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노트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25
로제 마르탱 뒤 가르 지음, 이충훈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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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이 발각되다> 첫장에서 뭔가 사건이 일어났음을 짐작 할 수 있었다. 티보씨와 그의 아들 앙투안은 자크를 찾으러 학교로 달려갔다. 신부님은 짐작했다는 듯이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 해주었다. 그 화두의 중심에는 회색노트가 있었다. 다니엘과 자크가 서로 주고받은 교환일기일뿐인데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된다는 것인지 의문이였다. 신부님은 무슨 권리로 교환일기를 빼앗아서 그들의 비밀을 들추어 내는것인가?  내가 자크였더라도 신부의 행동에 크게 분노했을 것이다.

파리 대교구에 영향력이 큰 티보씨는 아들의 걱정보다는 자신의 명예에 먹칠하는 것에 더욱 화가 치밀어보였다. 한편 다니엘네 집에서는 자크의 집과는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다니엘의 엄마는 아들이 없어진 사실에 모든것을 떠나 진심으로 아들의 안위만을 걱정한다. 다니엘의 엄마는 자신의 아들이 자크와 함께 사라진것을 알고선 티보씨를 찾아간다. 불안한 마음에 그녀는 용기를 내어 티보씨를 찾아가지만, 그건 용기가 아니라 섣부른 행동일 뿐이였다. 티보씨는 그녀의 아들 다니엘을 비판하며 그녀에게도 심한 모욕을 주었다. 그들이 프로테스탄트라는 이유만으로도 티보씨는 불쾌함을 감추지 않고 여실하게 드러내었다. 
 


여기에서  두 사람의 사랑이라는 감정이 문제가 되었던 것 같다.  어른들은 자신들의 잣대에 아이들을 맞추며 지나치게 간섭하고 걱정하는것 같다.  정작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고 말이다. 우리는 사춘기를 거쳐왔다. 그때는 예민하고 자신의 미래에 불안감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한때는 공부가 전부인것처럼 살아왔지만, 세상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어른들은 자신의 아이들을, 아이들을 그런 어른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간의 벽만 높아져만 간다.  사춘기를 거쳐온 어른들은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불안한, 하지 말라는 행동들만 하는, 삐딱하게만 구는, 신경질적인, 감정의 기복이 심한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을것만 같다. 하지만 어른들의 모습에선 그런 아이들이 이해불능이다. 자꾸 미운짓만 골라하고  "우리때는 저러지 않았는데" 라는 불필요한 말만 되뇌이곤한다. 정말 그랬을까? 사람의 기억은 자신이 해석하고 싶은대로 남아있고 퇴색시키고 미화시켜 버린다. 그래서 기억이라는 것은 온전치 못한 추억의 파편들뿐이다. 그런것은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자크는 아버지의 따스한 사랑을 원하지만, 늘 엄하기만 하시다. 그럴수록 두 사람의 서로에게 엇갈린 시선으로 인해 사이는 멀어질 뿐이였다.  현실에 불만을 품고 두 사람은 집을 나가기로 결정한다. 매사가 삐딱하고 불안하게만 보이는 자크와 달리 다니엘은 모범적인 아이였다. 많이 달라보이는 두 사람이 친해진 것은 의외였다.  자크는 엄격한 아버지와 자신을 보듬어줄 어머니가 계시지 않았다. 다니엘은 어머니는 다정스럽고 좋은 분이셨으나 그의 아버지는 난봉꾼이였다. 다니엘의 엄마 역시 그동안 회피해왔었던 자신의 아픔과 마주서고 그의 남편과의 관계를 정리하게 된다. 두 사람이 나눈 교환일기를 보면 감성이 풍부하고 소설가나 시인같다는 생각이 든다.

