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시대의 신인류 호모 나랜스
한혜원 지음 / 살림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디지털 스토리텔링이란 스토리텔링이 디지털 미디어와 상관관계를 맺으면서 발전하는 중 나타난 개념으로 디지털 기술을 통해서 디지털 패러다임에 부합하는 이야기를 생산하는 창작기술이다. (13쪽)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도 돋는다 .' 안중근 장군이 하신 말씀이다. 난 하루라도 말을 하지 않으면 입안이 썩어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학창시절부터 주저리 주저리 쉬는 시간도 모자라서 수업시간까지 선생님 눈치를 살피며 시도때도 없이 떠들었다

인간은 누구나 이야기 본능을 가진 호모 나랜스, 즉 '이야기 하는 인간'이다. (책표지)  이 세상에 다양한 이야기, 넘쳐나는 이야기속에 파묻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드라마, 영화, 만화, 게임속 어느곳에서나 이야기가 있고 우리는 그것을 즐기며 살아간다. 매번 만나는 사람들과 나누는 이야기들은 대략은 내가 짜놓은 대본도 있을 것이고 쉴새없이 떠드는 일상의 이야기들이다. 살아가면서 '이야기'가 빠지면 무슨 재미로 살까?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볼때 저 사람은 어디를 갈까? 저 사람에 대해서 꼼꼼히 살피며 우리는 나름의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그것이 아닐지라도 신경쓰지 않아도 아무 생각없을때 조차 그런 생각이 머리속에 가득찬다.

 

특히나, 동네의 어르신들분들이 많은 이야기의 꽃을 피우고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것 같다. 지나가는 행인들을 해바라기하며 그동안 쭉 관철해왔던 자신들의 관점에서 분석에 들어가신다. 지치지도 않으시는지 넘치는 호기심은 주체가 되지 않는듯 하다. 미드가 급물살을 타면서 넘어와 우리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이야기가 재미있다. 강력한 금기를 위반할수록, 현실에서 행하기 힘든 일일수록, 스릴감이 더하기 때문이다.(21쪽) CSI라스베거스, 멘탈리스트, 본즈등 새로운 각도로 사건을 바라보고 분석하는 방법이 재미있다. CSI는 이제 그만 좀 해야될때인것 같지만, 아직도 인기는 많은듯하다. 증거를 분석하고 용의자 중에서 범인을 두각을 잡아내는 즐거움이 있다.

 

우리가 자주 접하는 광고속에서 이야기는 소비자와의 관계망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자사가 내세우는 마인드에 따라 우리는 그 제품을 신뢰하거나 선호하게 된다. 이미지 마케팅의 힘은 실로 위대하다. 어느순간 세뇌가 되는것이 아닌가 싶을정도로 말이다. 흥미롭고 일상을 뛰어넘을 만한 참신한 이야기일수록 우리의 마음을 더 끌 수 있다.

 

대다수는 정의를 원하고 진리를 찾아 떠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현실에선 섣불리 건드리거나 일상에선 이룰수 없는것을 이야기는 상상의 날개를 달고 어디든지 갈 수 있고, 어떤 이야기든지 가능하다. 가상현실안에서 현실에서 할 수 없는 많은 이야기를 풀어 낼 수 있을지 모른다. 현실세계 자체내에서는 제한되어 있지만, 가상세계는 그 자체가 투명인간과 같으니까 말이다.

디지털 시대의 호모 나랜스는 누구나 쉽게 이야기를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는 이야기꾼들의 시대를 꿈꾼다. 스토리텔링은 현실감을 상실하고 실재의 가치를 무마시키는 가짜를 양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잠재적인 비현실, 반현실, 초현실의 욕망과 상상력을 발현하기에 적합한 기술이요, 도구이다. (192쪽) 현재의 흐름에 부정적이기 보다는 좋은면을 찾아가고 좀 더 재미난 이야기를 찾아서 길을 떠나보는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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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휴양지
로베르토 이노센티 그림, 존 패트릭 루이스 글, 안인희 옮김 / 비룡소 / 2003년 4월
평점 :
절판



