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3 - 시오리코 씨와 사라지지 않는 인연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1부 3
미카미 엔 지음, 최고은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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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을 읽기 시작한 이후로 별 다섯 개는 처음인 것 같아요. 순전히 저의 주관적인 평가이기는 하지만, 3편을 읽고 나서는 별 다섯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책을 펴들자마자 단숨에 읽어버릴 정도로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요즘 스맛폰 속 영화의 세계에 빠져 있던 제가, 정말 오랜만에 지하철 안에서 뒷 이야기가 궁금하여 책을 펴들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별 다섯의 이유가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1편의 표지를 보고 그냥 가볍게 읽을 수 있는 킬링타임용 책이라고 생각했었는데요, 시간이 가고 권수를 거듭할수록 깊이를 더해가는 느낌이에요. 작가의 책속의 책에 대한 방대한 지식에 혀를 내두르며 심지어 이제는 비블리아 고서당에서 소개한 책까지 구입하며 읽을 정도로 완전 팬이 되어버렸습니다. 4권 나올 때까지 어떻게 기다리죠!! 이런 느낌, 스티븐 킹의 [언더 더 돔]을 2권까지 읽고 3권이 나오기를 기다렸던 때와 비슷하군요!!

 

3편에서는 시오리코의 어머니인 지에코의 과거와 행방에 관해 본격적으로 풀어나가려는 움직임이 보입니다. 어머니가 집을 나가면서 남긴 [크라크라 일기]를 계속 찾고 있는 시오리코의 사정은 전편에서 이미 알려져 있는데요, 3편에서는 어머니가 집을 나간 후 아버지가 로버트F.영의 [민들레 소녀]를 거듭 읽었다는 것, 시오리코가 어머니에 대한 분노로 그녀가 남긴 [크라크라 일기]를 팔아버렸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아버지가 유품으로 남겼을지도 모른다는 점, 시오리코의 어머니는 책을 위해서라면 부정적인 방법도 서슴치 않았다는 점(2편에서도 공개되기는 했지만 3편에서는 지에코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등장하거든요) 등이 새롭게 밝혀졌습니다. 물론 '사건수첩'이라는 제목이 붙은만큼 사이사이에 책과 관련된 미스터리한 일들을 해결하기도 해요. 책과 그 책들을 사랑하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3편에서도 가슴 뭉클하게 펼쳐집니다.

 

어째서인지 1편과 2편을 읽을 때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새삼 책이란 나에게 무엇인가를 더듬어보게 되었어요. 정말 힘들 때는 책조차 위로가 되어주지 못한 시기도 있었지만, 역시 일요일 저녁에 한 주에 읽을 책들을 고르는 것은 즐거운 일이고 재미난 이야기가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을 보면, 저는 책 없이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인 거겠죠. 특히 요즘은 글자를 짚어가며 읽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재미있는 책도, 조금 어렵게 느껴지는 책도 글자를 만져가며 읽으면 어쩐지 제 안으로 슉 빨려들어오는 느낌이 든다고 할까요. 종이의 촉감을 느껴보는 그 기분도 좋고요. 두근두근 가슴이 뛰거든요. 책만 읽는 바보가 되기는 싫지만, 책을 읽으며 얻는 즐거움과 행복감으로 저는 지금까지 '잘' 살아올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힛.

 

그런 점에서 시오리코에 대해서는 동경과 질투가 교차해요. 책에 관한 정보를 술술 읊을 수 있는 그녀의 능력이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에잇, 이건 소설이라고!-하며 절대 이 세상에는 없을 사람이라 우겨보기도 합니다. 그녀와 같은 능력은 없지만 책에 대한 사랑이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을 뽑는 대회가 있다면 손 번쩍 들고 나갈 수 있다고 자부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렵니다.

