 수영에게 살을 날린 이는 누구였을까요?


가족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어제도 첫째 아이에게 상처를 준 것 같아 괴로워하며 밤을 보낸 저는, 가족이라는 관계야말로 참으로 쉽지 않음을 절감합니다. 가족이라 남보다 더 큰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그랬을까 자책하게 돼요. 작가님은 앞으로도 많은 가족의 이야기를 담을 예정이라고 하는데, 부디 그 안에서 나의 못난 모습은 발견하게 되지 않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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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선 - 뱃님 오시는 날
요시무라 아키라 지음, 송영경 옮김 / 북로드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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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독서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북로드>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윤리와 생존 속에서 당신의 선택은??!!]

에도 시대, 어느 작은 어촌 마을. 이 마을 사람들은 날씨가 흐릴 때면 한밤중에 바닷가로 나가서 가마솥에 소금을 태우며 제를 올립니다. 언뜻 보면 지나가는 배들이 풍랑에 휩쓸리지 않고 안전하게 마을 부둣가에 정착하기를 기원하는 듯 하지만, 사실 그 배가 난파되기를 유도하는 행위에요. 난파된 배에 실려 있는 쌀과 다양한 물품은 마을 사람들을 굶주리지 않게 해주고 이웃 마을에 하인으로 팔려가지 않아도 되게 해주기 때문이죠. 마을 사람들은 파선을 ‘뱃님’이라 부르며 겨울마다 뱃님이 마을을 찾아와주기를 간절하게 바라게 됩니다.

그런 방식으로 찢어지게 가난한 일상을 이어나가던 마을 사람들은, 어느 해 2년 연속 떠내려온 배 덕분에 완전히 달라집니다. 작년에는 쌀과 설탕이 가득 실려 있더니, 올해에는 붉은 비단옷 차림으로 죽은 사람들이 잔뜩 실려 있는 거에요. 다른 옷감보다도 훨씬 귀한 취급을 받는 붉은 비단. 아무리 그래도 저라면 죽은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에 손도 대지 못할 것 같은데, 마을 사람들은 시체들의 몸에서 옷을 벗겨 나눠 가지고 즐거워합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부터 소름이 돋더라고요. 그 후 마을을 덮친 역병!!

요시무라 아키라는 1923년 일본에서 일어난 '관동대지진' 을 소재로 쓴 동일제목의 작품으로 유명한 작가입니다. '대지진에 의한 사회적 혼란, 집단적 정신 이상에 의한 학살' 이라는 결론을 낸 작품이라고 전해지는데요, 이번에 번역 출간된 [파선] 에서도 대대로 무리지어 살아온 마을에서 상식은 통하지 않고 오로지 조상들의 관습에 따라 삶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세밀하게 그려냅니다. 초반에만 해도 시신들의 몸에서 붉은 비단을 벗겨내는 사람들을 보며 '어떻게 저럴 수 있지'라는 생각이 더 강했는데, 뒤로 갈수록 과연 나는 같은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가 되짚어 보게 됐어요. 상식이고 양심이고 간에 당장 나와 내 가족들이 죽을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체면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습니다.

작가는 경솔하게 도덕적 판단을 내리지 않아요. 선택은 오로지 독자의 몫입니다. 배덕을 선택하고 살아남기를 희망한 사람들. 당신의 선택은 어떠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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