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생거 사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3
제인 오스틴 지음, 윤지관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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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3권이다.

이 전집 정말 가뭄에 콩 나듯이 읽고 있다.

사 놓고, 선물 받은 책들을 생각하면 다 읽을 자신이 솔직히 없다.

중간 중간 이전에 읽었던 책들이 전집에 포함되면서 깔 맞춤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한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은 많은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번역본이 여럿 있다는 것은 선택의 폭을 넓혀준다.

집을 뒤지면 이 책도 최소 두 종류는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선물 받았고, 가장 눈에 먼저 들어왔기 때문이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기본적으로 로맨스다.

이 소설은 작가가 이십 대에 탈고한 첫 장편 소설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소설은 유고작으로 출간되었다.

이 작품의 출간 과정 등은 작품 해설에 설명되어 있으니 참고하면 된다.

열일곱 살 캐서린을 주인공으로 내세웠고, 작가의 개입이 곳곳에 나온다.

캐서린의 어린 시절 외모에 대한 평가는 박하고, 선머슴처럼 자랐다.

열일곱 살이 되어서야 앨런 부부의 초청으로 휴양 도시이자 사교 모임이 활발한 바스로 간다.

제대로 된 친구도 없고, 앨런 부인의 불친절한 안내는 사교 모임 적응을 힘들게 한다.

이때 이저벨라 소프와 절친이 되면서 바스의 생활이 즐거워진다.

이 즐거움이 배가되는 것은 헨리 틸리의 만나면서부터다.


헨리를 만나 그와의 관계를 진척시키고 싶지만 그는 모임에 잘 나타나지 않는다.

유일한 즐거움 중 하나가 이저벨라 함께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저벨라와 함께 거리를 걷다 그녀의 오빠 존과 캐서린의 제임스 오빠를 만난다.

둘은 같은 대학 친구이고, 이번에 같이 바스에 며칠 머물기 위해 왔다.

존은 캐서린에게 열렬히 구애를 하지만 캐서린의 마음은 틸리 남매에게 가 있다.

자신이 원하는 것에 집착하는 존의 행동은 무례하고 거짓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아직 사교 사회를 잘 모르는 캐서린은 이저벨라와 오빠의 요청에 흔들린다.

이 장면들은 사회 경험이 부족한 어린 소녀의 갈등과 불안으로 가득하다.

제임스 오빠와 이저벨라가 가까워지면서 존의 요구는 더욱 강해진다.

한 번의 실수는 틸리 남매의 오해를 불러오고, 상황은 알 수 없게 흘러간다.


캐서린의 애타는 마음. 존 소프의 무대포적인 구애 행위.

존의 본성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오빠가 보여주는 반응들.

조금 밋밋하다고 생각하고 읽다 보면 어느 순간 갈등의 조짐들이 보인다.

이저벨라와 제임스 오빠의 약혼, 미루어진 결혼.

바스의 무대에 나타난 헨리의 형인 틸리 대위의 이저벨라에 대한 구애 행위들.

이저벨라가 이 구애에 대해 싫다고 말하지만 왠지 여지를 남겨두는 것 같다.

그리고 틸리 장군으로부터 초대를 받으면서 틸리 집안과 조금 더 가까워진다.

왜인지 알 수 없는 이유로 캐서린은 틸리 집안의 저택인 노생거 사원으로 초대받는다.

오래된 사원에 대한 캐서린의 환상은 또 다른 이야기로 이어진다.


사실 2부로 넘어오면서 캐서린의 환상과 현실이 재미와 속도감을 높여준다.

오래된 사원에 대한 환상은 소설 등을 읽으면서 상상한 것들이다.

극 중 소설에 대한 서로 다른 평가 등은 그 시대 분위기를 살짝 엿볼 수 있다.

노생거 사원에 머물면서 틸리 장군이 보여주는 강압적인 모습은 그녀를 불안하게 한다.

가끔 너무 친절하게 그녀를 대하는 장군의 모습 또한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장군의 충동적인 성격과 친절한 행동은 후반부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면을 연출한다.

그리고 너무 급작스러운 마무리로 이어지는데 왠지 아쉽다.

이전에 읽었던 제인 오스틴의 소설과 달리 조금 거칠다는 느낌도 있다.

