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 유시민의 30년 베스트셀러 영업기밀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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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이 갖춰져야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에 뜨끔했다. 글쓰기 근육을 기르는 데 필요한 건 종이와 펜, 그리고 의지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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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내가 일자리를 잃고 내 처자식의 밥 세 끼를 포기해야 하는 것. 이것이 도대체 '개혁'이란 말인가. 개인의 삶은 구조의 붕괴와 더불어 부수적으로 소멸돼야 하는 비눗방울 같은 것인가. 그렇다면 이 금융자본주의의 구조 속에서 개인은 무엇이고 개인의 가정은 무엇이며 민주주의는 무엇이고 개인의 삶을 제물로 삼고 다시 일어선다는 경제란 도대체 무엇인가. 세차가 문제가 아니라, 세차를 해서 밥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이런 넉두리가 그의 울분의 주된 내용이었다. 그의 울분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해줄 수가 없었다. 밥의 생물학적 본질은 논리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것은 무조건 먹어야 하는 것이며 안 먹으면 죽는 것이다. 밥 세끼의 문제를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그 본질의 비논리성을 지적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의 고통 앞에서 노동은 신성한 것이며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진부한 잠언은 그야말로 위선이거나 허위일 수밖에 없었다. 아직은 제도 안에 몸을 의탁하고 있는 자신의 노동과 피로를 다행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편이 그나마 정직할 것이었다.  (31쪽, '밥이란 무엇인가' 중)

 

2. 이영자는 재능 있는 연예인이지만 뚱뚱한 이영자는 뚱보에 대한 이 사회의 혐오와 모멸을 은연중에 대리만족시켜 줌으로써 인기를 누렸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렇게 얻어지는 인기가 그 여자의 내면에서 참혹한 상처로 작용했던 모양이다. 뚱뚱한 여자를 집단적으로 혐오하는 이런 미학적인 사회에서 그 뚱뚱한 여자에게 날씬해지고 싶은 비원이 있었다면, 수술을 했건 운동을 했건 간에 나는 그 여자가 날씬해진 것을 축하한다. 살을 빼서 날씬해진 여자를 상대로, 그 여자가 운동을 해서 살을 뺐느냐 수술로 살을 뺐느냐를 검색하고 입증하는 일도 언론의 사명일 수 있다는 것은 끔찍하다. (44쪽, '도덕적인 분노에 대해' 중)

 

3. '국민정서'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매우 비논리적인 것이라야 마땅하다. 내가 보기에는 내 주변의 나처럼 못난 좀팽이들은 안보도 원하고 통일도 원하고 주권수호도 원하고 군대가 군대답기를 원하고 평화도 원한다. 좋다는 것을 다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먹고사는 일이 좀더 수월해지기를 원한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헛소리해대듯이 어느 한쪽 편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정치적 욕망을 위장해 놓고서 벌이는 이런 난장 싸움판에 '국민정서'를 끌어들이지 말아 달라는 부탁이다. 없는 '국민정서'의 허깨비를 만들어서 소란을 떨고 싸움질을 해대면 세상은 견딜 수 없이 무의미해진다. (60쪽, "'국민정서'의 허깨비" 중)

 

4. 나이를 겨우 먹어가니까, 혼자서 중얼거리는 말이라면 몰라도 세상을 향하여 내놓을 수 있는 말이란 그다지 많지 않고 또 쉽지도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깨달음은 쓸쓸했지만,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세계는 무수한 측면을 갖는다. 그 측면마다 하나의 독립된 시각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힘들여서 겨우 어떤 진술을 시도할 때 그 진술과 반대되는 또다른 진술이 성립되어 가고 있는 것이나 아닐까, 그런 회의가 나이 든 사람을 말더듬이로 만든다. (67-68쪽, '말하기의 어려움' 중)

 

