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T의 스타일 사전 - 스타일에 목숨 건 여자들의 패션.뷰티 상식 560가지
김태경 지음, 탄산고양이 그림 / 삼성출판사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나는 지금까지 스타일에 많은 신경을 쓰고 살아온 사람은 아니다. 학교 다닐 때도 청바지에 운동화를 즐겼고, 공부하기에도 그 차림이 가장 편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계속된 공부 탓에 패션이나 화장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고,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20대중후반이 되어버렸다. 다른 사람이 옷을 어떻게 입는지, 궁금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대학 신입생들이 들어올 때마다 나나 내 친구들과는 확연히 다른 패션감각을 자랑하는 그들을 보면서 부러움도 느꼈고, 나도 저렇게 입어보리라 결심도 해보았다. 그러나 항상 편한 옷차림을 추구했던 내가 금방 바뀔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사실 동안이라는 소리를 제법 많이 들어왔다. 20대중후반인 나에게 아직도 고등학생 같다고 한 사람도 있었고, 너는 어째 나이를 안 먹느냐고 궁금해하던 사람도 있었다. 솔직히 예전에는 그 말이 무척 좋은 말인 줄 알았더랬다. 사람은 누구나 늙기 싫어하고, 영원한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성형도 불사하는 요즘이기 때문에. 하지만 사람은 자기 나이에 알맞은 겉모습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그렇다. 겉모습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아무리 외쳐봐도, 사람의 속내를 다 알 수 없기에 결국 외모로 그 사람의 대부분을 판단한다. 그래서 젊다면 젊고, 늦었다면 늦은 지금, 이 책과 만나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패션 잡지 하나 사 보는 것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잡지계 10년을 달려온 사람답게 책에는 스타일의 가히 모든 것들이 총망라되어 있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사항들부터-이를테면 나폴레옹 황제와 쇼메의 운명적인 만남(처음에는 쇼메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아디다스와 푸마는 형제관계?, 손가락이 짧고 굵은 사람에게 어울리는 반지는? 등등- 청바지를 고르는 요령이나 샘플 화장품의 유통기한, 집중 다이어트 식단 등 실용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내용들이 무척 다채롭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점은 쇼핑몰을 소개할 때는 위치나 전화번호를, 화장품을 소개할 때는 가격대를 함께 기록한 것이다. 단순히 어디의 뭐가 좋다라고 홱 던져놓으면 우리같은 일반인들은 몇 사람은 인터넷과 사람들을 통해 찾아보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냥 넘겨버릴 것이다. 하지만 전화번호나 가격대같은 실용적인 정보를 보면서는 그 옷과 화장품에 대해 오랜 시간 고려하게 된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조금 더 실용적인 정보 위주들로 책이 채워졌다면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처럼 패션이나 화장에 문외한인 사람들이 처음부터 집어들고 보기에는 약간 부담스럽다. 그도 그럴 것이 알프레도 베르사체와 지아니 베르사체 중 누가 진짜이고, 할리우드 스타들이 결혼할 때 입는 웨딩드레스 중 어떤 브랜드가 가장 인기가 많은지는 보통사람들이 생활하면서 깊이 생각하는 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상식이라 한다면 나는 아주 상식없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스타일'사전'이라는 이름이 붙은만큼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의도는 좋았으나, 패션이라는 분야에 쉽게 다가가게 하기 위한 노력은 조금 부족한 듯 보인다. 

이런저런 아쉬움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쇼핑명소와 연락처, 화장품에 대해 가지고 있던 잘못된 정보 등을 알 수 있었던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나에게 필요한 알짜정보들을 추리고 추려서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그 날까지 열심히 연구하고, 내 자신을 많이 사랑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막스 티볼리의 고백
앤드루 손 그리어 지음, 윤희기 옮김 / 시공사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밤이 되면, 베개를 베고 누워 별을 바라볼 소년이 있다.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별 자체가 되고 싶어하는 소년. 그의 눈동자에 비치는 것은 사실은 무엇이 될까. 끝도 없이 펼쳐질 별들의 무리가 될지, 아니면 강렬하지만 힘들게 펼쳐져왔던 그의 온 생애가 될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이제 별이 될 그 소년을 위해 우리가 해줄 것이 있다면 그의 진지한 고백을 우리의 마음 속에 아무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일 뿐이다.
 
