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의 묘지 1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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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처음 읽었던 때가 생각납니다. 저는 이 작품을 두 번 읽었는데, 처음 읽었을 때는 중세를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이라는 것만 깨달았을 뿐 완독하기도 힘들었어요. 지금 생각하니 꽤 어렸을 때 읽었으니 그럴만 하다 싶지만 [프라하의 묘지]를 읽고나니 그것 또한 움베르토 에코 작품의 특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처음 [장미의 이름]을 읽었을 때의 느낌 그대로, [프라하의 묘지] 또한 저를 굉장한 지적 혼란 속으로 몰고 가네요. 조금이라도 집중력이 흐려지면 다시 몇 페이지를 읽게 되는 터라 엄청 끙끙대면서 읽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내용을 제대로 다 이해한 것인지는 확신이 들지 않아요. 두 번째로 [장미의 이름]을 읽었을 때 감탄과 경의를 느꼈으니 [프라하의 묘지]도 두 번 읽으면 그렇게 될까요. 움베르토 에코, 독자들의 이런 고충을 알고나 있을런지요.

 

위조 문서 전문가이자 실력있는 책략가이기도 한 시모니니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어느 날 아침 자신은 기억하지 못하는 형태의 옷차림으로 일어난 시모니니. 그는 자신의 정체와 혹시 있을지 모르는 또 다른 인물을 캐내기 위해 자신의 일대기를 서술하기 시작합니다. 어떤 때는 시모니니의 시각에서, 어떤 때는 달라 피콜라라는 사람의 시각에서, 어떤 때는 '화자'라고 일컬어지는 사람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글씨체를 따로 하여 차이를 두었다고는 하나 저에게는 참 혼란스러운 작품이 아닐 수 없었어요. 시모니니의 일대기 또한 파란만장하기 그지 없습니다. 자신의 안위와 책략을 위해서라면 사람을 죽이는 것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전쟁을 겪었다고는 하지만요) 이 일이 끝났다 싶으면 저 일에 끼여들어 위기를 맞기도 하니 대체 이 남자의 정체와 결말은 어찌될 지 궁금증을 자아내죠.

 

종국에는 어떤 것이 진실이고 어떤 것이 허구인지조차도 헷갈리게 만들어버립니다. 유령의 목소리를 내는 시모니니, 숨겨진 권력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가.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둘째치고 작가의 상상력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습니다. 평소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존경의 마음을 갖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장미의 이름]에 이어 [프라하의 묘지]를 읽고보니 '대작가'라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나처럼 창의력과 상상력에 한계가 있는 사람들은 결코 범접할 수 없는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 있구나, 글은 역시 아무나 쓰는 게 아니야-와 같은 감정의 파도가 밀려온다고 할까요. 명심하세요. 이 작품을 읽을 때는 결코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없습니다. 돌려서도 안됩니다. 그렇게 되면 언제 어떻게 이 작품이 선사하는 혼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릴지 모르게 될테니까요. 으아. 저는 그저 지금부터 다시, 이 작품을 처음부터 읽어봐야겠습니다. 아, 이번에는 메모도 함께 하면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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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6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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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째로 기대하면서 읽은 미나토 가나에의 작품일까. [고백]이라는 작품을 통해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킨 작가. 그 이후로 [속죄], [소녀], [야행관람차], [왕복서간] 등의 작품을 발표했지만 [고백] 만큼의 인기를 얻지는 못한 채 독자들로부터 간혹 혹독한 평가를 받아야만 했다. 그나마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 [왕복서간] 으로 그녀가 자주 선보이는 구어체 문장이 잘 어울렸던 이야기로 기억에 남아있다. 나도 작가의 신작이 발표되면 늘 마음 속에서 갈등을 느끼곤 하는데,  [고백]보다 나은 작품이 나오길, 아니 [고백] 정도의 작품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 반, 이제는 그런 작품이 나오지 못할 지도 모르기 때문에 읽어도 그다지 깊은 인상을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마음이 반이 된다. 완벽한 신뢰를 주는 작가는 많지 않지만 그런 갈등 속에서도 그녀의 신간이 나오면 결국 찾게 되는 것은, 기다리면 언젠가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일까.

