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걷고 싶은 길 1 : 홋카이도.혼슈 - 도보여행가 김남희가 반한 일본의 걷고 싶은 길 1
김남희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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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씩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나에게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무슨 일이든 3년째는 되어야 발동이 걸리는 나로서는 2년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아직 모른다'는 마음도 있기는 하지만,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가끔 버겁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무슨 일이든 사람을 상대하는 어려움에 크고 작음은 없겠지만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아이들의 마음에 한결같이 동조해주기란 쉽지 않다.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 그 또한 교만함의 증거가 아닐까. 게다가 무엇이든 오랜 시간이 지나야 정을 들이는 내 성격 탓에 섣불리 '난 이 일이 너무 좋아, 너무 재밌어' 라는 말을 입밖에 내는 것이 어렵기만 하다. 정말 내가 이 일을 좋아하는 게 맞는지, 다른 선택은 없었는지 하는 생각에 가끔은 '해보고 싶은 다른 일 베스트'를 꼽아보기도 하는데 그 중 1위는 어쩔 수 없이 '여행하고 책 읽는 일'이었다. 여행하고 책 읽고 감상을 남기는 것으로 평생을 채울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의 걷고 싶은 길]은 그 어느 나라보다 가깝지만 먼, 나에게는 친근함과 아련함으로 다가오는 일본의 풍경들을 그려낸 책이다. 2003년 처음 길 위에 서서 지난 2년 동안 일본을 아홉 번 드나들었다는 저자 김남희.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일본의 곳곳을 돌아다닌 시간을 합하면 총 6개월에 이른다고 하니 부러울 따름이다. 잘 알려진 곳보다는 덜 알려진 곳, 도시보다는 자연과 전통이 살아 숨쉬는 곳을 소개하고 싶었다는 그녀의 바람에 알맞게 이 책은 일본의 고즈넉함과 매력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홋카이도와 혼슈로 채워진 1권, 규슈와 시코쿠로 채워진 2권. 우리나라처럼 계절에 따라 옷을 바꿔입는 일본의 풍경 중에서 내가 가장 집중한 곳은 역시 교토와 나라였다. 

오사카와 나라, 교토는 예전부터 꼭 가고 싶던 곳이었다. 관광의 개념보다는 내 마음 내려놓을만한 곳이라는 생각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더운 여름 굳이 가겠다고 고집을 부린 곳. 그 장소들을 이 책에서 발견하니 다시 반가움과 설레임으로 마음이 둥실 떠오르는 것 같다. 저자가 밟았던 그 길 위에서 나도 한껏 일본의 고풍스러운 매력에 취해보고 싶다. 

