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1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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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 [산마처럼 비웃는 것],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에 이어 네 번째 <~처럼~하는 것> 작품이 출간되었습니다. 대망의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 (네네, 당연히 불길하죠!!) 의 표지가 원초적인 공포를 전달하고 있었다면,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의 표지는 직접적이지는 않은, 간접적이지만 결코 오래 쳐다보고 싶지는 않은 섬뜩함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한밤에 오래 쳐다보면 볼수록 빨려들어가는 느낌이랄까요. 작품은 하미 땅에서 신비하면서도 두려운 물의 신 '미즈치 님'을 중심으로 펼쳐지는데요, 그래서 폭포라든지, 호수라든지, 물소리에 대한 묘사가 제법 등장합니다. 그 호수에, 물소리에 이끌리는 것처럼 이 표지에, 그리고 민속학자이자 작가이자 명탐정인 도조 겐야에게도 다시 한 번 강력하게 끌려들어가고 말았어요.

 

이야기는 도조 겐야와 그의 편집자 시노 소후에에게, 도조 겐야의 선배이자 한 신사의 후계자인 아부쿠마가와가 미즈치님을 모시는 하미 땅에 대해 전달하면서 시작됩니다. 기괴한 사건에 늘상 휘말리면서도 멋지게 사건을 해결하는 도조 겐야가 내심 부러웠던 듯, 아부쿠마가와는 미즈치님에 관해 알려주면서도 꼭 함께 가야한다고 떼를 쓰듯 이야기하는데요, 이 세 명의 조합이 엉뚱하면서도 묘하게 균형이 맞아서, 복잡할 수도 있는 하미 땅과 미즈치님, 제의와 그 제의를 모시는 신남에 관한 내용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이를테면 독자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건이 터지기까지 꽤 많은 책장을 넘겨야 하지만 저는 내용이 전개되는 단계단계가 참 좋았어요. 이런 장면들을 통해 혼란스럽지 않고 쉽게 작품을 이해할 수 있었고, 등장인물들에게 더 깊이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던 듯 합니다.

 

사정이 생겨 어쩌다 둘이 떠나게 된 하미 행. 하지만 이 도조 겐야 일행이 하미 땅의 사람들과 만나기 전부터, 아부쿠마가와가 등장할 때부터, 또 다른 이야기의 줄기가 처음부터 같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어머니, 큰누나 쓰루코, 작은 누나 사요코, 그리고 막내 아들 쇼이치로 이루어진 어떤 가족. 이들은 전쟁이 끝난 후에 일본으로 돌아와 어머니가 양녀로 있었던 미즈시 신사에 몸을 의탁하게 됩니다. 하미 땅에는 미즈시 신사, 미즈치 신사, 스이바 신사, 미쿠마리 신사라고 해서 제의를 담당하는 신사들이 있는데 그 중 미스시 신사는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신사입니다. 어머니와 양외할아버지 류지 사이에 오가는 이상한 대화. 어머니의 사망 후 큰누나인 쓰루코에게 유독 집착하는 류지. 그리고 쇼이치에게만 보이는 그것. 요런 상황 속에 도조 겐야가 짠!! 나타나는 겁니다. 그리고 벌어지는 신남연쇄살인사건.

 

제가 <~처럼~하는 것> 시리즈를 좋아하는 이유는 일본의 괴담이나 전통적인 부분들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에요. 음양사라는 존재를 통해 일본의 주술적인 면과 옛날 이야기 등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물론 우리나라 옛날 이야기도 좋아해요), 더 알고 싶었지만 차마 스스로 찾아볼 엄두는 내지 못하고 있는 저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무서워요, 이 시리즈는. 표지도 그렇지만 작품 안에서 전달해주는 정보들은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의 여부를 떠나 오싹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누가 누구를 해하고 상처입히는 데서 오는 두려움과는 다른, 우리 힘으로는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랄까요. 글자를 읽는 것만으로도 그 영향을 받을 것 같은 공포심이지만, 또 어찌된 일인지 무서워하면서도 읽게 되니 참 괴이하죠.

