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증명 증명 시리즈 3부작
모리무라 세이치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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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악적인 면을 다루고 있기에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드라마에서 조차 사람을 죽이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세상이 이러하니 알아서 적응하라는 것일까. 예전에는 말도 안되는 것으로도 척척 심의로 걸러내더니 요즘에는 아무런 안전장치 조차없이 드라마속에서 생활속으로 자연스럽게 침투되고 있다. 앞길을 막으면 대수롭지 않게 사람을 죽이고 사람을 억압하는게 드라마에서 당연히 나올만한 소재인가~ 욕하면서도 본다는 막장 드라마의 수위는 점점 올라가고 있다. 20년전에 출간되었던 이 책도 그때 당시만 해도 충격적이였을 것이다. 시간의 흐름이 무색할정도로 현실과 맞닿아 있다는게 무서운 일이다. 며칠전 뉴스에서 필로폰을 인터넷으로 쉽게 구입할 수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어디까지 갈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좋은것만 듣고 보고 살아고 짧은 인생이라는 생각에 '인간의 증명'은 무겁게 느껴졌다.

 

어릴적 아픔으로 형사가 되어서 나쁜놈들을 아주 작살 내버리겠다고 생각하는 무네스에라는 형사가 등장한다. 이 책에서는 시대적 배경이 그러하듯이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 패하고 패전국으로써 미국에 지배를 받고 있던 시절로 잠깐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사람으로써는 그때 당시를 생각하면 미국이라는 나라에 이를 갈겠지만 이 책을 읽고 있는 나는 약간 콧웃음이 나왔다. 우리가 일본에 당한걸 생각하면 그정도는 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전쟁으로 인해서 피해를 본 사람은 국민들일테니까 한쪽에만 치우치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겠다. 무네스에의 아버지는 무고한 여성이 미군들에 의해 짓밟히는 것을 도와주다 죽게 된다. 그때의 원한으로 무네스에는 사람은 믿을 수 없는 존재라는 불신과 그때 도와주지 않고 구경만 했던 주변인과 미군인 그리고 도망가버린 여성을 증오하게 된다. 여기서 사이코패스가 등장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다행히 이야기는 그렇게 진행되지 않는다. 사건의 시작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앳되어 보이는 흑인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호화로운 스카이 라운지로 올라가던 엘리베이터에 그 청년은 죽은체 발견된다. 일본에서 외국인이 죽은 것이지만 흑인이라서 그런지 크게 신경을 쓰는 것 같지 않는 눈치였다.

 

몸이 아픈 오야마다는 어쩔수 없이 부인이 화류계쪽에 일을 나가게 된다. 오야마다는 불같은 질투에 눈이 멀것 같지만 자신이 아파서 애쓰는 부인에게 뭐라 할수도 없는 입장이였다. 그러다 점점 달라지는 부인을 느끼지만 금방 괜찮아질꺼라고 자신을 안심시킨다. 그러던 중 부인이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야마다는 부인이 그놈과 도망간것이라 생각하고 뒷조사를 시작한다.

 

