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사실과 상상력의 멋진 결합들

미싱 스페이스 바닐라
이산화 지음 / 고블 / 2024년 6월

작가가 여러 앤솔로지 등에 낸 단편을 모은 소설집이다.

이 단편집에서 예전에 읽었던 단편은 딱 한 편 있다. <재시작 버튼>이다.

열 편의 단편 중 아홉 편이 처음 만나는데 상당히 특이한 경우다.

이 단편들이 발표된 지면 등이 모두 달라 이런 특이한 경우가 생겼다.

단편 앤솔로지는 그렇다고 하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잡지도 보인다.

반가운 점은 이 단편들이 연재된 정보가 제목과 함께 책에 표시된 것이다.

가끔 이런 정보가 없는 단편집들이 있는데 괜히 정보 검색에 시간이 더 들어간다.

그리고 이 정보는 마지막 작가의 말과 엮이면서 집필 의도와도 연결된다.

읽으면서 어디까지 거짓일까 하는 의문이 상당히 해소되는 시간이다.

<미싱 스페이스 바닐라>는 제목을 보고 뭔 내용인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모두 읽고 제목을 다시 보면서 내용을 잘 요약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주선에서 사라진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찾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역사적 기록과 sf적 상상력을 결합해 별것 아닌 것 같은 사건을 재밌게 풀어낸다.

과학이 그렇게 발전한 미래에도 중량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부분도 흥미롭다.

<아마존 몰리>는 기이한 이야기를 수집하는 과학 잡지 기자의 인터뷰를 다룬다.

개인적으로 이 단편을 장편으로 개작했으면 좋겠다.

특이한 이야기들과 사건들이 엮이고 꼬이면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하다.

한 과학도의 기이한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트라우마는 옛날 <X-파일>이 떠오른다.

<매듭짓기>는 가장 짧은 단편인데 그 매듭에 대한 이미지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죽은 엄마가 말한 그 매듭의 저주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는 알 수 있다.

<세속적인 쾌락의 정원에서>는 읽으면서 상당히 이질적으로 느꼈다.

공장에서 전투 사이보그로 만들어진 존재들이 느끼고 경험하는 부분들이 너무 인간 같기 때문이다.

인간이 느끼는 피로감이나 배고픔 등을 느끼게 만든 부분도 이상하다.

자신들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이동 중이지만 돌발적인 상황 앞에 늘어진다.

이 사이보그들의 행동, 심리 표현 등이 마지막 장면과 어우러질 때 끈적끈적한 느낌으로 가득하다.

<관광객 문제와 그 대책>은 순간적으로 머릿속에서 내용이 삭제되었다.

한참 기억을 떠올리다 우유니 사막이 떠오르면서 기이한 여행이 생각났다.

역시 사실과 거짓을 멋지게 엮어 새로운 지역에 대한 관심을 불러온다.

<과학상자 사건의 진상>도 실존 인물을 이용해 허구를 더 강력하게 만든다.

각 학교 과학실에 존재하는 허름한 과학상자를 아주 특별한 존재로 만든다.

다만 화자가 경험했던 사람들의 사연이 충분히 나오지 않은 것은 아쉽다.

왠지 이 단편 이후 학교 과학실에 놓인 상자를 보면 황당한 상상을 할 것 같다.

<마법의 성에서 나가고 싶어>는 롯데월드가 확실한 공간을 무대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공간이 사이버 스페이스 오류로 인간에게 적대적인 환경이 되어 폐쇄된다.

하지만 소원을 들어주는 보물이 있다는 소문은 모험가를 불러 모은다.

나에게 낯선 놀이기구들이 이 모험가들을 덮치고 공격하는 장면은 영상으로 만들어지면 더 멋질 것 같다.

읽다 의문이 든 생각 하나는 촬영을 위해 참여한 인물의 놀라운 직관과 통찰이다.

<뮤즈와의 조우>에 나오는 잡지들은 모두 작가가 만들어 낸 것이다.

이 소설의 재밌는 점은 과거 잡지를 통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이끌어 낸 것이다.

한국 SF만화의 연혁을 따지는 듯하지만 실제 그 연원은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특정 시기에 연재된 만화와 엇갈리는 몇 가지 경험담이 허구에 사실을 덧칠한다.

실제 우리도 시점 차이 때문에 화자가 한 거짓을 얼마나 자주 알게 되는가.

<전쟁은 끝났어요>는 특정 화학물질에 대한 설명이 다른 상상력과 이어진다.

그리고 이 화학물질은 실존하고, 그 기능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고 한다.

작가가 풀어낸 것과 정반대에 있는 것들이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한 팬데믹 등이 아닌가.

가독성은 나쁘지 않은데 왠지 모르게 집중력이 깨어져 충분히 즐기지 못했다.