여행서하면 사진을 빼놓을 수 없는데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은 단연 압권으로 과연 실제로 보는 것이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을까하는 의심을 들게 할 정도다. 마음을 여유롭게 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전통의 매력이 뿜어져나오는 듯한 사진들. 오래 들여다보고 있자면 사진 속으로 내 모든 것이 빨려들어가는 듯한 착각이 든다. 이런 마음들을 근세의 마쓰오 바쇼는 '와비'와 '사비'로 표현했던 것일까. 이 책에는 사진 외의 또 다른 매력이 숨어있는데 바로 각 챕터 앞장에 소개되어 있는 '하이쿠'다. 마쓰오 바쇼와 요사 부손, 고바야시 잇사 등 당대 하이쿠 대가들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제 내일 모레, 26일이면 나는 일본 오사카로 떠난다. 5년 만의 일본여행.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나홀로 여행이 되겠다. 처음 여행 계획을 세울 때만 해도 두근거림과 설레임 외의 다른 감정은 존재하지 않았었는데, 막상 출발날짜가 다가오니 그 감정 사이를 비집고 두려움이 불쑥 고개를 내민다. 용감해져야해, 자유로워져야지, 라는 생각으로 계획한 여행. 꼭 연수를 떠났던 2003년의 봄처럼 내 마음이 자꾸 뒷걸음치려는 것을 이 책이 꽉 잡아주었다. 어떤 풍경을 마주하게 될까.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언젠가 이 책에 소개된 멋진 풍경들을 전부 만나보고 싶다는 소박한(?) 욕심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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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헨지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9-4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9
버나드 콘웰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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캬~마치 장대한 스케일의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난 느낌입니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저도 고대에 흥미가 많은 사람 중 한 명입니다. 특히 스톤헨지는 세계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까. 세상에는 워낙 불가사의하고 신기한 것들이 많아 그 '7대'의 기준도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바뀌는 모양이지만, 제가 알고 있는 7대 불가사의에는 이 스톤헨지가 포함되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영국의 월트셔주 솔즈베리평원에 존재하고 있는 이 스톤헨지는 고대의 거석기념물로 친절한 네이버에 따르면 '지름 114m의 도랑과 도랑 안쪽에 만들어진 제방에 둘러싸여 2중의 고리 모양으로 세워진 82개의 입석()의 뽑힌 자리가 보인다. 중심부에는 2중으로 환상열석과 말발굽 모양의 열석이 둘러쳐 있다. 바깥쪽의 환상열석은 지름이 30m인데 30개의 열석이 늘어서 있고, 그 위에 순석()을 난간처럼 걸쳐 놓았으며 지름 23m의 안쪽 열석에는 순석은 없다. 다시 안쪽에는 두 개의 입석 위에 횡석()을 놓은 5쌍의 삼석탑이 중앙의 제단석()으로 불리는 네모난 돌을 에워싸듯 놓여 있다. 이 석조구축물의 주축이라고 할 동북부에는 바깔 도랑이 잘리어 4각형의 광장이 부설되었고, 그 중간에 힐스톤이라고 불리는 1개의 돌이 있다'라고 하는군요. 잘 이해가 안 되시죠? 네, 저도 그렇습니다  글이 너무 어렵다 하신 분들은 아래의 그림을 참조하시면 되겠습니다.  



거대한 돌들이 하늘에 닿을 듯 우뚝 서 있는 사진을 볼 때마다 누가 어떻게 무슨 이유로 이런 건축물을 만들어냈을 지 궁금하곤 했습니다. 그저 고대 건물이니 신과 자연과 연관이 있지는 않을까 막연히 추측할 따름이었죠. 그 스톤헨지에 얽힌 비밀과 역사가 대영제국훈장까지 받은 작가 버나드 콘웰의 손에 의해 되살아났습니다. 

이야기는, 4천년 전 한 이방인이 라사린 부족의 땅에 들어오면서 시작됩니다. 자신의 부족에서 금을 훔쳐 달아나 라사린 부족의 땅에 발을 들인 이방인은 부족의 족장인 헨갈의 장자 렌가에 의해 죽음을 맞죠. 태양신 슬라올을 숭배하는 부족답게 신을 위해 신전을 짓기로 결정한 헨갈. 그는 전쟁보다는 평화와 부족의 안전에 더 주의를 기울이는 자애로운 사람이지만, 장자인 렌가는 그런 아버지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결국 그의 자리를 빼앗기에 이릅니다. 자신의 자리를 확고히 하기 위해 배다른 동생인 사반을 죽이려 하지만 마법사인 둘째 카마반의 충고에 의해 세 형제는 굴절된 형태로 신전을 짓는 일에 매달렸습니다. 누군가는 자신을 위해, 또 누군가는 온전한 신을 위해 시작된 스톤헨지의 건설. 그것이 현재까지 우리가 사는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저 웅장한 거석기념물입니다. 

고대부족을 소재로 한 작품답게 환상적인 요소들이 많이 등장하는 책입니다. 마법사, 제사장, 부족들끼리의 전쟁과 연인에게 닥치는 수난, 모험, 고난을 이겨내고 얻게 되는 영광. 전 이런 요소들이 현실세계에 등장하는 것보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면 더 흥분되는 것 같아요. 눈 앞에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닌, 먼 옛날에도 인간의 삶과 사랑이 계속되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면 정말 내 존재는 우주의 먼지에 다름 아니구나 라는 생각에 괜시리 가슴이 먹먹해지고 제 존재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고 할까요. 

버나드 콘웰은 그런 저의 성향에 잘 맞게 4천년 전의 모습을 완벽 재현해주었습니다. 방대한 분량에 짧지 않은 세월과 스톤헨지의 건설을 그리고 있으면서도, 허술하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꼼꼼한 묘사와 굉장한 상상력을 앞세워 책을 읽는 내내 저를 꼭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으니까요. 무엇보다 스톤헨지의 건설과정, 돌을 어떻게 깎고 다듬었으며, 어떻게 인간의 키보다 높이 돌을 세웠는지에 대한 묘사가 멋집니다. 공간지각능력이 부족한 저에게는 두 번 세 번 되풀이해서 읽을 정도로 좀 어려운 장면이긴 했지만요. 