이 시대 소설을 읽을 때면 그들의 삶 뒤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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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만이 알고 있다
모리 바지루 지음, 김진환 옮김 / 하빌리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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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모토 세이초상 수상작이다.

신인 작가의 충격적인 데뷔작!’이란 흔한 문구가 눈길을 끌었다.

너무 흔한 문구라 그렇게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제3장을 지나면서 이 생각은 조금씩 바뀌었다.

앞장을 계속 찾아보면서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이름과 단어들을 찾았다.

제목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게 되는 순간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다양한 장르 속에 이야기의 연관성을 만들어 내다니 대단하다.

이 기발한 발상과 각 단편이 주는 재미는 섬세한 구성과 잘 어우러져 있다.

마지막 에필로그의 이름을 보고 나의 저질 기억력이 그렇게 안타까울 수 없었다.


모두 다섯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단편들은 개별적이지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한 권의 책 속에 다섯 장르 소설이 멋지게 어우러져 있는 것이다.

각 단편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면 스포일러가 될 가능성이 있어 생략할 수밖에 없다.

추리소설에서 시작해 연애소설로 끝나는데 계속해서 나오는 것 하나가 있다.

그것은 겨울의 불꽃놀이 소리와 장면이다.

처음에는 그냥 하나의 배경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SF소설을 읽다 보면 이 불꽃놀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다.

기억력이 뛰어나다면 이런 연관성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첫 장에 나온 아오카게 탐정의 활약은 대단하다.

야쿠자의 시체 발견, 탐정 의뢰, 터무니없는 의뢰비 청구.

CCTV 자료 등을 생각하면 범인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조사 의뢰를 받은 후 그녀가 들려주는 추리 결과는 고개를 끄덕일만한 일이다.

추리소설에서 자주 나왔던 얼굴이 없는 시체의 정체를 둘러싼 추리와 닮았다.

하지만 이 추리는 다른 의도가 숨겨져 있다.

진짜 탐정의 추리는 여기에서 풀려나온다. 뻔한 설정이지만 재밌다.

이 단편 속에 다음 단편에 나올 단서들을 하나씩 심어두었다.

아오카게가 응원하는 고등학생 만담 콤비의 이야기가 청춘소설에.

조수 하루사키가 풀고 싶었던 미스터리한 사건은 판타지소설에.

친구의 연애 이야기는 마지막 연애소설에 나오고, 에필로그 이름으로 모든 이야기가 이어진다.


각 단편만 놓고 보면 이 연관성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보통의 연작 단편들이 장르가 비슷한 데 이 소설은 완전히 다른 장르들로 구성했다.

하나의 단편 속에 무심코 본 장면이 나중에 다른 이야기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다.

이런 소소한 재미가 곳곳에서 나오는데 어떤 대목에서는 나의 상상력이 덧씌워진다.

물론 내 예상대로 흘러갔다면 이야기의 개연성이 많이 무너졌을 것이다.

이런 소소한 재미와 함께 장르의 매력들이 각 단편 속에서 펼쳐진다.

피를 빠는 흡혈귀 대신 뼈를 빠는 흡골족이라니, 우습지만 재밌다.

지구를 암계라 부르고 마력 때문에 얼굴 인식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라니.

반지의 능력으로 비행하고, 집을 짓고, 불꽃을 만들어내는 SF 미래는 또 어떤가.

독자만이 알고 있다고 하지만 독자의 능력에 따라 알 수 있는 것이 달라진다.

누군가 친절하게 목록을 만들어 준다면 책을 뒤적이며 내가 놓친 것을 찾고 싶다.

다양한 장르 소설을 즐기고, 연작 소설을 좋아한다면 이 소설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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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건너는 집 특서 청소년문학 44
김하연 지음 / 특별한서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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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여중 추리소설 창작반>을 재밌게 읽었다.

이 기억이 개정판으로 나온 이 소설을 선택하게 했다.

최근 청소년 소설을 틈틈이 읽는데 상당히 재밌고, 생각할 거리들을 제공한다.

전형적인 설정을 벗어난 구성이나 전개도 상당히 마음에 든다.

이 작가의 소설을 이제 겨우 두 권 정도 읽었지만 더 읽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

문장의 단단함과 예상을 벗어난 설정 등은 몰입도를 높이고 재밌다.

여기에 분량도 그렇게 많지 않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좋다.

그리고 네 명의 청소년들을 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있는지 알게 된다.


