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반의 자화상
제프리 아처 지음, 이선혜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반 고흐는 고갱과의 말다툼 끝에 면도칼로 왼쪽 귀를 잘랐고, 이 사건 뒤에 두 점의 자화상을 그렸다고 한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그가 오른쪽 귀에 붕대를 감고 있는 것으로 그려졌는데, 미술사가들은 고흐가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자화상을 그렸을 것이라 판단했다.( 진실은 그만이 알고 있다.) 반 고흐와 그의 그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 한 장의 그림을 보면 누구나 "아!그 사람!"이라는 말을 내뱉지 않을까. 한 쪽 귀에 붕대를 감고 아무 표정없는 얼굴로 이 쪽을 응시하는 한 사람. 나 또한 미술 쪽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그림을 보고 감상하는 것을 즐기게 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미술과 관련된 책에 눈길이 간다. 특히나 고흐의 그림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요즈음, 그의 자화상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그린 책은 아무래도 호기심이 동할 수밖에 없다. 

한 저택에서 고흐의 자화상을 팔기 위해 고심하고 있던 영국의 명문가 집안의 빅토리아 웬트워스가 살해당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9.11 테러가 일어나던 날, 안나 페트레스쿠는 회사에서 해고당하고, 그의 상사인 브라이스 펜스턴이 옳지 못한 방법으로 고흐의 자화상을 손에 넣는 것을 막기 위해 몰래 런던으로 움직인다. 한편 FBI는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살인사건에 브라이스 펜스턴이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안나와 그의 사이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FBI의 감시와 브라이스 펜스턴이 고용한 암살범으로부터의 추격. 똑똑하고 용기있는 그녀의 숨막히는 여행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우리를 흥분시킨다. 

책은 날짜순으로 되어있다. 9월 10일로 시작되는 도입부. 아무 생각없이 책을 펼쳐들고 읽다가 순간 9.11 테러와 연관된 것임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처음에는 어째서 아직도 민감한 주제인 9.11테러를 묘사할 수 밖에 없었는지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의외로 이 부분이 중요하다. 해고와 동시에 생명에 위협을 받게 된 안나가 자신이 죽은 것처럼 위장하여 자유롭게 움직이기 위해 필요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TV에서 9.11테러를 방송하던 당시, 나는 영화가 방영되는 줄 알았더랬다. 비행기가 건물에 충돌하고, 연기가 나고, 많은 사람들이 높은 건물에서 죽을 것을 알면서도 뛰어내리던 장면. 책을 읽으면서 또 다시 마음이 무척 아팠지만, 인공적으로 다른 사건을 작가가 창조해내는 것보다 9.11테러를 사용함으로써 소설은 현실감과 생동감, 엄청난 긴장감을 갖게 된다.  

작품은 전 세계를 넘나들면서 다양한 인물을 등장시킨다. 처음에는 과연 이 사람들이 모두 작품에 필요한 사람들인지 의심스럽지만, 그 등장인물들이 끝에 가서는 모두 하나의 접점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엄청난 놀라움과 희열을 맛보게 된다. 게다가 섬세한 묘사와 탄탄한 구성은 모두 한 편의 영화를 상상하게 했다. 책 중간에 FBI의 잭이 삼성의 휴대폰을 꺼내드는 부분이 있는데, 이렇듯 작가는 어느 하나 소홀히 하지 않고 매우 꼼꼼하고 세밀하게 써냈고, 이 점이 소설을 더욱 재미있게 만든 것이 아닐까 싶다.  

고흐의 자화상을 둘러싼 미스터리라고 해서 여타의 소설들처럼 혹시나 어설픈 진행을 보이면 어쩌나 조금 걱정했지만, 이 작품은 그런 걱정을 말끔히 씻어준다. 그림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과 그로 인한 파멸,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있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안나의 모습은 상당히 대조적이면서 우리가 진정으로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은연중에 말해 준다. 최고의 이야기꾼이라 칭송받는 제프리 아처. 책 표지 뒤에 있는 뉴욕타임스의 -고양이가 쥐를 놀리듯 독자를 가지고 논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 책을 읽으면 알게 될 것이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하룻밤에 다 읽어버린 소설. 하루빨리 제프리 아처의 다른 작품들도 만나고 싶다.