소년의 이름은 막스 티볼리. 열 세살의 어린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공허한 눈빛을 가진 사람, 안타까운 운명을 타고난 사람. 그가 태어났을 때 가족과 주위 사람들은 경악했다. 태어난 그의 모습이 도저히 갓난아기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노쇠해 있었으므로. 70세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난 그에게, 할머니는 그가 언제쯤 수명이 다할 것인가를 계산하여 기록한 펜던트를 남겼다. 부모들은 겉모습에 알맞은 연령대를 연기해줄 것을 권유했으므로 그는 17세 소년일지라도 50대의 성인 역할을 해야만 했다. 그런 그의 앞에 운명의 여인 앨리스가 나타난다. 오해와 두려움으로 앨리스는 떠나지만, 그 때부터 그의 평생을 건 사랑을 향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10대에는 앨리스를 곁에서 바라만보았고, 30대에는 그녀와 사랑을 나누었으며, 50대에는 그녀 곁에서 다른 사람 역할을 하며 머물 수밖에 없었던 막스 티볼리. 그런 그의 곁에는 어린시절부터 그와 함께해 온 유일한 친구, 휴이가 있었다.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사람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지만, 막스의 고백만큼 놀랍고 기괴한 운명은 처음이었다. 운명이라고, 그렇게밖에 이름붙일 수 없는 그의 생애는 가면 무도회에 불과했다. 가족과 휴이를 제외한 사람들 앞에서 늘 자신의 본모습을 숨긴 채 다른 사람을 연기해야했고, 10대 소년에게 당연히 찾아온 첫사랑은 그에게 아픔과 후회만 남기고 떠나간다. 머뭇거림과 공허, 그림자의 인생을 살던 그였으나 그의 사랑은 다른 모든 이의 사랑보다 강하고 튼튼했다. 집요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그의 사랑을 보면서 앨리스가 그의 진심을 알아주기를 바랐다. 그녀가 조금 더 귀와 마음을 열어낼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막스의 그녀를 향한 첫 고백과 두 번째 고백의 일관성을 깨달을 수 있었을텐데. 막스에게 사랑은 삶을 살아가는 이유였지만, 사랑의 대상이 된 여인은 그의 사랑을 받을만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것이 그가 영원한 행복을 꿈꿀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막스 티볼리의 이야기를 하면서 앨리스만큼이나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그의 친구 휴이. 막스와는 달리 보통 사람의 모습을 하고 태어난 그였으나, 그의 삶 또한 아늑하고 편안한 것이라고 말할만한 것은 아니었다. 책의 첫장을 펼치면 하나의 문장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다-. 그 문장 안에는 막스 자신 또한 포함되어 있다. 이 문장 없이, 그리고 휴이 없이는 그의 고백은 완성될 수 없다.
 
금발의 성숙한 눈빛을 한 소년을 보며 나는 다시 생각한다. 얼마 남지 않은 삶의 길목에서 택할 수 있었던 선택이 정말 그것 하나 뿐이었느냐고. 주는 사랑만이 아니라 받는 사랑도 한 번쯤 해봤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그러나 그의 고백 앞에서 이런 충고는 아무 소용이 없다. 고백이란 그렇다.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진지하고 심각하지만, 듣는 사람에게 있어 그것은 짐이 되거나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거나. 짧은 순간,  내 일처럼 생각할 수는 있어도 진정한 내 일이 될 수는 없다. 초반에 그의 고백에 귀기울일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때문에 나의 충고는 그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그를 불쌍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련다. 그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고, 단 하나의 사랑을 위해 노력해왔다. 다른 사람들과 색다른 외모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의 인생 전체가 불행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어쩌면 자신이 원하는대로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 남을 수 있었기에, 그는 자신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자, 이제 그는 배를 타고 별을 보러 떠났다. 그 배 안에서 그는 아무 근심과 걱정 없이 그가 바라던 세계로 돌아갈 것이다. 그가 태어날 때 바랐던, 보통 사람들의 태초의 모습으로. 그리고 나도 그처럼 누워 그의 고백을 하나하나 되새길 것이다. 그의 강한 사랑을, 그가 바라던 것을 내가 가지고 있다는 그 소중함을. 읽어가면서 하나하나의 베일이 벗겨지는 듯한, 독특한 분위기의 숭고한 이야기를 만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방황하는 칼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마지막 책장을 덮은 후 밀려오는 안타까움과 분함에 한동안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폭행과 살인이라는 더러운 범죄와, 살해당한 딸의 복수를 위해 피눈물을 흘리는 아버지의 마음이 뒤엉킨 실타래처럼 혼재되어 속이 메스꺼워졌다. 사람이 태어나 살아가는 데 있어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법이겠지만 지금은 그 법과 사법체계라는 것이 장애물처럼만 느껴진다. 정의라는 이름 아래 공명정대하게 휘둘러져야 할 그 칼날이 과연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정의의 칼날이라는 것을 한치의 의심없이 순순하게 받아들이는 일이 가능할 것인가.
 
