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선생님의 수첩에는 무엇이 있었나? - 성공적인 인간관계를 만드는 대화의 시작 "입을 닫고 귀를 열어라"
페란 라몬-코르테스 지음, 김현철 옮김 / 북폴리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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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과 관계를 맺든 그 관계를 계속해나가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바로 대화다. 내가 상대에 대해 아무리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좋은 말로 표현하지 못하거나 그 사람의 말을 성의있게 들어주지 않으면, 그 관계는 곧 악화된다.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아주기를 바라거나 상대방의 마음을 자신이 온전히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도 금물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감정과 생각은 서로 표현하고 밖으로 드러낼 때에만 상대에게 전달된다. 

주인공은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인 아내와 '대화'로 인해 문제를 겪고 있었다. 대화로 시작해 말다툼으로 끝나는 일상. 그런 삶이 지겨워진 주인공은 막스 선생님에게 조언을 바라지만 막스 선생님이 보낸 것은 텅 빈 수첩 하나와 바다로 나가라는 짤막한 편지 뿐이었다. 그 동안 아내와 단 둘이 시간을 보낸 적이 극히 적었음을 깨달은 주인공은 아내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고 서로의 생각과 감정에 집중하면서 그들 사이에 있었던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 노력한다. 그리고 막스 선생님이 보내 준 텅 빈 수첩에 행복을 부르는 그들만의 법칙을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주인공과 아내가 발견한 행복을 부르는 법칙은 다음의 다섯 가지다. 바다로 나가기 위해 오랜 시간 준비기간을 거치면서는 시간을 충분히 투자하라는 법칙을 얻었고, 항해를 하면서 바람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면서는 상대의 말에 집중하라는 법칙을, 작은 사고가 일어나 아내와 마찰이 있었을 때는 상대방의 감정 상태부터 파악하라는 것을. 폭풍우가 닥쳐 큰 혼란을 겪고 마침내 그것을 이겨냈을 때는 감정적으로 판단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법칙을, 전체적인 항해를 돌아보면서는 상대에게 보조를 맞추어 천천히 대화하라는 법칙을 얻었다. 

많은 책들이 인간관계와 대화를 강조한다. 입이 하나고 귀가 둘임은 다른 사람의 말을 좀 더 성의있게 들으라는 표시라는 것을 재차 상기시킨다. 그런데 그런 책들은 대부분 밖을 향한 대화법에 관해 기술하고 있었다. 사회생활을, 직장생활을 잘 하려면 어떻게 대화를 해야하는가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밖을 향한 대화법 뿐만 아니라 안을 향한 대화법도 중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자주, 그리고 크게 상처를 입히는 대화를 하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집에서 가족에게 말하는 방식을 생각해 보았다. 밖에서는 하하호호 웃으면서 집에서는 가족에게 짜증을 내지는 않았나, 부모님이 하시는 말씀을 귀담아들으려고 했었나, 내 감정 때문에 가족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는 않았었나. 안타깝게도 나는 '아니다'라고 말할 수 없었다. 나와 가족의 사이가 이 책의 주인공들처럼 나쁜 것은 아니나 나의 대화방식을 고쳐야 함은 자명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강조하는 대화법들을 밖에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제시된 대화법들은 가장 기본적인 사항들로 모든 인간관계의 반석을 마련해줄 수 있을 규칙들이다. 쉽지만 우리가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던 대화의 법칙들. 짧고 쉬운 문장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기억에 남게 될 막스 선생님의 훌륭한 수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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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흉기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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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은 [백야행]을 통해서였다. 매 분기마다 일본 드라마를 체크해서 보곤 하는데 아야세 하루카와 야마다 타카유키가 등장하는 드라마 <백야행> 이 참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상으로 먼저 접해서인지 책 [백야행]은 나에게 그리 큰 감흥을 주지는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찬양해 마지 않는 그 작품이 별로라고 느낀 나는 이 작가와는 앞으로 인연이 없겠구나 했다. 

그런데 [방황하는 칼날] 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자꾸만 증가하는 청소년 범죄를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가라는 깊이있는 시각을 제시하면서 주인공인 피해자의 부모의 마음을 100% 전달하고 있었다.  스스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기에 다른 작가의 글을 비판하는 일은 부끄러운 일이겠지만, 좋은 글은 어쨌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백야행]에 비해 [방황하는 칼날]은 그 점이 충족되어 있었고, 다른 사람에게는 어쨌든 나에게는 그 소설이 그 후로 접한 많은 그의 작품 중에서도 최고의 소설로 남아있다. 

