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마 키 1 - 스티븐 킹 장편소설 밀리언셀러 클럽 86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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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의 제왕, 이야기의 제왕이라는 스티븐 킹의 작품을 이 책으로 처음 만났다. 이름도 많이 들었고, 재미있다는 평도 많이 접했지만 어쩐지 인연이 닿지 않았던 듯하다. (이런 책, 의외로 많다;;) 책을 읽기 전 띠지를 자세히 살펴보니 <스티븐 킹 걸작선> 중에 '미저리'가 있다. 어렸을 때 무서워서 제대로 보지 못했던, 어긋난 사랑을 추구하던 무섭지만 가여운 여자가 등장하는 영화의 원작인가 싶어 찾아보니, 그 영화가 맞단다. 순간 책도 다 읽기 전에 한숨이 나왔다. 영화 <사탄의 인형>을 보고 처키 때문에 무서워 밤잠을 못이루었던 것처럼, [듀마 키] 의 마력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에. 

주인공 에드거도 듀마 키에 이끌려 들어왔다. 그것이 운명일지, 악연일지는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겠다. 세상일이라는 것이 꼬이고 꼬인 실타래 같아서 지금 벌어지는 일이 미래에 어떤 영향력을 미치게 될지조차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건축업자였던 에드거는 사고로 장애를 입고 아내와 이혼한 후 휴식을 위해 듀마 키로 떠났다. 건강을 위해 매일 해변가를 산책하던 중 제롬 와이어먼과 엘리자베스 이스트레이크를 만났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몸과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 간다.  어렸을 때 스케치를 좋아하던 추억을 떠올리고 취미로 그림을 그리던  그는 어느 날 자신에게 신비한 능력이 생겼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가 그린 그림에 따라 살인마가 갑자기 사망하고, 와이어먼의 병이 치료되는 것이다. 이것이 불행인지 행운인지 갈피도 잡지 못한 채 끊임없이 그림을 그리던 에드거는 결국 지역사회에서 인정받으며 전시회를 준비하고, 듀마 키에 숨겨진 비극적이고 안타까우며 공포스러운 비밀의 막이 올라간다. 

추리소설은 장편일수록 그 속도와 흥미, 스릴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이야기가 늘어지거나 별로 필요없다고 생각되는 내용들까지 끼어들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결말까지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참지 못하고 안달하게 되버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듀마 키] 또한 1권에서는 살짝 지루한 감이 없지 않다. 사고를 당한 에드거가 재활훈련을 통해 조금씩 걷게 되고,  와이어먼이나 엘리자베스와 만나며 자신의 그림에 의해 신비한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겨우 깨닫는 사이 1권이 끝나니 글의 속도가 얼마나 느렸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지루함이 엘리자베스 여사가 온갖 신비한 말씀을 툭툭 던지시고, 사이사이에 [그림을 그리는 법]이라는 부분이 있어 궁금증을 더욱 증폭시키는 가운데 어느 새 공포와 다급함으로 변화해간다. 긴 분량을 통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흐트러짐없이 해나간다는 점이 대단하다.

사고를 당한 후 신비한 능력을 갖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는 책이나 방송을 통해 종종 들어왔다. 어려서 아무것도 모르고 내 자신에 대해 불만만 가득차 있었을 때는 나도 차라리 그런 능력을 갖게 되었으면 하고 바랄 때도 있었다. 지금도 만약 나에게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내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에드거에게 있어 그 능력이 '행운'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찾아간 듀마 키에서 신비로운 능력을 부여받았지만, 그것은 그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고 무서운 존재의 유혹과 같았다. 따라서 에드거의 그 능력은 처음부터 그의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신비로운 능력으로 명성과 돈을 얻을 수 있었지만 소중한 사람들을 많이 잃어버린 그를 보면서 역시 지금의 건강하고 평범한 삶이 나에게는 최고 행복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된다. 