나가미네는 딸을 잃었다. 아내를 잃고 홀로 애지중지하며 키워온 소중한 보물같은 딸을. 어쩌면 그 딸이 사고나 병으로 죽었다면 한동안 무척 슬프고 괴로웠겠지만, 나가미네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딸과 아내의 모습을 추억하며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딸은 순조로운 죽음을 맞이할 수 없었고, 그들 가족의 행복은 깨어졌으며, 나가미네는 복수를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아쓰야와 가이지라는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자신의 딸을 유린하는 장면을 그의 두눈으로 보았다. 보물같은 딸이 멍한 표정으로 하나의 고깃덩어리 취급을 받는 그 장면을. 아무도 침범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딸과의 행복한 순간을 추억하고 억울한 딸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가 하지 못하는 일을 직접 하기 위해 나가미네는 범죄자들에 대한 처단을 결심했다.
 
누가 나가미네에게 '당신이 지금 하려는 일은 옳지 않소'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기 전의 나였다면,  어쩌면 말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 다른 누구보다 심취해있던 나였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떤 상황에서도 개인적인 복수는 옳지 않다고. 그러니 법이라는 정의 앞에 세워서 공정한 심판을 받게 해야 한다고. 그리고 그 사람이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기회를 우리가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 그러나 그것은 직접 일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의 단순한 인사치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내 가족이, 내 친구가, 내 연인이 그런 일을 당했다면 나는, 우리는 그저 가만히 두 손 놓고 '법대로 하시오'라고 할 수 있을까. 게다가 그 범죄자들이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무거운 형벌을 받지 않고 금방 석방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도 말이다.
 
이 작품에서 갈등이 증폭되는 요소가 여기에 있다. 범죄자들이 성인이 아니라는 것,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소년법이 적용되어 가중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 한 개인이 피해를 입어도 그 피해를 사회와 법이 범죄자에 대한 처벌이라는 이름으로 완전한 보상을 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수많은 소녀를 폭행하고 촬영하여 개인의 인권을 침해해도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아쓰야와 가이지는 경찰에 붙잡혀도 길어야 3년 정도 감옥에 있었을 뿐이었다. 나가미네는 이를 용납할 수 없었고, '갱생'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 아쓰야와 가이지에 의해 농락당한 다른 소녀가 자살을 했다는 것을 그들이 알았어도 반성하는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현실에서도 이와 같은 사건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동급생을 술을 먹여 강간하고, 학교폭력으로 친구를 숨지게 했어도 미성년자인 피의자들은 한동안의 사회봉사 명령을 받거나, 소년원에서 짧게 생활하다 나올 뿐 그들이 진심으로 죄를 뉘우치고 새사람이 되었다고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소년법은 피해자를 위한 것도, 범죄방지를 위한 것도 아니다. 청소년은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 그들을 구제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그것에는 피해자와 그 가족의 슬픔과 분노는 반영되지 않고, 현실을 무시한 이상적인 도덕만이 존재한다(p88)
 
개인적인 복수는 당연히 지양되어야 함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럼에도 마음 속은 나가미네를 응원하게 된다. 이런 모습은 책을 읽는 독자들 뿐만 아니라 등장인물인 경찰들에게서도 보여진다. 피해자의 아버지가 피의자로 변해버린 상황 속에서 경찰들 또한 혼란스러워한다. 법과 정의가 하려는 일이, 자신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 의문을 품는다. 경찰들마저 딜레마에 빠져버린 법제도가 과연 올바른 것인가. 현시점에서는 우리 중 아무도 대답할 수 없는 문제다.  그러나 작가는 자기 나름대로 하나의 의견을 내놓는다. " 전 이 사건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나가미네씨가 직접 경찰서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적어도 사람들은 한 번 더 따님의 비극을 떠올리겠지요. 그것만이 아니에요. 당신은 법정에 서서 소년법을 포함해 세상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관해서도 의문을 제기할 수 있어요. 당당하게 자수한 당신의 말이라면 세상 사람들도 귀를 기울일 거에요"
(p484)
 
