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지에서'를 읽었다고 생각한 건 '6호 병동'과 착각한 탓이다. 두서 없이 읽고, 온전히 나의 것으로 만들어 놓지 못한 탓이다. '유형지에서'를 읽으면서 '상자 속 인간'을 떠올렸다. 시간이 흘러 두 작품을 또 혼동하는 날이 오는 건 아닌지,살짝 걱정도 되지만, 현재로썬 그렇게 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왜냐하면, 나만의 체홉단편선을 엮게 되는 날이 온다면, '유형지에서'와 '상자 속 인간'은 한 테마로 담고 싶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을 갖게 한 건 출판사마다 같은 제목으로 실린 이유 때문이다.


















여인이 되기도 하고 부인이 되기도 한다. 사랑에 대하여 와 사랑에 관하여..그 미묘한 차이를 비교하는 재미도 있지 않을까... 그동안 체홉의 단편집이란 사실에만 집중했었는데, 이번에 다시 단편을 찾아 읽으면서, 제목에 따라 구성된 작품이 다른 듯 닮은 이유에 대해 생각하다..가 나도 주제를 정해보고 싶은 뭐 그런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


"그는 좋아...좋아. 당신은 나빠! 당신은 나빠! 나리는 좋은 사람,훌륭한 사람이야.당신은 짐승이야.당신은 나빠! 나는 산 사람이고,당신은 죽은 사람.......신은 사람이 살면서 기뻐하고 애수에 잠기고 슬퍼하도록 사람을 창조했어.그런데 당신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즉 당신은 산 사람이 아니고 돌맹이고 진흙이야! 돌맹이는 아무것도 필요 없고 당신도 아무것도 필요 없어(...)"/124쪽 


처음에는 '유형지에서' 뭔가 희망을 꿈꾸는 이들이 무모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그런 이들이 좌절하는 모습에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듯한 늙은이(세묜)가 악마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젊은 타타르인의 절규를 들으면서 다른 시선으로 읽혀졌다. 희망을 갖는 것이 그렇게 잘못된 것인가? 아니 그보다 '유형지'라는 공간을 이중적 의미로 해석할 수 도 있지 않을까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졌다. 정말 유배당한 곳에서 희망을 꿈꾼다는 것이 무모해 보일수도 있겠지만,현실의 삶을 유형지..라 생각하며 살고 있다면..'상자 속 인간'의 와 닮아 있다는 기분.읽을 때는  중의적 의미가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상자 속 사나이'와 묘하게 닮은 듯한 느낌이 따라오면서..든 생각이다.기분 좋은 오독이다.(상자 속에 담긴 인간이 벨리코프와 세묜 뿐은 아닐테니까..)


"그는 집 안에서도 똑같았어요.실내복에 실내모를 쓰고 덧문에 빗장까지 걸고 온갖 금지와 제한을 두었어요.그리고 아,아무 일도 없어야 할 텐데!라고 말하곤 했지요.(...)/'상자 속의 사나이'.191쪽

"실제로 벨리코프를 땅속에 묻었건만 상자 속 인간들은 여전히 많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무수히 나타날 겁니다!"/'상자 속의 인간'. 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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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체홉의 단편 전부를 읽어 보고 싶지만 가능 할 지 모르겠다. 올해는 바지런히 읽어 볼 생각이다. 물론 두 번 이상 읽은 책은 일단 뒤로 미루기로... 그런데 '사랑에 대하여' 역시 처름 읽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리뷰는 남기지 않았지만, 다른 책을 읽게 된 이유에, '사랑에 대하여'가 언급되서 놀랐다.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는 체홉의 소설<사랑에 관하여>가 짧지만 강렬하게 등장한다. - 홍상수 영화를 애정하던 시절, 소세키의 <그후>도 그렇고, 카프카의 <변신>이 등장하던 영화도 있었다.. 짧고 강렬하게 등장한 이유가 궁금해서라도, 영화를 다시 챙겨 봐야 할 것 같다. '사랑에 관하여'를 어떻게 언급했을지 궁금하다. 이미 두 번째 읽기 지만,.기억 나지 않는 관계로 처음 읽는 거나 마찬가지다.


"(..) 나는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했습니다.그리고 쓰라린 고통을 느끼며 우리의 사랑을 방해한 모든 것들이 얼마나 쓸데없고 하찮고 거짓되었는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지요.사랑을 할 때 그 사랑을 논하려면 일반적인 의미의 죄나,선, 행복이나 불행보다 더 중요하고 높은 곳에서 출발해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절대 사랑을 논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222쪽


'사랑에 관하여' 라는 제목에서 (이미) 달콤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아닐거라 예감했다. 도대체 사랑이란 뭘까..라고 물어보는 순간, '고통'에 관한 화두로 흘러갈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에서 말랑말랑한 이야기는 거의 접해보지 못한 것도 같다. 사랑은 '신비'로워서 주변의 상황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는 이야기인걸까... 현실의 사랑으로 돌아온 순간 그들을 기다리는 건 '고통'이다. 상투적으로 말하면,남자의 사랑은 도덕적으로 정당(?)하지 않다고 할 수 있을 텐데,'고통'이란 화두가 들어온 건 <주책공사>에서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읽은 후라 더 그랬던 것 같다. 이별을 고통으로 오독한 셈인데.. <읽는 슬픔, 말하는 사랑>을 통해 사랑도 삶도 어정쩡하지 말아야 한다는 작가님의 시선에..황인찬님의 글도 챙겨봐야 겠다 생각했다. 남자는,그녀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에 안도했을지 모르겠지만..자신이 적극적이지 못했던 행동(?)으로 인해 고통이란 상처를 받지 않았던가... 그래도,사랑을 신비(?)롭다고 포장하는 것에 대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공감하기가 쉽지 않을것 같다. 


