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키호테, 부딪혔다, 날았다 - 라만차 돈 키호테의 길
서영은 지음 / 비채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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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을 펼치고, 다시 몇 장을 읽어내기가 조금 힘들었던 책이었다. 왜 그랬을까아. 아마도 '돈 키호테'라는 인물에 대해 내가 아는 거라곤 풍차를 향해 바보처럼 돌진했다는 것과 그를 창조해낸 사람이 세르반테스라는 작가라는 점 뿐이기 때문이었을지도. [돈 키호테]를 완독한 적도 없는 내가 작품을 기반으로 그 여정을 따라가는 길이 조금은 버거웠었다. 그것은 초반에 작가 서영은님이 동행한 출판사 직원 Y를 바라보는 눈길에서 뭔가 깔보는 듯한, 철 없는 어린아이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이 든 노작가의, 자신이 사랑하는 '돈 키호테'라는 인물에 대해 출판사 직원 Y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에 대한 보이지 않는 한숨이었달까. 나의 착각일 수 있겠지만 나는 작가가 [돈 키호테]와 세르반테스의 세계를 잘 모르는 독자들에 대해서도 그런 기분으로 책을 써내려간 것은 아닌지 약간은 불편했다.

 

그런데 이 책, 읽을 수록 읽는 맛이 난다. 평범한 여행 에세이가 아니라 돈 키호테와 세르반테스를 사랑하는 작가와 출판사 직원 Y, 문학박사 J가 함께하는 [돈 키호테] 읽기 모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직 초점은 '돈 키호테'와 '세르반테스'에게 맞춰져 있고, 물론 여과되었겠지만 그들의 대화에 등장하는 소재 또한 돈 키호테와 세르반테스이다. 어떤 작품을 무척이나 사랑해서 그 작품에 등장하는 장소들을 찾아가고, 그 곳에서 작품 속 장면을 재현해내는 여행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만약 내가 이런 여행을 떠난다면 이렇게나 충실한 과정을 보낼 수 있을까 혀를 내두를만큼 성실한 여행기이기도 하다. 게다가 중간중간, 졸려하거나 별로 듣고 싶어하지 않는 상황에서 작가가 동행자 둘의 공부를 재촉하듯 [돈 키호테]에 등장하는 구절을 읽어주는 모습은 가히 성스럽기까지 하다.

 

그 구절 중 가장 인상적인 문구는.

 

 세상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아주 복잡한 미로에도 들어가고, 가는 곳마다 불가능한 곳에 뛰어들며, 한여름의 불타는 태양 볕에도 인적 없는 황무지에서 버티며 살고, 겨울에는 바람과 얼음의 혹독한 시련을 견디고, 사자들도 무서워하지 않고 요괴에도 놀라지 않으며 괴물도 두려워하지 않지요. 이놈들을 찾고 저놈들을 쳐부수고 모두를 이기는 게 기사의 중요한 진짜 임무올시다. 때문에 편력기사의 일원이 될 운명을 타고난 본인은 의무의 한계 속에 들어오는 것은 무엇이나 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방금 사자들을 공격한 것은 기상천외한 무모함인 줄은 알았으나, 용기라고 하는 건 비겁이냐 무모함이냐 하는 두 극단적인 악덕 사이에서 구한 높은 덕을 말하지요. 그러다 용기 있는 자에겐 비겁이라는 상황에 다다를 만큼 내려가는 것보다는 무모함의 경지까지라도 올라가는 게 그래도 나쁘지 않은 방법인 겁니다.   -p116

이런저런 문구들을 읽다보면 [돈 키호테]는 단순히 현실에 안주할 수 없었던,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무모함과 어리석음으로 가득찬 한 남자의 표상을 그린 것이 아니라, 우리 생에서 반드시 깨달아야만 하는 진리를 그린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있는 자리에서 만족하는 마을 사람들과 돈 키호테의 친구 신부 등은 더 높은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모험을 감행할 용기가 없는, 일반 소시민들의 모습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전쟁에서 팔을 잃고, 타국에서 노예가 되어 극한 체험을 했고, 매인 데 없이 전국을 유랑하며 드라마 같은 분방한 생활을 했던 시절이 있었나 하면, 유부녀와의 불 같은 사랑 이후 피폐한 마음을 추스리려고 애쓰는 작가(p138)-가 생의 휴식처로 여겼음직한 에스키비아스라는 마을의 평화로움을 오히려 위기로 감지한, 작가의 마음이 녹아들어 있다.

