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난 - 고원에서 보내는 편지
이상엽 외 지음 / 이른아침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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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나면, 내 마음 속에 단어들이 물밀듯이 넘쳐나서 빨리 감상을 적게 만드는 책이 있는가 하면, 아무 글도 쓰지 않았는데 모든 말을 다 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책이 있다. 그럴 때는 어쩐지 그냥 책을 한 번 쓰다듬는 것만으로 그 책의 모든 것을 다 알게 되는 것 같은 착각에도 빠진다. 마치 책이 내가 되고 내가 책이 된 듯한 느낌. 혹은 그 책에 대해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이 도저히 가능하지 않은 일 같은 느낌. 그래서 그런 책들에 관한 기록을 남기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내게 [윈난]은 그런 책이다. 

언젠가부터 사진이 가득 실린 여행서적을 즐겨보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사진이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 많은 책을 접하고, 읽게 되면서 백 마디의 말보다는 한 장의 사진이 모든 것을 말해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참으로 신비하고 놀라운 경험이다. 책에 실린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치 공간이동을 한 것처럼 어느 새 나도 그 사진의 일부가 되어 있으니까. [윈난]은 나의 그런 욕구를 100% 만족시켜주는 책이었다. 여행 전문가 7인의 조근조근한 서간체의 문장들도 내 마음을 때로는 달콤하게 때로는 먹먹하게 만들었지만, 무엇보다 내 마음을 가득 채워준 것은 윈난의 곳곳을 담은 수많은 사진들이었다. 사진에 관해 문외한이라 해도 좋을만큼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이렇게 윈난의 사진을 가슴 깊이 느끼게 된 것은 그 사진에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윈난]은 표지부터 독특하다. 쑹짠린 사원이라 불리는 곳을 배경으로 맨 위에 이런 글귀가 보인다.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여행자의 낙원-. 도대체 어떤 곳이길래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한다고 했을까. 윈난은 자연 그대로를 간직한 곳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농사를 지어 생활을 이어가고, 개울가에서 빨래를 하는 정겨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곳. 다른 이가 적어놓은 글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을만큼, 순수하고 가슴 따뜻한 정을 간직한 곳이다. 수많은 소수민족들이 각각의 마을에서 문화와 언어를 지키며 공존하고,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다. 그 모든 색깔을 한 단어로 압축해서 나타낼 수 없기에 꼭 한 번은 가봐야 할 여행자의 낙원인가 싶기도 하다. 

사진과 함께 쓰여진 일곱 분들의 마음을 바른 자세로 앉아 깊이깊이 느꼈다.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돌아가신 어머니를 향해 그리움과 함께 윈난의 풍경에 대한 감탄을 토해내는 편지, 친구 혹은 선배에게, 인연을 맺은 소중한 누군가에게 보내는 글귀들을 읽으면서 어째서 여행을 떠났는데 편지가 쓰고 싶어지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비록 여행을 떠나는 순간에는 홀로 훌쩍 사라지고 싶다가도, 좋은 풍경과 가슴 따뜻한 정을 느끼면 내게 소중한 누군가에게도 그것을 맛보게 해주고 싶기 때문인가보다.


 떠나기 전, 방수 재킷 속으로 지갑을 찾는데 내 손을 아주머니께서 꼭 잡더니 그냥 가라며 떠미셨어요. 아니라고 거듭 말을 해봤지만 소용없을 정도로 아주머니는 강경하게 내 등을 떠미셨어요. 결국 따스한 아주머니 손이 떠미는 대로 나는 포석로로 발걸음을 내디뎠어요. 포석로는 여전히 촉촉했고 덩달아 내 마음도 촉촉이 젖어 들었어요. -p183
<아름다운 고원의 아침>편을 쓰신 정일호님의 글귀에서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정은 쉽게 잊을 수 없을 만큼 포근하다. 아마도 집을 떠나 조금은 외로울 마음을 그 정이 어루만져주기 때문일 것이다. 고성의 변두리에 위치한 재래시장 한 켠 어둑한 벽 아래에서 찍었다는 붉은 꽃의 사진에서 한 동안 눈을 떼지 못했고, 하늘을 닮은 미소를 짓는 소년의 사진이나, 공깃돌 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사진은 정일호님의 마음을 적신 아주머니의 정마냥, 내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 주었다.