[방황하는 칼날]을 접한 뒤로는 그의 작품이 출간된다고 하면 늘 기대부터 품게 된다. 항상 만족스럽기만 했던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방황하는 칼날] 같은 작품을 또 만날 수 있겠거니 하는 기약없는 기다림이 계속되었다. 때문에 [아름다운 흉기]의 출간소식을 듣고 나는 또 기대했었다. '인간의 탐욕과 집착에 관한 묘사' 라는 띠지의 문구를 보고 이번에는 어떤 사회적인 문제를 들고 와 깊이 생각하게 만들어줄지 궁금했다. 

이야기는 어떤 집에 네 명의 도둑이 들면서 시작된다. 그들은 일본 신기록을 보유한 전 올림픽 스타들로 도핑에 관한 자신들의 기록을 없애기 위해 센도 고레노리의 집에 침입한 것이다. 그들의 침입은 센도에 의해 발각되고 소란이 벌어진 가운데 센도가 우발적으로 살해된다. 그들은 강도의 침입으로 위장시키기 위해 귀중품을 몇 개 훔치고 저택을 불태우지만 저택 뒷편의 창고에 있던 누군가가 그들의 범죄를 낱낱이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알지 못한다. 190 센티미터가 넘는 장신에 탄탄한 근육, 여성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파워를 가진 그녀는 센도가 단련시킨 마지막 선수이자 잔혹한 실험의 대상이었다. 그녀는 센도의 복수를 위해 그들 네 명을 추적하며 한 명 한 명 처단하기 시작한다. 

스포츠계에서 도핑은 커다란 이슈가 된다. 깨끗하고 굳센 스포츠 정신을 사랑하는 스포츠인들에게 도핑은 파렴치한 사기행각이며 그 동안의 자신들의 노력을 먼지로 만들어버리는 범죄행위다. 하지만 그럼에도 도핑 문제가 끊임없이 발각되는 것은 스포츠 또한 과정이 아니라 결과로 평가받기 때문일 것이다. 기록을 내기 위해 그들-다쿠마, 준야, 유스케, 쇼코-은 순간의 유혹에 무릎 꿇었지만 그 결과는 참담하다. 늘 불안에 시달리는 일상, 지금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압박감, 주위 사람들에 대한 체면 등이 그들을 짓눌렀고 결국 비참한 결말에 이르고 말았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몸부림치다 결국 잘못된 선택을 하고 그 선택으로 인해 또 다른 잘못을 한 그들 네 명은 어리석지만 참으로 인간적이다. 누구나 지금보다 더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하고 발전하기를 원하지만 분명히 한계점은 존재한다. 정정당당히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축복이겠다. 이 작품에서 섬뜩하게 느껴졌던 것은 자신들의 결점을 숨기려고 하는 네 명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들 중 쇼코, 그녀가 가장 무서웠다. 자신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그녀야말로 센도가 만든 지상최대, 최악의 흉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과연 그들 네 명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놓지 못하고 책을 읽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약간 아쉬움을 느낀다면 그것은 센도의 마지막 선수이자 그들 네 명을 처단하는 여자 선수의 복수의 당위성 결여라고 할까. 센도와 그녀의 관계가 자세히 나와있지 않아 그들 사이를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녀가 센도를 위해 복수해야 할 이유를 나는 잘 모르겠다.  

그녀를 최고의 선수로 단련시켜 주었기 때문에? 하지만 책을 읽으면 알게 되겠지만 센도는 그녀에게 잔인한 짓을 저질렀다. 여자라면, 그리고 어느 정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그가 죽음을 당했을 때 오히려 홀가분함을 느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는 복수에 나섰고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까지 죽이면서 네 명을 찾아다닌다. 그것은 복수가 아니라 무차별 살인이다. 흉기라 내세운 그녀의 인물 구상이 허술하고 복수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사건의 전개 또한  당위성이 떨어진다고 봐야겠다. 

띠지 문구에는 '괴물이 되어버린 한 여자의 슬픈 복수가 시작된다'라고 쓰여있다. 나는 그 문장을 괴물이 된 여자가 자신을 그렇게 만들어버린 사람에게 복수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녀의 행위는 복수가 아닌 살인이었고, 나에게는 그리 슬프지도 않았다. 다만 한 사람의 인생이 어떤 보람도 없이그리 아무 의미없이 지나가버릴 수 있다는 게 안타까웠다. 

