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 정혜윤이 만난 매혹적인 독서가들
정혜윤 지음 / 푸른숲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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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만 어린시절 나의 꿈 목록에는 '작가'도 포함되어 있었다. 교내와 교외 대회에 나가서 상도 몇 번 타봤고 글 쓰는 일을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작가'라는 직업은 그 때도 참 매력적이었다. 그 길을 가지는 못했지만, 아직 포기하지 않은 나의 꿈 목록에는 여전히 글쓰는 일이 남아 있다. 그 때문인지 좋은 작가와 멋진 작품을 만나면 그들의 이야기에 즐겁기도 하면서 동시에 채워지지 않는 욕심이 고개를 들곤 한다.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라는 욕망이. 

정혜윤 PD와는 [침대와 책]이라는 작품으로 처음 만났다. 침대, 책. 겨울밤 이불을 뒤집어쓰고 귤을 까먹으며 밤을 새워 책을 읽는 일은 도저히 고치지 못하는 버릇이 되었고, 침대와 책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그 따스한 겨울밤이 떠오른다. 읽은 책의 권수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내 자신에게 되뇌이면서도 얼마나 많은 책을 읽어야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글귀가 떠오를 수 있는지 궁금하고 샘이 났다. 그런 그녀가 이제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고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11명의 가슴을 가득 채운 책들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을 있게 한 책들이 궁금하면서도 나는 어느 새 그들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하고 깜짝깜짝 놀란다. 불화가 심한 가정도 아닌데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이혼하면 어떻게 하나를 걱정하고 그 뒤의 행동까지 정해놓은 정이현. 우리 부모님이 들으시면 놀라시겠지만, 나 또한 그런 터무니없는 상상을 하곤 했었다. 고독과 불안은 그녀의 정서이기도 하지만, 나의 정서이기도 하다. 겉으로 표현되어지는 밝음과는 정반대되는 그 감정들을, 숨기고 다른 식으로 표현하는 출구로써 나는 책을 이용했다. -어차피 잘 안 될걸, 차라리 조금만 상처 받자 (p55)-는 그녀의 말 또한 내가 감추고 있던 생각 중 하나다.  내 안에도 그녀처럼 불안으로 가득하지만 숨어있는 열정이 존재할지, 알고 싶다. 

살기 위해 읽었다는 공지영. 그녀의 작품은 발표될 때마다 대중소설이라는 비판을 받지만, 나에게 그녀는 또 하나의 나다.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말로 잘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그녀가 대신 표현해준다. -나에게 일어나는 일은 타인에게도 일어나리라(p74)-라는 공지영과 비교하기 위해 소개된 오스카 와일드의 <옥중기>는 상처받고 어려운 모든 이들에게 던지는 희망의 메시지라 여겨진다. 

-책은 견디기 힘든 시간들을 견디게 해줘요(p235)-라는 문소리의 말은 이 책에서 제일 공감가는 말이다. 한 때 나도 책에서 도망치고 싶은 적이 있었다. 너무 힘들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마냥 멍하니 있게 되던 때. 어릴 때부터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지냈던 나도 이럴 때가 있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책조차 보기 싫어졌던 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책이 위로가 되고, 과연 나을 수 있을까 의심되던 상처를 치유했다. 그 때부터 나의 글쓰기(서평, 일기)와 독서는 '치유의 과정'이 된 것 같다. 

책을 통해 다양한 책을 만났지만, 결국 그 속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사람'이었다. 책을 통해 성장하고 상처를 치료하고 조금 더 한 발 앞으로 나아간 사람들의 모습. 그들이 선택하고 말한 한 권의 책은 결국 그들 자신임에 다름 없다. 

독서는 재미를 추구하고 지식을 알아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나에게 독서는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책들과, 책으로 인해 만난 사람들을 통해 진정한 나의 모습을 조금씩 찾아내는 것. 나에게도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한 권의 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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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초 1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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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초. 그에 대해 아는 것이 무엇인가 가만가만 생각해본다. 승려, 왕오천축국전. 많이 들어본 이름과 책명임에도 기억하고 있는 것이 이 둘이라는 것에 당황스럽다. 국사책에서 암기한 이름과 그의 책은, 결국 내 머릿속에서 어떤 의미도 지니지 못한 채 그저 떠돌고만 있었나보다. 작가 김탁환에 대해 아는 것은 또 무엇인가 짚어본다. 역사 소설가, 미스터리 팩션. 이처럼 김탁환에 대해서도 혜초에 대해서도 아는 것은 많지 않으나 이 두 사람의 만남은 고구려의 후예인 고선지 장군까지 더해져 그들이 사막에서 만났던 검은 모래 폭풍처럼 내 마음을 강하게 휘어잡았다. 