이 발상이 결코 희망적으로 느껴지지 않은 것은 그 반대 상황의 가능성 때문이다.

이렇게 밖에 푸틴을 죽일 방법은 없을까?

푸틴을 죽이는 완벽한 방법 - 김진명 장편소설
김진명 지음 / 이타북스 / 2023년 9월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을 배경으로 썼다.

아주 약간 작가의 기발한 발상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의 다른 소설처럼 이야기의 힘은 점점 떨어지고 황당해진다.

이 소설의 많은 부분은 과장된 표현과 혐오의 느낌을 풍긴다.

주인공을 한국계로 설정한 것은 국뽕이지만 한국 소설이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보여준 능력은 너무 단순하고 과장되게 표현되어 있다.

읽다 보면 그렇게 쉬운 일이라면 왜 누구도 그 문제를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했을까 의문이 든다.

작가가 묘사한 러시아 군인들의 포악한 행동은 나의 지식 부족으로 더 말할 게 없다.

러시아 군인들이 우크라이나 국토를 유린하고, 학살과 강간을 멈추지 않는다.

나중에 이 소설을 이끌고 나갈 사람 중 한 명인 미하일도 이렇게 가족을 잃었다.

교묘한 러시아군의 접근 방식을 파악하지 못해 생긴 비극이다.

그는 전쟁에서 죽기 살기로 전장에 뛰어든다.

그는 죽지 않고 전쟁 영웅이 되어 많은 사람들의 칭송을 듣는다.

하지만 그의 몸에 난 세 개의 관통상은 전역을 명령하게 한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 처한 그 앞에 나타난 인물이 바로 케빈 한이다.

중반 이후 케빈 한과 함께 작전을 펼치는 장면은 너무 쉽다.

물론 이 작전의 성공을 위한 장치들이 이미 깔려 있었다.

케빈 한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려주는 장면들은 솔직히 공감하기 힘들다.

그가 봉사하는 마을 사람들을 비하하는 듯하 표현도 눈에 거슬린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결시키는 방법으로 푸틴을 죽이려고 한다.

미국을 비롯한 나토 국가들이 이 전쟁에 직접 개입하지 못하는 이유로 러시아의 핵을 손꼽는다.

작가가 말하는 포세이돈 핵 어뢰는 현재 개발중인 무기다.

하지만 이 핵 무기 외에도 러시아는 수많은 핵 미사일 등을 보유하고 있다.

러시아의 전황이 불리해지면 이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 것이다.

실제 사용 가능성이 그렇게 크지 않지만 그 가능성을 무시하기에는 너무 파괴적이다.

우크라이나 대리전 양상으로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작은 사건들을 연결시키면서 천천히 이야기의 얼개를 만들어간다.

점점 더 푸틴이 핵무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듯한 분위기를 만든다.

재밌는 부분은 러시아 장군들이 푸틴에게 핵무기 사용을 권유하는 부분이다.

세계적 공멸을 막으려면 러시아 핵무기 아래 전세계가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는 설정이다.

하지만 실제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작가는 여기서 다른 방법으로 우회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그리고 최후에 푸틴을 죽이게 되는데 그 상황과 장면이 연극 같다.

읽으면서 그 가능성에 심리적으로 반발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것도 있지만 너무나도 무서운 일이기 때문이다.

늘 그렇듯이 가독성은 좋지만 전체적인 짜임새는 아쉽다.

장편의 느낌이 궁금하다.

꿈만 꾸는 게 더 나았어요 ㅣ 트리플 10
심너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12월

자음과모음 트리플 시리즈 10권이다.

SF 작가가 이 시리즈에 올라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3편의 SF 단편 소설과 한 편의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에는 경장편 정도로 생각했는데 읽다 보니 단편집이었다.

첫 단편 <대리자들>은 과학의 발달이 배우의 연기에 미치는 영향을 잘 보여준다.

순수한 인간의 몸으로 연기를 하는 시대가 끝났음을 알려준다.

현실의 AI가 이미 사진 같은 사람을 그려내는 시대가 되었기에 공감하는 바가 크다.

빛나는 눈동자를 가진 전직 아이 배우가 컴퓨터 그래픽에 이미지를 빌려주는 것에 고개를 끄덕인다.

자신이 연기할 필요도 없이 얼굴과 목소리와 몸매만 빌려주면 된다.

현지 로케도 사라지고, 낭비되는 필름도 없다. 가까운 미래의 현실이다.

여기에 순수한 열정을 가진 여친을 등장시켜 주인공의 혼란을 더 부각시킨다.

마지막 장면은 자신의 철학이 없는 사람의 한계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꿈만 꾸는 게 더 나았어요>은 표제작이자 흔한 방식의 SF소설이다.

반전처럼 꾸며진 마지막 상황까지 오는 과정은 한 편의 좋은 이야기다.