 [방황하는 칼날]에 버금가는 작품성을 기대했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인만큼 어느 정도는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의 깊은 어둠을 파헤치는 그의 글의 특징은 여기서도 잘 녹아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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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미국여행지34
권기왕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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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총기사고, 인종차별, 강대국이라는 이름을 등에 업고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나라. 대부분 부정적인 이미지가 내가 미국에 가지고 있는 인상이었다. 영어를 굳이 배우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 별 어려움 없는 직업을 가지고 있어 많은 친구들이 어학연수, 유학으로 찾아가는 미국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나에게도 딱 한 곳, 미국 내에서 가보고 싶은 곳이 있는데 바로 뉴욕이다! CSI의 스핀오프 시리즈인 <CSI 뉴욕>편의 음울한 분위기와 회색빛 도시, 한편으로는 화려함이 공존하는 그 곳에 언젠가 한 번은 발을 딛어보겠노라 결심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니 내가 미국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치적, 경제적 상황은 차치하고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한다'는 미국에 대해 호기심이 일었다. 

책을 받아든 순간 엄청난 두께와 휘황찬란한 사진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미국에 이렇게 갈만한 곳이 많단 말이야? '라는 놀라움도 잠시, 알찬 소개들이 연이어 등장하는 통에 내 입에서는 탄성만 쏟아져나왔다.




 

 

 

 

 

 

 

이 책은 Best of Best 를 꼽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가장 가볼 만한 도시 10', '가장 가볼 만한 국립공원 10', '미국의 대표적인 휴양지 10', '가족과 함께 여행하기 좋은 곳 10', '미국의 문화& 예술의 무대 10' 등 각각의 테마에 맞추어 쉽게 미국을 여행할 수 있도록 안내한 점이 마음에 든다. 사실 남북으로 2만km, 동서로는 대서양 연안에서 태평양 연안까지 4,800km에 이르는 방대한 영토의 미국을 여행할 때 과연 어디를 어떻게 여행해야 할 지 고민되기 때문이다. 여행자의 입장에서 책을 써내려 간 것 같아 첫 장을 펼쳤을 때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책의 구성은 <미국을 만든 도시>, <테마가 있는 도시>, <장대하고 아름다운 국립공원>, <신기하고 신비로운 자연>, <독특하고 흥미로운 장소> 의 다섯 가지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모두 다른 장소를 소개하고 있으며 각각의 장에 실린 글도 글이지만 화려한 사진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책을 펼치니 내가 그토록 가고 싶어하던 뉴욕이 먼저 나를 반갑게 맞이한다. 음울한 도시를 연상했건만 사진으로 본 도시는 그리 우울해보이지 않는다. 세계 경제, 금융, 문화, 예술, 패션의 중심지이며 자유의 여신상이 우뚝 서 있는 매력적인 도시 뉴욕. 아마 나도 그 곳에 가면 다른 사람들처럼 "I love New York" 이라고 크게 외칠지도 모르겠다.

그 후로 샌프란시스코, 마이매미 비치들의 화려함이 연이어 뒤따른다. 



 

 

 

 

 

 

 

 



 

 

 

 

 

 

 

 

<테마가 있는 도시>에서는 영화 '시애틀의 잠못 이루는 밤'으로 유명한 시애틀이 등장한다. 추상적인 건축미로 유명한 EMP 뮤지엄이 있는 곳, 로맨틱함과 기이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곳인 듯 하다.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태어난 애틀랜타도 인상적이었고, 모르몬교의 성지인 솔트 레이크 시티의 템플에는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그랜드 캐년과 옐로 스톤이 등장하는 <장대하고 아름다운 국립공원>이 숨 쉴틈 없이 등장하며 <신기하고 아름다운 자연>에서 소개된 나이아가라 폭포와 화이트샌드, 알래스카 앞에서는 마치 직접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들었으며 <독특하고 흥미로운 장소>의 인디언 마을이나 아미쉬, 케네디 스페이스 센터는 향수와 재치, 즐거움을 모두 맛볼 수 있는 곳이었다. 




 

 

 

 

 

 

 

 

이 책은 설명보다는 직접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볼 수록 괜찮은 책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책을 보고 감탄을 멈추지 못하는 나에게 엄마가 슬쩍 다가오시더니, 결국에는 같이 보기에 이르렀다. 엄마도 이 책이 꽤 마음에 든 눈치로 언제 한 번 미국여행 가보자고 하신다. 그 때는 이 책을 꼭 챙기라시며.