 
책표지를 멀리서 바라보면 긴 사진을 크기에 맞지 않게 올려서 편집된 느낌이였다. 나는 그림이 그려진 책들은 다 좋아한다. 동화책, 만화책등등. <마지막 휴양지>는 그냥 동화책이라 치부해 버리기에는 왠지 심오한 느낌이 들었다. 나만 그렇게 느낀건가? 그림이 생각보다는 덜 동화스럽다고 해야하나? 무슨 말이냐면 꿈을 꾸는듯한 느낌이 아닌 사실적이고 섬세한 느낌이 들었다.
 
<덧붙이는 말의 글>을 읽어보면 이 책을 통해서 많은것을 표현하고 싶어했던것 같기도 하다. 책 속의 인물들이 다양한 책들의 주인공과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다양하면서도 수상한 사람들이 나오는 재미가 있었다. 생각의 방향을 다양하게 이리저리 끌고 다닐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 머리가 자꾸 모서리에 부딪치는 느낌을 받는다. 내 틀속에 나를 제한시키고 한계를 느끼는 기분이다.
 


 (9쪽)
어느 나른한 잿빛 오후 내가 지루하게 일상을 보내고 있을때, 내 상상력은 무시당하는게 분했던지 휴가를 떠나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추억의 조각들에 매달려 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충분치 않았다. 친구여, 추억이란 낡은 모자일 뿐이다. 그러나 상상력은 새 신발이지. 새 신발을 잃어버렸다면 가서 찾아보는 수밖에 달리 무슨 수가 있을까? (첫장 시작줄)
 
그렇게 화가아저씨는 길을 떠나게 된다. 평범한 일상을 떠나 자신의 상상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여행을 말이다. 생각해보니, 나도 화가아저씨와 함께 떠나야 할 것 같았다. 나의 상상력은 깊은 동면에 빠져든지 오래다. 아주 때려 패서라도 이참에 끄집고 나올참이다. 차를 쪼개버릴듯한 '거미 번갯불이 치고 있는밤'이였다. 동내 이름도 너무 재미있는 '어딘지아무도몰라마을' 에 이르렀다고 한다.
 

 (11쪽)
누군가가 그를 이끈것일까? 사람은 모두 '상상력'을 가지고 있으니 그것을 어떻게 발휘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더욱 즐거워질꺼라는 생각이 든다.
 

(32쪽)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식사나 게임을 즐기고 있다. 그림을 보는것만으로도 꽤 많은 사실을 느끼고 즐길 수 있었다. 이책은 글보다는 그림이 더욱 많은 말을 해주고 있는 느낌이다. 이런저런 생각없이 그냥 즐겼으면 좋겠다. 매사에 생각이 많은 것도 쓸데없다 싶다. 사람들마다 자신이 원하는것을 그 무엇을 찾았을까?
 

(26쪽)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다. 보물지도를 가지고 땅을 파고 있고 저 뒤에서 그를 엿보는 이가 있다. 왠지 두근거림 심상치 않은 모습을 하고 있음에 궁금해진다.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질 찰나에 화가 아저씨 역시 '어딘지아무도몰라마을' 을 떠나온다. 나도 내 새 신발을 찾으러 길을 떠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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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사막을 꿈꾼다
김효정 지음 / 일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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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을 건너는 배, 낙타. 그러나그 충성스런 동물, 낙타를 사막레이스에서 만나는 것은 달갑지 않은 일이다. 레이스 참가자가 사막에 무릎 꿇을 것을 기다리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사막레이스에서 낙타를 만나면, 그것은 당신이 오늘의 꼴찌임을 말해 주는 것이다. (82쪽)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루하거나, 사막에 가서 왜 사서 고생하는지등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저자의 꿈이였기에,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래 사막에 갔다 와야 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생사의 갈림길에 서면서도 사막을 가야 하는 이유를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어린왕자에 감명을 받고 <부에노스 아이레스 - 해피투게더>를 보면서 가고 싶었던 그곳, 난 해피투게더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난 <동사서독>이 훨씬 좋았다는. 10년동안 꿈꿔왔던 꿈을 현실로 과감히 이루는 그녀를 보면서 나 역시도 부러웠다. 연금술사를 무지 좋아했으면서도 사막에 대해선 별 감흥이 없었다. 

