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랜드 엘레지
아야드 악타르 지음, 민승남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파키스탄 계 이민자 2세의 이야기다.

작가 악타르는 희곡 <수치Disgraced>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이 희곡은 911테러 이후 강화된 이슬람 혐오로 인한 정체성 혼란을 그렸다고 한다.

이 작품으로 상은 받았지만 그만큼 그를 혐오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가 거짓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한 이민자 가정의 모습을 통해 미국이 주장해온 허구의 실체가 그대로 까발려진다.

한때 트럼프의 주치의였던 아버지가 가진 아메리카 드림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도.

두툼한 분량은 그 속에 담긴 메시지와 통찰 등으로 더욱 풍성해졌다.

그리고 이슬람인으로 미국에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곳곳에서 드러난다.

이민자 혐오와 자본주의의 본질적 폭력 등이 이민자 2세의 정체성과 엮여 하나씩 풀려나온다.


두툼한 분량이라고 했지만 520쪽에 불과하다.

그 속에 담긴 이야기와 시대상과 인종 문제 등이 좀더 집중해서 읽게 한다.

미국을 흔히 인종의 용광로라고 표현했지만 최근에는 샐러드볼이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작가는 화학에서 물질들을 분리하게 만드는 완충액이란 표현을 쓴다.

점점 인종 차별 정책이 강화되고,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는 미국의 현실에 딱 맞는 표현이다.

이 표현은 미국만의 용어가 아니라 현재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도 적용 가능하다.

그가 한적한 도시의 마트 등에서 경험한 이야기는 현실적 위협이자 아주 수치스러운 일이다.

이것은 911 당시 그가 참혹한 사고의 현장에서 경험한 것과 같이 맞물린다.

그가 미국에서 태어났고, 이슬람 교도가 아니라는 것만으로 혐오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의 희곡이 연극 무대에서 성공하자 무슬림 부자 리아즈가 찾아온다.

리아즈의 호의가 연극 배우들에게 먼저 전달되고, 결국 그에게까지 이어진다.

퓰리처 상을 수상했다는 것과 같은 이슬람이란 점 등이 그들을 묶어준다.

리아즈는 빚을 팔아 자본을 굴리는 시스템을 운영해 돈을 벌었다.

그가 세운 회사에 악타르는 어머니가 남긴 유산을 투자한다.

몇 년이 되지 않아 3십만 불은 수백만 불로 불어났다.

금융감독 당국의 조사원이 악타르를 찾아오지만 어떤 불법도 찾아내지 못한다.

실제 그 회사는 악타르가 주식을 팔 때보다 더 비싸졌다.

그리고 리아즈와 함께한 순간들은 그의 삶에서 가장 흥청망청한 순간이다.

빚이 자본으로 바뀌는 새로운 금융기법을 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친구를 먼저 사랑했다.

하지만 그는 약혼녀가 있었고, 결혼까지 했다.

어머니도 의대를 졸업했고, 미국의 필요에 의해 아버지와 친구가 이민을 왔다.

절친인 둘은 자주 만났지만 미국에 대한 생각은 서로 달랐다.

아버지는 트럼프를 지지하는 쪽으로 변할 정도였고, 그 친구는 이슬람에 더 빠져들었다.

이렇게 변하게 된 것은 파키스탄을 둘러싼 나라들의 상황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탈레반 등이 어떻게 성장했는지, 원리주의자들이 아이들을 어떻게 가스라이팅했는지.

파키스탄이 인도에서 분리되는 과정에 있었던 참혹한 학살은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이 과정에 영국 제국주의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같이 나온다.

이제 그 역할이 미국 등으로 이어졌고, 삶은 더욱 힘겨워졌다.


정말 많은 이야기들이 나온다.

살만 루슈디의 소설을 두고 벌어지는 논쟁은 종교가 가진 편견과 한계를 보여준다.

아야드가 아버지와 트럼프를 두고 벌인 논쟁과 비슷해 보인다.

아버지는 트럼프 주치의로 있으면서 매춘부를 만났고, 딸까지 낳았다.