부하들과 함께 사막에서 검은 모래 폭풍을 만난 고구려 출신의 당나라 장수 고선지. 그는 모래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서 승려 혜초를 발견한다. 귀환 후 상황증인의 필요성 때문에 혜초를 들쳐업고 돌아간 고선지는 뜻밖에도 부하들이 모두 병에 걸리고 미쳐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 또한 돌림병에 걸린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와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에 대한 징계의 위협을 받고 있다. 한편 사막에서 걸린 돌림병의 원인을 밝혀낼 단 하나의 증인인 혜초는 그 때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의 기억의 단서가 되는 것은 여행하며, 방랑하며 그가 기록한 [왕오천축국전] 하나 뿐. 그리고 결국 기록이 담긴 이 양피지를 둘러싸고 많은 이들의 삶의 경계가 갈라진다. 

사실 저자 김탁환이 쓴 작품 중 제대로 읽은 책이 한 권도 없기에 [혜초] 이전 그의 작품 세계가 어땠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그의 명성 하나와 혜초라는 인물에 대한 호기심 하나로 이 책을 집어들었는데, 혜초의 고생과 고통에도 마음 한 구석이 청아해지는 이 느낌은 뭘까. 고선지의 행적과 혜초의 행적이 맞물리고, 조근조근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혜초의 목소리는 세상과 나를 단절시켜 오직 책과 나만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혜초의 목소리이되, 목소리가 아닌 그의 이야기와 혜초만큼이나 아팠을 고선지 장군의 삶을 조금이나마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아쉬운 부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마치 무협소설을 읽는 것 같은 신비로운 느낌이 너무 강하게 다가올 때면, 과연 이것이 진정으로 혜초라는 인물에 대해 그리고 있는 것인지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누가 나에게 [왕오천축국전]이라는 책이 쓰여지는 과정과 혜초의 고뇌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주었던가. 비록 세상에 혜초와 왕오천축국전에 대해 다룬 책이 많다 해도 내가 그 책들을 읽어보지 않은 이상, 혜초는 나에게 아무 의미 없는 사람이었다. 그 아무 의미 없는 사람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준 사람이 김탁환이다.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닐 게다. 어차피 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든 정확히 알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생각해야 할 것은, 김탁환에 의해 재조명된 혜초와 [왕오천축국전] 이 앞으로의 우리들에게 어떤 깊이로 다가오느냐가 아닐까. 

현재 파리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왕오천축국전]이 우리의 품으로 돌아와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날을, 그리하여 지금 읽은 [혜초] 속 그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날을 손꼽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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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랑
이언 매큐언 지음, 황정아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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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매큐언이 말하는 '이런 사랑'이란다. 다른 작가들이 뱉어냈다면 틀림없이 달콤하게 들렸을 그 단어들이 어째서 지금 내 귀에는 두려움과 호기심이 뒤섞인 불안정한 덩어리로 다가오는 것일까. 그럼에도, 분명히 그가 이야기하는 '사랑'이 평범한 사랑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확신하면서도 나는 또 어느새 그의 책을 품안에 꼬옥 들이고 만다. 다른 누가 아닌 이언 매큐언이니까. 

그가 말하는 '사랑'에는 세 명의 사람과 두 개의 사랑이 존재한다. 조와 클라리사와 제드. 그들의 시작점은 풍선 사고가 일어난 그 때였다. 그 때 조와 클라리사는 둘 만의 피크닉을 즐기기 위해 들떠있었지만 어느 순간 들려온 비명소리는 순식간에 그들의 운명을 바꿔놓는다. 어린 아이가 기구 안 바구니에 앉아 있었고, 기구가 날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여러 사람이 달려들어 끝에 달린 줄을 움켜쥐었다. 누가 가장 먼저 그 줄을 놓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줄은 놓아졌고, 끝까지 그 줄을 잡고 있던 단 한 사람이 희생된다. 그 줄을 잡고 있던 사람들 가운데 제드가 있었다. 

마치 자기가 먼저 줄을 놓아버린 것 같은 죄책감에 시달리는 조의 삶은 제드의 사랑으로 인해 흔들리기 시작하고, 조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굳게 믿고 있는 제드는 조의 집앞을 몇 시간씩 지키거나 편지를 전달하며 끊임없이 자신들의 사랑을 인정하라며 요구한다. 클라리사와 경찰에 도움을 요청해보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조에게 과민반응이라며 웃어 넘길 뿐이다. 클라리사와 함께 하던 안정된 삶은 제드로 인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고, 결국 조는 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한다. 