 

 
2003년 모로코 사하라 사막마라톤에서 저자는 꼴등을 했다고 한다. 생각치도 못했던 사람들의 환대속에서 저자는 가슴속 뜨거운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포기하지 않고 완주를 했다는 것. 이런 상황에선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질꺼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 자신의 한계에 도전해 본적이 있었던가?
 


  



사막에서 경험하는 고통은 어쩌면 만병통치약이다. 완주한 사람만이 그 약효가 얼마나 대단한지 안다. 고통 속에 감춰진 달콤한 행복, 순간순간 고통에 몸을 떨지만 완주하고 나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감을 맛본다. (93쪽)  발의 물집이 생겨서 고통스러울텐데, 나중에선 물집을 따면서 이녀석들이 생기지 않으면 섭섭할꺼라던 그녀의 말에 참 낙천적인 사람이구나 싶었다. 사진으로 보기에도 무지 아프고 따갑게 생겼던데 그런 마음은 어디서 생기는건지. 처음엔 많이 걱정하시던 부모님들께서도 나중엔 '그래 잘 갔다와라.' 라고 심드렁한 말투. 나중엔 곰국도 없이 그냥 냉장고에 있는 반찬으로 밥을 먹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

 

<역도산> 촬영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난 사막레이스를 완주하고 난 후 그 어떤 것과 부딪혀도 살아남을 자신이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변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103쪽)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마음이 찡했다. 어찌보면 자신을 극한으로 밀어 넣는건 그 무엇하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사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20대의 청춘이 좋았다고 하고 누군가는 그 치열한 시절로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하루가 일년처럼 더디게 시간이 흘러가는 그 시절엔 너무 힘들었다고. 

 



 

 
잘못 디디면 수백 미터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마는 고비사막의 칼 능선, 사막레이스 중 가장 힘든 곳을 꼽으라면 단연 고비 사막이다. (114쪽) 사진으로 보기엔 그 아찔함이 심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그곳에 서있는다면 손발이 오그라 붙을것이 뻔하다. 그곳에 가보고 싶지 않다. 

 
국경도 나이도 중요치 않은 우리는 모두가 친구였다. 사막에서, 우리는 누구를 앞지르려 하지 않는다. 우리는 손잡고 함께 가려 한다. 서바이벌 레이스는 나만의 서바이벌이 아닌 우리 모두의 서바이벌을 추구한다. 다 함께 완주하는 것, 이거야말로 사막레이스가 추구하는 진정한 목표이다. (118쪽)

인생도 이처럼 함께 어깨를 견주면서 나란히 뛸 수 있다면 좋겠다. 그녀는 진정으로 운이 좋은 사람이다. 자신의 꿈을 이루었고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뛰고 있으니까 말이다. 사막에서 비도 맞고 남극에서 고래꼬리를 보았으니 말이다. 쉽지 않은 경우라고 한다. 그녀가 어떤 영화를 만들지는 모르겠지만, 그 영화를 꼭 보러 가야겠다. 

 
세계5대 사막레이스를 모두 완주한 그녀. 무거운 메달을 목에 걸고 기쁨에 활짝 웃던 사진을 보면서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는 사막과 사랑에 빠진것처럼 보였다. 눈동자가 반짝 빛나는 느낌, 사진속에서 힘들어 보이지만, 웃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저 하늘의 별처럼 반짝 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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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그 사랑을
카챠 랑게-뮐러 지음, 배정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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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그녀의 사랑이 어땠을지, 그녀는 그의 일기장을 통해서 과거의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사랑이구나" 생각이 들었을때는 이미 모든것이 늦은 순간이였다. 더이상 그전의 상태로 자신을 돌릴 수 없었다. 세계사적 전환기인 독일 통일 직전의 1987년 서베를린, 숙련 식자공이자 동독 탈주민 조야는 꽃 가판대 아르바이트를 하며 외롭게 살아간다. (273쪽) 조야는 서베를린 사람, 잘생긴 연하의 해리는 서독 남자였다. 그녀의 말대로 해리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식당에서 자신을 닮았다던 어이없던 삐애로를 들고선 그걸로 끝이였다면 좋았을지도 모른다. 사랑이 찾아오는 적합한 시기라는 것이, 거기에 걸맞는 사람, 그 사랑은 그녀의 인생에 느닷없이 쳐들어온 셈이였다. 적어도 조야는 어쩌면 인생에서의 최악의 남자 해리를 사랑하게 되어버렸다.