 

초반에도 나의 마음을 강렬하게 뒤흔 든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돈 키호테가 객줏집을 성곽이라고, 객줏집 주인을 성주라 여겨 그에게 기사 서품을 요청하는 장면이다. 처음 객줏집 주인은 그런 돈 키호테를 우스꽝스럽게 여기고 그를 놀리고자 적당히 장단을 맞춰주는데, 그를 비롯하여 귀부인이라 여겨진 창녀와 주위 사람들도 처음에는 돈 키호테를 깔보고 비웃지만 차츰 그의 요청 아닌 요청에 따라 그 역할에 맞는 말투와 태도를 갖추게 된다. 그만큼 돈 키호테의 기사에 대한 마음이 깊고 강하다는 것을 주위 사람들도 깨닫게 되었던 것은 아닐까. 비록 어리석고 우스워보이는 사람일지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한 열망은 주위 사람들도 감화시키는 법이니까.

 

작가와 Y, 그리고 J의 여정은 돈 키호테가 로신안테를 타고 산초와 동행했던 바로 그 길이다. 신실한 신자에 워낙 [돈 키호테]를 사랑하는 작가에게 그 두 사람 역시, 특히 Y가 시간이 지날수록 [돈 키호테]에 깊이 빠져드는 모습은 뭐랄까, 감동적이라고 해야 하나, 신기하다고 해야 하나. 작가 역시 이 여행에서 또 다른 돈 키호테였으니 그런 일이 가능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악하거나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무언가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은 아름답다. 언젠가 스페인에 가게 된다면, 그저 관광지를 기웃기웃하는 그런 단순한 여행이 아닌, 서영은 작가님처럼 의미있는 무언가를 해내야겠다. 어쩌면 그것이 돈 키호테의 길이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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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9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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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몰입해서 읽은 온다 여사의 작품입니다. 온다 여사와 저를 처음 만나게 해 준 [밤의 피크닉]을 읽고나서 전 완전히 그녀의 팬이 되어버렸어요. 우리나라 작품과는 뭔가 다른, 제가 일본이라는 나라, 그리고 일본의 학생들에게 갖는 막연한 동경같은 것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거든요. 가끔 정말 좋은 작품을 만나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런 감정들이 가슴에서 요동칠 때가 있어요. 그래서 자꾸 집 안을, 때로는 집 밖을 서성이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들. 그 당시의 저에게 [밤의 피크닉]은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이라면 일단 사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북홀릭이었던 저의, 북콜렉터라는 새로운 세상이 시작된 거죠. 으힛.

 

그런데 언제부턴가 익숙해져버린 그녀의 방식에 더 이상은 익숙해지기 싫은 거에요. 읽어도 새로운 것이 없다-는, 어쩌면 독자가 작가에게 갖지 말아야 할 가장 최악의 생각이 제 머리에 스며든 거죠. 그런데그런데. 오랜만에 읽은 온다 여사의 이 [Q&A]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녀가 이런 작품도 쓸 수 있구나, 그래 그녀는 여전히 온다 리쿠구나-라는, 그녀의 작가로서의 새로운 입지가 보였다고 할까요. 사실 이 작품은 일본에서는 출간된 지 꽤 오래된 작품입니다. 2005년 제58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후보에 올랐던 작품이니, 벌써 8년 전이네요. 8년 전이면 제 나이가..흠흠. 제가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마냥 즐겁게 뛰어다니던 때에 온다 여사는 이런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니 새삼 감동이랄지, 존경심이랄지 그런 감정들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네요.

 

1. '질문'과 '대답'만으로 구성된 소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이야기가 오직 '질문'과 '대답'만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M이라는 쇼핑센터에서 벌어진 의문의 사건들을 둘러싸고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이 진술되는 과정이 생생하게 담겨 있어요. 정체불명의 물질이 든 봉투를 바닥에 던진 의문의 남자, 그 장면을 보고 동시에 도망치기 시작한 사람들, 그 사건이 벌어질 때 다른 층에서 '회개하세요!!'라고 말한 이상한 남자, 그리고 역시 다른 층에서부터 도망치기 시작한 사람들의 모습이 생존자들의 증언만으로 되살아납니다. 어떻게 보면 내용을 전개시켜 나가기에 편한 구성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단편이 아닌 장편을 이끌어나가기에는 적잖이 힘이 드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챕터마다 새로운 증언과 사건을 계속 도입해야 하니까요.

