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마처럼 비웃는 것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5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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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이라는 작품으로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작가 미쓰다 신조의 (제가 접하는) 두 번째 작품입니다. 얽히고 설킨 플롯도 그렇지만 겉표지를 뒤집으면 나오는 속표지도 가히 충격적이었죠. 속표지가 깔끔하고 심플한 면은 있지만 마음 약한 분들이 보시기에는 워낙 충격적이라 저도 차마 그 표지를 그대로 드러내지는 못했습니다. 꿈에 나올까 무섭기도 하고 무엇보다 미스터리를 좋아하지 않는 가족들이 저를 이상한 눈으로 볼까 두려워서요. 흑흑. [산마처럼 비웃는 것]은 제목도 그렇고 표지에서도 공포스러운 분위기는 전혀 느낄 수 없었지만, 내용은 전편과 비교했을 때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무섭습니다.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에도 얼굴을 내밀었던 도조 겐야가 등장하여 사건을 해결하는 이 작품은 [항설백물어]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점도 있습니다. 전국의 괴담을 수집하여 언젠가 책을 출간하는 것이 꿈인 야마오카 도령이, 역시 괴담을 좋아하여 달리는 열차에서도 뛰어내릴 기세를 가지고 있는 도조 겐야와 인물상이 겹치거든요. 야마오카 도령은 직접 사건을 해결한다기보다 그저 사건에 휘말려 얼떨결에 합류하는 것일 뿐, 탐정과도 같은 면모를 지닌 도조 겐야와는 큰 차이를 보이기는 하지만요. 그런 점에서 도조 겐야는 긴다이치 코스케에 더 가까운 인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산마처럼 비웃는 것]의 무대가 어떤 한 마을이다 보니 그 분위기 면에서도 긴다이치 시리즈와 비슷했던 것 같기도 해요.

 

호러와 미스터리가 결합된 독특한 추리소설입니다. '산마'라는 불가사의한 존재를 내세워 이야기를 이끌어가면서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사람. 그렇다면 진실로 무서운 것은 불가사의한 존재인가,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지만 결말에서는 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불가사의함을 툭 내던져버리는 작가입니다. 사건 자체로 보면 다른 미스터리 소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내용이지만, 그 분위기가 참. 한밤중에 읽다가 몹쓸 꿈을 꾸게 만들어버리는 이야기랄까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산마의 웃음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울려퍼지는 듯한 이 괴이함에는 정말 대단하다고밖에 할 수 없겠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여겼던 문장 한 줄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였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은 탄성이 나왔지만, 그렇게 작가에게 뒤통수를 맞는 것이 미스터리 소설을 읽는 독자의 임무라 여겨지는 바입니다.

 

차근차근, 조근조근 친절한 소설입니다. 사건이 하나 둘 벌어지고 마지막에 어떻게 된 일인지 친절하게 설명도 해주고. 전 이런 작품이 좋아요. 독자의 상상에 맡기기보다 작가가 결말을 지어줘야 무서움도 덜하고 미적지근 찝찝한 느낌이 들지 않거든요. 또 상황을 종합해서 추리해보려는 의지도 생기고요. 단서가 되는 그 한 줄을 무심코 넘겨버린 것은 쪼금 아깝긴 하지만 덕분에 미쓰다 신조의 다른 작품에도 기대를 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흉조처럼 피하는 것>은 언제 출간되려나요. 먼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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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녀를 위한 아르바이트 탐정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3
오사와 아리마사 지음, 손진성 옮김 / 비채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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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낯익다 했더니 [신주쿠 상어] 의 바로 그 작가로군요. [신주쿠 상어]를 읽어본 적이 없어서, 그 책이 얼마나 재미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작품으로 인해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는 물론 독자가 선정한 베스트 오브 베스트에서도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고 하니, 엄청 유명한 작가임에는 틀림없나 봅니다. 하드보일드 형사물이라는 [신주쿠 상어] 와는 달리, [왕녀를 위한 아르바이트 탐정] 은 심각한 요소는 전부 배제된, 심심풀이로 가볍게 읽으면 좋을 듯한 책이에요. 고등학생인 탐정을 내세워 역시 같은 일을 하는 아버지와 함께 라일 왕국의 왕녀를 지킨다는, 거기에 핑크빛 하이틴 로맨스까지 곁들여진 작품입니다.