              모든 것의 가격을 안다고 해서 그 가치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감동을 만들 수 있습니까
히사이시 조 지음, 이선희 옮김 / 이레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20대 중반을 넘어서는 지금 그리 길지 않은 삶을 뒤돌아보면,  몇 안 되지만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되는 때가 있었던 것 같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 일본으로 공부하러 떠났을 때,  학교를 졸업하고 시험을 준비할 때, 합격하고 이제 앞으로의 인생을 준비하는 현재까지. 하나의 목표를 세우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나는 항상 벼랑 끝에 서 있었던 듯하다. 하나의 목표의 끝에는 언제나 하나 혹은 그 이상의 벼랑이 존재했다. 지금까지 헤쳐온 벼랑은 아슬아슬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내가 살아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 준 고마운 경험들이었다. 벼랑이 끝났을 때 마치 내 삶이 끝난 것 같다고 느낀 적도 있었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목표로 한 것의 결과가 어떻든 삶은 어쨌든 계속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떤 한 가지 일이 끝났을 때, 마치 자신의 인생이 끝난 것처럼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가령 대학에 합격하고 나서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그 순간이 영원히 존재할 것처럼 시간을 소비한다거나, 중요한 일에서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을 때 그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처럼. 하지만 인생의 프로라면 '지금 이 순간도 언젠가는 지나간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면서 계속 앞을 향해 나아가게 마련이다. 그 대표적인 사람 중 한 명이  -히사이시 조-, 바로 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히사이시 조. 일본에, 혹은 일본 애니메이션, 일본 음악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최고의 음악가라고 꼽을 만한 사람이다. 그가 참여한 히트작만 해도 우리나라의 <웰컴투 동막골>, <태왕사신기>를 비롯해,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와 함께 작업한 <하울의 움직이는 성>, <원령공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모두 어마어마한 작품들이다. 그가 펴낸 책 [감동을 만들 수 있습니까]를 읽기 전에 나는 그저 그가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여타의 음악가들과 다름 없을 거라 판단했다. 예술계통은 다른 일들과는 달리 노력이나 공부를 통해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고, 99% 정도의 타고난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그런 생각들이 결국 예술가들에 대한 편견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1. 프로로서의 히사이시 조.


 프로란 계속해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프로로서 일류이냐 이류이냐의 차이는 자신의 역량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p19

책 전반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것은 '그는 프로다'라는 점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의 작업에서 많은 히트작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나는 아무 근거없이 그저 그 두 사람은 신뢰 관계로 묶여있고, 작업도 편안하게 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한 번이라도 음악이 좋지 않으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자신에게 의뢰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항상 절박한 심정으로 진검승부를 한다는 글을 읽으면서 역시 프로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그 두 사람에게 가지고 있던 생각은 안일했다.  그런 안일한 생각으로 '프로'를 생각하고,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걷는다면 나는 아마추어로 끝날 수도 있겠다는 가르침을 얻었다. 진정한 프로는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다. 매번 자신을 극한으로 몰고 가서 가지고 있는 능력을 십분 발휘하는 것. 그것이 바로 '프로'의 의미이다.

2. 음악가로서의 히사이시 조.


 인간은 살아가는 과정에서 아수라장을 경험하고, 그것으로부터 빠져나옴으로써 한 단계 성장한다. 높은 수준의 아수라장을 경험하면 그만큼 빨리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p137

음악가로서의 그는, 어쩌면 당연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감성과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중시한다. '창조적인 일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감성이다'(p29)라고 말하며 중요한 순간에도 이성보다는 직감을 믿어 성공하는 사례도 꽤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음악가로서의 그의 모습에는 화려한 성향보다는 인간적인 경향이 더 짙게 나타난다. 작곡 뿐만 아니라 피아노 연주와 지휘의 영역에까지 도전하는 그도 공연 전에는 긴장을 하고, 자신의 곡이 감독들의 마음에 들지 않을까 염려하며 가슴 떨려한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작곡법과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 있는 그를 보면, 음악가로서 아직도 그의 재능은 모두 보여지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음악을 들려줄지 무척 기대가 된다.

