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 미닛 룰 모중석 스릴러 클럽 22
로버트 크레이스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투 미닛 룰-돈을 챙겼든 챙기지 않았든, 프로라면 무조건 2분 안에 도망가야 한다는 은행털이범들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그 시간을 넘기면 경찰에 체포될 확률이 높아진다고 하는데, 사건은 이 투 미닛 룰을 어긴 은행털이범 두 명으로부터 비롯됩니다. 규칙을 어기고 2분이 넘게 은행 안에 머물러 있던 이들은 결국 경찰에 의해 사살되고 말아요. 수많은 초록색 지폐들 한 장 한 장이 꿈이고 소망이었다-라고 추억하면서요. 그들이 훔쳐서 숨겨놓은 돈은 무려 1600만달러. 우리 돈으로 계산하면, 음, 아무튼 어마어마한 액수입니다. 

그 사건이 있은 뒤 86일 뒤 맥스 홀먼이라는 은행털이범이 출소합니다. 10년의 복역기간을 마치고 이제 보호관찰을 받는 그의 앞에, 그 오랜 시간 그를 지탱해주었던 단 하나의 존재 아들 리치가 살해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아들이 살해당한 것만 해도 억울한데 그가 86일 전에 일어났던 은행강도 사건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에 홀먼은 직접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합니다. 처음부터 뭘 어떻게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을 거에요. 아들은 좋은 경찰이었다고, 자신과는 다른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 훌륭하게 성장해 결혼도 한 멋진 사람이었다고 추억하고 싶었지만 현실이 홀먼을 가만 두지 않았거든요. 자신의 논리와 맞지 않는 듯한 경찰 수사, 범인으로 지목된 용의자의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 자꾸만 그의 앞을 막아서는 경찰권력들. 이제 그는 10년 전 자신을 감옥으로 보낸, 이제는 은퇴한 FBI 요원 폴라드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사건에 뛰어듭니다. 그가 말한대로 누가 자신의 아들을 죽였는데 그냥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요. 

우리의 주인공 맥스 홀먼은 비록 은행털이범이었고 10년 동안 복역한 죄수였지만 현실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친절하고(?) 다정한(?) 범인입니다. 개과천선의 훌륭한 예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가 10년 전 폴라드 요원에게 체포당한 경위만 봐도 알 수 있죠. 그 일은 홀먼의 성격을 규정지어주는 중요한 사건이므로 궁금하시다면 직접 확인해 보세요, 히. 

전 다른 어떤 이유보다 그가 사건에 뛰어든 동기가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정의를 실천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돈에 관련된 것도 아니며 오직 마음 속 하나의 등불이었던 아들을 위해서였잖아요. 아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고 싶어하고, 만약 아들이 나쁜 경찰이었다고 해도 그건 모두 자신의 유전자 탓이라 여기며 흐느끼는 홀먼에게서 연민이 느껴집니다. 사실 전 스릴러물에서 보여지는 주인공들의 러브라인에 대해서는 냉소적인 입장을 취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살짝 이해가 간다고 할까요. 홀먼같은 남자에게라면 아마 많은 여성분들이 모성애와 함께 감싸주고 싶다는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싶어요. 헉, 근데 이거 위험한 건가요! 

스릴러물답게 사건은 탄탄하면서도 조마조마하게 전개됩니다. 은행강도 사건이 등장하니 뭔가 돈과 관련되었다는 냄새는 나지만, 우리는 그것이 정확하게 무엇과 관련된 냄새인지는 확신할 수 없죠. 경찰이 네 명이나 살해되고 그들이 비밀리에 조사하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 밝혀지면서는 머릿속에서 온갖 생각들이 돌아다니지만 결국 전 사건의 진실에는 도달하지 못했답니다. 괜히 이 사람 저 사람 의심하다가 빗나갔어요. 하지만 그것이 또, 추리소설이나 스릴러물을 읽는 묘미 아니겠습니까, 풋. 그러니 여러분도 흠뻑 빠져보세요. 