 

주이공 사이키 류의 아버지가 엄청난 이력을 자랑하는 탐정이라는 점, 도쿄대 입학을 위해 왕녀의 보디가드를 접수한다는 점, 부자 간의 다소 이색적인 대화들로 군데군데 코믹한 요소는 들어 있지만, 다른 탐정물과 비교한다면 약간은 심심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게다가 저는 이런 류의 하이틴 로맨스가 들어간 책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요. '왕녀를 위한' 이라는 제목에서 그런 냄새가 났지만, 그래도 탐정물이니 가볍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다소 기대 이하였던 듯 합니다. 음..어쩌면 이 작품은 세대를 아우르는 책이 아니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저처럼 인생의 오묘한 맛과 운명의 미묘함 등에 눈떠가는 나이가 아닌, 천방지축 모험심에 들뜨고 내 뜻대로 되지 않을 일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열혈 청소년들이나 청년들에게 더 어울릴 듯한 책입니다. 취향과 나이를 타는 이야기라고 할까요.

 

얼마 전까지 여름이라 이러저러 출간되는 탐정물과 미스터리 소설 등을 꽤 읽었더니 이제는 좀 질린 탓도 있고요. 자기를 지켜주는 고등학생 류에게 홀딱 반해버리는 왕녀에게 공감하기에는 저의 감성이 무뎌진 탓도 있는 듯해 서글프기도 합니다. 저도 옛날에는(?) 그랬던 것 같기도 한데 말이죠. 갑자기 작가들도 참 살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미스터리 소설 작가들. 워낙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소재가 아니라면, 혹은 미스터리여도 뭔가 생각하게 만들만한 요소가 없다면, 자극에 무뎌진 독자들로부터 외면당하지 않을까 싶어요. 또 이런 소재야? 같은 소재지만 전개는 좀 다를까? 역시 예상대로였어-라는 수순을 밟지는 않아야 할텐데요.

 

제 한몸 간수하기도 힘든데 미스터리 작가들 걱정하기에는 주제넘다는 생각도 들고요, 역시 저는 독자의 입장이라 냉정한 판단을 할 수밖에 없네요. 저에게는 그럭저럭. 이제는 미스터리 장르가 아닌 다른 장르의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 생각의 전환을 만들어준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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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인의 항아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1
오카지마 후타리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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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짝짝! 박수가 절로 나오는 작품입니다. 읽고 나서 머리가 멍~해지는 것이 마치 영화 <인셉션>을 보고 난 후와 같은 상태였답니다. 현실이 꿈인 듯, 꿈이 현실인 듯 여겨지는 몽환적이고도 불명확한 기분. 이 책을 읽고 나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을까요? 나는 진짜 나인가, 이 사람들은 정말 나의 가족이 맞는가, 내가 숨쉬고 있는 이 세상이 '진짜' 현실인가, 나는 나의 의지대로 행동하고 있는가, 나를 지켜보는 다른 누군가는 없을까. 머리속이 잠시 뒤죽박죽, 약간 패닉 상태가 되지만 그건 그것대로 즐기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분이기도 합니다.

 

우선 '클라인의 항아리'라는 것에 대해 알아볼까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이 바깥쪽과 안쪽을 구별할 수 없는 단측곡면()의 한 예로 독일의 수학자 F.클라인이 고안하였는데, 이 항아리에서는 항아리의 양끝이 접속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분명히 닫혀 있는 데도 사실은 열려 있다. 이 항아리의 용도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는데, 이유는 액체를 넣으면 흘러나가기 때문이다. 

