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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6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3년 1월
평점 :
몇 번째로 기대하면서 읽은 미나토 가나에의 작품일까. [고백]이라는 작품을 통해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킨 작가. 그 이후로 [속죄], [소녀], [야행관람차], [왕복서간] 등의 작품을 발표했지만 [고백] 만큼의 인기를 얻지는 못한 채 독자들로부터 간혹 혹독한 평가를 받아야만 했다. 그나마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 [왕복서간] 으로 그녀가 자주 선보이는 구어체 문장이 잘 어울렸던 이야기로 기억에 남아있다. 나도 작가의 신작이 발표되면 늘 마음 속에서 갈등을 느끼곤 하는데, [고백]보다 나은 작품이 나오길, 아니 [고백] 정도의 작품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 반, 이제는 그런 작품이 나오지 못할 지도 모르기 때문에 읽어도 그다지 깊은 인상을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마음이 반이 된다. 완벽한 신뢰를 주는 작가는 많지 않지만 그런 갈등 속에서도 그녀의 신간이 나오면 결국 찾게 되는 것은, 기다리면 언젠가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일까.
[경우]는 두 여자의 엇갈린 운명에 대해 그린 작품이다. 아직 핏덩이였을 때 아동보호시설인 아사히 학원에 맡겨져 성장한 하루미와 역시 우애원에 맡겨졌다가 입양되어 사랑받고 자란 요코는 둘도 없는 친구사이. 요코는 하루미가 어렸을 때 들려준 이야기를 바탕으로 <파란 하늘 리본>이라는 작품으로 일본그림책대상 신인상을 수상하고, 하루미는 기자가 되어 요코를 취재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림책이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요코와 하루미는 혹시나 그녀들의 부모에 관한 소식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하지만, 지방의회의원 마사키를 남편으로 둔 요코의 아들 유타가 유괴되는 사건이 생긴다. 범인의 요구는 단 하나, 진실을 밝히라는 것. 마사키와 얽힌 진실인 것인지, 자신의 출생에 관련된 진실인 것인지 의심하는 유코는 결국 자신의 배경을 알게 되고 그것을 방송에서 공표하기로 결심한다.
미나토 가나에의 강점은 인간의 마음 속 자리잡은 오묘한 심리를 집어낸다는 데 있다. 작가는 이번에 -아무리 소중한 사람이어도 나의 불행을 만들어낸 원인이 그 사람이라면, 게다가 그 사람이 세상의 모든 행복을 가진 것처럼 행복하게 웃고 있다면 과연 어떻게 할까-라는 의문을 독자에게 던진다. 사실 이런 미묘한 마음의 꿈틀거림을 그려내는 데는 미나토 가나에만한 작가는 드물다고 할 수 있는데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 뿐만 아니라 작가가 만들어내는 결과 또한 늘 예상 밖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반전이라면 반전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것을 반전이라기보다는 사람의 마음이 원래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을 작가는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아쉽다.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는 작가에게 고마운 마음이 드는 한편 [고백]이 그녀의 발목을 너무 옥죄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생긴다. 친근한 문체를 통해 일상 미스터리 속에서 인간의 악의에 대한 글을 발표하는 그녀에게 거는 기대가 작가의 어깨를 한층 무겁게 할 거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음에도, 독자들은 목마른 사람이 물을 갈구하듯 그녀에게 [고백]만큼의 작품을 원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독자'이므로. 그런데 [경우]의 경우, 지금까지 읽은 작품 중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상황설정이 자연스럽지 못한 데다 전개가 조금 낡은 이미지를 만들어낸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예상치 못했던 반전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반전에 대해 충격과 기쁨을 느끼기보다 '이럴 줄 알았어'의 기분이 느껴진다고 할까.
한편으로는 작가가 [경우]에서 단순히 미스터리만 추구했던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작품 안에서 선보인 <파란 하늘 리본>이라는 동화책과 따스한 결말을 생각해볼 때 미스터리라는 형식을 빌려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자 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이다. 문장은 굉장히 쉽게 읽힌다. 끝까지 읽어내는 데에 어려움은 없다. [경우]는 조금 아쉽고 안타까운 작품으로 기억되겠지만 나는 작가의 신작이 나오면 또 망설일 것이다. 그리고 또 읽게 될 것이다. 실망하든 환호하든. 어쩌면 그것이 미나토 가나에라는 작가가 가진 힘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