 

2. '사실'은 무엇인가

 

 사실이 하나가 아니고 여러 개란 걸 인식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사람 눈의 수만큼 사실이 존재하는 거야. -p151

얼마 전 케이블 방송에서 한 연예인이 게스트로 출연한 토크쇼에서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사건에 대해 내가 기억하는 것과 그가 기억하는 것이 전혀 달랐다-라는. 이 작품에서도 그런 현상이 드러납니다. M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고 결국 자신의 관점에서 사건을 기억하죠. 자신이 인상깊게 본 것, 주목했던 것이 현실에 반영되면서 전혀 새로운 기억들이 구성되는 겁니다. 진짜 범인을 목격했다고 하더라도 한 사람이 가진 가치관, 선입견의 영향으로 그 범인조차 기억 속에 묻혀버릴 수 있는 가능성 또한 무시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그렇다면 '사실'이란 무엇일까요. '진실'이란 또 무엇일까요. 생각할수록 어렵고 오묘한 우리 사는 세상입니다.

 

3. 언제 어디서나 나타나는 목적

M에서는 정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작품의 마지막에는 그 사건에 대한 '사실'같은 대목이 등장하지만 그것이 '진실'일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그것이 인위적으로 일어난 것이라면 분명 어떤 목적 아래 행해졌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길 뿐이죠. 또한 이 '목적'이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사건을 발판 삼아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도요. 이야기에 등장하는 '기적의 소녀'는 마치 계속 증식하는 세포들처럼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만의 목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근거를 제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온다 여사 작품스러운 듯, 혹은 그렇지 않은 듯.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등장하는 '기적의 소녀'에 관한 진실은, 으아. 읽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고 할까요. 자극적이지 않은, 은근한 미스터리의 여왕이었던 온다 여사가 어쩐지 어둠 한 구석에서 이런 제 모습을 보고 씨익 웃는 듯한 기분까지 들 정도로 예상 못한 '반전'이었습니다.

 

Q : 저처럼 그 동안의 온다 여사 스타일에 잠시 지쳐있던 분이라도 부디 이 작품만은 읽어보시면 어떨까요?

A : (당신의 응답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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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 첫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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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무라카미 라디오> 시리즈가 완간되었습니다 ^-^ 얼마 전 신문에서 대중들이 선호하는 하루키의 글은 -에세이> 소설-이라는 기사를 본 적 있어요. 소설은 약간 난해한 듯 하지만 에세이는 읽기 편해서 대중들이 더 애독한다는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하루키의 글이 아니라 하루키를 읽는다-는 문장도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저도 그런 독자 중 하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의 소설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하루키의 에세이를 좋아하는 것만큼 소설을 좋아하는가 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그건 또 아닌 것 같거든요. 그렇다고 에세이를 즐겨읽느냐고 물어보신다면 그것도 또 아니랍니다. 오히려 전 에세이라거나 자기계발서 같은 남 이야기를 읽는 것에 별로 흥미가 없는 쪽이에요.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그런 종류의 책들은 대부분 자기자랑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서 읽고 나면 오히려 침울해지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러니까 하루키의 에세이에 대한 저의 애정은 상당한 깊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의 출간 상으로는 가장 늦었지만 <무라카미 라디오>의 시작인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입니다. 전에도 하루키 에세이에 대한 리뷰를 쓰면서 그의 글을 읽기에 가장 좋은 때는 여름이라고 적은 적이 있는데요, 요즘 특히 비가 많이 와서인지 읽기에 딱 좋더라구요. 게다가 하루키가 워낙에 '굴튀김♡, 맥주♡'를 외쳐서일까요. 이상하게도 그의 에세이를 읽다보면 저도 자꾸 맥주가 끌려서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홀짝이곤 했답니다.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나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에 실렸던 글들과 분위기는 비슷해요. 다른 사람들은 전혀 생각하지 못할 기상천외한 생각들을 하는 것도 변함없죠.

 