책을 넘기다보면 수많은 그의 모습이 등장한다. 인간적인 히사이시 조, 예술가로서의 히사이시 조, 비평가로서의 히사이시 조. 막연히 좋은 음악을 만든다는 사람의 이미지에서 이제 그는 진정한 프로와 진정한 음악가라는 이미지로 바뀌었다. '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의 음악가로서 존재한다'며 음악가라는 것에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있는 그. 비록 일본인이지만 일본음악에만 빠져있지 않고, 아시아에서 활동하면서 각국 음악의 장점과 단점을 볼 줄 아는 혜안도 가졌다. 음악에 대한 사랑을 잔잔히 느낄 수 있는 이 책을 통해 그를 자세히 알게 된 것에 즐거움을 느끼면서 앞으로도 그의 행보를 지켜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카라무슈
프로메테우스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책을 읽고나서 요즘 좀 우울했던 기분이 말끔히 가시는 것을 느꼈다. '그래, 인생 뭐 있어? 이렇게 재미있는 책 한 권씩 읽으면서 그저 물 흐르는대로, 내 마음이 향하는대로 살면, 그거면 됐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무래도 어떤 상황이 닥쳐도 절대로 당황하거나 허둥대지 않고 어떻게든 그 상황을 모면하는 스카라무슈, 앙드레 루이 모로의 성격을 그 새 닮아버린 모양이다. 읽어가면서 '헉, 헥, 이럴수가!'라는 탄성을 자아내게 한 작품, 바로 이  [스카라무슈] 다.

스카라무슈는 즉흥연극에서 까만 의상을 입고 항상 기타를 들고 나와 비굴하면서도 허풍 떠는 익살꾼 역을 일컫는다.(p-134)  주인공인 앙드레 루이 모로가 교수형의 위협에 쫓기면서 우연히 들어가게 된 극단에서 맡은 배역. 하지만 배역만을 나타내는 데 그치지 않고 앙드레 루이 모로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조롱할 줄 아는 재능과 세상이 미쳤다는 생각을 가지고 태어난' 앙드레 루이. 그는 대부 켕텡 드 케르까디유의 도움으로 법학을 공부하고 변호사로 일하는 똑똑하고 재치있는 인물이다. 어느 날 그의 친구 빌모렝이 다쥐르 후작과의 결투에서 목숨을 잃자 복수를 맹세하고 변호사에서 극단의 스카라무슈로, 검객에서 다시 정치가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소개되는 프랑스의 정치적 혼란과 앙드레의 로맨스는 과하지 않게 충분히 자기 역할을 해낸다. 

사실 이 작품에서 재미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프랑스의 정치적 상황이다. 어째서 앙드레의 친구 빌모렝이 다쥐르 후작과 결투하지 않을 수 없었는지, 앙드레가 빌모렝의 뜻을 이어받아 특권계급에 도전하게 되었는지, 검객에서 정치가의 길을 걸으면서까지 다쥐르 후작과 결판을 내고 싶어했는지를 그 상황에 따라 흘러가다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상황에 맞추어 때로는 선동가였다가, 때로는 배우, 또 때로는 검객과 정치가의 모습을 보여주는 앙드레의 모습은 읽는 이로 하여금 알 수 없는 통쾌함을 느끼게 해준다. 모든 위기 상황을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그를 보면서 '부디 무사하기를!'이라고 간절히 바라게 되는 것이다. 

앙드레의 매력은 겉으로는 밝은 척 하지만 비극적 운명을 짊어진 인물이라는 데 있다. 우리들이 삶에서 우연이라 부르면서 일어나기를 바라는 일들, 혹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일들이 앙드레라는 한 인물에게 투영되어 나타난다. '비극적 운명'이라는 아련한 단어가 그를 더욱 빛나게 하여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어느새 감정이입을 하게 되고 그를 괴롭히는 극단단장이라든가 속물적인 캐릭터 클리멘느가 망하게 될 때 마치 자기 일처럼 환호성을 지르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등장하는 여인들과의 로맨스, 출생의 비밀, 다쥐르 후작과의 악연이 어떻게 끝을 맺을지 궁금하게 하면서 책을 쥐고 읽는 사람의 마음을 한시도 가만히 두지 않는다. 한 마디로 이 작품은 한 번 책을 손에 쥔 독자를 절대로 놓아주지 않는, 최근에 만난 가장 흥미진진한 소설이다.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영화로 제작되었다는 사실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 작품 자체가 영화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기 때문일 것이다. . 번역을 잘 한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문장들이 모두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 책이 술술 넘어간다. 잠이 오지 않는 밤, 사나이들의 우정과 결투, 로맨스를 프랑스 역사와 함께 장대하게 느껴보고 싶은 분들, 이 기회를 놓친다면 후회할테니 꼭 읽으시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열병 - 나를 달뜨게 했던 그날의, 티베트 여행 에세이
박동식 글.사진 / 북하우스 / 200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진이 있는 여행기는 참 좋다. 마치 순간이동을 한 것처럼 내 몸과 마음을 단숨에 그 곳으로 데려다준다. 이번에 고른 곳은 티베트. 달라이라마, 차마고도, 사막길. 티베트에 관해 아는 것은 이것이 전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베트'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알싸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한 번도 가본 적도 없고, 사진 한 장 제대로 본 적 없는 곳인데도 책을 펴든 순간 내 마음은 그리움으로 가득 차오른다.
 