스톤헨지의 뒤를 이어 다른 불가사의에 관한 상상력도 발휘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또 시원찮은 작품들이 되려나요? 으훗. 버나드 콘웰의 [윈터킹]은 재미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이 [스톤헨지] 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로 만들어져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정말 재미있는 책이었어요. 오랜만에 완전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났더니 기분이 좋습니다. 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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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몽
야쿠마루 가쿠 지음, 양수현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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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몽 : 사실과 다른 꿈.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 일을 꿈으로 꾸는 것. 

이 책을 읽기 전 '통합실조증(정신분열증)'을 가진 범죄자에 대한 저의 입장은 확고했었습니다. 아무리 정신적으로 결함을 가지고 있다 해도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한다는 것. 자신에게만 관계된 일이라면 상관없지만,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고 한 가정을 파멸로 몰아간 책임은 져야하지 않을까. 만약 통합실조증을 이유로 제대로 된 죗값을 치르지 않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생활한다면 피해자 가족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억울할까. 또한 인간의 마음을 인간이 어디까지 들여다보고 어떤 기준으로 통합실조증이라 판단할 수 있는 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다른 입장은 생각할 것도 없었죠. 범죄는 범죄, 떠나버린 사람은 돌아올 수 없고 모든 고통과 슬픔은 남아있는 사람들의 몫이 될 것이니까요. 

사와코는 하얀 눈이 예쁘게 쌓인 어느 겨울, 사랑하는 딸 루미를 잃었습니다. 통합실조증을 앓고 있던 편의점 아르바이트 생 후지사키에게. 루미와 함께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사와코는 등에 상처를 입고 딸이 죽어가는 모습을 봐야 했으며 그 일로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남편 미카미와 이혼하기에 이르죠. 미카미 또한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립니다. 사건이 일어난 후 4년. 길에서 우연히 후지사키와 마주친 사와코. 루미를 죽인 범인이 아무렇지 않게 길을 걷고 있는 모습은 충격 그 자체. 또 다시 소용돌이치는 사와코의 마음. 처벌받지 않은 가해자 앞에서 사와코와 미카미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일본드라마 <브레인>을 떠올렸습니다. 사고로 머리를 다친 한 남자가 뇌의 한 부분이 활성화되어 그 능력을 활용해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인데요, 에피소드 중 하나가 이 책과 설정이 아주 비슷하거든요. 그 드라마에서는 범인이 다중인격자인 척 가장하고 자신을 납치한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내용이 펼쳐졌는데, 결국 주인공이 그 범인이 다중인격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내버린 겁니다. 결국 그 범인은 체포당하고 형을 살게 되죠. 그 드라마를 보면서도 그랬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형법이라는 것이 참 허술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네요. 책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사람이 사람을 죽일 때의 상태 자체가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는 것인데, 어떤 기준으로 '완전한' 심신상실자를 정의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심신상실자라고 해도 엄격하게 처분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세상에는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생각하려해도 간교하고 잔혹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지만, 심신상실자로 등장한 후지사키에게 연민과 동정의 마음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의 진심과는 다르게 세 명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아홉 명에게 부상을 입혔다는 사실을, 그는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현실에서 숨쉬고 있는 또 다른 후지사키들은 어떤 생각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건지 생각할수록 안타깝고 답답합니다. 

