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단의 팬더
타쿠미 츠카사 지음, 신유희 옮김 / 끌림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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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의 순위권에 진입한 책에는 믿음이 간다. 인터넷으로 조사한 정보에 의하면 그 순위 내에 있는 작품 중 내가 재미있게 읽은 책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 텐도 아라타의 [영원의 아이]  등은 미스터리 독자라면 한 번쯤 읽어봐야 할 작품으로 꼽힌다. 워낙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나에게 순위권에 든 책들은 마치 잘 차려진 잔칫상을 보는 것 같은 기분에 들게 하는데, 타쿠미 츠카사의 [금단의 팬더] 또한 <이 미스터리 대단하다!>의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라니 읽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의 흥미를 끈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로 표지에 그려진 팬더! 얼마 전 극장에서 <쿵푸팬더> 를 본 후 원래 좋아하던 곰 같은 동물이 더욱 좋아졌다. <쿵푸팬더>의 주인공 '포'의 팬이 된 건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마냥 팬더가 좋아 팬더에게만 꽂혀있던 내 시선이 책을 덮은 지금은 그 옆의 남자에게 향해 있다. 대나무를 먹고 있는 팬더에게 양념을 뿌리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는 요리사. 처음에는  '이 무슨 코믹한 그림?'이란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오싹하게만 느껴진다. 

코타는 고베에서 '비스트로 코타'라는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요리사다. 임신 중인 아내 아야카와 함께 그녀의 친구 기노시타 미사의 결혼식에 참석하지만 코타의 목적은 다른 곳에 있다. 바로 피로연이 열리는 식당이 '퀴진 드 듀'(신의 요리)였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 번 맛보면 그 동안 먹은 음식이 쓰레기처럼 느껴질 정도의 맛있는 음식을 대접한다는 그 곳은 예약하기도 힘들고, 부유한 사람이 아니면 좀체 지불할 수 없는 높은 가격을 자랑한다. 피로연장에서 감탄하며 음식을 맛보던 코타는 유명한 미식가인 나카지마 옹과 만나고, 얼마 후 그가 '비스트로 코타'에 찾아와 팬더에 관한 기이한 대화를 나누게 된다. 한편 피로연장에서부터 실종된 기노시타 미사의 시아버지 기노시타 요시아키의 회사에서 일하던 마츠노 쇼지라는 사람이 시체로 발견되면서 경찰이 그들의 생활에 발을 들어온다. 실종된 기노시타 요시아키, 살해된 마츠노 쇼지, 무언가 알고 있는 듯한 미사의 남편 다카시, 그리고 밝혀지는 진실은 끔찍하다. 

내가 팬더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TV를 통해 본 모습이 전부다. 대나무를 먹는다는 것, 게을러서 번식기 때도 좀처럼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 그런데 작품 안에서 나카지마 옹이 팬더에 대해 알려준 이야기는 놀랍다. 나카지마 옹의 이야기에 따르면 팬더는 '식육목'과에 속하며사냥감을 잡아 찢는 송곳니는 퇴화했지만 고기를 씹을 수 있는 이는 아직 존재한다고 한다. 지금은 대나무를 먹고 있지만 그 옛날 어떤 죄를 지어서 고기를 먹지 못하게 된 것 같다는 그의 말에 인터넷으로 검색했더니 정말 '식육목과'라고 나와 있다. 팬더는 옛날 무슨 죄를 지어 고기를 못 먹게 된 것일까. 여기서 다 밝혀버리면 재미가 없으므로 나머지는 책을 통해 확인하기를 바란다. 

요리에 관련된 미스터리니만큼 맛있는 음식들의 묘사도 부족하지 않다. 예전 일본만화 [미스터 초밥왕] 을 보면서 초밥이 먹고 싶었던 것처럼 이 책을 읽으면 여러 가지 음식이 먹고 싶어진다. 어쩐지 세상 어딘가에 '비스트로 코타'가 존재할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당장 그 가게를 찾아 떠나고 싶어지는 것이다. 작가의 이력을 보니, 역시!  조리사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고베의 한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10년 넘게  실력을 키운 굉장한 사람이다. 요리에 관련된 소설은 처음이었지만, 마치 눈 앞에 음식들이 차려져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면서 정말 맛있게 읽었다. 