방안에 앉아 미국의 가볼 만한 곳 34곳을 다 둘러봤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하다. 책에 실린 사진들이 하나같이 경이로워서 모두 소개해주고 싶었지만 일부만 올려본다. 미국여행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든, 앞으로 갈 예정이 있는 사람이든 꼭 한 번 읽어보고 떠나라고 권해주고 싶다. 소지하고 떠난다면 무척 도움이 될 만한 멋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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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비지 가든
마크 밀스 지음, 강수정 옮김 / 비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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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비지가든. 영어에 약한 나로서는 그저 단어의 느낌이 좋다고만 생각했었다. 아마도 표지가 주는 신비롭고 고풍스러운 느낌에 지레짐작을 해버린 탓도 있겠다. 뭔가 아름답고 분위기 있는 뜻을 가진 단어일 것이라 생각하고 인터넷을 검색했는데, 이런, 내가 상상하던 것과 정반대다. 야만적인, 난폭한. 그럼 새비지가든은 난폭하거나 야만적인 정원이 되는 건가. 문득 새비지가든이란 그룹이 생각난다. 그럼 그들은 난폭한 가수들? 이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어느 새 나는 책속으로 빠져들었다. 

지도교수로부터 논문 주제를 추천받은 애덤은 여름방학동안 논문을 완성하기 위해 이탈리아의 도치 저택을 찾게 된다. 15세기의 부유한 영주였던 도치가 젊은 아내였던 플로라의 죽음을 추도하기 위해 만든 아름다운 정원.  그러나 아름다운 정원은 그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비밀을 숨기고 있다. 아내 플로라를 모델로 한 여신 조각상은 정숙하다기보다는 유혹적이고 정원 여기저기에 세워진 조각상들 또한 애덤에게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는 듯 하다. 한편 도치 저택의 여사에게도 아픔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전쟁이 끝나기 전 큰아들이 독일군의 총에 맞아 숨진 일이었다. 우연히 단테의 [신곡]을 접하게 된 애덤은 정원과 저택에 숨겨진 비밀을 눈치채게 되고 위기 상황까지 맞게 된다. 

이 작품은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감정과 마지막 책장을 덮은 후의 느낌이 사뭇 다르다.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 흔한 소재라고 생각했던 이야기가 비밀의 정원과 어울리며 커다란 회오리도 휘몰아친다.  400년 전의 사건, 13년 전 일어난 사건들은 다른 두 가지 이야기이면서 '가족관계'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모인다. 가장 가깝지만 때로는 가장 잔인해질 수 있는 사이, 가족.  가장 친밀해야 할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이기 때문에 죄의 무게는 깊어지고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은 채 어둠의 농도만 짙어질 뿐이다. 그리고 숨겨져 있는 그 비밀을 푼다는 것은 아무리 가족이라도 세상에 숨기고 지나갈 수 있는 일은 없음을 넌지시 암시하는 것 같다. 그것은 애덤의 가족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다른 누구도 아닌 도치 여사다. 가슴 속에 온갖 아픔과 슬픔을 간직한 채 저택을 지키고 더 이상 묻어둘 수 없는 비밀 앞에 당당히 마주한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얻게 된 노련함으로 결국은 사건의 전체흐름을 주도하는 도치여사. 그녀는 사랑 앞에 정열적이었고 진실 앞에 솔직한 모습을 보이면서 저택과 정원에 감도는 저주의 기운을 몰아낸다. 

이 작가의 작품은 처음이었지만 신화와 단테의 신곡을 알맞게 버무려 이야기를 구성한 점은 높이 살 만하다. 게다가 중간중간 애덤과 그의 형 해리 사이에 보이는 재치있는 행동과 말들은 긴장감 있는 사건들 속에서 간간히 미소짓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기괴하면서도 아름다운 정원을 떠올리게 만든 책, 언젠가는 이탈리아에 꼭 한 번 가보고 싶다고, 그리고 단테의 [신곡]은 꼭 한 번 읽어둬야겠다고 다짐하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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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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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자마자 리뷰를 남기는 평소의 습관과는 달리, 마지막 책장을 덮은 후 나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쓱쓱 닦고 오랜만에 엄마와 목욕탕에 다녀왔다. 탕 속에 둥둥 떠서 이야기도 나누었고 엄마의 너른 등을 두 손으로 힘차게 밀어드렸으며 보통 때는 엄마가 하시던 수건 빨래도 오늘은 내가 했다. 다녀와서는 같이 저녁 준비를 했고 그토록 싫어하던 설거지도 자진해서 끝냈다. 그리고 지금은. 일찍 잠자리에 드신 엄마에게 이불을 덮어드렸다. 

