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트리드와 베로니카
린다 올손 지음, 김현철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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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시작과 끝은 알 수 없다.

"이제는 나도 이해하고 있어요. 과거의 사실을 기억해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죠." (49쪽)

아스트리드와 베로니카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늙은 여자 아스트리드와 젊은 여자 베로니카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누가 먼저 이야기를 끄집어 냈는지, 시작의 종을 치진 않았지만, 두 사람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아스트리드와 베로니카는 주고니 받거니 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늙은 여자 아스트리드는 곧 여든을 바라보지만 그녀의 마음속 자물쇠는 어린시절의 언저리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스트리드는 오랫동안 고독과 침묵하면서 지내왔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결정적인 순간이란 없는 것 같기도 해요. 시작과 끝은 유동적이니까요." (56쪽)

"모든것은 변하기 마련이예요." (107쪽)

"나는 지금까지도 사건의 실체에 대해 모르겠어요." (111쪽)

"당신도 알다시피, 기억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우린 그저 귀를 막고 있을 뿐이죠." (112쪽)


고통스러운 기억의 부분을 끄집어 내며 아스트리드의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아스트리드의 어머니는 아름답고 다정한 분이셨음을 느낄수 있었다. 아스트리드의 어머니가 왜 자살을 선택해야 했는지, 그것이 남편때문이었는지 난 짐작만 할 뿐이였다. 아스트리드의 이야기는 꽤 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했지만, 기억이란건 우습게도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의 기억은 얼마나 정확할까. 때론 흐릿한 기억이 고마울때도 있고 잊고 싶은, 잊었다고 생각했던 기억들이 우리를 놀래켜주기 위해서 어디선가 복병처럼 준비하는것 같다.

 

"그리고 그때까지 내가 알고 있던 모든 것이 사라졌어요. 나는 다른 세상으로 즉시 옮겨갔어요. 더욱더 밝은 색채로, 더욱더 선명한 소리로, 더욱더 자극적인 맛과 향기로 채워진 그런 세상으로 말이죠. 나는 그 세상이 내 것이라고 한동안 생각했어요." (114쪽) 베로니카의 이야기는 사랑으로 충만했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안타깝게도 내 것이라 생각했던 그 세상이 사라지기전까지 말이다. 다른 이들의 세상엔 별 문제가 없는것 같은데 베로니카의 세상은 더이상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 같았던 두 사람의 아픔은 조금씩 아물어 가고 있었다. 아픈 가슴으로 이곳에 내려왔던 베로니카를 아스트리드가 아스트리드를 베로니카가,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다독여주고 있었다. 두 사람 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였다. 아스트리드는 마녀로 불리운채 차갑게 얼어붙은 심장을 그대로 간직한채 생의 마지막을 맞았을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시간이 부족했던 게 너무나 아쉬워요. 이런 생각이 드네요. 슬픔은 나름대로 자기 시간에 맞춰 진행되나 봐요. 그 진행 과정을 착실히 거치지 않으면 슬픔은 다독거릴 수 없어요. 슬픔이 제 갈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줘야만 해요. (249쪽)  아스트리드의 슬픔과 아픔을 견뎌낼 수 있는 시간은 그녀의 평생이 되어버렸다. 베로니카를 만나 아스트리드의 마음에도 사랑의 싹이 트기 시작해서 다행이였다. 아스트리드는 이 집에 자신을 평생 갇혀 나오지 못했다. 자신의 아픔과 상처를, 자신을 대면하기가 두려웠던 것이다. 나의 거칠것없는 부분까지 드러다 보고 마주볼 수 있어야 진정 자신의 모든것을 사랑할 수 있고 아픔도 이겨낼 수 있다.

 

사랑은 사전 경고 없이 우리에게 불쑥 다가옵니다. 그리고 한번 주어진 사랑은 결코 빼앗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걸 명심\해야 합니다. 사랑을 잃어버릴 순 없어요. 사랑은 측정할 수 없는 겁니다. 시간으로, 분이나 초로, 길이나 무게로 따질 수 없는게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어떤 식으로도 양을 따질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랑과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사랑은 사랑일 뿐입니다. 진정한 사랑의 손길이 잠시 스치기만 해도 우리는 그 힘으로 평생을 견딜 수 있습니다. (360-361쪽) 어린아이의 문장력처럼 이 글은 짧게 이어져있다. 길게 말하지 않고 짧게 끊어서 대화를 이어나간다. 그속에서 깊숙한 두 여자의 아픔이 느껴졌다. 아스트리드는 생의 마지막 순간엔 두렵지 않았을 꺼라는 생각이 들었다. 숨기고 외면하고만 싶었던 깊숙한 아픔과 재회할 수 있었기에. 아스트리드 자신에게 큰 선물을 주었던 베로니카에게 마음의 선물을 남기고 떠난다.