 누가 우리를 소수라 하는가.
 누가 우리를 소수라 하는가.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 충분하다.
그대가 우리를 가난하게만 하지 않는다면
그대가 우리를 초라하게만 하지 않는다면
소수인 우리는 작은 욕심으로 충만하고
가난한 우리는 맑은 가난으로 아름다우니.

-p205

윈난의 풍경을 보며 팔레스타인의 난민촌에서 살고 있는 자이납에게 편지를 보낸 박노해님의 글속에서도, 그리고 다른 분들의 글 속에서도 윈난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윈난은 사람과 자연이 어울려야만 그 존재 가치가 있는 곳이라 생각한다. 아무리 발전이 가속화되고, 윈난에서 생산되는 푸얼차가 유명해진다고 해도, 윈난이 본연의 그 소박한 모습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것은 중국의 사정을 자세히 모르는 나의 무지함 탓일까. '차마고도'라는 말 속에 담긴 옛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서로의 언어와 문화를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고 있는 그 곳이 바로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꿈의 도시 '샹그리라' 인 것 같다.
 
문득 책 앞 표지를 보니 <카메라가 쓰는 책.1>이라고 나와 있다. 앞으로 이런 책이 여러 권 나올 가능성이 큰 것 같아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여행서적은 내 마음을 풍요롭게 하고 평화롭게 한다. 다만,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어지는 두 발을 꼭 잡고 있어야만 한다는 점을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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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소믈리에 - 쇼킹발랄 에디터 미미리의 러브&와인 도전기
미미리 지음 / 한스앤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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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한 때 그 유명한 [미스터 초밥왕]이라는 만화에 푹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다. 책만 보면 초밥 재료들이 우르르 쏟아져나오고, 먹지 않아도 입에 침이 고이고, 게다가 승부에 이기는 순간 엄청난 희열을 느끼게 해주는 그 책을 정말 사랑한다. 그 후부터 음식에 관한 이야기는 나를 즐겁게 했다. 눈도 즐겁고, 마음도 즐겁고. 혹자는 인간이 먹기 위해 사는 건지, 살기 위해 먹는 건지 잘 모르겠다라고 했지만, 내 경우는 -먹기 위해 산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러브 소믈리에]도 만화 [신의 물방울]에서 다루던 와인 이야기라 쉽게 손이 갔다. 뭐, 그렇다고 해서 내가 와인에 정통하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술을 못하는 나에게 있어 술은 맥주든, 소주든, 와인이든 다 똑같다. 다만 나도 분위기와 로맨틱함을 중시하는 여자이므로! 왠지 와인이라고 하면 가슴이 설레고, 더 달콤할 것 같은 생각에 마음이 포근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주인공은 미미. 방은 치울 줄 몰라도 제 몸 하나 꾸밀 줄은 알고, 꽃미남을 밝히며, 비싼 생선회보다 낙지, 멍게 , 해삼에 열광하고 어쩔 수 없이 명품과, 멋있고 분위기있는 레스토랑에 입이 헤벌쭉 벌어지는 서른 넘은 노처녀다. 와인에 관해 조금밖에 모르던 그녀가 와인에 흥미를 가지게 되면서 와인을 즐기게 되고, -흡혈귀-라 이름붙인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어떻게 하면 연애를 할 수 있을까가 전부인 것처럼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때로는 한심하게 보이다가도, 때로는 너무 웃겨서 나도 모르게 킥킥 웃어버렸다. 