 

하지만 이 작품은 또 다른 공포를 선보입니다. 어떤 것에 집착해서 그 하나만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 마음이란 대체 어떤 것일까요? 그 희생의 범주에는 타인은 물론 자신의 핏줄까지 포함돼요. 그들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가지고 있는 명예와 전통만을 중시해서 무작정 돌진해버리는 사람. 현대물에 등장하는 인물로 치면 소시오패스 정도 될 것 같은데요, 저는 이 인물을 보면서 어찌나 속이 터지던지, 정말 옆에 있으면 몇 번 때려주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저의 이 마음을 이런 단어로밖에 표현하지 못해 정말 안타깝지만, 정말 그랬어요.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미운 인물, 있습니다.

 

꽤 두꺼운 분량이고 오싹한 내용이었지만 전 지금까지 출간된 <~처럼~하는 것> 시리즈 중 최고점을 주고 싶어요. 이야기의 짜임과 분위기, 등장인물들에 대한 감정이입, 그리고 에필로그까지 어느 것 하나 나무랄 떼 없는 작품인 것 같습니다. 아웅, 이 책을 읽고 났더니 [잘린 머리처럼...]부터 시작해서 모든 시리즈를 다시 읽고 싶어졌습니다. 긴긴 겨울밤, 약간은 어벙한 도조 겐야와 일본 민속탐방을 떠나보시면 어떠시려나요.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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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긴 잠이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0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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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제목이 -안녕, 긴 잠이여-인지 내내 궁금했다. 책을 다 읽은 다음에야 깨달았다. 이 제목이 가진 슬픔과 안타까움의 깊이를. 그런 의미에서 표지는 더할 나위없이 책의 주제를 선명히 드러내주는 것 같다. 아름다운 바다 색깔을 나타내는 것 같지만 사실은 형용할 수 없는 깊은 슬픔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형체가 분명하지 않은 사람들의 형태는 그 슬픔과 안타까움에 잠식당한 듯 점점 그 실체를 잃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우연과 운명에 의해 궤도를 잃고 흔들리는 우리의 인생길을 나타내는 것일까. 자신의 의지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다는 절망과 잔인한 운명의 장난들을.

 

하도 오래되어서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한 [내가 죽인 소녀]와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탐정 사와자키가 등장하는 시리즈 중 세 번째로 [안녕, 긴 잠이여]가 출간되었다. 많은 팬들은 이 작품을 꽤 오랫동안 목말라하며 기다린 듯 하지만 재미있는 책은 언제나 있어왔고 또 시간이 흐르면 당연히 나올 것이라 믿었기 때문인지 나의 기다림은 그리 괴롭지 않았더랬다. 그런데 [안녕, 긴 잠이여]를 붙잡고 읽으니 앞서 읽은 두 편의 재미가 되살아나는 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앞의 두 작품보다 이 작품이 훨씬 재미있었다. 사와자키에게 익숙해진 것인지 작가에게 익숙해진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시리즈가 매력적이라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무슨 일에선지 400일 넘게 도쿄의 사무실을 비운 사와자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의뢰인의 전언을 부탁받은 한 노숙자였다. 그로부터 우오즈미 아키라라는 사람이 사건을 의뢰하고 싶다는 전달을 받았지만 어째서인지 그는 연락이 되지 않는다. 그의 연락처가 메모되어 있는 명함에 적힌 가와시마 히로타카에게 연락을 취해보지만 그는 골프 접대를 마친 후 실종되어 죽음을 맞은 상태였다. 사건을 파고들수록 복잡하게 얽혀있는 인간관계들. 우오즈미 아키라는 11년 전 승부조작 루머에 휩쓸려 야구계에서 은퇴했고 그의 누나 유키는 그 일을 계기로 자살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아키라는 누나가 그런 일로 자살할 사람이 아니라며 사와자키에게 사건의 진상을 밝혀줄 것을 부탁한다. 일을 확실히 의뢰하기 전 벌어진 아키라의 피습, 그리고 사와자키를 노리는 검은 손들. 여기에 예전 그의 파트너였던 와타나베를 끈질기게 쫓는 니시고리 경부와 조직폭력단인 세이와카이의 하시즈메의 압력이 사와자키에게 가해지는 가운데 사건은 전혀 생각지 못한 국면을 맞이한다.