아야드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우연한 만남과 그녀의 집에서 본 아버지의 사진 때문이다.

아버지의 환자가 죽은 의료 사고 재판은 사실이 아닌 거짓과 혐오로 가득하다.

위스키와 도박을 좋아하는 아버지는 몰락의 길을 가는 중이었다.

아버지가 들려준 거대한 의료 비리는 자본 앞에 너무 무력하게 가려진다.

비밀유지각서가 가진 거대한 압박을 보면서 법 개정이 절실하게 필요해 보인다.

무슬림 연인에게 무슬림 정체성 때문에 버림받고, 백인들에게는 테러리스트로 치부된다.

마지막에 그가 미국이 자신의 홈랜드라고 외친다.

이 외침이 사실을 말하고 있다고 해도 사람들은 부모의 국적과 피부색을 먼저 본다.


#홈랜드엘레지  #아야드악타르  #열린책들  #장편소설  #트럼프  #팍스아메리카나  #리뷰어스클럽  #리뷰어스클럽서평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상하고 천박하게 둘이서 1
김사월.이훤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사월과 이훤, 둘은 나에게 모두 낯설다.

어딘가에서 이 둘의 이름을 보거나 들은 적이 있을 지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책이나 음악으로 만난 적은 없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김사월이란 이름을 다른 음악가와 착각을 하면서 이 책에 관심을 두었다.

나의 이런 착각이나 주저하면서 하는 선택들이 가끔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책도 그런 연장선상에 있고, 둘의 작품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왔다.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김사월의 작년 앨범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늦은 밤 시간 내어 그녀의 4집 앨법을 들으면서 감탄한다.

정밀아의 3집을 들을 때 느낀 그 기분을 다시 느낀 것이다.


열린책들의 <둘이서> 시리즈 첫 권이다.

출판사의 제안을 받고 이훤이 친구 김사월을 바로 떠올렸다고 한다.

첫 이야기는 2023년 10월 19일 이훤의 결혼식이다.

이훤의 아내 이슬아가 누군지 잘 몰랐는데 검색하고 책 표지를 본 후 알게 되었다.

현재 이훤은 이슬아의 <가녀장의 시대>를 영어로 번역하는 중이다.

이 번역 과정에서 그가 느낌 감정과 애로 사항은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서로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자신들의 생각을 천천히 풀어낸다.

자신들의 작업 방식, 고민과 서로의 작업에 대한 호기심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리고 이 일들은 깊은 사색과 아름다운 문장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읽으면서 그들의 사색과 통찰에 공감한 부분들이 많았다.


책 속에 이훤의 사진 몇 작품이 들어 있다.

어딘가 장난처럼, 혹은 잘못 찍은 것처럼 보인다.

사진 작가가 이렇게 찍었다면 그 작업 의도를 생각해야 한다.

아직 몇 장의 사진으로 그가 보여주려고 한 세계가 마음 속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쓴 글들이, 사색이, 통찰이 더 마음에 와 닿는다.

김사월의 4집 <디폴트>의 감상평은 좀더 세밀하게 듣고 난 후 비교해봐야 할 것 같다.

학창 시절 미국으로 이민 간 그가 다시 배우고 느끼는 지점들은 생각할 거리를 준다.

김사월이 이훤을 인터뷰한 내용 중 한 대목은 가슴에 꼭 담아두고 싶다.

너무 기술적으로만 읽게 되면 마음이 갑자기 폭삭 식어 버리기 때문에.

반면에 어떤 풍경이 그려지면 다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느껴.”


내가 잘 보지 않는다고, 듣지 않는다고 좋은 곳들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노래를 들을 때 가사보다 멜로디에 집중하다 보면 놓치는 것들이 많다.

최근 아이돌 노래를 들을 때나, 해외음악을 들을 때면 가사는 뒷전이다.

하지만 가사는 그 음악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보여준다.

나의 한계 혹은 게으름 때문에 놓친 것들을 생각하면 늘 아쉽다.

그녀의 일상을 담백하게 풀어낸 글도 좋고, 속내를 표출한 글들도 좋다.

