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서점 직원인 내가 도서정가제 법안에 대해 말해봤자, 그건 너희쪽 입장이야 라는 말밖에 못들을 거라 참고 있었는데, 도저히 못참겠다.
엊그제 완전 도서정가제 법안이 국회에 안건으로 올라갔다. 내용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도서정가제를 강화하여, 마일리지, 사은품 행사, 쿠폰, 구간.신간 구분없이 모든 종류의 할인을 일체 불가한다는 것. 추진하고 있는 한국서점조합연합회의 논리는 아래와 같다.
1. "책은 공공적이고 문화적인 속성상 일반 공산품처럼 무조건적인 할인경쟁이 적용되는 성격의 상품이 아니란 점을 감안해야 한다."
2. "할인경쟁이 얼핏 소비자들에겐 이익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할인을 대비해 책값을 올리는 거품현상이 등장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팔리는 책만 취급하게 돼 다양성이 사라져 좋은 책이 나올 기회가 봉쇄될 우려가 크다."
* 법안을 발의한 우상호 의원은 "위기에 처한 출판산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도서정가제의 개정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개정안이 별 무리없이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1) 공공적이고 문화적인 무엇은(책을 가리켜 '상품'이라 말하는 것을 무척 꺼리시는 모양이니) 할인하면 안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영화도 연극 등등도 할인을 하는데 책은 다른가? 스크린쿼터처럼 일정 정도 보호가 필요한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지금 현재도 도서정가제 실시 중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책도 상품 맞다. 도서관 서가에 꽂혀 극소수의 사람만 알아봐줄 수 있는 고귀한 무엇이 아니란 말이다. 많이 읽히고 널리 알려지기 위해 마케팅도 필요하고 홍보도 필요한 무엇이란 말이다. 그리고 모든 종류의 책이 과연 '공공적이고 문화적'이기는 한가?
2. 책값이 오른 건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상품들처럼 책값 역시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상승하기 마련이다. 일전에 종이값 상승도 있었고, 전적으로 인터넷 서점의 할인 때문에 책값이 올랐다고 말할 수 없다. 그리고 할인해 팔면 '팔리는 책만 취급하게 돼 다양성이 사라져 좋은 책이 나올 기회가 사라진다'니. 지나가던 개도 웃을 소리다. 어차피 정가제라 신간은 10% 밖에 할인 못한다. 어설픈 책 아무리 싸게 팔아봤자 절대 안 팔린다. 좋은 책은 결국 그 자신의 몫을 제대로 찾아가더라. 도서정가제 하면 '안 팔리던 좋은 책'이 많이 팔릴까. 그나마 팔리던 좋은 책들도 덜 팔릴 거다. 그리고 다양성을 해친다니. 우리는 매일매일 수권의 책을 훑어본다. 책 나름의 가치를 찾아 적절히 프로모션할 수 있도록. 인터넷 서점의 메인 도서는 매주 토요일자 신문의 북섹션처럼 담당자의 책 검토와 회의를 거쳐 선정된다. 좋은 책이 묻히는 일이 없도록 일종의 '미디어' 역할을 한단 말이다. 그리고 독자서평 역시 마찬가지. 누구나 매일 서점에 직접 나가서 신간을 체크할 수는 없는 일. 그런 정보를 걸러 제공하는 우리는 도서산업에 전혀 기여를 못하고 있단 말인가.
* 무엇보다 화가 나는 건 위기에 처한 출판산업이 마치 인터넷 서점의 할인 때문인듯 말하는 태도이다. 왜 위기의 원인을 밖에서만 찾는가. 아무리 시장이 어렵다어렵다 하지만, 양질의 베스트셀러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지 못한 업계 탓도 크다. 우리도 책을 사랑하고, 좋은 책을 찾아 많은 이들에게 알리려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잊을만 하면 인터넷 서점을 들쑤시며 책 더 싸게 팔지 못해 혈안이 된 장사꾼 취급을 하니 너무 화가 난다. 출판업계를 구제하기 위해 도서정가제를 개정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니, 하. 그래봤자 중소 서점들 쉽게 못살린다. 그런 논리라면, 대형 마트 때문에 망해가는 동네 슈퍼마켓을 위해서는 왜 조치하지 않나. 완전 도서정가제 실시해봤자 어차피 대형 오프라인 서점만 잘될테고, 이미 자리를 잡은 상위 인터넷 서점은 큰 타격 없을 거다. 그리고 이 법안 개정에서 '소비자'의 입장은 어디에도 없다. 오직 서련의 입장만 있을 뿐. 오프라인 서점에도 쿠폰북/회원제 마일리지가 있고 일반 음식점이나 커피숍 등에서도 쿠폰/도장 등의 수단을 이용하는데, 우리는 그냥 책만 등록해놓고 알아서 사가세요. 손놓고 있으란 말인가. 인터넷 서점 수익률이야 개선되겠지만, 이렇게 가격경쟁을 제한하는 것이 올바른 시장의 발전방향이라 할 수 있는가. 온라인 서점은 점포 비용이 안 들기 때문에 거기서 발생하는 이익을 고객에게 일정 정도 돌려주는 측면에서 추가 할인이 가능해진다. 소비자 입장에서 당연하기도 하고. 그것도 불만인가. 그래 봤자 결국 파이만 줄어들 거란 말이다. 제기랄.
(너무 화가 나 횡설수설 쓴 글이라 내일이면 삭제할지도 모르니, 혹시라도 퍼가지 말아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