책 중간중간에, 그리고 소제목이 끝날 때마다 나오는 와인에 관한 짤막한 지식은 이 분야에 문외한인 나에게는 도움이 되었다. '아, 이런 말도 있구나'라며 신기했고, 와인 이름을 읽을 때 혀가 조금 꼬부라지는 느낌에 어색하기는 하지만, 맛에 대해 소개할 때마다 마치 내가 그 와인을 음미하고 있는 듯 했다. 다만, 사랑과 와인을 결부시켜 이야기를 진행시키기에는 적잖이 무리가 있어 보인다. 처음에는 쉽게 와인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집어들었는데,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과는 이야기의 방향이 많이 달랐다. 미미의 사랑이야기가 중심이 되고, 가끔 -아차, 와인 이야기도 빼놓으면 안되지-라는 생각에 와인에 관한 내용을 조금 삽입한 느낌이랄까. 와인은 들러리가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와인에 관해 모든 것을 알리라!'라며 굳게 결심하고 이 책을 집어든다면 실망할 것이다. 또한 독자가 남자라면 얼마 읽지 못하고 금방 내려놓을 것 같다. 그만큼 이 책은 여성을 겨냥한, 여성을 위한 책이다.  여성이고, 이제 막 '와인'이라는 두 글자만 알게 된 사람이라면 부담없이 읽고 즐겨도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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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리터의 눈물 마지막 편지 - 한국어 특별판
키토 아야 지음, 한성례 옮김 / 이덴슬리벨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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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야를 만난지도 벌써 1년이 넘었다. 더운 여름, 아무 이유없이 선택한 일본드라마 [1리터의 눈물]을 보고 참 많이도 울었더랬다. 워낙 눈물이 많아서 잘 울기도 하는 나였지만, 마지막회인 11회까지 한꺼번에 보면서 장장 7시간은 울었으니, 내가 태어나서 그렇게 오래, 그리고 많이 울었던 일은 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내가 선택한 길이 너무 힘들어서, 그리고 조금 지겨워서 게으름을 피울 요량으로 그렇게 뜻하지 않게 만난 아야. 그녀는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으니 우리가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 할 기회는 없을테지만, 나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그녀를 내 친구로 여긴다.

키토 아야가 병에 걸린 것을 안 것은 고등학교 입학을 눈 앞에 둔 중3때였다. '척수소뇌변성증'이라는 희귀병이었다. 웃기도 잘 하고, 화를 냈다가도 금방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소심하지만 공부도 곧잘 했던 그녀는 그 병으로 인해 자신의 생활을 포기해야만 했다.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어떻게든 고등학교까지는 다니고 싶어했지만, 주변에 폐가 된다고 생각하고 양호학교로 옮긴다. 일상생활에서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이 자꾸만 늘어가던 그 때, 그녀는 자신의 생활을 글로 남기면서 세상에 자신과 같은 병을 가진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까지 깊은 감동을 남기고 떠나갔다.

이 책은 그녀가 친구들에게 남긴 편지모음집이다. 1편인 [1리터의 눈물]을 시작으로 2편 [1리터의 눈물-어머니의 수기], 3편인 [1리터의 눈물-마지막 편지]에 이르는 완결편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이 희귀병에 걸린 것을 알고도, 그녀의 삶은 빛으로 가득차 있다. 병에 대한 인간적인 고뇌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관심거리, 고민, 생활은 우리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정원에 난 이질풀이 뿌리 채 뽑힌 채 뭉개져 있는 거야. 발을 동동 구르며 분하고 안타까워서 씩씩거렸는데 어제 비죽하게 작은 싹이 돋아났어. 그 때의 기쁨이란..뭐라고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야. 이질풀을 그늘에 말려서 달여 먹으면 복통이 낫는다고 들었거든. 싹이 자라 잎이 커지면 그렇게 해서 보내줄게. -p27

큰 병에 걸린 적이 없었던 나는 드라마나 TV를 통해 사람이 불치병에 걸리면 분명히 추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의 존재가 이 세상에서 없어진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기 싫은 일이기때문에, 병에 걸렸을 때 사람은 자기자신에게만 온 신경이 집중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녀의 배려와 눈은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까지 향한다. 힘든 상황임에도 꿋꿋하게 열심히 재활치료를 하고, 친구에게 생활의 소소한 일상을 편지로 전달하는 그녀를 볼 때면, 나는 어느 새 아야가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만다.


