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하:세기말의보헤미안]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무하 : 세기말의 보헤미안 - 새롭게 만나는 아르누보의 정수
장우진 지음 / 미술문화 / 2012년 1월
구판절판


책표지 - 무하 세기말의 보헤미안/장우진/미술문화

책 표지의 그림 익숙하다. 어디서 보았을까. 여인의 아름다운 모습과 화려하고 아름다운 장식이 눈길을 끈다. 그거리에 서있는 조각상처럼 친숙하다. 도톰하고 매끄러운 살결.(들어가기전) 무하의 그림은 환상적이고 몽환적이며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봄바람처럼 느껴진다. 실제하지 않을 것 같은 여신처럼 아름답게 다가온다.

<페르펙타 자전거 광고 포스터> 127쪽

자전거 광고 포스터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우아하면서 관능적인 느낌의 그녀가 말을 건네고 있는 것 같다. 그녀는 자전거를 타고 있다. 다만 그녀가 자전거를 타지는 않을 것이다. 하늘하늘한 치마가 너풀거리는 그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왠지 설레임이 있다. 산업화 된 도시, 보헤미안과 댄디, 데카당스, 세기말의 파리는 무하가 살아온 시대를 대변해 주는 것 같다. 세기말의 파리의 장식은 아르누보였다. 그 중심에는 무하가 있었다. 1914년 세계 대전의 발발로 세계를 장식하고자 했던 예술가들의 꿈은 전쟁이 포성 속에 사라져 갔다.(50쪽) 아르누보의 짧았던 순간처럼, 무하의 명성도 묻혀져 버렸다. 아르누보가 다시 재조명 되면서 무하도 다시 생명을 얻게 된다. 이 책을 펼치는 순간 무하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될 것이다. 무하의 포스터가 지금 부활한다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뛰어나다.

<비잔틴 머리>, 검은색 머리,금발 머리 154 - 155쪽

무하는 섬세한 모든 부분을 직접 계획하고 구성해야 성이 찼다고 한다. 정말 대단하다. 그의 상상력 또한 놀랍다. 여자보다더 여자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듯 하다. 여인을 더욱 아름답고 신비스럽게 만들어 준다. 그녀들의 아름다운 장식역시 지나치지 않다. 그안에서 그녀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빛을 잃어 버리지 않는 고귀함. 어찌보면 거추장스러운 치장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수도 있다. 무하의 그림은 거추장스럽다거나 사치스움을 넘어서는 신화스러움이 있다.

<좌측> 카르나발레 박물관에 재구성된 푸케 보석상점의 내부, 정면
<우측> 같은 푸케 보석상점의 내부, 정면의 맞은 편 160-161쪽

보석도 직접 디자인하고 보석상점의 내부도 디자인했다고 한다. 아름답다. 현대에도 무하가 디자인한 보석점이 있다면 들어가보지 않고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보석보다도 보석점 내부가 아름답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장식자료집>을 위한 드로잉 플레이트 49. 164쪽

현대의 보석품은 디자인적인 면에서 무하의 디자인보다 많이 뒤쳐지는 감이 있다. 뛰어난 보석 디자이너의 작품을 보지 못해서 모르겠지만. 아름답다. 다만 무하가 그린것같은 여인이 해야지만 보석 또한 아름다움을 발할 것 같은 부담스러움도 있다. 아무나 하면 보석이 사람을 잡아 먹을 것 같은 안타까운 느낌이 들것이다. 체코에서 태어난 무하의 일대기를 읽어 가고 있지만 그의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 좋았던 것 같다.

<이반치체의 추억> 180쪽

세기말의 파리는 무하를 사랑했지만 20세기로 넘어온 미국에서는 무하는 크게 환영받지 못한다. 유화를 처음 시작한 무하는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게 된다. 무하는 분위기파였던 것 같다. 수중에 돈도 한푼 없었다고 한다. 파티도 좋아했지만 어려운 처지의 화가들에게도 아낌없이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시작은 어려웠지만 무하는 자신만의 유화를 그리게 된다. 난 그 전에 무하의 느낌이 더 좋다. 환상적이며 만화속에서나 볼법한 느낌의 영원불멸함이 말이다. 그래서 현대에도 무하는 실존하는 것이 아닐지.


무하가 담당했던 프라하 시청사, 시장실의 장식. 242쪽

무하는 자신의 나라를 위해서 그릴 수 있다는 것이 좋았던 것 같다. 남은 생애를 프라하 시청사를 그리는데 공헌했다고 한다. 사진속에서는 그의 남은 생애를 나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렸다는 시장실의 장식을 자세히 볼 수 없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실제로 본다면 너무 아름다울 것 같다.
무하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매력을 조금만 담아 보았다. 왜냐하면 직접 느껴본다면 그 아름다움이 더 할 것이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행복한 가방 만들기 - 손바느질과 재봉틀로 만드는 19가지 예쁜 가방과 소품
가마쿠라 스와니 지음, 고정아 옮김 / 진선아트북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술/대중문화>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뒤돌아보니 봄이 와 있습니다. 봄이 왔다고 생각하면 찬바람이 불어와 옷깃을 여미게 만듭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 바람이 참 좋습니다. 아직 겨울옷을 벗기에는 감기 걸리기 딱 좋은  계절입니다. 며칠전 경칩에 개구리가 깨었났다가 요즘 날씨때문에 곤혹을 치르고 있지는 않는지 모르겠네요. 봄이 오긴 했나 봅니다. 우선은 눈꺼풀이 무거워서 눈을 부릅떴다가 저도 모르게 고개가 툭 떨어지네요. 봄바람에 설레이시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3월에는 또 어떤 예술분야의 책이 제게 고개를 내밀지 기대됩니다. 봄나물 많이 먹고 춘곤증을 무찔러내고 예술책과 함께 봄을 타보렵니다.