일본에서 뮤직 비디오를 찍으면서 생긴 에피소드는 솔직한 감정으로 표현된다.

정체되는 나의 취향’을 정말 무서워하는 모습에 나 자신을 돌아본다.

이슬아를 통해 이훤을 만났다는 사실에 첫 결혼식 상황이 조금은 이해된다.

그리고 이 우정이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 지가 곳곳에서 느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림을 맛있게 먹는 7가지 방법
송주영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일보 미술칼럼 ‘송주영의 맛있게 그림보기’에 연재된 글들이다.

43개의 글 중에서 28개의 맛을 선별해 7부로 나누었다.

저자는 선사시대 미술에서 시작해 동시대의 미술까지 다룬다.

단순히 미술에 대한 해석과 정보만 전달하지 않고, 미술교육까지 폭넓은 분야에 대해 말한다.

미술교육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나 또한 얼마나 많은 편견에 갇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몰래 대입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예술가에 대한 우리의 편견과 선입견을 다룰 때 오래 전 생각했던 것을 다시 확인했다.

철수와 영희가 아니라 철수와 영이라고 지적한 부분은 새로운 사실이었다.


1부부터 강하게 시선을 끌었다.

많은 미술 서적을 읽다 보면 서로 다른 해석으로 한 그림을 풀어낸 것을 보게 된다.

도상학적으로 풀어낸 것은 이해를 도와주지만 자신의 해석을 강조하는 듯한 느낌도 받는다.

스토리텔링으로 그림 보기’는 많은 경우 나의 해석과 다른 해석에 대한 좋은 본보기다.

김홍도의 <노상파안>을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낸 부분은 재밌다.

그렇지만 이 그림을 다른 식으로 해석한 것을 본 적 있기에 또 다른 시각으로 상상한다.

미술 감상에서 제목이 ‘무제’인 경우 난감할 때가 많다.

작가, 관람자, 그림을 둘러싸고 있는 외부의 모든 것이 함께 찾아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좋은 비평은 있어도 정답은 없다.”는 것은 그 자체로 즐겁고, 무한한 맛의 세계를 의미한다.


미라가 물감이 되었다는 이야기에 솔직히 깜짝 놀랐다.

어릴 때 미라의 저주 같은 이야기에 얼마나 혹했는지 생각하면 더욱더.

머미 브라운의 비밀과 이 물감이 비교적 현대까지 사용되었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케이블에서 <미이라 2>를 보는데 이 사실이 떠올라 살짝 집중을 깨졌다.

달항아리’가 원래 있는 단어가 아니란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달항아리를 내세우는 케이크까지 있는데 말이다.

이제 그 케이크 가게를 지날 때면 한동안 계속 이 이야기가 떠오를 것 같다.

백자대호에 대한 세계의 관심을 다른 식으로 해석한 것도 한 번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사실에 새로움을 더한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루벤스의 동양인에 대한 최근 정보들은 고려인이 아닌 명나라 사람이다.

국뽕에 살짝 찬물을 끼얹는 듯하지만 사실 확인은 필요한 일이다.

렘브란트의 <야경>이 밤이 아닌 낮을 배경으로 한다는 정보는 이전에 본 적이 있다.

그림의 일부가 잘린 것도 역시 그렇지만 미술 복원은 다른 이야기를 전해준다.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의 소설과 영화 덕분에 더 유명해진 베르메르.

그의 위작을 둘러싼 이야기는 다시 읽어도 재밌다.

폴리베르제르란 이름보다는 베르메르가 더 익숙한 것도 사실이다.

마르셀 뒤샹의 그 유명한 작품이 어떤 의미인지 알려주는데 이번에도 역시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동시대 미술로 넘어오면 사실 대부분 모르는 예술가다.

신디 셔먼이나 니키 리의 사진은 그냥 보면 일반 사진이다.

하지만 일관되게 작업해온 것들을 보면서 형식과 내용의 설명을 들으면 다르게 다가온다.