 

처음으로 비블리아 고서당이 소개하는 책을 구입해봤어요. 로버트 F.영의 [민들레소녀] 인데요, 시오리코가 줄거리를 살짝만 이야기해주고 정작 중요한 부분은 공개하지 않아 어서 책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답니다. 책을 통해 또 다른 책을 만나고 전혀 알지 못했던 세계를 접하게 되는 신기.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는 벅찬 감동이 아닐까요. 1편부터 2편까지 소개되었던 책들을 다시 차근차근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 때는 비블리아 고서당의 진가를 알지 못했으니까요. 4편에서는 어떤 책들을 소개해줄지, 또 어떤 이야기들로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만나게 해줄지 정말정말 기다려집니다. 빨리빨리 나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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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디비전 1 샘터 외국소설선 10
존 스칼지 지음, 이원경 옮김 / 샘터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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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얼마나 대단한 작가이길래 이리 인기가 많은가 싶었다. 평소 SF물을 즐겨 보는 편이 아닌지라 [노인의 전쟁] 이후 계속되는 시리즈의 출간에도 심드렁했더랬다. 그런데 이 [휴먼디비전]이 출간된다고 하니 곳곳에서 좋아하는 글들이 눈에 띄는 거다. 존 스칼지의 새 시리즈를 읽을 수 있다는 게 정말 기쁘다는 글들. 나 또한 기다리는 작가의 책이 나왔을 때의 기쁨을 아는지라 문득 궁금해졌다. 얼마나 재미있길래 독자들이 이렇게 목매고 기다리는지, 새로운 시리즈를 읽을 수 있다는 데 벅찬 감동을 느끼는지. 이미 출간된 [노인의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가자니 괜히 부담스럽고 해서 이참에 출간된 [휴먼 디비전]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표지는 좀.

 

<노인의 전쟁> 시리즈는 존 페리-75세에 사망신고서에 서명하고 개척연맹의 군인으로 다시 태어난-가 주인공이었는데, [휴먼 디비전]은 존 페리의 입대 동기인 해리 윌슨 중위가 전면에 등장한다. 앞의 시리즈를 읽지 않아서인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지구에서 75세 때 사망신고서에 서명하면 초록색 피부와 인공혈액을 얻어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듯 하다. 개척연맹의 일원이었던 존 페리가 그들이 품고 있는 비밀을 알아채고 지구로 귀환한 후 개척연맹과 지구, 외계종족의 연합인 콘클라베, 콘클라베에 가입하지 않은 외계종족들 사이에는 끊임없는 긴장과 분열이 생겨났다. [휴먼 디비전]에서는 인류 멸망이 멀지 않았다고 예견되는 현재, 해리 윌슨이 분쟁의 한복판에서 개척연맹의 일원으로서 지구와 콘클라베, 외계종족들 사이에 벌어지는 소소한(?) 사건들을 해결해나간다.

 

여전히 용어들에는 익숙하지 않다. 지금 지구에서는 다음 교황을 선출하는 의식인 콘클라베가 작품에서는 외계종족들의 연합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도약에, 함교에, 개척연맹에, 무허가 개척촌 등 낯선 용어는 물론 배라고 명명되는 우주선에 관련된 설명이라도 나오면 여느 때보다 집중해서 읽느라 나에게는 좀 버거웠다. 그런데. 알 것 같다. 왜 독자들이 <노인의 전쟁> 시리즈에 행복해했고, [휴먼 디비전]의 출간 소식에 새 시리즈를 읽을 수 있어 기뻐했는지를. SF를 즐기지 않는 나도 책을 손에서 놓고 있을 때조차 자꾸 이 작품이 생각나는 거다. 장편이라기보다는 약간 연작의 느낌을 가지고 있는 이 작품은 한 챕터가 끝날 때마다 소소한 사건들이 해결되는데-물론 앞으로 등장할 더 큰 사건들에 하나하나가 모두 연결되어 있겠지만-읽다가 끊기기라도 하면 뒤의 내용이 어떻게 전개될지 계속 맴돌았다. 눈 뜨면 생각나고, 얼른 읽고싶고 하는 것이 이 책에 빠져버린 내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아닌가.