 

이렇게 적어보니 꽤 복잡하게 얽힌 사건들인데 그 해결이 산뜻하고 깔끔하다.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 목적지에 도달하는 느낌이랄까. 사와자키는 탐정이므로 사건의 흐름과 관계를 한 번에 꿰뚫어볼 수 있겠지만, 독자 또한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문장을 읽다보면 작은 단서 정도는 발견할 수 있다. 배경이 1990년대에 약간 낡은 분위기를 풍기고는 있지만 그런 점이 더 하드보일드의 매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듯 하다. 그러고보면 어쩌면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하드보일드는 어울리지 않는 장르일지도. 고독과 한기, 탐정이 풍기는 날카로움과 섬세함은 소음으로 가득한 이 시대에는 맞지 않는 것 같다.

 

문장 또한 실소를 자아내면서도 그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다. 첫 페이지부터

 

편히 죽지 못한 시체처럼 뻣뻣한 몸으로 차에서 내렸다

라는 문장에 그만 쏙 빨려들어갔으니. 그 뒤에 계속 등장하는 맛깔나는 문장들은 단연 일품이다.

 

작품 마지막에 우오즈미 아키라는 자신이 사와자키에게 일을 의뢰한 것이 옳은 것이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진실은 의외로 너무나 가깝고 생각지도 못한 곳에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로 인해 누군가는 어울리지 않는 곳에서의 휴식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진실을 추구한 보람이 있지 않았을까. 인생에서 진실은 달콤하지만은 않다. 그나저나. 작품 맨 뒤에 실린 부록 때문에 그만 가슴이 덜컹 내려앉고 말았다. 작가의 한 수에 멋지게 속아넘어갔지만 기분이 나쁘다기보다는 '다행이다'라는 감정이 먼저 찾아오니, 난 이 시리즈에 단단히 빠져든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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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착역 살인사건 - 제34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 미스터리, 더 Mystery The 2
니시무라 교타로 지음, 이연승 옮김 / 레드박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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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롭지 않게 집어든 책에 어느새 빠져들었다. 같은 출판사에서 얼마 전에 출간한 [귀동냥](음..이 작품에 나는 그리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과 함께 '미스터리, 더'라는 브랜드 네임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무척 재미있었다. 약간 옛날 느낌이 나는 분위기에 마치 '소년탐정 김전일'을 다시 읽는 듯한 그리운 느낌, 작품 안에서 우에노 역에서 느껴지는 향수를 빈번하게 묘사하는 장면들 때문인지 아련한 기분마저 들었다. 다른 추리소설에서는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 가슴 아릿한, 뭔가 아쉽고 슬프고 쓸쓸한 그런 기분이랄까. 내용으로 따지자면 지금까지 읽은 일본추리소설이나 '소년탐정 김전일'에 비해 크게 뛰어난 점은 보이지 않지만, 작품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분위기가 한 몫 하고 있는 듯 하다.

 

아오모리가 고향인 고등학교 동창 7명. 학창시절 교내신문을 만들던 이들은 편집장 미야모토의 계획 아래 7년 만의 여행을 떠나게 된다. 6년 반만의 설레는 모임. 미야모토가 모두에게 우에노에서 만나자는 편지와 침대특급 '유즈루 7호'의 승차권을 보냈지만 어쩐 일인지 동창 중 한 명인 야스다 아키라가 나타나지 않는다. 워낙 시간이 많이 흘러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서운한 마음을 뒤로 한 채 6명은 열차에 오른다. 그들이 떠난 뒤 얼마 후 야스다가 우에노 역 화장실에서 칼에 찔려 사망한 채 발견되고 열차에서 행방불명된 가와시마 시로마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익사체로 떠오른다. 이어지는 친구들의 죽음. 도쿄와 아오모리에서 행해지는 수사는 범행동기와 범인을 찾지 못한 채 막다른 길에 이르지만 사건은 아주 예전의 불행한 과거로부터 시작되었음이 밝혀진다.