예를 들면. 하루키가 좋아하는 블러디 메리(전 처음에 술 이름이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스릴러 소설의 여주인공인 줄 알았습니다)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요. 항공사별로 제공하는 블러디 메리의 맛이 다른데 그 맛에 따라 항공사를 평가하게 된다거나 식당차에 대한 향수, 비행기 안에서 자신을 귀찮게 하는 것들과 같은 소소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솔직히 읽다보면 '내가 이걸 왜 읽고 있지?'하는 기분이 들 때도 있어요. 하루키가 고로켓을 사랑하든 말든, 체중게에 대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든말든 객관적으로 따져보면 저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 투성이니까요. 그런데 또 계속 읽다보면 하루키의 슬렁슬렁한 성격에 동화되어서 '흠, 뭐 이런 것도 나쁘지 않네' 하는 기분이 드는 겁니다. 그래서 어느 덧 훌렁훌렁 읽어버리게 된다는 것.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먼저 출간된 채소와 사자와는 달리 하나의 챕터가 끝날 때마다 한 줄씩 적혀있던 이상한 소리(?)가 없어졌다는 거에요. 읽을 때는 피식-아무 생각 없이 지나갔었는데 그 자리가 휑하니 비어있는 것을 보니 어쩐지 허전한 것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물어내!!'라고 외치고 싶어졌어요. 이렇게 이상해져버린 것도 분명 하루키 탓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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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 케이스북 셜록 시리즈
가이 애덤스 엮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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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놈요놈~물건입니다아~저는 미드(미국드라마)를 굉장히 좋아해요. 저는 초등학교 때 토요일 오후마다 방송하던 CSI 시리즈를 보기 위해 친구들과 노는 것도 마다하고 집으로 꽁지 빠지게 뛰었던 소녀였어요. 그 당시 저에게 CSI는 정말 신세계였습니다. 증거를 수집하고, 본 적 없는 기계들을 이용해서 DNA(그 때는 DNA가 뭔지도 정확히 몰랐지만요) 를 분석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범인을 검거하는 수사대원들이 정말 멋져보였죠. 그래서 어린 시절 저의 꿈 목록에는 -FBI입성-, 혹은 -CSI 수사관 되기-가 들어있었답니다. 심지어 그 꿈은 진로를 확실히 정하지 못했던 고등학교 때까지 계속되어서, 우연히 저처럼 CSI를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 함께 FBI에 들어가자 굳게 약속(?)하기도 했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올 정도로 귀여운 꿈이지만, 만약 제가 그 때로 돌아간다면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을 선택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재미로 즐기는 미드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인생의 희노애락을 배웠어요. 그리고 인생에는 얼마나 어이없는 실수들이 많은지, 순간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도 생각할 수 있게 되었죠.

 

그런 교훈(?)들을 전달해주었던 CSI 시리즈들이 하나 둘 종영을 맞이했습니다. 오래된 팬으로서 정말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 허전함을 채워주는 다양한 형식의 수사 미들들이 속속 방영되고 있죠. 그 중 하나가 바로 <셜록> 입니다. 서양에서 셜록이란 정말 영웅시 되는 탐정인 듯 해요. <셜록> 뿐만 아니라 <엘리멘트리>라는 드라마도 '현대에 셜록과 왓슨을 되살려낸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고 하니까요. 특이하게도 이 <엘리멘트리>에서 왓슨 역할은 영화 <미녀삼총사>로 유명한 루시 루가 맡아 열연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쨌든. CSI 만큼 챙겨보지는 않았지만 종종 케이블 방송을 통해 <셜록>을 보던 저에게 케이스북이란 존재에 대한 첫 인상은 기상천외하다는 것이었어요. (과장 쪼콤 보태서~) 케이스 북이란 무엇인가, 과연 이런 것을 만들어서 어떤 이익을 얻을 수 있는가, 일반적인 스릴러가 아닌데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인가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셜록 : 케이스북]에는 드라마가 만들어지기 전, 그리고 만들어지면서의 제작과정부터 각각의 에피소드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실려 있습니다. 배우들의 인터뷰는 물론 에피소드들을 만들면서 어떤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었는지, 셜록이라는 탐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연기하는 상대에 대한 배우들의 개인적인 의견까지 엿볼 수 있답니다. 사실 저는 케이블에서 베네딕트 컴버배치를 보고 굉장히 못생겼다고 생각했어요. 저의 상상 속에 존재하던 셜록과 너무 이미지가 달랐기에 드라마 <셜록>에 그렇게까지 깊이 빠질 수 없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으니까요. 그런데 케이스북을 읽으면 읽을수록 배우의 매력이 점점 살아난다고 할까요. 못생겼다는 의견은 아직 바꿀 생각이 없지만 '매력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왓슨 역의 마틴 프레먼은 나름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만.

 

 

각각의 에피소드들을 소개하면서 포스트잇의 형식을 빌려 셜록과 왓슨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내용에 있어 세세한 인과관계를 설명해주고 있지는 못하지만 셜록과 왓슨의 대화만으로도 충분히 내용을 짐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음성지원까지 되는 효과를 발휘해요. 비록 그들이 영어를 쓰는 배우들이지만 신기하게도 한국어로 음성지원이 되는 느낌이랄까요.