개인적으로는 팬더의 외모와 인간의 본성을 연결지어 생각한 점도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이 작가의 요리와 미스터리가 결합한 또 다른 작품이 기다려진다.



신이 인간을 움직일 때에는 거기에 손을 뻗어 뒤집는 걸까.

마음이 하얀 사람이 다수를 차지하면 평화로워지고,

반대로 시커먼 사람이 그리 되면 다툼이 끊이지 않을지도 모른다(중략)

아무리 극악한 인간이라도 하얀 부분은 있다.

그게 인간이라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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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메르의 모자 - 베르메르의 그림을 통해 본 17세기 동서문명교류사
티모시 브룩 지음, 박인균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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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감동으로 적시고 탄성을 자아내게 한 예술작품들은 많고도 많지만, 나는 그 중에서 베르메르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가 가장 좋다. 작가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진주 귀고리 소녀] 를 읽을 때까지 나는 베르메르라는 화가와 이 그림의 존재조차 몰랐었다. 그런데 어째서였을까. 나는 그 소설을 다 읽자마자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가 직접 보고 싶어졌고, 베르메르라는 화가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다. 그 후로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소재로 하거나 베르메르의 이야기가 담긴 책은 무조건 찾아서 읽었지만, 어디에서나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한정되어 있었다. 36점의 그림을 남겼으나 그의 고향인 델프트에는 한 점도 남아있지 않고, 마지막 36번째 작품은 도난당한 후 행방조차 모른다는 베르메르의 작품들. 그의 그림들을 통해 심도있고 낯선 세상 속으로 다녀왔다. 

그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과연 얼마나 될까. 원래 천성이 그런 건지도 모르지만, 분석하거나 연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나는 책이든 그림이든 보고 읽고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작품을 만들어낸 사람이 아닌 이상 우리가 아무리 들여다보고 연구해도 그의 마음 속을 들여다보는 것에는 한계가 있지 않은가. 작가의 입장에서도 그의 작품과 접하는 사람들이 마음으로 느끼고 감동해주면 충분히 만족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이 책을 천천히 읽고 나니 그림, 혹은 시나 소설 속에 담겨 있는 정보들을 그냥 모르고 지나치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은(시나 소설도) 우리를 다른 세상과 연결시켜주는 창구가 되어준다. 

이 책에 소개된 베르메르의 그림들 또한 그러하다.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다음으로 내가 알고 있는 그림인 <장교와 웃는 소녀>를 보자. 챙이 크고 넓은 모자를 쓴 장교가 한 소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 그림은 표지에도 등장한 작품인데, 여기에서는 모자에 담긴 의미가 중요하다. 당시 네덜란드 사회에서는 비버 모자가 큰 유행이었는데, 토종 비버의 털로 모자에 필요한 펠트를 계속 만들어내다보니, 그 개체수가 급감하게 된다. 16세기 말이 되면서 비버 펠트를 얻을 수 있는 창구로 캐나다가 대두되었고, 캐나다 비버 펠트가 시장에 소량 수입되기 시작하면서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610년대에는 비버 펠트 모자의 가격이 양모 모자보다 10배 가까이 올라 사람들을 비버 모자를 살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구분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7점의 그림을 통해 네덜란드의 당시 사회 풍조와 시장의 모습, 국제적인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런데 한 가지 살짝 아쉬운 점이 있다. 이 책의 부제는 '베르메르의 그림을 통해 본 17세기 동서문명교류사'이다. 당시 네덜란드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중국이란 나라는 커다란 관심의 대상이었다. 저자 또한 중국에 대해 공부한 사람이므로 중국 이야기는 빠질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좀 더 네덜란드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대했었다. 소소한 일상과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기있는 분위기를 느끼고 싶었다. 나의 욕심일지도 모르겠지만, 네덜란드와 중국에 관한 이야기가 균형있게 실려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보고 느끼면 돼!'라고만 생각해서 얼핏 보고 지나쳤던 그림들을 통해 많은 사실과 이야기들을 알게 되어 재미있었다. 베르메르의 그림들에 대해서도 더욱 애정이 생기는 것만 같다. 그림을 보는 새로운 눈을 가르쳐 준 책. 사물을 보는 깊이 있는 눈까지 배우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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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카, 짖지 않는가 미스터리 박스 2
후루카와 히데오 지음, 김성기 옮김 / 이미지박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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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라는 말에 끌렸던 것이 사실이다. 날씨는 덥고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흐르는 이 때, 미스터리 소설은 찬 아이스크림이나 음료수보다도 더위를 잊게 만드는 강력한 힘이 있다. 게다가 이 작품은 여타의 미스터리 도서와는 다른 독특한 책이라고 들어왔기 때문에 그 독특한 점을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말 그대로 정말 독특하다. 그리고 난해하다. 