처음 앞부분만 읽었을 때는 어색하고 뭐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얀 운동화를 신은 아이들에게만 보이는 집.

그 집에서 나온 할머니의 초대와 그 집안에 있는 기이한 세 개의 문.

이 문은 올해의 마지막 날에 열리고, 아이들은 한 곳을 선택해서 들어갈 수 있다.

세 개의 문은 과거, 현재, 미래의 문이고, 들어간 후에는 기억을 잃는다.

네 명의 아이들이 모두 모이면 시간은 멈추고, 누구나 일주일에 세 번은 와야 한다.

각각 다른 사연과 상처를 가진 아이들은 서로 다른 곳에서 이 집에 들어온다.

같이 만나는 날도 있지만 서로 엇갈리는 날들도 많다.

작가는 이 네 명의 상처 입은 청소년을 내세워 우리 사회의 아픈 단면을 보여준다.


선미는 엄마가 췌장암 말기 환자다.

엄마를 돌보기 위해 아빠는 이사를 했고, 집은 언제나 비어 있다.

자영은 학교 폭력의 피해자고, 반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

학교 가는 것이 두렵지만 임신한 엄마를 위해 겨우 힘을 내어 가고 있다.

이수는 어린 시절 부모의 방치로 트라우마를 안고 있다.

엄마에 대한 반항과 늘 날 선 반응을 보여준다.

깔끔하고 단정한 외모를 가진 강민은 고민이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강민은 이 집에서 분위기를 밝게 이끌고, 아이들의 좋은 친구가 된다.

이 네 명의 청소년들이 어쩔 수 없이 4개월 이상 이 집에 와야 한다.

연말에 있을 선택의 문을 열기 위해서, 그리고 이 시간 동안 서로 알아 간다.


선미가 이 집에 계속 오는 이유는 혹시 엄마의 병을 낳게 할 방법이 있을까 하는 기대다.

지영은 학교 폭력에서 벗어나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이 집이 제공한다.

이수도 특별하게 갈 곳이 없다 보니 이 집에 와서 머물다 간다.

가장 밝은 표정을 지닌 강민은 왜 이 집에 오는지 후반까지 알려주지 않는다.

이 넷은 자주 보고, 강민의 요청으로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조금씩 가까워진다.

그러다 지영의 학교 폭력 사실이 이수를 통해 알려지는데 넷의 반응이 모두 다르다.

가장 센 척하는 이수는 죽여줄까? 같은 무시무시한 말을 한다.

가장 교과서적인 답변은 부모님께 알려서 해결하라는 것이다.

실제 엄마에게 알려졌을 때 상황은 전혀 나아진 것이 없다.

집에 찾아온 담임의 말에는 피해자를 걱정하고 위로하는 말이 전혀 없었다.


네 명의 아이들은 집안에 우체통 속에 편지를 써서 궁금한 것을 묻는다.

선미는 시간을 당기고 싶은 마음을 담아 편지를 보내지만 답장은 거절이다.

이때 강민이 쓴 편지를 몰래 보고, 둘만의 비밀로 간직한다.

지영은 등교 거부로 왕따와 학교 폭력에 대항하지만 가해자들은 다른 방법을 사용한다.

지영의 친구를 통한 호출은 예상한 장면이지만 그 다음 장면은 예상을 벗어났다.

이 사건은 앞으로 다가올 시간의 문을 여는 데 장애 요소가 된다.

하지만 이수는 몰래 이 집에 다녀가면서 기회를 이어간다.

이 사건을 통해 드러난 사실과 사연들은 학교 폭력을 바로잡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한다.

현실은 본질을 보기보다 다른 소문에 더 눈길을 준다. 잔인한 현실이다.

이 현실 속에 작은 희망의 씨앗을 심어 놓고, 미래 속에 싹을 틔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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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 아일랜드
아키요시 리카코 지음, 임희선 옮김 / 하빌리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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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머릿속에 <배틀로얄>이 떠올랐다.

생존을 위한 잔혹한 살인 게임. 영화로만 봤다.

이 소설은 조금 낭만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술집 아일랜드에 모인 단골손님 여덟 명이 ‘무인도에 갈 때 가져갈 세 가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생존을 위한 것이라면 당연한 물건들이 이들에게는 낭만적으로 다가온다.

