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의 시대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경남 옮김 / 민음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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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오랜 시간동안 잡고 있었다. 책을 넘길때마다 쉽지 않았다. 진정 '공감의 시대'에 대해서 진지하게 읽어 보고 싶었지만, 이 책만 들면 잠이 오기 시작했다. 몇페이지를 읽어 내려가기가 쉽지 않았다. 프로이트의 심리학이 끼친 영향이 만만치 않음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의 주장은 편파적인 느낌이 강했다.
 

유아는 태어날때부터 갖가지 에로틱한 형태로 무한한 쾌락을 추구한다. 소위 '쾌락원리'이다. 결국 에고란 사회화라는 이름으로 이드를 통제하고 리비도의 충동을 억제하는 매커니즘에 지나지 않는다.(74쪽) 프로이트의 주장은 이랬다. '쾌락' 호은 '성'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인간이 그것만으로는 표현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현재까지도 프로이트의 영향력은 막강한 느낌이다. 프로이트란 이름을 들어보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이니까 말이다. 어떤 이의 서평에서 보니 프로이트의 견해가 앞에 길게 나온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하셨는데 나도 그랬다. 그 부분 때문에 이 책의 진도를 빼기가 더 어려웠기 때문이다. 진정 '공감'이라는 부분에서 어느 부분을 더하거나 빼기 위해서 이 부분을 들려놓은 것인지 진정으로 공감되지 않았다.

 

유아기적 성향과 여러 실험을 통해서 그리고 동물들을 통해서 공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이는 엄마의 뱃속에 있을때부터 서로 소통하고 있다. 아이는 엄마의 모든 것을 전부 받아 들이고 있다. 태어나서 옹알이를 시작하고 눈을 마주치며 그런 과정에서 아이는 점점 성장한다. 과거에는 아이들을 안아주면 전염병에 옮는다는 그런 생각이 강했는지, 아이를 그대로 방치 했다고한다. 과거의 이야기를 들으니 먼 나라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기분이였다. 소위 강대국이라고 말하는 그들은 자만감이 넘쳐 흐르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도시를 찾았다 말하는 그들측의 이야기만 듣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어 정말 '공감'을 나눌수 있을지 약간의 의문이 들었다. 그들의 과거와 현대가 전 세계를 지탱하는 모든 것을 대변할 수는 없을테니까 말이다.

 

프로이트의 이론으로 하여금 다른 학자들은 정신과 자아의식의 발달에서 사회적 관계를 중시하는 이론들이 전개된다. 모든 이론이 상식밖을 벗어날 수도 있지만, 그때는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수많은 종교가 박해를 받았던 이유도 기득권층의 이익, 즉 그들의 욕심탓 이였다. 변화를 받아들일 이유도, 자신들의 가진것을 내놓아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사람뿐만이 아니라 동물들도 공감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한다. 과학은  여러 실험을 통해 결과를 도출하고 증명한다. 과학은 증명되지 않는 사실은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고도 성장은 과학의 눈부신 발전의 결과이다. '공감'이라는 것이 과학적인 증명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이 과학적이지 않은 일들이 참으로 많기 때문이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구석기 시대에서 현재에 오기까지 이 책은 집약적으로 여러 가지를 보여 주려 많은 노력을 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때로는 한정적이고 어떤 분야에서는 섬세한 노력을 기울였다. 문화나 사회 미술에 대해서도 짧게 '공감'을 끌어내기 위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철학자들을 통해서 그 시대를 이야기하고 그들의 이론에서 정신과 육체, 자아를 말하고 있다. 그당시에 낭만주의라든지 르네상스 운동이라든지 그런 부분을 부분 집어 가고 있다.

 