라고 친절한 네이버양이 가르쳐 주네요. 저처럼 공간상상능력이 힘겨우신 분들을 위해 그림 하나 보여드릴게요.

 
<출처 : http://blog.naver.com/omath/150042474676 >

 

이 작품에서 이 항아리가 직접 등장하는 것은 아니에요. 주인공 우에스기가 쓴 게임원작을 가상체험이라는 실제 게임으로 만들겠다는 게임회사 인물들이 이 항아리에서 모티브를 얻은 거죠. 겉과 속이 없는 클라인의 항아리처럼 게임을 현실처럼 느끼게 하는 겁니다. 몸에 밀착되는 물질을 이용해서 피부에서 제공하는 정보들을 통해 먹고 마시고 자는, 우리의 실제 생활과 다를 바 없는 모습들을 보여주는데요,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 어, 뭐지?'라는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런 부분이 나타날 때마다 주목하시면 조금은 분명하게 책을 읽어나가실 수 있을 듯 합니다. 전 '어, 뭐지?'를 느끼기는 했지만 그런 기분을 즐기기도 하는 터라 헤롱헤롱하며 읽었지만요.

 

처음에는 단순히 재미있겠다, 신기하겠다라는 호기심 뿐이었는데 게임회사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느끼게 되는 오싹함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마치 어두운 미래를 본 느낌이었어요. 우리의 존재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고, 선택마저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는 현실이 온다면 우리도 결국 마지막에는 우에스기와 같은 선택을 하게 되지 않을까요? 내가 숨쉬고 있는 공간이, 나의 선택이 오로지 나의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 의한 것이라면 그 좌절감과 무력감은 상당하겠죠. 때문에 마지막 장면에서의 우에스기의 선택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카지마 후타리라는 이름은 도쿠야마 준이치와 이노우에 이즈미 콤비의 공동필명으로 닐 사이먼의 [오카시나 후타리]에서 빌려온 이름이라고 합니다. 두 콤비의 역할분담도 상당히 정확했던 듯, 도쿠야마가 플롯을, 이노우에가 집필을 담당했다네요. 일본의 엘러리 퀸이나 전설의 콤비라 불려졌던 이들은 현재 해체된 상태지만 다른 작품들도 소개되서 그 매력을 흠뻑 느껴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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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8, 우연히 데이브 거니 시리즈 1
존 버든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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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행운의 편지 한 두번은 받아보셨을 겁니다. 저는 최근에 문자 형태로 한 번 받았는데요, 저희 아부지께서는 그게 '진짜 행운'의 편지인 줄 알고 저를 비롯한 온 가족에게 보내셨더라구요  어렸을 때도 다른 사람에게 보내지 않으면 불행이 온다네 어쩐다네에 굴하지 않고 가볍게 패스해 온 인생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보내지 않으면 불행이 찾아온다'라는 말에 깊은 불신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리 신경쓰지 않았던 것 같아요. 오히려 행운의 편지나 문자는 보내는 순간부터 불행이 시작되는 게 아닐까요? 받은 사람이 혹시 내가 보낸 걸 알면 어쩌지, 내가 문자나 편지를 보낸 사람에게 나쁜 일이 생기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생기는 순간, 우리의 삶은 불안 속에서 흔들리게 되니까요. 저희 아부지는 '진짜 행운'의 문자인 줄 아셨던 관계로 당당하게 번호를 쾅 찍어서 보내셨답니다.

 

그런데 이런 편지를 받으면 어떻게 될까요?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어투의 편지, 내가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알고 있고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꿰뚫어보고 있다는 내용의 편지요. 만약 그것 뿐이라면 장난이겠거니 넘길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지금 생각한 숫자를 정확히 알아낸 편지라면 이야기는 좀 달라지겠죠. 어떻게 내가 생각한 숫자를 알아냈을까, 이 사람이 나에 대해 또 뭘 알고 있을까, 과거에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잘못이라도 있는 건가, 더 알고 싶다, 이 사람이 요구한 돈을 보내야겠다로 생각이 발전하는 건 정해진 수순입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나에 대해 알고 있다는 건, 전혀 로맨틱하지도 즐거운 일도 아니니 어떻게든 이 사람의 정체를 밝혀내야겠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요.

