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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난폭
요시다 슈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마모루에 대한 분노가 터져나오고 모모코에게는 그냥 다 포기해버리라는, 그런 사람과 함께 살면 뭐하냐는 연민과 질책이 쏟아져나온다. 요시다 슈이치의 감성을 접했고, 빠져들었고, 매 작품을 읽으며 그의 섬세한 묘사에 놀랐었다. 내가 읽었던 그의 작품의 대부분은 ‘이것이 사랑인가’에 집중됐었다고 생각한다. [사랑에 난폭] 또한 소재는 별 다르지 않지만 진행방식이나 색깔에 있어서는 조금 차이가 느껴졌다. 사랑을 다루는 작품이라기보다는 마치 한 편의 공포소설을 읽는 듯한, 사랑의 밝은 면보다 어두운 면에 집중한, 읽고 났더니 몸과 마음이 굉장히 지쳐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남편 마모루와 결혼한 지 이제 8년. 둘 사이에 아이는 없다. 이렇게 저렇게 흘러가는 생활. 문화센터에서 비누 만들기 강좌를 진행하는 모모코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평범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남들이 보기에는 단순히 취미생활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녀는 이 비누 만들기 강좌를 확실히, 일로 자각하고 있다. 마모루에게서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기는 한다. 하지만 그것이 바람을 피우고 있는 것인지, 단순히 일이 바빠서인지 확신할 수 없다. 아침도 함께 하지 않고 침실에서 신문을 읽으며 홀로 보내는 마모루. 다만 그녀만이 홀로 창가에 의자를 가져다놓고 커피를 마실 뿐이다. 언제부터인가 쓰기 시작한 일기 속 그녀의 생활은 어떤 폭풍도, 비도, 바람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남편에게 여자가 있었다. 열 몇 살이나 어린 내연녀. 대수롭지 않게, 그저 정리하면 된다고 일상을 이어가는 모모코 앞에서 남편은 헤어져달라고 한다. 내연녀의 뱃속에 있는 아이를 정말 사랑한다면서. 이제 그녀의 삶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계기로 흘러나오기 시작하는 온갖 감정과 삶에 대한 욕망. 모모코가 서 있을 자리는, 그녀가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모모코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작가의 시점과, 모모코의 일기와 내연녀의 일기로 진행되는 그 곳 세상이, 다른 의미로 무섭게 다가왔다. 나는 ‘밖’에 있는 사람이니까 간단하게, 마모루를 떠나라고, 그런 찌질하고 후줄근하고 책임감없고 여자들에게 상처받게 주지 않는 남자는 버리고 자신만의 인생을 시작하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모모코라면, 그 때까지 이어져오던 생활을 접을 수 있을까, 조금 참으면서 살아야지 생각할 수도 있을까, 모르는 사이에 ‘나’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정말이지 마모루를 때려주고 싶었다. 너무나 뻔뻔하게 이혼을 요구하고, 아내 앞에서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 말하는 그 입을. 다른 사람의 가정을 파괴해놓고 그 남자와 아이를 사랑하고 함께 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한다는 내연녀 또한. 결혼을 통해 사랑의 감정이 다른 형태를 띠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서로에게 지켜야 할 ‘신뢰’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헤어지는 데에도 예의라는 것이 있다.
남편의 고백에 너무나 담담하게 대처하는 모모코의 행동이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또 이런 반전이 숨어있을 줄이야. 그녀들의 일기를 다시 읽어봐도 어디서부터 방향이 틀어진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 일기의 혼란들만큼 모모코의 정체성도 이지러져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 필사적이었을 것이다. 들려도 들리지 않는 척하고, 보여도 보이지 않는 척하는 경우가 분명 있었을 것이고, 자신이 이 집안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 확인하고 싶지 않았겠지만 결국 확인하게 되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으나 결국에 그녀에게는 폭력이 되어버린 감정. 모모코가 필요로 했던 것은 사랑한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아닌 자신이 한 노력을 인정해주는 단 한마디였던 것이 아니었을까.
고맙습니다......고맙다고 말해주어서 고맙습니다.
자, 이제 그녀는 어디로 갈 것인가. 그나저나 이 작가. 정말 어떻게 이렇게 여자의 입장에서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는 게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