 

두 사람은 마다가스카르로 떠나면 새로운 인생이 있을 꺼라 생각하고 길을 떠난다. 하지만 세상은 두 사람이 생각한만큼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다니엘의 어설픈 거짓말은 들통나버리고 두 사람은 도망치다가 잠시 헤어지게 된다. 서로를 걱정하며 자크는 노숙을 하게 되고 다니엘은 그토록 궁금해 했던 성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되는 계기가 된다. 자신의 피를 들끓게 만들고 정신을 흐트려 놓았던 일을 겪고 난 후 다니엘의 모습은 좀 달라보였다.

 

그들은 카톨릭 사회의 견고한 인습과 어른들의 묵은 가치관을 부정하고 그것으로의 해방을 위해 가출을 시도한 것이였다. 금방 집으로 끌려 올 수밖에 없었음을 알았을 것이다. 다니엘은 엄마의 품으로 돌아갔지만, 자크는 그러하지 못했다. 자크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아버지의 품속에 안겨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더라면 좋았겠지만, 상황이 순조롭게 흘러가 주지 않았다. 결국엔 자크의 아버지는 결단을 내리고 아들을 어디론가 보내버리려고 한다. 자크는 다니엘에게 아버지가 우리 둘 사이를 갈라 놓으려 하며 자신을 어딘가로 보내려한다고 편지를 붙이며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티보가의 사람들>은 전체가 8부 11권으로 이루어진 대하소설로, 제 1부가 회색노트라고 한다. 마지막장을 읽으면서 이렇게 끝나다니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었다. 나 역시 요즘 아이들의 위태로움에 안쓰럽고 걱정스럽기도 하다.  이 책에서 카톨릭 사회의 숨막힘이 지금 현실과 크게 다를바가 없는것 같아서 안타깝기도 하다. 지금의 혼란스러운것들이 나중엔 괜찮아 질꺼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다만 그 끝이 어디인지 꼭 가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주고 싶다.  현재의 고민들은 자신만의 아픔이 아닌, 그 어떤 누군가도 다 고민하고 힘들어 했던 문제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현재에도 우리는 성장통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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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인공들
아일린 페이버릿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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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속의 여주인공들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들의 세계속에선 결국 해피앤딩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엄마와 그레타 아줌마가 운영하는 여관은 뭔가 특별한 이야기가 있었다. 책속에만 살아있었던 여주인공들이 잠깐씩 들러 쉬어 가곤했다. 상상속의 세계인가? 현실인가? 나는 한동안 멍해 있었다. 엄마는 한참 사춘기인 13살 딸아이 보다는 잠깐씩 머무르는 여주인공들을 더 소중하게 대했다. 페니는 데어드르라는 여주인공에게 자신의 방을 빼앗긴 후로 화가 나서 집을 뛰쳐 나간다. 그 일로 인해 자신에게 어떤일이 벌어질지 알지 못한 체 말이다. 엄마가 가지 말라고 했던 숲으로 들어가게 되고 거기에서 켈트 족 왕 코노르를 만나게 된다.

 

엄마는 여주인공들이 자신의 결말을 알아 버리게 될까봐 그들이 등장한 책들을 다락방에  꽁꽁 숨겨두고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 페니는 여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읽고 그들의 인생을 바꿀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그래선 안된다며 페니에게 나서지 말라고 한다. 집을 나간 딸이 걱정되어 엄마는 실종신고를 하게 되고 일이 커져 버린다. 의사의 협박에 의해 어쩔수 없이 엄마는 서류에 사인하게 되고 페니는 정신병동에 들어가게 된다. 페니는 엄마의 배신에 치를 떨게 되고 마지막 몸부림은 얼핏 정신병자 같기도 했다. 잠깐이면 된다고 했었던 엄마의 말과는 달리 페니는 어쩌면 이곳에 오래토록 있어야 할지도 몰랐다. 정신병동으로 페니를 구하러 코노르가 오게된다. 아마도 그것을 본 간호사들도 자신의 눈을 믿지 못하는듯 했다. 페니가 했던 이야기들이 모두 사실이였으니까. 나 역시 이책을 읽는 내내 책의 대략적인 내용을 알고 있었음에도 꿈속인지 믿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역시 아이들의 허상따위는 정신병이라고 여기는 그런 바보 어른이 되어버린것 같다. 만화속에서의 다양한 이야기들 속에서 꿈꾸며 좋아했던 나였는데 어찌 이런 상태가 되어 버렸는지 말이다.