중간과정이 조금 늘어진다 싶지만 속도감이 굉장한 작품이에요. 사회파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저에게 이것저것 생각할 거리도 던져주었고, 무엇보다 반전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도 아주 굉장하다 싶지는 않지만 꽤 괜찮았습니다. 형법의 헛점을 찌르는 반전이라고 할까나요. 이 작가, 야쿠마루 가쿠의 [천사의 나이프]는 [허몽]을 능가하는 수작이라고 하던데 책장에서 꺼내 펼쳐줘야 할 것 같습니다. 무더운 여름밤 한 순간 더위를 잊기에 알맞은, 마지막을 향해 치달아갈수록 '허몽'이라는 작품의 의미가 가슴 깊이 들어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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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2 : 세계와 나
MBC 'W' 제작팀 지음 / 삼성출판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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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즐거움도 크지만, 종종 나는 어떤 압박을 느끼기도 했다. 재미와 즐거움을 위한 독서를 결코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꼭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어떤 것을 얻기 위해서만 책을 읽어야 한다는 의견에 동조하지 못하는 입장이었으니까. 하지만 자꾸만 한 쪽으로 기울어지는 듯한 독서취향이 고민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 느낌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우물 안 개구리' 혹은 '책만 읽는 바보' 정도일까.  뭔가가 늘 정체되어 있는 듯한 느낌. 재미있게 책은 읽었지만 예상치 못하게 밀려오는 헛헛함.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어 답답한 일상에. 

[세계와 나 W2]가 왔다. 11시면 누워 잠을 청하는 내가 MBC에서 12시 다 되는 시각에 방송되는 <W>를 보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관심있는 프로그램이기는 했지만 챙겨보지는 않았고, 그저 가끔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흥미있는 주제가 방송되면 보곤 했던 것이 전부다. 그런 <W>가 어느 새 방송 5년을 맞이했단다. 그 동안 [W 1] 이 출간되었고, 이제 두 번째 책으로 나와 첫만남을 갖게 된 <W>.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가슴이 확 트이는 기분이었다. 나 혼자 책을 읽고 가슴에 담아두는 것이 아니라 이 책 한 권으로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는 생각. 비록 이 책에 담긴 사연들이 모두 유쾌한 것은 아니었지만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삶을 이어가고 있구나, 하는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모두 19가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프랑스의 자전거 혁명인 <벨리브 프로젝트> 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재개발이라는 명목하에 국민의 집을 부수는 중국, 뭄바이, 캄보디아의 풍경과 수몰 위기에 놓인 몰디브, 경제 위기, 필리핀의 전통 설탕 마스코바도, 엘살바도르의 소년 마누엘과 종교갈등, 언론전쟁, 미국의 홈보이와 고유가 시대, 식량위기, 질병, 의료, 인권 등을 둘러싸고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모두 인상깊었지만 그 중에서도 <엘살바도르 맹그로브 숲의 마누엘>을 소개하고 싶다. 중앙아메리카에서 가장 작은 나라인 엘살바도르의 어촌 이슬라데멘데스는 엘살바도르에서 가장 유명한 쿠릴 조개의 생산지다. 그 곳에서 마누엘을 비롯한 어린이들은 온갖 위험을 감수하며 조개를 캐고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그런 마누엘의 모습을 본 시청자들이 아이를 위해 후원회를 결성했고, 마누엘은 학교에 다니게 됐다. 처음에는 3명의 시청자로 시작된 후원회는 그동안 11명으로 늘어났고 마누엘 다음으로 라파엘 킨테로가 두 번째 후원 아동으로 결정되었다. 사랑의 힘이 이룩한 작은 기적인 것이다. 그 외에도 전직 갱스터들이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빵과 쿠키를 굽는 모습을 소개한 미국 홈보이의 모습과 게릴라에게 납치된 아들을 10년 동안이나 기다리며 그의 석방을 요구하는 콜롬비아의 아버지 몬카요의 이야기도 감동적이다. 

