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침묵
질베르 시누에 지음, 이원복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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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랗고 빛나는 십자가 위에 하나의 충격적인 문장이 쓰여져 있다. <연쇄살해범이 천사들을 죽이고 있다!>는 문장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 하얀 날개와 머리 위에 빛나는 휘광이 달린 천사는 절대 죽지 않는 존재라고 여겨지고 있으니까. 때문에 이 문장을 읽은 순간부터 호기심이 발동했다. -대체 누가 어떻게 해서 천사들을 죽일 수 있지?-라는 의문과 명확하지는 않지만 어쩐지 떠오르는 범인의 형상을 그리면서 책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작품은 주인공 클라리사 그레이 부인이 집 앞에서 정체불명의 남자가 죽어있는 것을 발견하는 대목으로 시작된다. 그 뒤에 똑같은 장면이 또 나오는데 앞부분은 저명한 추리소설가인 그레이 부인이 쓰는 작품의 한 부분이었고, 그 다음은 실제로 겪는 장면으로 생각된다. 그레이 부인이 현실에서 '직접' 발견한 의문의 남자는 부인에게 어떤 쪽지를 남기고, 부인은 그 쪽지를 토대로 하나의 수첩을 발견한다. 그 수첩에는 알 수 없는 암호가 쓰여져 있었는데, 조사 결과 죽은 의문의 남자는 가브리엘 대천사이며 수첩은 그가 하늘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것이었다. 그의 기록에 의하면 하늘에서 천사들이 살해당하고 있는데, 유력한 범인은 예수, 마호메트, 모세라는 것이었다.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에 맞서 용의자 세 명을 심문하던 그레이 부인은 범인을 알아내지만, 혼란은 멈추지 않는다. 

절실한 기독교인이나 천주교인이라면 이 책을 읽는 것에 무척 거부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들을 위해 희생되었다고 생각한 성스러운 예수가 살인 용의자의 한 사람으로 등장하거니와 저자가 풀어놓는 성경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그리 절실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천주교인인 나에게도 너무 억지스럽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건의 진상은 내가 범인을 추측하고 있었음에도 너무나 터무니없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우리 세상에 진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간이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러므로 그저 문학은 문학이라고 여기고 문장의 흐름에 몸을 맡겨 저자가 풀어놓는 사건의 진상을 들으면 된다. 그 후 믿고 안 믿고는 순전히 독자의 책임이다. 

언젠가부터 종교에 관한 미스터리 소설이 많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인간이 의심이 많아진 것인지 아니면 세상 모든 것에 의문을 가질 정도로 훨씬 지성인이 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종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 아닌가 싶다. '믿음'이 내포하고 있는 것은 어떤 과학적 증거도 필요로 하지 않고, 어떤 기준에도 휘둘리지 않는 절대적인 것이 아닐까. 믿는 사람은 믿는 사람대로, 믿지 않는 사람은 믿지 않는 사람대로 그렇게 어울려 살아가면 되는 것이 아닐까. 나도 종교적 미스터리에 대단한 호기심을 가지고는 있고 하느님을 믿는 사람만이 천국에 간다는 얼토당토하지 않은 말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 종교를 포함한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일일히 이유를 달고 설명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너무나 분석적이고 논리적으로 진행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약간의 불편함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책이 재미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스코틀랜드의 외딴 섬에 살고 있는 추리소설 작가가 주인공이라는 것만으로도 소재는 충분히 흥미롭다.  그녀가 사건해결을 위해 선택된 이유는 조금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지만, 종교적 이론을 토대로 한 작가의 상상력은 놀랍다. 여기저기에 숨어 있는 수수께끼를 알아채고,  상황의 흐름에 어울리지 않는 장면이 나온다고 생각되면 자신의 직감을 믿고 범인을 추리해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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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팅게일의 침묵 가이도 다케루의 메디컬 엔터테인먼트 2
가이도 다케루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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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을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는 나에게 공포 그 자체다. 빈 병실에서 어린아이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든지, 밤마다 시체가 벌떡 일어나서 병원 안을 돌아다닌다든지, 수술 중 억울하게 죽은 환자의 원혼이 복수를 하기 위해 매일 밤 나타난다든지 하는 공포소설을 어렸을 때부터 접한 영향이 아무래도 컸지 싶다. 그래서 그런지 의학드라마는 즐겁게 볼망정, 병원을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에는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현역 의사이자 의학박사인 가이도 다케루가 쓴 이 [나이팅게일의 침묵]을 보면서, 병원이 등장하는 살인사건이지만, 이렇게도 유쾌하고, 이렇게도 슬프게 묘사될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유감이지만 나는 '다구치'와 '시라토리' 로 불려지는 이 콤비가 대활약을 했다는 전작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을 아직까지 읽지 못했다. 앞서 말한 '병원이 배경이었으니까' 가 가장 큰 이유이다. 하지만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을 읽지 않은 나같은 독자라도, 이 책을 읽는 데 큰 무리는 없다.  사실 이 [나이팅게일의 침묵]에 얽힌 비화가 있다. [바티스타..] 후 후속작을 준비하던 저자가 출판사의 편집자에게 내용이 복잡하고 원고 분량이 많다고 하자, 편집자가 책을 상하권으로 내는 것은 위험부담이 크므로 이야기를 둘로 나누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러자 정말 이 저자는 긴 이야기를 두 개로 나누어 편집자에게 냈다고 한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머지않아 나오게 될 [제너럴 루주의 개선]과 바로 이 [나이팅게일의 침묵]이다. 