고오리 교헤이는 정치가 아버지와 잘나가는 어머니를 두었다. 돈은 넘치게 많았지만 사랑은 받지 못했다. 교헤이는 막 살고 있는 중이였다. 학교에도 가지 않고 자신을 망가뜨리고 돈으로 되는 일은 모든지 서슴치 않고 있다. 이러다가 일내겠구나 싶었는데 정말 큰일을 저지르게 된다. 교헤이네 부모는 겉으로는 완벽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가족의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는 남보다 못한 것 같다. 요즘엔 아버지가 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부모를 찔러 죽이기도 하는 세상이다. 정말 어르신들 말씀대로 세상이 말세다. 어떻게 그런짓을 저지를 수 있는 것인지, 주체할 수 없는 분노의 감정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표출하게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기본적으로 흑인 청년의 죽음을 쫓아가는 가운데 여러가지 사건들이 맞물려 있다. 오야마다는 실종된 부인을 찾다가 바람난 상대남자를 만나게 된다. 누가 봐도 비교될 정도로 멋진 사람이였다. 재미있게도 두 사람은 힘을 합쳐서 부인을 찾는데 주력하게 된다. 인생에 어떤일이 벌어질지 몰라 재미있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하고 쓰라리기도 하지만 이럴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두 사람은 남겨진 실마리를 따라서 부인이 흔적을 찾아낸다. 무네스에는 파트너와 함께 흑인남자의 죽음에 대한 실마리를 서서히 풀어 나간다. 끊길듯 하다가도 무언가와 연결되어 있어 점점 범인에 가까워져 간다. 다양한 사람들과 복합적인 이야기가 섞여있으면서도 질서정연하다. 그러면서도 흑인청년을 죽인 범인에 대한 호기심을 끝까지 놓지 못하게 만든다. 어느정도 읽어 보신 분이라면 범인이 누구인지 알았을 것이다. 나는 거기에 대해 전혀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범인이 누구인가 궁금증에 끝까지 책을 잡고 읽어 내려갔다. 그 끝에는 인간에 대한 가느다랗지만 끊어지지 않는 희망이 담겨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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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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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달전에 <신참자>를 훈훈하게 읽었다. 아무래도 추리소설의 묘미는 사건이 벌어지고 범인을 잡아내는 거겠지만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살펴보는 것도 꽤나 매력적이였다. 이 책도 비슷한 내용인지 알고 후딱 주문했다. 요즘엔 열심히 책의 내용을 살펴보다가도 때론 비슷한 내용이겠지 하고는 그냥 사버릴때가 있다. 나미야 잡화점은 시간의 흐름이 출렁 거리는 곳이였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연결되어 있다. 처음에는 나미야 잡화점에서 아이들의 장난으로 시작된 고민 상담은 점차 진지해져갔다. <담장은 우유 상자에>는 이야기의 시점이 지금으로 시작된다. 뒤에서 앞으로 나미야 잡화점을 둘러싼 시간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편지를 통해서 과거와 현재, 미래가 이어진다는 느낌에서 영화 '시월애'가 떠올랐다. 시월애를 떠오르니 가슴이 아련해지는 음악이 생각났다. 그 집앞에 있던 빨간색의 귀여운 우편함도 생각났다. 우리집 앞에도 그런 우편함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던 적도 있었지만 그런 우편함이 어디서 파는지 그때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시월애 편지지를 사서 친구한테 편지를 쓰면서 꽤나 유치한 글을 썼었던 것 같다. 친구가 내 편지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을까 종종 물어보고 싶어질때도 있고, 내가 쓴 편지를 읽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들때도 있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서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한테 편지를 쓸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감상적인 생각도 들었다. 시간이 빠른것 같지만 더디게 흘러갈때도 있었고 시간이 멈춰있을때도 있었다. 그건 나만의 생각이였겠지만, 사람마다 시간의 흐름은 다른 것 같다. 오늘의 시간이 흐르면 내일이 되고 몇 해전이 되고 과거가 되어 추억이 된다. 힘들었던 기억이 있었다면 그때는 바보가 되어도 좋다고 생각할지라도 많은 시간이 지나면 어스름해지곤 한다. 그래서 당장은 오늘을 살아낼 수 있는 것 같다. 슬렁슬렁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오늘을 보내고 내일이 되어도 좋다.

 