5. 나는 개별적 삶의 구체성을 배반하거나 천대하거나 또는 그것을 추상화해버리는 모든 이론과 정책은 모두 사기극이라고 믿는다. 도덕인 인간의 개별성과 개별적 존재의 구체성 위에서 논의될 수 있을 뿐이다. 무너진 공가 속을 기웃거리며 떠난 사람들이 버린 가재도구를 뒤적거릴 때 분노와 슬픔으로 치가 떨렸다. 공가에 살던 사람들은 다들 어디로 갔나. 버리고 떠난 사람들의 고통은 어떻게 분담되었나. 도대체 누가 그들의 고통을 대신 짊어졌다는 말인가. 경제발전의 학설과 위기극복의 정책들은 단 한 번이라도 그들을 개별적 존재로 이해한 적이 있었던가. (82쪽, '개 발자국으로 남은 마을' 중)

 

6. 모든 언어는 다른 언어에 의하여 부정당할 수 있다는 운명을 긍정하는 것이 언론과 공론의 기본윤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미리 설정된 사유의 틀이나 논리의 질서 속에 이 복잡하고 중층적인 세계를 강제로 편입시켜서 일사불란한 논리를 전개하는 언론행위는 별 가치가 없어 보인다. (...) 설득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 언론의 윤리이다. (97-98쪽, '언론의 부자유가 언론의 자유다' 중)

 

7. 회사에서 월급을 몽땅 온라인으로 마누라한테 보내니까 돈 구경하기도 힘들다. 원고료로 받은 10만 원짜리 수표 두 장을 마누라 몰래 쓰려고 책갈피 속에 감추어놓았는데 찾을 수가 없다. 『맹자』속에 넣었다가, 아무래도 옛 성인께 죄를 짓는 것 같아서 다른 책으로 바꾸었는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맹자속에도 없고,『공자』속에도 없고,『장자』속에도 없고, 제자백가서와 동서고금을 모조리 뒤져도 없다. 수표를 찾으려고『장자』를 펼쳐보니 '슬프다, 사람의 삶이란 이다지도 아둔한 것인가! 외물에 얽혀 마음과 다투는구나'라고 적혀 있어 수표 찾기를 단념할까 했으나 또 그 다음 페이지에 '무릇 감추어진 것치고 드러나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였으니, 내 언젠가는 기어이 이 수표 두 장을 찾아내고야 말 터이다. (105쪽, '돈 ·오카네 ·머니' 중)

 

8. 누구나 다 예외 없이 죽어야 한다는 보편적 종말이 나의 개별적이고도 구체적인 죽음을 위로할 수는 없다. (...) 나는 살아있기 때문에 죽음을 상종할 수가 없고 죽음에 관하여 말할 수 없다. 나는 다만 그 설명되지 않는 죽음이 살아 있는 동안의 시간을 끝없이 긴장시키고, 운명 앞에서의 경건성이 삶 속에서 작동되기를 바랄 뿐이다.

    (...)

    모든 죽음은 끝끝내 개별적인 각자의 죽음이다. 그러나 살아 있는 자들의 의식 속에서 그 죽음은 통계화된 사회현상일 뿐이다. 죽음이 그렇게 사물화될 때, 삶 또한 우연성 속에 방치된 사물로 전락한다. 사물화된 죽음은 더 이상 삶의 시간들을 긴장시키지 못하고, 삶과 죽음의 자리매김은 불가능해진다. 죽는 일은 무섭지만, 죽음과 구분되지 않는 일상의 삶은 더욱 무섭다. (137, 139쪽, '대문 밖의 황천' 중)

 

9. 태풍이 먼 바다로부터 밀고 올라오듯이, 해마다 봄의 꽃들이 전선(前線)을 이루어가며 북상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꽃들은 피었던 자리에서 겨우내 숨어 있다가, 숨었던 자리에서 다시 피어난다. 우리 마을에 어서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꽃의 무리들이 남쪽 마을에서부터 피어서 북쪽 마을로 올라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 꽃은 인간과 대면하기 위하여 피는 것이 아니지만 인간이 그 사이를 못 참아서 시름거리며 시(詩)를 적는다.

   (...)