목욕탕에 함께 가는 것, 같이 저녁 준비를 하는 것, 설거지를 하는 것. 모두 내가 하기 싫어하는 일들이었다. 시원하게 몸 좀 풀었으면 좋겠다는 엄마와 목욕탕에 가기보다는 뒹굴거리며 책을 읽는 것을 더 좋아했고 저녁 준비는 당연히 엄마의 할 일이라고 여겼으며 설거지는 힘든 하루를 끝마치고 온 내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외의 많은 집안일을 나는 엄마의 딸이면서도 모른 척 눈감아버리는 때가 많았다. 그런데 오늘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책은 읽어서 무엇 하는가'.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면서도 나는 또다시 소중한 사람을 방치하고 있었다는 씁쓸함을 느껴야 했다. 

 -한 인간에 대한 기억은 어디까지일까. 엄마에 대한 기억은?(p19)-

생신을 맞이하기 위해 부모님이 서울로 오시던 중 아버지가 지하철에서 엄마를 잃어버렸다. 한 평생을 늘 엄마보다 앞서 걸었던 아버지. 그 날도 그는 여느 때처럼 엄마보다 앞서 걸었고 엄마가 지하철에 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서울역에서 두 정거장이나 지나온 다음이었다. 엄마의 자식들은, 엄마를 '잊고' 지냈던 그들은 그제서야 한데 모여 엄마를 찾아 헤맨다. 

엄마는 잃어버림을 당하기 전에 이미 남편에게, 자식들에게 잊혀지고 있었다. 늘 같은 자리에 존재하고 있을 것이라는 너무나 당연한 믿음으로 우리는 엄마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남기고 있을지. 엄마조차 모르고 지나가버린 뇌졸증이었기에 자식들은 당연히 눈치채지 못했고, 자신의 아픔에 빠져있었던 아버지는 엄마에게 치매가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모른 척 했다. 엄마가 만들어 준 떡을 3년간 냉장고에 방치해 둔 '너'는, 그녀를 다시는 추운 방에 누이지 않겠다고 다짐한 형철이는, 나 죽으면 먹으면서 생각하라고 챙겨준 감나무를 귀찮게만 여겼던 막내는 엄마의 자랑스런 자식들이었지만 품안을 떠나버린 그 때 타인보다 못한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엄마의 부재가 뼈저리게 느껴지는 그제서야 남편과 자식들은 엄마에 대한 추억이 새록새록 샘솟는 것을 느낀다. 엄마가 해주던 밥, 엄마가 일하던 모습, 서울에 자리잡은 큰 아들에게 여동생을 데려다주며 연신 미안하다 미안하다 속삭이던 목소리,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올 때마다 바리바리 싸들고 오던 호박덩이와 온갖 나물들. 엄마는 그런 존재였다. 애써 부탁하지 않아도, 간청하지 않아도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처럼 어느 새 눈을 들어 바라보면 그 자리에 우뚝 서 있는 사람. 

나에게도 엄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엄마는 내 기억 속에서 처음부터 엄마로 자리잡았고, 엄마 이외의 다른 무엇이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저 문구에서처럼 나는 엄마에 대해 제대로 된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엄마에게도 소녀시절이 있었고, 찾고 싶은 친구가 있을 정도로 즐거웠던 학창시절이 있었으며 아빠를 만나 달콤하게 연애했던 아름다운 순간이 존재했었음을 나는 여전히 '잊고' 산다. 나는 엄마의 하나밖에 없는 딸이면서도 내 욕심과 가족의 이기심 안에서 가장 큰 고생과 희생의 대가를 치르는 사람이 엄마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억지로 잊으려 했었음을 고백한다. 

'엄마'라는 단어는 소리내어 말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가슴을 찢어놓고 코끝을 찡하게 만든다. 읽고 싶어 손에 들인 책이었지만 첫 페이지를 펼치기가 쉽지 않았다. '엄마-라는 단어만으로도 충분하잖아. 그러니 슬픈 이야기는 그만. -이라고 생각했지만, 과연 이것이 슬픈 이야기인가, 작품 속 엄마의 모습을 그려보며 다시 생각해본다. '엄마'라는, 어쩌면 문학 작품 안에서 가장 많이 등장했을 그 사람을 소재로 이렇게 가슴 먹먹하게 목구멍에 가시가 걸린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드는 작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한 가지 명백한 것은 나는 누군가에게, 혹은 전지전능한 신에게라도 '엄마를 부탁한다'는 말은 절대로 하고 싶지 않다. 내게 엄마를 부탁해주기를 바란다. 엄마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는 내가 엄마를 세상이 허락하는 날까지 돌볼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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