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닉 페어웰 지음, 김용재 옮김 / 비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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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의 올해 가을편 중 한 작품에는 생각을 멈추지 않는 남자가 등장한다. (드라마의 스포 있습니다!!) 뭔가를 쓰고 있는 남자의 모습으로 시작된 드라마는 그를 마감기한에 쫓기는 작가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띵동. 물병을 맡기러 온 옆집 여자. 그녀와의 상황에서 뭔지 모를 위화감을 느낀 주인공은 그 위화감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물을 마셔보기도 하고, 물병이 담긴 박스 안을 살피기도 하는 등 여전히 부산스럽다. 그 와중에도 몇 자 적어보겠다고 책상 앞에 앉아보지만 그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다양한 생각들 때문에 도저히 글쓰기에 집중할 수 없다. 그리고 그의 이런 생각들은 옆집 여자의 '요즘, 비가 안 내리네요' 라는 한 마디로 정지된다. 옆집 여자와 그녀가 간직한 비밀, 그리고 물병들 모두 그가 만들어낸 환각이다. 그가 속해 있는 세상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황폐화되어버린 지구 한복판. 그리고 그가 가진 전부는 한 병의 물이 다이다.

 

나는 그 남자가 생각을 멈출 수 없었던 이유를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계속, 자신이 만들어낸 세상 속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생각해야만 암담하고 비참한 현실에서 눈을 돌릴 수 있었을 테니까. 어째서 [GO]라는 작품을 말하는 데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일본 드라마 이야기를 꺼내는 지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GO]를 읽으면서 계속 그 일본 드라마가 생각났다. 문체에 속도가 있고 생각의 고리들이 계속 연결되는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소설 속 주인공과, 현실을 잊기 위해 계속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드라마 속 그 남자가 매우 닮아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물론 [GO]의 주인공은 현실에서 도망은 치고싶지만, 도망치지는 않는 인물이다. 두 사람은 생각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살아가고 있지만, 드라마 속 남자는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해 계속 생각하고 있는 반면 [GO]의 주인공은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생각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점이 다르다고 할까.

 

[GO]는 한 편의 성장소설이자 작가 이규석의 자전적 소설이다. 이름도 정확하지 않은 스물 아홉 살의 청년. 패신저라는 클럽에서 디제잉을 하고 있고, 언젠가 훌륭한 작가가 되어 자신의 책을 내는 것이 꿈인 사람. 하지만 현실은 그가 예측하는 것보다 훨씬 가혹하게 그를 무릎꿇린다. 좋은 일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글은 잘 써지지 않는데다 사랑하는 여인을 단순한 오해와 제어하지 못한 욕망으로 잃었고, 같은 외로움을 지닌 사람이라 믿었던 다른 여자에게는 그가 모은 전재산을 강탈당했다. 어린 시절 떠나버린 아버지는 여전히 상처로 남아있고 그의 삶은 날이 갈수록 버겁기만 하다. 하지만 여러 우여곡절 끝에 친구를 얻었고, 또 친구를 잃었으며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내용만 보면 굉장히 어두운 소설인데 이 작품은 무척 시끄럽고 예상치 못하게 발랄하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내면의 소리였을 뿐 작품 속 다른 등장인물들이 보기에 주인공은 조용하거나 의외로 내성적인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타인을 믿지 못해 친구도 만들지 못했고,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는 기억에 제대로 사랑할 수도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끊임없이 후회하고 생각하고 앞으로 달려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작가의 어린시절은 어땠을지 궁금하게 한다.

 