주인공들의 사건해결에는 안도감을 느꼈지만 전 한편으로는 씁쓸한 기분도 들었어요. 결국 물질적인 풍요로움 앞에서 인간은 과연 나약하기만 한 존재인 걸까요? 전,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남의 것을 욕심내면 제 인생에서 그보다 더 큰 것이 빠져나갈 것이라는, 근거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그것이 진리라고 여전히 생각한답니다. 그래서 전 심부름을 제외하고 로또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로또에 당첨된다면 평생의 운이 모두 사라져버릴 것 같다는, 그런 기분이 들어서요. 운은 야곰야곰, 삶이 힘들 때 가끔씩 찾아와주는 것이 더 달콤하지 않겠어요? 부디 순간의 욕심 앞에 무릎 꿇지 않을 수 있는 우리들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살짝 해봅니다. 

감정에 지나치게 좌우되지 않는, 속도감 있으면서도 꼼꼼한 구성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단, 할런 코벤의 [결백] 같은 반전의 반전보다 모든 단서를 쭉 늘어놓고 마지막에 가서야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이니 그 점은 참고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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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망가 섬의 세사람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9
나가시마 유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우리는 에로망가 섬으로 에로만화를 보러 간다! -라는 다소 엉뚱한 설정으로 뭉친 세 사람, 사토, 구보타, 히오키. 빅히트한 H사의 게임 <도태랑전철>에 등장하는 에로망가 섬은 일본어로 에로만화를 뜻한다고 해서 유명해졌다. 실제로 바누아투공화국에 자리잡은 이 에로망가 섬에 가서 에로만화를 읽는 특집기사를 선보이기 위해 떠난 세 사람. 약간 오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히오키를 안내인으로 그나마 멀쩡한 정신의 사토와 애니메이션 오타쿠인 구보타의 모습은, 여자인 내 입장에서 다소 당황스럽기 짝이 없다. 크흑. 

전작 [유코의 지름길]로 제 1회 오에 겐자부로 상을 수상한 나가시마 유. 유명 문학상을 잇달아 수상했다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유코의 지름길] 은 내게 실망스러웠다. 일본의 연작단편집을 좋아하고 즐겨읽는 나이지만 그의 작품은 너무나 한가했다고 할까. 평범한 일상의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아무런 감흥없이 그저 나열되어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그에 비해 [에로망가섬의 세사람] 은 한층 나은 수준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한가로운 느낌과 주인공들의 엉뚱한 면은 변하지 않았지만 표제작인 <에로망가섬의 세사람> 에서는 전에 볼 수 없었던 감정의 굴곡이나 따스한 동화같은 느낌을 살려 호기심을 자아냈다. 

에로망가섬으로 떠난 세 사람이지만 애니메이션 오타쿠에 수선스러워 보이는 구보타를 제외한 두 명은 각자의 고민을 마음 속에 담아두고 있다. 히오키의 비밀은 후에 드러나지만 사토의 고민은 연애와 일상이다. 비행기를 세 번이나 갈아타고 돌아간 일본의 생활이 자신에게 얼마나 가치가 있을지,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자신은 얼마나 가치있는 인간인지 생각한다. 출장의 탈을 쓴 휴가지에서도 돌아가서의 일을 생각한다, 는 설정은 현실감이 느껴져 좋았다.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일 테니까. 에로망가섬에서 자신을 환대해준 존 존과 그의 다섯 딸들과의 생활이 그의 마음 속에 들어앉아 부드러운 버터처럼 그 동안의 갑갑함을 녹여버렸던 것인지 의외로 사토는 편안한 마음이 되어버렸다. 그러고보면 속마음의 묘사가 부족하고 오타쿠의 성향이 있긴 하지만 살아있는 젤리처럼 보이는 구보타야말로 에로망가섬과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이 아닌가 싶다. 있는 그대로의 구보타는 고민할 것이 그다지 없는 인물이었을지도. 