 

고전적인 분위기에 스릴이나 긴장감의 강도가 높지 않아 호불호가 생길 수 있을 듯 하지만 나는 꽤 재미있었다. 급하게 휘몰아치는 느낌이 아니라 한 계단 한 계단 단계를 밟아나가며 사건의 중심에 다가가는 속도도 좋았고, 거칠고 난폭한 형사들이 아닌 세심하면서도 우직하게 그려진 그들의 모습이 믿음직스러웠다. 작가는 1978년 도쓰가와 경부가 등장하는 [침대특급 살인사건]을 발표하면서 '트래블 미스터리'라는 장르를 제시했다고 평가받는다고 하던데, 이 도쓰가와 뿐만 아니라 이번 사건에서 중심 역할을 하는 가메이와 아오모리에서 사건을 지휘하는 미우라 형사도 듬직했다. 뇌물이나 아첨에 물들지 않은, 오직 사건해결에만 매달리는 우직한 성정이 느껴지는, 그런 인물들이라고 할까. 

 

읽으면서 동창생들 중에 범인이 있을 거라 추측하기는 했지만 밝혀진 동기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오히려 더 안타까웠던 듯. 더불어 누군가는 한 순간의 장난으로 잊고 살아갈 수도 있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한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과거에 얽매여 사실을 확인해볼 생각도 못한 채 현재의 행복을 포기한 범인도, 실수로 목숨을 잃게 된 희생자들도 가슴 아팠다. 

 

'미스터리, 더'라는 브랜드가 언제까지 계속될 지 알 수 없지만 [종착역 살인사건]만큼 재미있는 작품들이 많이 알려지면 좋겠다. 요즘은 새로 등장하는 브랜드도, 금방 사라져버리는 브랜드도 많으니. 다음 출간 예정 작품이 미나토 가나에의 [망향]이던데, 이 작품 이후 니시무라 교타로의 다른 '트래블 미스터리'가 출간될 예정인지 궁금하다. 일터에 아내가 찾아와 부끄러움과 민망함에 무뚝뚝한 모습을 보이던 도쓰가와 경부의 우직함이 오래오래 생각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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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제3인류 1~2 세트 - 전2권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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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접한 베르나르의 신작. 처음 [아버지들의 아버지]를 읽은 뒤로 [타나토노트]와 [뇌]를 읽은 후 한동안 그의 작품을 읽지 않았지만 여전히 그가 만들어낸 세계는 재미있고 신기한 데다 소설 속 세상을 진짜처럼 믿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성적으로는 '이건 허구의 세계야,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정말 그랬다는 건 아니잖아' 라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책을 읽고 있을 때면 지구의 어느 한 쪽에서는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믿음이 생겨버리는 것이다. 베르나르가 종교를 만들면 가장 먼저 내가 홀라당 넘어가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당신, 여전히 매력 있구나.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빙그레 웃고 있는 사진은 세월은 그를 스쳐지나지도 못한 것 같다.

 