좋은 선배, 높은 급여, 쉬운 일, 하지만 다른 동료들의 낯선 모습들은 호기심을 자아낸다.

재밌는 이야기 중 하나는 아무리 좋은 보안 프로그램을 깔아 놓아도 운영하는 것은 사람이란 것이다.

특히 비밀번호 이야기를 할 때는 순간 뜨끔했다.

소설 속에 나오는 몇 광년이란 거리는 다른 여타의 SF소설처럼 낯선 거리다.

<문명의 사도>은 로마를 연상시키는 이름으로 꾸며져 있다.

인류가 우주로 나가고, 새로운 문명을 만난다.

인류를 위해 광산 행성, 농업 행성 등을 만들어내는데 주인공은 농업 행성의 집정관이 된다.

그가 웜홀을 통해 도착한 곳을 지구와 닮은 농업 행성으로 바꾸려 한다.

하지만 여기서 만난 실피움은 그의 의도를 무너트린다.

실피움의 실체를 알게 된 이후 그와 제국의 황제 사이에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이 황제는 인공지능인데 인간의 감성보다 논리가 우선이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에세이 세 편의 글로 자기를 소개하기>는 작가 3년 차의 이야기다.

어떻게 보면 간단한 창작 노트라고 할 수도 있다.

그의 소설들은 언제나 가볍게, 재밌게 읽을 수 있다. 당연히 이번 소설집도 그렇다.

장편은 아직인데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궁금하다.

이제 몇 권 남지 않은 듯한데.

쿠키런 킹덤 19 : 다가오는 결전의 날 - 오리지널 레벨업 코믹북 ㅣ 쿠키런 킹덤 19
김강현 지음, 김기수 그림 / 서울문화사 / 2024년 6월

쿠키런 킹덤 시리즈 19권이다.

부제를 보면 이제 몇 권 안에 끝날 것 같다.

개인적인 바람으로 몇 권 안에 끝내주었으면 한다.

새로운 등장인물이나 사건으로 질질 끌 내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늘 그렇듯이 전편과 이어지는데 이번에는 가상 현실과 연결되어 있다.

용감한 쿠키가 피라미드 속 가상 현실에 빠져들어간 전편과 이어진다.

이 비현실적인 세계가 만들어진 이유를 골드치즈 쿠키와 만나 알게 된다.

어둠마녀 쿠키와의 전쟁 이후 자신의 왕국이 파괴된 것을 본 골드치즈 쿠키.

소울잼을 이용해 국민 모두를 가상 세계에 넣고 그들의 생명을 유지한다.

만약 이 세계가 깨어진다면 잠든 백성들은 모두 죽게 된다.

이런 사실을 피라미드의 수호자 역할을 하는 스모크치즈맛 쿠키가 알려준다.

그는 골드치즈 쿠키의 바람을 지키기 위해 현실에서 살고 있다.

피라미드에 머물면서 침입자들을 미이라처럼 묶어 가상 세계 속으로 보낸다.

용감한 쿠키가 가상 세계 속으로 빠져 들어간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상 현실 속에서 골드치즈 쿠키에게 현실을 깨우쳐 주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골드치즈 쿠키가 알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아 이 가상 세계를 유지하고 있다.

어린이 만화라 간단하게 그려내었지만 현실 속에도 이런 일은 많다.

평생 트라우마 속에 살면서 자신이 만든 세계만 꿈꾸는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현실을 깨우쳐 주려고 해도 믿지 않고 자기 고집만 부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비교적 간단하게 이 껍질을 깨트리고 잠든 백성을 무사히 깨울 방법을 찾는다.

감초괴물군단을 앞세운 어둠마녀 쿠키의 부하들.

첫 마을을 박살낸 후 다음 도시로 이동한다.

마을 사람들은 흑당맛 쿠키의 도움으로 먼저 달아난 상태다.

이때 이들을 지켜보는 낌새를 눈치 채는 데 벨벳케이크맛 쿠기가 그를 놓아준다.

흑당맛 쿠키 일행은 강력한 성벽을 가진 도시에 도착한다.

감초괴물군단도 이 성벽을 쉽게 깨트리지 못한다.

하지만 다크카카오 쿠키의 아들 다크초크 쿠키가 마법검으로 성곽을 무너트린다.

성안 사람들이 아주 큰 위험에 빠졌을 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긴다.

이 미스터리가 다음 권에서 풀릴 것 같은데 벌써 기대된다.

용감한 쿠키 일행의 활약은 여전히 그대로 진행된다.

홀리베리 쿠키의 무지막지한 힘은 피라미드를 무너트릴 정도다.

퓨어바닐라 쿠키가 가상 세계 속으로 들어가 펼치는 능력은 어릴 때 꿈속 놀이와 닮아 있다.

꿈속이라면 자신이 바라는 것을 원하는 대로 구현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와 그 능력 말이다.