히오키의 비밀은 마지막 작품인 <청색 LED>에서 드러난다. 그가 에로망가섬으로 떠날 수 밖에 없었던 동기, 숙소에서 잠시 자취를 감추었던 이유, 마음 속에 담아두었던 짐을 모두 벗어버리고 담담하게 현실과 마주할 수 있게 된 과정이 겉모습은 무뚝뚝하지만 속마음은 따뜻한 사람을 닮은 문체로 그려져 있다. 그러고 보면 <에로망가섬의 세사람>과 <청색 LED>는 못해도 보통은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SF와 관능소설로 분류된 중간 작품들의 분위기 자체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여신의 돌>과 <알바트로스의 밤>은 메세지가 부족했고 <새장, 앰플, 구토>는 그다지 내가 선호하는 소재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 아쉽긴 하다. 

확실히 <유코의 지름길> 보다는 나은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아직 손에서 놓기에는 아까운 작가인 듯 하다.  두 번째 접한 작품에서 요렇게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니 조금 더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개인적으로 다음에는 단편집이나 연작단편집이 아닌 장편소설로 접해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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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거 게임 헝거 게임 시리즈 1
수잔 콜린스 지음, 이원열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북미 대륙이 잿더미가 된 뒤에 태어난 나라, 판엠. 빛나는 캐피톨이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열세 개 구역이 그 주위를 둘러싼 나라 판엠에서 한 때 반란이 일어났다. 열두 개 구역은 캐피톨에 패했고, 열세 번째 구역은 완전히 그 자취를 감춰버린다. 살아남은 열두 개 구역에 내려진 잔인한 법 조항. 매년 소년 소녀 한 명씩(조공인)을 각 구역에서 선발하여 서로 죽을 때까지 싸우게 만드는 것. 싸움은 오직 한 명이 살아남을 때까지 계속되고, 승자는 둘이 될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랑하는 동생 대신 자원한 캣니스의 외롭고 고달픈 싸움이 시작된다.


 
똑똑히 봐둬. 우리가 너희 아이들을 데려다 희생시켜도, 너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하면 너희들을 마지막 한 명까지 박살내버릴거야. 13번 구역에서 했던 것처럼 말이야.

 

십대 소년소녀 24명이 마지막 한 명이 살아남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는 설정은 일본영화 <배틀로얄>을 떠올리게 한다. 새로운 질서를 위해 무작위로 선정된 한 반에서 최후의 승자를 가려내 국가의 권위를 세우려했던 <배틀로얄>도, 주변 구역들이 더 이상 반란을 꾀하지 못하도록 잔인한 게임을 설정한 이 작품도 잔혹하다는 측면에서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 듯 하다. 다만 영상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주느냐, 상상하게 만드느냐에 따른 차이만 있을 뿐, 두 싸움 모두 경기가 시작된 시점에서 더 이상 게임이 아니라 생존경쟁에 다름 아니다. 

주인공은 12번 구역에서 사는, 아버지를 잃고 실질적으로 가장 노릇을 해 온 열 여섯 소녀 캣니스. 추첨에서 선정된 것은 그녀의 동생 프림이었지만 자신이 살아가는 단 하나의 이유라고 생각한 동생을 위해 죽음의 잔치에 자원한다. 그녀와 함께 선정된 또 다른 조공인 피타 멜라크는 빵집 아들인데 어린시절 절망의 늪에 빠진 캣니스를 희망의 빛으로 이끌어준 마음 속 지원군이다. 어쩌면 그를 죽여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한 캣니스는 당혹스러워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피타는 능글능글하면서도 다정하다. 살아남기 위해 멘토의 조언을 따라 '죽고 못사는 연인' 역할을 연기하기 시작하지만, 담담하고 필사적으로 그녀를 사랑하는 피타 앞에서 캣니스는 늘 혼란스럽기만 하다. 