아무래도 인생 상담이란 것은 연륜이 있어야 하는게 아닐까 싶다. 세상을 살아오고 겪었던 시간들의 흐름을 뒤로 하고 이제는 나른한 오후를 보내고 있는 느낌. 그건 역시 편견일지도 모른다. 세상을 많이 겪지 않은 어린 아이가 더 좋은 혜안을 발휘할지도 모른다. 더 기발한 상상력으로. 이야기의 시작은 도둑 3인조가 폐가(나미야 잡화점)를 찾아 숨어들면서 시작된다. 간판마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미야 잡화점은 오래 되었다. 우연하게 편지가 툭 떨어지면서 세 사람은 누군가 있는게 아닐까 하면서 가슴을 조린다. 첫번째 사연은 운동선수로 뛰고 있는 달 토끼였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병에 걸렸고 곧 있을 올림픽에 꼭 출전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 옆에 있어야 할지, 그가 원하고 바라던 대로 올림픽을 위해서 열심히 운동을 해야할지에 대해서 묻고 있었다. 난처한 일이다. 올림픽을 위해서 열심히 준비해 왔을 것이고 사랑하는 사람은 몇달후에 죽는다. 누군가의 고민들 들어준다는 것은 정말 쉬운일이 아니다. 고민을 털어 놓을때만 있어도 사람들은 덜 아프고 힘들지 모르겠다. 3인조 도둑은 그녀의 편지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되고 그 편지가 과거에서 온 것을 깨닫게 된다. 조언을 해주더라도 그걸 받아들일지는 그 사람의 몫이다. 누군가를 위해 진심으로 말해준다 해도 상대방이 알지 못한다면 허사이기도 하다.

 

지금 알았던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좀 더 현명하게 대처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때는 청개구리띠가 발동해서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알고 있는 것과 몸으로 느끼는 것은 다르니까. 늦게 깨닫고 더디 알아지는 사람에게는 더욱 힘든 일인듯 하다. 이 이야기속 인물들은 나미야 잡화점과 환광원이라는 곳이 이어져있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때쯤에는 그 두 곳의 사연에 대해서 알게 된다. 사람의 인연이란 것은 어쩌면 우연이란게 없을지도 모른다. 만나야 할 사람은 반드시 만나는 것처럼, 물 흐르듯이 만나지는 게 삶인가 보다. 이왕이면 좋은 인연이 닿아 있다면 좋겠다. 이 세상에 고민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고민없이 행복한 사람이 많이 있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다. 거리에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연을 듣자면 책 수십권으로는 모자랄지도 모르겠다. 어머니가 그동안 살아온 인생을 책 수십권으로도 모자라겠다고 하셨지만 책을 내면 누가 읽어 주기는 하겠냐며 아버지께서 웃으시면서 말씀 하신다. 그럴때면 어머니는 화를 내시고 아버지는 살포시 밖으로 나가신다. 책으로 쓰면 수십권도 모자라고 이야기 할라치면 몇달을 지세워야 하는게 인생인가 보다. 그때는 먹고 살일이 힘들어서 가족들 굶기지 않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살아오신 아버지, 많은 가족과 친척들의 끼니를 척척 해내셨던 어머니, 지금은 그냥 웃고 마신다. 웃을 수 있는 지금이라서 다행스럽다. 옛날 이야기를 들으면 그러고 어찌 사셨는지 존경스럽기만 하다. 그럴바에는 차라리 집을 나가겠다 싶다. 지금은 정말 그리 살라하면 보따리를 싸지도 않고 나가버릴지도 모른다.

 