 

게다가 해리 윌슨 중위, 주인공으로서 매력적이다. 작품 안에서 그는 친구 하트 슈미트와 함께 상관들에게 별로 쓸모 없는 존재로 취급당하고 있지만, 숨겨진 능력도 많고 배포도 있는 데다, 궁극적으로 늘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사의 위치에 서 있다. 게다가 위기의 순간에도 농담을 던질 줄 아는 넉살까지 (책 뒷면에는 이것을 '썩은 유머'라 표현하고 있다). 초록색 피부에 인공혈액이 흐르는 그의 모습은 감히 상상도 되지 않고, 실제로 만난다면 어떤 기분일지 실감나지도 않지만 작품 안에서 활약하는 내용들로 봐서는 충분히 매력적인 캐릭터임에는 틀림없다.

 

지금 내 옆에는 1권만 있고 2권은 없는데 연작 형태인지라 다행이지, 1권과 2권이 이어지는 내용이었다면 지금 당장 서점으로 달려갈 뻔 했다. 표지는 좀 그렇지만 2권의 내용이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다. 더불어 <노인의 전쟁> 시리즈를 읽고 개척연맹과 지구, 나아가 은하계와 관련된 지식을 쌓아야지. 이런 작품을 쓰기 위해 작가님은 얼마나 많은 세월을 숙고하며 보내셨을까. 이렇게 또 하나의 독자가 생겨나는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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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일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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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예기치 못한 사고로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습니다. 그의 이름은 양페이. 친어머니가 기차의 화장실을 이용하려다 어쩌다 세상 밖으로 쑥 나오게 된 그는, 철로에서 그를 발견한 아버지 양진뱌오 덕분에 유복하지는 않아도 행복한 시간을 보냈어요. 양진뱌오가 그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했기 때문이죠. 결혼도, 젊음도. 물론 양진뱌오에게 사랑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이미 마음 속에 들어와버린 아들을 버리지 못하고 오직 양페이를 위한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한, 세상 그 누구보다 따뜻하고 훌륭한 아버지였습니다. 그런 아버지 덕분에 양페이는 행복이 무엇인지 알았고,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어요. 심지어 아내와 이혼했을 때조차 그의 옆을 지켜준 건 아버지였죠. 그 아버지가 병에 걸려 양페이의 곁을 말도 없이 떠납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오기를 기다릴 새도 없이 양페이도 사고로 목숨을 잃어요.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이승을 맴도는 영혼들의 이야기인 이 작품은 양페이가 죽음을 맞은 뒤 7일간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습니다. 아버지의 병원비로 인해 수도세와 가스비를 낼 돈조차 없었던 그는, 사고로 망가져버린 얼굴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영혼의 모습으로 스스로 상장을 달고 빈의관이라는 화장터로 향하죠. 친절한 안내인에 의해 번호표까지 뽑았고 대기하고 있었지만 묘지가 없으면 안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자신의 죽음의 시간을 찾아 여정을 떠납니다. 그리고 만나게 된 그리운 사람들과 다른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 이혼한 아내, 어렸을 적 자신을 친자식처럼 대해주고 갓난아기였던 양페이에게 젖까지 물려준 이웃 아주머니, 이혼 후 아버지 병간호를 위해 살았던 셋집의 옆방에 살았던 커플, 과외 아르바이트를 위해 찾았던 학생의 죽은 부모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양페이의 곁을 구름처럼, 연기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그리고 그토록 찾아헤매던 아버지의 행방.  