 

[경우]는 두 여자의 엇갈린 운명에 대해 그린 작품이다. 아직 핏덩이였을 때 아동보호시설인 아사히 학원에 맡겨져 성장한 하루미와 역시 우애원에 맡겨졌다가 입양되어 사랑받고 자란 요코는 둘도 없는 친구사이. 요코는 하루미가 어렸을 때 들려준 이야기를 바탕으로 <파란 하늘 리본>이라는 작품으로 일본그림책대상 신인상을 수상하고, 하루미는 기자가 되어 요코를 취재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림책이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요코와 하루미는 혹시나 그녀들의 부모에 관한 소식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하지만, 지방의회의원 마사키를 남편으로 둔 요코의 아들 유타가 유괴되는 사건이 생긴다. 범인의 요구는 단 하나, 진실을 밝히라는 것. 마사키와 얽힌 진실인 것인지, 자신의 출생에 관련된 진실인 것인지 의심하는 유코는 결국 자신의 배경을 알게 되고 그것을 방송에서 공표하기로 결심한다.

 

미나토 가나에의 강점은 인간의 마음 속 자리잡은 오묘한 심리를 집어낸다는 데 있다. 작가는 이번에 -아무리 소중한 사람이어도 나의 불행을 만들어낸 원인이 그 사람이라면, 게다가 그 사람이 세상의 모든 행복을 가진 것처럼 행복하게 웃고 있다면 과연 어떻게 할까-라는 의문을 독자에게 던진다. 사실 이런 미묘한 마음의 꿈틀거림을 그려내는 데는 미나토 가나에만한 작가는 드물다고 할 수 있는데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 뿐만 아니라 작가가 만들어내는 결과 또한 늘 예상 밖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반전이라면 반전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것을 반전이라기보다는 사람의 마음이 원래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을 작가는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아쉽다.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는 작가에게 고마운 마음이 드는 한편 [고백]이 그녀의 발목을 너무 옥죄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생긴다. 친근한 문체를 통해 일상 미스터리 속에서 인간의 악의에 대한 글을 발표하는 그녀에게 거는 기대가 작가의 어깨를 한층 무겁게 할 거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음에도, 독자들은 목마른 사람이 물을 갈구하듯 그녀에게 [고백]만큼의 작품을 원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독자'이므로. 그런데 [경우]의 경우, 지금까지 읽은 작품 중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상황설정이 자연스럽지 못한 데다 전개가 조금 낡은 이미지를 만들어낸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예상치 못했던 반전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반전에 대해 충격과 기쁨을 느끼기보다 '이럴 줄 알았어'의 기분이 느껴진다고 할까.

 

한편으로는 작가가 [경우]에서 단순히 미스터리만 추구했던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작품 안에서 선보인 <파란 하늘 리본>이라는 동화책과 따스한 결말을 생각해볼 때 미스터리라는 형식을 빌려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자 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이다. 문장은 굉장히 쉽게 읽힌다. 끝까지 읽어내는 데에 어려움은 없다. [경우]는 조금 아쉽고 안타까운 작품으로 기억되겠지만 나는 작가의 신작이 나오면 또 망설일 것이다. 그리고 또 읽게 될 것이다. 실망하든 환호하든. 어쩌면 그것이 미나토 가나에라는 작가가 가진 힘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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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정호승 지음, 황문성 사진 / 비채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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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성당을 가지 못할 것 같아 미리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신부님이 베드로 이야기를 하시네요. 고기를 잡으려고 오랜 시간 기다렸지만 수확이 없어 낙담한 베드로 앞에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더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던져라- 신부님께서는 이 일화를 소개하시며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는 전적인 신앙에 대해 말씀하셨지만 정호승 작가님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남의 충고를 받아들이는 겸손한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셨습니다.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해석도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전 날라리 신자이기는 하지만 오늘의 신부님 말씀은 작가님 덕분에 더 귀에 쏙쏙 들어왔던 것 같아요. 으흣.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를 잇는 두 번째 책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입니다. 첫번째 책보다 조금 더 두꺼워진 것만 제외하고는 전작과 동일한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 들려주는 짧은 이야기. 길지 않은 이야기 속에 작가의 체험과 인용구들이 함께 실려 있어 이번에도 역시 따스한 마음으로 읽었어요. 전작보다 조금 더 깊어진 느낌입니다. 모든 벽은 문이다, 견딤이 쓰임을 결정한다, 스스로 자기 자신의 스승이 되라 지금도 늦지 않았다, 미래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다, 다람쥐는 작지만 결코 코끼리의 노예가 아니다, 누구나 자기만의 사막을 지니고 있다와 같은 위로의 말씀들. 제목만으로도 그 내용을 헤아리기 어렵지 않아 오히려 더 쉽게 다가오는 것 같았어요. 때로 긴 말보다는 한 마디의 툭 던지는 말에서 더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요.

