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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들의 음모
파트리스 라누아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9년 8월
평점 :
영화속의 주인공처럼 2분후의 미래를 내다 볼 수 있다면 로익은 절대 그런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폭풍우에 휘말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엄청난 재앙과 커다란 고통이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일은 매우 드물어.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통해 자기 삶을 결정한단다. 매순간 조금씩, 아주 작고 무수한 붓질을 통해." - 55쪽 - 그렇다. 무슨 일이 일어나기전의 수많은 암시를 받지만, 정작 자신은 알아차리지 못한다. 일이 일어난 후에야 그 수많은 암시들을 깨닫게 되는것이다. 로익은 부인이 죽은 후 자신의 일을 접고 '모르포 호' 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날도 평상시처럼 보트에 있었던 로익에게 자신의 부인을 떠올리게 하는 파출리 향기를 닮은 소녀 클라라가 말을 걸어왔다. 2년전에 자신이 사랑했던 부인이 죽고 힘들어 했던 로익이 안쓰럽게 느껴지다 어느 순간 그때문에 그녀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클라라는 보트를 타고 싶었고 자신의 아픈 동생이 좋아할꺼라며 로익을 졸랐다. 바다 한가운데에 '모르포 호'를 타고선 클라라는 신나게 수영을 하고 자폐증인 동생 솔은 한쪽에 쭈구려 앉아 있었다.
모든것이 평화롭고 한적한 하루였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면 다른날과 다를바 없는 평범한 하루였을 것이다. 그들은 허술하기 그지 없는 보트에서 꼼짝없이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의 부인이 혹시나 모를 사고에 대비해 통조림이나 캔들을 준비해 두어 그나마 다행이였다. 사춘기를 겪고 있는 소녀답게 클라라는 처음엔 그러지 않았지만, 여러날이 지나면서 매우 신경질적으로 바뀐다. 내 귓가에 생생하게 클라라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온다. 안그래도 이 상황에 미칠것 같은데 더 돌아버릴것 같다. 자신만의 세계에 살고 있는 솔은 로익에게 신경질적으로 굴지 않아 다행이였다. 그는 2년전 부인이 죽기전으로 돌아갔다. 사랑스러웠던 그녀를 배신하고 그는 왜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났던것일까? 그로 인해 그의 부인은 죽었다. 자신도 지붕에서 떨어졌다. 그가 그녀의 목을 조르진 않았지만, 절벽에서 그녀를 밀어버린것이였다. 밤마다 그는 악몽에 시달리고 부인의 이름을 부르고 외치고 발악한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클라라의 짜증스러운 어투들과 그들이 벌이는 사투가 안쓰럽게 느껴진다.
클라라의 두려움과 공포로 인한 짜증스러움은 극에 달한다. 클라라는 이 모든일이 로익(선장)이 꾸민일이라며 심지어 그를 묶어 두기까지 한다. 누가 미쳐가는지 알 수 없다. 그는 자꾸만 그의 기억을 뒤적인다. 머리를 다친것인지, 그가 원하는 각본을 쓰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그의 기억은 확실치 않다. 그의 기억은 자꾸만 퇴색되고 부인을 자신이 죽였다는 죄책감에 바다 한가운데에서 점점 죽음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내가 바다한가운데에 표류되어 있다면 얼마나 망막할까? 그렇게 8개월동안 그와 클라라, 솔은 바다에 있었다. 클라라와 솔이 상어에게 위협을 받을때도 그는 무기력하게 그자리에 얼음처럼 붙어서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의 부인이 죽었을때도 그랬을까? 세사람이 아닌 혼자서 바다에 8개월동안 표류되었다면 미치지 않고 살아낼 수 있었을까?
정신없이 폭풍우가 '모르포 호'를 내려치듯이 이야기는 우리를 붙잡고 있었다. 사고의 충격으로 인해 화성인에서 민간인으로 돌아온 솔은 수많은 질문들을 쏟아낸다. 로익은 솔과 많은 말들을 주고 받는다. 사람의 의식, 기억, 무한등 알지만 확실히 단정지어 말할수 없는 뭉뚱그려지고 마는 그러한 것들에 대해 말이다. 로익은 솔과의 대화를 통해서 무엇을 깨달았을까? 클라라와 솔은 그에게 어떤 의미였던 것일까? 바다한가운데에 정체되어 있다가 떠내려왔다 거센 파도를 만나 이리저리 흔들리고 정신이 없듯, 이 책을 읽는 내내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어디쯤 떠내려 왔는지, 이 책의 결말이 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말이다.
삶이 나를 이리도 무기력하게 만든다면 어떤 결단을 내릴것인가 하고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