어린 나이에 브라질로 이민 간 작가는 완벽한 브라질인이 되어 살아가기로 결심했고, 그는 이제 생각까지도 브라질어로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출간기념파티에서 마주한,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유창한 브라질어를 구사하는 작가의 모습은 자유로워보이면서도 약간 쓸쓸해보였다. 작품 속 주인공의 모습을 너무 투사한 탓일까. 다른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도록 도와주고 싶었지만 가장 많이 변화한 것은 자신이라는 말이 인상깊다. 우리의 정서와 살짝 맞지 않는 부분도 있고 감정의 흐름이 빨라 갸우뚱하게 만든 부분도 있지만, 불안함과 두려움 속에서도 꿈과 로맨틱함을 잃지 않으려는 메세지는 충분히 전달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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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심판 1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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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상상해보자. 정말 끔찍해서 상상하기 싫겠지만 그래도 한 번 해보자. 나의 분신이던 쌍둥이 동생은 6년 전 갑자기 사라졌다가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녀가 아끼던 빨간색 롤러스케이트를 꼭 한 짝만 신은 채로. 그런데 지금 바로 내 눈 앞에 동생의 빨간색 롤러스케이트의 다른 한 짝이 보인다. 그리고 나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는, 쓰러져있는 한 남자. 그 남자의 가슴에는 '날 죽여라'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달리 생각해보려고 해도, 그는 내 동생의 생명을 앗아간 진범임이 확실해보인다. 그는 의식이 없고, 나와 함께 온 동료는 나에게 원하는대로 하라고 이야기해준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속삭이는 자]가 출간된 후 한동안 뜸하던 작가 도나토 카리시가 '악'에 관한, 또다른 '괴물' 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시간의 흐름만큼 [속삭이는 자]때보다 이야기의 구성도 더 탄탄해졌고, 전하려는 메시지도 확실해진 듯 하다. 바티칸에 축적된 방대한 범죄 기록을 바탕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신부들. 그리고 나이에 맞춰 적당한 사람을 살해하고 완벽히 그 자리를 차치하는 카멜레온 살인범. 작가는 실화를 모티브로 두 방향의 이야기를 절묘하게 짜맞추어 하나의 줄기로 만들어냈다. 

 

총격으로 인해 기억을 잃고 사라진 여대생을 조사하는 신부 마르쿠스. 그는 바티칸에 축적된 기록을 바탕으로 괴물을 쫓는 프로파일러이다. 사라진 여대생 라라의 행적을 좇는 와중에 미제사건의 진범과 피해자 가족이 마주하는 일이 연달아 발생하고, 그 순간마다 피해자 가족들은 저마다의 선택을 하게 된다. 또 다른 한 편에서는 사랑하는 남편 다비드를 잃은 산드라가 등장한다. 르포기자였던 그의 부재를 인정할 수 없어 그의 짐조차 찾아올 수 없었던 산드라는, 인터폴 형사라는 한 남자의 전화를 통해 남편의 죽음이 사고가 아닌 살해임을 의심하게 된다. 그가 남긴 여러 장의 사진들. 그리고 하나씩 밝혀지는 다비드의 비밀. 산드라와 마르쿠스의 접점이 밝혀지는 순간, 그리고 마르쿠스가 자신의 기억에서 해방되는 순간, 악이 아니었음에도 악이 될 수밖에 없었던 남자와 악이었음에도 악이 아닌 채 살아온 남자의 존재가 드러난다. 

 

이 작품을 관통하는 한 단어는 바로 '선택'이다. 자신의 삶을 '선택'한다는 것. 나의 가족을 해한 그 누군가가 바로 내 눈 앞에 있을 때 할 수 있는 선택, 나에게 악으로 갈 수 있는 길과 그렇지 않은 길이 있을 때 어느 쪽 길을 걸을 것인지에 대한 선택. 우리의 삶은 매 순간이 선택으로 이루어지며 그 작은 선택들이 현재 뿐만 아니라 미래를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악에 있어서만큼은 창조되는 것인지, 선택하는 것인지에 대해 정확한 대답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 중간중간 추격자의 시선으로 진행되는, 작품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이 단락들이 작품의 결말과 어우러져 멋진 엔딩을 만들어냈다. 속편을 예고하는 듯한, 다시 무언가가 시작된다는 무언의 경고. 