 

 

영미 쪽에서는 이런 케이스북이 자주 출간되는지도 모르지만 처음 케이스북이라는 형식을 접해보는 저에게는 상당히 고무적인 책입니다. 이 책을 통해 셜록과 왓슨에 대한 애정이 더욱 깊어졌을 뿐만 아니라 드라마 <셜록>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거든요. 이제 시즌 3이 시작된다고 하니 시즌 3은 한 번 챙겨볼까 합니다. 드라마를 보다보면 케이스북에서 들리는 한국어 음성지원이 영어로도 잘 들릴지 누가 알겠어요~드라마 속 영상과 셜록과 왓슨의 포스트잇 대화로 그 어떤 형식보다 생생함을 전달해준 감탄스러운 책입니다. 물건이에요, 물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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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인데 어두운 방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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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일본문학을 좋아하지만 연애소설은 그리 즐겨 읽지 않는 편입니다. 그들만의 쿨함(?), 저의 마음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연애에 있어서의 산뜻함(?) 이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할까요. 좋으면 좋고, 싫으면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느껴져서요. 사람의 마음은 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은 분명 존재하겠지만 우리의 정서와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장르가 바로 연애소설인 것 같아요.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유독 가벼운 태도를 취하는 소설에서만큼은 저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래서 에쿠니 가오리풍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이번 작품은 굉장히 독특합니다. 에쿠니 가오리의 이야기라고 생각되지 않을만큼 막 사랑이 시작되는 연인들의 감정을 굉장히 농밀하고 섬세하게 그려낸 듯 해요. 그것이 비록 불륜이었지만요.

 

아내 역할에 충실하고 이웃사람들에게도 친절한 미야코씨. 그녀는 착실한 사람으로 집안일을 척척 해내고 요리 실력이 뛰어난 주부입니다. 매일 저녁 남편 히로시씨를 위해 맛있는 저녁을 준비하죠. 그 날 있었던 일을 히로시씨에게 즐겁게 이야기하며 함께 식사를 합니다. 그녀를 푸근하게 여긴 이웃사람들은 때때로 그녀를 찾아와 함께 차를 마시거나 이야기를 나누곤 해요. 그 이웃 중에 '존스' 씨가 있습니다. 그녀를 작은 새처럼 귀엽게 여기며 사랑하게 된 존스 씨. 얼굴을 보기 위해 찾아간 날 그녀가 집에 없으면 금방 시무룩해 지는 존스 씨는 서서히 미야코 씨에게 다가가고 두 사람은 어느덧 가까워져 필드 워크를 즐기고 대중목욕탕에 함께 다니게 된 사이가 되었습니다. 미야코 씨는 이름 모를 설레임을 느끼면서도 존스 씨와 있었던 일들을 모두 히로시 씨에게 이야기하고 그걸로 부도덕한 짓을 저지르지는 않는다고 믿고 있어요. 하지만 존스 씨와의 시간이 무척 즐거워지고 그와 헤어지는 시간이 점차 힘들어지게 된 미야코 씨는 이제 그녀가 알던 세상에서 나와 새로운 세계에 발을 내딛게 됩니다.

 

독특하게도 번역 문장이 '~입니다' 체를 구사하고 있어요. 친근한 듯 하면서도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게 된다고 할까요. 마치 사랑에 관한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차분한 분위기에서 흘러가는 작품입니다. 동화작가이기도 한 에쿠니 가오리가 성인을 대상으로 한 동화를 지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덕분에 앉은 자리에서 한권을 금방 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 중에는 '불륜'을 다룬 이야기가 꽤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이번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놀랍다고 해야 할지,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존스 씨가 미야코 씨에게 품는 감정이 전혀 거리낌이 없어요. 유부녀를 상대로 교제를 생각하는 것은 처음이라는 뉘앙스의 문장이 있었는데 사실 현실적으로 보면 불륜이라는 것은 우리 인생에서 큰 일이잖아요. (아닌가요 @.@;;;) 존스 씨와 미야코 씨가 보내는 시간들에 가슴이 두근거리기는 했지만 제 눈에는 존스 씨가 굉장히 이기적인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맨 마지막 부분을 보면, 미야코 씨에게는 자신이 사는 세상을 바꿀만한 큰 일이었는데도 존스 씨에게는 그저 그 때의 감정에 충실했을 뿐인 -앞날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가벼운 일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어 울컥했습니다.

 

표지도 제 취향이고 문체도 부드러워 재미있게 읽었지만 다 읽고 난 후에 오히려 더 깊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에요. 자신이 모르는 세상으로 나와버린 미야코 씨는 앞으로 어떻게 될 지, 그것을 정말 갇혀 있던 미야코 씨가 세상 밖으로 한 발 내딛은 것으로 봐도 될지 괜히 고민하게 합니다. 이후의 이야기를 상상하지 않고 존스 씨와 미야코 씨가 보내는 농밀하고 가슴 두근거리는 시간에 집중한다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책인 것만은 틀림 없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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