청소년 범죄가 늘어가는 요즘, 우리의 법체계에도 변화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낀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법은 사람의 상처를 외면해도 되는가'라는 말이 나와서는안 될 것이다. 경찰서에서 피의자보다 피해자가 더 머리 수그리고 부끄러워하는 사회는 이제 바뀌어야 한다. 상처입은 피해자의 권리는 제대로 지켜지고, 청소년이든 성인이든 죄를 저지른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단순히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나는 또한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우리 모두 진정한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끊임없이 그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책 한권을 읽고 나서 이렇게  혼란스러웠던 적이 언제였던가 싶다. 책 표지가 나가미네의 눈물과 분노를 그리는 것만 같아 마음이 스산하다. 사실 히가시노 게이고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 작가, 다시 보인다. 이런 소재가 단순히 하나의 소설로 그칠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발판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어딘가에서 상처입고 누구에게도 말못할 고통으로 몸부림치고 있을 그 누군가들을 위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엇이든 대답해주는 질문상자
다니카와 슌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이레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어려서부터 내가 가장 궁금했던 것 중 하나는 '돼지는 어째서 돼지인가'였다. 돼지는 어째서 돼지로 불리게 되었고, 책상은 어째서 책상으로 이름붙여졌으며 하늘은 왜 하늘로 명명되는지, 이상하게도 나는 그것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지금이야 그렇지 않지만 어렸을 때 가끔 어른들이나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오히려 그런 것이 왜 궁금한지 되물음을 받았던 것 같다. 글쎄...나는 왜 그것이 궁금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답이 확실하지 않은 질문에 대한 답을 꼭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어린이만이 가질 수 있는 순수함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을 발견했을 때 그냥 넘길 수가 없었나보다. '무엇이든'대답해주겠다니, 어쩌면 내가 궁금해했던 것을 똑같이 궁금해한 누군가가 여기에 질문해서 그 답이 실려있을지도 모른다는 호기심과 조바심이 생겼다. 아쉽게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나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 모두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도 궁금해한다는 것을 알고 조금 기뻤다. 

다니카와 슌타로는 현대 일본을 대표하는 유명한 시인이다. 많은 사람들의 질문과 그의 대답을 묶은 이 책은 마치 한 편의 수채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귀여운 그림과 조금은 엉뚱하지만 마음을 울리는 답변에 마치 나는 할아버지의 옛날 이야기를 듣는 꼬마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의 답변에 지지 않게 질문 내용도 무척 다채롭다. '미래에는 무엇을 타게 될까요'라는 현실적인 질문부터, '남편의 빚지는 버릇을 고치고 싶어요'같은 생활이 묻어나는 질문에, '왜 목욕을 해야 하나요'라는 엉뚱한 질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만큼 그 질문도 가지각색이었다. 

내가 마음에 든 것은 다니카와 슌타로의 대답 방식이다. 질문자들은 어린 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연령대가 다양한데, 어떤 질문도 소홀히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어린이라면 어린이에 알맞게, 성인이라면 성인에 알맞은 눈높이로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답변을 제공한다. 문득 진정한 상담자는 이런 사람이 아닐까 싶다.  상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뢰한 사람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상담가의 신념과 생각을 의뢰자에게 강요하지 않는 점일 것이다. 다니카와 슌타로는 자신의 생각을 조근조근 말하고는 있지만, 절대 강요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말하는대로 무엇이든 다 이루어질 것만 같은 포근한 기분에 휩싸이게 한다. 