 

페니의 아빠가 누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때는 한방 먹었다.  어이가 없기도 하고 재미있어 웃음만이 나왔다. 페니의 엄마 역시 페니를 갖게 된것도 책속의 주인공을 만나서 였다. 그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밝히진 않겠다.  엄마는 한눈에 사랑에 빠졌고 페니를 갖게 되고 그는 책속으로 떠나버린 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페니는 엄마에게 말하진 않았겠지만, 아버지의 존재에 대해서 늘 궁금했을 것이다. 페니는 코노르를 만난 순간 뭔가 자신이 알지 못하는 감정이 이는 것을 느꼈다. 아마도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같은 것이였으리라.  페니가 감당하기엔 벅찬 경험을 한 후 평상시의 자기 모습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페니는 자신의 아버지가 등장하는 책을 읽었다.  페니의 아버지는 불운의 주인공이였으며 악인이였다. 결말 역시 좋지 않았다. 페니는 가슴이 아파서 자신만의 결말을 적어 내려갔다.  늘 자신의 집에 머물다간 여주인공들을 질투하였던 페니는 자신의 인생에 여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처럼, 페니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벗고 당당히 싸워 이겨내었다.

 

한번쯤은 여주인공들을 부러워 한적이 있을 것이다. 책속에 그려진 여주인공들은 불운하던 유복하던 멋져보였고 동경의 대상이였다. 결말이 해피앤딩일땐 우리도 함께 행복했지만, 결말이 비극일때는 함께 눈물짓곤 하였다. TV드라마속의 여주인공들은 멋진 남자들이 어디에 포진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하나도 아니고 둘씩 나타나며 삼각관계를 그려낸다. 여주인공들은 얼핏 보기엔 평범해 보이지만, 얼굴도 이쁘고 사랑스럽고 착한 성품을 가지고 있다. 누구든지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스타일이다.  우리 역시 우리의 삶속에서 멋진 여주인공임을 잊지 말아야 겠다. 누군가가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주고, 환호해 주지 않더라도 우리는 빛나는 존재임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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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돌보며 - 딸의 기나긴 작별 인사
버지니아 스템 오언스 지음, 유자화 옮김 / 부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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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돌보며> 저자와 어머니의 이야기를 안개가 뿌연하게 낀 것 같은 답답한 심정으로 읽었다.

