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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박물관 1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27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1975년 터키 이스탄불, 부유한 집안, 잘나가는 회사, 아름답고 교양 있는 애인, 이 모든 것을 가진 남자가 있다. 케말은 아무것도 부러울 것 없이 삼십년을 살아왔고, (책 뒷장에서)
어찌하였든 그가 삼십년 사는동안 별문제 없었고 육십이 넘어서도 그럴꺼라고 생각이 드는 삶이였다. 하지만 그의 삶은 그러지 않았다. 쇼윈도에서 발견한 가방, 우연히 그곳에서 또다른 보석을 찾아낸다. 먼 사촌이였던 퓌순을 첫눈에 보고 반하고 만것이다. 그녀는 입시시험을 치르는 18살 소녀였다. 멋진 약혼녀 시벨을 사랑하고 있음에도 자꾸만 퓌순이 생각났다. 케말은 퓌순을 머리속에서 지워버려고 했지만, 그럴수 없었고, 두 사람의 사랑은 시작된다.
곧 약혼을 앞둔 케말의 불같은 사랑은 열병같았다. 퓌순을 만나는 44일동안 함께 사랑을 나누고 행복했던 순간들. 그때 당시에는 그런 순간이 짧게 막을 내릴지는 몰랐다. 케말의 이런 이기심이 고약하게 느껴졌다. 약혼은 약혼대로 퓌순은 퓌순대로, 두 집 살림을 할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한편으로는 매우 걱정되기도 하면서. 시벨도 좋아하고 퓌순을 사랑했던 케말의 이기심이 세사람 모두를 힘들게 했다. 케말이 퓌순을 옆에 붙잡아 두고 싶었다면 그녀를 약혼식장에 부르지 말아야했다. 무슨 생각으로 케말은 퓌순을 약혼식장으로 불러들인것일까. 그러면서 퓌순이 다른 남자와 춤을 추는 모습에 분노하고 질투하는 모습이라니. 이 책의 분량의 반절정도를 차지하는 퓌순이 사라지고 난 다음 케말의 이상행동들은 점점 그가 미쳐가고 있는것처럼 느껴졌다.
약혼식 다음날은 퓌순의 시험날이였고 시험이 끝난후 두 사람은 늘 그랬던 대로 만나기로 했다. 하루가 가고 이틀이 지나가도 퓌순은 나타나지 않았다. 케말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퓌순을 계속해서 기다렸다. 그녀를 자책하고 자신을 탓하면서 그녀가 곧 돌아올꺼라는 희망에 부풀어 하늘을 날았다가 그녀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꺼라는 생각에 땅으로 꺼져버리곤 했다. 그녀와 함께 했던 아파트에서 그녀의 재취가 남겨진 물건을 껴안으면서 미친듯이 그리워했다가 미워했다가 주체할 수 없는 감정들이였다. 사람이 이러다 미치는건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케말은 왜 그녀를 찾아나서지 않았을까? 뒤늦게 그녀의 집을 찾아가고 결국 퓌순의 빈자리를 채워주었던 약혼녀마저 힘들게한다. 약혼녀인 시벨이 떠나버리면 퓌순이 남기고 간 상처를 견뎌내지 못할것 같아 시벨을 부여잡고 있었다. 정말 케말은 지독히도 이기적이다. 자신만의 사랑에 빠져서 아무도 보질 못한다. 자신이 정말 사랑하는 퓌순조차도 말이다.
사실 그 누구도, 경험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는 자신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어쩌면 열정적인 순간에, 삶의 그 황금의 순간을 '지금'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진정으로(그리고 자주) 생각하거나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125쪽)
이였다. 9개월이 지나서 간신히 퓌순을 만날수 있게 되었는데 퓌순 옆에 서있던 청년이 바로 그녀의 남편이였다. <30년에 걸친 처절하고 지독한 사랑과 집착>이 바로 순수박물관을 잘 대변해주고 있는듯 했다. 아직 순수박물관 2를 읽어보지 못했지만, 얼마나 더 처절해져야 할지 알수없다. 퓌순이 없는동안 케말은 얼마나 얼간이고 바보같았는가. 사랑은 순수할수도 영원할수도 있지만, 사람의 감정은 어떨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