작품 시작부터 쑥 빨려들어갔다. 한 무리의 탐사대가 발견해 낸 17미터의 거대 인간상. 고생물학자 샤를 웰즈를 비롯한 탐사대는 그들이 바로 최초 인류이고 그들의 문명이 적어도 현재의 인류에 뒤지지는 않는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발견한다. 발견해낸 사실을 기록하고 영상을 촬영하지만 예기치 못한 사고로 그들의 발견은 다시 어둠 속에 파묻히고 만다. 한편 샤를 웰즈의 아들인 다비드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오로르, 누시아, 펜테실레이아, 나탈리아 대령과 마르탱 중위와 함께 방사능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신인류 계발에 착수한다. 실험은 성공에 이르고 그들은 평균 키가 17cm밖에 되지 않는 '에마슈'라 이름 지은 신인류를 탄생시켰다. 새롭게 창조된 세계, 새롭게 세워지는 질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나서, 그리고 겪는 와중에 여성적인 면이 강한 초소형 인류인 에마슈들은 작전에 투입되고 비밀로 지켜졌던 그들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초소형 인류, 생각하는 로봇 등의 등장으로 첨단 과학을 소재로 한 소설이 아닌가 싶지만 인간의 존재 자체에 대해 고민한 작품으로도 읽힐 수 있을 듯 하다.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세계, 우리를 품어주는 세계인 지구-가이아-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인간들의 모습은 굉장히 이기적이고 지구에게는 해만 가하는 생명일 뿐이다. 서로 돕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 오직 지구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관계. 지금까지 항상 따뜻하고 푸르게만 생각해왔던 지구의 시각이 너무 냉철하고 차가워서 낯설기도 했지만 일회용 젓가락을 만들기 위해 콩고의 나무들을 베어낸다는 부분에서는 그만 움찔하고 말았다. 작가는 뉴스의 형식을 빌어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소식을 전해주는데 그 안에 교묘히 작품과 연결되는 부분들도 심어놓았다. 작품을 읽다보면 관련된 부분이 자연히 눈에 띠지만 실제로 뉴스가 방영되는 우리 생활은 어떨까. 지구 온난화, 지구의 산소인 아마존 밀림이 사라져간다는 뉴스도 실제로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넘겨버리고 있지 않나. 어쩌면 작가는 환경오염과 지구 온난화 등 이미 병들어가는 지구에는 여전히 아랑곳하지 않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풍자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해서 그런 점은 영화 <아바타>를 떠올리게 한다.  

 

한편으로는 우리 다음에는 어떤 인류가 출현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작품이기도 하다. 우리가 최초의 인류가 아니라는 가정. 우리 전에도 문명화된 인류가 살았고, 우리 다음에도 분명히 인류는 나타날 것이라는 가정. 어쩐지 겸허해지는 느낌이 들면서도 소설 속 다비드 일행이 만들어낸 '에마슈'들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다비드 일행을 신이라 믿고 그들이 만들어낸 세상에서 안전하게 살다가 최초의 죽음을 접하게 된 그들. 점차 죽음과 범죄라는 개념을 깨달아가며 법과 종교를 만들어 체계화된 세상을 만들어내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우리 인류의 발전과정을 지켜보는 듯 하여 흥미로웠다. 예전 신종플루가 한창 유행할 때 어디선가 인류의 멸망에 대해 들은 기억이 난다. 인류가 멸망한다면 전쟁 혹은 질병 때문일 거라고. [제3인류]는 그런 멸망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인류가 과연 어디까지 버텨낼 수 있고 무엇을 지켜낼 수 있을지 영생이 주어진다면 지켜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개미]는 읽지 않았지만 [개미]가 출간된 지 벌써 20년이 되었다고 한다. [개미]의 등장인물인 에드몽 웰즈와 연관시켜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의 여러 설명들로 인해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를 좋아한다더니 작품 곳곳에서 우리나라와 한국인에 대한 묘사를 볼 수 있었다는 점도 재미있다. 과학적인 검증이나 실현 가능성은 차치하고라도 작가의 상상력과 구성력이 뛰어나다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다만, 완결이 아니라는 것. 완결이 아니라는 것도 2권 마지막 페이지에서야 알았다. 이제 1부 끝이라니, 몇 부까지 진행시키려나. 작전에 투입된 후 살아남은 에마슈의 존재가 어쩐지 조마조마하다. 현 인류와 신 인류에게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다음이 기대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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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 받은 황비 1~2 세트 - 전2권 블랙 라벨 클럽 7
정유나 지음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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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슬립한 여자는 늘 그 시대의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 독특한 옷차림에 언어도 모르는 여자는 몇 번의 위험을 맞이하지만 그 때마다 늘 그녀를 구해주고 아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었고, 여자의 신기한 소문을 들은 남자(이 때의 남자는 거의 대부분 왕이거나 왕자, 혹은 힘있고 매력있는 그 누군가이다) 와 마주하게 된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집에 돌아가고 싶어 몇 번이나 도망을 치고 그녀에게 구애하는 남자의 마음을 모른 척 하지만 차츰 시간이 지날수록 오직 자신만 바라보는 남자에게 이끌려 결국 그의 곁에 남기로 결심한다. 타임슬립한 시대는 먼 미래거나 아주 옛날, 혹은 여자가 잘 알고 있던 역사 속 어디 쯤이었다.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의 여자는, 타임슬립했다는 이유로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 그 점이 매력으로 작용되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우리가 한 가지 간과했던 점이 있다. 어쩌면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 타임슬립으로 인해 그 시대의 다른 누군가는 상처받고 있었다는 것을.