 요코, 피하지마! 힘든 일이나 고통스런 일에서. 즐거운 일조차 사라져버려. 귀찮다고 말하지마.-p65

그러나 그녀가 아픔을 완전히 잊고 살았다는 것은 아니다. <힘든 일이나 고통스러운 일을 피하려고 하면 즐거운 일도 없어진다> 우리는 이 글귀를 읽으면서 '그래, 그렇구나. 힘든 일도 피하지 말고 잘 해결해나가자' 라고 생각하면 되지만, 이 글귀는 아야가 병에 걸려 몸으로 깨달은 그녀의 생활이다. 단순한 사실을 깨닫기 위해 우리가 아야처럼 많은 희생을 치루지 않아도 되는 것에 감사한다.



시간은 영원하다.

단 하나, 인간은 시간을 멈추게 하려고 생각해낸 것이 있어. 그것이 글을 쓰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 한시도 펜을 놓아서는 안 될 것 같은 심정이 돼. -p81

병이 서서히 진행되고, 침대에 누운 채 그녀가 펜을 잡을 수 없을 때까지 쓴 아야의 편지와 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었다. 그것은 어떤 상황에 있어서도 삶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 자신은 병에 걸렸지만, 이렇게 힘차게 살고 있고, 삶의 보람도 찾았다는 것. 그러니 우리도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이든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을 아야는 말만이 아닌 몸으로 우리에게 보여준다. 항상 사회에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원했던 아야는 살아있을 때도, 세상을 떠난 후에도 우리 모두의 삶에 희망의 등불이 되었다.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기를 바란다. 단순히 어린 소녀의 병상일지라 생각하지 말고, 친구에게 보낸 우정의 편지 모음집이라 생각하지 말고. 지금 자신의 삶을 자신은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얼마나 보람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느끼면서 눈이 아닌 마음으로 읽어주기를 바란다. [1리터의 눈물] 드라마와, 책은 내가 그것들을 접한 순간부터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어쩌면 비웃음을 당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내가 힘들 때마다 마음 속으로 아야에게 말을 건다. 우리나라 사람도 아니고, 이미 이 세상에 없지만 내가 말을 걸면 아야가 꼭 대답해주는 것만 같다. 나는 잘 하고 있다고.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웃음을 잃지 말라고.



괜찮아.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면 되니까.
넘어진 후에 고개를 들고 하늘을 올려다봐.
파란 하늘이 오늘도 끝없이 펼쳐져 미소 짓고 있잖아.
나는 살아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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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별자리 러브스토리
가쿠타 미쓰요.가가미 류지 지음, 장점숙 옮김 / 문학수첩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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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를 가지고 있는 나에게 있어 혈액형과 별자리로 운세를 알아보는 것은 일종의 우상숭배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독실한 신자도 아니면서, 나는 어쩌면 나에게 언제 어떻게 내려질지도 모를 벌을 무서워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세상은 그렇게 정확하게 나뉘어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내 생각도 조금씩 유연해져갔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궁금해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내 마음도 제대로 모르는데 다른 사람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일이 가능하기나 할까.  그럼에도 사람의 마음 속에는 다른 누군가에 대한 호기심이 끊이지 않고 발생한다. 그 호기심에 의해 연구되고 알려진 것이 바로 혈액형과 별자리로 보는 인간심리다. 

