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나라, 인간의 땅 - 고진하의 우파니샤드 기행
고진하 글.사진 / 비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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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오는 길. 무심코 고개를 돌리니 식당의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밥을 먹는 사람들이 보인다. 먹는 것을 꽤 좋아하고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순간도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나지만, 가끔 먹는다는 게 뭘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무언가를 먹는 행위는 살아가는 일과도 연결된다. 먹는다. 산다. 문득문득 아주 작은 일에서조차 '삶'이 느껴진다.

살아가는 데 있어 먹는 일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다. 분노를 다스리고 누군가를 이해하며 눈 앞의 이익을 따지지 않고 좀 더 멀리 내다볼 줄 아는 마음. 마음이 단단해 스스로 자신을 다스릴 줄 안다면 그보다 더할 나위 없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다스리는 방법을 알려 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것이 어떤 때는 사람과의 만남, 한 편의 영화, 여행이 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가장 쉽게 가까이에서 나를 붙잡아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책이라고 하겠다. 
  

그렇게 마음의 쉼터가 필요해 덥석 문 책. 처음엔 그저 단순한 인도 여행기인 줄 알았다.  [인도에서 여행을 멈추다]라는 책도 재미있게 읽었고, 문화나 미술에도 살짝 관심이 있어서 인도가 그리 멀게 느껴지지는 않았는데, 솔직히 이 책은 조금 어렵다. 고대 인도의 철학서인 우파니샤드를 통해 아트만(참자아)과 브라흐만(우주 만물 속에 두루 퍼져 있는 신)을 탐구하는 과정을 다룬 것으로 여행기라기보다는 철학서, 종교서에 가깝다고 할까.

하지만 우파니샤드를 통해 바라본 인도의 모습에 거부감이 들지는 않는다. 고행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들, 일생을 신을 찬미하며 보낸다면 행복하겠다는 그들. 길거리의 아이조차 '당신이 칼리에요!'를 외치며 신은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 속에 늘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많은 신이 존재하지만 그 어떤 신도 배척하지 않고 하나하나를 인정하며 함께 살아가는 모습에 마음이 호수처럼 잔잔해진다. 불가촉천민이라는, 부당해보이는 계급제도조차 업이라 생각하며 현생을 꿋꿋하게 살아가는 모습은 우리의 보편적인 잣대로는 그들을 판단하거나 평가할 수 없음을 느끼게 한다.

저자는(혹은 우파니샤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덧없는 것으로 그 안에 존재하는 영원불멸의 것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원하고 바라는 것, 물질에 얽매이고 순간의 감정에 좌우되는 것을 경계하라고. 하지만 나는 고행을 통해서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생과 사의 경계는 모호하고 그 경계선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이 세상이 덧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내가 숨쉬는 순간순간, 누군가를 만나고 무엇인가를 경험하며 그 안에서 느끼게 되는 모든 감정들 또한 나를 어떤 깨달음으로 인도할 것이라 믿는다. 설령 그것이 고행을 통해, 명상을 통해 깨달음에 도달하는 이들의 눈에는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저자 고진하의 이력이 독특하다. 목사이면서도 불교, 힌두교 경전을 공부하고 모든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람. 만약 그가 기독교인의 눈으로만 인도를 바라보았다면 이 책은 그 가치를 잃었을 것이다. 읽는 데 시간은 좀 들었지만 고요하게 잠겨있는 물을 생각나게 하는 책. 언젠가 갠지스 강가에서 이 책과 함께 삶을 생각하고 응시할 수 있다면 한층 마음이 평화로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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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요나라 사요나라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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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요나라는, 요즘에야 헤어질 때 인사로 많이 사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주로 어떤 사람과의 인연을 끊을 때 쓰는 말이다. 일본드라마에서 헤어지는 두 연인이 '사요나라'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면 가슴이 묵직해오는 것이 그 울림마저 무거운 말. 그래서 나는 주로 '바이바이'를 쓴다. 개인적으로는 왠지 안타깝고 무섭게 느껴지는 그 사요나라가 두 번이나 쓰였다! '두 번 다시 이런 연애소설은 쓰지 못할 것이다'라고 했다는 요시다 슈이치. 그 말을 듣고 긴장하면서 책을 펼치기는 했지만, 참, 이런 책은 읽기도 힘들고 내 안에서 뭔가를 뱉어내기도 버겁다. 결국 노트북 앞에서 몇 시간을 흘려보냈다. 