대부분이 선택한 물건 속에는 고기와 술이 들어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실제 무인도에서 오랫동안 살아남는 목적이 아니라 여행용으로 생각한 것이다.

이들의 말을 듣고 있던 술집 마스터가 자신이 상속받은 무인도에 대해 말한다.

각자가 고른 세 가지 물건만 들고 무인도로 휴가를 가자고.

오랜 시간 배를 타고 도착한 무인도는 아름답고 낭만적이었다.


이 낭만은 하룻밤을 지난 후 깨어진다.

타고 온 배와 마스터가 사라졌고, 비디오 카메라에 녹화된 영상만 하나 있다.

삶이 무료했던 금수저 마스터가 10억 엔의 상금을 내걸고 생존게임을 강요한다.

여덟 명 중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최대 2명.

최소 6명이 죽어야 하고, 이들의 시체는 해변에 전시되어야 한다.

이 시체는 위성으로 확인 가능하고, 확인되면 무선 보트를 보내준다.

그리고 10억 엔의 상금도 생존자에게 주겠다고 한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이 상황에서 먼저 공존을 꿈꿀 것이다.

하지만 여덟 명 중 뒤틀린 사고를 하는 사람이 나타나면서 분위기가 바뀐다.


여덟 명의 남녀는 각각 다른 전문 분야를 가지고 있다.

대기업 회사원인 슈이치, 슈이치의 연인이자 부잣집 딸인 리리코.

유튜버인 유우, 공무원인 이츠키, 서바이벌 게임을 해본 대학생 스에히로.

평범한 직장인 가와카미, 과학학원 강사 요시다, 의사 아마노 등이다.

이들이 선택한 아이템 중 가장 황당한 것은 리리코가 슈이치를 선택하고, 자신을 선택하라고 강요한 것이다.

실제 상황이라면 생존에 필요한 아이템 하나라도 더 가져가야 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멤버 구성을 놓고 보면 상당 기간 생존하는데 문제가 없다.

다양한 직업군과 경험들이 최악의 상황을 막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 아마노가 제안한 방식은 생각보다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악의와 억눌러져 있던 살의가 폭발하면서 살인이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노골적으로 자신의 살의를 표출하는 사람.

살의를 숨긴 채 몰래 사람을 죽이는 사람.

인간의 덕목을 지키면서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리려는 사람.

너무나도 무력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만 줄 것 같은 사람.

각각의 사연과 목적을 가지고 여덟 명의 남녀들은 생존을 목적으로 움직인다.

빠르게 진행되는 이야기 속에서 각각의 심리 묘사는 적나라하고 불편하게 사실적이다.

화자가 바뀌면서 각 장이 달라지는데 목차를 보여줄 수 없다.

각각의 인물들이 가져온 아이템을 보면 가장 유리한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가장 유리한 사람이 가장 위험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누군가가 죽게 되면 죽은 사람의 아이템을 다른 사람이 가져간다.

누가 죽기 전 사람들은 죽은 척하는 연기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두 명이 섬밖으로 나가는 경우가 생기면 누가 나갈지 서로 다툰다.

생존과 함께 받게 될 거액의 상금은 남은 자의 불안감을 고조시킨다.

누구도 믿지 못하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터진 살인.

확인되지 않은 소문과 진실을 둔 공방, 최약자의 위치 등.

극한의 상황에서 드러나는 진심과 탐욕은 알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간다.

뛰어난 가독성, 섬세하고 사실적인 심리 묘사, 간결하지만 잔혹한 설정.

가장 강한 사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가장 강하다는 평범한 진리.

마지막까지 설정의 힘이 살아있고, 예상 외의 상황에 놀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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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제12회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단편 수상작품집
지다정 외 지음 / 북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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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올해 12회를 맞이한 단편 수상작품집이다.

개인적으로 늘 이 수상작품집이 나오면 눈길이 간다.

대부분의 단편들이 장르문학을 담고 있고, 예상한 것 이상의 재미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시할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대부분 낯선 작가란 것이다.

이 낯선 작가들이 만들어낸 이야기가 완전히 새롭지는 않지만 재밌다.

이 재미가 계속 이 수상작품집을 계속 읽게 하고, 기다리게 한다.

재밌게 읽다 보면, 혹은 읽고 난 후 예상하지 못한 가능성을 만난다.