책을 덮고 나니 어느 새 새벽이었다. 예상했던대로 나는 곧바로 잠들지 못하고 오랫동안 뒤척여야 했다. 에드거가 들었던 듀마 키의 파도소리와 그의 신들린 듯한 그림들이 마치 현실인양 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기 때문이다. 더운 여름밤을 공포와 약간은 알딸딸한 슬픔 속에 잠기게 한 스티븐 킹, 가히 이야기의 제왕이라 할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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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세상을 유혹하라 - 세계 최고의 여성지 코스모폴리탄 편집장의 76가지 시크릿 노하우!
케이트 화이트 지음, 최지아 옮김 / 고려원북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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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하게 느껴지는 제목과 요염한 자태의 여인이 담긴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사실 이 책의 제목에는 옛날이라면 금기시(?)되었을 낱말들이 몇 가지 눈에 보인다. 바로 '여자'와 '유혹'이라는 단어다. 우리나라도 남성중심사회였고, 그것은 지금도 많은 부분에서는 변하지 않는 특성이기 때문에 '여자'와 '유혹'이라는 단어가 함께 들어가니 무척 대담해 보인다. 소심한 나, 예전이라면 '어머, 세상을 유혹하래~~'라며 요상한 상상으로 혼자 난리를 피웠겠지만, 나도 점점 능구렁이가 되어가나보다. 약간은 선정적으로 느껴지는 표지와 문구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그래? 어디 나도 한 번 세상을 유혹하는 비법을 배워볼까'라는 마음이 움튼다. 

이 책은 세계 최고의 여성지로 불리며 군림하고 있는 [코스모폴리탄]의 편집장 케이트 화이트가 우리 여자들에게 세상을 당당하고 멋지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는 시크릿노하우 책이다. 세계적인 전문가의 스타일링 노하우부터 남자를 유혹하는 기술과 커리어에 이르기까지, 여자가 살아가면서 주의해야 할 점, 고려해야 할 점들을 생생한 문장과 예시들을 사용하여 충고한다.  미용실이나 병원에서 여성잡지를 읽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책은 그런 여성잡지 분위기를 풍긴다. 단, 좀 더 고급스럽고 내용이 충실하며, 내가 궁금했던 점, 알고 싶었던 점을 적나라하면서도 흥미롭게 파헤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성차별적인 발언이 아니라, 여자는 자신을 꾸밀 줄 알아야 할 것 같다. 여자인 나도 예쁜 사람을 보면 저절로 뒤돌아보게 되는데, 다른 사람들이라고 다르겠는가. 단, 자신을 꾸미는 기술이 정도를 넘지 않고 자신만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필수사항이겠다. 예전의 나는 마음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사랑해 줄 사람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다. 그것은 착각이다. 지금의 내가 마구 화려하게 하고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능력을 바탕으로, 꾸미고 아름답게 차리고 다닐수록 여자의 마음 속에서는 당당함이 커지는 것 같다. 요즘들어 패션과 화장에 부쩍 관심을 갖게 된 나에게 패션 항목은 그래서 더욱 끌리는 내용들이었다. 특히 겨울이면 추위를 많이 타서 꼭 스타킹을 챙겼는데, 올 겨울은 맨다리로 외출하는 모험을 감행해봐야겠다.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 관해 다룬 내용들도 재미있었다. 어쩌면 이 부분이 사람들에게는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 될지도 모른다. 사실 남자는 여자를 알 수 없고, 여자는 남자를 다 알 수 없기에 갈등이 증폭되고 관계가 끊어진다. 오죽하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까지 출간되었겠는가. 서로의 속마음을 알고 싶은 욕구는 당연한 것이기에 연애와 사랑에 관해 다룬 부분은 그만큼 더 흥미로웠고, 깨닫게 하고 다짐하게 한 것도 많았다. 

커리어를 다룬 부분에서는 <당신이 뜻밖의 행운을 거머쥘 확률은 소파에서 엉덩이를 뗀 시간과 비례한다>라는 말이 인상에 남는다. 소파에서 미적미적 게으름을 피울 것이 아니라 '주어진 기회마다 소파에서 일어나 부지런히 몸을 놀려야 한다는 것', 때때로 어떤 일을 시작할 때 굉장히 뜸을 들이는 나에게는 채찍과 같은 말이다. '소파에서 엉덩이를 떼'라니, 마치 나를 지적해서 하는 말인 것 같아 처음 제목을 보고 화들짝 놀랐었다. 

