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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습작 - 김탁환의 따듯한 글쓰기 특강
김탁환 지음 / 살림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맛있는 글쓰기, 매료되는 글쓰기, 읽지 않으면 궁금해서 미칠것 같은 글쓰기, 과연 글은 어떻게 쓰면 될까? 다양한 종류의 책들이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지고 있다. 그 중에서 과연 나의 마음을 잡아 끌어서 읽지 못하면 미칠것만 같은 책은 얼마나 될까? 생각보다 그 수많은 책들중에서 보석처럼 반짝이며 딱 내스타일인 책이란 생각보다 찾기 어려울 수도 있다. 쉽게 읽혀지고 머리속에서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않고 눈으로만 읽혀지는 책들이 많다.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글을 읽는것도 쓰는것도 지겨워져 버렸다. 전에는 쪽지를 남기던 것이 현대에선 문자메시지로 대신한다. 별빛이 총총한 밤에 머리를 쥐어 짜내며 쓰다 구겨버린 편지지를 더이상 기억하지 못한다. 그 자리를 현대문명이 딱하니 자리잡고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런것이 당연시 되어 버렸다. 책을 구지 사지 않아도 인터넷으로 보거나, 오디오북이라 새로운 매체가 우리에게 읽어 준다. 지식을 얻고, 쉽게 접할수 있는 책이 멸망의 길에 들어섰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전 책의 향기가 좋습니다.
글쓰는 것은 머리가 하는 것이 아닌 손이 하는 노동력이라고 한다. 아무리 많은 이야기가 머리속에서 맴돈다 하여도 그것을 손으로 풀어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쓰고 또 쓰고 손이 마비될때까지 쓰고 또 쓰고, 손이 짓물러 터질때까지 쓰고, 그렇게 우리의 손을 혹사시킨다고 해서 좋은 글이 탄생하는 것은 아닐것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것인가? 그 분야에 관련된 책을 150권정도 읽으면 어느정도 수준의 지식에 달할 수 있다고 한다. 150권이라는 책은 적지 않지만, 그렇다고 감히 넘겨보기 어려운 숫자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쉽사리 좋은글이 써지는 것은 아닐것이다.
저명한 작가의 작품을 습작하면서 글쓰는 방법을 배워가고, 글속으로 들어가 주인공이 되어 보고, 주변 인물이 되어 본다. 작가들의 언어는 때론 우리가 하고 있는 말이 아닌 한마디 한마디에 주문이 걸린 마법같다. 그들은 마법사이다. 우리의 감정을 마음대로 휘두를 줄 아는, 가슴에 뜨거운 무언가를 남기는, 연금술사이기도 하다. 바라보고 표현하는 것을 갓난아이가 처음 태어나 본 세상처럼 낯설면서도 세상의 아름다움을 더욱 빛나게 노래한다. 반대로 죽음의 고통에 육신이 갈기 찢겨 나가는 고통을 느껴보기나 한것처럼 뼈마디 마디의 감각이 살아서 춤추는 것처럼 우리가 함께 그 고통이 느껴지게 만든다. 때론 소설속의 주인공이 실제로 살아있는 사람처럼 친근감이 들기도 하며, 때론 이런 사람도 있구나 싶다. 우리가 생각치도 못했던 소재를 끄집어 내어 또 다른 세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학창시절에 글을 잘쓰는 친구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내가 중학교때 초등학교 조카녀석의 독후감 숙제를 대신해준적이 있다. 글을 못쓰는 나에게 이모라는 이유로 조카녀석의 독후감을 써주어야 한다는것은 크나큰 부담이였다. 특히 언니의 당연히 내가 그것에 응해야 한다는 것도 불공평하다 생각했다. 공부를 하면서 여태까지 한번도 밤을 지새워보지 못했던 내게 밤을 꼬박 세우게 했다. 책의 줄거리를 썼다가 지우다가 느낌을 적다가 쓰고 지웠다 그렇게 불완전한 상태의 독후감 3편을 썼다. 밤을 세운다는 것은 배가 콕콕 쑤셔오고 머리는 아찔하며, 내 숙제도 아닌것을 하고 있기에 더욱 짜증나는 일이였다. 얼마후에 내가 쓴 독후감으로 좋은 점수를 받았다니 다행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씁쓸한 기분이였다. 예전의 일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읽고 싶어진 책이 많아져서 행복했다. 똑같은 내용의 책이지만, 어느 시절에 읽었는지에 따라 감동이 다르다. 그 당시에 이해하지 못했던 내용들도,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알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백년학생’ 입니다. 글쓰기에 뜻을 둔 이라면 ’천년습작’을 각오해야겠지요. 좋은 글 한편 품고 문 두드릴 그날까지 맛난 술 익히며 기다리겠습니다. - 마지막 장 -
언젠가는 나만의 멋진 글쓰기를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래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