 

언젠가 저도, 여러분도 죽음을 맞겠죠. 죽음 뒤의 세상을 상상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 막연함에 가끔 먹먹한 두려움을 느끼기도 해요.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 어느 곳으로 가게 될까. 요즘 특히 영혼을 보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등장하는 드라마에 푹 빠져 지내다보니 만약 죽은 사람을 보게 된다면 어떤 느낌일지까지 생각하게 되네요. 하지만 이 세상과의 인연이 끝나게 되더라도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은 잊지 않고 간직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죽음 뒤에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 때도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양페이가 사랑의 기억을 간직한 채 아버지의 소식을 찾아다니는 모습은 그래서 더 가슴 뭉클합니다.

 

죽음이 등장하지만 전체적으로 슬픈 책은 아닌 것 같은데 자꾸 눈물이 났어요. 양진뱌오가 어떤 마음으로 양페이를 키웠을지, 어떤 마음으로 결혼을 약속한 아가씨 대신 양페이를 선택할 수 있었을지 전 짐작조차 할 수 없어요. 늘 선량하고 검소하게 아들만을 위해 살아온 삶. 그래서 그는 죽음 뒤에도 그렇게 존재하고 있었던 걸까요. 언젠가 찾아올 아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요. 병에 걸린 채 말없이 나간 아버지를 양페이가 얼마나 가슴 졸이며 기다렸을 지 생각하면 눈물이 안 날 수 없습니다. 사랑을 찾아헤맨 이야기라 해서 슬픈 러브 스토리인 줄 알았는데, 그것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랑의 모습들을 만날 수 있었던, 슬프지만 가슴 따뜻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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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헤이스 두 번 죽다 모중석 스릴러 클럽 34
마커스 세이키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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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저는 S본부에서 수요일과 목요일에 방영하는 -주남자 태여자-드라마에 빠져 있습니다. 예전부터 워낙 좋아하던 두 배우였고 두 사람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걸리는지라 일주일의 활력소가 된다고 할까요. 그런데!! 두둥!! 소간지가 공블리를 잊어버리는 사태가 발생했어요. 공블리를 보호하려다 대신 흉기를 맞은 소간지는 잠시 심정지가 왔을 때 영혼의 모습으로 반짝반짝 빛이 나는 공블리를 만나 사랑을 고백하고, 자신이 죽었다 생각하며 다른 세상으로 떠나려는 준비를 하죠. 그런 소간지를 위해 자신의 영혼을 제물로 바친 공블리. 영혼을 부르기 위해서는 그 동안의 추억을 모두 잊게 하는 수밖에 없다네요. 기억을 잃고 의식을 되찾은 소간지. 하지만 뭔가 답답하고 입 안에서만 맴도는 생각나지 않는 이름 때문에 허전하기만 합니다. 그건 분명 흉기를 맞은 자리가 아프기 때문만은 아닐 거에요.  

 

한 남자가, 영화로 만든다면 무음 상태에서 숨을 가쁘게 들이쉬는 소리로 시작할 것 같은 그런 장면에서 깨어납니다. 벌거벗었고 뼛속까지 스미는 한기만 존재할 뿐,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인식조차 없이 간신히 물 밖으로 나온 남자는 이윽고 깨닫죠. 이름조차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을. 침착하자며 자신을 다독거린 남자가 발견한 것은 BMW 한 대와 '대니얼 헤이스'라는 이름이 기재된 차량등록증. 가까운 숙소로 이동한 그는 마치 정해진 것처럼 '시간이 됐다'는 생각에 한 드라마를 보기 시작하죠. 드라마인 듯 현실인 듯 그의 꿈속에 등장하는 몇몇 장면들. 작은 단서로 알아낸 것은 자신이 대니얼 헤이스라는 것과 사랑하는 아내 레이니를 죽인 용의자로 쫓기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드문드문 떠오르는 기억은 그들의 결혼 생활이 완벽했다 이야기해주는 것 같았지만 그가 때로 불같이 화를 냈다는 것과, 레이니가 죽기 일주일 전부터 심하게 다퉜다는 것 등 그에게는 불리한 증언 뿐. 게다가 이제는 정체 불명의 남자까지 그의 목숨을 노리는 상황입니다.