때는 제2차 세계대전이 거의 끝나가던 시기, 북태평양의 키스카섬에 군견 4마리를 남겨둔 채 주둔해있던 일본군이 떠난다. 키타, 마사오, 마사루, 그리고 미군 포로의 개였던 익스플로전. 인간들이 모두 사라진 땅에서 마사루를 제외한 세 마리의 개들은 자유를 만끽하지만, 어느 날 미군과 만난 마사루는 그들을 지뢰밭으로 유도해 함께 폭사한다. 키타, 마사오, 익스플로전은 미국 본토로 향하는 배에 태워지지만, 배멀미가 심했던 키타만은 여정을 함께하지 못한 채 알래스카에 남겨지게 되고 얼마 후 마사오와 익스플로전 사이에서는 새끼들이 태어난다. 이후 알래스카와 미국 본토에서 그들 자손의 자손의 자손들의 역사가 파란만장하게 펼쳐진다. 

우리가 읽는 책의 대부분이 '사람'이 주인공인데 반해, 이 작품에서는 '개'가 인간보다 우위를 점한다. 지금까지 인간을 중심으로 쓰여왔던 세계의 역사가 키타, 마사오, 익스플로전의 새끼들을 중심으로 재탄생되었다. 인간과 개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면서 진행되는데, 개의 족보(?)에 관해서는 상세하게 밝히고 있는 반면, 인간에 대한 설명에는 무성의하다. 작품 초반에 등장한 대주교라는 노인과, 그가 납치한 일본 야쿠자의 딸인 통통한 소녀의 이야기가 개들의 역사 사이사이에 등장하지만, 작품 중반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정체를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작품의 주인공인 벨카 또한 개들의 역사를 한참 따라간 뒤에야 등장한다. 냉전이 시작되면서 소련과 미국 사이에 알력 다툼이 거세지는 와중, 소련이 먼저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올렸다. 그 후 개를 대상으로 스푸트니크 2호가 발사되었고, 1960년 8월 19일에는 벨카라는 이름의 수캐와 스트렐카라는 이름의 암캐를 함께 태워 스푸트니크 5호를 발사했다. 벨카와 스트렐카는 무사히 지구로 귀환했지만, 그들은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본 몇 안 되는 존재 중 하나이다. 그들이 우주에 있을 때  키타, 마사오, 익스플로전의 자손들은 이따금 그들의 시선을 느끼고 달을 바라보기도 하고, 그 때까지 느끼지 못했던 충만한 힘을 느끼기도 한다. 

군견들이 투입된 인간들의 전쟁 이야기는 사실일 수도,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그것은 그 일의 당사자가 아니라면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근대사를 독특한 시각에서 바라본, 결코 가볍지 않은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이성보다 감성이 풍부하다고 인식해왔던 나에게는 약간 어려운 작품이다. 시종일관 무미건조한 문체에 차가운 얼음이 생각나는 서늘함이 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한여름 더위를 식히기 위해 집어들었다가 의외로 머리를 감싸쥐고 살짝 괴로워하며 읽었지만, 읽고 읽고 읽어볼수록 전혀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훈련받은 개들은 임무를 수행하면서 짖지 않는다. 오직 조용히 자신의 위치에서 주어진 일을 해내기 위해 온힘을 쏟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바른 현상일까. 동물에게 짖는 기능이 있다면 짖어야 한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다. 짖지 않고 인간의 의해 훈련받은 개들은 더 이상 자유로운 본성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래서 벨카도 짖지 않는다. 벨카가, 다른 개들이, 혹은 모든 생명체가 스스로 짖을 때를 함께 기다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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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스타 존의 수상한 휴가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북스토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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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비틀즈의 멤버, 오노 요코의 남편, 마음의 병을 앓는 이에 의해 사망. 이것이 내가 존 레논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다. 아, 하나 더 있다. Let it be 라는 노래. 이제는 아주 옛날 영화가 되어버렸지만 그 때는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비트]를 통해 이 노래를 알았다. 존 레논은 1970년 밴드가 해산할 때까지 멤버들과 13장의 음반을 발표했고, 그 후 그 혼자 솔로 활동을 시작했으나 1975년 오노 요코와의 사이에 아들이 태어나자 4년 동안의 공백기를 갖는다. 그 후 발표된 그의 음악은 예전 음악과 그 빛깔이 뚜렷하게 달라서 많은 사람들이 그 4년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궁금해했다고 한다. 이 책은 그 4년의 공백기에 존에게 일어났던 일의 실화같은 상상이다. 

