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바닷가의 모든 날들 - 둘리틀과 나의 와일드한 해변 생활
박정석 글.사진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새파란 바다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다. 파란 바다와 똑같은 색깔의 하늘이 맞닿는 수평선, 도시에서는 한번도 본 적 없는 완벽하고 거대한 일직선이다. 거기서 살기로 했다. (21쪽/바닷가의 모든 날들/박정석/중앙북스)
저자의 이야기처럼 동해서 살게 된 나날들이 이 책에 담겨있다. 도심속에서 치열하게 살고있다면 한번쯤은 저자의 삶이 부러울것 같다. 바닷가 근처 오두막에서 유유자적 살아가는 모습은 생각만으로도 얼마나 평온한가. 집에서 바다의 파도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온다. 도심속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파도소리처럼 여겨지는 소리가 있다. 비오는 날 빗물 웅덩이를 빠르게 지나쳐가는 차소리는 흡사 파도소리처럼 들리곤 한다. 상상하기 나름이겠지만, 이왕이면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133쪽 비글종으로 넘치는 힘과 식탐의 소유자, 본명 이달고 ]
저자의 장난끼 넘치는 사진을 보며 술 내놓으라는 말을 10여 개 언어로 할 수 있다는 말에 한바탕 크게 웃으며 이 책을 잡았다. 왠지 일상의 탈출을 꿈꾸는 이들에게 큰 위안을 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닷가에서 태어난 사람은 지겹도록 바다를 보아 왔을테지만, 육지사람인 나에게 바다를 보는것은 드문일이였다. 직접 바다를 보러가는 것보다 TV화면속에서 더욱 푸르게 느껴지는 바다의 느낌이 좋았다.
007의 주인공인 다니엘 크레이그의 파란 눈동자를 극장에서 보신분들은 알겠지만, 신비하면서도 매력적인 그의 눈동자에 빠져들수 밖에 없다. 바다는 묘하게 우리를 자꾸만 빠져들게 만든다. 위험하면 들어가서 나오지 못할수도 있으니 그 점만 유의하시면 될듯.
바닷가의 허름한 오두막집에서 혼자 잘 적응하며 살아가는 저자의 이야기는 참 재미있었다. 스쿠터를 장만했다가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다쳤던 일, 집이 넘 허름해서 한달에 한번은 수리를 해야하고, 이웃집에 이상한 남자가 살고 있고, 여러가지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했음에도 저자는 이 생활에 무지 만족하고 있었다. 솔직히 난 그런 시도는 해보지 못할것 같다. 오두막의 생활에서 오는 불편함을 즐거움으로 승화시키지 못할것 같다.

[68쪽/바닷가의 모든 날들/박정석/중앙북스]
이달고는 말썽꾼이지만, 애교 하나는 철철 넘친다고 한다. 귀를 쭉 내려뜨리고 어렸을적 멍한 눈동자의 사진은 흡사 나랑 닮은것 같아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이녀석이 집을 나가서 얼마나 섭섭했을지. 그리고 아래의 녀석이 들어 왔다고 한다. 동물을 좋아하지 않다고 말하는 저자였지만, 저자의 동반자인 두리틀씨 못지 않게 사랑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개랑 닭이랑 잘 키우기 위해서 책을 보고 했다는 점에서 나 역시 동물을 좋아하지만, 그런점에선 매우 무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개를 예방접종 시키고 밥주고 가끔 씻겨주고 잘 놀아주는것이 전부였는데 말이다. 거의 뒷처리는 할머니와 아버지께서 다 하셨지만 말이다.

[217쪽/바닷가의 모든 날들/박정석/중앙북스]
사요리는 말도 잘듣고 똑똑하지만 정이 없다고 한다. 주인이 오라고 하는데 오지도 않고 피하기만 하는것일까. 똑똑하고 귀엽게 생겼지만, 난 별로 정이 가질 않는다. 저자는 이녀석들 그대로 받아들이는것 같았다. 나는 나만의 생각에 빠져서 그러질 못하는데. 괴링이라는 쌈꾼 수탉한테 심하게당하면서도 두 사람이 어쩌지 못하고 쩔쩔매는 모습이 정답게 느껴졌다. 나는 내게 덤벼드는 녀석은 가만두질 않는다. 전에 집에서 닭을 키웠는데 날 째리는 모습에 화가나서 닭을 굉장히 못살게 굴었다.

[303쪽/바닷가의 모든 날들/박정석/중앙북스]
허름한 오두막집에서는 겨울을 나기엔 역부족이였다. 단열이 뭐냐고 묻는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어찌 이런일이 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고 정원을 만들고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려서 옴짝달싹 못하고 갇혀지낼수 밖에 없는 생활이 조금은 부러웠다. 식량을 단단히 채워서 준비하고 겨울에 완벽하게 월동준비를 끝낸다음 집안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것도 무지 좋겠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했었다. 때론 안전지대에 눈속에 파묻혀서 며칠간은 고립되는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 대신 곧 눈이 녹을것이고 탈출가능해야 한다는 저자말에 완전 동감이다. 연륜이 가득한 할머니와 친구가 되고 동네분들과도 잘 어울리는 저자는 어디를 가도 잘 흡수될 것 같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색은 잃어버리지 않는 순수한 소녀의 느낌이 들었다. 현실적이면서도 꽤 낭만적인 바닷가의 모든 날들을 읽으니 기분이 살짝 좋아진다. 저자의 낙관적이면서도 솔직하고 생활속에서 끊임없이 배워가는 모습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