 

대니얼이 자신의 기억을 찾아 달려가는 모습은 조마조마합니다. 과연 그는 정말 대니얼 헤이스가 맞을까, 그가 대니얼 헤이스라면 그는 정말 아내 레이니를 죽인 것인가, 그는 왜 인적도 없는 바다에서 정신을 차린 것인가, 그리고 기억을 잃기 전의 그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주인공이 기억을 잃은 상태에서 깨어났다는 점 하나로 작품은 충분한 스릴을 선사해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공포, 그만큼 엄청난 공포는 없을테니까요. 그리고 이제 대니얼이 기억을 찾은 지금, 작가가 준비한 장치가 드디어 제 실력을 발휘하는 순간, 이야기는 또 다른 점을 향해 힘차게 달려갑니다.

 

스릴과 수수께끼를 제공하는 동시에 작가는 굉장히 의미있는 질문을 던집니다. 기억을 잃은 상태의 너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만약 과거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다르다면 어떤 것이 진정한 자신일 수 있는가-에 대한. 기억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결혼생활이 완벽했다고 믿은 대니얼처럼, 작가는 과거가 어떠했든 현재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듯 합니다. 때문에 작품 안에서 과거의 대니얼의 모습을 자세히 언급하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다만, 현재의 모습을 결정하는 것은 오직 자신 뿐이지만, 그럼에도 기억이 한 사람의 인생에서 커다란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는 없으니 말이에요. 결국 '기억'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있어 무시할 수 없는 요소겠죠. 드라마에서 주남자가 잃어버린 무언가 때문에 허전해하는 것처럼. 대니얼이 과거의 자신을 찾아내기 위해 애썼던 것처럼, 기억은 또 하나의 자신이니까요.

 

이 책에는 '인생은 빗방울이야'라는 문구가 꽤 자주 등장하는데요, 그에 대한 작품의 설명은.

 

 메레디스 : 인생이 빗방울이라고요? 

 대니얼 : 한때 내가 사랑했던 어떤 사람이 그 말을 해줬어요. 이 말은 이런 뜻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한 선택이 현재의 자신을 만든다는 거죠.

           하지만 자신이 어떤 것을 선택하더라도 자신의 인생은 한순간에 변해버릴수 있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고 봅니다.                    -p469

빗방울은 모두 똑같아 보이지만 하나하나 살펴보면 그 모양이 다르다고 하죠. 어쩌면 인생도 그런 게 아닐까요. 그 수많은, 다른 모양을 하고 있는 빗방울 안에서 무엇을 선택할 지 결정하는 것. 그리고 그런 결정이 현재의 자신을 만드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한다는 것. 나중에 작품의 세세한 부부은 잊어버린다고 해도 이 -인생은 빗방울-이라는 말은 오래 기억에 남을 듯 합니다. 스릴러를 읽었는데 감성돋는 시집을 읽은 것 같기도 한 그런 오묘한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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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컵을 위하여
윌리엄 랜데이 지음, 김송현정 옮김 / 검은숲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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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실력으로 지방검찰청에서 차장검사로 일하는 앤드루 바버. 정치에는 관심없이 오직 검사 업무에만 집중하는 그는, 평생의 사랑인 로리와 아들 제이컵과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조용한 그들의 마을 뉴턴에 갑작스럽게 벌어진 소년 살해사건. 희생자가 고작 열 네살 소년인데다 이렇다 할 큰 이슈가 없었던 뉴턴에서 살인은 너무나 큰 사건이었기에 온 마을이 들끓기 시작하고, 앤디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동료형사들과 총력을 기울이지만 단서는 오리무중이다. 때마침 용의자로 성범죄자인 레너드 패츠가 지목되고 그를 조사하던 중, 뜻밖의 단서로 범인으로 몰린 앤디의 아들 제이컵. 결국 앤디는 사건에서 손을 떼고 제이컵의 무죄를 밝혀내기 위해 모든 노력을 쏟아붓지만, 그의 가족사에 얽힌 비극과 수사가 진행될수록 드러나는 제이컵의 언행으로 수사는 어려움에 빠지고 앤디와 그의 아내 로리는 그들이 알던 제이컵이 제이컵의 모든 것이 아니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과연 범인은 제이컵인 걸까? 그렇지 않다고 해도 제이컵은 어떤 소년인 것일까?