창작활동을 멈추고 주부로 생활하는 존 레논. 매년 여름휴가를 일본에서 보내는 그의 곁에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주니어, 그리고 집안일을 돌보아주는 다오씨가 있다. 어느 날 존은 롤빵을 사러 나갔다가 어머니를 닮은 여성을 보고 심한 현기증을 느끼고, 다리가 웃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 날부터 시작된 정체불명의 복통과 변비. 그의 변비 앞에서는 그 어떤 강력한 변비약과 관장약도 모두 무용지물이었다. 고통과 씨름하는 그에게 아내 요코는 '아네모네 병원'을 소개해주고, 진료를 받기 시작한 날부터 젊은 시절 그의 기억 한 구석을 차지했던 사람들이 하나씩 그 앞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희미한 안개 속에서 시작된 사람들과의 조우를 통해 존의 가슴에 있던 응어리의 정체가 드러난다. 과연 '아네모네'병원은 어떤 곳이고, 안개 속에서 나타난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그를 찾아오는 것일까. 

이 작품은 오쿠다 히데오의 데뷔작이다. 그래서 그런지 앞서 만났던 작품들과는 분위기가 약간 다르다. 무작정 웃게 만들면서도 삶에 대한 가볍지 않은 시선을 가진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으나, 미스터리적인 요소가 약간 더 짙은 듯하다. 얼마 전 읽은 그의 책은 [스쿠살, 도쿄] 였는데 화장실에 관한 에피소드 부분에서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것도 한창 사람이 붐빌 때인 퇴근길 지하철에서. 사실 존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참 많이 웃었다. 특히 화장실에서 변비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는 그의 모습은 정말 압권이다. 누가, 팝스타 존이 화장실에서 그처럼 애를 쓰리라고 상상이나 하겠는가. 

사람의 상처는 몸에 있을 때보다 마음에 있을 때 더 치유하기 어려운 것 같다. 몸에 있는 상처는 약을 발라주고 시간이 지나면 딱지가 져 새살이 올라오지만, 마음에 있는 상처에 약을 바르고 새살이 돋길 기다리는 것은 참으로 힘겨운 과정이다. 그 상처와 기억의 시간들은 언제 어디를 가든지 우리들을 따라다니면서 더 자주 아프게 하고 항상 느끼게 한다. 존의 변비는 악몽에응로부터 시작되었다. 지난 날 자신이 잘못했던 일들에 대해 충분히 반성하지 못하고, 마음에 응어리가 되어 버린 결과가 악몽으로, 변비로 드러난 것이다. 그러고보면 상처란, 상호작용을 한다.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그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우리 마음 속에 자리한다. 

'아네모네' 병원에서의 치료방법도 괜찮았지만, 결국 존은 자신의 상처를 그 스스로 보듬고 고친다. 상처를 통해 또 한 번 성장했고, 가족과의 사랑을 통해 그는 변화했다. 4년 동안의 공백기 후에 발표한 그의 앨범이 그 전의 음악들과 다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쩌면 이 작품에 실린 것과 비슷한 일이 실제로 일어났기 때문이 아닐까. 항상 변화하고 성장하는 인간의 위대함과 정겨움에 마음이 따뜻해져 온다. 