 

바티칸이 가진 자료를 바탕으로 한다는 말을 듣고 또 성서와 관련된 이야기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소재만 가져왔을 뿐.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만큼 카라바조의 그림을 해석하는 부분도 흥미로웠다. 그런데 세상에는 정말 그런 신부들이 존재하는 것일까. 어디까지가 실화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여전히 아리송하다. 바티칸에는 우리가 모르는 비밀들이 얼마나 많을지 궁금하다. 투명인간이 된다면 뭘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바티칸 문서고에 들어가보고 싶다고 대답할 지경이다. 하지만 어쩌면 모른 채 놔두는 편이 더 좋은 것들이 많을 듯 하다는 생각도 든다. 현실이 소설보다 특히 더 가혹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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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계곡 모중석 스릴러 클럽 35
안드레아스 빙켈만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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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타인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사랑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만약 누군가를 '가지고 싶다, 소유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야만 사랑이라 부를 수 있다면 나는 한 번도 사랑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일까.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과 '가지고 싶다'는 마음에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나에게 사랑은 '함께 있고 싶다'였고, '그 사람이 나로 인해 행복했으면 좋겠다' 였고, 둘이 '함께 공감하는' 감정이었다. 누군가가 나로 인해 힘들어하는 모습은 언제나 보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나를 원하지 않는다 느껴지면 가볍게 떠날 수 있었다. 그것은 쿨함도 무엇도 아닌 나만의 방식이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곧잘 내뱉곤 하는 '난 네거야' 혹은 '넌 내거야' 같은 말은 와닿지 않는다. 물론 로맨틱하게 느껴지지 않을 때가 없는 것은 아니었고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영향을 미칠 수는 있겠지만 내 자신의 주인은 늘 나였고, 그 주인이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조차도 나는 그 누구의 것은 아니었던 듯 하다.

 

한 여자가 지옥계곡이라 불리는 험한 곳을 향해 산을 오르고 있다. 그녀는 곧 뛰어내리기 직전이다. 산악구조대원이자 스포츠용품점을 운영하는 로만이 그녀를 구하기 위해 달려가지만, 그녀는 자신의 손을 뿌리친 채 추락하고 만다. 구원을 거절하는 듯한 행동, 로만을 두려워했던 그녀, 라우라의 눈빛. 라우라가 자살한 후 그녀의 헤어진 연인 리키, 친한 친구 마라, 마라의 전 애인 아르만, 그리고 라우라를 짝사랑했던 베른트는 예전 등반 때 일어났던 사고를 떠올리고 누군가는 그녀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누군가는 꺼림칙함을 느낀다. 라우라의 부모는 그녀가 자살 뒤에 숨겨진 진실이 있다 여기고 사립탐정을 고용했다. 그리고 하나씩 살해되는 친구들. 그들이 함께했던 지옥계곡에서 일어난 우연적인 사고가 모두의 운명을 잔인하게 바꿔놓았다.

 

[사라진 소녀들]과 [창백한 죽음]으로 알려진 작가 안드레아스 빙켈만이 [지옥계곡]에서 왜곡된 사랑에 대해 말한다. 두 작품 중 [사라진 소녀들]만 읽어본 나로서는 그 작품이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아 [지옥계곡]에도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딱딱 맞아떨어지는 상황 설정과 등장인물들의 내밀한 심리묘사는 한 순간도 책을 손에서 떼어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라우라가 느낀 두려움, 남아있는 사람들의 심리적인 압박, 금방이라도 창밖에 눈보라가 휘몰아칠 것 같은 한기와 사나움 등이 현실과 책을 혼동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그들의 이야기와는 또 다른 방향에서 전개되는 누군가의 독백은 정말 무서웠다. 누군가의 정신세계를 이렇게까지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지 않다는 거부감, 그럼에도 읽을 수밖에 없는 묘한 끌림이 남다르다고 할까. 초반에는 잔인한 묘사들 없이 으스스한 긴장감을 느끼게 해 그 점도 마음에 들었지만 중후반으로 갈수록 사건 현장의 묘사가 잔인해지는 것은 아쉽다.