3년전이었던가? 전화벨소리가 다급하게 울려왔다. 분명 저 전화벨소리는 집에서 거는 소리일꺼다. 늘 그랬었지만, 아버지는 성격이 급하신 분이라 전화 벨소리 또한 아버지를 닮아서 급하고 상대방을 다그치듯이 울린다. 어머니의 떨리는 목소리 "아버지께서 자전거 타고 가시다가 넘어지셨다." 고 말씀하셨다. 그후로 아버지는 파킨슨병 진단을 받으셨다. 그전에도 파킨슨병의 징후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었지만, 넘어지셔서 머리를 다치시고 병원에 가시지도 않고 집에서 뭉개시다 병세가 나빠지셨다. 저자의 말처럼 "우유부단한 사람은 고집불통이다" 나도 이말에 전적으로 동감이다. 우리 아버지 또한 고집불통이셔서 좀처럼 우리들의 말을 듣지 않으신다. 아버지는 머리를 다치신 그때 바로 병원에 가셨어야 했다. 일흔을 넘기신 연세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쌀 한가마니를 번쩍 드시던 그때를 잊지 못하고 계셨다. 아버지는 얼마나 답답하실까?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으니 말이다. 아버지의 머리는 늘 쉬지 않고 움직이는 해와 같았다. 아마도 주무실때도 무의식 세계속에서 생각을 하고 계실것이다. 목표를 맞추고, 그것이 맞추어지지 않으면 잠 못이루시고 그것을 참지 못하시는 분이시다. 아버지 머리는 지금까지 쉬지 않고 돌아갔기에 무너져내렸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미래를 알았다면, 그 험난하고 긴 강을 건너야 한다면, 우리는 선뜻 시작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미래를 너무나도 알고 싶어 하지만, 모르는 것이 약인 것 같다.  저자의 말처럼 짧을지 길지 모르는 삶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기에 우리는 겁없이 달려갈 수 있다.  아버지도 자신의 삶이 그리도 고달플지 알았더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저자 역시 알고 있을지라도  어머니의 가녀린 손을 놓을 수 없었을 것이다. 유머스럽고 다정하던 저자의 어머니는 침해와 파킨슨병으로 인해 사라져 버렸다. 침해란 세균은 사람의 기억을 갉아 먹고 난폭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표정이 굳고 몸이 굳고 말을 잃어 버리고 그 다음엔 생명을 잃어 버린다. 내가 좋아했던 배우 마이클 제이폭스가 파킨슨병으로 인해 활동을 중단했을 즈음에 난 파킨슨병에 걸리면 급격하게 몸이 굳어지고 죽는줄만 알았다. 그 보다 먼 과거에는 그랬을지 모르겠지만, 현대에 파킨슨병은 나이를 먹으면 몸이 퇴화되는 것처럼 그런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흔히 엘도파라고 알고 있는 약물인 레바도파는 파킨슨 병 치료약이다. 엘도파는 뇌로 흡수되면 도파민으로 전환된다.  뇌가 도파민을 생성하지 못해서 근육을 움직이게 하는 신호가 혼란에 빠지고 그로 인해 행동이 느려지고 불확실해진다. 말은 어눌해지고 손이 떨린다. 이것이 파킨슨 병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노인 요양원에서 어머니를 바라보는 저자의 마음은 편치 않았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그럴수 있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정작 중요한건 자신의 마음일테니까 말이다. 노인 요양원은 책에서 그려진것처럼 그 단어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거기에 있는 노인들에게는 분노와 증오가 섞인 눈빛과 침울한 분위기는 멀쩡한 사람도 아프게 만들것이다. 저자의 어머니뿐만 아니라 저자도 함께 죽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몇달전에는 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말에 우리 모두 놀라서 부랴부랴 시골집에 내려간 적이 있다. 생각보다 아버지는 괜찮으셨다. 약이 독하셔서 아침에 정신을 못 차리신것 뿐, 정작 놀란 사람들은 우리들이였다. 어머니의 전화는 아버지가 곧 돌아가실것처럼 들려왔다. 마음을 가다듬고 너무 놀라지 말라고, 사람의 마음이 말처럼 간단하면 좋겠지만 감정은 너무나도 허약하고 허술하다.  괜찮아진 모습을 보고 우리들은 평상시로 돌아왔지만, 몸은 돌아오지 못했다. 한달동안 감기와 씨름을 하고선 초췌해진 모습이 되어 버렸다. 생각보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싶지 않다. 이 글을 읽으면서 마음이 편치 않다.

언젠가는 아버지의 부재중을 알아야 하지만, 아버지가 더이상 나빠지지 않길 바라며, 어머니를 외롭게 하지 않길 바란다. 자주 다투시는 두분이지만, 서로에겐 없어서는 안 될 그런분들이기에 말이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돌보며 자신이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전화기를 들면 놓으시질 않으시려 한다. 그런 모습에 웃음도 나고 아이같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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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신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4
김시습 지음, 이지하 옮김 / 민음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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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기체 소설의 효시로써 5가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만복사에서 저포놀이를 하다 <만복사저포기>, 이생이 담 너머를 엿보다 <이생규장전>, 부벽정에서 취하여 놀다 <취유부벽정기>, 남염부주에 가다 <남염부주지>, 용궁 잔치에 초대받다 <용궁부연록>이 수록되어 있다. 오랜만에 고전을 읽으니 나도 붓으로 멋진 시구를 써보고 싶어지는 생각이 든다. 