이 책의 매력은 우선 캐릭터에 있다. 가슴이 터질 듯 두려운 상황 앞에 처해있지만 늘 침착하고 냉정한 모습을 유지하는 캣니스의 모습은 어떻게든 그녀가 살아남을 것이라는 희망과 함께 이대로 간단히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준다. 살기 위해 필사적이지만 도도하고 자존심 강한 그녀의 모습에서 언제 어디서나 당당한 모습으로 있고싶어하는 우리의 바람을 투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와 함께 조공인으로 선출된 피타 또한 멋지기는 마찬가지다. 그의 마음이 진심이라는 것, 빵을 준 소년의 다정함이 시종일관 빛을 발하며 여성 독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할 것은 확실하다. 나도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인가는 즐거움과 안타까움의 '캬캬'를 내뱉었으니까. 작가의 의도대로라면 삼각관계를 형성할 게일의 역할은 여기에서 그리 드러나지 않았으나 초반 보여준 그의 남성미와 다하지 못한 말들은 속편을 기다리게 만들기에 충분할 듯 하며 그 외 등장인물들의 개성도 뚜렷하다. 

다음은 당연히 '이야기'다. 캐릭터가 아무리 멋진들 이야기의 구조가 엉성하거나 독자를 끌어당기지 못하면 그 작품은 재미가 없어지는데 이 작품은 마치 한 계단 한 계단 밟아나가는 듯한 전개구조를 보인다. 게다가 잔인한 소재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느낄 수 있는 인간의 모든 감정이 망라되어 있다. 동생을 위해 대신 자원한 캣니스를 볼 때는 연민과 안타까움이, 다른 조공인들과 경기를 치루게 될 때는 공포와 불안, 초조함이, 그녀를 사랑하는 피타를 볼 때면 설레임이, 진심인 피타와는 달리 살아남기 위해 연인 역할을 완수해내는 캣니스를 볼 때는 화가 나기도 한다. 작품의 전반을 아우르는 감정은 역시 긴장감인데, 앞에서 나열한 감정들과 함께 긴장감은 어디에서나 살아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갑자기 벌어질지 모르는 불안과 긴장이 사람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며 책에서 손을 뗄 수 없게 만드는데, 최고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 한 가지 덧붙이자면 문체가 독특하다. 늘 현재형으로 구사되어 있는 문장은 그들의 헝거게임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는 듯한 현실성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나레이션의 느낌이 진하게 묻어나와 생생함을 전달한다. 마치 우리 자신이 게임에 동참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하는 것이다. 어쩌면 건조하고 까끌함이 느껴지는 문체 속에서 캣니스의 비애감이 진하게 묻어나온다. 

3부작 중 1편에 해당하는 [헝거게임] 이 이제 막 끝났지만, 궁금한 것은 더욱 많아졌다. 앞으로 어떤 인물이 나타나고 등장인물들의 감정의 곡선은 어떤 변화를 보여줄지 기대가 크다. 영화로도 제작 중이라는데 책만큼 재미있는 작품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다리는 건 즐거운 일이지만 힘들기도 하므로 아주 오랜 시간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내일 당장 나와주면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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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터 킹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9-1 아서 왕 연대기 1
버나드 콘웰 지음, 조영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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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잘 알려져있듯, 역사적 사실과 인물은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호색한에 난봉꾼이라고만 믿었던 백제 의자왕도 정치적 세력을 굳건히 하기 위해 복잡한 혼인관게를 맺었고, 3천궁녀의 안타까운 운명 또한 그의 책임만은 아닐지도 모르는 것처럼. 그런 내게 아서, 카멜롯, 귀니비어, 멀린은 그저 매력적인 환상의 인물로만 남아있다. 내가 그들에게 매력을 느낀다는 의미가 아니라, 지금까지 들어온 그들의 이름 앞에 항상 '매력', '빛'이라는 단어가 함께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운명적인 날, 전설의 검 엑스칼리버를 뽑아 든 아서가 왕이 되고 아름다운 아내 귀니비어와 함께 했지만 결국 그녀가 아서를 배반하고 란슬롯과 도망친다고만 알았던 아서왕 이야기에는, 그러나 내가 모르는 뭔가가 더 숨겨져 있었나 보다. 요렇게 그들을 배경으로 그들보다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야기가 탄생한 걸 보니.
 