이야기는 가쓰라가와 계곡에 있는 공동주택단지에서 한 남자아이가 시체로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범인이 아이의 엄마인 사토미로 밝혀지면서 경찰과 취재진들이 몰려들고, 그 와중에 사토미의 옆집에 살던 오자키 슌스케와 그의 아내 가나코도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사건을 취재하던 중견출판사의 기자 와타나베는 운전기사로부터 우연히 오자키 슌스케와 같이 야구부 활동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선배의 조언으로 그들이 집단강간의 범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편 체포된 사토미로부터 오자키와 내연관계였다는 증언이 터지고 그 증언을 계기로 오자키와 가나코의 숨겨진 비밀이 드러난다. 

작가가 설정한 아이의 죽음은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것이 주된 내용은 아니다. 아이를 죽인 범인은 과연 누구일까를 생각하면서 읽다보면 어느덧 슬프고 안타까운 또 하나의 사건, 오자키와 가나코의 이야기와 만나게 된다. 다른 여성분들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붐비는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남성들과 불가피하게 접촉하게 되는 것조차 최대한 피하는 쪽이다. 그런데 집단폭행이라는, 입에 담기도 두려운 일은 상상하기도 싫다. 이렇게 책의 소재로 만나게 되는 것도 가능하면 피하고 싶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일단은 여자라는 것, 그리고 어쩌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 때문일 것이다.  불행은 가끔 순식간에,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다가오는 것 같다.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 후 가나코, 아니 나쓰미의 인생은 분명 밖에서 보는 것과 달랐다. 잊었다고, 이제는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해도 사건의 기억은 끊임없이 그녀를 괴롭혔을 것이고 , 자신이 어째서 그런 곳까지 따라갔는지 평생을 자책하며 살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더욱 안타까운 점은 스스로를 책망하는 그녀를 그 누구도 진심으로 감싸안으려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사건이 있은 후 계속되는 가정불화, 부모님의 이혼, 과거를 알게 된 남자들의 치졸함은 그들의 입장이 이해가 되는 한편으로 씁쓸한 기분을 안겨주었다. 

결국 깊은 상처를 입은 나쓰미는 '행복해지지 않기 위해' 오자키를 선택한다. 매일 얼굴을 마주하며 자신을 책망하고 오자키를 원망하며 그를 용서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시작된 그들의 생활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서로의 앞에서 가장 솔직해질 수 있었던 사람들. 하지만 있을 수 없는 사랑이다. 그래서 아름답다기보다 슬픈 사랑. 오자키를 용서하게 되면 그 앞에서 사라지겠다고 했던 나쓰미는 -사요나라-를 남긴 채 떠나간다. 

책을 읽다보면 하나의 사건이어도 그것이 남자냐 여자냐에 따라 사회적 인식이 크게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피해자인 여자는 죄인이 되고, 가해자인 남자는 술자리에서 우스갯소리를 하며 간단히 잊어버릴 수 있는 일. '어째 이래'라며 화가 나지만 그런 사회문제보다는 두 남녀의 사랑이 더 크게 다가오는 책이다. 정말, '사요나라'에는 못당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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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로시티 - 딘 쿤츠 장편소설 모중석 스릴러 클럽 18
딘 R. 쿤츠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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딘 쿤츠의 작품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오드 토머스 시리즈와 [벨로시티]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비교해보면 약간의 공통점이 있다. 우선 남자주인공은 음식과 관련된 직업에 종사한다는 것. 오드 토머스는 식당에서 일하고 [벨로시티]의 주인공 빌리는 술집에서 일한다. 그들이 사랑하는 여자들은 이미 다른 세계에 가 있다는 것도 공통점. 약간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오드 토머스에게는 죽음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지만 빌리는 그저 조용히 살아가는 평범한 남자라는 것 뿐일까. 하지만 오드 토머스 시리즈든 [벨로시티]에서든 슬픔 가운데 느껴지는 무덤덤함과 서정성은 변함이 없다. 
 