   아이놈들이 옆집 마당의 꽃핀 매화나무를 매우 부러워해서 우리도 마당에 매화나무를 사다가 심자고 조른다. 꽃은 주인이 따로 없고 눈으로 보는 사람마다 다 주인인 것이어서, "옆집에 매화가 있으므로 구태여 돈 주고 나무를 사다가 심을 필요가 전혀 없으며, 옆집 마당의 매화는 돈도 안 들고 키우는 수고도 안 들면서 오히려 눈부시니 얼마나 더 기특한 나무냐"라고 아이들에게 말해주어도 다 큰 녀석들이 이 쉬운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아이놈들은 나무를 뽑아서 제 집 울타리 안, 제 방 창문 앞에 옮겨심어 놓기 전에는 꽃핀 매화나무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평안할 수가 없는 모양이다. 그러니 아직 아이일 수밖에 없다. 봄날의 이 비린 시간들은 인간의 기쁨과 슬픔을 다 제쳐놓고서 천지간의 꽃잎을 모조리 휘몰아 사라지는 것이며 모든 꽃은 마침내 인간의 몫이 아님을 알게 되기까지, 반찬투정을 하듯이 꽃 투정을 하는 이 어린 것들은 수많은 봄을 더 겪어야 하리라. (239-241쪽, '꽃 몸살 나는 봄' 중)

 

10. 수박을 먹는 기쁨은 우선 식칼을 들고 이 검푸른 구형의 과일을 두 쪽으로 가르는 데 있다. 잘 익은 수박은 터질 듯이 팽팽해서, 식칼을 반쯤만 밀어넣어도 나머지는 저절로 열린다. 수박은 천지개벽하듯이 갈라진다. 수박이 두 쪽으로 벌어지는 순간, '앗!' 소리를 지를 여유도 없이 초록은 빨강으로 바뀐다. 한 번의 칼질로 이처럼 선명하게도 세계를 전환시키는 사물은 이 세상에 오직 수박뿐이다. 초록의 껍질 속에서, 영롱한 씨앗들이 새까맣게 박힌 선홍색의 바다가 펼쳐지고, 이 세상에 처음 퍼져나가는 비린 향기가 마루에 가득 찬다.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한바탕의 완연한 아름다움의 세계가 칼 지나간 자리에서 홀연 나타나고, 나타나서 먹혀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

   무등산 수박이 다 익으면 여름이 끝난다. 메마른 산비탈의 돌밭에서 이 웅장한 수박은 온 여름 내내 폭양을 쪼여가며 익는다. (...) 어디로 피서를 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다가 온 여름이 다 지나갔다. 축복은 저 숨막히는 무더위 속에 있었던 것임을 여름의 끝물에 한 입의 과일을 깨물면서 문득 알게 된다. 이 많은 과일들을 지상에 차려놓고, 힘센 여름은 이제 물러가고 있다. (246, 249쪽, '수박과 자두' 중)

 

11. 해바라기는 그 꽃이 처음으로 대면하는 세상을 낯설어하지 않고, 갑자기 터지듯이 활짝 피어난다. 해바라기가 열릴 때, 꽃이 세상을 수줍어하기보다는 그 꽃을 바라보는 사람이 꽃을 내외하게 한다. 세상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그 꽃은 강렬한 내면의 우월성으로 가득하다. 

     (...)

    맨드라미는 꽃이라기보다는 논리적 형태에 도달하지 못한 원한의 덩어리처럼 피어난다. 

     (...)

    수국의 화려함은 현란하지 않고 빛나지 않는다. 수국은 강렬한 원색의 꽃을 피우지 않는다. 수국의 꽃색은 조심스럽다. 그 꽃색은 자주색도 있고, 분홍색도 있지만, 수국의 색은 극한으로 치닫지 않고, 색의 초기단계에서 더 이상 색이기를 멈춘다. 그래서 그 색은 색이 아니라 색의 추억 같아 보인다. (256-258쪽, '여름 꽃밭에서 가을 꽃밭으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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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내 이름은 보리, 진돗개 수놈이다. 태어나보니, 나는 개였고 수놈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쩔 수 없기는 소나 닭이나 물고기나 사람도 다 마찬가지다. 태어나보니 돼지이고, 태어나보니 사람이고, 태어나보니 암놈이거나 수놈인 것이다.