 만복사저포기에서 양생은 그동안 기다려 왔던 인연이 닿아 아리따운 여인을 만나게 된다.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혼백이 상해 가고, 여름낮 겨울밤에는 간담이 찢어지고 창자마저 끊어질 듯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부디 연민의 정을 드리워 주시옵소서. 그녀의 심정이 애절하게 와 닿는 부분이다. 시구를 주고 받으며 두 사람은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되고 그녀가 이세상 사람이 아닌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사랑엔 국경이 없다하지만, 이승과 저승 사이를 오고 갈 수 있는 것일까? 결국 양생은 그녀를 잊지 못하고 혼자 살아가다가 언제 생을 마쳤는지 알 수 없었다.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 두 사람의 절절함이 시속에 녹아 들어 아름다웠던 것 같다. 사랑한다라는 말이 두 사람이 나눈 시속에서 속절없이 무너져 내림을 느낀다. 

이생규장전은 최씨 처녀와 이생이 담너머로 사랑을 싹 틔우게 되고 두 사람이 맺어지지만, 홍건적의 난으로 인해 최씨는 목숨을 잃고 만다. 이생은 마음이 있음에도 선뜻 나서지 못하였었는데 그녀의 적극적인 행동이 인상적이였다. 두 사람의 사랑이 급하여 절차를 벗어난 일이라서 문제가 될뻔도 하였지만, 다행스럽게도 두사람은 맺어진다. 아쉬운것은 최씨의 목숨이 끊어질듯한 고비를 넘기고서 맺어진 인연이였는데 홍건적이라는 변수를 만나 두 사람의 행복한 시간이 짧았던것이 안타까웠다. 

 취유부벽정기는 홍생과 은나라 임금의 후손이며 기씨의 딸인 그녀와 부벽정에서 시를 주거니 받거니 하였다. 홍생은 정신을 차리고 보니 꿈인것도 같고 아닌것도 같았다. 홍생은 자신이 죽을것을 느끼고 자신의 주변을 정리한다. 사람들은 그가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남염부주지에서는 박생은 용궁의 왕을 만나서 자신의 뜻을 이야기하고 박생이 염라대왕이 되었다. 
 

 
나라를 다스리는 이가 폭력으로 백성을 위협해서는 안 될 것이오. 백성들이 두려워서 따르는 것같이 보이지만 마음속으로는 반역할 뜻을 품고 있어서 날이 가고 달이 가면 큰 재앙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오. 이 말은 김시습이 남염부주지 이야기를 통해 임금에게 전하는 말인것 같다. 아무리 공명정대하고 뛰어난 능력을 갖춘 수재라 할지라도 시기와 임금을 제대로 만나지 못하면 뜻을 펼치기 어려운 일이니 말이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대체로 나라라는 것은 백성의 나라라는 것을 늘 생각해 주면 좋을것인데 말이다. 

 용궁부연록에서는 고려 때 한생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용왕의 부름으로 용궁으로 가게 된다. 용왕의 부탁으로 딸의 결혼을 축하해주는 글을 상량문에 쓴다. 그 글에 감탄한 용왕과 세신은 서로의 시를 주고 받으며 즐긴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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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습작 - 김탁환의 따듯한 글쓰기 특강
김탁환 지음 / 살림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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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글쓰기, 매료되는 글쓰기, 읽지 않으면 궁금해서 미칠것 같은 글쓰기, 과연 글은 어떻게 쓰면 될까? 다양한 종류의 책들이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지고 있다. 그 중에서 과연 나의 마음을 잡아 끌어서 읽지 못하면 미칠것만 같은 책은 얼마나 될까? 생각보다 그 수많은 책들중에서 보석처럼 반짝이며 딱 내스타일인 책이란 생각보다 찾기 어려울 수도 있다. 쉽게 읽혀지고 머리속에서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않고 눈으로만 읽혀지는 책들이 많다.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글을 읽는것도 쓰는것도 지겨워져 버렸다. 전에는 쪽지를 남기던 것이 현대에선 문자메시지로 대신한다. 별빛이 총총한 밤에 머리를 쥐어 짜내며 쓰다 구겨버린 편지지를 더이상 기억하지 못한다. 그 자리를 현대문명이 딱하니 자리잡고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런것이 당연시 되어 버렸다. 책을 구지 사지 않아도 인터넷으로 보거나, 오디오북이라 새로운 매체가 우리에게 읽어 준다. 지식을 얻고, 쉽게 접할수 있는 책이 멸망의 길에 들어섰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전 책의 향기가 좋습니다.