 

만남과 헤어짐, 고통과 행복, 거쳐나가야 할 인생의 순간에 우리는 어떤 이들을 만나고 살아가게 될까?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는 인생이라는 여정에 우리는 몸을 담고 있다. 평범한 일상이 지겹기도 하지만,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불안감을 안고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마음이 벅차 오른다. 아직은 표현이 불안정한 나이기에, 나역시 상처를 훌훌 털어버리기엔 내공이 부족하고 다른 사람의 아픔을 잘 다독여줄 수 있을만한 사람인지에 대해선 의문표만 여러개 따라 붙는다. 사랑하는 가족을 꼬옥 껴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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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정원 - 인생의 보물상자를 열어 주는 67가지 이야기
타냐 콘네르트 지음, 안상임 옮김, 예손 그림 / 창작마루결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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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가끔 심술을 부리기도 하지만요.
그때 봄답지 않게 폭풍이 휘몰아치고 비가 오기도 합니다만, 
기분이 풀리면 너무나 사랑스러운 본연의 봄날로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 믿어도 좋습니다.
  (사랑스럽기를 거부한 봄 중에서 35쪽)

봄은 왜 사랑스럽기를 거부한걸까. 지금 성큼 달려온 봄이 그런것 같다. 그래서 이 글을 읽고 어찌나 웃음이 났는지 모른다. 착한 여자보다 까칠한 여자가 더 인기가 있다는 말에 까칠하게 굴었다가 다 차였다는 우스개 소리처럼 봄도 순순해서 사랑받기를 거부하고 까칠하게 굴고 싶었던 모양이다. 
<생각의 정원> 속에서는 짧은 동화같은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재미있으면서 따스하고 우리의 마음을 촉촉히 적셔줄만한 책이다. 이 책에는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 삶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희망과 절망, 우리의 현재, 소망하는 것, 인생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등등 많은 부분을 이야기로 담아내고 있다.  깨달음이란 크게 깨우치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어쩌면 그런것이 아닌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시간을 이렇게 무의미하게 낭비하면 되겠니. 
삶에서 같은 날은 오지 않아. 
오늘은 오늘밖에 없어. 
네가 바로 그 오늘이자 네 미래의 모든 것이기도 해. 
오늘을 허비하지 마!"
삶은 일너 말놀이를 해놓고 속으로 웃었습니다.
(일어나지 않으려던 낮중에서 131쪽)

우리가 평상시에 던지는 의문, 한번쯤 해보았던 생각들, 그런것이 이 책에 담겨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지만,  그것으로 하여금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든다. 무언가를 보며 그 순간에 깨달음을 얻을수도 있다. 잘하진 못하지만, 그일로 인해서 행복하다면 남이 뭐라한들 무슨 상관인가? 즐겁고 행복하면 그게 다 일수도 있는데. 하기 싫지만 어쩔수 없는 경우가 인생엔 얼마나 많은지. 그걸 감당하고 즐겁게 살아가려면 아무 이유없이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한다.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지혜로워지지 않아요."
방랑자는 웃으며 한 마디 남기고
이내 가던 길을 갔습니다.
(현명해지는 법중에서 179쪽)

나 역시 위의 이야기처럼 책을 많이 읽으면 지혜롭고 현명해 질꺼라고 생각했다. 현명해지는 법은 나에게 따끔하게 충고를 해주었다. 읽는것만으로 부족하다고 말이다.  "무언가를 ’변화’ 시키거나 ’적용’해야 한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이 책은 재미있고 어렵지 않아서 좋았다. 우리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것 같아서 가슴이 콕 찔리기도 했고 "그래 맞아." 라고 손뼉을 치기도 했다. 기쁨과 슬픔은 함께 올 수 밖에 없다는 것을. 투덜거리기 일쑤였던 나에게 오늘을 감사히 여기라고 말해주었다. 시간은 너를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아무리 복잡한 일도 다 헤치울 필요가 없다고. 모든 생명은 다 소중하고 값진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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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공감
안은영 지음 / 해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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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처럼 전력 질주하다가 막판에 갈팡질팡하느라 인생을 낭비하기 싫다면, 뻔하게 나이 들고 싶지 않다면 일을 줄이고 네 삶을 살아.  '남다른 삶'은 튀는 삶이 아니라 남이 아닌 자신을 위하는 삶을 뜻하는 거니까.(92쪽) 여러 자기계발서들을 읽고 나면 왠지 허탈감이 든다. 나만 그런건지, 저자 혹은 그 책에 등장하는 삶의 주인공인 그가 존경스러운 한편 나에 대한 허망함만 더 커지는것 같다. 생각해보면 누구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나는 나일뿐이니까. 