주된 무대는 바티스타 스캔들로부터 9개월이 지난 시점의 도조대학병원의 소아과병동. 노래에 소질이 있는 간호사 사요는 송년회의 밤, 공연을 마치고 같이 근무하는 동료 쇼코와 거리로 나갔다가 전설의 가수 미즈오치 사에코와 그녀의 매니저 시로사키를 만난다. 라이브 공연을 열고 있던 사에코가 갑자기 피를 토하며 쓰러지자 사요와 쇼코는 도조대학 극락병동의 특실인 도어 투 헤븐에 그녀를 입원시키게 된다. 다구치는 사에코의 주치의로 임명되고, 부정수소외래를 하며 생활하고 있다. 한편, 소아과병동에는 망막아종으로 안구를 적출해야 하는 소년 미즈토가 아쓰시라는 소년과 함께 입원하고 있다. 열성적이고 성실한 간호사 사요는 병문안도 오지 않고 치료하는 데 필요한 동의서조차 작성해주지 않는 미즈토의 아버지에게 병원에 한 번 들러줄 것을 부탁하지만, 미즈토의 아버지 마키무라 데쓰오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그 다음 날 미즈토의 아버지는 토막난 시체가 되어 발견되고, 시라토리와 다구치, 경찰인 가노와 다마무라의 수사가 시작된다! 

제목이 의미하고 있는 것처럼, 이번 작품의 전체를 아우르는 소재는 '노래'다. 피를 토하면서까지 노래를 부른다는 새 나이팅게일이 의미하는 사람은 사에코인가 아니면 사요인가. 사에코는 정말 피를 토하며 쓰러졌지만, 사요는 마음을 쥐어짜며 노래를 부른다. 두 사람 모두 노래를 통해 듣는 상대에게 영상을 전달한다는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로 사에코가 어둠에 가깝다면, 사요는 빛에 가깝다고 느꼈다. 작품 안에 노래를 부르는 두 사람의 모습을 묘사하는 장면이 군데군데 나오는데, 마치 정말로 내 귓가에 음악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느낌이 자꾸 들었다. 그리고 이 '노래'는 결국 사건을 해결하는 열쇠가 된다. 

시라토리가 중후반이 되어서야 등장하기 때문인지, 사실 다구치와 시라토리가 콤비라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았다. 물론 다구치의 어눌한 것 같으면서도 정작 사건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점이나, 시라토리의 능구렁이같은 모습, 경찰 가노의 프로페셔널한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나는 어쩐지 그 주변 인물들에 더 눈이 갔다. 특히 다구치의 동료인 의사들에게. 이 책에는 현실에서도 그런 것처럼 가지각색의 의사와 간호사가 등장한다. 네코타 간호부장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으면서도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도 있고, 아이들에게 수염을 잡히고도 주사를 놓는 호호 할아버지 오쿠데라 교수가 있으며 사요처럼 열성적이고 따뜻한 간호사도 있다. 하지만 우치야마 기요미처럼 단지 돈을 벌기 위해 의사를 한다는 인상을 주는 사람도 있다. 분명 의사라는 직업 또한 사람이 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선택하는 직업 중 하나지만, 보통 사람의 배짱으로는 해내기 어려운 일들이 수두룩하다. 그리고 사람의 목숨을 구한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숭고하고 아름다운 직업임에 틀림없다. 의사가 아닌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데, 의사나 간호사인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을 좀 더 소중히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일까. 그렇게 한다면 분명 의료사고도 줄어들 것이고, 환자와의 관계가 더 아름다워질 것이라고 믿고 있다. 