 

 

 

 

 

 사진의 기술적인 부분에 치우쳐 있지 않다고 하네요. 책표지도 깔끔하고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 입니다. 아마추어에서 프로까지 다양한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책이라고 합니다. 입문자에게는 든든한 가이드로 중급자에게는 그간의 작업을 재인식하게 하는 계기가 될꺼라고 합니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책 소개 부분에서 어렵게 씌여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음 우선 읽어봐야 알겠지만 자신있게 강조하고 있다는 것은 그렇다는 것이겠지. 팝송의 매력과 작곡에서 화성이 하는 역할, 작곡에서 화성이 하는 역할에서 설마 그 화성은 아니겠지. 나처럼 엉뚱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음악과 과학과 그리고 심리학과 관련된 재치있는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고 합니다. 기대된다.

 

 

 

 

 

 

 

 

 

책 표지가 우선 마음에 끌립니다. 무서운 그림으로 인간을 읽다. 사람의 내면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의식하고 있는 표정과 무의식속에서 드러나는 감추어진 진실같은 느낌이 들어요. 명화는 다양하게 해석되는데 무서움을 통해서 그려진 느낌은 어떨까요? 상황과는 완전 다르게 엉뚱하게 해석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재미있는 것 같아요.

 

 

 

 

 

 

 

 

 

조선의 옛 그림 60여 점의 작품과 배경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옛 그림을 통해서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림속에서 말해주고 싶은 것. 그것을 따라가다 보면 선조들의 깊은 뜻을 알게 될 듯도 합니다. 살아가면서 스스로 깨닫지 않으면 모르는 것을 그림을 통해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도판을 크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림이 작아서 아쉬운마음은 들지 않을 듯 합니다. 미리보는 그림은 선비의 향기가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엄선한 작품을 담아내었다고 하는데 그냥 그림만 봐도 "우와"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쉽고 재미있게 그림 보는 즐거움을 전한다고 합니다. 꽃에 나비가 날아들듯이 이 책의 향기로움이 느껴지는 듯 합니다. 꼭 만나보고 싶어집니다. 차례를 살펴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서과투서] 수박을 들락거리는 들쥐 한 쌍, [군접도]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나비 떼. 차례를 살펴보니 재치스럽고 멋스럽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람 사는 이야기]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사람 사는 이야기 - 다큐멘터리 만화 시즌 1 다큐멘터리 만화 1
최규석.최호철.이경석.박인하 외 지음 / 휴머니스트 / 201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글의 처절함을 글뿐만 아니라 그림과 함께라면 더욱 강렬하다. 웃기다 그런데 서글프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희망이 넘실거린다지만(누가 그랬지) 거품처럼 꺼져버리고 있다. 뽕뽕이를 터뜨리듯이 여기저기서 절규의 목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다. 다큐멘터리 만화 시즌 1 사람 사는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저마다의 매력을 가진 글과 그림이 세상살이를 말한다. 맞고 터지고 그래도 다시 죽었다고 몸부림이라도 쳐야하는, 단돈 5만원 철거 알바의 기억을 읽으면서 나 역시 뉴스로 보았던 그 상황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힘없고 돈없다는 이유만으로 살던 집에서 쫓겨나야 했다. 거기다가 좋은말 할때 안나간다고 몽둥이 찜질을 당해야 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아이러니하게도 삶과 죽음이 공존한다. 슬픔과 행복은 이란성 쌍둥이처럼 함께 오기 일쑤이다. 지구상의 어떤 사람들은 배고픔과 추위에 힘들어 하고 또 누군가는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서 밥을 쫄쫄 굶고 있다. 사람 사는게 모두가 행복하면 좋을텐데. 이 책의 시작은 아픈곳을 쿡쿡 쑤신다. 그리고 너와 내가 살고 있는 곳 이야기를 들려준다. 깜찍 발랄한 <제일교포 2.5세 노란구미의 신혼일기>를 읽으며 "그래 사람 사는게 다 그렇지 뭐." 하며 웃을 수 있었다. 2012년에 확 세상이 망해 버렸으면 좋겠다고 누군가는 생각한다. 정말 그럴까도 의문해 보고 설마 벌써 지구가 멸망한다는게 말이 돼 등등 여러 생각들이 두둥실 떠다닌다. 내가 행복하면 멸망하지 않길 바라며 당장 죽을 것 같다면 확 망해버렸으면 하는게 보통 사람의 심리다. 스피노자는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지만, 스피노자에게 묻고 싶다. "당신 제정신이야?" 라고 혹은 "당신은 이미 죽었잖아. 어쩌라고." 나는 뭐 내일은 생각하고 살지 않는다.