 '공감'이 극히 유럽 일대에서만 일어나는 일들을 앞에서는 유아기적과 구석기 시대를 살펴보고 프로이트의 이론이 등장했다. 현대에는 우리가 낳아 놓은 이기심을 이야기하고 있다. 현재에는 인터넷을 통해 많은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떤 부분에서는 일방 소통일수도 있고, 쌍?향일수도 있다. <경쟁의 문명에서 공감의 문명으로> 라는 말은 멋지게 들린다. 현재가 정말 공감이 필요한 시대이긴 하지만 어쩌면 멍텅구리가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나 역시 정말 편협적이다. 이 서평을 쓰면서 또 무언가에 흥분해 버린걸까? 종종 서평을 쓸때면 객관적이지 못하고 어떤 감정에 휩쓸리고 만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닌데 왜 자꾸만 남의 다리를 긁는 걸까? 나도 알수없다. 이 글을 쓰고 나서 약간 후회스러웠다. 한가지 생각에 치우쳐 버리고 만 나 자신이 말이다. 이 책은 흥미로운 부분도 많고 재미있는 부분도 있었다. 그동안 한쪽면만 알았던 것을 좀 더 깊이 있게 나아갈 수 있는 부분도 있었다. 그리고 다른 이의 글을 '옳다 아니다' , '기다 아니다' , '그렇다 아니다'가 주가 아닌데 난 무엇에 집착하게 된걸까? 그래서 빠른 수정을 보려고 했으나 귀차니즘이 밀려왔다. 하지만 아닌것은 아니니까 다시 밑에다 내 생각을 적어 본다. 아마도 강대국이니 약소국이니 우리가 약자의 입장이라서 순간 폭발했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을때면 나도 모르게 불끈하거나 별것도 아닌것에 흥분하거나, 그 책이 너무 마음에 들거나 별로이거나 여러가지 감정들을 느끼게 된다. 중요한것은 그것만 놓고 보아야 하는데 다른것을 자꾸만 끌어들인다. 부부 싸움이 커지게 되는 이유도 처음에 싸운 이유가 다른데로 불똥이 심하게 튀기 때문일것이다.

 

나의 이런 생각이 이 책을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편협적인 생각이 들지 않기를. 책을 읽을 때나 무엇을 바라볼때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인 사람이 되기를 오늘 하루도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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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도지 케이의 사건 수첩 미도리의 책장 5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 / 시작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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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매력에 푹 빠질 수 있는 책이였다. 범죄자들은 무섭지만, 가끔은 모든 이로 하여금 웃음을 유발하고 어이없는 실수로 경찰들에게 붙들려가는 그런 경우가 있다. 강도가 편의점에 흰봉지를 쓰고 들어왔다가 숨이 막혀 편의점 알바생이 구급차를 불러줬다는 어이없는 이야기등 이 책속에서는 다이도지라는 전직 형사가 출판사에서 일하는 친구의 의례로 책을 내게 되는데 그 책으로 하여금 펼쳐지는 에피소드들이다. 어쩌면 다이도지는 여러번 죽을 고비를 넘겼으니 에피소드라 하기엔 다소 무리일지도 모른다. 그 책에서는 얼간이 범죄자들의 죄상이라고 하기도 민망할정도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도대체 그럴꺼면 왜 일을 저지르는 건지 이해할 수 없고 다만 어이없는 웃음이 나올 뿐이였다.

 

얼떨결에 눈을 떠보니 그렇게 되어 있었다고 할 정도로 다이도지가 형사가 된 이유는 그러하였다. 형사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고 하지만 아버지의 영향은 무시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다이도지의 예리함과 민첩함은 형사로써의 충분한 자질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 출판 사인회가 끝나고 차를 타려고 하는 순간 그때부터 목숨의 위협을 받게 된다. 온데간데 없이 무턱대고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으며 범인을 잡으라는 범죄자의 이야기, 자신의 목을 칼끝으로 위협하는데. 정말 위험천만한 일이였다. 지금은 작가지만 전직 형사 출신인 다이도지가 그깟일에 겁은 좀 먹었지만, 무사히 처리한다. 우습게도 괜시리 그런 책을 낸 덕분에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그것 때문에 죽을뻔하니 참 아이러니 하다. 작가로써 연명할 수 있도록 자꾸만 사건사고가 일어나는 것인지 출판사 친구는 이야기를 모아서 책을 써보라고 한다.

