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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베일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7
서머셋 모옴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07년 2월
평점 :
이 책의 주인공 키티 페인의 인생여정에 대한 이야기다. 짧았던 그 시간동안 키티는 좀 더 성숙하고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것을 느꼈다. 사랑하지 않았지만 그의 믿음직스러운 구석 - 사실 월터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데 익숙치 않다 - 과 자신의 처지에 떠밀려서 키티는 그와 결혼을 결심하게 된다. 처음부터 시작이 좋지 않았다. 키티는 월터를 사랑하지 않았고 자신의 안정된 미래를 위해서 월터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월터가 키티를 그 자체로 무지 사랑했던것 역시 그 상황에선 문제가 되었다. 서로 사랑해서 결혼해도 헤쳐나가야할 난관이 수없이 많은데 외사랑으로 시작된 이 결혼이 괜찮을리 만무했다. 키티는 그렇게 살아왔듯이 쾌활하고 명랑하고 허영심도 많은 여자였다. 월터가 그녀에게 헌신적으로 잘했음에도 그가 따분하고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요즘에 이런남자를 보기 흔하지도 않을 뿐더러 너무나도 당연한것처럼 여기는 키티의 행동이 짜증스러웠다.
사랑하지 않았지만 결혼했다면 서로의 신뢰를 지켜야하는데 키티는 찰스란 -겉멋만 좌르르 흐르는 - 남자에게 푹 빠져버린다. 나중에 자신이 그에게 왜 빠져들었는지 의문을 들 정도였지만 지금은 눈에 뵈는것이 없었다. 그녀가 그러지 않았더라면 좋았을것을. 하지만 그 여정은 그녀가 인생에서 겪어야할 난관임에 분명했다. 키티의 부정을 알아버린 월터는 너무 괴로워서 키티를 협박해서 콜레라가 창궐하는 중국의 오지 마을로 자원해서 간다. 생각해보면 월터는 아마도 죽으려고 갔던 것 같다. 세균학자였던 월터가 구지 오지 마을을 갈 이유는 없었다. 월터는 키티에 대한 사랑이 모든것이 무너져 내려 그 길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것 같다. 월터가 그녀를 조금만 덜 사랑했다면 죽지 않았을까. 월터는 그녀가 아닌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끝까지 져버릴수 없는 그녀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증오스러웠을지도 모른다. 월터에게는 어떤 의미였을지 모르겠지만, 그 오지마을에서의 생활은 키티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켰다. 표정변화가 없고 무표정하지만 사랑했던 그녀에게만은 헌신적이였던 그였기에 더욱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키티가 목숨을 바쳐서 사랑했던 찰스란 인물은 키티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았다. 당연히 이혼할 생각도 없었다. 그냥 일상에서 즐기는 여유정도일 뿐이였다. 키티 앞에서는 뭐든지 해줄것처럼 말만 번지르르하게 했을뿐 정작 그 자신은 아무것도 달라질 생각이 없었다. 그런 이기적인 인간에 빠져버린 키티는 자신을 한없이 자책했다. 그랬지만, 모든것이 끝났다고 생각되는 순간 그녀의 깊은 욕망이 다시 그를 원하는 일이 생겨버렸다. 머리는 경멸하고 부정하였지만, 자신도 알수 없는 내부의 욕망이 고개를 든것이다. 어떻게 그럴수 있냐고 키티에게 물어보았지만, 그럴수도 있는 모양이다.
울타리 안에서만 곱게 커왔던 키티는 이제 한 아이의 엄마로써 그리고 그동안 돈버는 기계로만 알아왔떤 나약한 아버지. 이제는 아버지의 고통과 짐이 얼마나 컸는지 이해할 수 있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한평생 동안 아버지를 못살게 굴기만 했던 어머니에게로 해방된 아버지는 슬픈 마음보다는 -부인이 죽으면 화장실에서 웃는다는- 그런마음이 더 강하게 쳐들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그녀의 아버지가 나쁘다는것은 아니다. 그동안 그녀의 어머니에게 그토록 종용당하고 살았으면 된거아닌가. 사람의 감정은 참 복잡 미묘하다. 사람 내부의 욕망역시 그런것 같다. 키티와 그녀의 아버지는 진정한 가족이 되었다. 그동안은 고용인과 고용주의 관계랄까 그랬었는데 말이다. 철없어 보였던 키티의 인생살이가 호락호락 하지 않을테지만, 이제 그녀는 용감하게 싸워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