 

글쓰는 것은 머리가 하는 것이 아닌 손이 하는 노동력이라고 한다. 아무리 많은 이야기가 머리속에서 맴돈다 하여도 그것을 손으로 풀어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쓰고 또 쓰고 손이 마비될때까지 쓰고 또 쓰고, 손이 짓물러 터질때까지 쓰고, 그렇게 우리의 손을 혹사시킨다고 해서 좋은 글이 탄생하는 것은 아닐것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것인가? 그 분야에 관련된 책을 150권정도 읽으면 어느정도 수준의 지식에 달할 수 있다고 한다. 150권이라는 책은 적지 않지만, 그렇다고 감히 넘겨보기 어려운 숫자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쉽사리 좋은글이 써지는 것은 아닐것이다. 

 

저명한 작가의 작품을 습작하면서 글쓰는 방법을 배워가고, 글속으로 들어가 주인공이 되어 보고, 주변 인물이 되어 본다. 작가들의 언어는 때론 우리가 하고 있는 말이 아닌 한마디 한마디에 주문이 걸린 마법같다. 그들은 마법사이다. 우리의 감정을 마음대로 휘두를 줄 아는, 가슴에 뜨거운 무언가를 남기는,  연금술사이기도 하다. 바라보고 표현하는 것을 갓난아이가 처음 태어나 본 세상처럼 낯설면서도 세상의 아름다움을 더욱 빛나게 노래한다.  반대로 죽음의 고통에  육신이 갈기 찢겨 나가는 고통을 느껴보기나 한것처럼 뼈마디 마디의 감각이 살아서 춤추는 것처럼 우리가 함께 그 고통이 느껴지게 만든다. 때론 소설속의 주인공이 실제로 살아있는 사람처럼 친근감이 들기도 하며, 때론 이런 사람도 있구나 싶다. 우리가 생각치도 못했던 소재를 끄집어 내어 또 다른 세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학창시절에 글을 잘쓰는 친구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내가 중학교때 초등학교 조카녀석의 독후감 숙제를 대신해준적이 있다. 글을 못쓰는 나에게 이모라는 이유로 조카녀석의 독후감을 써주어야 한다는것은 크나큰 부담이였다. 특히 언니의 당연히 내가 그것에 응해야 한다는 것도 불공평하다 생각했다.  공부를 하면서 여태까지 한번도 밤을 지새워보지 못했던 내게 밤을 꼬박 세우게 했다. 책의 줄거리를 썼다가 지우다가 느낌을 적다가 쓰고 지웠다 그렇게 불완전한 상태의 독후감 3편을 썼다. 밤을 세운다는 것은 배가 콕콕 쑤셔오고 머리는 아찔하며, 내 숙제도 아닌것을 하고 있기에 더욱 짜증나는 일이였다. 얼마후에 내가 쓴 독후감으로 좋은 점수를 받았다니 다행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씁쓸한 기분이였다. 예전의 일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읽고 싶어진 책이 많아져서 행복했다. 똑같은 내용의 책이지만, 어느 시절에 읽었는지에 따라 감동이 다르다. 그 당시에 이해하지 못했던 내용들도,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알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백년학생’ 입니다. 글쓰기에 뜻을 둔 이라면 ’천년습작’을 각오해야겠지요. 좋은 글 한편 품고 문 두드릴 그날까지 맛난 술 익히며 기다리겠습니다.  - 마지막 장 -

 언젠가는 나만의 멋진 글쓰기를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래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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