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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킬러 덱스터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36
제프 린제이 지음, 부선희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한 번이라도 미드 <덱스터>를 봤거나, 드라마까지는 아니어도 오프닝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덱스터 시리즈>가 결코 쿡쿡 웃으며 볼 수 있는 즐거운(?) 장르는 아니라는 걸 아실 겁니다. 덱스터가 요리하는 장면이나 그 장면에서 보여지는, 평소 생활에서라면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재료들에서는 그 색감마저도 소름끼치게 만드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는데요, 드라마나 소설에서 그려지는 덱스터의 사건들은 굉장히 엽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피가 묘사되는 것은 물론 그 동안 시리즈를 통해 덱스터를 강하게 압박해 왔던 독스 경사의 경우에는 신체절단이라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범죄의 희생양이 되기도 하고, 이번 [달콤한 킬러 덱스터]에는 뱀파이어를 자청하는 인물들이 등장하기도 해요. 작가의 기괴한 상상력의 끝은 과연 어디인가 잠시 멍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멍. 그런 책을 제가 누워서 킬킬 웃으며 읽고 있으니 동생이 기겁하는 것도 당연하겠죠. 하지만 저는 사건을 즐기며(?) 웃은 것이 아니라 이번 작품에서 변화된 캐릭터를 보여주는 덱스터의 약간 멘붕스러운 정신세계와 독백을 엿보며 웃은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두고 싶습니다.
덱스터라는 캐릭터가 인기를 끈 이유는, 그가 물론 사회적으로 용인되기 어려운 살인범임에도 그의 범죄가 특정 인물들만을 향해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 특정인물이란 소아성애자, 성범죄자, 살인범 등 큰 범죄를 저지르고도 너무나 잘 살고 있는 이들을 말하는데요, 결국 덱스터는 범죄자들을 처단하는 범죄자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는 그런 자신의 어두운 이면을 ‘검은 승객’이라 부르며 자신의 또 다른 자아처럼 여기고 있고, 그런 덱스터의 이면을 알아본 양부에 의해 그나마 옳은(?) 방향으로 자신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거죠. 게다가 직업은 아이러니하게도 감식반. 현장에 출동하는 경찰은 아니지만 범인을 잡을 수 있도록 검증하는 직종이다보니 경찰서 내의 독스 경사처럼 매의 눈을 가진 형사에게는 의심을 당하기도 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 덱스터를 굉장히 혼란스럽게 만드는 사건이 빵! 터집니다. 리타와 결혼하고 그녀와의 사이에 릴리 앤이라는 딸을 얻었거든요. 꼼지락거리는 10개의 손가락과 10개의 발가락. 자신을 향해 지어보이는 맑은 웃음에, 덱스터는 그 동안 검은 승객과 함께 해왔던 생활을 청산하려 합니다. 오로지 릴리 앤의 아버지로서, 이 새로운 세상을 만끽하려 해요. 하지만 그런 그의 모습이 불만스러운 애스터와 코디. 리타가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얻은 이 아이들은 친아버지로부터 학대받은 과거로 인해 가슴 속에 덱스터와 같은 검은 승객을 태우고 있습니다. 특히 코디의 경우는 그 검은 승객, 자신의 용어로는 그림자라 부르는 존재를 인식하고 있고 그 검은 기운을 발산하기 위해 안달이 난 상태인데요, 그런데!! 그들 앞에 덱스터와 혈연으로 이어진 친형, 브라이언이 짠! 나타난 겁니다. 서로를 알아본 브라이언과 코디. 두 검은 승객이 씨익 미소를 짓는 장면이 그려지시나요? 그 와중에 터진 소녀 실종 사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우왕좌왕하는 덱스터 앞에 펼쳐진 수많은 의문들-릴리 앤은 천사인가, 브라이언은 왜 나타났는가, 브라이언으로부터 코디와 다른 가족들을 지켜야 해, 코디 가슴 속에 숨어든 그림자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가, 소녀는 어디로 사라졌는가-은 곧 그를 멘붕의 상태로 이끕니다.
[달콤한 킬러 덱스터]의 경우는 독립된 에피소드가 아니라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작품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지금까지 죽 진행형으로 이어져오긴 했지만 이렇게 뭔가 미적지근하게 마무리 맺은 경우는 드물었던 것 같아요. 사실 저는 브라이언이 등장한 이유라든지, 코디의 가슴에 살고 있는 그림자의 정체가 좀 더 확실해지길 바랐습니다만 이 두 사람과 관련된 이야기는 뭔가 다음을 위해 남겨둔 느낌이랄까요. 게다가 줄곧 확실한(?) 정체성을 자랑했던 덱스터가 릴리 앤의 탄생으로 인해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니 작품 자체가 정리되지 않는다는 느낌도 있었고요, 또 이번에 발생한 사건이 저의 비위를 엄청 상하게 해서 약간 멍해지는 순간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 맛볼 수 있는 가장 큰 매력은, 역설적이게도 정리되지 않은 덱스터의 멘붕 상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달콤한 아버지로 릴리 앤의 세상을 지켜주자 마음 먹은 덱스터이지만 그도 역시 오랜 세월 함께 한 검은 승객을 일격에 내칠 수는 없는 거니까요. 그 때문에 이어지는 덱스터의 독백과도 같은 문장들은 스릴러 소설, 그 중에서도 엄청 징그러운 엽기적인 사건을 다루는 스릴러임에도 한편의 코미디를 보는 것과도 같은 느낌을 전달하기도 합니다.
앞으로의 진행은 이제 대면할 수밖에 없게 된 코디의 그림자 문제가 아닐까 싶은데요, 이 덱스터 집안이 평화로운 시절을 보낼 수 있을지 매우 의심이 되는 상황이지만 릴리 앤을 얻고 기뻐하는 덱스터를 보니 이렇게 살아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면서 작가가 이대로 덱스터를 가만 놔둘리 없다는 안쓰러움도 느껴지네요. 앞편의 이야기들이 잘 생각나지 않으니 이렇게 화창한 날임에도 앞 이야기들을 좀 뒤적거려보는 즐거움(?)을 만끽해 볼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