 

소설에서 자주 다루어졌던 소년범에 대한 이야기가 이번에는 시각을 바꾸어 우리 앞에서 대답을 재촉한다. 그 소년범이 만약 당신의 아이라면 어떻게 할 거나고, 과연 그 아이의 무죄를 끝까지 주장할 수 있을 것이며 설사 모르고 있었던 그 아이의 진면목을 보게 된다고 해도 마지막까지 아이를 사랑할 수 있겠느냐고. 모든 부모에게, 앞으로 부모가 될 사람들에게 던지는 이 질문에 선뜻 대답을 내놓을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 사건 전개의 긴박감에 빨리 페이지를 넘기고 싶은 마음과, 시련에 괴로워할 앤디와 로리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상충되어 그 어느 때보다 힘든 독서였다. 그 동안 소년범에 대한 소설을 읽을 때 그 소년범에 대해 초점이 맞춰졌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그 용의자의 가족들에 집중했다는 점이 새롭고, 고통스럽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인상적인 것은 아들이 용의자로 지목된 이후 무너져가는 인물의 내면과, 분위기가 일변해버린 가족들의 상황을 섬세하게 그려냈다는 점이다. 아들이 범인이 아닐 거라고 믿는 마음 한 편에 존재하는 만약 아들이 범인이라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함, 당신과 내가 우리 아이를 잘못 키운 것은 아닌가 하는 죄책감, 가족사에 얽힌 비극을 끝까지 숨겨왔던 남편에 대한 배신감. 접촉과 대화로 많은 사람의 고민과 슬픔을 함께 할 수 있다고 믿어온 앤디의 아내 로리, 이웃들에게 의지와 화목의 상징이었던 로리가 그들에게 외면당하고 빠르게 무너져가는 모습은 안타깝다 못해 처절하다.

 

로스쿨을 졸업하고 6년 동안 미들섹스 카운티의 지방검사로 일해왔던 전력이 있는만큼, 작가가 묘사한 법정 공방은 생생하고 현실적이다. 비열하게 느껴질 정도로 사건을 정치적으로 몰아가는 검사의 모습에 분노를 느꼈고 손에 땀을 쥐게 할만큼 긴박한 분위기에 압도될 수밖에 없었다. 제이컵이 과연 범인인 것일까? 범인이 아니라면 그들 부부는 앞으로 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그런 분위기가 한층 살아나게 되는 것은 작가가 제시한 질문 때문이다. -가족을 위해 과연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라는.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위해서라면 죽음까지 마다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기 때문에, 나는 가족을 위해서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지 생각했었다. 만약 가족이 어떤 잘못을 저지른다면 그에 합당한 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 절대 그 순간을 도망가서 상황을 악화시키게 만들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힘든 순간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함께 묵묵히 곁을 지키는 것. 가족이기 때문에 잘못을 덮어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여겼다. 그들의 더 나은 한 발을 위해서. 때문에 로리의 극단적인 선택에 공감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그 방법밖에 없었는지 묻고 싶기도 했다. 이런. 난 이미 그들을 진짜라고 여기나보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아픔을 느꼈으니까.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아무리 내 아이에게 최선이라 생각되는 것을 주어도 그것이 늘 최선이 될 수 없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아직 부모가 아닌 내 마음이 이런데 세상의 많은 부모들의 마음은 어떨까. 내 자신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이 시간 속에서 내 아이의 하나하나를 살피고 사랑해야 하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부모님들의 마음이 애처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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