 

아무 생각없어 보이던 해리를, 마약에 찌들어서 조야가 어떻게 해서든지 구해내고 싶었던 그 사랑을, 조야의 사랑을  지켜내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해리의 내용만 적힌 노트속에서 조야는 어디에도 자신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조야의 빈정거림은 시작되었다. 조야를 머리에 아로새길정도로 자신을 사랑했거나 아니면 조야는 해리 인생에 무의미 했던것일까? 마약에 벗어나기 위해서 도와주던 사람들을 빈정거리는 투로 적어내려간 노트를 보면서 어찌 조야가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있겠는가. .아픔이 지나고 난 뒤라 덤덤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조야의 이야기는 만화의 주인공을 더빙하듯이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성우처럼 느껴졌다. 절제된 감정속에서 조야의 아픔이 느껴졌다. 그 말투는 꽤나 비관적이고 먹고있던 과자를 내게로 툭 던지는 것처럼 썩 기분이 내키질 않았다.

 

조야는 해리라는 남자를 알아가면 갈수록 충격적인 사실들을 알게 된다. 행복할때나 슬플때나 함께 한다는 말처럼 최악의 상황에서도 조야는 해리의 모든것을 받아들인다. 구렁텅이에 빠진 해리를 끄집어 올리기 위해서 조야는 무던히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사랑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을 끝까지 안고 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조야의 공든 탑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만다. 해리는 조야를 사랑했던 것일까? 힘들고 아팠던 사랑이지만 조야에겐 너무 소중하고 행복했던 기억이였는지 모르겠다. 해리가 죽고 십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야 조야는 자신의 사랑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힘들었지만, 자신에겐 너무 사랑스러웠던 해리의 노트를 통해서 그와의 시절을 재회해 본다. 시대적인 아픔, 분단이라는 아픔 그속에서 겉돌아야만 했던 그들의 이야기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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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리드와 베로니카
린다 올손 지음, 김현철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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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시작과 끝은 알 수 없다.

"이제는 나도 이해하고 있어요. 과거의 사실을 기억해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죠." (49쪽)

아스트리드와 베로니카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늙은 여자 아스트리드와 젊은 여자 베로니카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누가 먼저 이야기를 끄집어 냈는지, 시작의 종을 치진 않았지만, 두 사람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아스트리드와 베로니카는 주고니 받거니 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늙은 여자 아스트리드는 곧 여든을 바라보지만 그녀의 마음속 자물쇠는 어린시절의 언저리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스트리드는 오랫동안 고독과 침묵하면서 지내왔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결정적인 순간이란 없는 것 같기도 해요. 시작과 끝은 유동적이니까요." (56쪽)

"모든것은 변하기 마련이예요." (107쪽)

"나는 지금까지도 사건의 실체에 대해 모르겠어요." (111쪽)

"당신도 알다시피, 기억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우린 그저 귀를 막고 있을 뿐이죠." (112쪽)


고통스러운 기억의 부분을 끄집어 내며 아스트리드의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아스트리드의 어머니는 아름답고 다정한 분이셨음을 느낄수 있었다. 아스트리드의 어머니가 왜 자살을 선택해야 했는지, 그것이 남편때문이었는지 난 짐작만 할 뿐이였다. 아스트리드의 이야기는 꽤 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했지만, 기억이란건 우습게도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의 기억은 얼마나 정확할까. 때론 흐릿한 기억이 고마울때도 있고 잊고 싶은, 잊었다고 생각했던 기억들이 우리를 놀래켜주기 위해서 어디선가 복병처럼 준비하는것 같다.