작품 안에서 제드는 드 클레랑보 신드롬에 빠져 있다. 영국 조지 5세가 자신과 사랑에 빠졌다고 확신하며 망상에 빠진 53세 프랑스 여인을 치료한 정신과 의사의 이름에서 비롯된 이 병명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조와 클라리사의 생활을 압박해온다. 제드에게는 사랑이지만 조에게는 끊임없는 광기와 집착으로 느껴지는 감정들. 섬뜩하지만 어쩐지 외롭게 느껴지는 제드의 사랑은, 분명 잘못된 것임에도 읽는 사람을 그의 감정속으로 한없이 끌어들인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제드의 사랑으로 인해 변화하는 조와 클라리사의 사랑이다. 서로를 이해하며 영원히 함께 살아가리라 생각했던 그들의 사랑에 '제드'라는 방해물로 인한 균열이 시작된다. 좋을 때는 계속 될 것만 같은 사랑이 어느 순간 흔들리기 시작하면 남보다도 못한 존재로 만들어버린다니, 그 사랑이 정말 '사랑'인지 의문스럽기조차 하다. 

책을 덮은 후 나온 첫 마디는 '역시 이언 매큐언이야' 였다. 평범하지 않은 사랑을 그릴 것임은 의심하지 않았으나, 병명도 생소한 드 클레랑보 신드롬을 통해 보편적인 사랑까지 재조명한다. 또한 사람들 가슴 속에 조금쯤은 자리잡고 있을 어둠을 끄집어내어 '이것이 너의 모습이야'라며 들이미는 그의 글쓰기는 [이런 사랑]에서도 여과없이 보여진다. 

악마적인 글쓰기로 독자를 사로잡는 이언 매큐언, 그의 어둠과 나의 어둠이 맞물리는 곳에 우리의 공감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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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비테의 공부의 즐거움 - 아이와 함께 읽어야 더 효과적인 자녀교육 바이블
칼 비테 지음, 남은숙 옮김 / 베이직북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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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즐거움'. 이 제목을 들은 어떤 사람은 순간 고개를 갸우뚱 할지도 모르겠다.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라는 책이 나오기도 했지만, 누가 뭐래도 공부는 세상 다른 일만큼이나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는 끈기가 있어야 하고, 공부를 통해 무언가를 해내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지금 공부하고 있는 것에 매력을 느껴야 그 공부는 오래 간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공부의 즐거움을 안 것은 불과 몇 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항상 성적을 걱정하고, 누가 어떤 과목에서 점수가 잘 나오나 눈을 빛내며(?) 둘러보던 고등학교 때까지, 공부란 항상 내 가슴 한가운데를 차지하는 커다란 돌덩이와 같았다. 그러던 공부가 대학에 입학하고 시험을 준비하며 '아, 내가 정말 좋아서 이 공부를 하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받게 되면서부터는 즐겁게 여겨지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학습의 달콤함을 맛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 때문인지 나는 '공부의 즐거움'이라는 말에 크게 당황하지 않고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책을 펼칠 수 있었다. 

칼 비테 주니어는 그의 아버지가 페스탈로치의 권유에 의해 저술한 [칼 비테의 교육]의 주인공이자 19세기 독일의 유명한 천재라고 한다. 이 책은 조기교육 이론서로써 지난 200년 동안 영재교육의 경전으로 불리며 수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독일의 시골에서 저능아로 태어난 그가, 목사 아버지의 열정적인 교육에 의해 영재로 거듭난 과정을 세세한 예를 통해 알기 쉽게 이야기한다. 책의 띠지에도 '영재교육 지침서'라는 문구가 적혀 있으나, 이 책은 비단 영재교육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자녀교육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학습하는 아이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야 하는가 등,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읽어봐야 할 알찬 내용들이 가득 담겨 있다. 

조기교육을 강조했던 칼 비테의 아버지는 부모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도 소홀히 하지 않았고, 저능아로 태어난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교육의 힘을 믿으며 그를 학습시켰다. 칼 비테가 아기였을 때부터 식습관과 올바른 생활습관을 길러주고자 노력했고, 관찰력과 기억력을 신장시킬 수 있는 훈련, 학습의 동기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 배움이 주는 즐거움, 인성과 전인교육, 경제교육의 세세한 부분까지 정성을 기울였다. 