이 책은 12개의 별자리로 보는 소설+별자리 칼럼이다. [이 책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로 나에게 다가온 가쿠타 미쓰요가 소설 부분을, 점성술연구가이자 점성술에 대한 심리학적 접근법을 일본에 소개해 기존의 이미지를 크게 바꾸어 놓은 가가미 류지가 칼럼 부분을 맡아 12개의 별자리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른 사람의 마음 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내 별자리를 제외한 이야기들도 재미있었지만, 역시 제일 크게 공감하면서 읽은 부분은 나의 별자리, 바로 <전갈자리>부분이었다. 전갈자리를 검색해보면 여러 가지 키워드가 쏟아져나온다. 그 키워드를 보면서 좋은 것은 믿고, 나쁜 것은 버렸지만 가쿠타 미쓰요가 쓴 전갈자리 여성의 이야기에는 '맞아, 맞아'하며 고개를 끄덕여버렸다. 주인공은 미야지 아미코. 주위 사람들을 배려하지만 때때로 냉정하다거나 쌀쌀맞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친구들은 모여서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 것이 친한 친구사이라는 것을 증명한다고 생각하지만 아미코는 속속들이 드러내는 것을 거북해한다. 책 속에서 그녀는 비밀주의라 불린다. 

나는 쌀쌀맞다거나 냉정하다는 말을 들은 적은 없지만 친구들에게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지 못하는 그녀의 마음은 어쩐지 이해가 되었다. 이를테면 그것은 내가 친구들을 친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의식 중에(혹은 의식적으로), 할 이야기와 하지 않을 이야기를 구분짓고 있는 것 뿐이었다. 누구든 자신의 마음 속에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부분이 한 두 가지 존재하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에는 능하지만, 정작 내 자신의 이야기를 잘 못할 때가 있다. 친하다고 해서 나의 모든 것을 말하기를 강요하는 관계라면 그 관계는 어쩐지 쓸쓸하다. 말로 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그대로의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니까. 그것을 비밀주의라고 한다면, 글쎄,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하지만 별자리는 별자리일 뿐이다. 각 개인마다 장점과 단점이 있듯, 같은 별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사람에 따라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은 달라진다. 이것을 가가미 류지는 "x"인자라고 불렀다. 그는 별자리도 영향을 주기는 하지만, 'X"라는 인자를 무시할 수 없다고 했다. 즉, 같은 별자리에 있는 사람이어도 각각 하기 나이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호기심으로 별자리와 혈액형으로 운세를 보거나 사람을 판단할 수도 있겠지만, 너무 깊이 빠져서는 그 재미를 만끽할 수 없을 것 같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도구로써 별자리를 바라볼 때, 비로소 반짝반짝 빛나지 않을까.



 나는 입 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그가 무엇을 하든 행복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행복하고 변함없이 세련되고 멋져서, 앞으로도 누군가와 누군가를, 혹은 누군가와 세계를 만나게 해서 인연 맺게 해 주면 좋겠어, 하고 생각했다.

                                                    -p186 <천칭자리인 그는 안테나군>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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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엔젤 - 스탈린의 비밀노트,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2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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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있어 로버트 해리스는 히스토리 팩션의 전문작가라고 여겨진다. 히스토리 팩션이라는 장르 안에서 많은 책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역사의 어느 한 시점에 눈을 돌리고, 그 안에서 스스로 문제를 발견해 의문을 갖는 자세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 히스토리 팩션이 인기를 얻는 이유는 사람들의 '호기심'때문이다.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영원히 알 수 없는 역사 속의 진실을, 그래도 꼭 알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호.기.심. 그것이 바로 히스토리 팩션의 출발점이다. 