책을 넘기는 내내 갑자기 목욕이 하고 싶어졌다. 느긋한 몸과 마음으로 다정하게 그려진 그림들과 대답을 음미하고 싶어졌다. 목욕하면서 읽고 싶어지는 책이라니, 태어나서 처음이다. 앞으로 우울한 일이 있을 때나 마음이 진정되지 않을 때 이 책을 펼치면 금방 킥킥 웃을 수 있을 것 같다. 일본 최고의 시인으로 추앙받고, 애니메이션의 노래까지 작사할 정도의 굉장한 실력을 갖춘 이 사람의 매력을 나도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의 질문상자는 인터넷에서 계속되고 있다니, 접속해서 오늘 나도 꼭 하나 질문해야겠다. 이봐요, 다니카와씨~돼지는 왜 돼지고, 책상은 왜 책상이고, 하늘은 왜 하늘로 이름붙여졌을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랑가족 세이타로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김소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오기와라 히로시의 책을 앞에 둘 때면 항상 설레임을 느낀다. 이번에는 또 어떤 상황속에서 유쾌하면서도 감동깊은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가를 기대하게 만드는 작가. 다양한 소재로 부지런히 책을 써내면서도 지금까지 내 기대를 한 번도 무너뜨린 적이 없는 사람. 때문에 그의 새로운 작품이 나왔다고 하면 어김없이 서점으로 달려가 훑어보게 된다. 기대만큼 실망도 크다는 말은 이 작가에 한해서는 해당되지 않는 말인 듯 싶다. 

하나비시 세이타로의 가족은 유랑한다. 끊임없이 다른 일자리를 찾아서. 지금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은 '대여가족'이다. 홈 엔터테인먼트 서비스사, 약칭 HES로부터 일을 받아 의뢰인이 주문한 가족의 모습을 연기한다. 때로는 노부인의 죽은 아들 가족으로, 때로는 여자를 버린 중년남자로 또 때로는 온 가족이 모여 결혼식 하객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세이타로의 가족은 모두 6명이다. 무슨 일을 하든 끝을 맺지 못하는 아버지 세이타로와 그의 아내 미호코, 애니메이션 학원에 다니고 싶어하는 장남 다이치와 노래를 좋아하는 장녀 모모요, 그녀의 아들 다마미, 그리고 차남 간지까지. 

모모요는 엔카 가수가 되겠다며 떠나고 다이치는 꿈을 실현하겠다며 집을 나간 어느 날, 세이타로는 예전 몸 담았던 극단의 단장인 단노스케를 찾아가 빚을 갚을 돈을 부탁한다. 그 청을 들어주는 대신 단노스케는 자신의 아들이 맡고 있는 극단에서 다시 일해주기를 명령하고, 마땅히 할 일도 없었던 세이타로는 눈을 빛내며 과거의 영광을 되새김한다. 하지만 착각은 잠시. 단노스케의 아들은 예술과 예능을 혼동하는 철부지에, 고전미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괴상한 내용들을 공연하는데다가, 아내 미호코마저 집을 떠나버린다. 간지와 단 둘이 남겨진 세이타로의 고단한 인생길, 과연 다리미로 다린 듯 평탄하게 펼쳐질 날이 오기는 할 것인가. 

다양한 시점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펼쳐나가지만, 나는 그 중에서도 간지의 시점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좋았다.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약간 모자란 것처럼 보이는 간지는, 하지만 자기 나름대로 사물과 상황을 파악하며 특유의 순수함과 열정으로 찾아오는 위기를 헤쳐나간다. 극단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 것은 세이타로에게 있어서 제2의 인생의 시작이었지만, 간지에게 있어서도 소중한 의미를 지닌다. 바보라고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던 간지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 해낼 수 있는 일을 찾아내게 되었으니 말이다. 다이치와 모모요도 개성 넘치는 인물이지만, 심각한 상황에서 유머를 만들어내고 '웨엡'하는 우렁찬 대답으로 씩씩하게 살아가는 간지는 나에게만큼은 이 책의 주인공이었다. 

사실 세이타로는 과거의 영광에만 젖어사는 인물이었다. 무슨 일이든 잘 될기라~를 연발하지만 항상 실수투성이인 데다 권위적인 모습은 아이들의 반발을 사기에 충분했다. 그의 아내 미호코도 참다참다 집을 나가버리니 할 말 다 했다. 그러나 힘든 생활을 딛고 자신이 충실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낸 세이타로에게 앞으로의 인생은 충만함으로 다가올 것이라 믿는다. 그의 듬직한 모습에 아내도 언젠가는 돌아오지 않겠는가. 티격태격하며 다투고 지긋지긋하다며 저마다의 길을 찾아 떠나가버리지만, 결국에는 하나가 되어 어려운 일을 헤쳐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가족임을 작가는 말하고 있는 듯 하다. 

평범하지 않은 가족의 모습을 그렸지만, 결국 세상의 모든 가족의 모습을 그린 오기와라 히로시. 극단을 중심으로 일본의 전통예능에 대한 약간의 지식도 포함되어 있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표지만큼이나 유쾌한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 또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역시 다음 작품 또한 기대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