 

단편처럼 이야기가 하나하나 완성도를 보이며, 다이도지를 중심으로 이어간다. 특히 '죽여도 안 죽어'가 기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고가 다이도지에게 날아온다. 즉 이 원고를 읽어 보고 수정을 해달란다. 그리고 좋게 말하지만 협박성 멘트까지 날린다. 완전 범죄를 꿈꾸는 것 같은데 내용이 얼토당토 않다. 다이도지는 그래서 여러가지 방법들을 알려주고 차라리 완전범죄 따위는 꿈도 꾸지 말라고 충고를 해준다. 그런데 그와 유사한 사건이 일어난다. 형사의 직감은 매우 무섭다. 다이도지는 바로 그 원고와 같은 사건임을 알게 된다. 범인은 매우 당돌한 녀석이였다. 그리고 다이도지를 죽이려고 했지만, 다이도지의 멋진 한마디. "죽여도 안 죽어줘서 미안하군" 이였다. 저자의 유머스러움이 역시 책 차례에도 잘 반영되어 있다. 이 책에서도 저자의 유머는 차례차례 빛을 발한다. 어리석지만 인간적인 느낌이 드는 범죄자였다.  범죄자라 할지라도 이런류라면 경찰들도 덜 힘들것이다. 그들은 계획적이지도 않고 사악하지 않고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도 않으니까 말이다.

 

마지막 대사는 다이도지의 아픔이 느껴졌다. 자신의 부인이 몇해전에 죽었는데 단순한 사고가 아니였다. 다이도지는 부인의 복수는 하지 않겠다고 했다. "약속은 지킵니다, 고이즈미 씨. 제가 먼저 복수 상대를 찾아내지 않겠습니다. 눈앞에 나타나더라도 제 손으로 단죄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저쪽에서 제 앞에 나타나 심판의 기회를 제공한다면 ....... 그럼 이야기는 다릅니다만." (285) 그의 말에 씁쓸함을 느꼈다. 복수는 복수를 낳고 망하는 길이라고 말하지만, 복수에 눈물지어 보지 않는 사람이 어찌 복수를 알 수 있고,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죽이게 만든 장본인에게 '용서'라는 말을 감히 사용할 수 있겠는가? 도인도 아니고 하느님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사람일 뿐인데 말이다. 형사라는 직업이 입에 풀칠이나 하자고 덤벼들기에는 참으로 위태롭고 힘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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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어렴풋이 꿈을 꾸다 - 이동진의 영화풍경
이동진 글.사진 / 예담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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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영화속 풍경을 자세히 들여다 본적이 없었다. 오로지 주인공들만 따라 다니거나 했다. 특별히 영상이 아름다운 영화를 볼때면 눈에 들어오긴 했지만, 보통 단편적인 영상들만 기억에 들어오는 나라서 더 심했는지도 모르겠다.  전에 ’다모’를 보면서 찰영지가 멋졌었다는 생각은 했다. 아마도 나같은 사람들만 있다면 참 재미없겠지만. 통행크스가 주연을 맡았던 <캐스트 어웨이>를 따라서 무인도에 표류한 분위기를 내었던 저자의 사진 속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그 모습이 낭만적이라기 보다는 왜 이리도 처량하게 느껴졌는지 말이다. 영화속으로 보았던 모습은 직접 겪어 보지 않아도 되었지만, 잠깐 이나마 그 경험을 겪는 것은 현실이였기 때문이다. <스타워즈> 속 공간은 세트장인지 알았는데 튀니지 였다는것도 신기했다. 이 책에 나오는 영화 중에서 본 것은 1편 뿐이고 몇편은 예고편만으로 아는 것이지만, 그 외에는 전혀 알지 못해 낯설게 느껴졌지만 재미있었다.

 

어떻게 보면 잘 알지 못하는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속 장소는 매우 낭만적이거나 멋지게 표현되기 때문이다. 영상속에서 담아 낼 수 있는 매력이였다. 현실속은 낭만이나 그런것과는 거리과 멀기 때문이다. 영화가 주는 환상이 고스란히 그 속에 담겨 있기 때문에 실망도 꽤 클거라 생각이 든다. 내가 본 한편의 영화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이였다. 화면속에서 비추어 주던 햇살 아래에서 두 사람의 첫사랑이 아련히 피어오르는게 이뻐 보였다.  첫사랑이라는 이야기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사랑하는 마음이 대단했다. 내 마음을 움직이는데 감미로운 음악도 크게 작용했다. 영화를 본 후에 전곡을 계속해서 들었을 정도이다. <맘마미아>역시 아바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음악이 많은 추억을 주었을 꺼라 생각이 든다. 여기에 등장하는 영화를 보면 많은 것이 보이게 되어 보는 즐거움을 더 하겠다. 영화속에서의 사랑은 아프다.  평범한 사랑이라면 영화화 되지 않았을 것이다. 평범함은 관객의 마음을 얻어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애틋한 사랑이 사람들의 가슴을 흔들어 놓고 기억속에 오랫동안 머무른다.