처음 나를 맞이한 것은 친구에 대한 작가의 애달픔이었다. 티베트에 가기 위해 네팔에 도착한 저자는 7년동안 세상을 떠돌아 다니는 한 사람을 만난다. 그저 산이 좋아 산이 보고 싶어 떠난 여행. 그 길목에서 그 둘은 친구가 되었다. 상황에 의해 친구의 에베레스트 트레킹에 동행하고 나서 저자는 티베트로, 친구는 또 다른 히말라야 무스탕을 향해 떠난다. 누구든 먼저 돌아오는 사람이 메일을 보내기로 약속했지만 저자가 보낸 메일에 친구는 답하지 못한다. 가족조차 연락이 닿지 않는 그의 소식을 저자는 여전히 기다린다. 푸른 하늘만큼이나 시린 가슴을 안고 저자는 아직도 그렇게 기다린다. 친구의 연락을 기다리는 그의 이야기가 가슴을 쿡쿡 찔렀던 것은 여행길에서 만난 작은 인연도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할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이었을까. 우리 삶에 있어 얼마나 많은 인연들이 우리의 가슴을 기쁘게도, 슬프게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니 공연히 쓸쓸해져 눈물이 난다.
 
아무것도 없는 고원길을 지나 도착한 티베트. 자신들은 독립국가라 주장하지만, 중국정부는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 가슴 아픈 시간속에 티베트는 존재한다. 해맑은 아이들의 웃음과 푸른 하늘을 바라보면서 티베트인들이 그들의 순박함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저자와 같이 나도 함께 빌었다.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티베트인들의 조장풍습과 오체투지(五體投地)였다. 티베트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 시체를 조장터로 가지고 간다. 돔덴(조장을 집행하는 사람)은 시체를 난도질해서 독수리등의 새들이 먹기 쉽게 해놓고 새들이 다 먹기를 기다린다. 남은 뼈들과 두개골을 돔덴이 가루로 만들면 다져진 뼈마저도 새들의 먹이가 된다. 한 나라의 풍습이므로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입장은 아니지만, 조장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이승의 인연을 버리고 새들처럼 훨훨 날아 다른 세상으로 가라는 의미일까. 하지만 아무리 좋은 쪽으로 해석하려 해도 사진으로 얼핏 본 그 모습에는 꺼림칙함만이 느껴졌다. 그 반대로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의 사진은 내 마음을 경이롭게 했다. 오직 종교를 위해, 자신의 믿음에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렇게 자신을 내던질 수 있다는 것. 티베트는 경이와 존경과 약간은 이해하기 어려운 그들만의 문화로 가득차 있다.
 
여행을 하면서 크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여행하는 곳의 풍습을 몸으로 느껴볼 수 있다는 점과 여행 중간에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인 것 같다.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해도 순박한 사람들의 미소에서 따뜻함을 느끼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빛나는 밤을 기대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에게 여행의 이유를 여행의 목적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가 서로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
 
새삼 나는 왜 여행을 떠나고 싶어하는가에 생각하게 된다. 다른 사람이 모두 떠나니까? 그냥 가고 싶어서? 목적 없는 여행은 목적 없는 삶과 같다는 느낌이 든다. 계획을 세워서 내가 여행 안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것. 여행은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저자를 달뜨게 했던 티베트 여행길. 언젠가는 나도 그의 행적을 밟으며 티베트라는 나라를 오롯이 느껴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암스테르담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생소한 작가의 책을 접하게 될 때는 항상 호기심과 두려움이 앞선다. 나에게 어떤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해줄 것인가에 대한 기대가 호기심을, 한 작품으로 인해 그 작가의 모든 작품에 대해 일관된 인상을 갖게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약간의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게다가 [암스테르담]같은, 비교적 얇은 책은 호기심보다는 두려움을 더 갖게 한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심오한 이야기를 작가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써 놓은 게 아닌가 해서. 