저자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그래 그래' 하기도 하고 눈물이 속절없이 속사포처럼 쏟아질때의 그 느낌을 함께하고 소주 나발을 불며 세상을 한탄하기도 하고 미친듯이 웃어보기도 한다. 동네 포장마차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웃고 떠드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다.  어딘가에 하소연 할때 없고 이야기 들어줄 사람 없고 힘들어도 괜찮은 척 해야한다면 정말 살기 싫을것 같다. '그래 나 미쳤다.' 라고 소리도 치고 가끔은 애꿎은 책상 다리를 부러뜨리겠다는 심정으로 발로 차보고. 그래봤자 내 다리만 아프겠지만,  외롭고 힘들땐 펑펑 소리내어 울라고 말해주고 그런걸 상대방에게 일일이 핑계대지 말것.(166쪽) 말하지 않아도 알아줄 수 있을 테니까. 이런 친구 옆에선 그냥 묵묵히 지켜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 

언어의 문법을 배우고 수학의 행렬을 배우고, 과학의 이치를 배우는 것보다 더 절실하고 애틋한 진리는 과거의 사랑을 통해 배우는 감정의 진화다. 그리고 침묵하고 인내하면서 다져지는 인격의 형성이다.(186쪽) 사랑이라는 감정은 참으로 오묘하다. 미친사람처럼 실실 쪼개기도 하고 하루에도 천국과 지옥을 몇번을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감정. 

한번 떠났다 올 때마다 네 인생이 결은 너도 모르는 사이에 훨씬 단단해질 거야. 그리고 사람 속에서 느끼는 고독이 아니라 네 안을 굽어보며 느끼는 고독의 정체를 알게 될 거야. 그것이 너무 애틋해서 너를 더욱 힘차게 끌어안지 않고는 못 배기게 될 거다. 말하자면, 너를 더 사랑하게 될 거란 뜻이야.(200쪽) 누군가는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 떠난다고 한다. 돌아오기 위해서 떠난다는 그 말이 그 시절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좀 알뜻도 하다. 쉼표에 주저함이 없고, 막힘에 절망하지 않는 시절, 청춘이란 그런거다.(272쪽) 세상 누구도 너 자신보다 소중한 사람은 없어. 목표가 생기면 주저하지 마. 정면으로 마주 섰을 때 비로소 네 미래도 너에게 찬란한 속살을 보여줄 거야.(271쪽) 우리는 모두 다 같은 존재다. 아프면 울고 즐거우면 웃고 힘들면 주저앉고 술마시면 뻗고. 그러니 우리 모두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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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의 불 - 휴먼에너지, 미래를 이끌어갈 원동력
정지훈 지음 / 열음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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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에너지, 미래를 이끌어갈 원동력은 무엇인가? 각각의 블로그와 트위터는 그 사람 자체 또는 작성자가 만들어놓은 가상의 정체성을 일정하게 유지한다.(37쪽) 처음에 블로그가 문을 열때만 해도 이정도의 열풍을 일으킬줄은 몰랐다. 트위터 역시 요즘의 흐름에 잠시 정신줄을 놓고 있었던 나는 이 책을 읽기전에는 관심이 없었다. 트위터에 들어가서 나 역시 다른 이의 계정을 팔로잉하면서 사람들이 푹 빠져있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여기에 푹빠지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를 정도의 중독성이 있구나 싶었다. 급변하게 변화하고 있는 요즘에 트위터라는 쌍방향 소통이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고 관심 많은 정보가 어떤 것인지 쉽게 검색할 수 있었다. 전에는 수동적이었다면 트위터를 중심으로 능동적으로 바뀐 느낌이였다. 더 많은 이들이 트위터를 통해서 많은 것을 공유하고 참여하게 되었다.