모든게 끝이라고 생각될때 다시 시작된다고 한다. 끝과 시작은 맞물려 있다고. 내가 살고 있는 이 지구별은 거대한 행성이지만  내려다 보고 있을 어디선가에선 나조차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미미하고 소소하고 하지만 나에게는 거대하고. 지금 이책이라서 훈훈하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힘들면 안쓰러워하고 지나친 관심도 있었지만 그런게 사람 사는 정이였다. 남의 집 밥숟갈이 몇개인지까지 알아야 하는 것은 좀 짜증스럽기도 했지만 따끈따끈한 호빵처럼 너무 가까이서 쳐다보면 뜨겁지만 적당히 식으면 따뜻하고 속도 든든하고 맛있었다. 지금의 호빵은 어떠한가. 근데 하필이면 호빵에 비유하는 걸까. 지금 배가 고파서 속이 헛헛해서 그런 것이다. 적당한 관심이란 것은 없는게 아닐까. 점점 무서워지는 세상에 관심이 필요한 사람도 많고 이야기를 들어줄 이도 필요하다. 외로움은 관심을 필요로 하지만 때론 그게 싫어질때도 있으니 적당하다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훈훈해서 좋았지만 우습게도 저자가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이 먹으니까 감동적인 이야기를 써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냐라고 물으신다면 그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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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어떻게 쓸 것인가 - 한 줄도 쓰기 어려운 당신에게
임정섭 지음 / 경향BP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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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잘쓰는 사람들의 글쓰기 비법이라는 말에 귀가 팔랑거린다. 학창시절부터 난독증이 있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읽는 것이 싫었다. 그래도 만화책을 매우 좋아했던 것을 보면 하얀 종이에 깨알같은 글씨가 빼곡한게 좀 거부감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사용설명서는 좋아하지 않는다. 무엇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나조차도 문학소녀로 만들었던 시간이 있었다. 밤을 꼬박 세우며 읽었던 죄와 벌, 햄릿,파우스트, 대지등등 분명히 더 있을텐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더많은 책을 읽었다는 것을 강력하게 말하고 싶다) 책을 많이 읽은 친구들은 좀 다른면이 있었다. 지금도 글 잘쓰는 친구들이 아주 조금 부럽다. 내 의견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가 쉽지 않다.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니고 재미있는 것도 아니다. 그나마 편지 쓰기를 좋아했었는데 그것이 조금 도움이 된것도 같다. 저녁에 감상에 젖어서 쓴 편지를 아침에 읽고서는 손발이 오그라들뻔한 적이 많았던 것 같다. 그 편지를 친구에게 보냈다면 사나흘쯤 자지 못해서 몽롱한 상태에서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였다.

 

개츠비는 잠시도 데이지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모든 집의 물건들을 데이지의 아름다운 두 눈에 비치는 반응에 따라 재평가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134쪽) 글을 마구 쓸때는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느껴지지만 누가 쓰느냐에 따라서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하고 '아'라는 말로밖에 표현하지 못하겠다. 평생을 잊지 못하게 하는 뭉클한 감정을 끌어내기도 한다. 책을 읽으며 좋은 문장은 다이어리에 적어 내려갔다. 하루의 일상을 정직하고 식상하게 느끼고 있기에 일기쓰기의 대부분은 밥을 먹고 친구들과의 수다와 잠자기, 그리고 가끔 빵하고 터지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였다. 뭔가 터지지 않는 일상에서의 무료함을 잘 달래서 쓰지 못했다. 매일 뜨는 해는 그냥 뜨는 해이고 가족들과 친구들도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았다. 학창시절 이후에는 일기를 거의 쓰지 않았지만 모든것에 무관심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절벽에서 뒹굴어 보기라도 했어야 할지도 모르는(절대 그럴일은 없겠지만) 그런 비장한 각오를 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좋은 글을 쓰고 싶었다면 그런것은 필요없는데도 과장이 심하다. 필요할까? 살아남아도 좋은글을 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내가 썼던 글쓰기는 돌림노래와 같았다. 좋게 봐주면 새들의 지저귐(사람이 듣기에는 똑같은 소리, 아침에 들으면 짜증이 나서 새들을 확다 어쩌고 싶은 마음이 든다) 정도였던 것 같다. 타고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잘해지는게 있다. 이건 비극이다.

 

마구쓰기 매일 10분씩 100일을 하면 달라진다는 말에 이 책을 읽는 날 바로 시작해 보았다. 하지만 하루에 십분이라는 시간은 짧았다. 찰나와 같아서 며칠째 하다가 놓친적도 있다. 그래도 밀린것은 다시 쓰지는 않겠다. 전에 밀린 일기숙제를 했던 것처럼. 그런것은 의미가 없다. 초등학교 저학년때는 언니들이 방학숙제를 많이 도와줬다. 차라리 몇대 맞고 말것인데 개학하기 3일전에 벼락치기로 방학숙제를 했던 기억이 났다. 그런데 선생님이 "여러분을 믿으니 방학 숙제 검사를 하지 않겠어요." 라는 말을 들으니 밀려오는 배신감이란. "선생님 어떻게 그래요?" 라며 속으로 외치며 울고 싶어졌다. 책을 읽으면서 써내려가는 글쓰기는 점점 재미있어졌다. 글을 많이 쓰지 않았음에도 팔목이 아파왔다. 그런데 하루 온종일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나는 미칠것만 같다. 책상을 뜯어 먹을듯이 앉아서 방석에 엉덩이를 밀어 붙이고. 다만 내 엉덩이는 가벼울 뿐이고. 그래도 글을 잘쓰고 싶다. 최소한 재미는 있었으면 좋겠다. 지루한 글은 읽기가 싫으니까.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달필이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나름 시작이 좋다. 첫문장에서 꽉 막혀서 답답해한 적도 많았고 쓰면서도 무슨말을 하는지 모를때도 있지만 이 책이 글쓰는 것을 좋아하게 해주었다. 변덕이 심하므로 언제 그만둘지는 모르겠다. 그때쯤에는 좀 나아졌으면 좋겠다.