이야기는 '몰리'라는 한 여자의 장례식에서 시작된다. 과거 그녀의 애인이었던 작곡가 클라이브 린리와 신문사 편집국장인 버넌 핼리데이. 그리고 그녀의 정부였던 외무장관 줄리언 가머니와 그녀의 남편 조지 레인.  클라이브와 버넌은 몰리의 옛 애인들이었음에도 친한 친구사이다. 어느 날, 몰리의 장례식 이후 충분히 그녀를 애도할 시간도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버넌 앞으로 조지가 가진 사진 3장이 공개된다. 버넌이 자신의 적이라고 공공연히 외치고 다니는 가머니의 성정체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사진들이 그녀들의 여인 몰리에 의해 찍혀 있었던 것. 사형제도와 징병에 찬성하는 가머니를 사회적, 개인적으로 매장시키기 위해 버넌은 동부서주하지만 클라이브와 의견마찰을 빚는다. 게다가 가머니의 아내가 미리 그 사진을 인간적인 감정에 호소하며 공개해버리는 탓에 오히려 버넌은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그 모든 일의 원흉이라 생각하는 클라이브에게 모든 분노를 쏟아부을 준비를 시작한다. 한편, 클라이브는 악상을 떠올리기 위해 떠난 여행 도중 일어난 한 사건으로 인해 생애 최대의 작품이 될 교향곡 완성에 실패하고, 그 또한 그 모든 일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버넌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암스테르담에서 버넌과 마주한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 순간적으로 멍해진 나를 발견했다. 이 작품에서 진정한 주인공은, 앞으로 우리의 기억에 깊이 남을 사람은 누구인가. 이야기는 클라이브와 버넌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그들은 단지 경주마에 지나지 않는다. 정작 그들의 고삐를 단단히 틀어쥐고 방향제시를 하고 있는 인물은 다른 곳에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자 이상하게도 웃음이 났다. 허탈한 웃음이. 한 사람의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얼마나 눈 깜짝할 사이인가. 그 동안 쌓아왔던 모든 것을 잃게 되기까지의 시간이 단 하루도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인생의 허무함도 느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소설은 한 편의 코메디를 보는 듯한 인상마저 풍긴다. 

순간의 분노에 사로잡혀 잘못된 선택을 한 클라이브와 버넌의 운명은 고삐를 쥔 다른 자의 의도였을까, 아니면 명백한 그들의 선택의 결과였을까. 나는 그들의 선택의 결과라고 말하고 싶다. 계기를 제시한 인물은 따로 있었지만 클라이브와 버넌에게 윤리적, 도덕적 양심과 배려와 연민이라는 인간적인 감정이 남아있고, 자신과 자신의 일에만 주의를 기울일 것이 아니라 좀 더 바깥세상을 넓게 볼 수 있는 눈이 있었다면 결말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몰리와 관계된 남자들 거의가 몰리의 부재로 인해 삶이 망가져버리니, 몰리의 존재는 그들에게 있어 삶의 방어막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결말 부분에서 몰리의 환상을 보는 클라이브와 버넌의 모습에서 몰리라는 여자가 그들 삶에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책 안에 숨겨진 '나홀로 복선'(말 그대로 나 혼자 복선이라 생각하는) 이라 생각되는 문장들을 되새기고,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느껴가며 꽤 흥미롭게 읽었지만, 이 책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사람들도 있을 듯하다. 이를테면 가머니의 성정체성에 관계된 문제라든가, 클라이브와 버넌이 한 여자의 애인들이었으나 친한 친구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나는 어떤 일이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일만 아니라면 '뭐ㅡ어때?'라는 사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으나,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얇지만 재미있고, 독특한 분위기를 맛보는 기회를 잃게 되어버린다면 그것 또한 아까운 일이다. 

얇은 책이라 은근 무시도 했더니, 생각지 못한 의문 속으로 나를 잡아끈다, 이 책. 작가는 이 책을 통해 과연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인간이 추락해 가는 과정? 친구였던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내면에 숨겨진 인간의 이기심? 우리의 운명은 순간의 선택으로 결정될 수도 있다는 것? 나중에 다시 읽는다면 어쩌면 지금과는 다른 해석을 내놓게 될지도 모른다. 다만, 지금 한 가지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은 이 이언 매큐언이라는 작가가 대단히 흥미롭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나올 그의 작품을 통해 그가 가진 생각을 좀 더 연구(?)해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