 

"그리고 그때까지 내가 알고 있던 모든 것이 사라졌어요. 나는 다른 세상으로 즉시 옮겨갔어요. 더욱더 밝은 색채로, 더욱더 선명한 소리로, 더욱더 자극적인 맛과 향기로 채워진 그런 세상으로 말이죠. 나는 그 세상이 내 것이라고 한동안 생각했어요." (114쪽) 베로니카의 이야기는 사랑으로 충만했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안타깝게도 내 것이라 생각했던 그 세상이 사라지기전까지 말이다. 다른 이들의 세상엔 별 문제가 없는것 같은데 베로니카의 세상은 더이상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 같았던 두 사람의 아픔은 조금씩 아물어 가고 있었다. 아픈 가슴으로 이곳에 내려왔던 베로니카를 아스트리드가 아스트리드를 베로니카가,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다독여주고 있었다. 두 사람 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였다. 아스트리드는 마녀로 불리운채 차갑게 얼어붙은 심장을 그대로 간직한채 생의 마지막을 맞았을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시간이 부족했던 게 너무나 아쉬워요. 이런 생각이 드네요. 슬픔은 나름대로 자기 시간에 맞춰 진행되나 봐요. 그 진행 과정을 착실히 거치지 않으면 슬픔은 다독거릴 수 없어요. 슬픔이 제 갈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줘야만 해요. (249쪽)  아스트리드의 슬픔과 아픔을 견뎌낼 수 있는 시간은 그녀의 평생이 되어버렸다. 베로니카를 만나 아스트리드의 마음에도 사랑의 싹이 트기 시작해서 다행이였다. 아스트리드는 이 집에 자신을 평생 갇혀 나오지 못했다. 자신의 아픔과 상처를, 자신을 대면하기가 두려웠던 것이다. 나의 거칠것없는 부분까지 드러다 보고 마주볼 수 있어야 진정 자신의 모든것을 사랑할 수 있고 아픔도 이겨낼 수 있다.

 

사랑은 사전 경고 없이 우리에게 불쑥 다가옵니다. 그리고 한번 주어진 사랑은 결코 빼앗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걸 명심\해야 합니다. 사랑을 잃어버릴 순 없어요. 사랑은 측정할 수 없는 겁니다. 시간으로, 분이나 초로, 길이나 무게로 따질 수 없는게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어떤 식으로도 양을 따질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랑과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사랑은 사랑일 뿐입니다. 진정한 사랑의 손길이 잠시 스치기만 해도 우리는 그 힘으로 평생을 견딜 수 있습니다. (360-361쪽) 어린아이의 문장력처럼 이 글은 짧게 이어져있다. 길게 말하지 않고 짧게 끊어서 대화를 이어나간다. 그속에서 깊숙한 두 여자의 아픔이 느껴졌다. 아스트리드는 생의 마지막 순간엔 두렵지 않았을 꺼라는 생각이 들었다. 숨기고 외면하고만 싶었던 깊숙한 아픔과 재회할 수 있었기에. 아스트리드 자신에게 큰 선물을 주었던 베로니카에게 마음의 선물을 남기고 떠난다.

 

만남과 헤어짐, 고통과 행복, 거쳐나가야 할 인생의 순간에 우리는 어떤 이들을 만나고 살아가게 될까?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는 인생이라는 여정에 우리는 몸을 담고 있다. 평범한 일상이 지겹기도 하지만,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불안감을 안고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마음이 벅차 오른다. 아직은 표현이 불안정한 나이기에, 나역시 상처를 훌훌 털어버리기엔 내공이 부족하고 다른 사람의 아픔을 잘 다독여줄 수 있을만한 사람인지에 대해선 의문표만 여러개 따라 붙는다. 사랑하는 가족을 꼬옥 껴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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