우리가 막 찍는 사진과 예술가의 작업이 어디에서 갈리는지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수박 그림이 팔레스타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이런 정보를 잘 전달해주지도 않고, 편향적인 시선으로 팔레스타인을 보기 때문이다.

현대 미술가의 성공 비밀이 네트워크라고 할 때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이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란 것도 역시 말한다.

6부는 미술사 속의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좀더 많은 이야기를 읽고 싶다.

이 부분만 가지고 한 권의 책을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

음식의 맛도 다양하게 먹어봐야 알고, 공부해야 하듯이 그림도 더 공부하고 맛봐야 한다.

기존의 미술 해설과 다른 부분이 많아 더 좋았는데 다음 책도 기대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그나르 주식회사 - 김동식 AI 초단편선
김동식 지음 / 요다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AI를 주제로 한 초단편소설 모음집이다.

단편소설만 쓴 김동식 작가의 새로운 단편집이다.

프롤로그 포함 열여덟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AI 기술의 발전을 세 단계로 분류했다.

약인공지능, 강인공지능, 초인공지능 이렇게 말이다.

이 세 단계는 세 개의 장으로 나누어진다.

이 단계별로 생길 수 있는 일들을 단편소설 속에 녹여내었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날카로운 통찰력은 재미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프롤로그에서 인류가 AI를 사용하게 되는 첫 단계를 알려준다.

인류의 노동력 등을 대체하는 AI에게 인류는 지속적으로 가스라이팅을 한다.

이 가스라이팅을 보고 로봇 3원칙이 떠올랐다.

인류가 로봇이나 AI에게 멸망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대책이다.

그리고 어떻게 인류가 AI를 더 사용하면서 자신들의 삶을 맡기는지 보여준다.

그 속에는 자기 삶의 불만 등을 대체하기 위한 것부터 시작해 점점 발전한다.

늙은 자신의 외모를 보여주지 않기 위한 노력이 어떤 식으로 변하는지도 보여준다.

인간의 욕망이 그대로 투영된 상황들을 현실의 사건들과 엮었다.

<AI 상속법>은 동물에게 유산을 상속한 것을 빗대어 풀어내었는데 마지막이 섬뜩하다.


어느 정도 AI가 발전하면 인간들이 맡을 부분은 점점 줄어든다.

늙은 스타를 죽이는 킬러가 등장한 이유가 비용 절감이란 부분에 놀란다.

AI가 모든 부분에 적용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인간들의 반격은 사실 한시적이다.

이 한시적인 시간 속에 인간들은 자신들의 욕망과 이익을 챙기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단편이 <모솔 유튜버의 합방>과 <딥페이크 시대의 기본 소양> 편이다.

<드라마 성공 공식>은 최근 말이 나오는 AI 창작물을 좀더 발전시켰다.

이 단계까지 오면 우리가 누리게 될 창작물의 재미는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납치 사건을 두고 누가 거짓말하는지를 다룬 이야기는 진화한 보이스피싱 문제를 보여준다.


AI가 마지막 단계에 들어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이미 영화 등으로 많이 나와있다.

그 단계 이전에 일어날 수 있는 사건 등을 다루고 있는데 웃픈 미래를 보여준다.

<인류보다 월등한> 외계종족의 등장과 대화하는 과정 속에 인간의 착각과 오만을 집어넣었다.

진화한 외계인과 대화가 가능한 AI, AI의 통역에 기대야 하는 인류.

가장 공평한 복지가 선별도, 일괄도 아닌 랜덤이란 현실 비판.

점점 발전한 AI의 학습 능력 등에 기대야 하는 인류의 문제를 다룬 <AI 노벨상>

이 단편에서 마지막 장면은 다음 이야기 <프로그램의 습성>과 연계하면 더욱 섬뜩하다.

이런 와중에 인류가 현재 가진 유일성을 풀어낸 이야기가 <철통 보안 콘서트>다.

하지만 과연 이런 철통 보안이 가능한지는 살짝 의문이 든다.

작가는 AI를 인간을 위한 도구와 인간을 위협할 무기란 두 가지 입장에서 썼다고 한다.