세상에서 잔혹하다고 일컬어지는 일 중 하나는 다른 사람의 선택에 의해 자신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다. 원만하게 지나갈 수도 있었던 일이 어긋나 버리거나 더 심하게는 미래를 송두리째 빼앗겨버리는 것. 생각만으로도 안타깝고 아찔하지만 어쩌면 이런 일은 예상보다 쉽게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매스컴을 뜨겁게 달구었던 연쇄살인범도 누군가의 미래를 자신의 손으로 빼앗았으니까. 그런데 만약 그 누군가의 미래가 자신 때문에 변할 수도 있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내릴 수 있을까.
 
[벨로시티]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평범하지 않은 과거를 가진 평범해보이는 남자 빌리가 연쇄살인범으로부터 다른 사람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 쪽지를 받고 공포의 시간을 보내다 결국은 범인을 스스로의 손으로 응징한다는 것. 하지만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줄거리만큼 간단하지 않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은 주인공 빌리 뿐만 아니라 읽는 이의 숨통마저 조여오고 과연 어떤 것이 옳은 선택인가를 끊임없이 되묻게 만든다. 쪽지를 경찰에게 가져가면 할머니를 죽이고 전달하지 않으면 금발의 여선생을 죽이겠다니, 터무니없지만 사람을 너무나 간단하게 공포의 구덩이로 밀어넣는 설정이다.
 
만약 빌리에게 지킬 것이 없었다면 빌리는 범인과의 게임을 간단히 포기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나서지 말고, 조용히 하고, 단순화하고, 너무 많은 걸 바라지 말고, 자신이 가진 것을 즐겨라-가 삶의 철학인 빌리에게는 지켜야만 하는 여자 바바라가 있다. 범인과의 혈투와는 별개로 진행되는 것 같지만 사실 빌리의 싸움은 자신이 아닌 바바라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었다. 혼수상태인 그녀가 깨어나기를 기다리며 조용히 책을 읽는 빌리의 마지막 모습은 뭐랄까.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눈이 많이 내리는 오두막 안의 따뜻한 불빛이 비치는 것을 엿본 것 같은 기분이었다. 딘 쿤츠의 작품은 잔혹한 이야기를 다루기는 하지만 이렇게 군데군데 엿보이는 따뜻한 시선이나 언뜻언뜻 내비치는 유머가 좋다.
 
내가 영어에 관심이 있었다면 '벨로시티'가 '속도'를 뜻한다는 것을 더 일찍 깨달았을텐데. 책을 읽는 내내 '대체 벨로시티는 어떤 도시야, 왜 아직도 안 나오는 거야' 라며 투덜댔었다. 에혀. 제목 그대로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이야기다. 숨통을 조여오는 정신적인 압박과 신체에 가해지는 육체적인 고통까지 마치 링 위에서 정신없이 얻어터지는 권투선수를 바라보는 기분이라고 할까. 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더욱 마지막에 다가오는 여운이 더 깊게 가슴을 파고드는 작품이었다. 간혹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아쉽기는 했지만 중간중간에 빌리의 독백으로 T.S. 엘리엇의 작품 구절을 인용한 점은 돋보인다.
 
<평범한 남자 3부작>. 이미 출간된 [남편]과 앞으로 출간될 [The Good Guy]에서의 평범한 남자들은 어떤 시련을 맞이하고 어떻게 해결해 나갈까. 그 무엇보다 '평범하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지 깨닫게 하는 스릴러다.
 
일어날 일은 언젠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더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을 때까지 기적은 일어나기 마련이고, 시간은 영원히 끝이 없는 법이다. -p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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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관의 피 - 상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1
사사키 조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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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는 문구가 적힌 작품은 평소보다 책을 고르는 시간을 덜어준다고 할까요. 어떤 작가가 썼는지, 무슨 내용인지를 꼼꼼하게 따지는 저도 요 문구 하나로 집어들 정도로 이 상은 꽤 신뢰도가 높아요. 적어도 저에게만큼은. 비록 1위를 하지 못했어도 놓치면 안타까울 정도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순위권 내에 진입해 있거든요. 지극히 일본적인 풍미를 솔솔 풍기는 표지의 [경관의 피] 는 그런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에서 2008년 당당히 1위를 차지한 작품입니다. 