      개로 태어났으므로 나는 내 고향의 이름을 모른다. 이름은 사람들에게나 대단하고, 나는 내 몸뚱이로 뒹구는 흙과 햇볕의 냄새가 중요하다. 내 이름 보리도 사람들이 붙여놓은 이름이고 개로 태어난 나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10쪽)

 

 2. 개의 공부는 매우 복잡해. 개는 우선 세상의 온갖 구석구석을 몸뚱이로 부딪치고 뒹굴면서 그 느낌을 자기의 것으로 삼아야 해. 그리고 눈, 코, 귀, 입, 혀, 수염, 발바닥, 주둥이, 꼬리, 머리통을 쉴새없이 굴리고 돌려가면서 냄새 맡고 보고 듣고 노리고 물고 뜯고 씹고 핥고 빨고 헤치고 덮치고 쑤시고 뒹굴고 구르고 달리고 쫓고 쫓기고 엎어지고 일어나면서 이 세상을 몸으로 받아내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지. (24-25쪽)

 

3. 어깨가 늘어지고 고개가 숙여지고 눈동자가 초점을 잃으면 그건 사람들이 슬퍼하고 있는 거야. 사람들은 따스한 집과 옷과 밥이 없으면 살 수가 없어. 사람들은 부모형제와 이웃과 논밭이 없으면 살 수가 없어. 그래서 사람들은 집을 짓고, 모여서 마을을 이루고 우물을 파고 땀 흘려 논밭을 일구는 거지. 또 죽은 사람도 잊지 못해서 산소를 만들고 다들 모여서 제사를 지내는 거야. 

    사람들은 개처럼 저 혼자의 몸으로 세상과 맞부딪히면서, 앞다리와 뒷다리와 벌름거리는 콧구멍의 힘만으로 살아가지를 못해. 나는 좀더 자라서 그걸 알았어. 그것이 사람들의 아름다움이고 사람들의 약함이고, 모든 슬픔의 뿌리라는 것을. (41-42쪽)

 

4. 개들은 언제나 지나간 슬픔을 슬퍼하기보다는 닥쳐오는 기쁨을 기뻐한다. (55쪽)

 

5. 주인이 가끔씩 나를 꾸짖고 때려도 주인이 나를 먹여주고 재워주고 가끔씩 쓰다듬어주고, 주인의 몸에서 사람의 기쁨과 슬픔의 냄새가 풍기는 한 지금의 주인이 영원한 주인이다. 이 말은 내가 지나간 시절의 주인을 배반한다는 말이 아니다. 지나간 날들은 개를 사로잡지 못하고 개는 닥쳐올 날들의 추위와 배고픔을 근심하지 않는다.  (63쪽)

 

6. 주인님의 몸에서 나는 경유냄새는 고단하고도 힘찬 냄새였는데, 어딘지 쓸쓸한 슬픔도 느껴지는 냄새였다. 나는 그 경유냄새를 아침바다의 차갑고 싱싱한 안개냄새보다 더 사랑했다. 그것은 일하는 사람이 풍기는 냄새였고, 내가 지키고 따르고 사랑해야 하는 냄새였다. (69쪽)

 

7. 사람들은 구두가 낡으면 헌 구두를 내버리고 새 구두를 사 신지만 개들은 발바닥 굳은살을 도려내고 새 살을 붙일 수가 없다. 굳은살은 한 벌뿐이다. 등산화도 축구화도 조깅화도 장화도 군화도 없다. 그래서 내 발바닥 굳은살은 이 세상 전체와 맞먹는 것이고 내 몸의 모든 무게와 느낌을 저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들의 저 가볍고 미끄러운 몸놀림은 얼마나 부러운 것인가. 나는 내 발바닥 굳은살로는 건너갈 수 없는 사람들의 세상에 가슴이 저렸다. (102쪽)

 

8. 앞발을 창문틀에 올리고 사람처럼 뒷다리로 서서 교실 안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정말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은 내가 달을 밟을 수 없는 것과 같았다. 내가 사람의 아름다움에 홀려 있을 때도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모르고 있었다. (124쪽)

 

9. 주인님은 어디에 계시나. 주인님은 왜 땅 속에 계시나. 나는 견딜 수 없었다. 나는 인정할 수 없었다. 나는 죽음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죽음을 인정할 수 없었다. 이럴 수는 없고 이럴 리가 없고 이래야 할 아무린 이유도 없었다.

   (...)