하지만 이 책에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모델도 아니고 배우도 아닌 평범하게 살아가는 내가 시도해보지 못할 만한 점도 많았고, 군데군데 띄는 오탈자는 내용의 흥미를 반감시켰다. 게다가 내용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너무 성적인 면에 치우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멋지고 당당한 여자가 되고는 싶은데 그 방법을 모를 때, 첫 발자국을 떼는 책으로서는 괜찮은 지침서이다. 무엇보다 [코스모폴리탄]의 편집장과 작가, 수많은 강연을 하고 다니는 그녀의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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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갈릴레오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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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감동을 받았을 경우를 제외하고, 영화나 드라마로 먼저 접한 작품의 책을 찾는 경우는 드물다. 등장인물과 배경의 이미지가 어느 새 하나로 굳어버려 내 공상을 마음껏 펼치기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약 그런 경우가 있다면, 영상이 정말 마음에 들었거나 작가에 대한 신뢰가 뒷받침되어 있을 때로 한정된다. 일본드라마도 즐겨 보는 편이라 [탐정 갈릴레오]도 드라마로 먼저 접했다. 다행히 그 드라마가 나에게는 잘 안 맞았던 듯, 1회만 보고 그만두었기에 책으로 접하는 즐거움이 꽤 컸다. 드라마를 볼 때는 잘 몰랐는데, 원작자가 히가시노 게이고라니, 한 번 읽어볼만하겠다고 생각한 때문이기도 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을 읽었다면, 이 책에 등장하는 콤비가 전혀 낯설지 않을 것이다. 물리학자 유가와와 경시청 형사 구사나기, 서로 다른 매력을 가진 그들이지만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다시 뭉쳤다. 이번에는 무려 다섯 개의 사건을 함께 해결하고, [예지몽]이라는 다음 작품에서도 함께 등장한다고 하니, 구사나기와 유가와 콤비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탐정 갈릴레오]에는 총 다섯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괴이한 화재사건을 다룬 <타오르다>와 데스마스크의 발견이 사건해결의 시발점이 되는 <옮겨 붙다>, 기묘한 자국을 남긴 채 사망한 남자의 사인을 밝히는 <썩다>와 해변에서 일어난 폭발사고와 한 맨션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연관성을 찾아내는 <폭발하다>, 그리고 유체이탈을 다룬 <이탈하다>까지 각 장에서는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벌어졌다고 생각되는 사건들이 벌어진다. 그러나 물리학자 유가와는 논리력을 앞세워 모든 사건을 과학을 이용해 하나하나 증명하며 사건을 해결해간다. 구사나기는 대부분 사건의 아리송한 점을 유가와에게 가져와 조언을 듣는데, 유가와를 등장시키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대체 누가 사건을 해결하는 형사인지 혼동될 때가 많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이 [탐정 갈릴레오]는 어쩐지 그의 작품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떠나지를 않았다. 연작모음집이라는 그 자체의 특성도 배제할 수는 없겠으나,  무겁고 슬프게만 느껴졌던 종래의 그의 작품들과는 달리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살인사건 수사임에도 때로는 유쾌하고, 또 때로는 코믹하기도 하다. 꽉 막힌 실험실에서 실험만 하고 있을 것 같은 유가와는 알 수 없는 말들로 구사나기의 머리를 아프게 하지만, 조언을 들으러 온 구사나기에게 싼 인스턴트 커피를 권하며 사건 이야기를 듣는 재미있는 사람이다. 구사나기 또한 매번 어려운 용어들로 머리를 감싸안으면서도 유가와를 만나러 가는 모습이 귀엽게 느껴지는 인물로, 이들 콤비의 사건수사 일지는 어두운 분위기만 띄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역시 어떤 추리소설이든 무서운 것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인 듯하다. 쉽게 분노하고 쉽게 절망하며 타인의 목숨을 경시하는 범인들의 모습은 어쩐지 현실세계의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아 씁쓸하고 무섭기만 하다. 책을 보면서 사건을 추리해가는 것은 흥미롭지만, 그런 무서운 마음을 갖는 사람들이 더이상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컸다. 