 

 

<교보 북씨앗으로, 경향 BP에서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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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animaxtv.co.kr/event/event_2012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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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스 필립 K. 딕 걸작선 6
필립 K. 딕 지음, 박중서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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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죽음의 미로>를 읽었다. 뭔가 정신적 발작을 일으킬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 재미도 있긴 했지만 약간의 괴리감이 느껴졌다. 그것은 툭하면 신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알 수 없는 정신병자 같은 소리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 책을 읽기에 문제점이였고 이야기의 맥이 자꾸만 끊겼다. 신에 대해서 관심도 없었고 툭하면 신이 뭘 어쨌다는 걸까? <발리스>는 읽는 동안 어이없어서 웃었다. 재미있긴한데 그놈의 신타령은 수그러들지 않아 보였다. 하여튼 그쪽으로 집착이나 강박관념을 갖고있나 싶다. 중요한 것은 이 책 덕분에 저자의 다른 책들이 읽고 싶어졌다는 점이다. 저자의 유머가 나랑 좀 맞잖아.

 

저자의 작품은 영화로 만들어진게 많다고 한다. 그중에서 인상깊게 보았던 톰크루즈 주연의 <마이너리티 리포트>였다. 처음 그 영화를 보았을때의 신선한 충격. 그외에도 아는 작품들이 다수 있었다. 책 내용이 매우 미래 지향적이고 21세기스럽다.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고뇌가 신적으로 잘 드러난 것 같다. 책 평론가처럼 느껴지는 이런 말들 참 우습다. 어떨때는 내가 정신분열증을 일으킬 것만 같은 느낌이였다.

 

오렌지 카운티 메디컬 센터의 심장의학과장은 어바인 대학에서 실습을 나온 의대생들에게 팻을 구경시켜주었다. 오렌지 카운티 메디컬 센터는 의대 부속병원이었기 때문이다. 의대생들은 마흔아홉 알의 순도 높은 강심제를 삼킨 상황에서 심장이 움직이는 소시를 직접 한 번씩 들어보고 싶어했다. <78쪽>

 

이책은 처음부터 친구의 자살소동으로 이어진다. 팻은 이 책의 주인공으로 그조차도 자살시도를 하게 될줄은 그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는 저자의 말은 심각한 상황에 미묘한 웃음을 주었다. 친구가 자살을 시도하는데 약이 모자랐다고 했던가? 하여튼 팻에게 전화해서 죽게 약 좀 갖다 달라고 했던 것 같다. 친구가 죽고 싶은건지 살고 싶은건지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정신적으로 문제는 있어 보였다. 죽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확실히 약을 먹는게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이 책은 묘하게 끌린다. 웃으면 안되는 상황속에서도 미치게 웃음을 유발한다. 다행히도 이책속에서는 중간까지는 신 이야기가 심경을 거슬리지 않을정도였으나 절반의 분량이 넘자마다 신이 급속도로 이 책에 퍼져버렸다.

 

"성실성이라니?" 케빈은 특유의 어조로 말했다.

"자네의 성실성은 팻의 성실성과 똑같아.

애초부터 바닥에 놓여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은 깎으려야 깎을 게 없어." (301쪽)

더이상 깎을게 없다는 것도 그다지 나빠 보이지 않는다. 지하로 내려갈수도 있으니까.  

 

<폴라북스에서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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