 

사람은 자신이 행복하고 좋아하는 일을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느끼기에는 힘든 여정으로 보였으나, 저자는 그 과정 모두를 좋아하고 즐기는 것 같았다. 영화에서 표현하는 것보다 더 영화를 이해하고 있는 느낌이였다. 책속에서 보는 사진과 영화속에서의 공간은 느낌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아마도 그 영화속의 주인공과 그 공간은 같지만 어쩌면 다를 수 있구나 싶었다. 영화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으로 눈을 크게 뜨지 말고 조금은 감아줄 수 있고 상상력을 불어 넣어 줄 수 있다면 영화속의 감동을 그대로 느낄수 있지 않을런지.  직접가보면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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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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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잡고서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손에서 이 책을 3개월째 잡고 있었다. 처음에 시작은 쉽게 문을 열었으나 그 다음부터는 내게 쉽지 않았다. 나는 그동안 ’도망자’로 살아 왔기 때문이다. 어려운일에 부딪칠때면 늘 도망갈 구멍부터 찾곤 했었다. 숨어 봤자 숨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것이 내게 부메랑처럼 다시 돌아옴에도 나는 그리도 어리석었다. 

언니의 권유로 사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때가 1994 - 1995년도 였다.  그 당시에 띄엄띄엄 사설을 쓰기 시작했었는데 어째 사건사고만 기록되어 있었다. 1994년 10월에 성수대교가 붕괴 된지 얼마되지 않아 1995년도 6월에 삼풍 백화점이 무너져 내렸다.  그전에 4월에는 대구 지하철 공장 가스 폭발사고도 있었다. 그해에는 아침에 눈을 뜨면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지 걱정될 정도로 사건이 많이 발생했던 해로 기억난다. 뉴스에서 접한 성수대교 사건도 어이없었지만, 삼풍 백화점 사건은 참으로 기가 막혔다. 무슨 백화점 건물이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는지 어린 마음에 정말 이해 되지 않았다. 이 책속에서는 혼란의 시대였던 역사의 순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백화점 회장님의 첩이라는 박선녀라는 인물이 백화점에 쇼핑하러 왔다가 백화점이 붕괴된다. 그리고 그녀를 따라서 과거의 이야기속으로 들어간다. 이쁘면 얼굴값 한다고 그녀 역시 평범하게 살다가 평범한 사람 만나 결혼해서 사는 것이 좋았을텐데. 

세밀하고도 빠르게 사실적으로 역사의 시간속으로 흘러 들어간다. 그녀의 이야기에서 일제 치하에서 살아남아 애국지사들과 반대편에 서서 그 시대를 살아오고 권력을 잡게 된, 현재에 이어지는 이야기가 그 속에 있다. 이 시대를 살아 가면서 과거는 묻지도 말고 알려고 들고 싶지 않은 심정이 있었다. 피비린내 나는 역사는 우리가 현재를 살아가는 밑바탕에 있었지만, 그것이 잔혹한 진실이였기에 도망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역사시간에 비디오를 통해서 5.18 민주화 항쟁속에서 보았던 처절함과 잔혹함을 잊지 못한다. 자유를 부르짖던 그들의 외침과 잔인하게 아이, 여자, 노인 할 것 없이 무차별적으로 발길질과 무기를 휘둘렀던, 사람같지 않는 괴물같은 그들의 모습 또한 잊혀지지 않는다. 개인대 개인으로 만났더라면 그런 사람이 아니였을지 모르겠지만, 명령 아래 감정도 아무것도 없는 좀비처럼 그들은 미친개처럼 보였다. 그런 장면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면서 분노가 치밀었다.