이번 작품을 계기로 히가시노 게이고에 대한 +인상이 더 강해졌다. 그렇다. 그는 물리학에까지 관심을 갖는 노력하는 작가인 것이다.  워낙 수학과 과학을 멀리했던지라 다양한 방면에 관심을 갖는 그의 모습이 감탄스럽다. 다음에 출간될 [예언자]에서는 유가와와 구사나기의 모습이 어떻게 그려질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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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짝퉁 라이프 - 2008 제32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고예나 지음 / 민음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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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녹록치 않음을 나이를 먹을수록 선명하게 깨닫는다. 대학에 입학하면 행복한 삶만 이어질 거라 믿었지만, 고민의 크기는 커지고 깊어지기만 했었다. 대학을 졸업하면, 내가 원하던 일을 이루고나면 괜찮아지겠지, 막연한 불안감과 함께 품었던 희망은 그러나 또다시 여러 종류의 고민에 짓눌려 숨도 쉬지 못하고 있다. 어째서 시간이 흐를수록 해야 할 일은 많아지고 마음은 자꾸 움츠러들게 되는 걸까. 때로 우리네 인생은 목적없이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한 척의 배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책의 주인공 '나'를 보면서도 똑같은 생각이 들었다. 건조한 문체, 자신을 숨기고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속마음을 털어놓는 '나'. 대학을 휴학하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그녀에 대한 인상은 '공허함'이다. 어머니라는 존재의 부재와 사랑에 대한 아픔, 하고 싶은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다고 느끼는 '나'는 그저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흔들릴 뿐이다. 그녀의 불안정한 인생은 현실이 아니라 '꿈'으로 표현되고, 결국 진짜가 아닌 '짝퉁' 인생이 된다. 그런 '나'의 옆에는 두 명의 여자친구와 한 명의 남자친구, 그리고 정체불명의 K가 있다. 사랑에 상처받고 모르는 사람과 잠자리를 갖지만 결국은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B 와 이미테이션을 좋아하는 R, 그리고 '나'를 좋아하는 남자 Y. 모두 방황하는 인생 속에 한걸음씩 내딛는 청춘들의 이야기다. 

이 작품은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한 여느 작품과는 조금 다른 듯하다. 그 동안 읽어왔던 작품들이 역시 여성의 삶과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점에는 차이가 없으나, 어쩐지 얇은 유리막에 둘러싸인 듯한 이질감이 느껴지곤 했다. 하지만 [마이 짝퉁 라이프] 는 뭐랄까..좀 더 현실적, 노골적이라고 해야 할까. 우리가 삶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이 달콤할 수만은 없다는 것을, 현실을 부정하고 싶게끔 만드는 것도 있다는 것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다. 짝퉁사랑을 하는 B, 짝퉁물건을 걸치고 다니는 R, 그리고 짝퉁에 속아 살아왔을지도 모르는 '나'. 이름조차 밝히지 않은 그들의 모습이 수많은 사람 앞에서 '이름 없이' 살고있을 우리들 모습인 것 같아 씁쓸해진다. 어쩌면 인생이란 그 수많은 짝퉁과 거짓과 허위 속에서 단 하나의 진실을 찾아 헤매는 길고 험난한 작업일지도 모르겠다. 

중반까지 흥미롭고 무미건조하지만 마음에 드는 성향을 이어가던 작품은, 그러나 중반을 넘어가면서 풀썩 힘을 잃는 것 같기도 하다. 결말 또한 제대로 정돈되지 않고 서둘러 끝을 맺어버린 느낌이 들지만, 작가의 역량을 감안해 볼 때 지금 저자를 평가하는 것은 성급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글을 썼고, 등단했고, '오늘의 작가상'까지 수상했으며 꽤 재미있게 읽게 해주었으니 앞으로의 행보를 지켜보고 싶다. 

나는 짝퉁 인생 따위는 살고 싶지 않다. 무미건조한 회색빛을 발하던 다시 사랑을 꿈꾸며 살아가는 것처럼 나도 내 세상을 활기차고 아름다운 색들로 채워갈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든, 친구이든, 가족이든 혹은 나 자신으로 인한 것이든 항상 진실된 삶이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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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밥나무와 여우원숭이 - 어린왕자의 바오밥나무가 꿈을 키우는 섬, 마다가스카르
김준희 지음 / 솔지미디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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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서를 이처럼 충실히 읽은 적이 언제였나 싶다. 여름 휴가철만 되면 쏟아져 나오는 여행서들 중에 어느 하나를 딱 집어 읽기란 참으로 곤혹스럽다. 비록 지금은 떠나지 못해도 언젠가는 떠날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에, 그렇게 믿고 싶기에 한 권의 여행서라도 제대로 된 책을 읽고 싶다. 지나치게 명소 중심이어도 곤란하고, 너무 감상 위주여도 안 되며, 사진만 많고 글이 적어서도 읽는 맛이 나지 않는다. 내가 까다로운 탓도 있겠지만, 어쩌랴.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는 서글픈 이 마음을 제대로 된 여행서 한 권으로라도 보상받고 싶은 것을. 