스탈린. 레닌의 후계자로 지목되어 반세기동안 전 소련을 독재적으로 지배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연합국과 손을 잡고 독일의 항복을 받아내기도 했지만, 1945년 원수가 되어 동구제국에 대한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미국과 대립함으로써 냉전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대내적으로는 반대자에 대한 탄압을 계속했는데, 책에서 묘사하는 그의 모습은 나에게는 미치광이로밖에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끔찍했다. 스탈린 사후 최초의 중앙위원회 총회에서 흐루시초프가 제1서기로 선출되면서 흐루시초프에 의해 스탈린 비판이 시작된다. 작품은 블라디미르 푸틴이 러시아의 대통령이 되기 전, 즉 옐친이 국가의 원수였을 때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러시아 학회 모임에 참석한 영국인 플루크 켈소는 우연히 파푸 라파바라는 정체불명의 노인에게서 스탈린의 임종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스탈린이 가지고 있던 노트를 자신이 숨겼다고 이야기하던 노인은 갑자기 사라지고, 그 이야기에 흥미를 갖게 된 켈소는 그를 찾아 헤매지만 라파바는 끔찍한 시체로 발견된다. 도대체 누가 무엇 때문에 그를 죽였는가를 생각해 볼 사이도 없이, 라파바가 그의 딸에게 단서를 남겼다는 것을 알게 된 켈소는 결국 스탈린의 노트를 발견한다. 그 노트에는 스탈린에게 연정을 느끼던 안나라는 소녀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고 이야기가 이끄는 대로 켈소와 미국인 기자 오브라이언은 그 소녀의 고향인 아크엔젤을 향해 떠난다. 러시아 북부의 항구도시로. 

[아크엔젤]을 읽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어려움을 예상해야 한다. 첫 번째는 '이름'이다. 러시아를 배경으로 하다보니 주인공의 이름을 제외한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한결같이 발음하기 힘들다. 매번 '~프'라고 끝나거나 이름이 여섯자를 넘어가는 경우는 그 이름이 그 이름인 듯하여 도통 책의 진도가 나가지를 못했다. 초반에는 배경설명이 주를 차지하고 있어 약간의 인내심도 필요하다. 두 번째는 러시아의 역사에 대한 인식이다. 역사를 전공했거나, 관심이 많은 사람에게는 문제가 될 수 없겠지만, 나처럼 수박 겉 핥기 식으로 역사를 공부한 사람에게 러시아의 근대사는 책을 읽는 데 커다란 장애물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속도감있게 휘리릭 넘어갔다. 도대체 스탈린의 비밀노트가 감추고 있는 진실은 무엇인가, 노트의 주인으로 판명된 안나는 대체 스탈린과 무슨 관계이며, 라파바를 죽이고 켈소를 추적하는 무리들이 비밀노트를 얻으려는 목적은 무엇인지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지만 모든 의문은 끝부분에서 하나의 매듭으로 완성된다. 

러시아는 지금의 러시아로 불려지기 전부터 세계의 강대국이라 일컬어져왔고, 미국과의 오랜 냉전을 유지했던 사회주의 국가였다. 책 속에서 묘사하는 것처럼 지금도 전 국민의 1/6이 죽은 스탈린을 지지하고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과거에의 회귀를 열망하고 있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과거는 과거로 남겨두고 현재를 현재답게 살아갈 때에 비로소 빛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과거에 집착해 아집과 교만을 버리지 못하면 발전은 커녕 도태되어 버리고 만다. 과거를 발판삼아 미래를 향해 나갈 줄 아는 지성이야말로 현재사회에서 가장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그 곳에는 반드시 평화와 공존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아크엔젤] 을 읽고나서, 냉전체제가 무너짐에 따라 자본주의의 물결에 급하게 휩쓸렸고, 서방세계는 러시아의 역사를, 러시아의 사회를 마치 자기네 것인양 취급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여부를 떠나서 나는 어째서 한 나라의 역사에 다른 나라들의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에 대해 괜히 마음이 아파왔다. 물론 세계는 하나가 되어가고, 어떤 국가도 자국의 힘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우리도 다른 나라에 의해 우리나라의 운명이 결정되었던 시기를 거쳤기 때문인지 남일같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한 때 전세계의 평화를 위협했던 스탈린. 그를 모티브로 마치 사실인 듯 쓰여진 이 책을 통해, 작가의 저력을 다시 한 번 실감한다. 커다란 스크린에서 러시아를 배경으로 숨가쁘게 전개될 이야기를 기쁘게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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