   나는 넓게 파내려갔다. 주인님 몸의 경유냄새와 땀냄새와 발냄새를 향해서 나는 파고 또 팠다. 냄새가 맡아질 때 땅 속을 향해 우우우 짖어대면 주인님이 흙을 털고 일어서서 땅 위로 걸어나올 것이라고 나는 믿었다.  (194-195쪽)

 

10. 내 마지막 며칠은, 가을볕에 말라서 바스락거렸고 습기 빠진 바람 속에서 가벼웠다. 어디로 가든 거기에는 산골짜기와 들판, 강물과 바다, 비 오는 날과 눈 오는 날, 안개 낀 새벽과 저녁의 노을이 나에게 말을 걸어올 것이고 세상의 온갖 냄새들로 내 콧구멍은 벌름거릴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여전히 흰순이와 악돌이 들이 살아 있을 것이다. 거기에서 나는 여전히 냄새 맡고 핥아먹고 싸워야 할 것이었다. 어디로 가든, 내 발바닥의 굳은살이 그 땅을 밟을 것이고 나는 굳은살의 탄력으로 땅 위를 달리게 될 것이다. (2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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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수의 웃는 마음 - 판화로 사람과 세상을 읽는다
이철수 지음, 박원식 엮음 / 이다미디어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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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참, 좋다. 판화 그 자체로 좋은데, 글은 다소 사족이라는 느낌이 있다. 그래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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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따라 아내가 내게 오고, 내가 아내에게 갔듯이, 뭐든 올 것은 오고 갈 것은 가리라. 무엇에건 연연할 필요 없이, 세상이 적게 주면 적게 먹고, 많이 주면 많이 먹고, 나눌 수 있으면 나누리라. (23쪽)

 

소소한 생명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문틈처럼 느껴지는 게 참 좋아요. (...) 저에게 좋으니까, 누구에게나 좋은 것이기를.

(...)

중요한 건 하루하루가 에누리 없이 존재의 절정이어야 한다는 것. (31쪽)

 

"눈 가고 바람이 왔다.

늘 그렇듯 풍경에는 눈이 쌓이지 않는다.

풍경은 옛일 기억하지 않는다.

늘 이 순간을 살지.

거친 바람 마다하지 않고." (33쪽)

 

내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된 생명들에게 인사 건네고 먹습니다. 미안하게 되었다고, 네 목숨값을 내가 잘 하마고, 인사하는 거지요. (76쪽)

 

문제는 수렵 시대에 사람들이 가졌을 법한 자족과 겸손에 비해 이제 너무 잔혹하다는 것, 도에 넘치는 풍요 속 포식이라는 것, 너무 많은 피를 흘리는 섭생이라는 겁니다. 제 손으로 짐승을 잡아야 한다면, 지금처럼 포식에 포식을 더하는 일이 가능할까요?

(...)

그러나 농사는 생명과 대화하는 일이고 이게 농사가 갖는 최고의 의미예요. 씨앗이 땅에서 싹을 틔우고, 비바람에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고, 그렇게 낱낱의 싹들이 사람의 인생과도 같은 곡절을 겪다가 마침내 땅으로 돌아가고...... 존재는 응당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99쪽)

 

우리에게 절실하게 소중한 일도, 하늘의 큰 눈으로 보면 사소할 뿐. (122쪽)

 

비 온 뒤에 흐르는 저 개울물은 흙탕입니다. 그러나 흐르고 흘러 결국은 맑아지지요. 어떤 생명인들 이렇지 않을까요. (133쪽)

 

인류가 지구에서 멸절한다 하더라도 그마저 사소한 소식일 수 있잖아요? 기적처럼 아름다운 이 지구에서, 사람들이 조화롭게 살지 못하면 결국 멸절은 당연한데, 궁극의 어떤 큰 힘, 또는 법계(法界)가 그걸 애석하다 할까요? 슬프다고 할까요? (138쪽)

 

때로 꽃들도 밤하늘의 별과 다를 게 없다는 걸, 존재 하나하나가 별자리처럼 저마다 빛난다는 걸. (143쪽)

 

자연의 투명한 달빛을, 때로는 햇빛까지 가려버리는 도시의 문명은 아마도 거대한 커튼 같은 게 아닐까요. (144쪽)

 