 

누군가를 내거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무서운 사람이다. 혹은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일까. 자신을 누군가와 나눌 수 없는 사람, 자신이 만들어낸 세상 속에서 그것이 전부여야 하는 사람. 하지만 그의 존재감만으로도 세상이 두렵게 여겨지므로 그런 사람들에게 연민을 가지기에는 힘든 일이다. 스토커의 존재만으로는 경찰에 신고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그가 당장 어떤 행동을 저질러 피해를 입힌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사건이 벌어져야만 스토커를 처벌할 수 있다는 말인데 이미 그 지경까지 가면 피해자는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당한 뒤거나 살해당한 후라고 하니 어떻게 해야 하나. 누군가에게 느낀 사랑의 감정이 그 대상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는 건 슬픈 일이지만, 그렇다는 것은 결국 그의 감정이 사랑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아직도 마음 속에서 눈보라가 치는 것 같다. 책은 예전에 읽기를 끝냈지만 나는 여전히 지옥계곡에 서 있다.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며 괴롭히는 그를 피해 울며 서 있는 라우라가 보인다. 다른 선택은 없을까 고민해주었으면 한다. [지옥계곡]의 라우라는 주변사람들에게 도움조차 청하지 못했지만, 현실 속의 수많은 라우라들은 부디 그렇지 않기를. 사랑한다며 공포스럽게 하는 그가 아닌, 사랑한다고 따스하게 품어줄 수 있는 마라같은 친구와 가족들을 생각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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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셀프 트래블 셀프 트래블 가이드북 Self Travel Guidebook 16
박정은 지음 / 상상출판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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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하하~저 1월에 드디어 프라하 갑니닷!! 여름에 홋카이도를 다녀와서 금전적으로 어려운 부분은 당연히 있지만 ㅡ_ㅡ;; 같이 가자는 사람이 있을 때 돈이 없다고 가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서요. 어디선가, 누구에게선가, 여행은 빚을 내서라도 가는 거라고 들은 기억이 납니다 (혹시 내 마음의 소리?;;).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여행사 플랜을 이용하기로 했다는 거에요. 전 보통 자유여행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유럽은 처음이고, 또 영어 울렁증도 있고(유럽에서는 영어도 물론 소용이 없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곤 하지만 그래도 할 수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의 차이는 엄청나잖아요!!), 게다가 추위를 많이 타는 애가 겨울에 동유럽을 커다란 짐을 질질 끌며 헤맬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한파가 몰아닥친 듯 몸이 으슬으슬 떨려옵니다. 다만 체코와 오스트리아만 가는 플랜을 선택하기로 했어요. 같이 가는 친구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두 나라만 보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는 데 동의해주었고, 저는 체코-친구는 오스트리아를 로망으로 여기고 있던 터라 거래(?)는 성립!! 그리하여 들뜬 마음에 펼쳐 든 이 책은, 물론 자유여행자들을 위한 부분이 더 많기는 하지만 저에게는 보석같은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사실 저는 책장 어디에선가 꺼내주기를 기다리고 있을 프라하 책들이 대여섯 권은 되어요. 그 동안 이런 저런 사정으로 감히(?) 떠날 생각은 못하고, 그래!! 못갈 바엔 책이라도 읽자!!-라는 마음으로 한 권 두 권 사모았던 것이 어느 새. 여행자들을 위한 본격!! 안내서라기보다는 감상문 같은 에세이집이 대부분이어서 이번처럼 본격!! 안내서는 처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 저자 프롤로그에서부터 제 마음에 불을 지르네요 ㅡ_ㅡ 프라하 뿐만 아니라 파리와 이스탄불, 런던가지 제가 유럽에서 가보고 싶은 나라는 다 다녀오셨어요. 게다가 책까지 내다니 제가 꿈꾸는 그런 인생이 여기 있었던..게 아니라 저자는 저자 나름대로 고충이 있는 듯 합니다. 쿨럭. 그쵸. 가족이 있는데 여기저기 여행 다니며 글 쓰는 것도 보통이 아닐 거에요.

 

이런저런 궁시렁거림을 멈추고 펼친 책 속에는 책으로 통달하여 이미 눈에 익숙한 풍경들이 펼쳐집니다. 풍경과 관광 안내는 여행 책자라면 다 비슷비슷할 터이니 이 책만의 장점만 살짝 짚어보자면. 일단 맨 앞부분에 <도움 되는 일정 짜기 팁!>이 실려 있어요. 일정에 맞는 숙소를 정하라든지, 낮과 저녁의 일정을 생각해두라든지, 서두르지 말라고 꼼꼼히 보라는 조언까지요. 그리고 프라하에서 얼마만큼의 시간을 투자하느냐에 따른 맞춤 플랜이 짜여져 있습니다. 물론 저자가 제시한 그대로를 따를 필요는 없지만 저처럼 프라하를 처음 찾는 사람에게는 유용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일단 비행기를 10시간 정도는 타고 가야 하는데 무엇을 봐야 보람을 느낄까를 생각해보면, 이런 팁이 굉장히 유용하겠죠.