이 가능성은 장르 문학의 확장이자 발전이다.


지다정의 <돈까스 망치 동충하초>는 공포물이다.

제목만 놓고 보면 무슨 의미인지 전혀 알 수 없다.

하지만 강남 중심가 재개발을 바라는 단독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서늘하다.

이 서늘함은 매일 특정한 시간이 들리는 돈까스 망치 소리가 아닌 인간의 탐욕이다.

처음에는 매일 들리는 소리가 공포를 자아내지만 그 실체는 쉽게 퇴치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싼 임차료에 넓은 집에서 사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다르다.

세금을 피하기 위한 실 거주 기간, 그 목적을 위한 싼 가격의 임차료.

화려하게 치장된 아파트 인테리어 덕분에 소득이 늘어난 주인공 영서.

성공에 대한 질투, 그 이면에 깔린 선망, 어느 순간 뒤틀리는 욕망 등이 폭주한다.


최홍준의 <노인 좀비를 위한 나라는 없다>는 유명한 소설의 제목 패러디다.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했지만 코로나 19처럼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해진 시대다.

좀비들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특정 구역에 격리시킨 채 놓아둔다.

냉동인간을 연구하던 한 연구가가 죽지 않는 좀비를 통해 생명 연장을 꿈꾼다.

좀비를 다시 인간으로 돌릴 수 있다면 수많은 의학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연구가 노인들을 좀비로 만드는 기회로 변한다.

좀비 인간화 의학이 개발되면 다시 인간으로 되돌릴 수 있다는 헛된 기대와 함께.

삶이 점점 더 양극화되고 힘들어지는 가족들에게 이것은 좋은 핑계다.

이 핑계가 나중에 그들의 삶을 짓누르는 엄청난 무거움으로 다가오지만 말이다.


김지나의 <청소의 신>은 배상민 소설가의 해설이 인상적이다.

서로 다른 욕망을 가진 두 남녀. 하지만 지위는 다르다.

화자는 모텔의 주인이고, 종수는 모텔의 청소와 기타 잡무를 담당한다.

종수가 ‘나’를 누나라고 부르는 것이 불만이지만 그는 너무 일을 잘한다.

코로나 19로 오히려 수입이 더 늘어났지만 문제는 손님의 질이 문제다.

부랑자들을 격리시키기 위해 모텔에 손님으로 들이지만 문제도 늘어난다.

실제 일은 종수에게 맡겨 두고 돈을 벌면서 서로 다른 계급이란 생각을 한다.

실제 일 할 사람이 사라진 다음에 부부는 이 모델을 운영할 마음이 사라진다.

스스로 양심적인 고용주라는 말 속에 담긴 그들의 진짜 모습은 우리 주변에도 자주 볼 수 있다.


이건해의 <장어는 어디로 가고 어디서 오는가>는 인간의 호기심 중 하나다.

아직 양식이 되지 않는 생물 중 하나가 장어다.

인류의 과학 기술은 아직 심해 깊은 곳까지 들어갈 정도로 발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상상력은 그 심해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하다.

심해 평균 8,000미터를 넘는 곳을 탐사하는 것이 어떤 과학 기술로 가능한지는 생략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장어의 생태와 산란을 보기 위해 심해 드론으로 장어 떼를 따라 가는 것이다.

심해에서 드론을 운전하는 것은 높은 집중력을 요구하고, 장 박사는 마지막에 어떤 것을 본 후 죽는다.

드론의 영상을 통해 가장 깊은 바다 속 해구에서 보게 되는 것을 무엇일까?

그리고 진실을 마주하길 두려워하는 인물과 진실을 보려는 인물의 대립은 생각할 거리다.


이하서의 <톡>은 인류가 모두 바다에 잠긴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인간의 모습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 중 일부는 잠수정을 탄 채 살아간다.

감염된 인간들은 수중류가 되어 물속에서 살아간다.

아직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능했던 사람들은 누군가를 잠수정 밖으로 내보내 탐사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다.

삶의 의지와 욕망이 그들이 그렇게 혐오했던 수중류의 삶을 부러워한다.

점점 부스러지고, 망가지고 있는 잠수정의 상황 때문이다.

이기적인 욕망은 참담한 사건으로 이어지고, 인간성은 점점 사라진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인간성을 지키려는 두 사람의 과거와 현재가 진한 여운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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