 

웹 2.0이 분산, 참여, 공유로 대별되며, 기존의 커다란 섬으로 상징되던 포털 중심의 인터넷 세상에서 작은 섬들의 집단과 이들 간의 다리를 건설하는 형태의 인터넷으로 바뀌어가도록 하는 기술이었다면, 웹 3.0은 너무 많아진 정보의 양 때문에 보다 개인화되고 최적화할 수 있는 기술과 기기가 다변화하면서 실시간성과 모바일 기술이 부각되고 있다. (36쪽) 그동안은 거대 공룡들에 의해서 시대가 좌지우지 되었다면 이제는 지식과 경험을 가진 개인들의 힘이 커질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뉴스나 라디오를 통해서가 아닌 이제는 개인을 통해서 직접 전해 들을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3D 프린터가 곧 우리 곁으로 올날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에 신기하고 기대되지만, 반면의 여러 부작용들에 대해서 걱정이 된다. 상상하는 것이 눈앞에 펼쳐지는 세상이 멀지 않았다더니, 그것이 곧 현실이 되는구나 싶었다.  '사람'이 바로 플랫폼 그 자체라는 것이다.(41쪽) 이제는 개인의 영향력이 커질것이며 트위터등 웹상의 활발한 움직임을 통해 다양한 공동체적인 작업을 이룰수 있을것이며, 기존의 틀이 깨질것이다. 앨빈 토플러의 <제 3의 물결>을 읽을때만 해도 이런 세상을 생각치도 못했었다.

 

사회적 자본에 대한 건전성 역시 자본을 포함한 다양한 사회적 관계의 긍정적 발전과 부정적 변화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119쪽) 기업의 광고는 더이상 사람들의 신뢰를 이끌어내지 못한다. 물건을 고를때도 상품평이나 파워 블로거들의 입김이 거세어 지고 있다. 이를 광고로 끌어들이면서 블로거에 대한 신뢰도가 조금은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아무래도 자본이 개입되다 보면 객관적인 입장을 유지하기가 싶지 않기 때문이다. 진실성과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면 괜찮을 것이다. 처음엔 흥미롭게 이 책을 들었지만, 점점 들어갈수록 내용에서 어려움을 느낀다. 정신이 없을수도 있고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이 되지 않을수도 있지만, 이제는 실제로 기발한 일들을 시도해보고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점에서 매우 희망적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인터넷의 바다에 풍덩 뛰어들어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자신만의 행동을 시작하라.(313쪽) 상상했던 것이 현실로 이루어지는것 꽤 신나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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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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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 특유의 개성이 살아있는 <고령화 가족>이다. 48세 중년의 남자이자 이 책의 주인공인 오감독은 한때 충무로의 감독을 꿈꾸며 비상했지만, '추락하는 것은 날개도 없다' 처럼 완전히 바닥으로 고꾸라져 버렸다. 이제 그는 힘없고 나약한 중년의 아저씨였다. 더이상 팔아 넘길것도 없이 내일은 길바닥에 나앉게 생긴 그는 엄마 집으로 들어가게 된다. 원치 않았지만, 구제불능이고 멧돼지 같은 그의 형 오함마와 함께 살게 된것이다. 그래도 처음은 무난하게 시작하고 있었다. 그는 일류대학에서 공부한티를 줄줄 흘리고 다녔지만, 진정한 지식인은 되지 못했다. 마음의 나약함이 독처럼 퍼져서 그를 집어 삼켜 버린것이다.

 

그의 사람의 첫인상은 딱 한마디로 단정지어진다. '생활력' 이라든지 '싸가지'라든지 말이다. 정작 자신은 뭐라고 말할까. 그의 세상에서 가족의 자리는 아주 협소하고 비좁았던것 같다. 그가 살던 가족사에서 그는 중심이였을 테니, 아마 아쉬울것도 그다지 나쁠것도 없었을 것이다. 오함마에게 죽지 않을만큼 맞고 쫓겨다닌것을 빼면 말이다. 이 가족들은 다들 하나같이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그의 엄마, 형, 자신, 여동생, 거기에 조카까지. 다들 자신의 아픔이라든지 과거와 직면하지 않으려고 모래성을 쌓고 있었다. 언제 파도에 휩쓸려서 무너질지 모르는 모래성을. 오함마가 인생의 낙오자가 된 이유 그건 아픈 과거에 있었다. 엄마의 과거가 밝혀지면서 고령화 가족은 새로운 파국으로 치닫는다. 엄마의 과거뿐만 아니라 다른 파국도 기다리고 있을 테지만, 절대 기억속에서 꺼내고 싶지 않은 기억을 끄집어 내면서 출혈을 일으키게 된다. 아픈 상처나 생각하고 싶지 않은 과거사를 그대로 묻어 두고 잊어버린것처럼 행동한다고 해서 잊혀지는것이 아니다. 우리의 머리속은 복잡하면서도 굉장히 단순하다. 어떤 버튼을 누르면 자신도 몰랐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언제 어느 순간에 그 버튼이 눌러질지 모른상태에서 우리는 무참히 당하게 되는것이다.