 

또 각 챕터의 앞에는 확대 미니 지도가 실려 있어 각 관광지들이 얼마만큼의 거리를 두고 떨어져있는지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관광명소와 레스토랑, 카페, 쇼핑, 숙소, 기타로 분류해서 저마다 다른 색깔로 표시해 두었고요. 뒷부분에는 프라하에서 꼭 먹어야 하는 음식이나 여행자들에게 맞춘 숙소를 소개하고 있고, 여자들이라면 호기심으로 눈이 반짝!할 쇼핑과 기념품 베스트까지 따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길지는 않지만 체코와 프라하의 역사도 실려 있고, 무엇보다 스맛폰에 맞춘 유용한 앱과 사이트가 소개되어 있네요. 팁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화장실 사용은 어떠한가에 대한 세세한 부분까지 실려 있어서 제가 만약 자유여행을 한다면 이 책 한 권만 들고 가도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여행사 플랜을 이용하더라도 이 책은 들고 가겠지만요. 맨 뒷부분에는 지하철 노선도와 휴대용 지도도 물론 수록되어 있습니다.

 

드디어 간다!!-라는 생각으로 책을 읽어서인지 저에게는 이 책이 남다르게 다가왔어요. 물론 아직 지명이나 성의 이름 같은 것은 낯설지만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몸이 쑥 들어가 있는 것 같은 느낌. 비록 여행사 플랜을 이용하지만 저는 프라하를 충분히 즐기고 올 생각이에요!! 새벽과 저녁 시간을 이용해서 카를 교에서 해가 뜨는 것과 야경도 보고 싶고, 거리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맛난 맥주와 달콤한 커피를 즐길 거랍니다. 으훗. 추위를 엄청 타지만 체코에는 꼭 겨울에 가고 싶었어요. 추위를 잊게 해줄 그 곳만의 따스함을 발견하고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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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뎀션 그렌스 형사 시리즈
안데슈 루슬룬드.버리에 헬스트럼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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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남자가 철창 뒤에서 시간을 세고 있다. 일초, 이초, 삼초...초가 모여 분이 되고, 분이 모여 시간이 되었다. 여자친구를 잔인하게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존 메이어 프레이. '살인사건'이라는 태풍에 휩쓸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알지 못한 채 정신을 차려보니 감옥에 들어와 있었고, 오늘, 자신에게 친철하게 대해주었던 옆방 사형수 마브의 형이 집행되었다. 시간은 여전히 흘러가고 그는 8번 감방에 갇힌 채 여자친구의 아버지가 쏟아내는 독설을 견디며 자신에게 남겨진 삶이 얼마나 되는지를 헤아린다.

 

다른 남자가 있다. 배에서 노래를 부르는 그. 일한 지 오래되었지만 배의 동료들과도 친밀한 관계를 맺지 않았던 그의 눈앞에서 한 남자가 열정적으로 춤추는 여자의 뒤로 다가선다. 사랑했던 여자와 현재 사랑하는 여자를 연상시키는 그녀. 그 남자가 여자의 뒤에서 이상한 행동을 하는 순간, 결국 그는 노래를 멈추고 성추행범의 얼굴을 발로 가격해버린다. 두통과 불안함으로 밤을 보낸 그에게 배의 경비가 다가와 경찰이 그를 조사할 것이라는 말을 전달한 후부터 그는 과거가 강렬한 힘으로 자신의 발목을 낚아채는 것을 느낀다. 순간의 실수가 불러온 과거라는 파도. 그것을 피하기에는 이미 늦어버린 것 같다.

 

2.