 

[버림 받은 황비]의 주인공은 타입슬립한 여자가 아니라, 그녀로 인해 모든 것을 빼앗겨야만 했던 다른 누군가이다. 태어난 이후로 황태자의 반려로 키워져 황실의 예법과 마음가짐을 배워온 그녀, 아리스티아 라 모니크. 지금은 차가운 눈길로 그녀를 마주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자신을 돌아봐주며 서로 믿고 의지하고 살아가게 될 거라 믿어온 그녀의 짝은, 세상에서 제일 차가운 얼음같은 사람, 황태자였다. 그런 그들 앞에 어느 날 검은 머리 소녀 지은이 나타나고 황태자는 신의 축복을 받은 사람은 아리스티아가 아니라 지은이라며 그녀를 황후의 자리에 올려버린다. 결국 후비의 자리에서 지은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하며 온갖 설움을 당하지만 그래도 아리스티아는 황제가 된 그를 보필하기로 결심했었다. 그러나 모함에 의해 아버지를 잃고 자신마저 처형당한 아리스티아는 어찌된 일인지 열살 때로 돌아와 있다. 황제로부터 당한 수모와 고통, 아버지를 잃었던 아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새로운 길을 걸어나가기로 결심한 그녀 앞에 새로운 운명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작품의 초반에서 아리스티아가 겪는 고통은 내 마음을 시리게 했다. 아무리 마음을 다해도 돌아봐주지 않는 사람은 그녀를 더 아프게만 했고, 아무것도 모른 채 아리스티아 앞에서 징징거리기만 하는 지은은 무척 짜증스러웠다. 처음에는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하다가, 나중에는 아리스티아에게 자매처럼 지내자고 하더니, 결국 황제를 사랑하게 되었다며 미안하다 말하는(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지은 때문에 버럭 화가 났다. 평생의 인연으로 함께 하자 했으면서도 아리스티아가 황제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질투와 배신감(왜 배신을 느껴!!)을 느끼는 지은이 어이가 없었고, 늘 황제만 생각하는 아리스티아도 바보처럼 보였다. 무슨 캐릭터들이 이리 일방적이야!!-라며 계속 화를 내고 있는 동안 아리스티아가 과거로 돌아간다. 결국 다시 시작하게 된 인생. 아버지의 사랑을 가슴 깊이 느끼며 같은 아픔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해 인생 앞에서 주춤거리는 그녀 앞에 알렌디스와 카르세인이 손을 내밀고, 과거에는 그녀를 그토록 아프게 했던 황태자마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며 다가온다.

 

뻔한 로맨스라 생각했는데 뭔지 모르게 마음을 움직이는 뭔가 있다. 다시 시작된 인생 속에서 아리스티아가 앞을 잘 살피며 걸어갔으면 하고 부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어느새 주먹을 불끈 쥐게 된다. 셋 중 과연 누가 그녀의 짝이 될 것인지 (마치 응답하라 1994를 보는 느낌?!) 두근두근 하다. 전체적인 이야기뿐만 아니라 각 권 마지막에 실린 외전도 마음에 든다. 알렌디스와 카르세인이 서로 투닥투닥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1권 뒷편에 실린 외전으로 지은과 황태자에 대한 짜증이 아주 약간 가라앉았다 ㅡ_ㅡ;;

 

안타까운 점은 2권으로 완결인 줄 알았는데 아니란다. 무려 5권으로 완결이란다. 3권을 사러 내일 외출을 해야 할 지 월요일에 인터넷으로 주문할 지 무척 고민스럽다. 다행히 올해 안에 완간 된다니 부디 그 약속만 지켜졌으면 하는 바람!! 다른 장르도 아니고 로맨스 소설의 다음 권이 출간되기를 기다리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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