이 이야기들 속에서 독자들은 자신의 사유를 통해 더 많은 것을 상상하는 재미를 누릴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온화한 슬픔
엄현주 지음 / 문이당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처음 만나는 작가다.

읽을까? 말까? 한동안 주저한 소설이다.

대치동에서 미혼모와 단 둘이 사는 열다섯 살 소녀의 성장일기란 말에 읽기로 했다.

엄마가 단 둘이 사는 아이의 이야기는 이미 여러 번 봤다.

오래 전 소설들이 결손과 아버지에 대한 호기심을 가득 채운 것과 다른 전개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삶을 흔들 정도는 아니다.

이 여중생이 살면서 경험하는 다양한 현실들이 나의 마음 곳곳을 찌른다.


미혼모의 딸인 송화는 한의원을 하던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한의원에서 일하던 엄마는 샌드위치를 가게를 열었다.

자신들이 살던 집은 전세를 주었고, 가게 한 구석에 방을 만들어 살고 있다.

열다섯 살 소녀의 엄마는 이제 겨우 서른다섯 살이다.

엄마의 꿈은 딸이 한의사가 되어 아버지의 한의원을 다시 여는 것이다.

한국에서 한의대에 들어가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다.

비록 송화가 대치동 중학교에서 반1등을 늘 한다고 해도 말이다.

자신을 위해 홀로 열심히 일하는 엄마는 보면서 송화는 열심히 공부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송화가 만나고 경험하는 일들을 담고 있다.


여중생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가족을 빼면 당연히 친구다.

부유한 아이들이 사는 동네답게 아이들은 유학과 어학연수를 말한다.

송화에게는 다른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친구들은 수업이 끝나면 잠시의 쉴 틈도 없이 학원을 돌아야 한다.

이렇게 비싼 돈을 들여 학원을 보내는 이유는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다.

부모의 바람과 다른 결과가 뻔하지만 불안감에 풀어놓지 못한다.

이런 와중에 유학을 말하는 친구가 나오는데 그 이면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건물주인 약사 아저씨가 기러기 아빠란 것은 의도적인 것이다.

아내와 딸이 미국에서 유학을 하는데 이 비용을 홀로 끼니를 때우면서 부담한다.


임대 비용을 올리면서 악덕 건물주였던 약사 아저씨에 대한 감정이 어느 순간 변한다.

기러기 아빠로 살면서 샌드위치와 라면 등으로 끼니 때우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자식의 유학비를 벌기 위해 임대료를 올린 것이 조금은 이해가 되는 순간이다.

약사 아저씨는 방학이 되어 아내와 딸이 올 것을 기대하고 즐거워한다.

하지만 둘은 연락이 제대로 되지 않고, 실의에 잠긴다.

이때 송화는 잠시 약사 아저씨의 친구이자 딸이 된다.

송화도 자신의 아버지라면 하고 잠시 상상을 한다.

그리고 이 둘을 이어주는 길고양이 플루토가 나타나면서 더 가까워진다.

현재 삶이 바쁜 둘이지만 잠깐이나마 서로의 안부를 묻고 정을 나눈다.


송화의 엄마는 대학생 때 임신해서 아이를 낳았다.

아이의 아빠가 누군지 가족들에게 말하지 않았고 부모의 도움을 받아 키웠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다른 삶을 살지만 한 가지 꿈을 가지고 있다.

딸 송화가 한의사가 되어 아버지의 한의원을 다시 여는 것이다.

아직 젊고 이쁜 그녀에게도 사랑이 찾아오지만 현실의 벽은 높다.

중학생 딸이 딸린 여자를 쉽게 받아줄 남친의 엄마는 거의 없다.

이 때문에 생기는 몇몇 에피소드는 우리 삶의 인식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혼자가 된 엄마와 올케 사이의 갈등도 풀어야 할 문제다.

이 문제가 풀릴 때 또 다른 사건 하나가 끝나고 약간의 희망을 보여준다.

중학생들이 보여주는 청춘의 밝은 빛과 현실의 무게가 적절히 엮여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