" '사랑의 신비는 아주 크다'는 것입니다.사람들이 사랑에 대해 쓰고 이야기했던 다른 모든 것들은 해명이 아니라 오히려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제기한 데에 불과하죠.어느 한 경우에 적합해 보이는 설명도 다른 열 가지 경우엔 적합하지 않아요.내 생각에 가장 좋은 방법은 일반화하려 애쓰지 말고 각각의 경우를 따로따로 설명하는 겁니다(...)"/210쪽








"<읽는 슬픔,말하는 사랑>>이라는 책 제목을 처음 봤을 때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슬픔'과 '사랑'이 왠지 모르게 어울리지 않았거든요. 이별과 사랑이 더 어울리지 않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는 내내 왜 책 제목이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깨달았습니다.

결국 사랑은 슬픔이었습니다.사랑하면 마냥 행복하고 기쁜게 아니지요(...) 이 책을 사유하는 내내 느꼈던 감정은 '삶과 사랑은 어정쩡하게 기다리고 지켜보는 게 아니라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거였습니다"/238~2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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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부모님이 외출하고 한두 시간 동안 마당을 마음대로 뛰어다니며 완전한 자유를 만끽했을 때 느꼈던 것과 비슷한 쾌감을 맛봤다.아, 자유!자유! 자유의 가능성에 대한 암시,그 희미한 희망조차 영혼에 날개를 달아준다. 그렇지 않은가? /71쪽 <상자 속의 사나이>










"이 감정은 가령 우리가 아주 오래전 어린 시절에,어른들이 외출한 한두 시간 동아 완전한 자유를 만끽하며 정원을 뛰어다녔을 때 느꼈던 감정과 비슷했습니다.아, 자유,자유! 자유의 가능성에 대한 암시나 희미한 희망조차 우리 영혼에 날개를 달아 줍니다.그렇지 않은가요?"/205쪽 '상자 속 인간'


'체호프의 문장들' 만 읽을 때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민음사에서 나온 '상자 속 인간'을 읽으면서 번역의 온도차..를 이렇게 또 경험하게 되는 구나 생각했다. 다른 출판사의 번역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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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별로 구입해 보고 싶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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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홉의 단편(500여편이라고 알고 있다)을 다 읽는 날이 오긴 할까?  그러나 한 편씩 읽다보면,언젠가는 다 읽게 될지도 모른다는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 민음사에서는 이미 체홉의 단편집이 한 번 출간될 걸로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후에도 또 나올지 모르겠다. '상자 속 인간' 을 읽었다. "벨리코프는 자신의 생각까지도 상자 속에 감추려고 애썼습니다.그에게 분명한 것이란,뭔가를 금지하는 지시문과 신문기사뿐이었죠"/188쪽 리뷰로 남겨 놓은 줄 알았으나..아니었다. 분명 읽은 기억은 있는데..아니면 읽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걸까.. 그런데 ~자신의 생각까지도 상자 속에 감추려고.. 문장을 읽는 순간, 분명(?) 읽었다는 기억이 났다. 그러나 결말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제목에서 이미 무얼 이야기하고 싶은지 사실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러나 상자 속 인간..의 주인공은 어쩌면 벨리코프 가 아닐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도 저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다. 자신 만의 세계 속에 숨어 사는 남자를 향한 다른 이들의 시선을 듣다 보면,그들 역시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 속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리고 나는 <체호프에 관하여>에서 비슷한 생각도 만났고,우리가 상자 속에서 허우적거릴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알았다.


"독자는 이 인물의 비상식적인 행동보다는 이 이야기의 냉혹한 교훈에 주목해야 한다.이제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상자(관)속에 갇힌 교사의 죽음 이후,그의 동료들은 잠시나마 자유로운 아이처럼 느낀다.그러나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일상은 본래의 흐름을 되찾는다.(...)벨리코프를 조롱하는 사람들은 그가 단지 그들 자신의 삶을 축약한 상징일 뿐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그들 역시 다른 현실의 가능성을 탐색할 권리는 없다고 믿으며 살아가고 있다"/21쪽 


'상자 속의 사나이' 를 통해 체홉이 정말로 말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였을지 짐작이 간다.그런데 '사랑에 대하여' 제목으로 '상자 속의 사나이'가 실린 이유가 또 궁금했었는데,<체호프에 관하여> 덕분에 그 비밀도 풀렸다. 물론 단편 제목이기도 해서,타이틀로 정해졌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상자 속의 사나이>가 남자의 이야기를 잃어버린 인생을 주제로 한 3부작 중 하나에 포함되었다는 점이다.벨리코프가 그녀를 사랑했고, 결혼했다면,조금 다른 인생을 살았을지도..그러나 운명에 갇혀 사는 삶을 살아가는 이에게,결혼은 또 다른 운명의 굴레가 되지 않았을까. 소설과,체홉에 관한 책을 함께 읽어가는 것도 즐거움이란 사실을 알았다. 비교하는 재미와 새롭게 알게 되는 사실이 뭔가 체홉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기분이다. (접속사가 갖는 상징성도 알게 되었으니,좀더 '접속사'에 집중해봐야 겠다. 물론 함몰되는 건 위험하겠지만^^)


"그의 작품에서 접속사는 대개 대립을 나타내기보다는 사건을 연장하고 서로 연결하는 역활을 한다. 희망과 불확실성이 공존하는 이유는 바로 시간이 먼 곳의 자유를 향해 열려 있기 때문이다."/7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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