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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화를 그리는 화가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 김수진 옮김 / 시공사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저자는 1973년에서 1994년까지 20년간 종군기자로써 활동했다고 한다. 이 책에서 종군기자인 파울케스가 어쩌면 저자의 또다른 모습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의 주인공 파울케스는 오랫동안 종군기자 생활을 해왔다. 현재는 한적한 곳에서 전쟁화를 그리는 화가다. 어느날 찾아온 불청객, 그의 이름은 마르코비츠였다. 파울스케를 찾아와서 죽이겠다고 하는 마르코비츠, 두 사람 사이에는 무슨일이 있었던 것일까? 파울스케는 아무리 생각해도 마르코비츠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마르코비츠는 자신이 누군지 파울스케에게 상기시켜주었다.
오래전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가 격렬하게 대립했을 때, 파울케스는 한 크로아티아 민병대원의 모습을 사진에 담은 적이 있다. 그 사진 속 병사는 전투병의 상징으로 여겨지면서 파울케스에게 유럽 포커스 상을 안겨줬는데, 바로 그 사진 속 주인공이 그를 찾아온 것이었다. (346쪽) 마르코비츠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왜 파울스케를 죽여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 한장의 사진으로 엉망징창이 되어 버린 마르코비츠의 이야기를 들을수 있었다. 그 사진으로 유명해진 마르코비츠는 세르비아 군인에 의해 6개월동안 심한 고문을 당하였고, 2년동안 갇혀있다가 집으로 돌아와 보니, 자신의 부인과 아들은 처참하게 죽어 있었다. 마르코비츠는 그 사진 한장으로 크로아티아를 대표하는 인물이 되어 버린것이다. 마르코비츠는 그런 연유로 인해 파울스케를 찾아서 10년을 떠돌았다고 한다. 그에 관련된 책과 모든것을 수소문하면서 간신히 지금 있는곳을 알아내었다. 파울케스는 이제 사진이 아닌 그림으로 전쟁의 참혹함을 벽화에 그려넣고 있었다.
마르코비츠는 예전이였다면 파울스케를 찾아와서 바로 죽였을테지만, 10년을 떠도는 동안 그럴수 없었다고 한다. 파울스케와 마르코비츠는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그 이야기속에서 어쩌면 마르코비츠는 파울스케를 죽이면 안되는 이유를 찾았는지도 모른다. 파울스케가 찍은 그 사진 한장으로 바뀌어 버린 마르코비츠의 인생이 파울스케가 고의로 의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르코비츠가 파울스케의 뷰파인더에 잡힌것도 어쩌면 모든것이 운명일 수 있었다. 저자의 종군기자로써의 생활이 이 책의 묘사에 현장감을 불어 넣어줄 수 있었던것 같다. <전쟁화를 그리는 화가>에서 그림이나 사진을 한장쯤 기대했었지만, 그 모든것이 글로 표현되어 있었다. 그 속에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다. 파울스케의 이론적인 개념은 마르코비츠나 나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나는 그 무엇으로도 인간의 본성이 바뀔 수는 없다고 생각하거든. 기본적인 본성이 존재한다는 거지." 파울스케가 덧붙였다. (127쪽) 파울스케는 모든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한다.
"당신은 도대체 그런 걸 다 어디서 배운 겁니까?"
파울케스는 두 손으로 책장 넘기는 시늉을 했다. 책에서, 파울케스가 대답했다. 그리고 사진을 찍으면서 배웠지. 세상을 보면서도 배웠고, 질문을 품으면서도 배웠소. 사실 모든 것은 눈앞에 있거든. 파울케스가 덧붙였다. 다만, 어떤 사람은 그걸 찾아내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오. (128-129쪽)
누군가 자신을 죽이려는 상황속에서도 그는 벽화 작업을 멈추지 않는다. 가슴이 심하게 요동치기도 했지만, 이상하게도 평온하기도 했다. 그건 왜 였을까? 그가 종군기자 생활을 그만둔것은 그가 사랑했던 한 여인때문이었다. 그녀의 죽음앞에서 엉망징창이 되어버린 그녀를 파울케스는 사진기에 담았다. 파울스케는 본능적으로 지뢰를 느꼈지만, 그녀는 알지 못했고 밟아 버린것이다. 마르코비츠가 그녀에 대해서 묻자 파울스케는 화가 치밀었다. 정작 자신을 죽이려 왔다고 할때도 그렇지 않았던 파울스케는 그녀의 이야기에 더 화가 치밀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것은 종군기자도 마찬가지였다. 파울스케는 전쟁속에서 담은 사진들은 삶과 죽음의 기로였다. 포로를 사살하기 전과 후. 사람의 생명이 그렇게 총성 몇발에 맥없이 끊어지고 마는것이다. 그런 과정이 처참하고 무섭다. 아마도 마르코비츠는 자신의 모든것이 무너져 내린 순간 파울스케를 생각하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자살을 했을지도 모른다. 파울스케에 대한 원망과 분노때문에 지금까지 버티어 온건지도 모른다. 모든것이 무너질때 사람은 살아갈 이유가 없어진다. 전쟁에 대한 묘사나 두 사람의 대화는 일상적인 느낌이 들었다. 현실속에서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거나 죽은 시신을 보거나 화염속은 아니지만, 그 못지 않은 공포감이 있다.
이 책의 저자가 <뒤마클럽>의 작가인지 몰랐다. 이 작품은 영화화 되어 <나인스 게이트>로 우리에게 더욱 친숙하다. 로만폴란스키 감독, 조니 뎁 주연이었다. 무지 재미있게 본 영화였다. 그의 작품은 사람을 매료시킨다. 어느 순간 빨려들어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