'마다가스카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어린왕자와 그가 B-612 행성에서 키우던, 그러나 나중에는 키울수 없었던 바오밥나무가 있는 곳이라는 것, 수도가 안타나나리보라는 것, 그것이 내가 아는 전부다. 사실 마다가스카르를 주제로 한 여행서를 이 여름이 시작되는 문턱에서 한 권 읽었다. [호텔 마다가스카르]라는 책이었는데 20대 초반의 여대생이 무작정 마다가스카르를 향해 떠나는, 아주 발랄하고 재미있는 여행서였다. 아직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곳이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너무나 신선한 느낌에 아프리카에 있다는 마다가스카르를 그 때부터 나의 여행 목록에 올려놓았던 것이다. [호텔 마다가스카르]는 여행과 그 길목에서 만나는 로맨스가 적절히 어우러져 로맨틱하고도 달큰한 느낌을 풍긴다면, [바오밥나무와 여우원숭이]는 좀 더 여행안내 쪽에 가까운 느낌이다.

저자는 바오밥나무와 여우원숭이가 보고 싶어 마다가스카르 행을 결심했고, 수도 안타나나리보에 도착하자마자 바오밥나무를 볼 수 있는 무릉다바로 향한다. 그가 그토록 보기를 소원했던 바오밥나무의 모습은 나에게는 비록 사진상이었지만 정말 굉장했다. 다른 나무들이 기둥의 가운데 부분부터 줄기가 생겨나는 것과는 달리, 바오밥나무는 줄기가 전부 꼭대기에 모여 있다. 바오밥나무의 괴상하고도 멋진 모습과 푸르다 못해 보랏빛으로 보이는 하늘이 합쳐져 이 세상의 것이 아닌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사진으로 봐도 마음에서 솟아오르는 감동을 멈출 수 없는데, 직접 눈으로 보면 환호성이라도 지르고 싶어질만한 가히 환상적인 장면이었다. 

바오밥나무의 사진을 보고 난 후 여우원숭이에 대한 호기심이 커진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대체 여우원숭이는 어떻게 생긴 걸까 조바심을 내며 책장을 넘겼더니 라노마파나에서 여우원숭이를 만났다. 보통 동물원에서 끽끽거리며 시끄럽게 뛰어다니는 못생긴 원숭이들을 상상했지만, 아니 이게 웬걸!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북실북실한 털을 가진 원숭이가 금방이라도 만져볼 수 있는 거리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이 사진이라는 것이 안타깝지만 말이다. 마다가스카르에는 여러 종의 원숭이가 살았지만, 자연이 파괴되면서 점점 멸종하고 있다고 한다.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마다가스카르의 모습이 그대로 지켜지기를 바라는 것은 현지인들의 삶이 더 이상 발전하지 않는 것을 바라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의 모습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나만의 욕심인 걸까. 

저자는 바오밥나무와 여우원숭이를 볼 수 있는 마다가스카르의 남쪽을 여행했다. 많은 양의 사진과 상세한 설명이 이어지지만 그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때때로 녹아들어간 저자의 생각들은 이 여행서에 더욱 빠지게 만든다. 마다가스카르에 관한 훌륭한 여행지침서인 동시에, 일상에 지친 우리의 마음을 금새 마다가스카르로 인도하는 친구의 일기같은 책이다. 

인터넷도 잘 안되고, 기둥이란 기둥에 도마뱀과 벌레들이 기어다니는 곳이지만 맑은 웃음과 친절함이 존재하는 곳. 비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이 책을 통해 멋진 마다가스카르 여행을 다녀왔다. 언젠가는 내 두 발로 직접 마다가스카르의 땅을 밟아보고 싶다. 그 때는 나도 꼭 바오밥나무와 여우원숭이를 보러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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