 

이 작품은 세 가지 미스터리를 간직한 채 진행됩니다. 수신자가 생각한 숫자를 범인은 어떻게 알아낸 걸까, 편지를 받은 사람을 살해한 범인은 누구이며 목적은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전직 형사 데이브 거니가 간직한 삶의 고통은 무엇인가. 앞의 두 가지와는 달리 거니에 대한 의문은 전혀 관계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야기가 막바지로 치달아가면 결국 오묘한 인생의 굴레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질문이 됩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한 '작가가 내세우고 싶었던 수수께끼'는 이 정도이지만 다른 분들은 또 다른 수수께끼를 발견하셨을 수도 있겠네요.

 

주인공 거니가 생각이 좀 많습니다. 그 생각에 제가 좀 침식당하는 느낌이었는데요, 지금까지 읽은 스릴러 소설 중에서 자신에게 이토록 집중하고 많은 생각을 간직한 캐릭터는 처음인지라 색다르기도 했습니다. '지겹다'는 기분보다는 작가가 사람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할 줄 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건 이 '편지 트릭'에서도 잘 드러나 있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에게서 받는 편지, 내가 생각한 숫자를 두 번이나 정확하게 알아내는 사람이 있고 그 자신이 과거에 조금 잘못한 경력이 있다면,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게 될테니까요. 작가가 인간의 심리에 집중한다는 인상은 결말 부분에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스릴러이기는 한데 스펙터클하고 최고의 긴장을 내세우기보다는 정적으로 다가오는 작품입니다. 작품 안에 눈이 등장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서늘하기도 하고 그 서늘함 안에 감춰진 쓸쓸함이나 고독감이 사건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이야기였어요. 아웅, 요즘에는 이런 스릴러가 참 매력적인 것 같아요. 잔인한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른 작품에 비해 비중이 좀 적고 '사람'에게 집중한 소설이랄까요. 거니가 등장하는 다음 편도 출간 예정이라는데 그 작품에서는 거니와 그의 아내 매들린의 행복한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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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도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4
다나카 요시키 지음, 손진성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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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영웅전설] 로 엄청난 매니아를 확보하고 있는 다나카 요시키의 연작소설집입니다. 저도 십 몇년 전에 도서관에서 이 [은하영웅전설] 1권을 대출했었지만, 그 당시에는 특히 SF에 관심도 없었거니와 뒤에 남아있는 권수에 지레 겁을 먹고 포기했던 기억이 나요. 1권이 아무리 재미있다고한들, 소녀의 감성에 그리 어울리는 책은 아니었다고 믿으렵니다. 얼마 전 인터넷 서점에 나들이를 가보니 [은하영웅전설] 이 십 몇년 만에 재출간된다는 소식이 들려오더군요. 한정판으로서 기다리는 독자들이 많은 듯 한데 얼마 전 선보인 표지가 열화와 같은 비난을 받고 쏙 들어가 새표지를 강구중이라고 합니다. [은하영웅전설] 을 기다리는 열혈독자나 [은하영웅전설] 의 명성은 알지 못하지만 대체 어떤 소설인가가 궁금한 사람에게는 이 [일곱 도시 이야기] 가 소소한 재미를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지축이 90도 뒤바뀌는 '대전도'에 의해 인류의 태반이 멸망한 시점. 가까스로 살아남은 인류는 달로 도망가고 지구에 7개의 도시를 건설하며 새로운 역사의 기틀을 마련하죠. 그들은 지구에 사는 사람들이 하늘을 날 수 없게 만드는 '올림포스 시스템'을 구축하고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경쟁을 흥미롭게 지켜봅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월면인들은 미지의 바이러스에 의해 전멸당하지만 '올림포스 시스템'은 2백년 후에나 정지되리라 예측한 지구. 그 지구 위에서 일곱 도시-아퀼로니아, 프린스 해럴드, 타데메카, 쿤론, 부에노스 존데, 뉴 카멜롯, 산다라-가 2190년을 기점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만한 격전을 펼칩니다.