올해 2월 일본에서는 드라마 판 <경관의 피>가 방영되었습니다. 중년임에도 당당하고 날카로운 매력을 풍기는 에구치 요스케와 '닥토 고토'로 유명한 요시오카 히데타카, 꽤 잘 생긴 얼굴임에도 어쩐지 정감이 안 가는 이토 히데아키와 단연 멋진 시이나 깃페이까지, 출연진만으로 본다면 대박 드라마를 예감하게 한답니다. 드라마를 먼저 보고 책을 볼까, 책을 먼저 보고 드라마를 볼까 고민하다가 결국 원작을 먼저 접하기로 했습니다. 드라마를 먼저 봤다가는 원작을 멀리 할 가능성이 꽤 높았기 때문이지요. 히. 

이 작품은 3대에 걸쳐 이어지는 경찰가문의 이야기입니다. 1대인 안조 세이지와 2대인 안조 다미오, 그리고 3대 안조 가즈야까지 그들의 경찰로서의 행적과 사건수사를 자세히 묘사하고 있어요. 각각의 인물들에게 일어나는 사건들은 물론 다르지만 그들을 하나로 연결해주는 사건도 하나 존재합니다. '남창 살인 사건'과 '철도원 직원 살인사건'이 그것인데요, 1대인 안조 세이지는 이 사건의 범인을 눈치챈 후 곧바로 의문의 죽음을 당합니다. 자살로 판명된 그의 죽음을 의심한 2대 안조 다미오와 3대 안조 가즈야가 결국은 범인을 밝혀내는, 기나긴 사건일지라고 할까요. 

이 책은 미스터리이기는 하지만 딱히 미스터리라고만 하기에는 부족한 작품입니다.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이 일어나던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세이지의 이야기, 일본 청년들의 학생운동이 가장 격렬하던 시기에 잠입수사의 후유증으로 고통받던 다미오의 이야기, 그리고 현대를 살아가는 가즈야의 이야기는 일본 역사의 한 축을 이루고 있어요. 각각의 시대의 일본의 분위기와 상황 등을 충분히 음미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죠. 

또한 3대 가즈야가 밝혀내는 진실 속에서 과연 경찰이란 무엇인가, 정의란 어디까지 실현될 수 있는 것인가 등등 약간은 예민한 소재를 툭 던져놓고 작가는 휙 사라져버립니다. 의외의 생각할거리를 던져주는 깜찍한 작품이죠. 범인을 추측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지만 범인 찾기에만 몰두하다보면 이 책의 진정한 재미를 놓칠 수도 있으니 주의하세요! 

전 이제 드디어, 마침내, 드라마 <경관의 피>를 시청할 거랍니다. 머릿속으로만 그렸던 일본의 모습을 어떻게 그렸는지도 궁금하고 안조 3대가 얼마나 멋진 모습으로 등장할 지 기대됩니다. 원작과 책을 비교하면서 볼 수 있다는 건 참 신나는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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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덱스터 모중석 스릴러 클럽 17
제프 린제이 지음, 김효설 옮김 / 비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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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덱스터'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은 '그는 오로지 나쁜 사람만 죽인다'라는 문구를 보면 깜짝 놀란다. '그래도 살인범은 살인범이잖아! '라면서. 맞다. 그는 나쁜 사람만 죽이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연쇄살인범이다. 만약 이런 사람이 실제로 우리 주위에 있다가 잡힌다면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법으로 심판해야지' 하겠지만, 글쎄, 그게 100% 진심이라고는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만약 그 나쁜 사람들에 의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해를 입는다면 우린 과연 그 때도 '법으로 심판해야지'라며 굳건히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실존하지도 않는 사람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는 없다. 진지하게 고려한다면 정말 대책없고 무서운 주인공이지만 '덱스터'는 어쨌든 소설 속 사람이니까. 그가 그의 어둠을 어떻게 다스리나 우리는 그저 살짝 엿보면 된다. 

출판사 비채에서 출간된 [본즈]시리즈처럼, 나는 덱스터도 미국드라마를 통해 먼저 알았다. 사실 드라마 <덱스터> 시리즈는 오프닝부터 살짝 자극적이다. 허연 화면을 배경으로 덱스터가 식사를 준비하는데 작은 인형이 턱 놓여있기도 하고 오렌지를 자르는 칼은 번쩍 빛나며 과즙은 줄줄 흘러나오는 것이 '우엑' 소리가 절로 나온다. 집에 있는 미스터리 소설을 보면서 내 동생은 한 마디씩 한다. 누나는 왜 이런 책을 좋아하냐고. 하지만 나는 특별히 '이런' 책만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허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견뎌낼 수 있는 것 뿐이다. 실제로 나는 누가 옆에서 밥먹다 코피만 흘려도 더 이상 밥을 못 먹을 정도로 약한(?) 사람이다. 게다가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호기심이 많은 것뿐이라고 스스로 박박 우기고 있는 중. 