 

<당당한 한국 현대사>를 읽으며 아버지의 그때 그시절을 생각해 본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는 힘든 세월을 겪어 오셨다. 격동의 그 시절을. 그때는 다 그렇게 사셨다고 한다. 하루하루 가족들 끼니 걱정에 다른 생각은 할 여지가 없으셨다고 한다. 현재의 정신적인 풍요가 우리를 병들게 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언니가 스무살때 광주에서는 심심치 않게 수류탄과 병이나 맥주병이 날라 다녔다. 어떤 이는 구경한다고 쫓아 다니는 엽기적인 사람들도 있었고 지나가는 행인들은 두려움에 멀찌감치 돌아서 가기도 했다. 흑과 백의 구분이 확실한 세상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혼란의 시대에는 뭐가 뭔지 모르겠다. 정신을 마비시킨다. 눈에 보이는 수류탄은 없지만 분명히 뿌연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지금도 지구상에는 폭탄이 터져 사람이 죽어나가는가 하면 폭죽이 터지는 소리에 환호하고 즐거워하는 돌고 도는 세상이 있다. 아픈데도 쿡쿡 찔러주고 씁쓸한 웃음도 주고 발랄한 웃음과 훈훈한 감동도 주는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책 크기를 좀 작게 하는 것도 괜찮을 듯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술, 상처를 말하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예술, 상처를 말하다 -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예술가의 뒷모습
심상용 지음 / 시공아트 / 201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로뎅의 그림자에 가려진 카미유 클로델. 그 시대에는 여자는 사람도 아니였다. 그 당시에 뛰어난 작가나 화가중에 여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로뎅은 그녀의 뛰어난 재능도 원치 않았다고 한다. 가족들마저 그녀를 외면했다. 나는 로뎅을 욕하고 외면하겠다. 카미유 클로델이 외면당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정치를 잘하지 못해서 일것이다. 방패막이가 되어 줄 만한 그 무엇도 없었기에 혼자서 그 모든것을 감당해야 했던 카미유 클로델. 어쩌면 그녀는 나약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나약하다면 감당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시대가, 가족이 그녀를 무너지게 내버려 둔것이다. 모두가 내게 돌을 던진다면 나역시 참아내지 못할 것이다.

 

반고흐의 이야기는 익숙하다. 대표적인 이야기는 광기에 못이겨 자신의 귀를 잘라 버린일. 반고흐의 작품이 어마어마한 가격에 거래된다. 반고흐는 살아서 빛을 보지 못했다. 지금은 없어서 못 판다. 그건 누구에게 좋은 일일까? 그림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솔직히 반고흐의 그림이 대단하다고 감탄하지만 그림을 실제로 본 사람은 몇이나 될까. 반고흐의 그림을 정말 이해한 것일까. 완전한 이해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반고흐는 이세상에 없으니까. 사람마다의 해석은 다를 것이다. 전문적인 절대적인 지식에 의해서 평가되고 있다는 것도 왠지 씁쓸하다. 타인과 자신의 욕망의 덫에 걸리지 않으면서 그리고 허무의 함정에 빠지지도 않으면서 삶의 중요한 실체인 고통과 슬픔을 깊이 안을 수 있는 가능성, 그럼으로써 실존의 깊은 뿌리에 다가설 수 있는 여지, (171쪽)

 

화가들의 고통을 읽으면서 예술가의 길은 길고도 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길이든지 순탄한 길은 없을 것이다. 어린 장금이의 말이 생각난다. 마마님은 그것이 마음대로 되냐며, 편하게 살고 싶은데 그것이 제 맘대로 되지 않는다고 말이다. 고통을 딛고 일어서는 힘, 어쩌면 그것을 아픔이나 고통이나 고생으로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보기에 힘들게 살았다 할지라도 그나 그녀가 그 삶을 기꺼이 받아들였다면, 세상은 내 눈에 보이는 것만큼만 되는 것은 아닌듯하다.

 

어쩌면 예술은 고통과 함께 수반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아픔을 갖고 있다. 그 아픔의 정도를 무게로 잴 수는 없다. 몸무게처럼 확실하다면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당시의 그 사람이 되어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 "나도 이해해" 라는 말은 참으로 가증스러운 말이될 수도 있다. 당연히 상대방을 이해하기란 어렵다. 이책을 통해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부딪쳐야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길에 있어서 망설임이 있어서는 안된다. (이것은 사극 버전이다) 칼에 살짝 스친 상처도 아파서 호들갑을 떠는데 예술가들의 고통을 들여보고 있으니 그런가보다 싶었다. 사람마다 자기가 감당해야 할 그릇이 있는 것 같다. 그만큼의 고통을 감당할 수 있기에 찾아오는지도 모른다. 나에게 있어서는 크지는 않고 작고 미미하다. 그렇게 쭈욱 살아가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