 

[일곱 도시 이야기] 의 전투 장면이 흥미롭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가장 큰 장점은 캐릭터와 예측할 수 없는 문구, 정치에 대한 작가의 비판력입니다. 일곱 도시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저마다 개성을 간직하면서도 비슷한 면이 없지 않아요. 전투에서 가장 큰 책임을 맡고 있는 아퀼로니아의 알마릭 아스발, 뉴 카멜롯의 케네스 길포드, 프린스 해럴드 시의 유리 크루건은 사는 도시는 다르지만 비슷한 성격의 군간부입니다. 그들에게서 받는 인상은 얼음왕자?! 상관과 부하, 한 쪽에서만 존경을 받고 있거나 양 쪽 모두에게 배척당하지만 크게 상관하지 않으면서 제 갈길 가는 인물들로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들이지만 조금 어린아이같은 면이 있다고 할까요? 여섯 도시가 연합해 부에노스 존데를 공략할 때도 절대 자신의 잘못은 있을 수 없으며 만약 전투가 패배한다면 그것은 다른 두 사람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현자처럼 등장하는 류 웨이와 귄터 노르트가 형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각각의 도시에 살고 있지만 만약 지구가 하나로 합쳐져 그들이 모두 하나의 도시에 살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상상을 멈출 수 없게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누구의 편도 들 수 없게 만드는 캐릭터들이라고 할까요.

 

두 번째는 문장인데요, 이 문장들이 또 빠져나올 수 없게 매력적입니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문장이 등장하기 때문일까요. 예를 들면 이런 거죠. 먹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의 빵을 누군가가 훔쳐갑니다. 당연히 먹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은 화를 내겠죠. 그래서 다들 그가 곧 분노하리라 예측하지만 그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거에요. '아니, 대체 여기 있던 빵, 누가 먹어도 돼!' 조금 어처구니 없기는 하지만 이런 문장들이 반복되다보면 은근히 기대를 품게 됩니다. 다음은 또 어떤 재미있는 문구로 즐겁게 해줄까. 예가 적절했는지는 모르지만 다나카 요시키만의 위트넘치는 문장만은 직접 확인해보시길 권합니다.

 

일곱 도시의 전투를 다루지만 약간 코믹하게도 느껴지는 분위기 속에서도 정치에 대한 작가의 날카로운 비판이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해요. 작가의 생각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문장은 아마도 다음의 것이 아닐까 유추해봅니다.

 


민주공화정치체제의 바른 모습으로서 군사는 정치에 종속되어야만 한다. 그 반대여서는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길포드는 정부 명령에 따르고 있지만, 사실 만성적으로 불쾌감을 느끼는 날들이었다. 특히 병사에게 생명의 위기를 강제하는 입장에 있는 놈들이, 시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에 지나지 않는 권력을 자신의 사유물로 착각하고 일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데에 광분하는 모습에는 진절머리가 났다.   -p268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집어든 책이기에 저로서는 월척을 건진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준 작품이에요. 저처럼 한 권으로 끝난 것에 일본독자들도 아쉬움을 느꼈는지 2005년에는 후배작가들에 의해 [일곱 도시 이야기 Shared Worlds] 가 출간되었다는데, 다나카 요시키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저에게는 큰 의미가 없으므로 패스. 다만 [은하영웅전설] 도 이런 문장과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한가득 등장한다면 꼭 다시 읽어보고 싶습니다. 한정개정판은 세트로 판매할 듯 하던데, 지름신을 모셔야 할지 어째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 큰 일이 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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