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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평점 :
인간은 누구나 하나의 극을 가진 전선과 같은 거야. 서로가 서로를 만나 서로의 영혼에 불을 밝히는 거지. 누구나 사랑을 원하면서도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까닭은, 서로가 서로의 불 꺼진 모습만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185쪽)
지루할것만 같은, 조금은 묘한 느낌으로 이책을 읽어 내려갔다. 신기하게도 지루하게만 느껴지는 단어와 문장들이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시간은 흐름은 그리 길지 않게 느껴졌지만, 꽤나 무겁고 긴 시간들이였다. 눈이 소복히 쌓인 거리를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게 조심스럽게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였다. 조심한다고 해도 뿌드득 거리면서 소리가 나긴 하지만 말이다.
요한과 나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가 풋풋했던, 스무살 시절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얼굴에 솜털이 떨어지지 않은체, 아직 젓살이 다 빠지지도 않았을것 같은 느낌의 스무살이 아니였다. 왠지 무겁고 무겁게 쌓여서 툭하니 떨어지는 눈덩이같은 느낌이 들었다. 고요한 정적을 깨는 듯한 소리였다. 나는 무명 영화배우 아버지를 둔, 그런 아버지가 20년의 무명에서 벗어나 주목받는 배우가 되어 집을 떠나버린, 어머니와 나 홀로 남겨진 그런 상태였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허리가 휘어도 지독히 못생긴 외모때문인지 남편이 더 아깝다는 소리를 주변으로부터 들어야 했다. ’얼굴 뜯어 먹고 살것도 아닌데’ 라는 말을 자주 하긴하지만, 그 잘난 얼굴 뜯어 먹고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와닿지 않는 말들이긴 하다. 얼굴이 이쁘고 잘생긴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나 역시 외모지향적인 이 시대를 비난하면서도 ’어쩔수 없다’라고 생각한다.
이쁨을 극히 찬대하는 시대적인 경향을 미디어에만 탓하기엔 우리의 잘못이 작다고 할 순없다. 우리도 찬양하고 경배하고 부러워하기 때문이다. 이 책속에서는 지독히도 못생긴 여자가 나온다. 나의 어머니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했던 그녀 역시 그랬다. ’저런 얼굴을 들고 다니다니 무기가 따로 없다는 둥’ 의 사람들의 수근거림을 맞받아 치지 못하고 자신의 그런 얼굴을 다른이들보다 더 경멸하고 힘들어하는 그녀가 있었다. 나도 그녀를 보고는 꽤나 충격에 휩싸였지만, 다른이들과는 좀 달랐다. 백화점 주차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녀를 만났고 그리고 요한을 알게 되었다. 요한은 부르주아적인 느낌의 세상을 유쾌하게 혹은 비관적으로 바라보며 비웃음을 날리는 부류였다. 하지만 요한이 하는말들은 나가 하고 싶었던 말들에 대한 요점을 정확히 꽤 뚫고 있었다. 약간은 우습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는 말들을 매번 늘어놓았지만 말이다.
그당시엔 1986년도에는 핸드폰도 없었고, LP와 시디과 전부였고, 비틀즈가 마음을 흔들었던 시절이라고 한다. 작가는 ’밥 딜런’을 좋아했나 보다. 나는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그의 음악을 잘 알진 못한다. 폴 매카트니의 망가진 모습을 보니 '세월을 빗겨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구나' 하는 약간은 허망한 생각이 들었다. 켄터키 후라이드 라는 말이라거나 버킹검이라는 말이 익숙하게 와 닿았다.
요한이 택시안에서 불렀던 켄터키 옛집 랄랄라 라는 노래를 들으니 왠지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그의 아픈 과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의 밝아 보이는 모습은 아마도 어둠을 다른이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유난히도 밝아 보이는 사람은 즐겁기 보다는 서글픔이 먼저 떠오른다. 그런 사람이 있었다. 밝게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이 가슴이 아리게 느껴지는 그런 사람.
아름다움이 그만큼 대단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그만큼 보잘것없기 때문이야, 보잘것없는 인간이므로 보이는 것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거야. 보잘것없는 인간일수록 보이기 위해, 보여지기 위해 세상을 사는 거라구. (219쪽) 다른이의 외모에 그다지 관심이 없으면서도 따지길 좋아하고 남의 단점을 들추기를 좋아하는 심리는 뭘까? 나는 그에 비하면 괜찮은거지 하는 자기 위안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아픔은 크게 느껴지면서 타인의 아픔은 씹고 또 씹어도 즐거운 이유는 뭘까 싶다. 난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손사레를 칠수가 없다. 나 역시 뒷말하는것을 꽤 좋아하는것 같다. 그녀의 못생긴 외모때문에 받는 상처는 생각보다 너무 컸다. 어쩌면 자살을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정도였다. 그녀는 나를 만나서 행복했다고 말해줬고, 아마 요한도 그랬을것 같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마음을 쉽사리 터지는 못하지만, 가까워지기 시작하면 한없이 영원할것 같은 느낌이 요한에게 풍겨진다.
그녀는 나가 떠날까봐서 불안한가 보다. 갑작스럽게 나를 떠나가 버린다. 젊음은 그렇게 왔다가는 것 같았다. 사랑때문에 기쁘다가 그녀가 떠나버려서 힘들었다가 말이다. 마지막에 내가 생각지 못했던 반전이 있었다. 요한과 그녀 그리고 나 어쩌면 세 사람은 떨어져 있다 해도 늘 같은 공간속에서 그 시간을 보낸 그때와 같을꺼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인간만이 스스로를 사랑할 수도 있는 거라고... 저 역시 스스로를 사랑하면서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히... 안녕히 계시기 바랍니다. (289쪽)
...에서 시작해서 중간 중간 ... 그리고 ... 그것이 어쩌면 한숨일 수도 있고 수많은 생각의 압축점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면서도 ,,, 미안 미안합니다... 라던 그녀의 말이 머리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못생겼다는 기준이 뭔지, 아름다움의 기준이 뭔지, 이 세상에 이쁜 사람은 별로 없다. 푸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