안구를 적출해야 하는 병에 걸렸음에도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는 미소년 미즈토와, 아직 어리지만 용기있는 아쓰시, 슬프지만 아름다웠던 유키도 함께 해서 참 좋았던 인물들이다. 마지막은 어쩐지 내가 구원받은 듯한 느낌이 들어 눈물이 났다. 아~이렇게 재미있는 소설을 읽게 되어 정말 다행이다! 빨리 [제너럴 루주의 개선]이 나와줬으면 하지만, 일단 그 전에 다구치와 시라토리의 활약을 그린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부터 찾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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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도서관 - 세계 오지에 3천 개의 도서관, 백만 권의 희망을 전한 한 사나이 이야기
존 우드 지음, 이명혜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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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부터 책은 내 가장 친한 친구였다. 집에서도, 학교 쉬는 시간에도, 휴일에도 꼭 내 옆에는 한 권의 책이 놓여 있었고, 책이 없는 세상은 그릴 수가 없었다. 게다가 책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기능도 있어,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책을 보며 가는 사람을 보면 괜히 친근함을 느끼곤 했다. '저 사람은 지금 무슨 책을 읽고 있을까, 내가 읽었던 책일까' 하며 궁금증이 생겼다. 단지 펼치기만 해도 또 다른 세상으로 인도해주는 이 진귀한 물건이 내 옆에 있다는 것에 항상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 그런데 이런 행복을 맛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세계 곳곳에 있다니, 나는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존 우드. 빌 게이츠와 함께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했던 촉망받는 회사 임원이었던 사람. 네팔에서 책이 없어 공부하지 못하는 아이들과 만난 후, 그 때까지 이루었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책과 도서관을 지어주는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회사를 그만둘 때까지의 바쁜 하루하루 속에서도 보지 않는 책들을 기증해달라고 사람들에게 메일을 보내고, 자신의 아버지와 차근차근 꿈을 위해 계획을 세워간다. 처음에는 네팔, 그 다음은 베트남, 그리고 캄보디아, 스리랑카, 에디오피아까지. 후에 지어진 그의 자선단체 이름은 'Room To Read (룸투리드)'다. 지금 그는 10년이 채 되지 않은 세월동안 개발도상국가에 150만 권의 도서를 기증했고,  3,000개의 도서관을 건립했으며, 200개의 학교를 지었다. 장학금을 받는 소녀는 1,700명이며, 기증한 책은 백만권이 되었다. 

자신이 쌓아놓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른 목표를 세워 새롭게 행동하기란 참으로 쉽지 않다. 그 또 다른 목표가 불명확하거나,  안정되고 보장된 삶을 떠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잠재되어 있을 때는 특히 더 그렇다. 존 우드의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목표를 향해 실천하는 용기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그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세상 모든 아이들이 책을 접하고 그 행복을 맛보기를 원한 존 우드의 자애로운 마음이 없었다면 그의 프로젝트는 이렇게 오래까지 계속되지 못햇을 것이고, 단순히 생각만 하고 움직이지 않았다면  'Room To Read'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배운 경험을 토대로 정확한 기준을 세워 단체를 운영해 나간 그의 실력에 깜짝 놀랐다. 기부자들이 기부한 금액이 정확히 어디에 쓰일 것인지 알고 싶어할 것이라 생각해 사진과 서명으로 결과를 보여주는 것은 참 좋은 기획이라고 생각된다. 그로 인해 기부자들이 자신들이 직접적으로 단체의 일원이며 자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되어 주변사람들에게도 권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함께 참여하는 단체를 만든 존 우드. 많은 사람들이 그의 곁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것은 그의 정열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존 우드 뿐만 아니라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자원봉사자들도 대단하다. 그들은 존 우드의 행동을 칭찬하는 데서 그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일에 참여하고 급기야는 일을 주도하기까지 했다.  'Room To Read'가 내세우는 여성에 대한 교육관이 마음에 드는 것은 물론이다. 

책이 묘사하는 그들의 기부문화 또한 놀라웠다. 나는 (혹은 많은 사람들은) 기부란 돈이 많은 사람들이나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지, 내가 가지고 있는 것(그것이 그리 크지 않더라도) 을 주위와 나눌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린 소녀가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평소에 어려워하던 연설을 하고, 많은 아이들이 부모와의 규칙을 지키는 대신 부모들은 10달러씩을 내는 장면을 보면서, 기부라는 것이 생각했던 것처럼 어려운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책을 읽는 내내 이 사람은 왠지 한비야씨와 같은 종류의 사람일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보다는 남을 위해 끊임없이 일하는 사람. 사람들이 책을 읽으면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기뻐하는 사람. 아직도 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문맹이라며 전 세계로 활동을 펼쳐나가겠다는 사람. 그가 전한 것은 책이었지만, 사람들이 받은 것은 '희망' 과 '미래'였다. 책 중간에 실린, 아이들이 환하게 웃는 사진을 보면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어쩐지 나도 그들의 활동에 동참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두근두근하다. 오늘밤, 짧은 영어실력이지만 그의 홈페이지의 문을 두드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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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A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강주헌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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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책장을 덮은 후 저도 모르게 "꺅"소리를 냅다 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재미있거나 신난 것을 만났을 때 나오는 (극히 드문) 저만의 동작을 취했죠. 바로 침대에 엎드려 주먹으로 팡팡 치며 '너무 재미있어!'라고 외치는 것. 뭐라고 말을 하면 좋을까요. [Q&A]는 정말 오랜만에 엄청난 즐거움과 짜릿함, 한편으로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책이었습니다. 