 

굳이 마음 아픈 이들만 읽어야 하는 책은 아니랍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조용한 시간을 갖기 어려운 일상을 되돌아보고, 그 안에서 차마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솔직하게 자신의 지난 시간을 반성하는 작가님의 모습 또한 위안이 되고요. 나만 늘 잘 못하고 있는 것 같고 나만 늘 부족한 사람이다 여겼었는데 그 누군가도 똑같이 아파하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위로를 받는 건,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정호승 작가님의 시나 또 다른 작가님들의 다양한 작품도 엿볼 수 있는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언제쯤 되면 무언가를 깨닫고 그 깨달음에 대해 솔직하게 내비칠 수 있게 될까요. 작가님의 연륜에 새삼 감탄을 느끼며 저도 앞으로는 그때그때 깨달은 것에 대해 메모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만을 위한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를 만들어보는 것도 멋진 일일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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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 정호승 산문집
정호승 지음 / 비채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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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우리 사이에 가장 유행했던 단어는 '힐링'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삶에 지쳐있고 마음에 큰 상처를 입고 있다는 증거겠죠. 힐링 책, 힐링 영화, 힐링 강연. 한편으로 저는 힐링이 너무 유행처럼 번지는 것은 아닌가 염려하기도 했어요. 넘쳐남은 모자란 것만도 못하다는 말도 있잖아요. 힐링의 대유행은 곧 힐링은 그 어디에도 없음을 반증하는 것 같아 저 혼자 스스로 '힐링'이라는 말을 많이 쓰지 말아야지 다짐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마음을 다독거려주는 책을 멀리하기도 했는데요, 좋은 글귀를 읽는 것도 좋지만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 그것은 한순간에 지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말 오랜만에 읽는 '마음 다스리기' 책은 참 좋네요. 누군가가 해주었으면 하는 이야기, 소중한 사람들에게 듣고 싶었던 말을 책을 휘리릭 넘기면서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정호승 작가님은 시집을 통해서만 만났어요. 그것도 많이 읽어본 것은 아니고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시집의 제목이 마음을 흔든 적이 있었거든요. 아주 오래 전에 읽은 후로 작가님의 책은 오랜만입니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 3~4장 정도 되는 이야기들이 실려있는데요, 사람마다 책을 읽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저는 각각의 이야기의 제목을 먼저 휘리릭 훑어보시기를 권해드려요. 그 중에서 자신의 마음에 가장 와닿는 이야기부터 먼저 읽다보면 이 책의 부드러움과 편안함에 쉽게 빠져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대소변을 몸 밖으로 버리듯 번뇌와 망상도 미련 없이 버리세요> 부분이 가장 와 닿았습니다. 사소한 것에도 쉽게 겁을 먹고 온갖 잡다한 생각 속에 스스로를 괴롭힐 때가 많은 저에게 해결책(?)을 제시하는 글이었다고 할까요. 게다가 뜻하지 않게 접한 부분이 지금의 제 상황과 어울리는 것도 같아 발췌해봅니다. 으힛.

 

베풀어주겠다는 마음으로 결혼하면 길가는 사람 아무하고나 결혼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덕 보겠다는 생각으로 고르고 고르면, 백 명 중에 고르고 골라도, 막상 고르고 보면 제일 엉뚱한 것을 고르게 됩니다.  