 

고령화 가족도 치명적인 연타를 맞게 되지만, 조카의 가출로 인해서 모든 상황이 일단락 종료되는 듯 했다. 연쇄살인범이 그 주변을 떠돌아 다니고 어린 소녀들이 죽어 나가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두려움에 몸서리를 치지만, 다행이도 조카는 아니였다. 그동안 구제불능에 식충이로만 여겨졌던 오함마가 조카가 집을 나간것에 반성하며 집나간 조카를 데리고 온다. 어느 순간인지 오함마과 조금씩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오함마는 아마도 과거의 일로 인해서 자신을 많이 책망하고 망가뜨리기 위해서 살았던것 같다. 오함마의 인생에도 영화를 찍을 만큼의 반전의 인생 탈출구가 생긴다. 그 일로 인해 오감독이 죽지 않을만큼 맞아서 강가에 널브러지지만 말이다.

 

사람은 어느 순간이 제일 치명적이라던가, 죽을것 같다던가 하는 그런순간이 찾아오지 않았으면 하지만, 한번쯤 찾아올지도 모른다. 여러번 찾아오면 그건 바로 '인생이 다큐멘터리' 이겠지 싶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 말처럼 뭘 해도 안된다, 힘들다, 죽겠다 싶으면 정말 죽을맛일것이다. 고령화 가족 역시 심각한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그들이 사는 방식이 소파에 앉아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 노인들네게 씹고 또 씹어도 좋은 껌이지만, 그들에겐 죽을만큼 힘든일이다. 소파에 앉아서 <고령화 가족>을 씹는 노인네 분들중에도 어디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 중 한 할머니의 막내 아들도 가막소에 갔다고 한다. 상근 할머니 왈 ' 갸가 도둑질을 한 게 아니고 워낙 친구를 좋아해서 따라다니다보니께 으트게 가막소까지 따라가게 됐다고 내가 말안했어." (50쪽) 말하신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찌나 웃기던지 정말 배꼽빠지는 줄 알았다. 남의 이야기는 씹긴 좋지만,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꺼려한다. 아무리 죽일놈이네 해도 자신의 아들은 귀하고 소중한 법이다. 그것이 부모 자식간의 끊을래야 끊을수 없는 관계인것이다.

 

우리는 운명이라는 단어를 참 좋아한다. 운명적인 사랑등 부모 자식간의 만남처럼 극적이고 알수없는 운명이 있을까? 오직 하늘이 맺어준 인연, 이것이야 말로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문제를 안고 있던 <고령화 가족>도 거대한 폭풍후가 지나고 잠잠한 바다처럼 보인다. 자식들을 말없이 받아주시던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직도 폭풍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지만.  어쩌겠는가 그것이 인생인것을.  한집에서 살았던 가족들이 이제 뿔뿔히 흩어지면서 그들의 아픔도 이젠 그냥 기억이 될 수도 있겠다 싶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어도 아픈것은 똑같다. 나이를 먹는다고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도 아니고 사랑이라는 감정이 파묻히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나이들면 사랑도 안하는거라는 착각에 빠져서 그분들을 바라본다. 우리야말로 이제 나이를 먹고 늙어갈텐데 말이다. 자신의 뒤통수도 못보는 나인데 무엇인들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까.

 

오함마가 노인과 바다를 읽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낚싯바늘에 입이 꿰여 고통에 몸부리치다 곤봉에 맞아 끝내 아름다운 몸체를 뒤틀며 숨을 거둔 물고기, 고깃배에 매달린 채 상어들에게 살점을 묻어뜯기고 피를 흘려 바닷물을 붉게 물들였던 바로 그 청새치, 그러다 마침내 온몸의 살점이 모두 떨어져나가 거대한 뼈만 남은 채 돛대에 수치스럽게 매달린 청새치...... 그게 바로 나야. (148쪽)

저자가 헤밍웨이를 좋아하나보다. 헤밍웨이를 거론한 이야기가 꽤 나오는걸 보면 나는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읽다가 정말이지 종을 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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