일요일 아침, 적당히 늦장을 부리고 일어나 TV를 켜신 분이라면 한 번쯤은 퀴즈 프로그램을 보셨을 거에요. 처음에는 여러 명이, 그러다가 점점 도전하는 사람이 줄어들고, 마지막에는 홀로 무대에 올라 자기 앞에 다가온 문제의 답을 말해야 하죠. TV 밖에 있는 우리들이야 아는 문제가 나오면 맞추고,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틀려도 되지만 무대에 올라간 사람에게 있어 한 번의 실수는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남기기도 해요.  저는 퀴즈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항상 생각했습니다. 저들이 이 프로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돈? 명예? 성취감? 현실세계의 그들이 무엇을 원했든지와 상관없이 여기, 퀴즈쇼에 참가한 한 명의 젊은이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람 모하마드 토머스.

람 모하마드 토머스라. 종교가 무엇인가에 상관없이 이 이름을 딱 들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응? 좀 이상한 이름이군'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래요. 그의 이름은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림받고 성당에서 생활하는 그를 위해, 한 신부님이 힌두교와 이슬람교와 기독교를 섞어 지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을 이름이거든요. 보통의 책이 순차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과는 달리 이 책은 그가 퀴즈쇼에 참가해서 우승을 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연행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경찰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있는 그에게 수호천사처럼 다가온 변호사 스미타. 스미타는 그에게 당신을 돕기 위해서는 진실을 알아야 한다며 퀴즈쇼와 관계된 모든 것을 밝혀달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람 모하마드 토머스의 굴곡진 인생이 하나씩 밝혀진답니다. 

잠깐!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람 모하마드 토머스가 살고 있는 나라는 바로 '인도'라는 것이죠. 문명의 발상지로 유명하고, 카스트제도로 인해 인권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으며,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타지마할 궁전이 있고, 누구나 한 번씩 떠나기를 원하는 여행지로 꼽히지만 쥐도 새도 모르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는 알쏭당쏭한 나라, 인도랍니다. 사실 저자는 인도 알라하바드의 법률가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해요. 법률가 집안이라면 상당한 지위와 재산을 가지고 있었을텐데, 그런 그가 어째서 고아에다 행복해질만하면 불행을 맛보는 남자의 이야기를 쓰게 되었을까요. 어쩌면 그는 처해진 상황에 따라 얻을 수도 있고 얻지 못할 수도 있는 '지식' 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삶을 살아는 데 필요한 '지혜'를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그도 그럴 것이 우리의 주인공은 제대로 된 교육은 받지 못했거든요. 

어쨌든 람 모하마드 토머스의 인생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순탄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불행했지요. 부모라고 여겼던 신부님의 죽음, 소년원에서의 생활, 고통받는 누군가를 구하기 위한 행동이었다고는 하지만 그로 인해 다른 사람을 상처입히기도 했고, 성실히 일해 벌어 모은 돈을 빼앗기고, 실수지만 누군가를 죽이고..평범하다 못해 그 날이 그 날인 생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저에게는 그런 람 모하마드 토머스가 무척 대단하게 보였어요. 끊임없이 고통받고 험한 처지에 놓이면서도 결코 굴하지 않고 그 안에서 나름대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그에게, 퀴즈쇼는 그의 인생을 집약해 놓은 것이나 다름 없었지요. 한 마디로 퀴즈쇼가 그를 선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에요.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행운을 바라는 자세랍니다. 행운을 향해 나아가는 자세라고 할까요. 책을 읽어본 여러분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겠지만 마지막의 동전 이야기에서 저는 전율을 느꼈어요.  어쩌면 작가는 카스트제도가 있는 인도를 배경으로, 행운을 가져오는 것은 법도 아니고, 다른 사람도 아니며,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요. 