어쩌면 이 책은 촛불이 일렁이는 밀실이나 고성에서 읽어야 제 맛이 날 것 같은 작품이다. 아서를 섬겼던 베르델이 그의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냄새가 풍긴다. 어쩐지 불안불안하면서도 고풍스러운 옛날 냄새가 나고, 끊임없이 옛날을 추억하며 과거를 그리워하는 분위기가 우선 마음에 들었다. 나는 추억과 그리움에 약한 사람이므로. 과거에는 아서 옆에서 용맹하게 군대를 이끌고 다른 신을 믿었던 베르델이 지금은 어째서 수사가 되어 아서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모습 자체가 연민을 불러일으킨다고 할까.
 
이렇게만 말하면 이 책이 대단히 감성적인 작품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작품은 [반지의 제왕] 만큼이나 스케일이 크고 심장을 박동시키는 힘을 가진 책이다. [반지의 제왕]에서 등장했던 마법과 요정 등은 한 번도 나오지 않지만. (주문이라면 등장한다) 이 책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권력을 가지려는 사람, 또 그 권력을 지키려는 사람, 사랑에 빠져 평화를 깨트려버린 사람, 섬기는 주군을 믿고 목숨바쳐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 역동감있고 생생하며 그 어떤 작품보다 살아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그들의 함성이 지금도 내 귓가에 울리는 듯 하다. 그 점이 [반지의 제왕]과 비교했을 때 더 큰 재미를 맛보게 해주었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한 가지 재미있었던 점은 등장인물들의 성격이다. 멋지고 굳건한 이미지로 자리매김해왔던 아서는 사랑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권력의 소용돌이에서 늘 고민한다. 위대한 아서왕의 모습이 아니라 외롭고 쓸쓸한 왕의 이미지다. 오히려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르벨의 위용이 좀 더 빛나는 듯한 느낌마저 드는데, 아서왕 연대기의 1편이므로 앞으로 그가 어떻게 변하고 성장해갈지 궁금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나약한 모습을 잃지 않는 것이 조금은 더 인간적으로 보여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그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멀린이었는데, 선하고 신비한 이미지였던 그는 여기서 괴팍한 노인네로 그려져 있다. (적어도 내 눈에는) 어떤 모습이 진짜일지 알 수 없으므로 그저 즐길 뿐이다.
 
이야기의 주축을 이루는 것은 '전투'다. 그 외에 다른 것은 없다. 한 전투가 끝나면 또 다른 전투가 시작되고 갈등은 깊어지며 싸움은 계속된다. 그러나 각각의 전투는 모두 다른 의미를 가진 싸움이며 때문에 전투 장면이 이어진다고 해서 지루할 틈은 없다. 오히려 의리 있고 용기로 가득찬 그들의 모습에 가슴이 두근두근해질지도. 등장인물이 엄청나서 약간 헷갈리고 살짝 두꺼워 읽는 데 시간이 좀 걸린다는 것만 빼면 촘촘한 구성과 방대한 이야기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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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이별>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좋은 이별 - 김형경 애도 심리 에세이
김형경 지음 / 푸른숲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좋은 인연, 좋은 만남은 있겠지만  세상에 좋은 이별이란 것이 있을까. '좋은'이라는 단어와 '이별'이라는 단어가 너무나 어울리지 않아서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겠다. 확실히 이별 앞에서 우리 모습은 그리 보기 좋은 것은 아닐 것이다. 눈물과 불평이 늘고, 마음 속은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처럼 휑하며, 어떤 것에도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그것은 죽음으로 겪게 된 이별이든, 마음이 변해서 겪게 된 이별이든 큰 차이는 없을 듯 하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슬픔을 표현하고 아픔을 토로하며 지금 겪고 있는 이별의 고통 속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이별의 아픔 속에 영원히 파묻히지 않고 그것조차 좋은 기억으로 추억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이 좋은 이별의 정의가 아닐까. 