어둠마녀 쿠키의 부하들이 일으키는 문제를 듣게 되면서 새로운 모험이 예고된다.

그리고 다크카카오 쿠키는 마침내 자신의 아들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과연 이 부자는 어떻게 만나고 그들 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할지 궁금하다.

용감한 쿠키의 친구들이 모두 모였고, 어둠마녀 쿠키가 부활한 지금.

그들의 대결은 어떤 방식으로,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앞에 깔아둔 설정은 어떻게 회수할지 궁금하다.

한 사람 환자 만들기 쉽구나!

블랙워터 레인 ㅣ 아르테 오리지널 30
B. A. 패리스 지음, 이수영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6월

<브레이크 다운>의 개정판이다.

개정판으로 나오면서 영화 제목으로 책 제목을 바꾸었다.

한때 연속적으로 책들이 나오다 중단되었는데 최근에 다시 몇 권이 나왔다.

개인적으로도 강렬했던 데뷔작 <비하인드 도어>를 재밌게 읽어 관심을 두고 있던 작가다.

설정을 만들고, 심리적으로 상대를 무너트리는 기술이 아주 일품이었다.

이 능력은 이번 소설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다만 나의 스릴러 구력이 깊어지면서 예상 가능한 설정이 있었는데 이번에 잘 맞아 떨어졌다.

하지만 모든 설정을 다 맞출 정도는 아니다. 마지막 반전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폭우가 쏟아지는 밤에 캐시는 남편의 경고를 무시하고 지름길 블랙워터로 집에 온다.

집에 오는 도중에 주차한 차를 보고 잠시 멈춘다.

평범한 밤이면 밖으로 나가겠지만 폭우와 평온한 차안의 풍경이 그냥 지나가게 한다.

남편은 두통 때문에 먼저 다른 방에서 잠들었고, 집에 도착해서 경찰에 신고할까 고민하다 잠든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자신이 지나온 길에서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자신이 그때 차 문을 두드리거나 경찰에 신고했다면 하고 죄책감을 느낀다.

이 죄책감은 피살자가 자신이 알던 제인이라는 사실에 더 강해진다.

경찰이 그날 밤 이 도로를 지나간 사람을 찾지만 죄책감과 두려움이 신고를 멈추게 한다.

이런 일상에 또 다른 문제가 생기는데 그것은 바로 약속 등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캐시의 엄마는 40대에 치매 증상으로 고생을 하다 죽었다.

캐시는 자신도 엄마처럼 치매에 걸린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

친구의 생일 선물을 위해 모든 돈을 잊고 있거나 초대한 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자신이 주문하지 않은 유모차가 집에 배달되어 온다.

죄책감과 범인이 자신을 찾으러 올 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섞여 상황은 더 악화된다.

자신의 엄마가 치매 환자였다는 사실을 남편에게 말하지 못한다.

말하지 못하면서 자신이 기억하지 못한 일들을 어물쩍 넘어가는 일들이 늘어난다.

어느 순간 집에 걸려오는 말없는 전화, 남편이 없을 때만 걸려온다.

이 전화가 그녀에게 범인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게 한다.

남편과 절친 레이첼에게 모든 것을 떨어 놓아야 하지만 공포가 그것을 막는다.

작가는 집요하게 캐시의 무너지는 심리 상태에 파고 든다.

불안과 공포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손길을 내미는 것을 막는다.

한 번 엇갈린 관계는 앞으로 나아가는데 더 방해가 된다.

이런 현상들을 지켜보다 보면 이상한 부분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온다.

이 부분들이 내가 설정을 알아채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아마 이것과 비슷한 설정을 예전에 본 적이 있어 빨리 눈치챈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과 상관없이 캐시를 둘러싼 환경과 신경이 쇄약해지는 모습은 흥미롭다.

의심의 눈초리를 어디까지 뻗어나가야 하는지 의문스러웠다.

이 상황이 결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더 그랬다.

바깥에서 볼 때 캐시의 반응은 부정확하고 무력해 보인다.

하지만 과거의 이력과 현재의 공포 등이 엮이고, 주변 사항이 압박을 가한다면 어떨까?

작가는 서서히 조이는 심리적 공포를 차근차근 쌓아 올린다.

자신의 기억과 다른 상황, 엄마의 병력, 남편의 반응 등이 상황을 악화시킨다.

잔인한 장면은 없지만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상황이 순간순간 나타난다.

당사자가 아닌 경우 쉽게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의 흔적과 상황이, 가족력이, 남편의 소개로 만난 의사의 진찰이 있는데.

가장 안전해야 할 가정이, 가족이, 친구가 그녀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의 해결은 아주 우연한 일로 하나씩 풀린다.

이때부터 소설은 전혀 다른 분위기가 되고, 속도감은 더욱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