세상은 우리에게 넋 놓고 살기를 요구하는 것 같은데, 거기에 두 손 들어서는 안 되고, 자신의 삶을 바꾸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 (164쪽)

 

물에 빠진 병아리나 생쥐처럼 가여운 처지에 있는 아이들이 겪을 수 있는 외로움을 이해해요. 여기 궁벽한 시골에도 아이들의 자살 소식이 들려요. 파편처럼 들리는 얘기들을 종합해보면, 처녀아이가 갖고 싶은 것도, 얻고 싶은 것도, 자랑하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그걸 좇아 살다 보니까 욕심이 지나쳐 카드 빚이 생기고, 그걸 감당 못 해 유흥업소를 드나들고, 결국은 인신매매 시장에서 물건처럼 팔리다가 견딜 수 없어서 목을 맸나 보더군요. 길에서 비명횡사한 로드킬 희생물과 그 아이가 다를 게 무엇이겠어요?

(...)

욕망은 끝이 없죠. 욕망의 근원을 들여다보려 노력하는 수밖에요. 욕망의 뿌리를 봐야 해요. 아무것도 없을, 그 깊은 데...... (168쪽)

 

무엇보다, 마음공부는 '홀로 서기'의 출발을 의미하기도 하지요. 내가 내게 묻는 방법을 배우는 거니까요. 그렇게, 시작할 수 있는데......(169쪽)

 

'욕심의 강이 흐른다. 때로 물살 거칠다. 흐르는 강에 눈길 주지 말고, 강 건너 큰 나무 한 그루 바라보아야지.' (173쪽)

 

'염주 끈이 풀렸다

 나 다녀간다고 해라

 먹던 차는

 다 식었을 게다

 새로 끓이고

 바람 부는 날 하루

 그 결에 다녀가마

 몸조심들 하고

 기다릴 것은 없다' (185쪽)

 

 누군가는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라고 했지만, 저를 지켜준 건 온통 사람이었어요. 대숲에서는 쑥도 곧게 자란다고, 좋은 사람 곁에 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예요. 제가 스스로 많이 모자라고 상처도 많았지만, 좋은 분들 덕분에 그럭저럭 사람이 됐어요. (197쪽)

 

30년도 더 된 이야기예요. 어느 이른 봄에 가뭄이 들었는데, 메마른 들판 길을 둘이 거닐었어요. 절 배웅하시는 길이었지요. 선생께서 타들어 가는 보리밭을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거리십니다. '저것들이 목이 타겠다!' 하시면서...... (198쪽)

 

메마른 보리밭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멀고 가까운 모든 불쌍한 죽음을 아파하고 슬퍼한 사람,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참 적게 쓰신 분. 이런 분이 성자가 아니고 무엇일까요? 평생 어려운 문자 한 번을 쓰지 않았어요. 당신께서 몸에 병이 들어 씩씩하게 살긴 어려웠지만, 의롭지 않은 것과 결탁하거나 타협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름다우셨지요. (202쪽)

 

늘, 마음 그릇이 작아서, 다 받아낼 수 없었던 게 제일 문제였어요. (209쪽)

 

불평하거나 분노하는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의 상처가 얼마나 아팠으면 저럴까, 그가 처한 조건을 이해하려 노력해요. 그가 던지는 가시건 둔한 망치건, 이해하려 해요. 때로 아픈 맘이 들더라도, 나는 오죽했었나? 하는 쪽으로 생각을 돌려요.

(...)

인간관계라는 거, 그것 참 힘든 일이기도 하지만 못 견뎌서 버리고 떠날 만큼이 자리는 아녜요. 그게 사는 거기도 하고. (212쪽)

 

그 누군들 이름값 하기 버겁지 않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당산나무나 낙락장송처럼 자연에서 천수를 누리며 장엄한 생명이 되는 일조차 어려운데, 이름값을 하고 살기는 더 어렵죠.

(...)

무명과 익명의 삶들을 절망스럽게 만들고 있잖아요. 딱한 일이예요. 허명의 범람, 그게 평범한 삶을 실패한 삶으로 비하하게 하지요. 참 좋은 평범한 삶을 이룰 수 없게 훼방해요. 헛된 꿈을 좇게 하고. (2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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