사람의 본성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한시도 편할날 없이 지금의 세월까지 당도하게 되었다. 수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항쟁하면서 많은 이들이 죽어가고 고괴한 생명값으로 간신히 자유를 얻었지만 그 속에는 ’약육강식’이라는 잔인한 단어와 ’자본주의’의 병폐에 우리는 현재도 사는것이 힘들다.  그리고 진정으로 우리가 자유를 가진것인지, 자유라는 말만 명찰처럼 달고 있는 것인지 알 수없다. 국민들은 어느 시대에나 힘들고 고통 받는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그것이 바뀌지는 않는 씁쓸한 진실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고 계신분들이 있기에 현재를 살아가는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다. 눈에 보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더라도 이 나라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현재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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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주례사 -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한 남녀 마음 이야기
법륜스님 지음, 김점선 그림 / 휴(休)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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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되고 안 되고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에요. 무조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생이 괴로운 겁니다. 세상일은 다 될수도 없고, 된다고 좋은 것도 아니에요. (239쪽) ’진리’ 라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알아도 아는 바를 행동으로 실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생각으로는 알겠지만 그것을 마음으로까지 고스란히 받아 들이는게 쉽지 않다. 모든 것이 괴로운 것은 마음의 ’욕심’ 때문이다. 그 ’욕심’을 버리면 자신의 마음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  말대로만 되면 세상사 무엇이 걱정일까. 그 ’욕심’이 잘 버려지지 않는다. 결혼을 앞두거나 현재 진행형 이신분들이 읽어 보면 많은 도움이 되겠다. 깨달음을 얻는 것은 뼈를 깎는 고통을 맛보아야만 할 수 있는 것인지도. 온전히 스스로 설 수 있어야만 둘이서 먼길을 떠날 수 있는 것이다. 한사람이 의존해서 길을 떠난다면 상대방은 금방 지치고 만다.  스님의 말씀이 어찌나 재미있던지 '옳소 옳소' 하다가 웃다가 했다.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린다면 어떤 일이라도 잘 헤쳐나갈 수 있을꺼라 생각된다. 그러다가도 앎이 모자란 중생인지라 감정을 다스리기가 쉽지 않다. 별일도 아닌데 괜히 옆사람 거북하게 짜증을 내고 나중에 후회한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에게 바라기만 하는 것은 잘못인데 은연중에 이기심이 가득한 내 자신을 바라본다.  내 자신을 거울에 비춰보듯이 자신의 행동을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면 현명하게 삶을 이끄는 주인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상대에 대한 이해와 존중 ’입니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사람 편에서 이해하고 마음 써줄 때 감히 ’사랑’ 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랑이 있을 때 비로소 주위에서 아무리 의심하는 말을 해도 배우자의 말을 그대로 믿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42쪽) 그대로 믿어 주지 못해서 헤어지는 연인들을 종종 보았다. 안쓰럽다. 큰걸로 싸우는게 아니라 소소한것으로 싸우다 다른데로 불똥이 튀어서 헤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다른이의 말은 철썩같이 믿으면서 어떻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말은 듣기 조차 싫은건지. 아마도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서 그러겠지. 사람은 감정적이고 자신의 일의 이성적이기가 싶지 않다. 그래서 실수도 하고 후회할 일도 많이 저지르곤 한다. 타인의 일은 합리적으로 말도 잘하면서 정작 자신의 일에는 그럴수가 없다. 사랑한다면 많이 표현하고 서로를 배려하고 노력하면서 살아야 한다. 우스개 소리로 '잡은 고기는 밑밥을 안준다.' 라든지 '고기 잡은 사람은 기억하지만 잡힌 고기는 기억하지 못한다.' 등 결혼을 하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무리 이쁘고 잘생기고 멋진 사람일지라도 내 옆에 같다두면 별볼일 없다는 것이다. 일상이 되고 생활이 되어버려 그 사람의 좋은점 보다는 미운점이 두드러지게 눈에 들어오게 되는 것 같다. 숨쉬는 것조차, 뒷통수만 봐도 화가 난다니, 부부는 무슨 인연인것인지.

한걸음만 물러나서 바라보면 아무것도 아닌 걸 가지고 죽기 살기로 매달려서 원망하고 괴로워합니다. ’이것 아니면 안 되나’는 고집스러운 마음, 바로 집착에서 괴로움이 생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요. (127쪽) 누군가를 바꾼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내 자신의 습관도 바꾸기 어려운데 말이다.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어떤 부분에 대해선 자만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저 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자만하는 마음 말이다. 실로 부모님조차도 어쩌지 못했던 것을 타인인 우리가 어떻게 바꿀 수 있을런지. '님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만 더하면 남이 된다는데' 그 노래의 가사가 정답이다.  서로가 한걸음씩 뒤로 양보하고 배려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면 결혼은 무덤속으로 걸어가는 것이 아닌 죽어서도 꼭 가고 싶은 천국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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