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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네 종말 탈출기
김은정 지음 / 북레시피 / 2024년 7월
평점 :
처음 봤을 때 왠지 산만한 느낌의 표지였다.
만화 같은 장면이 호기심을 불러왔다.
그런데 실제 내용도 만화 같은 부분들이 많이 있다.
캐릭터와 사건 등이 아주 비현실적이고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큰 재미를 준다.
화자의 눈높이를 초등학생으로 맞춘 것도 이 재미를 배가시킨다.
아이가 잘 모르는 단어와 상황 등이 읽는 독자로 하여금 상황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아이들끼리 주고받는 대화 속에 각 집안의 문제들이 그대로 녹아 있다.
물론 그 대화가 오고가는 과정 속에 어른들의 시선이 끼어 있다.
대표적인 것인 최씨네 가족을 콩가루라고 부르는 것이다.
콩가루로 불리는 이 집안에 여섯 명이 살고 있다.
서열1위 외할아버지 최씨, 외할머니의 남동생인 뚜러정, 한때 큰 삼촌이었던 히메.
은둔형 외톨이 삼촌 척척. 싱글맘인 엄마와 여덟 살 딸아이이자 화자인 최한라.
이 여섯 명은 함께 살지만 함께 밥을 먹지도 않고 대화도 나누지 않는다.
이 집안을 잘 아는 사람이 콩가루라고 부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어린 한라에게 이 콩가루 집안은 모험과 탐구의 대상이다.
자신이 모르는 것이 있으면 쉽게 대답해주는 삼촌 척척.
자신의 방에 있는 책을 빌려주지만 요일과 시간 제한을 두고 있다.
빈 대지를 주차장으로 이용해 돈을 벌고, 한라의 용돈을 주는 할어버지 최씨.
한라는 할아버지의 이름을 몰라 최씨라 부르고, 본명도 최가눔으로 알고 있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엄마의 외삼촌인 뚜러정과 남동생이었던 히메는 어떤가.
태어날 때 남자였지만 여성으로 성전환한 히메의 외모와 덩치는 한라에게 의문이다.
히메가 엄마를 언니라고 부를 때 엄마는 질색을 한다.
뚜러정은 사진이 제대로 남아 있지 않은 외할머니의 동생이지만 중장비 기사다.
하지만 제대로 일을 하는 것 같지 않고 가족들과 어울리지도 않는다.
한라에게 아빠가 미국에 살고 있다고 말하는데 사진 한 장도 없다.
가족 그림에 아빠가 빠진 이유는 아빠의 사진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가족들의 엇갈리고, 무관심한 일상들이 계속 이어진다.
그러다 한 할머니가 집에 와서 놀라운 이야기를 하면서 분위기가 바뀐다.
종말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족들이 힘을 합쳐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기 전 최씨가 빈 터를 높은 가격에 팔았다.
그 빈터에 배 모양의 콘테이너 건물이 들어섰다.
왠 사이비 종교 같은 시설인데 그 할머니가 지정한 피난처가 바로 그곳에 있다.
이전에 최씨가 홀로 MC를 보고, 주차장을 관리하던 그 건물의 지하다.
최씨가 팔아버린 땅이고, 새로운 주인에게 말한 후 그 건물 지하로 들어갈 수도 없다.
이제 콩가루 가족들이 힘을 합쳐 굴을 파야만 한다.
서로 티격태격하면서 역할을 나누고, 재능이 발휘되고, 시간은 흘러간다.
그 시간은 한때 유행했던 2012년 12월 21일 종말론이다.
이미 지나간 시간이지만 소설 속 인물들에게 영험한 무당의 말은 반드시 믿어야 할 예언이다.
덕분에 우리는 이 황당한 소동이 의도하는 바를 쉽게 알 수 있다.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뒤로 가면서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장면은 재밌다.
남처럼, 아니 남보다 못한 관계였던 이 가족이 힘을 합쳐 문제를 해결한다.
이 과정에 각자의 사연이 하나씩 끼어들면서 왜 현재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는지 보여준다.
행복했던 순간과 엇나가기 시작한 순간들이 이야기에 입체감을 부여한다.
사건, 사고, 오해, 현실의 압박 등이 압축되고, 어느 순간 터진다.
터지는 순간 막나가지 않는 것은 한라의 존재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옆 기도원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일들은 의문과 호기심을 불러온다.
마지막에 도달하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과 장면들로 가득하다.
황당하고 웃기고 웃픈 사연들이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