[사람 풍경]과 [천 개의 공감]이라는 두 권의 심리 에세이를 출간한 작가 김형경이 이번에는 이별과 상실의 아픔을 주제로 그것을 견뎌내는 '애도'에 관해 이야기한다. 사랑을 잃거나 소중한 대상을 상실한 후 그 감정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비롯되는 몸과 마음의 병들의 원인을 규명하고 '애도'를 치료의 핵심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잃어버린 대상을 더 이상 마음으로 붙잡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며 잘 떠나보내는 일은 어쩌면 좋은 인연을 찾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은 모두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애도에 대해 서서히 다가가는 단계, 2장은 소중한 대상을 잃은 후 겪게 되는 마음의 변화 상태, 3장은 잘 떠나보내지 못한 감정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사례, 4장은 마음의 병의 치유와 변화를 이야기한다. 국내 시인들의 시가 각 장의 소제목들로, 수많은 문학작품이 사례로 소개되어 이해를 돕는다. 내 경우에는 읽었던 책보다 읽지 않은 책이 더 많아서 완전히 공감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고 한 번에 다 기억하기에는 약간 어려운 내용이기도 했지만 어쩐지 마음이 다스려지는 듯한 기분에 편안하기도 했다. 

이별 앞에서 내 모습은 어땠었나. 이 책을 대하면서 어쩔 수 없이 떠올리고 만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제목처럼 이 책은 이별에 관한 책이니까. 이별 후에 나는 한동안 참 많이 아팠었다, 마음 뿐만 아니라 몸도. 이별의 말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도망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주할 용기가 부족했다. 마치 발이 허공에 붕 뜬 듯한 기분으로 며칠을 보냈던 것 같다. 

나는, 그렇다. 낯을 가리고 마음 주는 게 힘들어서 그렇지 한 번 마음을 주면 상대에 대한 마음이 아주 오래 간다. 그건 사람이 아닌 물건의 경우에도 그렇다. 중학교 때 쓰던 펜을 지금도 쓰고 있는데 그 펜이 없으면 시험을 보기도 겁이 났었다. 누구든 감정을 거두고 잃어버린 대상에게 집착하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사랑한다면 슬퍼할만큼 슬퍼한 후에는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어야 한다. 진부하게 들리겠지만 사랑도 이별도 상실의 아픔도 결국은 우리를 성장시켜 줄 테니까. 정말로 언젠가는 다 지나갈 일일테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이 책에 나온 과정을 거의 따랐던 것 같다. 이별 앞에서 도망도 쳐봤고, 먹을 것에 심취도 해봤고, 욕도 했다가, 시도때도 없이 울어도 봤다. 어느 날은 걸려온 전화에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며 화를 냈다가도 언제 또 전화가 올지 몰라 어딜 가든 전화기를 손에 쥐고 살았다. 원망도 하다가 그래도 내 잘못인 것 같아 내 탓도 해보고 그래도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다시 화를 냈다. 그러다. 하고 싶은 말을 몽땅 메일에 적었었다. 결국 그 메일은 보내지 못했지만 그렇게 속에 있는 것을 모두 글로 표현한 뒤에야 나는 편안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슬퍼할만큼 슬퍼했고 아플만큼 아팠다. 그러니 이제는 그 기억에서 자유롭다. 좋은 경험이었다고, 그래 그런 일도 있었다고 아프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김형경 작가의 책을 읽다보면, 그것이 소설이든 심리에세이든, '아픔'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정의내릴 수 없는 신뢰가 간다. 이 사람도 지금의 모습으로 있기 위해 노력했겠지, 고통의 시간을 끝낸 후이니 이제야 겨우 이야기 할 수 있겠지 라는 묘한 동질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 사람의 관심은 종국에는 사람. 그 과정에서 좋은 이별을 할 수 있다면 그 때야말로 '참 잘했어요' 도장을 우리 삶에 쾅 찍어도 좋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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