생전에 주례를 딱 두 번 보셨다는 성철스님의 말씀을 인용한 부분입니다. 아무래도 나이가 나이인지라 부모님께서 결혼을 재촉하셔서 가끔 다툼 아닌 다툼(?)을 하고 있는 저로서는 제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말씀이었어요. 그 동안 사귀었던 사람들, 그리고 소개받았던 사람들을 나는 어떤 눈으로 보고 있었는지,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있었는지 반성도 했답니다.

 

이 책에서 작가님이 들려준 이야기는 모두 작가님 자신의 이야기는 아니에요. 보고 들은 것을 인용한 부분도 많은데 저는 오히려 그런 점이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작가님도 늘 끊임없이 배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일까요. 사실 저는 작가님 사인회도 다녀왔답니다.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의 2탄 격인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출간 기념으로요. 따스한 문체만큼이나 온화한 미소를 지닌 분이셨어요.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에서는 작가님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지 고고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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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꽃, 눈물밥 - 그림으로 아프고 그림으로 피어난 화가 김동유의 지독한 그리기
김동유 지음, 김선희 엮음 / 비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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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는 잘 알지 못했던 김동유님의 그림에세이입니다. 굳이 분류하자면 여러 가지 그림들을 소개해주는 책이 아니라 자서전같은 책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굉장히 선한 인상의, 고집이라고는 단 한줄도 보이지 않는 화가의 얼굴에서 고생이라는 그늘은 단 한 점도 찾아볼 수 없었어요. 그림을 그려온 세월들을 그는 어려움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겠죠. 아무리 어려운 시절을 보냈어도, 그 순간에도 그는 그림에 대한 열정과 사랑으로 불타오르고 있었을테니까요. 그런 뜨거움이 부럽기도 했지만 그것은 어쩌면 비범한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열정의 시간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 질투와 심술이 나네요.

 

단 한 가지만 보고 굳건하게 걸어간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요. 정말 그는 단 한 순간도 흔들린 적이 없었을까요. 아닙니다. 그도 흔들렸겠죠. 그림을 반대하는 부모님과 생활고에 시달리는 가족을 바라보면서 그의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므니다~일 겁니다. 그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림, 그 하나였다는 것을 생각하니 도대체 얼마나 단단한 성품과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상상하기 쉽지 않네요.

 

더불어 저는 화가 김동유 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에게 더 자주 눈길이 갑니다. 몸이 아프다고 해도 무뚝뚝하게 대꾸하고 가족들은 안중에 있는지 없는지 오직 그림 그리기에만 몰두하는 남편이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요. 아내의 입장에서는 어찌나 이기적인 남편이신지. -가난은 환쟁이의 부록-이라며 축사같은 곳을 개조해서 집이라고 살려니 아내 분의 마음 고생이 얼마나 심했을지 같은 여자 입장에서 공감이 되고도 남습니다. 화가로서는 성공했지만 남편으로서는 어떨지 그녀의 입장이 아니라면 알 수 없을 거에요. 그나마 이제 조금 살림이 피셨을테니 마음이 많이 누그러지셨기를. 화가 김동유님 옆에 아내분이 있었기에 그가 묵묵히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는 것을 그도, 그녀도 아시기를 바랍니다.

 

살림이 좀 나아지자 좋은 곳으로 이사가자는 아내와는 달리 원래 있던 곳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했다는 그. 아내 입장에서는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얄미운 발언이었겠지만 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오!!'라는 감탄이 저절로 나오더군요. 우쭐하지 않고 그림 앞에서 늘 겸손한 그의 자세가, 비록 가족들 앞에서는 인정머리 없어 보일 때도 있었지만, 그림에 대한 사랑만큼은 그 누구보다 깊고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니까요. 그림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평가할 지식을 갖추지 못한 저로서는 그의 그림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는 잘 알 수 없었지만, 마릴린 먼로의 작은 얼굴들로 이루어진 존 F 케네디의 얼굴 등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기적이고 외곬수인 화가이지만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린 후에도 자만하지 않고 그림만 바라보며 후학을 기대하는 그의 행보가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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