삶이란..참 신기해요. 일상에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연결되고 연결되어서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요. 과거의 어느 순간에서 우리가 선택한 일들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결국 모든 일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는 게 되죠. 람 모하마드 토머스의 인생도 그랬어요. 퀴즈쇼의 한 문제 한 문제로 나타나는 그의 삶은 그가 만들어낸 것이었죠. 그랬기 때문에 그는 억만장자가 될 수 있었던 거에요. 이렇게 생각하니, 지금, 한 순간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생각 안 드세요? 

어때요? 책을 좋아하는 당신과 그 쪽의 책을 좋아하지 않는 당신에게도 이 책은 꼭 권하고 싶어요! 인도의 생활을 엿볼 수도 있고, 람 모하마드 토머스에 대해 전부 담겨 있는 이 책을 읽은 다음에는 아마 당신도 나처럼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아질 거에요. 그러니, 읽고나서 우리 다시 한 번 이 작품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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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8 0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 최대의 과학수사 X파일
이종호 지음 / 글로연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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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미국드라마 CSI의 팬이다. 라스베가스를 비롯해 마이애미, 뉴욕 시리즈를 나름대로 주인공의 매력을 분석하고 각각의 독특한 분위기를 비교해가면서 즐기곤 한다. 사람이 살해되거나 사고를 당하여 사망하는 장면은 무섭기도 하고 끔찍하기도 하지만, 증거를 분석해서 범인을 잡아들이는 과정이 무척 흥미롭기 때문이다. 아마도 범인을 잡는데 한 몫하는 과학기술의 매력도 CSI의 인기요인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작년 하반기에 케이블 모 방송국에서 방영된 드라마 '별순검'을 무척 흥미롭게 봤다. 지금같은 발달된 기술이 없어도 예전부터 내려오는 책과 시대상을 반영하는 방법으로 범인을 밝히는 그 매력에 쏙 빠져들었다. 

이 책은 드라마 별순검의 인기를 업고 나온 책 중 하나라고 보여진다. 케이블에서는 뚫기 힘든 1%의 시청률을 돌파하고 3~4%를 기록한 별순검의 이야기가 곳곳에서 눈에 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추리 수사의 탄생부터 별순검과 다모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범죄를 수사할 때의 왕들의 태도나 품격, 조선시대에 사용한 과학수사 책들을 소개하며, 조선시대의 법전과 사건일지, 형벌제도까지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책에 실린 내용은 모두 흥미롭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깊었던 내용들을 몇 가지 이야기해 보면,  별순검은 조선왕조 전 기간에 걸쳐 존재했던 제도가 아니라 대한제국 시대에 탄생한 관직이라고 한다. 드라마 '별순검'에도 일본 상인들과 신문 등 조선시대 초기에는 발견할 수 없는 문물들이 등장한다. 별순검의 주인공은 순검과 '다모'인데 다모는 의녀보다도 낮은 신분의 사람이었다고 전해진다. 

한 가지 특이할만한 사항은 왕들이 법전을 외우고 법 사항에 능통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정조 10년 이영규가 김도흥을 발로 차 사망한 사건을 보면 자세히 알 수 있다 (p63) 저자는 이에 대해 제도가 성숙되어야 하고 또 그에 대한 시행 원칙과 지침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라고 말한다. 또한 조선시대의 수사관들이 과학수사를 하기 위해 사용한 책으로 [무원록], [증수무원록]과 같은 법학자료들을 토대로 했다고 하니, 서양보다 앞서있다고도 할 수 있는 그 과학적기법에 놀라울 따름이다. 

조선시대를 관통하는 범죄수사의 원칙은 <반드시 진실을 밝혀 억울한 이가 없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원칙도 신분사회에서는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왕자나 권력의 핵심에 있는 인물들이 사건에 휘말렸을 때는 이를 감싸주려는 왕과 간신들의 모습에서 그것을 읽을 수 있다.  지금 사회에서도 돈이 많거나 연줄이 있는 사람은 사건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 밝혀져도 쉬쉬하며 넘어가는 일이 빈번하다. 세월이 흘러도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은 전혀 변하지 않는 것 같아 씁쓸했다.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 중의 하나는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모습은 똑같다는 것이었다. 치정에 의한 살인, 존속상해, 피해자는 거의 여성으로 한정되는 모습을 보면서 일어난 사건을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에서 본 조선시대 사람들의 인자한 얼굴 뒤에 흉악한 모습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니, 까닭모를 배신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래도,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그들의 생활을 알게 된 것 같기도 하다.  범죄를 어떻게 수사했느냐부터, 법전, 형벌제도까지 다루는 약간은 살벌한 이 책도 먼 옛날 우리 조상들의 지혜를 엿보는 지침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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