실제 범죄자와 전직 기자의 결합을 내세우며 [비스트]로 화려하게 데뷔한 작가들의 세 번째 작품이 출간되었다. 형사 에베트 그렌스 시리즈라고도 불리는 이들 작가의 작품은 매번 발표될 때마다 챙겨읽는 편인데 특히 이번 작품 [리뎀션]은 그 동안 출간된 작품들 중에서도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겠다. 6년 전에 이미 교도소에서 죽은 사람으로 되어 있던 존이 스웨덴에서 살아있는 불가사의한 상황을 파헤치는 과정 속에서, 우리 사회 안에서 사형제도가 정말 필요한 것인지, 그리고 작가들 입장에서 생각하는 사형제도에 대해 소신있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존 메이어 프레이에 대한 사형집행은 어느새 정치 쟁점으로 변해 있었고 주지사의 권위가 걸린 문제가 되어버렸다. 프레이는 죽어야만 했다. 권력이 그렇게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은 사형존치론자들이 전리품처럼 흔들어댈 또 하나의 새로운 트로피가 될 터였다. 그리고 에드워드 피니건에게는 그토록 애타게 기다린 법적 보상의 기회이기도 했다. 반면, 버논 에릭센에게는 무고한 국민을 국가가 합법적으로 살해하는 것을 의미했다.   -p189, 190

사실 사형제도의 필요성 여부에 대해 나는 어떤 말도 못하겠다. 정말 감사하게도 나는 누군가가 사형당하기를 바라는 사건을 겪어본 적이 없고, 그저 단순히 뉴스를 통해 흉악한 범죄를 접할 뿐이다. 그런 뉴스를 볼 때마다 범인들을 욕하면서도 사형이 과연 희생자 가족에게 답이 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본 적은 있었다. 하지만 범인의 죽음을 요구하는 희생자 가족에게 그 누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용서해야 한다고? 범인이 죽어도 사랑하는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고? 그 사실을 유족들이 정말 몰라서 사형을 요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는 한 그 누구도 용서해라, 사형제도는 필요하지 않다-등의 말을 쉽게 할 수 없을 것 같다.

 

3.

그런데. 작가들은 다른 문제를 낸다.

 

 "이런 일도 있어요?" 

"무고한 사람이 누명을 쓰는 일말입니까?"

"네"

"흔치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실제로 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죠."        -p249 

예전 드라마인지 책에서인지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을 위해 열 명의 범인을 놓치는 것이 낫다-라는 말을 들은 듯 하다. 한 번 죽으면 끝. 후에 그 사람이 무죄라는 것이 밝혀지고 국가에서 유족들에게 보상을 해준다고 해도 죽은 사람은 돌아올 수 없다. 또 하나의 희생만 늘어났을 뿐. 죄가 있다는 것이 확실하다면 간단하지만, 용의자는 계속 자신은 죄가 없다고 주장하고 증거도 충분치 못한 상황에서 사형이 집행되어 버리면 그 죽음은 누가 보상해야 하는 것일까.

 

4.

작품은 사형제도의 필요성 여부와 더불어 만약 존이 범인이 아니라면 진범은 누구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제시한다. 또한 사랑하는 딸을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해 분노에 집착하는 에드워드 피니건과 자신의 아들이 살인범으로 몰렸음에도 끝까지 그를 믿는 존의 아버지, 존의 새로운 가족이 된 헬레나와 그들의 아들, 그 가족들을 생각하는 형사들의 모습을 다각적으로 묘사하며 각자가 처한 상황을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독자들에게도 답을 생각하라며 재촉한다. 그 앞에서 나는 여전히 우물쭈물.

 

사실 진실이 밝혀질 거라는 생각을 못하고 사형제도에 대해서만 생각하며 읽느라 결말 부분에서 약간 놀랐다. 생각지도 못했다는 표현이 정답.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이루고자 했던 목표를 위해 무고한 생명을 취한 것 또한 결국은 '살인'이라는 생각에 역시 마음이 복잡하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 같은, 그런 게 정말 필요한 것일까. 생명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인데 왜 타인의 목숨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인지 무섭고 슬프다.

 

5.

이 작품이 전달하려는 메세지에 안데슈보다는 버리에 작가의 목소리가 좀 더 강하게 들어있는 것은 아닌지 문득 궁금해진다. 과거 범죄자였던 그. 지금은 아니라고 해도 그가 이 작품을 썼을 때 마음은 어느 쪽을 향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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