오쿠다 히데오의 손에서 재탄생된 팝스타 존의 파란만장 변비 해결기. 재미있는 작품이지만 단순히 재미만으로 이 작품을 정의하기에는 부족하다. 웃음과 함께 인간을 향한 깊이있는 시선을 가진 작가 오쿠다 히데오, 그래서 그의 작품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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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에 물들다 1 - 흔들리는 대지
아라이 지음, 임계재 옮김 / 디오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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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달라이라마의 나라, 신비하고 성스러운 나라. 티베트 사태가 일어나기 전, 내가 가지고 있던 티베트에 대한 이미지다. 그 전까지만 해도 티베트는 내가 가고 싶어하는 여행지 중 하나였으며, '티베트'라는 단어를 발음하기만 해도 어쩐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 같은 느낌에 약간의 당혹감마저 느꼈었다. 티베트사태가 보도되자, 나는 그곳의 성스러움과 신비로움이 더럽혀진 것 같아 아쉬웠고 그들의 절박한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그러나 가장 크게 느낀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그렇게 선망의 대상이 되어왔던 '티베트'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 많은 여행서적을 보며 그들의 진짜 모습을 외면하고 있었던 것에 대한 부끄러움. 

이 작품은 내가 알지 못하는 티베트의 모습을 보여준다. 중국 현대문학의 최고 권위 '마오둔 문학상'을 수상하고 중국 본토까지 열광시킨 티베트 작가의 티베트 이야기. 아라이의 장편소설인 이 작품의 원제는 [진애낙정-먼지는 결국 아래로 떨어진다]이다. 권력을 하나의 먼지로 비유하여 비록 중국이 하사한 명칭이지만 '투스'라는 제도가 티베트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잔잔하면서도 때로는 아련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그리고 있다.

'바보'는 마이치 투스의 둘째 아들이다. 만취한 아버지가 어머니를 임신시켜 '바보'가 나왔다고 믿는 사람들은 어머니만 제외하고 그가 바보라는 사실을 좋아한다. 후계자 문제로 골머리를 앓거나 전쟁을 두려워해야 하는 걱정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똑똑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늘 그렇듯 그들은 바보가 보는 것들을 보지 못한다. 그는 바보이지만 귀중한 '뼈대'를 타고 났다. 태양을 다스리는 일을 하는 투스의 아들, 그러나 그에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평온한 티베트에 양귀비 씨앗이 들어오면서 변화의 물결이 거세지고, 양귀비 씨앗을 둘러싼 전쟁, 재산의 축척, 중국에서 일어나는 빨간 한족과 하얀 한족의 싸움은 세상이 흔들리는만큼 티베트도 흔들릴 것이라는 사실을 예고한다.

'바보'는 독특한 인물이다. 평소에는 정말 바보처럼 우스꽝스러운 질문을 하거나, 터무니없는 행동을 하기 일쑤지만 어느 순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똑똑한 말을 한다.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것, 다른 사람은 예측할 수 없는 것들을 마치 몸에 신이 내려온 것처럼 별안간 소리를 질러 알려준다. 그런데 평소에 그가 하던 말이 과연 바보스러운 것이었을까. 그것은 누구도 단정지을 수 없는 문제이다. 사람들의 가치관이 모두 다르듯, 그는 그 나름대로의 가치관이 있었을 뿐이다. 다만, 투스의 아들이라는 이름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모두 좇는 것을 그만 좇고 있지 않다는 현실이 주위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것은 아닐까. '바보'는 그 누구보다 지혜롭고 감수성이 풍부하며 행운이 따르는 인물이었지만 변화하는 세상은 그에게 무릎 꿇기를 강요한다.

작품에는 많은 색이 등장한다. 양귀비 씨앗이 자라 열린 열매에서 나오는 하얀 액, 중국에서 일어난 하얀 한족과 빨간 한족의 싸움, 하얀 겨울을 상징하는 순결한 백색,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흘렸을 피의 붉은색.  '바보'가 물든 것은 어떤 색이었을까. '바보'는, 그리고 티베트는 '변화'라는 색에 물들었다. 그들 자신만의 고유한 풍습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었던 생활 속에 온갖 서양 문물이 유입되고, '투스'라는 이름은 거대한 변화의 물결 앞에 힘없이 무너진다. '변화'를 딱히 한 가지 색으로 지정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은 가장 강력하고 유혹당할 수밖에 없는 색이었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티베트에 역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무지하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던 그대로가 아닌 티베트의 다른 모습을 느낄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가치는 충분하다. 밋밋하지만 천연덕스러운 바보의 말투 속에서 티베트에 대한 그의 사랑이, 작가 아라이의 티베트 사랑이 느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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