이 책을 펼치기 전에는 내가 앞으로 만나게 될 아이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공부의 즐거움을 가르쳐 줄 것인가를 먼저 생각했었다. 그런데 책에 담긴 내용 중에는 앞으로의 학습자들에게 사용할 수 있는 조언도 있지만, 이미 다 자란 성인에게도 용기를 주는 말들도 많다. 이를 테면 '무슨 일이든 완벽하게 해내고 싶으면, 우선 자신에게 엄격해져야 한다-p244' 는 말은 나태해지기 쉬운 우리를 격려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 칼 비테의 아버지의 손길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로 채워져 있으면 어쩌나 하는 거부감도 있었지만, 칼 비테 주니어의 어린 시절 모습들이 상세하게 나와있어 마치 위인전을 읽는 듯한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나갈 수 있었다. 부모가 된 사람이라면, 그리고 미래에 부모가 될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봐야 할 교육지침서다. 이 책의 1권에 해당하는 [칼 비테의 자녀 교육법]도 찾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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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ws 더 뉴스 - 아시아를 읽는 결정적 사건 9
쉐일라 코로넬 외 지음, 오귀환 옮김 / 아시아네트워크(asia network)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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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빠지지 않고 신문을 챙겨보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우리나라 주요 기사와 세계 강국의 기사, 관심이 집중된 기사를 제외하고는 국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두 알기란 불가능하다. 어쩌면 나만의 변명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문득 이 책을 읽고나니 신문을 보는 눈이 새로워진다. 신문이나 뉴스에서 아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기사가 몇이나 될까. 서양 기자들이 쓴 아시아 기사가 아니라 아시아인이 쓴 아시아 기사는 또 과연 몇 개나 될까. 

이 책은 그 동안 서구인의 눈으로 보도되고 서구인의 감각으로 쓰여왔던 기사들에 반발한, 아시아 기자들의 특종을 엮었다. 아시아 기자들이 발로 뛰어 취재한 기사들은 서양기자 '친구'들에게 건네져 '최초 인터뷰', '최초 보도' 의 이름을 달고 세상으로 나왔다. 아시아 기자들이 열정으로 만들어낸 기사 위에 서양인들의 눈이 더해진 기사는 과연 아시아의 사정을 제대로 보도하고 있을까. '서구 중심주의'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대신 '아시아중심주의'를 옮겨 심겠다는 뜻은 없다고 밝혀 둔 이 책은 아시아의 언론인들의 열정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인기 많던 배우가 대통령이 되었지만 비리로 인해 물러났다. 그 배경에는 기자의 용기와 빛나는 언론인의 정신이 있었다. 네팔에서 일어난 왕세자 사건에는 진실 말고는 어떤 것도 발표하지 않겠다는 긍지가 있었고, 독가스가 도시를 뒤엎은 사건에는 잘못된 점을 끝까지 바로잡겠다는 열정이 있었다. 검열에 대한 반대의지와 조심스럽지만 군주제에 대해 말하는 언론인들의 목소리는 어쩌면 작지만 그 누구도 비판하지 못할 힘이 숨어 있다. 기사가 검열을 통과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고민과 과연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일단 '시작하고 본다'는 그들의 열정은 내 가슴 속에도 불꽃을 터뜨렸다. 

사실 그 동안 기자를 보는 내 눈은 그다지 곱지 않았다. TV에서 그들의 모습을 잘못되게 묘사한 탓도 있겠지만, 내 눈에 그들은 특종을 터뜨리기 위해 여기저기 냄새를 맡으며 돌아다니는 별종에 지나지 않았다. 정의와 진실을 실현하기 위해 기자가 되었을 그들이지만, 큰 상처를 받은 사람에게 마이크를 들이미는 모습 등에 적잖이 실망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특종만을 위해 살아가는 기자들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진정한 언론의 자유를 외치는 사람들, 나라와 대기업이 숨기려는 진실을 끝까지 파헤치는 정의로운 사람들이 실제로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가슴 깊이 느꼈다. 그리고 처음으로 기자라는 직업이 참으로 보람되고 멋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부디 그런 기자들이 나라 안팎에 넘쳐서 어떤 나라든 인간의 권리가 보장되고 평화로운 시대가 계속될 수 있기를 바란다. 

모두 9명의 기자들이 쓴 기사들 중에는 내게 친숙한 것도, 낯선 것도 있었지만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 조금 더 넓어진 것 같아 뿌듯하다. 본문 뒤에는 주요 용어들이 정리되어 있어 쉬운 이해를 돕는다. '아시아중심주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시아의 뉴스가 아시아 기자들의 이름으로 당당히 발표될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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