꼭 경험하지 않아도 이렇게 책을 통해 세계로 눈을 돌릴 수 있다는 사실은, 무척 감동적이다. 너와 내가 틀리지 않고 그저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기회. 어디에선가 누군가도 때로는 용감하고 당당하게, 때로는 비극적이고 안타깝더라도 생명의 끈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제작진이 소망한대로 '세계와 나' 그리고 '세계와 우리'의 관계를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기쁘다. 이 세상을 바라보는 심도있는 시각 <W>, 멈추지 않고 그 관찰이 계속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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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러스트
필립 마이어 지음, 최용준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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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어 단어를 검색했다. [아메리칸 러스트], 모자란 영어 실력으로 최대한 자연스럽게 번역해보자면 '미국의 녹'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아아, 그래서 표지에 녹슨 못 같은 그림이 등장해있는 거구나, 하는 뒤이은 깨달음. 책의 내용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며 어쩐지 더 깊게 작품이 다가오는 느낌이다. '아름답고 쓸쓸한, 궁극적으로 구원을 말하는 역작, [로드] 이후 미국에서 발표된 최고의 소설' 이라는 문구를 100% 믿은 것은 아니었지만, 코맥 매카시의 [로드] 는 꽤 인상깊게 읽었기 때문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지금 시대에 '구원'이란 과연 무엇일까. '구원' 은 우리 삶에 있어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지능이 167에 달하는 아이작 잉글리시는 지금 막 아버지의 돈을 훔쳐 캘리포니아로 떠나려는 중이었다. 사고로 거동이 자유롭지 못한 아버지, 어머니의 자살, 누나 리에게 버림받았다는 분노,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버지를 돌봤다는 자기만족 등 모든 사건과 감정을 뒤로 하고 떠난 길이었다. 그 와중에 그는 친구 빌리 포를 생각한다. 자신이 어머니처럼 죽음의 늪 속에 빠지려고 할 때 유일하게 자신을 구원해 준 단 한 명의 친구. 그 친구에게만은 자신이 떠난다는 것을 알리고, 그리고 가능하면 같이 떠나고 싶었다. 트레일러에서 어머니 그레이스와 사는 포를 찾아간 아이작.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걷던 그들은 비가 오는 바람에 버려진 창고로 들어가고, 그 곳에서 예상치 못한 운명과 마주하게 된다. 성폭행을 당할 위기에 처한 포를 위해 부랑자 중 한 명을 살해한 아이작. 이 후 아이작과 포, 그리고 그들과 얽힌 그레이스, 리, 경찰서장 버드 해리스와 아이작과 리의 아버지 헨리의 시선을 통해 그들이 겪는 시간들이 공개된다. 

아이작과 포가 살고 있는 마을은 쇠락한 곳이었다. 탄광과 제강소, 제강소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소규모 산업들로 한 때 번창했던 밸리는 미국 철생산의 심장이나 다름없었지만 제강소가 문을 닫자 밸리는 붕괴하기 시작했고,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으며 마을은 빛을 잃어간다. 가난과 젊음을 잃고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인 사람들. 마을과 사람들은 이제 예전의 영화가 빛바랜, 미국 사회에서는 '녹'이나 다름없는 존재로 전락한 것이다. 그 와중에 벌어진 살인사건은 여러 사람의 시간과 운명을 뒤흔들어 놓으며 수많은 선택지를 들이민다. 

옮긴이의 글에 나온 것처럼 빌리 포와 아이작은 살인사건이 아니었어도 자기 자신의 문제 때문에 꿈을 이루지 못했을 가능성이 큰 사람들이다. 한 때는 촉망받는 풋볼 선수였던 빌리는 대학에서 장학금과 함께 입학 제의를 받지만 트레일러에서 어머니와 나태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아이작은 훌륭한 재능을 지니고 있지만 어머니의 자살과 아버지에게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했던 괴로움을 보상받고자 하는 마음에 능력을 꽃피우지 못하는 인물이다. 둘 다 모두 현실을 외면하고 더 나은 삶을 찾아보려는 의지 없이 숨쉬는 존재들일 뿐이었지만, 살인사건으로 인해 미래를 생각하고, 자신을 돌아보고, 주위 사람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포와 누나 리의 관계에 충격을 받고 홀로 길을 떠난 아이작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꿈 속에서 벌어진 일이라 생각하며 현실에서 도피하려 했지만 결국 자신의 죄의 무게를 깨닫고 마을로 돌아온다. 어떤 의미에서는 아이작과 빌리 포의 성장소설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 하지만 제목에서 풍기는 어둡고 낡은 기운이 가시지 않는 것은 인간인 이상 저지를 수 있는 '잘못된 선택' 들 때문일 것이다. 매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인 인물들. 그 길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운명을 만들어간다. 그 운명을 '구원'으로 바라보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이 삶을 살아가야 할까. 

이 작품이 작가 필립 마이어의 데뷔작이라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전개가 약간 늘어지는 감이 있어 아쉬웠지만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과 내면묘사, 삶에 대한 통찰이 알맞게 버무려진 작품이다. 데니스 루헤인, 코맥 매카시, 헤밍웨이의 경지에까지 비견되는 이 작가의 앞으로의 작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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