덱스터는 어릴 적 겪은 부모의 죽음으로 심한 트라우마를 간직하고 있다. '검은 승객'이라 불리는 내면의 자아는 그런 덱스터에게 끊임없이 살의를 분출시킬 것을 종용하는데, 양아버지 해리를 만나기 전까지 덱스터 혼자서는 '검은 승객'을 다스리기가 힘들었다. 경찰이었던 양아버지 해리는 덱스터의 검은 본성을 알아보고 들키지 않게, 나쁜 사람들만 죽이는 방법을 전수해준다. 그 후 시작된 덱스터의 나쁜 사람들에 대한 응징. 그런 그에게 시련이 다가온다. 늘 덱스터의 안에서 그와 함께 했던 '검은 승객'이 어느 날 자취를 감춰버린 것이다. 

여느 때처럼 나쁜 사람 알렉산더 맥컬리를 응징한 다음 날, 불에 탄 시체 두 구가 발견된다. 몸은 불에 타고 잘려진 머리 부분에는 황소 동상이 자리잡은 시체. 그 현장을 접한 덱스터 안의 '검은 승객'은 깜짝 놀라며 기운을 잃고 응답하지 않게 된다. 어떻게든 '검은 승객'을 다시 깨워보려고 하지만 덱스터는 이제 자신이 완전히 혼자가 되었음을 깨닫는다. 내 안의 '검은 승객'은 대체 뭐였는가,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등을 고민하는 사이에도 살인사건은 연이어 일어난다. 사건 현장에 남겨진  "MLK'글자를 토대로 혼자 조사한 결과 고대 신앙과 관련이 있음을 눈치 챈 덱스터를, 그 누군가가 미행하고 위협한다. 

덱스터 시리즈에서는 덱스터 외의 인물들은 모두 엑스트라에 지나지 않는다. 덱스터 혼자 위기를 맞고, 해결하고, 자학하고, 고민하며 모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데 그 모습이 안타깝다거나 슬프다기 보다는 재미있다. 특히 덱스터가 검은 승객을 잃고 혼자 자학하며 시니컬하게 내뱉는 대사나, 자신은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담담하게 말할 때  미국드라마 속의 덱스터의 멍한 표정이나 미소 등이 상황과 겹쳐지면서 재미가 배가 된다고 할까. 덱스터가 주인공이므로 당연한 말이지만 그가 없이 이 책은 존재가치를 잃는다. 

한편 사건이 해결되지 않는 가운데 남편의 폭행으로 이혼한 후 두 아이 애스터와 코디를 키우며 살아가는 리타와 덱스터의 결혼이 진행된다. 이번 편에서의 또 하나의 즐거움은 바로 애스터와 코디, 두 아이들이었다. 아버지의 폭행으로 어두운 유아기를 보냈던 아이들에게는 덱스터의 검은 그림자가 보이는 모양이다. 게다가 코디는 덱스터의 '검은 승객'을 알아차리고 나쁜 사람들의 검은 날개까지 알아볼 수 있다. 코디에게도 '검은 승객'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후의 덱스터 시리즈는 덱스터를 물론 빼놓을 수 없겠지만, 덱스터가 코디에게 가업(?) 을 어떻게 전수하느냐에 관심이 모아질 듯 하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칼을 들고 미소짓는 아이는, 역시 무섭다. 흑. 

덱스터가 연쇄살인범이기는 하지만 독자들이 그를 멀리할 수 없는 이유는 역시 '나쁜 사람들'만 응징하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마음 속에 어둠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다스리고 있느냐, 그 어둠을 다른 사람 눈에 보이게 하느냐 등이 문제가 될 뿐. 덱스터는 우리들의 어두운 부분이 만들어놓은 집합체같은 존재다. 그래서 멀리하고 싶지만, 차마 미워할 수 없는 존재. 

책을 읽다보면 번역이 영 깔끔하지 않아서 읽는 맛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책은 번역 자체도 잘 된 것 같다. 무엇보다도 덱스터의 시니컬함과 자학성향을 잘 살렸다고 할까나. 언제나 다음 시리즈를 기대하게 만드는 덱스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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